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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퀸 - 골짜기로 내려간 여우 ㅣ 그림책은 내 친구 17
존 버닝햄 글.그림, 안민희 옮김 / 논장 / 2008년 10월
평점 :
자식을 키우다 보면 아이가 부모나 주변 어른들이 해서는 안된다거나 하지 말라는 것을 해 보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어 곤란하거나 속상할 때가 종종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을 굳이 해보고 싶어 하는 아이의 심리를 이해 혹은 납득하기 어려워 답답한 마음이 든다. 하긴, 돌이켜 생각하면 나 자신도 어렸을 때 부모님에게 그런 고충과 심려를 끼쳐 가며 성장하지 않았던가. 부모의 말을 완벽하게 따르는 아이들은 없지 않을까 싶다.
산꼭대기에 평화롭게 살고 있는 여우 하퀸네 식구들. 위험하니 골짜기로 내려가지 말라는 엄마 아빠 여우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하퀸은 비밀통로를 찾아내 마을에 다녀오곤 한다. 도통 부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어린 여우 하퀸은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하고 싶어하는, 그리고 꼭 해보는 우리 아이들의 한 모습이다. 하퀸은 모험심도 강하고 무모하다고도 볼 수 있을 만큼 용기가 있다.
이 책을 보며 하퀸에게서 울타리 속에 갇혀 자라는 것을 답답해하는,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작가 또한 아이들의 그러한 특성을 담지 않았나 싶다. 더불어 존 버닝햄은 하퀸이 부모의 당부를 어기는 바람에 위험에 처하고 이를 통해 교훈을 얻는다는 식의 구도가 아니라 위험에 처하긴 했어도 지혜롭게 위기를 벗어나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비록 아이들이 문제를 만들긴 해도 스스로 이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마음 자세를 지니고 있을 텐데 정작 부모들이 이를 기다려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하퀸은 사냥터지기의 눈에 띄고 마는데, 다른 가족이 당장 닥쳐 올 위험을 생각하며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보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여우 사냥에 나선 사람들 앞에 일부러 모습을 드러낸 하퀸은 그들을 자신이 알고 있는 늪가의 비밀 통로로 이끄는데... 사냥터지기가 땅주인에게 여우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 사냥개 무리가 등장하는데 - 같은 작가가 그려서이겠지만 그 모습이 비슷하여 - <내친구 커트니>가 떠오른다. 커트니는 매우 똑똑한 개인 반면 이 책에 등장하는 사냥개들은 그렇지 못한 편이지만~.
- 동물(여우)을 등장시키긴 했지만 벽에 그림을 걸어 놓는 거나 인간의 집안처럼 꾸며 놓은 보금자리며, 여우가 덧신을 신고 의자에 앉는 등 인간처럼 행동하는 모습으로 묘사해 놓았다.
이 작품이 처음 출간된 연도를 보면 1967년으로,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1970년>보다 앞서 발표한 작품으로 존 버닝 햄의 초기작에 속한다. 그동안 접해 본 그의 작품들은 그림의 색이 옅고 대체로 차분하면서도 정적인 느낌이 강한 편이었는데 이 그림책의 화풍은 색감이 강렬하고 역동적인 인상을 준다. 사람들이 여우 사냥을 위해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는 장면은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산타 할아버지가 멀고 먼 산꼭대기로 향하는 장면과 구도면-화면을 수평으로 가르는 지평선과 배경을 최소화하여 색조로만 표현한 점-에서 유사하지만 색감의 분위기와 그림의 느낌은 매우 다르다. 비밀통로로 향하는 장면에서는 달리는 말의 발굽에 진흙이 튀는 느낌이 절로 느껴질 정도로 과감하게 묘사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부모가 된 하퀸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마지막 장면은 아이들보다 부모가 더 공감할만한 부분으로, 자기를 딱~ 빼닮은 자식 때문에 앞으로 무던히 속 썩을 하퀸을 생각하자니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 절로 이 말이 떠오르는데, 아이가 말을 듣지 않거나 속을 썩일 때 어른들은 종종 "너도 너 닮은 애 낳아서 키워 봐라~"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이 말은 내가 우리 부모에게 들었고-입이 짧아 워낙 안 먹어서..^^;- 지금은 부모가 된 내가 아이에게 가끔 하는 소리이다. 그런 거 보면 늘 자식을 염려하는 부모의 마음과 모험심과 호기심이 충만한 아이들의 특성은 공통적이고 변치 않는 모양이다.
아이가 '훗~'하고 웃으며 책장을 덮는 나를 이상한 듯이 쳐다 본다. 아이야~. 이 엄마가 왜 웃었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너도 커서 너 닮은 애 낳아서 키워 보렴. 그 때가 되면 내가 왜 이 장면을 보며 웃음 지었는지 무릎을 치며 공감하게 될 터이니...
* 본문 중에 "힁허케"라는 단어는 처음 접하는 표현이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순우리말(품사는 부사)로 ,우리가 흔히 "휭하니~"라는 표현을 쓰는데 바로 이 단어의 잘못된 표현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