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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목소리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
버넌 리 지음, 김선형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평점 :
사악한 목소리
버넌 리 (지음) | 김선형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여성과 공포"라는 주제로 시즌1을 화려하게 연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그 중 첫 번째로 선택해 읽은 도서는 <사악한 목소리>다. 칼라풀한 색감과 몽환적인 분위기가 묘한 매력을 주었고 시즌1의 5권 중 가장 얇아 보인다는 이유도 한 몫 했다.
책을 읽으면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는 얘기를 이토록 절실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 인물들의 심리를 그들의 행동과 대사로만 유추해내기는 쉽지 않았다.
"유령 연인", "끈질긴 사랑", "사악한 목소리". 이 세 편의 단편들은 제목만으로 내용을 짐작하게 하는 너그러움을 보이지 않았다. 왠만한 추리 소설이나 추리 영화를 읽거나 관람하면 거의 초반 부분에 결말과 범인을 잘 맞추곤 하는 터라 어지간한 반전이 아니면 잘 놀라지도 않는다. 그런데 결말보다 "왜?"에 더 집중하게 되니 인물들의 심리를 더 깊이 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버넌 리"라는 작가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버넌 리의 소설이 주는 분위기는 어둡지만 설정과 상황에 대한 묘사보다는 인물 내면 심리에 더 큰 비중이 있는 듯 하다. 집착과 광기가 몰고 온 파멸과 죽음은 심리학적인 접근으로 해석해 보아도 흥미로울 것 같다.
오크 부인은 왜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에게 그래야만 했을까? 메데아는 왜 거듭되는 살인으로 스스로를 마녀로 만들어야 했을까?
오크 부인을 그리기 위해 관찰하는 화가, 메데아를 연구하던 학자 스피리디온, 차피리노의 일화들을 들려주는 망누스. 제 삼자를 통해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광기어린 집착은 그 집착의 대상이 무엇이든 누구이든 간에 공포를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성은 공포의 희생양이 되기 쉽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은 반대로 '여자는 약하다'는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유령 연인"의 앨리스 오크와 "끈질긴 사랑"의 메데아에게서는 여성의 유약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여성이기에 가지는 무기인 아름다움, 디테일 등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들을 이용하고 상처주고 파멸 시킨다.
과거의 앨리스에게 집착하는 현재의 앨리스는 점점 더 그녀를 닮아가려 한다. 이미 죽은 자인 앨리스의 옷을 입으며 마치 과거의 앨리스 오크가 환생한 것이 아닐까 싶은 의구심이 들도록 과거 앨리스의 광기마저 닮아간다.
메데아를 연구하던 스피리디온은 그녀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의 변화를 보이며 결국 메데아의 다른 남자들과 같은 결말을 맞는다. 이것은 정말 그녀의 저주일까, 지나친 사랑은 삐뚫어지기 마련이듯 그녀를 신성시하는 남자들이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간 것일까?
버넌 리의 소설들은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해석은 추리 공포 소설의 또 다른 즐거움이니~. 모두 같은 답인 결말이라면 재미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