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속상하고 창피한 마음
버지니아 울프 지음 / 하늘연못 / 1997년 4월
평점 :
절판
버지니아 울프의 열여덟편의 단편들이 우리나라 최초로 번역된 책이다. 장편에 비해 책을 읽어나가기가 비교적 수월하지만, 그래도 한번 읽어서는 그 내용을 다 이해하기가 힘들다. 장편을 읽을 때 처럼 중간중간 이게 누구 생각인가 되짚어 다시 읽어야 하는 일도 종종 있다.
그러나 예의 그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글이 쓰여 있어, 인물의 사고과정이 매우 자세하게 진술되므로 내가 마치 그 인물이 된 것처럼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며 소설속에 빠지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의 심리에 대한 서술이 매우 예리하여 때로는 섬찟해지기도 한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거의 막혀 있었던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울프 역시 여성으로서 여성의 문제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다수의 단편들도 여성의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유산"이라는 단편이 기억에 남는데, 그저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던 자신의 아내가 실은 사회적 참여에 대한 욕구로 고통받고 있었고, 결국 자살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내의 유산인 일기를 통해 깨닫게 된 후에도, 남편은 그 진실에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화만 낸다. 소위 아내를 사랑했다는 남편일지라도, 그가 기득권자인 남자인 이상 아내의 고통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의 타이틀 이기도 한 "속상하고 창피한 마음"-원제는 새 드레스-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마 여자들이라면 이 책의 내용에 모두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가난하지만 우아하게 보이고 싶어 독창적인 방법으로 패션을 연출하기 위해 옛날 여자들의 고풍스러운 스타일로 드레스를 만들게 된다. 그러나 의상실에서는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졌던 자신이 댈러웨이 부인의 파티석상에 들어서는 순간 매우 초라해 보임을 깨닫고 남들의 빈정거림 속에 한없이 비참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한껏 차려입고 나섰지만, 값비싼 옷을 입은 친구들 앞에서 차라리 차려입지나 말껄 하고 후회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비참한 심경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주옥같은 그녀의 작품들이 가득하다. 물론 어떤 경우는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함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으나, 읽고 나면 마음이 서늘해질 정도로 정곡을 찌르는 그녀의 예리한 시선에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녀의 장편을 읽으려다 포기한 사람이라면 특히 이 소설을 먼저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