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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여가수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3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오세곤 옮김 / 민음사 / 2003년 3월
평점 :
6년전 대학교 4학년때 연극의 이해 라는 교양과목을 들으면서 연극에(정확히 말하면 희곡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오네스코라는 작가도 그 때 알게 되었다. 당시에 이오네스코의 수업, 의자, 코뿔소, 왕은 죽어가다 등의 작품은 번역이 되어 있어 읽을 수 있었는데, 대머리 여가수라는 이 작품은 번역된 책이 없었다. 사람이란 무릇 없으면 더 원하게 되는 지라 열심히 찾아보았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그러다 6년이 지나 우연히 마포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을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대출을 하여 읽어보았다. 책을 읽는데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나 정말 부조리하군 하는 생각밖에는 할 수 없었다. 부조리극에서는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함을 말하고자 한다고 하는데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자신의 말만 일방적으로 떠들어대며 그나마도 의미가 통하지 않는 말들이다. 게다가 대머리 여가수는 등장인물 중에 있지도 않았다. 그래도 '수업'같은 작품에서는 교사와 여학생의 수업이 희곡의 내용이었기 때문에 제목과 내용이 연관성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대머리 여가수라는 제목은 희곡의 내용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저 희곡의 끄트머리 말도 안되는 대사 속에 대머리 여가수라는 말이 한번 등장할 뿐이다. 한마디로 일관된 스토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사실 이 책에서 건진 정말 중요한 것은 뒷부분에 나온 부조리극에 대한 해설이었다. 무척 간결하고도 쉽게 설명되어 있어 부조리극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도와주므로 부조리극을 처음 대하는 독자라면 이 부분을 먼저 읽고 희곡을 읽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부조리극에 대한 설명을 잠깐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부조리극은 비록 관객들이 현실로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의 부조리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기존의 연극이 사실임직한 비사실을 추구하는데 비해 부조리극은 비사실임직하지만 엄연한 사실의 제시를 목적으로 한다. 부조리극에는 눈을 돌리려는 사람 앞에 집요하게 거울을 들이대어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을 직시하도록 함으로써 어떻게든 해결책 내지는 행동방침을 마련하도록 만들겠다는 강한 의도가 담겨있다. 인간은 자신들의 언어를 지극히 합리적이라 믿으며 문화의 축적과 의사소통의 도구로 삼지만, 실제로 그것은 대단히 비논리적이로 불합리해서 인간의 언어생활은 원초적으로 소통이 불가능한 오해의 연속일 뿐이며, 거기서 비롯된 언어의 횡포가 인간들을 핍박하고 있다. 인간언어는 부조리하다.'
인간의 사고체계를 규정하는 언어가 이다지도 부조리하다면, 대부분의 생활을 언어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삶 자체가 부조리하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부조리극은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성 높은 작품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그 자체가 아닐까? 우리는 매일 의사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늘 일방적으로 떠들어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엉뚱하다고만 생각했던 희곡의 내용이 좀더 의미있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