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세트 - 전4권 (무선) 해리 포터 시리즈
조앤 K. 롤링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수첩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해리포터 이야기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시리즈가 거듭 출판될 때마다 아이들이 서점에서 길게 줄을 서 있는걸 보면서도 해리포터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환타지 소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늘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디디고 사는 나는 허무맹랑한 환타지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사람일은 모르는 일.  이번 겨울 우연히 해리포터의 마법에 그만 걸려들고 말았다.

마법에 걸려들었다는 말이 정확하다. 일단 한 권을 읽고 나자 멈출 수가 없었다. 다른 모든 책은 다 옆으로 밀려났고, 모든 여유시간은 해리포터와 함께 보냈다. 결국 첫 권을 집어든지 한 달만에 여섯번째 시리즈까지 모두 읽어버렸다. 책만 읽은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나왔던 해리포터 영화도 모두 다 보았고, 이번 겨울 개봉된 해리포터와 불의 잔은 살아 움직이는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를 만난다는 기쁨에 겨워하며 떨리는 맘으로 극장에서 보았다.

처음에는 환타지 소설이지만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권, 3권으로 넘어가면서 해리포터의 진정한 재미는 마법세계의 환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섬세하게 묘사된 10대 소년의 성장과정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은 부분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작가의 마법세계에 대한 상상력 역시 매우 탁월하지만, 작가 롤링의 진짜 역량은 평범한 소년의 일상과 통제되지 않는 감정의 기복, 아이들끼리의 우정과 그에 맞먹는 묘한 경쟁심, 긴장감을 묘사하는 능력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사실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볼드모트와의 갈등은 늘 책의 마지막 부분에 한정되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아이들의 일상대화나 아이들 사이의 감정대립과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6권인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는 성년을 앞둔 열여섯살 소년, 소녀들의 로맨스이야기이다. 물론 6권에서 중요한 인물이 죽게되는 큰 사건이 벌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6권의 주된 이야기는 해리와 그의 친구들 사이의 티격태격하는 너무나 예쁜 풋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까지 여자학교를 다녀 초등학교 이후로는 또래의 남자아이들을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아이들의 사랑이 너무 예뻤고, 그 나이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사랑의 감정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환타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해리포터 이야기에 푹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해리포터 이야기가 환타지 소설의 가면을 쓴 성장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길거리를 걷다가도 라비오사 같은 주문을 중얼거리는 걸 보면 분명 마법이라는 환타지 속에도 깊이 빠져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해리를 사랑하는 건 그 애가 마법사여서가 아니라 모자란 것 많고 유혹에도 잘 빠져들며 여자아이들의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 씩씩거리는 보통아이이기 때문이다.  해리포터 이야기는 잊었던 나의 10대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는 마법의 펜시브와도 같다. 그래 난 결국 마법에 걸린거다. 그런데 마지막 시리즈가 2년 뒤에나 나온다고 하니 그때까지 나는 마법에서 풀려나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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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hk 2006-02-02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세한 묘사...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빠져들게 된다더군. 난 아직 책을 읽을 마음이 없지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