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쯤 늦게, 너는 이곳을 찾아왔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정돈하는데 시간이 필요했고...아무튼 혼자하는 일이기 때문에요.'

 

 

우리는 커피를 마셨다.

 

이런 커피의 따뜻함이 우리의 기분을 풀어주었다.

 

너에 대해 알고 싶어 라고 나는 말했다.

 

'왜죠?' 라고 너는 물었다.

 

'네가 이 거리에서 나의 최초에 친구이니까'

 

'친구' 너는 미소지었다. '좋아요 그렇게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리고 너는 말하기 시작했다.

 

 

너는 몰락한 공장지역의 좁은 공동주택에서 부모님과 2명의 동생과 살고 있었다. 그리고 가난했다. 부친은 직함은 직공장이였지만 직공을 갖고 있지 않는 직공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 주에 이틀 밖에 가동하지않는 공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너는 학교를 나와서 일하러 나가지않으면 안되었다. 몇달뒤에 여기저기 이력서를 낸 끝에 도서관의 일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많은 수입은 아니지만 세자매의 가난한 식사를 보장하기엔 충분했다.

 

 

너는 군대 모포처럼 거칠거칠한 오래된 푸른 코트, 깃없는 검은 스웨터와 무릅까지 오는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것은 전에는 너의 어머니가 입었던 것이고 결국은 동생들에게 넘겨줄 것이였다. 그래서 너는 스커트에 커피를 흘리지않도록 조심스럽게 컵을 기울였다.

 

 

'어디에서 왔어요?' 라고 너는 물었다. 이번에는 내가 대답할 차례였다.

 

'훨씬 동쪽의 거리에서, 네가 알지못할만큼 먼 곳'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이거리 이외의 일은 '

 

 

네 목소리는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너의 말은 저 10미터의 벽에 튼튼히 지켜지고 있었다.

 

 

'왜 이 거리에 왔지요? 이 거리를 찾아온 사람을 만나건 처음이예요'

 

' 정말?'

 

'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 뿐이예요. 왜 왔죠?'

 

'왜 일까? 벽이 없는 거리에서 사는 것이 괴로웠던 것도 있고 너를 만나고 싶기도 했고'

 

'나를?' 너는 어깨를 움츠리고 즐거운 듯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텅빈 커피하우스를 나와, 맑은 밤공기를 마시면서 강변을 걸어 옛다리의 한가운데 있는 돌계단으로 내려갔다.

 

강 가운데섬에 늘어선 벤치중 하나에 앉았서 수면을 떠오는 밤새의 소리에 귀를 맑게 했다. 너는 내가 살고 있었던 거리의 일을 몹시 알고 싶어했다.

 

 

'어떤 거리였지요?'

 

어떤 거리였을까 내가 일주전까지 살던 그 거리는? 나는 도대체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곳에는 마치 파도처럼 셀수없을 정도의 말들이 밀려오고 셀수없을 정도의 생각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파도가 쓸려간 뒤에는 여기저기 조금씩 물이 고여있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것으로 그녀에게 무엇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잘 기억나지않아 몇만년도 더 된듯한 기분이야. 바로 일주전일인데도' 라고 나는 말했다.

 

'무엇인가 하나라도 좋아요. 기억해 봐요'

 

'우리들은 그림자를 끌며 걷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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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들은 모두 그림자를 끌며 걷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는 나는 그림자를 갖고 있지않다. 그림자를 버렸을 때 우리들은 처음으로 그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은 중력에 대한 것처럼 그림자의 무게에 대해 무감각하게 되어버렸음이 틀림없다.

 

 

물론 그림자를 버리는 것은 그 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다. 만약 어떤 것이든 긴 세월을 가깝게 지냈던 것과 헤어지는 것은 그 자체로 괴로운 일이다. 이 거리에 찾아왔을 때, 나는 문지기에게 그림자를 맡기지 않았다.

 

'그것을 가진 채 거리에 들어갈 수 없어' 문지기는 말했다. '그림자를 버리던가 거리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던가 어떻게 할래'

 

 

나는 그림자를 버렸다.

 

 

문지기는 나를 햇빛을 향해 세우고 나의 그림자를 붙잡았다.

 

'괜찮아, 아프지도 않고 금방 끝나' 그림자는 조금 저항했지만 힘센 문지기에게는 문제없는 일이였고 곧 그림자는 떨어져 힘을 잃고 벤치에 앉았다. 나의 몸에서 떨어져나간 그림자는 생각보다 훨씬 초라하게 보였다. 피곤한 것같았다. 뭐랄까 떨어져 버린 낡은 구두처럼, 그것은 나와는 관계없는 존재같이 되었다. 혹은 뽑아버린 충치처럼

 

'어때, 때어버리니까 이상하지 그림자라는게'

 

'그렇군요'

 

'이런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저게 나쁜건지, 이것이 좋은 것인지, 그림자가 이제까지 한번이라도 쓸모가 있었던 적 있어'

 

'아니요'

 

'그렇겠지' 라고 문지기는 말했다

 

'너도 반드시 후회하지는 않을거야'

 

'그래요'

 

'자, 너의 그림자는 정확히 맡아두지 나쁜 짓을 하지않아'

 

'질문하나해도 좋아요?'

 

'좋아'

 

'내가 없는 사이 그림자는 뭘하죠'

 

'평소와 똑같아 걷기도 하고 생각을 하기도 하고 하루 한번은 운동도 시켜주지. 그래야 겨울이 되면 일도 할수 있으니까. 도움을 받는 거야 짐승의 시작과 끝을 위해'

 

'짐승의 시작과 끝?'

 

'응, 너도 겨울이 되면 알게되'

 

'그런데 내가 돌아가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지요?'

 

문지기는 질문의 뜻을 잘 모르겠다는 듯한 모습이였다.

 

'그림자를?'

 

'그래요'

 

문지기는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어. 그림자를 돌려받고 싶다는 따위의 말을 하는 사람은...

 

그림자는 결국은 약하고 어두운 마음이야. 누가 그런 것을 바라겠어?'

 

모르겠다라고 나는 말했다.

 

'여러가지가 그 약하고 어두운 마음에 포함되있지 증오, 괴로움, 약함, 허영심, 노여움.....'

 

'슬픔도요' 나는 덧붙였다.

 

'슬픔도 물론' 그도 반복했다. '누가 그런것을 바라겠어?'

 

 

'우리들은 모두 그림자를 끌며 걷고 있어' 라고 나는 너에게 말했다.

 

빛이 있을 때는 그림자가 우리를 둘러쌓고 암흑 속에서는 꿈이 졸음을 덮쳐온다.

 

'왜 모두 그림자를 버리지 않지요?'

 

'버리는 것을 모르니까 그러나 만약 알고 있다하여도 버릴수는 없어'

 

'왜요?'

 

'우리들은 그 무게에 눌리고 있으니까요'

 

'우리들은 무엇에라도 계속 눌리고 있었어 그런 거리였어요'

 

 

강가운데 섬에 무성한 버드나무 중 하나에는 오래된 보트가 로프에 묶여있고 물의 흐름이 그 주위에 마치 여름의 잔재처럼 구슬픈 가락을 만들고 있었다.

 

 

'너희들의 그림자는 어디에 갔지?'

 

'잊어버렸어요 이 거리에서는 모두 어릴 때 그림자를 때어버려요 이가 날때 쯤에요.

 

그리고 벽밖으로 보내 버려요'

 

'그러면 그림자만이 살아가는건가?'

 

'예, 그럴거예요. 나의 그림자는 5년전에 죽었어요. 문지기가 벽바깥에서 죽어있는 그림자를 보고 데려왔어요. 3일 뒤에는 죽었지요. 문지기가 사과나무 숲속의 묘지에 묻어주었어요'

 

'너도 못만났어?'

 

'나의 그림자를요?'

 

'그래'

 

'만나서 대체 무슨 말을 해요' 라고 너는 웃었다.

 

밤새는 이미 돌아가고 차가운 10월의 바람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래서 어두운 마음은 영원히 죽었군' 우리들은 일어나 돌계단을 올라가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리를 향한 언덕으로 건넜다.

 

'당신의 그림자도 곧 죽어요. 그림자가 죽으면 어두운 마음도 죽고 평온함이 찾아오죠'

 

라고 너는 말했다.

 

'그리고 벽이 그것을 지켜주겠지?'

 

'그래요, 그때문에 당신도 이 거리에 온 것이겠지요?'

 

그럴지도 모른다 혹은 그런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저 파도 뒤에 남은 물의 자취처럼 갈 곳 없는 생각이 문득 나를 스쳤다. 그러나 그런 기분도 다리를 건널때까지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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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지역은 옛다리의 남쪽에 넓게 펼쳐진 장소였다. 그리고 일찌기 아름다운 물을 가득담고 있던 운하도 지금은 수문을 닫은 채 돌처럼 굳게 말라버린 진흙이 그 바닥을 두텁게 덮고 있을 뿐이였다. 이런 인기없는 공장지역을 가까이 둔 곳에 직공들을 위한 5층 건물의 공동주택이 죽 늘어서 있었다. 마치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은 것이 불가사의 할 정도의 오래된 건물이였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직공(職工)이라고 불리고 있었지만 실제에 그들이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은 아니였다. 그것은 이미 그저 의미없는 말에 지나지 않았다. 공장은 오래전에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그 이후 직장을 잃은 상태였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는 것없이 거리에서 지급되는 약간의 식량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거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 지역도 영광의 날들의 기억을 갖고 있다. 계속되는 전쟁 시기에는 주물공장이 불야성을 이뤘고 사람들을 재촉하고 거리는 그 불빛의 물거품에 들끓고 있었다. 30개의 굴뚝이 하늘을 향해 서있고 밤낮 구별없이 머리위는 검은 연기가 계속 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그을음은 공동주택의 빨랫터에 서리처럼 내리고 그곳에 있는 것 모든 것을 회색으로 바꿨다. 회색바지, 회색타올, 회색속옷... 거리는 이처럼 망치소리로 가득했고 화로(火爐) 열기에 가득차있었다. 물론 어찌되었건 오래전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그림자를 잃어버렸을 때, 공장도 버려졌다. 전쟁도 사라지고 회색바지도 사라졌다. 지금에는 공장은 거의 한구석에서 조잡한 괭이나 솥을 만들뿐이였다.





공장가를 지나는 길의 양옆은 붕괴된 석벽이나 오래된 목재가 어느곳인가로 이어져있고 굴뚝은 풍화된 봉우리처럼 어둠속에 검게 높이 솟아있었다. 나와 너는 머리를 돌려 그런 침묵의 계곡을 걸었다. 그리고 마지막 운하에 이르러 난간도 없는 조그만 다리를 건너자 그곳에는 공동주택이 늘어서 있었다. 슬픈 풍경이었다. 평평한 똑같은 모양의 건물이 몸을 맞대고 한없이 이어져있었다. 건물의 사이를 둘러싼 오래된 보도블럭에는, 몇세대에 걸쳐서 사람들의 생활의 색깔이 배어있었다. 그것은 아마 보도블럭의 중심에까지 배어있겠지...



돌의 위를 걸으면서 나의 구두밑창은 소리조차도 나지않았다. 오래된 우물의 바닥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였다.





시간은 한밤으로, 모든 집은 잠들고 몇 개의 불빛이 여기저기의 창을 노란 색으로 물들어 있을 뿐이였다. 너는 공동주택의 사이의 미로같은 보도(步道)를, 나의 손을 이끌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마치 하늘의 암흑에 뒤섞여서 사람들을 노리는 거대한 새의 눈을 피하려는 것처럼...





'데려다 줘서 고마워요'



너는 미로의 한 가운대서 갑자기 멈췄서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누군가와 말해 보고 싶었어, 그것뿐이야. 다음에도 대화상대가 되어주지 않을래?'



라고 나는 말했다.



'예, 좋아요.'



'내일도 도서관에 갈께' 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



'오래된 꿈과 말할수 있어요?'



'아니 아직은 잘 안돼, 알아듣기가 어렵거든'



'괜찮아요.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잘 될거예요'



낡은 보도위로, 우리들의 소리는 각자에게 다른 사람의 소리처럼 울려왔다. 마치 주위에 어둠이 우리들에 소리를 불균일하게 빨아들이기도하고 내뱉기도 하는 것같았다.





'그런데 왜 나만 오래된 꿈과 말할 수 있지?' 나는 결심하고 그렇게 물어봤다.



'나도 잘 몰라요'



'누구에게 물어보면 좋을까?'



'오래된 꿈에게' 라고 너는 말했다.



'잘 자'



'잘 자요' 그리고 너는 내가 구별할 수도 없는, 늘어선 건물의 하나에 빨려들어갔고 나는다시 홀로남겨졌다. 높은 벽에 둘러쌓인 이 거리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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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는 직공지역이 과거에 이미 빛을 어둠속으로 잃어버린 곳이라고 한다면 거리의 남서부에 펼쳐진 관사지역는 건조한 빛속으로 끊임없이 그 빛을 잃어가는 곳이였다.



봄이 가져온 윤기를 여름의 태양이 치장시키고 겨울의 계절풍이 풍화시켜버렸던 그런 상태였다. '서편의 언덕'이라고 부르는 평온한 넓은 여백을 따라서 2층건물의 하얀 관사가 쭉 늘어서 있었다. 원래 하나의 건물에는 세가구가 살수 있도록 설계되어서 한가운데의 튀어나온 현관만이 공유부분으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안은 온통 하얀색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보이는 모든 것이 하얀색이였다. 서편언덕의 여백에는 여러종류의 흰색이 있었다. 덧칠해야할만큼 부자연한 백색, 태양의 빛을 받아와서 누렇게된 백색, 비바람에 모든 것을 빼앗긴 듯한 허무의 백색, 그런 여러가지 백색이 언덕을 둘러싼 자갈길 어딘가까지 이어져있었다. 관사에는 담장은 없고 벽돌로 만든 좁고 긴 화단이 있을 뿐이였다. 봄이오면 그곳에도 하얀 꽃이 필지모른다. 과거 한때는 무척 맑고 산뜻하였다라고 말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거리였으리라. 거리에는 아이들이 뛰놀고 피아노소리가 들리고 따뜻한 저녁식사의 향기가 감돌았을 것이다.





관사는 이름에 맞게 옛날에는 공무원들이 그 곳에 살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림자를 잃어버렸을 때 살던 공무원도 그 직장을 잃었다. 서기, 세무사, 경찰관, 우편배달부....



그들은 이 거리를 떠나 남쪽지역으로 이주해 갔다.





관사의 새로운 주인은 퇴역군인들이였다. 그들의 인생은 대부분을 이미 써버렸기때문에 그 이상 잃어버릴 것은 아무것도 없었었겠지? 그래서 그들은 후회없이 자신들의 그림자를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햇볕좋은 벽에 붙은 벌래의 빈 껍데기처럼 강한 계절풍이 부는 언덕의 여백에서 그 영원한 생을 보내고 있었다. 한 집에는 6인부터 9인의 노군인들이 살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눈 것도 아니다.



그들은 생활용품을 큰주머니에 담아가지고 언덕의 여백을 찾아 와서는 아무 방으로나 들어갔다. 처음 두사람이 2층에 있는 침실을 가지고 뒤이어 온 한사람이 1층의 거실을 가지고....





내가 문지기에게 지시받은 집도 그런 관사의 하나였다. '1145'라는 것이 내 집에 지정된 번호였다. 내집에는 대위와 소위가 한명씩 중사와 군소(일본군대의 계급)가 둘씩 살고 있었다. 전쟁의 준비나 전쟁의 수행이나 전쟁의 뒤처리나 혁명, 반혁명에 끌려다니는 사이에 가정을 가질 기회를 잃어버린 고독한 노인들이였다.





그런 노인들의 마음을 묶어주고 그 단조로운 생활을 규정하고 있던 것은 지금까지도 군대였다. 그림자를 갖지않은 永遠의 군대. 어쩌면 그들 노인들이 그림자를 잃어버린 생활에 가장 적격인지도 몰랐다. 그들은 아침일찍 눈을 뜨면 급히 아침식사를 먹고 누구에게 명령받은 적도없는 각자의 일에 메달려 있었다. 어떤이는 오래된 관사의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어떤이는 화단의 잡초를 뽑고 어떤이는 식량배급을 얻으러 관청(그곳도 반드시 강변에 늘어서 있는 정체불명의 건물 어딘가에 있겠지)에 갔다. 노인들은 아침의 노동을 마치면 다음은 관사의 정면의 양지에 앉아 연금을 계산하거나 옛전우를 회상했다.



내가 있게된 곳은 서쪽을 향한 2층의 방이였다. 종횡이 6보정도, 그러나 가구가 없는 생활이라서 텅빈 인상이였다. 천정이 높은 탓일지도 모른다. 벽의 여기저기는 얼룩이져 있었다. 오래된 철제침대와 조그만 책상과 의자만이 내 방에 있는 가구의 전부였다.





내 이웃에는 나이많은 대위가 살고 있었다. 우리들은 곧 친해져 하루에 몇번이나 둘이서 함께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너 같은 젊은이가 왜 이런 어둔 방에 살고있지' 라고 그는 말했다. '밖은 화창하게 맑은 날씨야'



'눈이 나쁘기때문입니다. 대위님'



이라고 나는 수백번이나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밝은 빛에 약해요. 저녁 무렵이나 흐린 날외에는 밖에 나갈 수없습니다.'



'예언자의 눈인가?'



'그렇습니다.' 노인은 커피잔을 손에 든 채 방을 왔다갔다 했다. 닫혀있던 블라인드를 손가락으로 열어 그사이로 밖의 밝은 풍경을 바라보았다.



'햇쌀만큼 멋진 것은 세상에 없어. 그렇게 생각하지않나?'



'그렇습니다.'



'왜 예언자가 되었지? 선택한 것인가?'



'그것밖에 빈자리가 없었습니다. 대위님, 그자리밖에요. 이 거리에 들어오기위해서는 그이외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빛을 읽어버린다해도?' 나는 긍정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 거리에 들어오고 싶었습니다. 그것뿐이예요.' 노인은 창가의 낡은 소파에 앉아서 한숨을 쉬었다. '난 잘모르겠어. 이 거리가 너에게 있어서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러나 결국은 네가 결정할 것이지만...'



'예, 알고있습니다.'



'커피 한잔 더 마실래?'



'감사합니다.'



노인은 포트를 손에 잡고 두개의 컵에 커피를 충분히 따랐다.



'그래도 옛날엔 좋은 거리였어. 좁은 거리였지만 구석구석까지 활기가 가득했지... 그러나 거리가 그림자를 잃어버린 날부터 반수이상의 사람들이 거리를 나갔어. 거리에 남은 것은 잃을 것이 없는 인간이나, 늘 잃어버려온 인간,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뿐이였어'



'당신은 후회한 적 없습니까'



'이 거리에 남은 일 말인가?'



'예'



'설마' 라고 노인은 웃었다.



'이 거리에서는 누구도 후회따위 하지않아, 그 때문에 이 거리에 있는 것이지'



우리는 어둠속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그러나 나가 너의 기분을 모르는 것은 아니야' 라고 노인은 계속 말했다.



'우리 노인은 많건적건 예언자이니까'



'예'



'너희들과는 방법이 다를 뿐이야'



'그렇군요'



'우린 시간을 잃었고 너희들은 빛을 잃었지 뒤에 생각하나 먼저 생각하나 다를 바없지'



'아무차이없지요.'



'좋아, 태양빛 없이 사물을 보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 전쟁과 같아,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하는 거야 '



'예'



'과거와 미래의 구별조차도... 시간을 주의해, 이 거리에서는 시간이란 것이 무게를 갖고 있지않아. 시간을 믿지말아. 미로의 속에서 헤메게 될 뿐이야. 특히 너처럼 완전히 그림자를 버리고 온 것이 아닌 인간은'



'모르겠군요'



'곧 알거야' 노인은 말했다. '시간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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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무게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실로 이상한 느낌이였다.



물론 하루하루 지나고 계절은 변한다. 그러나 그것은 말하자면 마음속에 투영된 상에 지나지않는다. 여러종류의 조각들로 교묘하게 조합된 조립완구처럼 시간은 흐르고 머물고 혹은 역행하는 것같았다. 그것은 노인이 말했듯이 확실히 미로(迷路)였다.





우선 시간이라는 개념을 떠나서 말이 존재할 수 없었다.



계속 말을 하기위해서는 나에게 시간이란 것이 어쨌든 필요했다.





이처럼 세월이 흘렀다.



나는 낮동안에 눈을 뜨고 오후를 노인과 보냈고 저녁이 되면 도서관에 가서 오래된 꿈에 귀를 기울였다. 도서관이 닫으면 너를 '직공'지역의 공동주택까지 바래다 주었다. 3일에 1번은 도서관에 가기전에 서쪽벽의 망루에 올라 짐승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흐린 오후에는 바깥에 나가서 짐승들에게 빵을 줄 수도 있었다.





짐승들은 언제나 배가 굶주려 있었지만 그들의 프라이드는 그래도 강했다. 공원의 벤치에서 내가 던진 빵을 그들은 몇번이나 망설이고 나서 멀리 가져가 먹었다. 나는 그들이 음식을 서로 빼앗는 광경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힘이 센 놈들은 늙은 짐승과 어린 짐승들을 위해 빵의 반정도를 남겨두는 것이 보통이였다.





겨울이 오면, 그들의 깊은 호수같은 푸른 눈은 그 슬픔의 색을 조금씩 더해갔다. 나무들은 그 잎을 지면에 떨어뜨리고 풀은 말라버리고 굶주림의 계절이 가까이 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주었다. 하얀 죽음의 계절을.....





그러던 어느날 안개처럼 가늘고, 얼음처럼 차가운 가을비 아래에서 나는 너를 안았다. 눈에서는 보이지않을 정도의 미세한 물방울이, 너의 앞머리카락을 그 넓은 이마에 부드럽게 달라붙게 하고 있었다.



너는 눈을 감았다. 너의 부드러운 입술은 나의 입술아래에서 가늘게 떨고 있었다.





비雨.





가을의 비는 우리의 주위를 언제까지라도 계속 내리고 있었다. 시작이 없었다면 끝도 없었다. 달도 없고 별도 없고 밤새소리도 없었다. 강변에 늘어서있던 수양버들이 그 가는 나뭇가지의 끝에서부터 천천히 물방울을 떨구고 있을 뿐이였다.





네가 입었던 레인코트는 두텁고, 사이즈는 네몸에 두배는 됨직했다.



나는 그 위에서 너의 어깨를 안고 너의 등을 안았다. 너의 몸에서는 비의 냄새가 났다. 너의 머리카락에도 눈꺼풀에도 귀 뒤에서도 비의 냄새가 났다.



'지금까지 몇 천번이나 이 다리를 건넜어요' 라고 너는 말했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는 동안에 언제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나라는 인간이 새로운 나로 바뀌어 가지않을까 마치 칠판에 썼던 글자가 칠판지우게로 지워져가는 것처럼요.'



'착각이야...'



'예... 그것은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저 이런 느낌이 들어요. 이유따위는 몰라요'



'시험해봐'





우리들은 말없이 다리의 나머지를 걷고 반대편 보도위에 섰다.



그리고 나는 다시한번 너를 안고 다시한번 입을 마췄다.



'어떻지?'



'모르겠어요' 너는 불안한 듯한 미소를 짓고 한손으로 흘러내린 앞머리를 만졌다.



'몰라요'



낡은 다리는 마치 긴 복도처럼 반대편의 어둠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가을비가 그 어둠속에서 소리도 없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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