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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80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미의 이름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작가나 출판사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줄거리로만 재미의 유무를 따지며 마구잡이식으로 책을 읽어대던 때가 있었다.
베스트셀러라고 하기에 읽고, 지면 광고에서 보았기에 읽고,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눈에 띄는 제목이기에 읽던 때였다. <장미의 이름>이 처음 막 출판되었을때에도 '움베르토 에코'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채 수도원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소재가 흥미로워 읽었던 책이다. '범인이 누굴까?'하는 보통의 다른 추리 소설을 떠올리며 읽었던 터라 무겁고 어려운 내용에 완독이 힘겨웠던 기억이 난다. 힘겨운 완독이었지만 뇌리에선 잊혀지지 않은채 언젠가는 다시 읽어보리라 마음에 적어두었던 <장미의 이름>이다.
'다시 읽으면 조금 쉬워질까?' 처음 읽었던 그때보다 좀 더 깊이있는 이해를 할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기대하며 시작한 재독이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쉽지 않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재미만을 쫒아 읽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읽고 느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수도원에서 일어난 7일 간의 일들을 윌리엄 수도사의 조수인 아드소가 시간의 순서대로 기록한 형식을 빌어 이야기는 진행된다.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가 처음 등장하는 대목은 셜록홈즈와 왓슨을 연상 시킨다. 윌리엄 수도사의 예리하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관찰력과 빠른 두뇌회전으로 그러한 것들을 종합해 뛰어난 추리력을 보이는 점은 셜록 홈즈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겸손함을 보이지 않는 모습까지도.
이러한 윌리엄 수도사에게 수도원장은 살인으로 의심되는 사건을 의뢰하지만 사건의 핵심 장소라 할 수 있는 장서관의 출입만은 철저하게 금지한다. 하나 둘 의심되는 정황은 모두 장서관을 가리키지만 수도원의 모두는 쉬쉬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장서관에 비밀이 있다는 사실만은 굳이 숨기려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도 그 비밀에 다가가고 싶었음일까? 여러가지 트릭과 인간 내면의 공포심을 건드리면서까지 그토록 꽁꽁 감춰야만 하는 장서관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아델로 수도사와 베난티오 수도사의 죽음에 의심받던 베렝가리오 수도사 마저 시체로 발견되며 수사는 잠시 벽에 부딪히는 듯하다.
윌리엄 수도사가 도착한 날부터 계속해서 발견되는 시체들은 정말 장서관의 비밀과 관련이 있을까?
눈 먼 수도사 호르헤를 통해 종교인들의 각기 다른 종교관을 말하고 수도원장과 여러 수도사들을 통해 종교인들의 부패와 타락을 꼬집고 있다. 살인 사건의 추리라는 흥미로운 소재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움베르토 에코만의 비판과 풍자, 음모를 풀어나간다. 저명한 기호학자였다는 움베르토 에코답게 <푸코의 진자>에서와 마찬가지로 암호를 해독하는 대목을 등장시켜 긴장과 궁금중을 증폭시킨다.
철학과 역사가 한데 버무려진 지적이면서도 품위있는 추리 소설, 움베르토 에코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자, 장서관의 비밀을 파헤치러 하권으로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