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꿈을 정리하는 이외의 시간을 나는 거리의 지도를 만드는 데 소비했다.



처음은 어둠속에서 무료한 시간은 이겨내려고 시작한 작업이였지만 곧 나는 거기에 몰두하게 되었다. 최초의 작업은 거리의 윤곽을 그리는 일이였다. 우선 벽의 형태였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곤란한 작업이였다. 왜냐하면 누구하나 그정확한 형태를 알지못했기 때문이다. 옆방의 노인도, 너도, 그리고 문지기도...





어쨌든 나는 자신의 다리로 그것을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弱視라는 나의 배경에 있는 핸디캡때문에 그 작업은 가을이 끝날 때까지 걸렸다. 흐린 날과 저녁밖에 내가 나가서 걷는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케치북을 한손에 들고 벽을 따라 걷는 사이에 나는 벽이 가진 힘에 점점 끌려가는 것 같았다. '이 벽은 살아있다.' 라고 느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벽은 마치 탄력있는 생물처럼 어느 때는 구불구불하고, 어느 때는 높이 솟고, 어느 때는 휴식하고 그리고 시작도 끝도 없는 바퀴속에서 거리를 삼키고 있었다.





벽의 표면은 미끈미끈했다. 건조하기 쉬운 곳에는 아랫부분에 물이 둘러쌓여 있었고 반대로 습기많은 곳에서는 유채기름을 가득채운 도랑이 패여있어 그 벽이 언제까지라도 보존되도록 만들어져있었다. 꾸미려는 장식은 어느한군데 없었지만 지형을 이용하면서, 한없이 이어진 그 곡선의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지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거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벽을 받들고 있었다. 석양이나, 달, 별, 비, 나무들 그리고 꽃, 그것들 모두가 벽을 위해 만들어진 장신구인 것처럼 벽을 채색하고 있었다. 이 벽을 앞에 하면 아마 어떤 화가라도 미칠듯이 기뻐하고 다음 순간 절망해 버리겠지... 이 거리에서는 벽을 포함한다면 어떤 공간도 예술이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이 그곳에 더하여 주는것은 무엇하나 없었다. 벽앞의 사람, 벽위의 구름, 벽아래의 풀, 풀을 먹는 짐승의 무리, 벽은 모든 것을 자신에게 동화시키고 있었다.





벽 앞의 나.



나는 걷다지쳐 벽의 아래 풀위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구름사이로 햇빛이 거리의 지붕을 오랜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신의 등으로 싸늘한 벽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훨씬 옛날에 어딘가에서 경험했던 무엇인가의 감각과 비슷한 것이였다. 그 무엇인가가 나에게는 도무지 떠오르지않았다. 벽돌의 이상할 정도의 미끈함은 다른 어떤 소재와도 감촉이 달랐다. 마치 유리처럼 단단하고 암반처럼 두터웠다. 그리고 물고기의 배처럼 차가웠다. 나는 내 자신의 등을 지구중심에까지 직접 연결해버린 것같은 기분이였다.





나는 벽아래의 오래된 풀을 몇 묶음 잡아 입에 물었다.



벽의 그림자는 순식간에 길게 늘어지고, 들판을 넘어서 숲을 덮고 공동주택의 담을 넘어서 곧,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밤의 어둠과 일체화되었다.



나는 생각한다. 도대체 누가 이 벽을 이해할 수 있을까? 벽은 어떤 때는 무자비하게 그리고 어떤 때는 자비롭게 우리앞에 서있다.



그러나 누가 무자비를 이해할 수 있을까? 혹은 자비를?



형태가 있는 것에는 영원이란 없다 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벽은 사람들에게 묻는다.



만약 형태가 없는 것에 영원이 있다라고 하여 도대체 누가 그것을 확인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원래 그것이 너희들의 역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얇은 어둠이 벽을 덮었다. 뿔피리가 울었다. 짐승들의 발굽소리가 거리에 울렸다. 그리고 정적(靜寂). 이미 도서관에 가 있어야 할 시각이다. 그러나 나는 일어설 수 없었다. 벽이 나를 붙잡고 그 태고의 생각은 계속 이야기했다.



이 거리에는 네가 구하는 것은 뭐라도 있다. 그리고 동시에 무엇도 없다. 네가 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구하는 것은 뭔가? 너의 입술, 평온한 마음, 오래된 빛........



잊어버리는 쪽이 좋아. 네가 이곳으로 부터 얻는 것은 절망뿐이야. 당신은 이 거리에 올 것이 아니였어. 바깥 세계에 살 인간이야. 죽으면 모든 것은 끝나지. 꿈도 고통도 무엇이라도...



죽는 것은 두렵지않다. 라고 나는 말했다. 無로 돌아가는 것도 잊혀져가는 것도 내가 두려운것은 모두가 시간이라는 위선의 옷에 분주해져가는 것이다.



말이구만... 이라고 벽은 웃었다.



네가 말하고 있는 것도 단지 말뿐이야



별이 하늘에 아로새겨졌다.



두터운 구름은 이미 어딘가로 지워져가고 차가운 바람이 별을 깜박이게 했다.





그리고 이미 모든 것이 늦어버렸어. 모든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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