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그쳤지만 그 후 몇일도 태양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처럼 흐린 날씨는 나의 약한 눈에 있어서는 오히려 도움이되었다. 나는 집밖의 공기를 마시고 가벼운 산책을 하고는 스케치북의 지도에 세세하게 그려넣기를 계속했다.



1주일만에 도서관 입구문을 열었을 때 건물속의 공기는 이전과 달랐다. 긴 복도도 보통 때보다 어둡고 마치 긴 세월버려져 있던 길처럼 사람의 흔적이라는 것을 느낄수 없었다. 도서대출실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다. 카운터는 잘 정리되어 있고 스토브의 불도 꺼지고 방은 구석구석까지 깊은 밤의 암흑에 지배를 받고 있었다.



'누구 없습니까?' 라고 나는 소리쳐 보았다.

반응이 없다.

스토브 위의 쇠주전자도 차가워져있고 먼지까지 내려 있었다. 그안에 커피는 변색되어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누군가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15분이 지나고 30분이, 1시간이지나고, 어둠만이 한없이 깊어가고 있었다. 물건소리 하나 나지않았다. 밖의 소리도 석벽에 막혀 방까지는 전해지지않았다. 마치 어떤 상자에 들어간 채 땅속깊이 묻혀버린 듯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나를 그곳에 남겨둔 채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나에게는 그림자조차도 없다.



지금까지 맛봤던 적이 없을 만큼 황량한 생각이 나를 덮쳤다. 그 정도까지의 고독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마치 상반되는 두개의 흐름이 나의 몸을 한가운데서 부터 나눠버리는 듯 했다.



이렇게 말하면 훨씬 옛날, 이것과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적이있었다. 나는 아직 작은 꼬마였고 그 때도 열이나서 학교를 쉬고 집에서 자고 있었다. 눈을 떳을 때 어머니의 모습은 없고 나는 혼자서 집안에 남겨져 있었다. 석양의 마지막 빛이 정원나무의 그림자를 나의 벼갯머리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고 천정의 구석은 이미 어둠에 덮여있었다. 전등이 꺼진 집안에서 기묘한 그림자와 기묘한 침묵이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이 네가 살아가는 진실의 세계야.' 라고 그들은 말하고 있었다. 누구하나 나를 구해주지 않았고 누구하나 나를 안아주지않았다.



'이것이 네가 살고 있는 진실의 세계야'



나는 머리를 흔들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견딜 수 없이 너를 만나고 싶었다. 너를 안고 그리고 너와 잠들고 싶었다.



눈을 떴을 때, 그곳에는 네가 있었다. 너는 처음으로 만났을 때와 같은 스웨터를 입고 가슴 위로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둠이 세밀한 입자처럼 너의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없구나라고 생각했어' 나는 말했다. '꽤 오래 기다리고 있었어.'



너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귀가 아플만큼의 침묵이였다.



'계속 열이 심했어. 일어날 수가 없었지.' 나는 손바닥으로 뺨을 만졌다.



열이 있는 뺨의 감촉은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을 만지고 있는 듯 했다.



'이곳에 앉아있으면서 이제 다시 영원히 너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너는 머리를 몇번인가 흔들었다.



'당신이 무엇인가 진심으로 찾고 있는 한, 누구라도 그것을 빼앗는 일은 할수 없어요.' 라고 너는 말했다. '누구라도 말이죠.'



'너는 무엇을 구하고 있지?'



'모르겠어요.' 너의 몸은 그곳에 선 채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너의 말과 함께 너의 아름다운 입술이 떨릴 뿐이였다. '이제까지 무엇인가를 찾은 적이 없었어?'



너는 다시 한번 머리를 흔들었다. '몰라요, 무엇인가를 찾으러 문을 열어보기도 하죠. 그러면 그 쪽에도 지금과 같은 방이 있어요. 그 방을 지나 또 문을 열면 그곳에도 또 같은 방이 있고... 그 반복이예요. 언제까지라도... 이러는 사이에 내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찾고 있는가 따위는 생각하지도 못 하게 되버리죠. 방에는 창도 없고 가구도 없고 그림도 실내장식도 없어요. 그저 문뿐이예요. 이렇게 방이 무한이 이어져 있어요.'



'그러나 네가 이 거리를 원했잖아. 그리고 나역시도'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둠이 가늘게 흔들렸다.



'후회는 하지않아요. 어디까지 가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것을 알고 있어요. 이제 확실해보여요. 소설의 마지막페이지를 도중에 열어보는 것처럼요.' 너는 얼굴을 들고 웃었다. '밖으로 나가죠. 걷고 싶어요.'





우리들은 강을 따라 걸었다. 긴 비때문에 강은 이제까지 본적이 없을 만큼 그 수량이 늘어나 있었다. 많은 中洲는 강의 흐름에 덮혀버려고 강가의 버드나무의 가는 잎사귀만이 여자의 젖은 머리카락처럼 수면에 흔들리고 있다. 마치 누군가 죽은 여자가 강의 수면에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젖은 보도(步道)는 우리들의 발아래에서 조용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당신이 만났다는 나의 그림자의 이야기를 해줘요.' 라고 너는 말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산과 어떤 것에서, 단어가 떠오르지않아.'





우리는 낡은 다리를 건너고 서편 다리의 외등이 밝아올 때까지 말없이 강변의 보도를 계속걸었다. 강의 물결에 밤새의 소리가 어우러졌다.



'말하기가 웬지 두려워' 라고 나는 말했다.



'말을 해버리면 왠지 평범하게 들려버리는 것같아.'



너는 나의 손을 잡고 그리고 그 손으로 자신의 뺨에 눌렀다.



'무엇이든 평범해요.' 라고 너는 말했다. '당신의 탓도 아니고 누구의 탓도 아니죠. 무엇이든 슬프리 만큼 평범하죠. 그것을 바꿀수는 없어요.'



서쪽다리에 왔을 쯤에 달빛아래에 검은 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다리의 난간에 앉아 긴 시간 가만히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너의 그림자를 사랑하고 있었어.'



'알고 있어요' 라고 너는 대답했다. '그러나 그녀는 죽었죠.'



그렇다 그녀는 죽었다.



'당신은 자신의 방, 소파에 앉아서 창밖을 지나가는 군대의 행진을 보고 있었지요. 선두에 부대가 우측창가에서 나타나 최후의 한사람이 좌측의 창가로 사라져갈 뿐이였어요. 사라져버린 뒤 실체따위 아무것도 남지않았죠. 부대가 정말로 지나갔는가 조차도 당신으로써는 알 수 없었어요.'



'만약 그것이 환각이였다하여도?' 라고 나는 말했다. '그 환각을 선택하고 있는 내 자신의 의식은 실체라구'



너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저었다.



'그래도 무엇하나 남지 않았던 것은 아니야' 라고 나는 계속했다.



'그래서 내가 이곳에 왔으니...'



'왔다는 것이 아니죠.'



'그래 네가 불러드렸지.'



너는 가만히 보도블록을 바라보았다. 다리의 외등이 우리들의 머리위에서 노란색 빛을 주위에 내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발아래 우리의 그림자는 없었다.



'당신이 나를 찾고 있는 한 나는 당신의 것이예요. 그러나 나에게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예요. 알아요?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네가 나를 사랑하는 일도?'



너는 침묵하고 머리를 흔들었다. '죄송해요 나에게는 당신에게 줄 것이 무엇하나 없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나는 아무 말하지않고 어깨를 안았다. 너는 울었지만 너의 눈에서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너는 눈물조차 줄 수 없었다. 북녁으로 부터 차가운 바람이 우리들의 주위에 불어왔다. 그리고 어두운 벽만이 우리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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