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꿈을 정리하는 이외의 시간을 나는 거리의 지도를 만드는 데 소비했다.



처음은 어둠속에서 무료한 시간은 이겨내려고 시작한 작업이였지만 곧 나는 거기에 몰두하게 되었다. 최초의 작업은 거리의 윤곽을 그리는 일이였다. 우선 벽의 형태였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곤란한 작업이였다. 왜냐하면 누구하나 그정확한 형태를 알지못했기 때문이다. 옆방의 노인도, 너도, 그리고 문지기도...





어쨌든 나는 자신의 다리로 그것을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弱視라는 나의 배경에 있는 핸디캡때문에 그 작업은 가을이 끝날 때까지 걸렸다. 흐린 날과 저녁밖에 내가 나가서 걷는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케치북을 한손에 들고 벽을 따라 걷는 사이에 나는 벽이 가진 힘에 점점 끌려가는 것 같았다. '이 벽은 살아있다.' 라고 느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벽은 마치 탄력있는 생물처럼 어느 때는 구불구불하고, 어느 때는 높이 솟고, 어느 때는 휴식하고 그리고 시작도 끝도 없는 바퀴속에서 거리를 삼키고 있었다.





벽의 표면은 미끈미끈했다. 건조하기 쉬운 곳에는 아랫부분에 물이 둘러쌓여 있었고 반대로 습기많은 곳에서는 유채기름을 가득채운 도랑이 패여있어 그 벽이 언제까지라도 보존되도록 만들어져있었다. 꾸미려는 장식은 어느한군데 없었지만 지형을 이용하면서, 한없이 이어진 그 곡선의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지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거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벽을 받들고 있었다. 석양이나, 달, 별, 비, 나무들 그리고 꽃, 그것들 모두가 벽을 위해 만들어진 장신구인 것처럼 벽을 채색하고 있었다. 이 벽을 앞에 하면 아마 어떤 화가라도 미칠듯이 기뻐하고 다음 순간 절망해 버리겠지... 이 거리에서는 벽을 포함한다면 어떤 공간도 예술이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이 그곳에 더하여 주는것은 무엇하나 없었다. 벽앞의 사람, 벽위의 구름, 벽아래의 풀, 풀을 먹는 짐승의 무리, 벽은 모든 것을 자신에게 동화시키고 있었다.





벽 앞의 나.



나는 걷다지쳐 벽의 아래 풀위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구름사이로 햇빛이 거리의 지붕을 오랜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신의 등으로 싸늘한 벽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훨씬 옛날에 어딘가에서 경험했던 무엇인가의 감각과 비슷한 것이였다. 그 무엇인가가 나에게는 도무지 떠오르지않았다. 벽돌의 이상할 정도의 미끈함은 다른 어떤 소재와도 감촉이 달랐다. 마치 유리처럼 단단하고 암반처럼 두터웠다. 그리고 물고기의 배처럼 차가웠다. 나는 내 자신의 등을 지구중심에까지 직접 연결해버린 것같은 기분이였다.





나는 벽아래의 오래된 풀을 몇 묶음 잡아 입에 물었다.



벽의 그림자는 순식간에 길게 늘어지고, 들판을 넘어서 숲을 덮고 공동주택의 담을 넘어서 곧,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밤의 어둠과 일체화되었다.



나는 생각한다. 도대체 누가 이 벽을 이해할 수 있을까? 벽은 어떤 때는 무자비하게 그리고 어떤 때는 자비롭게 우리앞에 서있다.



그러나 누가 무자비를 이해할 수 있을까? 혹은 자비를?



형태가 있는 것에는 영원이란 없다 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벽은 사람들에게 묻는다.



만약 형태가 없는 것에 영원이 있다라고 하여 도대체 누가 그것을 확인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원래 그것이 너희들의 역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얇은 어둠이 벽을 덮었다. 뿔피리가 울었다. 짐승들의 발굽소리가 거리에 울렸다. 그리고 정적(靜寂). 이미 도서관에 가 있어야 할 시각이다. 그러나 나는 일어설 수 없었다. 벽이 나를 붙잡고 그 태고의 생각은 계속 이야기했다.



이 거리에는 네가 구하는 것은 뭐라도 있다. 그리고 동시에 무엇도 없다. 네가 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구하는 것은 뭔가? 너의 입술, 평온한 마음, 오래된 빛........



잊어버리는 쪽이 좋아. 네가 이곳으로 부터 얻는 것은 절망뿐이야. 당신은 이 거리에 올 것이 아니였어. 바깥 세계에 살 인간이야. 죽으면 모든 것은 끝나지. 꿈도 고통도 무엇이라도...



죽는 것은 두렵지않다. 라고 나는 말했다. 無로 돌아가는 것도 잊혀져가는 것도 내가 두려운것은 모두가 시간이라는 위선의 옷에 분주해져가는 것이다.



말이구만... 이라고 벽은 웃었다.



네가 말하고 있는 것도 단지 말뿐이야



별이 하늘에 아로새겨졌다.



두터운 구름은 이미 어딘가로 지워져가고 차가운 바람이 별을 깜박이게 했다.





그리고 이미 모든 것이 늦어버렸어. 모든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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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고열이 나를 덮쳤다. 그것은 일주일도 더 계속되었다. 열은 나의 피부를 수포로 가득하게 했고 나의 잠을 어두운 꿈으로 채웠다. 꿈의 태반이 성교의 꿈이 였다. 여러여자와 나는 성교했다. 얼굴을 아는 여자가 있었다면 전혀 본적 없는 여자도 있었다. 벽 속의 거리에서는 다양한 여자와 성교가 가능했다. 그리고 나는 몇번이라도 구토를 했다. 부드러운 유방, 뜨거운 입김, 미끈미끈한 협복(脇腹), 젖은 성기, 정액의 냄새..., 그리고 성교에 연이어 덮쳐 오는 열과 오한.





그 사이 나를 간호해 준 것은 옆방의 노인이였다. 그는 차가운 타올을 적셔주고 죽같은 따뜻한 식사를 아침과 저녁에 가져다 주었다. 비가 내리는 금요일, 내가 조금 의식을 차리기 시작하던 그 오후, 노인은 창가의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옛추억을 말했다.



'훨씬 옛날, 아직 사람들이 그림자를 가지고 전쟁을 반복하고 있었던 때 내가 젊은 중사였을 때 이야기야. 나는 그 당시 한 여인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일이 잘되지않았어. 나는 젊었지만 가난했었고, 유행에 빠져있었지. 결국 절망과 슬픔 이외 나에게는 무엇도 남지 않았어. 여자를 죽이고 내 자신도 죽는 일까지 심각하게 생각해봤어. 그때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렇게 했을지도 몰랐지. 그러나 전쟁이 시작됐어 정말 잘된 일이였지. 전쟁은 조금씩 나의 마음의 상처를 지워가게 해 주었어. 그리고 석달 뒤 다리에 유탄을 맞고 후방으로 이송될 때에는 나도 다시 안정감을 얻어가고 있었지. 이송 첫날 밤, 나는 어떤 마을의 점령된 호텔에서 하루밤을 자게 됐어. 훌륭한 방이였어 넓고 기분좋은 방으로 유리벽으로 된 베란다까지 갖춰져 있었어. 내가 젊은 여자의 유령을 본것은 그 배란다에 있던 등나무의자 위에서야?'



'유령이요?'



'아... 젊고 아름다운 여자였지 모든 것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운 여자였어. 완벽한 美, 완벽한 젊음, 완벽한 품위. 너는 그런 것을 본적이있니?'



'아니요.'



'나는 베란다의 등나무의자 위에서 그것을 봤어' 노인은 잠시 침묵하고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정말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렸지.'



'유령이라고 믿지않았군요.'



'아니 그건 첫눈에 보아도 유령이였어.' 그리고 노인은 웃었다. '그 정도로 완벽한 것을 만들어 낼 만큼 나의 상상력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풍부하지 않아'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아무것도 못한 채, 꼼짝할 수 없었어. 마치 무언가에 맞은 듯 나는 멍하니 그곳에 선 채,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서 한번도 눈을 땔 수 없었어. 날이 샐 때까지...닭이 한번 울고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할 때 쯤 그녀는 휙 사라졌지 촛불을 불어끄듯이....'



노인은 다시 한번 침묵하고 잠시 창밖의 비를 보았다.



'그 여자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어. 그리고 그 뒤로 나는 어떤 여자에 대하여서도 열정이란 것을 갖지 못하게 됐지. 어떤 매력적인 여자와 잘 때도 언제나 얼굴에 떠오르는 것은 그녀의 얼굴이였어. 한 달 뒤에 귀환했던 전쟁터도 나의 광적인 기분을 맑게 해주진 못 했지.'



'그러나 어느날 나는 갑자기 알았어. 내 자신이 그녀의 얼굴의 옆 얼굴의 한쪽밖에 보지 못한 것을... 왼편 얼굴이였어 여자는 밤새 그 자세 그대로 꼼짝하지않았어. 나도 마찬가지였고....'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왼쪽 뺨을 만져 보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어떻게도 그녀의 오른 쪽 옆얼굴을 보고 싶었어. 나는 무리하게 휴가를 얻었고 같은 마을로 돌아가 같은 방을 얻었지. 그녀는 정확히 전과 같은 시각에 나타났어. 같은 등나무의자, 같은 자세, 같은 옆얼굴'



오랜 동안 맑은 빗소리만이 방안을 울리고 있었다.



'그래서요?' 나는 물어보았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자에 반대편 얼굴을 봤어요.'



'봤지'라고 대령은 말했다. '보지않는 편이 좋았었어'



'무엇이 있었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어'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무것도 없었어. 無야 완벽한 無' 노인은 일어서서 커피잔을 탁자위의 접시에 두었다. '넌 이해할 수 없겠지. 완벽한 無라는 것을....'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조만간 알게 되꺼야. 결국은 그것이 시작이고 그것이 끝이니까. 우리는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 언젠가 우리들이 그림자를 버리고 걷기를 멈출 때에 無는 언젠가 어디에선가 우리를 맞이하러 올테니까. 그리고 암흑 속에서 우리는 만나게 되지. 그녀의 망령처럼...'



비 雨, 두터운 모포도, 따뜻한 스프도 나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어떤 조용하고 편안한 잠도 내 마음을 안정시켜주지못했다. 얼마만큼의 여자와 성교를 한 뒤에야 저 어두운 꿈은 나의 마음으로부터 떨어져 줄것인가?





오후5시의 뿔피리가 새로운 어둠이 올 것을 알렸다. 그리고 하얀 죽음의 계절이 강철로 만든 바퀴처럼 짐승들의 머리를 계속 붙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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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그쳤지만 그 후 몇일도 태양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처럼 흐린 날씨는 나의 약한 눈에 있어서는 오히려 도움이되었다. 나는 집밖의 공기를 마시고 가벼운 산책을 하고는 스케치북의 지도에 세세하게 그려넣기를 계속했다.



1주일만에 도서관 입구문을 열었을 때 건물속의 공기는 이전과 달랐다. 긴 복도도 보통 때보다 어둡고 마치 긴 세월버려져 있던 길처럼 사람의 흔적이라는 것을 느낄수 없었다. 도서대출실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다. 카운터는 잘 정리되어 있고 스토브의 불도 꺼지고 방은 구석구석까지 깊은 밤의 암흑에 지배를 받고 있었다.



'누구 없습니까?' 라고 나는 소리쳐 보았다.

반응이 없다.

스토브 위의 쇠주전자도 차가워져있고 먼지까지 내려 있었다. 그안에 커피는 변색되어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누군가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15분이 지나고 30분이, 1시간이지나고, 어둠만이 한없이 깊어가고 있었다. 물건소리 하나 나지않았다. 밖의 소리도 석벽에 막혀 방까지는 전해지지않았다. 마치 어떤 상자에 들어간 채 땅속깊이 묻혀버린 듯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나를 그곳에 남겨둔 채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나에게는 그림자조차도 없다.



지금까지 맛봤던 적이 없을 만큼 황량한 생각이 나를 덮쳤다. 그 정도까지의 고독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마치 상반되는 두개의 흐름이 나의 몸을 한가운데서 부터 나눠버리는 듯 했다.



이렇게 말하면 훨씬 옛날, 이것과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적이있었다. 나는 아직 작은 꼬마였고 그 때도 열이나서 학교를 쉬고 집에서 자고 있었다. 눈을 떳을 때 어머니의 모습은 없고 나는 혼자서 집안에 남겨져 있었다. 석양의 마지막 빛이 정원나무의 그림자를 나의 벼갯머리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고 천정의 구석은 이미 어둠에 덮여있었다. 전등이 꺼진 집안에서 기묘한 그림자와 기묘한 침묵이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이 네가 살아가는 진실의 세계야.' 라고 그들은 말하고 있었다. 누구하나 나를 구해주지 않았고 누구하나 나를 안아주지않았다.



'이것이 네가 살고 있는 진실의 세계야'



나는 머리를 흔들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견딜 수 없이 너를 만나고 싶었다. 너를 안고 그리고 너와 잠들고 싶었다.



눈을 떴을 때, 그곳에는 네가 있었다. 너는 처음으로 만났을 때와 같은 스웨터를 입고 가슴 위로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둠이 세밀한 입자처럼 너의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없구나라고 생각했어' 나는 말했다. '꽤 오래 기다리고 있었어.'



너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귀가 아플만큼의 침묵이였다.



'계속 열이 심했어. 일어날 수가 없었지.' 나는 손바닥으로 뺨을 만졌다.



열이 있는 뺨의 감촉은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을 만지고 있는 듯 했다.



'이곳에 앉아있으면서 이제 다시 영원히 너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너는 머리를 몇번인가 흔들었다.



'당신이 무엇인가 진심으로 찾고 있는 한, 누구라도 그것을 빼앗는 일은 할수 없어요.' 라고 너는 말했다. '누구라도 말이죠.'



'너는 무엇을 구하고 있지?'



'모르겠어요.' 너의 몸은 그곳에 선 채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너의 말과 함께 너의 아름다운 입술이 떨릴 뿐이였다. '이제까지 무엇인가를 찾은 적이 없었어?'



너는 다시 한번 머리를 흔들었다. '몰라요, 무엇인가를 찾으러 문을 열어보기도 하죠. 그러면 그 쪽에도 지금과 같은 방이 있어요. 그 방을 지나 또 문을 열면 그곳에도 또 같은 방이 있고... 그 반복이예요. 언제까지라도... 이러는 사이에 내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찾고 있는가 따위는 생각하지도 못 하게 되버리죠. 방에는 창도 없고 가구도 없고 그림도 실내장식도 없어요. 그저 문뿐이예요. 이렇게 방이 무한이 이어져 있어요.'



'그러나 네가 이 거리를 원했잖아. 그리고 나역시도'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둠이 가늘게 흔들렸다.



'후회는 하지않아요. 어디까지 가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것을 알고 있어요. 이제 확실해보여요. 소설의 마지막페이지를 도중에 열어보는 것처럼요.' 너는 얼굴을 들고 웃었다. '밖으로 나가죠. 걷고 싶어요.'





우리들은 강을 따라 걸었다. 긴 비때문에 강은 이제까지 본적이 없을 만큼 그 수량이 늘어나 있었다. 많은 中洲는 강의 흐름에 덮혀버려고 강가의 버드나무의 가는 잎사귀만이 여자의 젖은 머리카락처럼 수면에 흔들리고 있다. 마치 누군가 죽은 여자가 강의 수면에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젖은 보도(步道)는 우리들의 발아래에서 조용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당신이 만났다는 나의 그림자의 이야기를 해줘요.' 라고 너는 말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산과 어떤 것에서, 단어가 떠오르지않아.'





우리는 낡은 다리를 건너고 서편 다리의 외등이 밝아올 때까지 말없이 강변의 보도를 계속걸었다. 강의 물결에 밤새의 소리가 어우러졌다.



'말하기가 웬지 두려워' 라고 나는 말했다.



'말을 해버리면 왠지 평범하게 들려버리는 것같아.'



너는 나의 손을 잡고 그리고 그 손으로 자신의 뺨에 눌렀다.



'무엇이든 평범해요.' 라고 너는 말했다. '당신의 탓도 아니고 누구의 탓도 아니죠. 무엇이든 슬프리 만큼 평범하죠. 그것을 바꿀수는 없어요.'



서쪽다리에 왔을 쯤에 달빛아래에 검은 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다리의 난간에 앉아 긴 시간 가만히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너의 그림자를 사랑하고 있었어.'



'알고 있어요' 라고 너는 대답했다. '그러나 그녀는 죽었죠.'



그렇다 그녀는 죽었다.



'당신은 자신의 방, 소파에 앉아서 창밖을 지나가는 군대의 행진을 보고 있었지요. 선두에 부대가 우측창가에서 나타나 최후의 한사람이 좌측의 창가로 사라져갈 뿐이였어요. 사라져버린 뒤 실체따위 아무것도 남지않았죠. 부대가 정말로 지나갔는가 조차도 당신으로써는 알 수 없었어요.'



'만약 그것이 환각이였다하여도?' 라고 나는 말했다. '그 환각을 선택하고 있는 내 자신의 의식은 실체라구'



너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저었다.



'그래도 무엇하나 남지 않았던 것은 아니야' 라고 나는 계속했다.



'그래서 내가 이곳에 왔으니...'



'왔다는 것이 아니죠.'



'그래 네가 불러드렸지.'



너는 가만히 보도블록을 바라보았다. 다리의 외등이 우리들의 머리위에서 노란색 빛을 주위에 내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발아래 우리의 그림자는 없었다.



'당신이 나를 찾고 있는 한 나는 당신의 것이예요. 그러나 나에게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예요. 알아요?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네가 나를 사랑하는 일도?'



너는 침묵하고 머리를 흔들었다. '죄송해요 나에게는 당신에게 줄 것이 무엇하나 없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나는 아무 말하지않고 어깨를 안았다. 너는 울었지만 너의 눈에서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너는 눈물조차 줄 수 없었다. 북녁으로 부터 차가운 바람이 우리들의 주위에 불어왔다. 그리고 어두운 벽만이 우리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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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를 내린 내 방의 어둠 속에서조차 우리들은 벽의 시선을 계속 느꼈다. 모포 속의 너의 몸은 아름답고 따뜻했다. 나는 너의 부드러운 목을 사랑했고 미끈한 등을 사랑했고 그리고 모든 것을 사랑했다. 나는 마치 무너져가는 옅은 꿈을 안듯이 너를 품었다. 그리고 그런 꿈의 향기가 우리들을 감싸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벽을 지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원했고 그리고 네가 나의 꿈과 일체가 되어 주기를 원했다. 그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들은 긴 시간을 걸쳐서 도서관의 서고에서 산처럼 쌓인 오래된 꿈을 정리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것은 고통을 극복하는 작업이였다. 어느 정도를 선별하고 제대로 다시 늘어세우고 거기에 계통의 흐름을 만드는 일 등 나에게는 하기 힘든일이였다. 오랜 꿈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비난과 자기모순속에 잠들어 있다. 500의 오랜 꿈이 있으면 그곳에는 500의 계통이 있고 1000의 오랜 꿈이 있으면 거기에는 1000의 계통이 있었다. 1주간 정도의 작업을 계속한 뒤 나는 무엇인가를 방출했다.



'방법이 있을꺼예요. 반드시' 라고 너는 말했다.



'아마 그렇겠지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지? 이렇게 꿈을 하나하나 맞춰가면 10년은 걸리겠어'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있어요.' 확실하겠지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나를 재촉하고 있는 듯 했다. 예감같은 것이다.



'다른 방법을 생각하자' 라고 나는 말했다.



우리들은 스토브 앞으로 돌아가서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오랜 꿈은 자연에서 태어나온 것이예요. 너는 말했다.



'누구도 그것을 구분할 수는 없죠.'



'구분할 수 없는 것은 없어.



그러나 그들은 이해하기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원칙이 필요해'



'무슨 원칙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릴까하는?'



'그것은 무리예요 작은 것이라도 당신에겐요. 만약 당신이 최초의 하나를 얻으면 결국 전부를 얻는것이고 만약 최초의 하나를 잃으면 결국은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이되죠'



'그럴지도 모르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 나는 오랜꿈의 하나하나를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오랜 꿈이 하나를 테이블에 가지고 와서 천으로 표면을 깨끗이 닦고 양손바닥으로 표면을 덮어서 데웠다. 5분정도에 오랜 꿈은 나의 체온에 반응하듯이 희미한 열을 내며 작은 진동을 시작했다. 불투명한 구형(球形)의 중심부터 마치 먼 별의 빛처럼 희미한 빛이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듣지못할 정도의 낮은 소리로 말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의 말은 듣지 못했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을 열어 그것의 따뜻함이 나에게 전해주는 꿈의 세계를 보았다. 그 꿈은 슬픈 꿈이였다. 그것은 모든 싹이 죽고, 뿌리는 단단한 암반에 가로막힌 어둠속의 나무들이였다. 너의 말이 맞다. 나에게 있어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리는 일을 할 수 있을까?



10분정도 지난 쯤 오랜 꿈의 빛은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고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이 사그러지고 오랜 꿈은 다시 얼음처럼 차갑게 잠들었다. 나는 그것을 원래의 장소에 돌려주고 다른 오랜 꿈을 가져왔다. 하루에 읽을 수 있는 오랜 꿈의 수는 전부 다섯개이다. 그것으로도 방의 시계가 11시를 알릴 때에는 나는 똑바로 일어설 수 없을 만큼 지쳐있기가 보통이다.



11시15분에 너는 방의 전등을 끄고 우리들은 도서관을 나온다. 북녁에서 불어오는 계절풍은 매일 그 강도와 차가움을 더해갔다. 우리들은 손을 잡고 껴안듯이 하고 밤의 거리를 걸었다.



'왜, 오랜 꿈이 말하는 세계는 모두 어둡지?' 라고 나는 너에게 물었다. 그러나 너는 머리를 흔들뿐이였다. 서로의 소리조차도 잘 들이지 않을 만큼 강한 바람이 우리들의 주위에 불어왔다. 바람은 공장가를 지나 잘려진 낡은 전선을 스쳐 검은 어둠에 우뚝솟은 높은 굴뚝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녀가 사는 공동주택 앞에서 우리들은 꼭 껴안은 뒤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



나는 그녀를 생각했고 도서관의 어두운 서고에 잠든 오랜 꿈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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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은 이미 몇마리가 사라져 있었다. 처음 눈이 내렸던 아침,



나이든 몇마리가 5cm정도 눈속에 겨울의 흰 빛이 더해진 그 금색의 몸을 가로누워 있었다. 나는 벽의 망루에 서서 짐승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의 태양이 그 한 편에서 냉정한 광경을 선명하게 빛추고 있었다. 그리고 수천마리의 숨쉬는 하얀 입김이 주위에 넘치고 있었다.





7시의 뿔피리와 함께 문지기가 문을 열자 짐승들은 거리에 들어왔다. 짐승들이 지나간 뒤에는 마치 대지에 만들어진 가시같은 모양의 뼈가 얼마인가 남겨져 있었다. 나는 아침 햇쌀이 나의 눈을 아프게 할때까지 가만히 그 가시를 바라보았다.



벽을 내려와, 방으로 돌아가 보면 아침의 빛은 생각보다 휠씬 강하게 나의 눈을 아프게 하는 것같았다. 눈을 감으면 눈물이 흐르고 나의 뺨과 샤쓰를 적셨다. 몇시간이나 나는 눈을 감은 채 거리감 없는 어둠 속에 떠서는 사라져 갈 여러색의 빛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이 차가운 타올을 나의 눈에 대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게 해 주었다.



'아침의 빛은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해. 특히 눈내린 아침은...



도대체 무엇을 하러 밖에 나갔지?'



'짐승들을 보러 갔었어요. 죽지나 않았을까 생각했죠'



'어째서지?'



'몇마리가 죽어있었습니다.'



'이제부터 더 많이 죽어'



'왜 그렇게 간단하게 죽어버립니까'



나는 타올로 얼굴 위를 덮은 채 노인에게 물어봤다.



'약한 탓이지, 추위와 굶주림으로... 옛날부터 계속 그랬지'



'죽음은 그치지 않습니까?' 노인은 머리를 흔들었다.



'놈들은 몇 만년이나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거네. 봄이 오면 놈들은 자식을 낳고 새로운 생명으로 바꿔가며 사는 거야. 그것뿐이지...'



'사체(死體)는 어떻게 됩니까?'



'태우지, 문지기가' 노인은 차가워진 손을 커피잔으로 데우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모아서 유채기름을 뿌려태우지. 해질녁에는 그 연기가 이곳까지도 보이네. 겨울동안은 그것이 매일 계속되지, 눈과 연기...'





눈과 연기





어느정도 높은 벽도, 그 연기를 나로 부터 감추는 일은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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