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여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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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여인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1>의 5권의 도서 중 두 번째로 선택해서 읽은 책은 "회색 여인"이다.

수록된 세 편의 소설 중 첫 번째 단편인 "회색 여인"의 여운이 개인적으론 가장 크다. 함께 읽은 인친들은 두 번째 이야기인 "마녀 로이스"가 더 심금을 울렸다고 하던데 아마도 마녀사냥이라는 소재 자체가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공포 소설의 묘미는 무엇보다도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기이한 일이나 유령에 얽힌 미스터리한 일들이 탄탄한 스토리 위에 얹어진다면 섬뜩한 공포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번 "회색 여인"을 읽으면서 느끼는 공포는 여느 공포와는 달랐다. 주인공들이 느끼는 공포에 공감하면서 그 공포심이 내게로 전달되고 그래서 연민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회색 여인>에서 아나는 순진하고 착해보이는 외모의 남자 투렐에게서 받은 선물과 청혼을 적극적으로 거절하지 못했다. 대지주라는 경제적인 탄탄함과 주위에서 부추기는 분위기에 휩쓸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인 결혼이라는 중대사에서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현시대의 많은 사람들도 그저 결혼적령기라는 이유와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상대에 대해 잘 알아가는 시간을 생략한채 섣부른 결혼을 감행하고 있지 않을까.

<마녀 로이스>는 단지 소설 속 허구만이 아니라는 점이 더 공포스럽다. 마녀라는 손가락질 한 번에 생과 사가 달라져 버리는 상황. 평소 미워하던 누군가를, 사랑의 연적을, 집안의 원수를 이보다 손쉽게 제거할 수 있는 명분이 어디에 또 있었을까. 우리의 역사 속에 반역이라는 밀고 하나면 3대 멸문지화를 입던 그 공포와 비슷하다.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는 죽음으로 이르는 종말. 그 극한의 공포.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있다.

<회색 여인>의 아나에게는 올케인 바베테가 <마녀 로이스>에서는 숙모인 그레이스와 사촌인 페이스, 프루던스가 로이스에게 그랬다. <늙은 보모 이야기>에서는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 자매, 퍼니벌과 그레이스가 서로에게 적이었다. 하지만 적에게 내쳐진 그녀들에게 치유가 되는 과정에서 동지가 되는 이들 또한 여성이었다. 아나에겐 아망테가 남자보다 더 헌신적으로 그녀를 지켜내었고 로이스는 죽음을 목전에 둔 극한의 공포 앞에서 네이티의 죽음을 위로한다. 자매들의 질투와 시기 속에 죽었던 어린 생명은 로저먼드를 통해 그 아픔을 위로 받는다.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라, 사람의 적은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 잡은 공포가 아닐까. 내 것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공포,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공포,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

근래에 읽은 공포 소설 중 단연코 수작이라 손꼽고 싶다. 엘리자베스 개스켈이 어릴 적 너무나 재미있게 보았던 BBC드라마 "남과 북"의 저자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이 참에 그녀의 다른 소설도 모두 섭렵해보고 싶은 욕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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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목소리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
버넌 리 지음, 김선형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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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목소리

버넌 리 (지음) | 김선형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여성과 공포"라는 주제로 시즌1을 화려하게 연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그 중 첫 번째로 선택해 읽은 도서는 <사악한 목소리>다. 칼라풀한 색감과 몽환적인 분위기가 묘한 매력을 주었고 시즌1의 5권 중 가장 얇아 보인다는 이유도 한 몫 했다.

책을 읽으면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는 얘기를 이토록 절실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 인물들의 심리를 그들의 행동과 대사로만 유추해내기는 쉽지 않았다.

"유령 연인", "끈질긴 사랑", "사악한 목소리". 이 세 편의 단편들은 제목만으로 내용을 짐작하게 하는 너그러움을 보이지 않았다. 왠만한 추리 소설이나 추리 영화를 읽거나 관람하면 거의 초반 부분에 결말과 범인을 잘 맞추곤 하는 터라 어지간한 반전이 아니면 잘 놀라지도 않는다. 그런데 결말보다 "왜?"에 더 집중하게 되니 인물들의 심리를 더 깊이 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버넌 리"라는 작가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버넌 리의 소설이 주는 분위기는 어둡지만 설정과 상황에 대한 묘사보다는 인물 내면 심리에 더 큰 비중이 있는 듯 하다. 집착과 광기가 몰고 온 파멸과 죽음은 심리학적인 접근으로 해석해 보아도 흥미로울 것 같다.

오크 부인은 왜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에게 그래야만 했을까? 메데아는 왜 거듭되는 살인으로 스스로를 마녀로 만들어야 했을까?

오크 부인을 그리기 위해 관찰하는 화가, 메데아를 연구하던 학자 스피리디온, 차피리노의 일화들을 들려주는 망누스. 제 삼자를 통해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광기어린 집착은 그 집착의 대상이 무엇이든 누구이든 간에 공포를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성은 공포의 희생양이 되기 쉽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은 반대로 '여자는 약하다'는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유령 연인"의 앨리스 오크와 "끈질긴 사랑"의 메데아에게서는 여성의 유약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여성이기에 가지는 무기인 아름다움, 디테일 등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들을 이용하고 상처주고 파멸 시킨다.

과거의 앨리스에게 집착하는 현재의 앨리스는 점점 더 그녀를 닮아가려 한다. 이미 죽은 자인 앨리스의 옷을 입으며 마치 과거의 앨리스 오크가 환생한 것이 아닐까 싶은 의구심이 들도록 과거 앨리스의 광기마저 닮아간다.

메데아를 연구하던 스피리디온은 그녀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의 변화를 보이며 결국 메데아의 다른 남자들과 같은 결말을 맞는다. 이것은 정말 그녀의 저주일까, 지나친 사랑은 삐뚫어지기 마련이듯 그녀를 신성시하는 남자들이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간 것일까?

버넌 리의 소설들은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해석은 추리 공포 소설의 또 다른 즐거움이니~. 모두 같은 답인 결말이라면 재미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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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박노해 사진에세이 2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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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 박노해 사진 에세이 2

박노해 (글 사진) | 느린걸음 (펴냄)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불리지만 나는 국민학교라고 불리던 시절에 졸업을 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학년 초의 가정조사나 숙제 중에는 집안의 가훈을 적어내라던 적도 자주 있었다. 그 때에 친구들이 적어내던 가훈은 "정직", "하면 된다", "가화만사성" 등 뻔하고 흔하지만 삶에서 놓치기 쉬운 진리들이 많았다. 우리집은 가훈이 없어서 그 숙제가 괴롭고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가훈이 없는데 거짓말로 정직이라 적을 수도 없고 동생과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면서 화목을 적을 수는 없었던 국민학생의 최소한의 양심이었다고나 할까.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는 마치 누군가의 집에 액자로 걸려있을 가훈같기도 하고, 어느 학교의 급훈처럼 흔하고 뻔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천천히 음미하고 곱씹을수록 삶의 지혜와 달관한 자의 향기가 난다.

복잡한 것이 왠지 멋있어 보이고 뭔가 있어 보이는 것 같지만 문제를 해결할 때는 단순한 것이 명쾌할 때가 훨씬 많았다. 겉은 유연해 보여도 마음속 심지만 단단하다면 어떤 고난과 시련에도 흔들림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거기에 단아한 품위마저 갖춘다면 더할나위 없는 금상첨화.

자신을 가난이 단순하게 만들고, 고난이 단단하게 만들고, 고독이 단아하게 만들었다고 박노해 님은 밝히고 있다.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내 삶의 기술은 무엇이었나.

어른이 되어 복잡해지는 세상을 살아가며 점점 더 약해지는 나를 문득 발견할 때마다 나는 나를 추스리는 쪽이었나, 무너지는 쪽이었나.

살아온 날이 하루만큼 더 길어질수록 뒤를 돌아보는 날도 하루만큼 더 길어졌다. 후회보다는 반성을 통한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하고, 살아갈 날들에는 후회와 반성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단순하지만 막되지는 않게, 단단하지만 뻣뻣하지는 않게, 단아하지만 차갑지는 않은 그런 사람. 사람의 향기가 나는 사람...될 수 있겠지?

오늘도 한 걸음, 하루만큼 내딛어본다.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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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80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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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작가나 출판사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줄거리로만 재미의 유무를 따지며 마구잡이식으로 책을 읽어대던 때가 있었다.

베스트셀러라고 하기에 읽고, 지면 광고에서 보았기에 읽고,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눈에 띄는 제목이기에 읽던 때였다. <장미의 이름>이 처음 막 출판되었을때에도 '움베르토 에코'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채 수도원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소재가 흥미로워 읽었던 책이다. '범인이 누굴까?'하는 보통의 다른 추리 소설을 떠올리며 읽었던 터라 무겁고 어려운 내용에 완독이 힘겨웠던 기억이 난다. 힘겨운 완독이었지만 뇌리에선 잊혀지지 않은채 언젠가는 다시 읽어보리라 마음에 적어두었던 <장미의 이름>이다.

'다시 읽으면 조금 쉬워질까?' 처음 읽었던 그때보다 좀 더 깊이있는 이해를 할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기대하며 시작한 재독이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쉽지 않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재미만을 쫒아 읽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읽고 느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수도원에서 일어난 7일 간의 일들을 윌리엄 수도사의 조수인 아드소가 시간의 순서대로 기록한 형식을 빌어 이야기는 진행된다.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가 처음 등장하는 대목은 셜록홈즈와 왓슨을 연상 시킨다. 윌리엄 수도사의 예리하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관찰력과 빠른 두뇌회전으로 그러한 것들을 종합해 뛰어난 추리력을 보이는 점은 셜록 홈즈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겸손함을 보이지 않는 모습까지도.

이러한 윌리엄 수도사에게 수도원장은 살인으로 의심되는 사건을 의뢰하지만 사건의 핵심 장소라 할 수 있는 장서관의 출입만은 철저하게 금지한다. 하나 둘 의심되는 정황은 모두 장서관을 가리키지만 수도원의 모두는 쉬쉬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장서관에 비밀이 있다는 사실만은 굳이 숨기려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도 그 비밀에 다가가고 싶었음일까? 여러가지 트릭과 인간 내면의 공포심을 건드리면서까지 그토록 꽁꽁 감춰야만 하는 장서관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아델로 수도사와 베난티오 수도사의 죽음에 의심받던 베렝가리오 수도사 마저 시체로 발견되며 수사는 잠시 벽에 부딪히는 듯하다.

윌리엄 수도사가 도착한 날부터 계속해서 발견되는 시체들은 정말 장서관의 비밀과 관련이 있을까?

눈 먼 수도사 호르헤를 통해 종교인들의 각기 다른 종교관을 말하고 수도원장과 여러 수도사들을 통해 종교인들의 부패와 타락을 꼬집고 있다. 살인 사건의 추리라는 흥미로운 소재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움베르토 에코만의 비판과 풍자, 음모를 풀어나간다. 저명한 기호학자였다는 움베르토 에코답게 <푸코의 진자>에서와 마찬가지로 암호를 해독하는 대목을 등장시켜 긴장과 궁금중을 증폭시킨다.

철학과 역사가 한데 버무려진 지적이면서도 품위있는 추리 소설, 움베르토 에코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자, 장서관의 비밀을 파헤치러 하권으로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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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방 박노해 사진에세이 4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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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방 / 박노해 사진 에세이 4

박노해 (글 사진) | 느린걸음 (펴냄)

흔히들 가정은 사회의 축소판, 가장 작은 사회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공간이 주는 최소한의 단위, 나의 공간은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까?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는 내 책상, 내 방을 가져보는게 소원이던 때가 있었다. 나만의 책상에서 공부를 하면 하루종일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나만의 방에서 잠을 자면 예쁜 꿈만 꾸면서 잠도 잘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독립을 하게 되면서 오롯이 가져보게 된 내 방. 그 안에 온갖 나만의 것들을 채워 넣으며 순간순간의 기쁨을 누려보기도 했으나 정작 나 자신을 채워넣는 것에는 얼마 만큼의 열정이 있었을까?

작은 방이더라도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가졌던 소년 소녀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더 큰 집, 더 높은 집, 더 비싼 집을 열망하게 되었다. 언제 부터였을까. 그 안에 채울 수 있는 따뜻함과 행복보다 겉에 보여지는 것들에 집착에 가까운 욕심을 가지게 된 것은. 박노해 님의 <내 작은 방>을 읽으며 전작들에서 느꼈던 감동만큼의 반성을 하게 된다.

요즘은 아이들이 뛰어 놀아야할 놀이터마저도 거실로 들어왔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에도 그러했다. 집은 점점 커지고 소유하는 것도 점점 더 많아지지만 정작 내 존재감을 오롯이 간직하는 공간은 그 중 얼마나 자리하고 있을까? 지구 어느 한 편에는 내 방은 커녕 가족들이 둘러 앉을 사면의 벽과 지붕마저 없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보이는 미소보다 우리의 미소가 더 밝다고, 그들의 행복보다 우리의 행복이 더 크다고 과연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으려 많은 것을 집 안으로 끌어모으고 있지만 손 안의 디지털은 내가 원하지 않는 때에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오히려 밖으로 끌어내기도 한다.

내 최초의 영토인 내 방이 상징하는 것은 방 그 자체는 아닐터이다. 내가 쉴 수 있고 나를 보호하고 나를 치유하는 내 방. 그 방에 담을 것들을 새 마음으로 골라봐야겠다. 눈부신 햇살과 아이의 웃음 소리와 미소를 번지게 할 오래된 사진과 그리고 또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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