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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마음산책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또 다른 영화 이야기 굴비낚시에서도 그랬듯이 작가는 이번 책에서도 전문적인 비평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감상 정도의 가벼운 그러나 결코 허술하지 않은 영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일단 서두에서부터 작가는 이 책이 어떻게 엮여져 나오게 되었는가에 대해 장황하게 그러나 코믹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본문의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책의 제목은 영화 이야기라고 걸쳐놓고, 느닷없이 어렸을적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기억을 잃어버린 이야기나 개인적으로 다니는 미용실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늘어놓다가 어느 틈엔가 은근슬쩍 영화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래봤자 본격적인 영화 제목과 그 내용이 나오는건 끄트머리 몇 줄인데, 그 몇 줄의 이야기가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그 영화를 꼭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에 올려놓게 만든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영화에 연결해 놓음으로서 영화를 더욱 쉽고 가깝게 받아들이게 하고, 더불어 나도 그 영화를 보면 영화속에서 내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게 될까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를 바라보는 그의 신선한 시각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어 역시 그가 공으로 영화잡지에 글을 써 원고료를 받았던게 아님을 수긍하게 하는데, 개인적으로 뮤지컬에 대해 쓴 부분이 그랬다. 흔히들 뮤지컬은 좀 비현실적이다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의 글을 읽고 나서 뮤지컬이야 말로 일상의 충실한 반영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리미질 하던 아주머니가 라디오 전화 노래방에 전화를 걸어 운좋게 연결이 되고, 그래서 수화기를 붙잡고 신나게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노래를 부르다가 전화를 끊고 다시 다리미질을 마무리하는 장면은 일상이 곧 뮤지컬 일 수 있음을 보여준 극명한 예였다. 그는 뮤지컬 영화에서 시작하여 판소리, 오페라까지 확대하여 음악이 없는 일상이 있을 수 없음을 그래서 우리의 삶자체가 뮤지컬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차피 영화란건 감독의 의도가 어쨌든, 영화의 깊이가 어쨌든 내 개인의 일상속에서 해석하고, 느끼는 인간의 이야기다. 한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잊었던 추억을 떠올리거나 한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삼십대만의 진중한 슬픔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거로 그만 아닌가.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화양연화의 장만옥의 슬픈마음을 나 역시 유부녀이기에 더 애틋하게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김영하의 재미난 이야기와 함께 이우일의 일러스트레이션과 네컷짜리 바부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도 끊임없이 사람을 키득거리게 만들었다. 여러모로 재미있는 책이라 일단 잡으면 끝까지 놓을 수 없고, 다 읽고 나면 김영하가 더 이상 잡지에 글을 연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지는 책이다. 진중히 소설을 쓰기 위해 연재를 일단락 지었다니 불평할 순 없지만 언젠가 다시 그의 일상이 생생히 살아숨쉬는 재미난 이야기들을 디시 만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