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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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문구만 보고 님도 보고 뽕도 따자는 생각에 덥석 주문을 하였으나, 다빈치 코드의 문제의 번역자의 이름을 겉표지에서 발견하고는 일단은 실망. 달력만 신나게 책상위에 세워두고 책은 책상 한쪽 구석에 저축하는 심정으로 얹어두었다가, 읽고 있던 책들을 모두 읽고 나서 별 기대없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이런! 책이 무지무지 재미있는게 아닌가.

이번만큼은 번역도 매끄러웠고, 전혀 예상치 않았던 가슴졸이는 로맨스의 전개는 그 긴장감이 스릴러 소설 못지 않았다.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 라는 베르메르의 그림 한점에서 출발한 작가의 상상력은 화가와 모델이라는 특이한 관계를 기반으로, 바라보는 것 이상의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애틋한 감정, 당시 서양화가의 전문적인 작업과정, 17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상까지 많은 것을 담아낸다. 또한 호흡이 짧은 간결한 문장은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며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의 여백속에 한껏 젖어들게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상투적인 로맨스 소설의 기본구조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그 결말이 매우 서늘하다는데 있다.

베르메르와 그리트는 주인과 하녀, 연상과 연하, 유뷰남과 처녀와 같은 권력을 가진 남자와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여자라는 로맨스 소설의 등장인물의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남성은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자신의 일을 위해 주저없이 여자를 이용하나, 여자는 그에 대한 동경(그녀가 그를 사랑했다고 말하기엔 조금 확신이 없다)으로 자신을 쉽게 희생한다. 소설속에서 베르메르는 그리트에게 물감을 가는 일을 시키면서도 다른 집안일을 줄여줄 시도는 전혀하지 않아 그리트 스스로 시간을 쪼개어야 했으며, 부은 귓불을 보면서도 주저없이 그림에 보이지 않는 나머지 한쪽 귀마저 뚫으라고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끝부분에서 그리트가 베르메르를 떠나 피터를 선택하고(매우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베르메르가 남겨준 진주귀고리를 20길드에 주저없이 팔아버림으로서 일단의 로맨스 소설과는 차별화된다. 긴 세월동안 드리워졌던 그의 그림자를 그리트 스스로 내던진 것이다(나는 그녀가 그 귀고리를 간직하며, 그와의 추억을 마음속에 묻을 줄 알았다). 그녀가 진쥐귀고리를 팔아버리는 이 마지막 장면이야 말로 이 소설의 최고 반전이 아닐까 싶다.

또한 직접적인 애정행위의 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 흐르는 에로틱한 감정은 독자들에게 읽는내내 그 이상을 상상하게 하고, 이야기의 진행에 맞춰 삽입된 베르메르의 그림들은 소설속의 이야기가 전부 사실일 것 같은 그래서 더욱 애틋한 로맨스적 요소를 완벽하게 충족시킨다.

글을 다 읽고 나니 처음에 처연하게만 보였던 겉표지의 진주귀고리의 소녀가 자신만의 의지를 가진 고집있는 여자로 보였다. 진쥐 귀고리 대신 그녀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아무말도 하지 않는 그림 한 점이 보는 이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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