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무게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실로 이상한 느낌이였다.



물론 하루하루 지나고 계절은 변한다. 그러나 그것은 말하자면 마음속에 투영된 상에 지나지않는다. 여러종류의 조각들로 교묘하게 조합된 조립완구처럼 시간은 흐르고 머물고 혹은 역행하는 것같았다. 그것은 노인이 말했듯이 확실히 미로(迷路)였다.





우선 시간이라는 개념을 떠나서 말이 존재할 수 없었다.



계속 말을 하기위해서는 나에게 시간이란 것이 어쨌든 필요했다.





이처럼 세월이 흘렀다.



나는 낮동안에 눈을 뜨고 오후를 노인과 보냈고 저녁이 되면 도서관에 가서 오래된 꿈에 귀를 기울였다. 도서관이 닫으면 너를 '직공'지역의 공동주택까지 바래다 주었다. 3일에 1번은 도서관에 가기전에 서쪽벽의 망루에 올라 짐승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흐린 오후에는 바깥에 나가서 짐승들에게 빵을 줄 수도 있었다.





짐승들은 언제나 배가 굶주려 있었지만 그들의 프라이드는 그래도 강했다. 공원의 벤치에서 내가 던진 빵을 그들은 몇번이나 망설이고 나서 멀리 가져가 먹었다. 나는 그들이 음식을 서로 빼앗는 광경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힘이 센 놈들은 늙은 짐승과 어린 짐승들을 위해 빵의 반정도를 남겨두는 것이 보통이였다.





겨울이 오면, 그들의 깊은 호수같은 푸른 눈은 그 슬픔의 색을 조금씩 더해갔다. 나무들은 그 잎을 지면에 떨어뜨리고 풀은 말라버리고 굶주림의 계절이 가까이 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주었다. 하얀 죽음의 계절을.....





그러던 어느날 안개처럼 가늘고, 얼음처럼 차가운 가을비 아래에서 나는 너를 안았다. 눈에서는 보이지않을 정도의 미세한 물방울이, 너의 앞머리카락을 그 넓은 이마에 부드럽게 달라붙게 하고 있었다.



너는 눈을 감았다. 너의 부드러운 입술은 나의 입술아래에서 가늘게 떨고 있었다.





비雨.





가을의 비는 우리의 주위를 언제까지라도 계속 내리고 있었다. 시작이 없었다면 끝도 없었다. 달도 없고 별도 없고 밤새소리도 없었다. 강변에 늘어서있던 수양버들이 그 가는 나뭇가지의 끝에서부터 천천히 물방울을 떨구고 있을 뿐이였다.





네가 입었던 레인코트는 두텁고, 사이즈는 네몸에 두배는 됨직했다.



나는 그 위에서 너의 어깨를 안고 너의 등을 안았다. 너의 몸에서는 비의 냄새가 났다. 너의 머리카락에도 눈꺼풀에도 귀 뒤에서도 비의 냄새가 났다.



'지금까지 몇 천번이나 이 다리를 건넜어요' 라고 너는 말했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는 동안에 언제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나라는 인간이 새로운 나로 바뀌어 가지않을까 마치 칠판에 썼던 글자가 칠판지우게로 지워져가는 것처럼요.'



'착각이야...'



'예... 그것은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저 이런 느낌이 들어요. 이유따위는 몰라요'



'시험해봐'





우리들은 말없이 다리의 나머지를 걷고 반대편 보도위에 섰다.



그리고 나는 다시한번 너를 안고 다시한번 입을 마췄다.



'어떻지?'



'모르겠어요' 너는 불안한 듯한 미소를 짓고 한손으로 흘러내린 앞머리를 만졌다.



'몰라요'



낡은 다리는 마치 긴 복도처럼 반대편의 어둠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가을비가 그 어둠속에서 소리도 없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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