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 생일입니다만... 을 1,2,3 이렇게 매년 계속하겠다는 야무진 뜻이 있었으나 벌써 생일이 지난 지 20일이 다 되어간다. 겨우 두 번 만에 무시된 뜻이여.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3월 19일 Stay-at-home 명령을 내린 지 한 달이 넘었다. 스테이 앳 홈 명령은 병원, 식료품 구입등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집에 있으라는 것. (걷거나 자전거로 동네 산책하거나 강아지 산책 시키는 것은 해도 된다.) 상점이나 기업들도 필수 직종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면 다 문을 닫거나 재택 근무를 해야 한다. 이 명령이 나오기 며칠 전에 떨어져 살던 딸들도 집으로 다 돌아왔기 때문에 다섯 명이! 하루 종일! 집에서 붙어있게 되었다. 

스테이 앳 홈 명령이 내려진 초기에는 뭔가 막 해야 할 거 같았다. 한국 사람은 역시 김치. 겉절이랑 총각김치도 하고 간장 장아찌에 맛 없어서 안 먹고 굴러다니는 사과로 사과잼, 딸기로는 딸기청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것은 금방 다 먹어버렸고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이런 부지런을 피우기에는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는 욕구가 더 강력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가족이 다 같이 있다고 해서 내 할 일이 더 늘어난 건 아니다. 다들 느즈막이 하루를 시작하니 정식 끼니는 두 끼만 먹기로 했다. 하루 세 끼 먹으면 엄마가 하루 종일 부엌에 있어야 하잖아! 라고 했지만, 사실은 스스로 밥 해 먹고 살던 딸들이 자기의 요리 실력을 뽐내기도 하고, 최근에 자기의 숨겨진 재능을 요리에서 찾은 남편이 유튜브를 보다가 시도해본 음식들 덕에 내가 부엌에 있는 시간은 별로 없다. 

이건 남편이 만든 것들


이건 딸들이 만든 것


달고나 커피에 꽂힌 딸들이 매일 달고나 커피, 달고나 말차 라테를 만들어 먹다가 묻는다. "엄마 근데 달고나가 뭐에요?"

그래서 낡은 국자를 가지고 달고나 (나 어릴 적에는 뽑기였는데 이제 달고나로 이름이 통일 되었나보다) 를 만들었다. 아마존에서 찾아보니 달고나 세트가 있는데 (역시 없는 게 없군) 너무 비싸길래 그냥 쿠킹 팬에 놓고 베이킹 팬으로 눌렀다. 그랬더니 베이킹 팬의 로고가 새겨져서 그럴 듯한 모양이 나왔다. 국자로 만들어 먹다가 감질나서 냄비에 만드는 것을 배워 대왕 달고나를 만들었다. 냄비에 만드는 법을 알려준 동생이 제대로 안 섞어서 얼룩덜룩하다고 구박을 했지만 맛만 있으면 되지 안 그래?


내 얼굴의 두 배인 대왕 달고나를 보시라!



Freshman 15 이라는 말이 있다. 대학에 가면 살이 빠지는 (살을 빼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대학을 가면서 집을 떠나기 때문에 아이들이 불규칙한 생활과 밤늦은 야식, (어쩌면 앉아서 공부?? )등으로 대학 1학년 때 15파운드 (6.8kg 정도) 가 찐다는 말이다. 요즘에는 Covid-19 이라 19파운드(8.6 kg정도)가 찐다고 농담한다. 확찐자의 미국판이라고 할까. 나 역시 대세를 따라 착실히, 열심히 몸무게를 늘려나가고 있다.


먹는 거 말고 또 한 건. 딸들이랑 염색.

BTS 콘서트 가기 전에 염색하려고 했던 건 데 콘서트는 못 할 거 같고 (실제로 기약 없이 연기 되었다) 딸들이 심심하다고 집에서 염색하길래 나도 했다.

사진에서 잘 안 나오지만 아랫부분만 붉은 색으로 염색한 거다. 기대했던 거 보다 훨씬 맘에 들었는데 바깥에 나가서 외출할 수 있을 때 쯤 다 없어질 거 같아서 아쉽다.





내가 집순이 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인 줄은 몰랐다. 4월 1일 강아지랑 동네 산책 이후 한번도 안 나갔다. 근데 전혀 답답하지 않다. 진정 자가 격리 체질인가보다. 막둥이 엠군은 나보다 더하다. 집 밖에 안 나간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는 듯. 먹을 것과 게임만 할 수 있으면 만사 오케이. 인터넷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라로님께서 내 생일에 축하 글을 올려주신 걸 이제야 봤다. 그것도 라로님이 말씀하셔서...ㅜㅜ  앞으로 열심히 서재에 들어오겠다고 다짐은 못하지만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야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날들이 벌써 한 달이다. 그냥 흘려보내지 않게 작은 흔적이라도 남겨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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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4-21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뭐 이건 완전 염장페이퍼잖아욥!!ㅎㅎㅎ
염색하시고는 아가씨가 되셨네요!!^^
로고 찍힌 것은 팔아도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총각김치하고 짜장면!!!!!!!직접 만드시다니요!!!!ㅠㅠ
저 혹시 올러가면 총각김치 먹을 수 있을까요???^^;;;;

psyche 2020-04-21 07:34   좋아요 0 | URL
ㅎㅎ 얼굴을 가리니 그렇죠. 근데 지금은 색이 많이 빠졌어요. 템포러리 염색약이거든요.
짜장면은 남편이 만든 거에요. 저는 레시피를 아예 모르려고요 ㅎㅎㅎ 그래야 남편이 계속 만들죠. 총각김치는 처음 만들어봤는데 맛있지는 않고 ㅜㅜ 먹을 만 했어요. 총각무가 맛있는 때가 아니라서 그랬던 거라고 혼자 생각해요 ㅎㅎㅎ 조금 밖에 안해서 한참 전에 다 먹었어요 ㅜㅜ

단발머리 2020-04-21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가격리 시간에 가족간에 사랑이 돈독해지는 가정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전... 좋던 사이가 나빠지는것 같다 생각했는데 정말 그런 가정이 실존하네요. 너무 보기 좋습니다.
맛난 음식도 실컷 구경했고요. 제 취향은 달고나 말차 라테라고 말하고 싶은데 자꾸 대왕 달고나에 눈이 가네요@@

psyche 2020-04-22 01:11   좋아요 0 | URL
흠... 가족간의 사랑이 돈독해지지는 않습니다 ㅋㅋㅋ 보통은 가족이 다 모이면 이틀이 지나지 않아 싸우기 시작하는데요. 이번에는 같이 오래 있게 될 거 같아 그런지 딸들은 서로 조심하는 거 같더라고요. 아들 녀석은 하루 종일 컴과 합체 상태라 게임 하는 걸 가만 두기만 하면 아무 문제 없고요 (엄마 속은 타지만) 근데 어른인 엄마랑 아빠가 계속 싸우네요 ㅋ 애들보다 못한 어른들. 근데 부부가 종일 같이 있는 거 힘들어요 ㅜㅜ

유부만두 2020-04-21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초대형 뽑기(라고 불렀던, 달고나) 탐나는데요?!
달고나...는 저 어릴 땐 하얀 조각 (생각해보니 머쉬멜로 같기도 하고요) 녹이는 걸 부르는 말이었는데요. 그건 조금 더 비쌌던 기억이 나요. (아닐지도 모르지만)

집안에 갇혀 있지만 저도 요즘은 그냥 적응이 되버렸는지 일주일 한 번 마스크 사는 날도 건너 뛴 적도 있어요. 이러다 개학이 되면 만세! 하겠지만 학부모 총회 하는 거 생각하면 너무 싫고 ... 맘이 왔다갔다 해요. 남편분 (온라인에선 실명을 말할 순 없어요 ㅋ)의 요리실력이야 제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 번 감탄!!! 언니 우리집도 식구 모두 통통해지고 있어요. ^^
아, 맞다! 해피 버스데이 투유!
그리고 저도 요새 하루하루 시간 가는게 무서워서 기록을 매일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쩜 시간이 이리 무서운지 몰라요.

psyche 2020-04-22 01:18   좋아요 1 | URL
달고나는 설탕으로 만든 사탕 덩어리 같은 거 아니었어? 잘 모르겠다. 암튼 옛날에는 저거 뽑기라 불렀는데 지금은 달고나라고 하더라고. 뽑기 맛이 중독성이 있는 거 같아. 자꾸만 생각나네. 진짜 그만 먹어야 하는데 ㅎㅎㅎ
남편은 요즘 유튜브 보면서 막 필기하고 다른 레시피랑 비교 연구하고 그런다니깐. 제법 그럴 듯한 맛을 내더라고. 덕분에 나는 신났지. 장도 남편이 대표로 나가서 봐오거든.
우리는 방학 때까지 학교 안 연다고 했어. 엔양도 여름방학 끝날 때까지 집에 있게 될 거 같고...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하루가 이렇게 그냥 가는 구나 싶은 요즘이야.

moonnight 2020-04-21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일 축하드립니다♡(늦었지만^^;)
단란한 가족분들 너무 보기 좋네요. 엄마만 쳐다보지 않고 서로서로 요리솜씨 뽐내는 모습도 흐뭇하구요. 헤어스타일과 컬러가 참 예쁘게 잘 어울립니다. ^^

psyche 2020-04-22 01:3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딸들이랑 저는 쿵짝이 맞는 편이에요. 어릴 때는 제가 염색해주고 머리도 잘라주고 햇었는데 이제는 딸들이 제 머리를 염색해주니 참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앞으로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서 있을 날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서 잘 지내보려고 해요.

책읽는나무 2020-04-22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딸들이 크면 요리도 해주고,염색도 해주고....부럽네요^^
이웃집에 대학생 딸을 둔 집이 있는데 안그래도 그 딸도 요즘 유행하는 달고나 커피를 만들어 준다더라구요.
밤엔 아빠를 위하여 쏘맥도 만들어 준대서 막 웃었는데....대학생 딸을 둔 집들은 왠지 코로나 자가격리 생활 중에도 좀 재밌을 듯 한데...음 프시케님댁이 딱 모범집안이네요^^

psyche 2020-04-22 14: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책 읽는 나무님.
여기에는 사이좋은 이야기만 써서 그렇죠. 저희도 엄청 투닥거려요 ㅎㅎ 딸들이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어릴 때는 별로 사이가 안 좋았는데 다 크고 나니 둘이 사이가 좋아지더라고요. 가끔 만나서 그런 걸까요? ㅎㅎ

다락방 2020-04-22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생일 축하 드립니다. 너무 늦었지만요. 후훗.

가족들이 저마다 요리 솜씨 뽐내는 거 너무 좋으네요. 저도 요즘 하나씩 해보는데, 사실 맛으로 보면 크게 성공하진 못하지만 ㅋㅋㅋ 그리고 너무 부엌 초토화 시키지만, 그래도 가끔 ‘엄마, 내가 요리 만들어줄게‘ 하는데에서 오는 어떤 기쁨이나 뿌듯함이 있어요. 맛있으면 더 좋겠지만... 지금보니 프시케 님의 남편님이 저보다 훨씬 더 요리를 잘하시는 것 같네요. 비쥬얼적으로 일단 확실히 저보다 잘하시는 듯. 저는 어쩌면 그렇게 요리를 해도 맛은 별로인데 보는것도 별로인지... 세상의 수많은 것들에 재능이 필요하다면 저에게 요리 재능은 1도 없는가봅니다. 후훗.

그래도 주말에 또 할거에요. 저도 코로나 때문에 주말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주말마다 뭔가 자꾸 시도해보고 있어요. 대부분 성공에 이르진 못하지만요. 달고나 커피도 시도했다가 엄마가 다시는 만들지 말라고 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패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프시케님 일상 너무 궁금해요. 책 읽고 이런 소소한 일상들 자주 남겨주세요!! >.<

psyche 2020-04-22 15:1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감사합니다. 올해는 한참 동안 생일 축하를 받게 되네요. ㅎㅎ 생일글을 늦게 쓰는 것도 좋네요.
남편은 라면밖에 못 끓이던 사람인데 갑자기 요리에 꽂혀서 저를 기쁘게 하네요. 이런 날이 오게 될 지는 상상도 못했어요. ㅎㅎ 다락방님도 언젠가 요리가 나의 숨겨진 재능? 이라고 할 때가 올지도 몰라요.
이번 주말에 뭐 만드실 건가요? 망치더라도 가족이 같이 먹으면 그게 또 추억이고 기쁨이고 그렇더라고요. 다락방님도 코로나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으시겠죠? 음식과 함께 행복한 시간 되시길!

다락방 2020-04-23 12:15   좋아요 0 | URL
저 이번 주말에는 양배추 스테이크와 아스파라거스 베이컨 볶음 해볼 예정이에요. 후훗.

보슬비 2020-04-25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늦었지만 생일축하드려요~~~^^
psyche님이 너무 잘하시는데, 남편분도 장난아십니다. 짜장면까지 만드시다니~~~
코로나로 인해 불편하고 짜증날수도 있지만, 너무 슬기롭게 일상생활을 하고 계시는 psyche님 가족과 같은 분들이 많다면 위기를 잘 극복할수 있을것 같아요.

psyche 2020-04-27 02:47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올해는 한달 내내 축하를 받네요.ㅎㅎ
저희 남편 라면 밖에 못 끓이던 사람인데 유튜브가 이렇게 큰 일을 하네요 ㅎㅎㅎ 며칠전에 만든 석박지가 성공해서 더 신났어요. 막 칭찬해주면 더 신나서 요리하니 저는 좋네요 ㅋㅋ

서니데이 2020-04-29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생일축하드립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한 해가 무척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요.
좋은 일들 가득한 한 해 보내시고
내년에도 변함없이 축하인사 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족과 함께 즐겁고 좋은 날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psyche 2020-04-29 11:3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축하해줘서 고마워요~ 진짜 2020년은 어떻게 가는 지 모르겠네요. 아무것도 안하는데도 하루가 이렇게 휙휙 가다니. 내년에는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로 돌아오겠습니다 ㅎㅎ
서니데이님도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