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번 주에 가장 먼저 소개해야 할 신간은 박문호 박사의 <뇌, 생각의 출현>이겠습니다. 첫 저작이기에 조금은 생소한 이름이지만 연구공간 수유+너머, 카이스트, 서울대 등 그가 강의해 온 곳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왜 이제야 책이 출간 되었는지 궁금할 지경입니다.

'나'는 뇌의 활동입니다.
뇌 세포의 집합적 활동 결과로
의식을 생성할 때 비로소 '나'는 존재합니다.
언어와 문화는 뇌 작용의 일부입니다.
인간에 이르러 비로소 '생각한다'는 것이 가능하게 된 기원과
우주와 생명의 탄생에서 시작해 감각과 운동, 기억, 느낌, 의식
그리고 창의성에 이르는 전 과정을 탐구합니다.

표지의 하얀 부분, '뇌'라고 쓰인 좌측 상단에 쓰인 이 문구가 아마 이 책의 성격을 가장 명확히 말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뇌의 활동입니다"라고 잘라 말하는 것처럼, 책은 기본적으로 뇌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주와 생명의 탄생에서' '창의성에 이르는 전 과정을 탐구'하고 있다는 말 또한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왜 구분되어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과학 독자'와 '인문 독자'를 모두 아우르는 과학서이자 인문서라는 말.

뇌과학에 관한 친절한 강의노트를 표방한 책은 내용이 꽤 방대하고 분량또한 만만치 않다. 생물학과 입자물리학,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 등 과학계의 주요 이론과 분야를 두루 다루는 동시에 신경철학자들의 주요이론, 포스트모던 사상까지 접합시킨다. - 경향신문

신문 서평처럼 사실 만만치 않은 내용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 또한 분명해요. '뇌'와 '우주', '생명' 그리고 '창의성'까지. 그야말로 '우주적 통섭'이라 할만한 저작이 국내 저자의 손에서 쓰여졌다는 것이 무엇보다 반갑습니다.

<지식의 대융합> 역시 주목할 만한 국내 저작입니다. 인문학은 이미 고사枯死하고 자연과학 또한 '살려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우리의 현실에서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당면 과제가 된지 오래지만, 뚜렷한 성과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추상적인 당위를 넘어 그 내용과 필요성이 구체적으로 살에 와닿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미래 지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융합 지식’과 ‘융합 기술’을 이해하기 위한 개론서로서, ‘지식의 대융합’을 이루는 학문 간 연구의 성과와 새롭게 출현한 융합 학문의 탄생 과정을 담는다. 뒤쪽에 ‘지식 융합 도표’를 별도로 넣어, 지식 융합의 전모를 한눈에 파악하도록 했으며, ‘에필로그’에는 우리나라의 지식 융합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 알라딘 책소개

자, 그래서 나온 책이 바로 이 <지식의 대융합>이라는 말씀. 제목은 <통섭>과 더 닮아 있지만, 실은 '통섭'의 필요성은 이미 전제로 두고(물론 단순히 '한문 간 연구'라는 기초적인 부분에서), 최신 융합 학문에 대한 전방위적인 소개를 하고 있는 이 책은 <지식의 최전선>을 더 닮았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편하실 듯.

다음으로 소개할 책은 스티븐 제이 굴드의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입니다! 먼저 이 일을 하게 된 이후에 책 내용을 보지도 않고, 단순히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책을 손에 받아 쥐는 순간 가장 흥분했던 책이라는 사실부터 밝혀야겠네요. 스티븐 제이 굴드에 대해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 중 한 명'이라는 식의 말을 제가 감히 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위대한 과학 저술가 중 한 명'임은 틀림 없으니까요.

'고생물학자 굴드의 자연사 에세이'라는 부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잡지 [내추럴 히스토리]에 연재했던 자연과학사 에세이를 모은 책입니다. ([내추럴 히스토리]에 연재했던 에세이들은 모두 10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고, 이 책은 그 중 여덟 번째 책이라고 하네요)

예술과 과학, 진화론의 일대기, 선사시대의 인간, 역사와 관용에 대하여, 진화의 사실과 이론, 공통된 진실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이라는 이름의 6부로 나뉘어진 총 21편의 글은, 적어도 제게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 저술가'인 굴드의 위트와 날카로움이 넘치며 또 유려한 글맛을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불가사의하리만큼 특이한 사람의 뇌는 진화의 산물로 탄생했다. 그 속에는 원래 목적이 다르거나 또는 뚜렷한 목적 없이 그때그때 발생했던 -때로는 오도된- 갖가지 사유 방식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 다음 뇌는 진화의 중심 진리를 발견하지만, 다른 한편 자신을 창조한 바로 그 과정의 여러 가지 양식과 함축을 배척하도록 편향시키는 희망과 편견들로 가득 찬 인간 문화와 사회를 세우기도 한다.

따라서 진화는 뇌를 구축하고, 다시 그 뇌가 자신의 창조 과정을 밝힐 수 있는 사유 양식과 진화에 대항하는 문화를 동시에 발명하는 셈이다. 이것은 가히 우주적인 규모의 심술궂은 회귀인 셈이다. 돌고 돌면서 우리는 끝없이 반복되고 영원할 수도 있는 소용돌이로 들어간다. 그러나 작게는 이 글에 대한 주제를 주고, 크게는 우리 존재의 본성에 대한 얼마간의 통찰을 제공해주는 이 나선 속에서 우리는 점차 이해가 증대되는 몇 가지 형식의 특징을 파악해지는 것 같다. - 서문 중에서

굴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책도 함께 소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더이상 의심할 수 없는 진화의 명백한 증거들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어떻게? 바로 C.S.I. 에서 자주 보던 그것, DNA를 통해서. 진화는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 아닌가? 왜 지금 구태여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이라고 강조까지 해야 하냐? 라는 의문이 드신다면-

새로운 DNA 증거는 진화 과정을 밝히는 것을 넘어 매우 중대한 사명을 띠고 있다. DNA 증거는 학교 차원에서는 진화론을 가르치느냐 마느냐, 사회에서는 진화론을 인정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싼 지루한 논쟁에 마침표를 찍어줄 수 있을 것이다.

배심원들더러는 유전적 차이와 DNA 증거에 의존해 용의자를 살려주고 석방시킬지를 결정하라고 하면서 그러한 증거와 생물학이 바탕으로 삼고 있는 진화의 기본원리들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말라는 것은 그저 아이러니로 치부하고 말 일이 아니다.

진화론 반대운동은 진화와 진화 과정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소개할 새로운 증거들은 진화가 생명다양성의 밑바탕이라는 주장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남지 않도록'해줄 것이다. - 서문 중에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나라, 미국이지요. (아마 저자도 꽤나 열받은 모양입니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위해 바보 같은 미국인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물론 이 표현은 '모든 미국인'을 가리키고 있지 않습니다). 진화론에 대한 최근의 과학적 증거들을 잘 정리하고 있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책이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나라 미국의 진정한 속내가 궁금하시다면 <제국에 반대하고 야만인을 예찬하다>를 추천합니다. 우리에겐 <슬럼, 지구를 뒤덮다>로 친숙한 마이크 데이비스가 폭로하는 발가벗은 미국의 속살.

1부에는 워싱턴 D. C.를 중심으로 한 정치계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국 정가의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을 수 없는 한국이기에 상당히 유용한 읽을거리다. 2부에는 이라크 전쟁을 중심으로, 미국이 저지른 깨끗하지 못한 전쟁의 역사를 담고 있다. 전쟁을 일으킨 까닭, 그 전쟁의 수혜를 입은 사람들, 전쟁을 받아들이는 미국인들의 태도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담는다.

3부는 자본주의 미국의 오늘을 이야기한다. 4부는 카트리나 이후에 인위적인 인종 청소에 내몰린 뉴올리언스를 중심으로 빈곤 문제, 인종 문제, 사라져 가는 좌파의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5부는 아직도 혁명을 믿고 사회주의를 꿈꾸는 맑시스트 사회주의자인 저자의 면모를 명확하게 보여 준다. - 알라딘 책소개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지만, 어쨌거나 남의 나라 이야기이기에 쉽게 읽을 수 있고 하지만 그게 미국이기에 더 통쾌하고 또 분노하게 되는 책입니다. 읽으신다면, 날도 스산하고 미국 대선도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이 가장 좋겠죠.

명확한 주관과 거침없는 입담의 소유자 남경태 씨의 신간 소식도 전해 드립니다. <철학>에 이어 그가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중 하나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역사>. 687 페이지라는 두툼한 볼륨을 자랑하고 있는 이번 책에서 그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역시 '유니크한 향취'의 '남경태표 역사'입니다.

독일산 벤츠와 이탈리아산 페라리가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강력한 힘과 빠른 속도를 자랑하지만 자전거용 수동 브레이크조차 없다. 질주 본능에 사로잡힌 그들은 제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물론 시민들은 두 나라에도 있지만 시민사회는 없다. 오히려 두 나라의 시민들은 국가의 질주에 박수를 보낼 뿐 자신들이 제동장치의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프로이센과 영방국가의 시민들, 이탈리아 반도의 시민들은 그동안 자동차가 없어 설움을 받았다는 생각뿐이다. 통일국가가 수립되자 이제 우리도 고속도로에 뛰어들 수 있게 되었다는 자부심에 국가를 견제하기는커녕 전폭적으로 국가를 밀어준다. 레이스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어 조급한 마음뿐이다. 초조한 레이서들은 조만간 대형 사고를 칠 게 뻔하다. - '시민사회의 부재: 파시즘' 중에서

남경태만의 뚜렷한 주관과 거칠 것 없는 입담은 때론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비슷비슷한 기획물들로 점철되던 국내 역사서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고 올 것만은 확실합니다. 물론 재미는 보장.

자,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천하나의 고원>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제목이라고요? 저자는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공동대표네요(아직도 이 직함이 유효한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럼 이제 좀 감이 오지 않으세요?

그렇습니다. 노골적인 제목과 저자에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난해하기로 소문난 들뢰즈/가타리의 <천(개)의 고원>에 대한 일종의 해설 혹은 '새롭게 읽기'입니다. 저자의 말을 빌자면 "에티카의 측면에서 <천의 고원>을 읽어냄으로써 이 시대를 위한 사유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네요. 사실 <천 개의 고원>도 읽어내지(!) 못한 제가 뭐라 드릴 말씀은 없지만요…

이 기회에 <천 개의 고원>도, <천하나의 고원>도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마침 11월 5일까지 새물결 브랜드전이 진행중이고 그 중에서도 <천 개의 고원>이 35% 할인행사 중이어서 드리는 말씀은 아니에요. 그냥 참고만 하세요, 참고만. (책장 한구석에 먼지와 함께 풍화되어 가는 <천 개의 고원>을 오랜만에 꺼내봤는데,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졸음이…)


* 날이 많이 춥네요. 사실 이런 날은 따뜻한 방에서 이불 돌돌 말고 앉아 책이나 읽어야 하는데… 하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배는 출발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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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ani online 2011-12-28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원>도, <천하나의 고원>도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마침 11월 5일까지 새물결 브랜드전이 진행중이고 그 중에서도 <천 개의 고원>이 35% 할인행사 중이어서 드리는 말씀은 아니에요. 그냥 참고만 하세요, 참고만. (책
 

 

 

 

 

 

 

 

밤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곳엔 모든 것이 - 어둠만 빼고 - 아주 적은 양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빛도 소리도 사람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낮의 세계에 차고 넘치는 그것들이 줄어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밤은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빛도 소리도 사람도- 실은 이 정도면 충분하구나, 라고.  

물론 <밤의 문화사>가 반가운 이유가 밤을 좋아하는, 그래서 이런 페이퍼를 일요일 밤에 쓰고 앉았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이야 역사, 특히나 '문화사'라고 하는 영역이 한 풀 두 풀 세 풀은 꺾였지만 한때는 꽤나 사랑받던 분야가 아니었던가. 이를테면 <고양이 대학살>. 그 후 12년, 그 책을 번역했던 조한욱 교수가 새로 번역한 책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물론 시대도, 시장도 모두 변하긴 했지만.

방대한 양의 거창하고 또 자질구레한 자료들 속에서 튀어 나오는 놀랍고 또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를 그 어떤 소설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게 아마도 문화사의 매력이 아닐까. 그렇다면 문화사가 인기가 없어졌다는 것은 더 이상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없어졌다는 뜻. 그렇지만 삶은 계속되고 누군가는 그것을 노래한다. 때로는 소설로 때로는 다른 방식으로. 어쨌거나 저자 로저 에커치는 굉장한 이야기꾼, 혹은 노래꾼이고 그래서 즐겁다. 더군다나 그가 노래하는 것이 밤이라는데!

인기가 없어진 분야로 이야기하자면 고고학/인류학 분야도 빼놓을 수 없다. 결국 삶과 인류와 세계의 역사에 대한 다양하고 소소한 관심들이 자기 자신의 '먹고 사는' 문제만으로 수렴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문사회 담당자나 할 법한 쓸데없는 생각을 잠깐 해보기도 하며 <고고학의 즐거움>과 <최초의 인류>를 바라보자니 어딘지 쓸쓸해지기도…

<고고학의 즐거움>은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 우리의 기술력으로도 만들기 힘든 거대한 고대의 유적들은 도대체 어떻게 세워졌는지. 먹고 살아가는데 하등 도움 될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궁금해 미칠 것 같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최초의 인류>는 고인류학계의 영원한 관심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관망하자면 물리학의 '최종이론'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도?) '미싱 링크',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 자신이 서로 경쟁하는 네 탐사 팀을 쫓으며 담아낸 생생한 내용들은, 마치 추리소설처럼 읽는 이를 빠져들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를 처음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일반적인 띠지의 약 2.5배 정도 되는 크기로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하고. 우리나라에서 큰 인지도가 없는 철학서 저자를 표지에 저렇게 크게, 그것도 띠지로, 넣은 전례가 있는지 문득 궁금. 이 책에 관한 얘기는 얼마전 도서팀장님 페이퍼를 빌어 한 적이 있으니, 여기에 옮겨 놓는 것으로만.

"독일의 미남 학술 전문 저널리스트가 쓴 대중 철학서로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지난 1년간 45만부가 팔린 화제의 책. 철학자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핵심사상을 요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현대인이 직면한 존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또한 철학자들의 사상뿐 아니라 심리학자, 뇌신경학자, 인류학자 등의 최근의 연구성과를 함께 제시하며 통합적인 이해를 시도한다. 독일의 슈피겔 지는 이 책을 가리켜 "독일 통일 후 최근 20여년간 가장 성공한 대중 철학서"라고 평했다." (당시 '미남'이라고 표현한 것은 출판사의 입장을 십분 반영한 것이라는 것을 밝혀야겠다…)

<중력과 은총>- 아 '중력'과 '은총'이라니! 끊임없이 아래로 잡아 내리려는 힘과, 밝고 따뜻하며 또한 사려 깊게(혹은 잔인하게?) 그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힘. 시몬(느) 베(이)유의 고뇌가 녹아있는 이 책은, 감히 뭐라고 말할 수도 없이 아름답다.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아름답다. 개인적으로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끊임없이 끊임없이 사유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에스프리(!;;)가 그대로 담겨 있다고 괜히 거창하게 한 번 말해보고 싶을 정도로.

"고통을 자기 밖으로 퍼뜨리려는 성향. 너무도 약해서 타인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하고 타인을 괴롭히지도 못하는 사람은 우주의 표상 자체에 어긋나는 것이다. / 그렇게 되면 아름답고 선한 것이 모두 모욕이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배신한다. 나는 그에게 편지를 쓴다. 그가 나에게 답장으로 써 보내는 것은 결국 내가 그의 이름으로 나 자신에게 말한 것과 같은 말이다. / 사람들이 줄 거라고 우리 스스로 상상하는 것. 사람들은 우리에게 바로 그것을 빚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이러한 부채를 면해줄 것.

실제의 그들은 우리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모습과 같지 않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것, 이것은 신의 자기희생을 본받는 것이다. / 나 역시 스스로 상상하는 것과 다르다. 그것을 아는 것이 바로 용서이다."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는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와 <쓰여지지 않은 철학>에 이은  라티오 출판사의 세번째 책이다. '우연적 삶에 관한 문학과 철학의 대화'라는 부제에서도 느껴지듯이, 앞의 두 책들 보다는 좀 더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이 가을에 어울리는 사유를 담고 있는 책이다.

<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은 사실 '광기' 보다는 '멀쩡함'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책이다. 광기어린 천재들의 영웅담 혹은 '광기의 역사' 등- 우리가 언제나 흔히 접하는 것은 '광기'다. 물론 우리는 멀쩡함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도대체 그 멀쩡함이 뭔지(멀쩡함이 뭥믜?)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멀쩡하고 싶어서 미친 듯이 살지만, 실은 뭔지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재미있는 문제의식. 역시 제법 독서의 계절에 어울린다.


* 진짜로 소설보다 재미있는 인문 신간도서들이긴 하지만, 설령 더 "나는 이 책들 보다 훨씬 재미있는 소설을 알고 있다!"라고 하신대도 환불은… (사실 저도 알아요)
* 마지막으로 시몬(느) 베(이)유의 눈물 나는 아포리즘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인간의 비참함이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다면 진정 견딜 수 없으리라.
인간의 비참함이 희석되지 않도록 견딜 수 없는 것이 되게 할 것.
"그들이 눈물에 지쳤을 때" (<일리아스>) - 극심한 고통을 참을 수 있게 해 주는 한 가지 방법.

위로 받을 수 없도록 눈물을 흘리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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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 2008-10-2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페이퍼 덕에 제(읽고픈 혹은 읽고 말) 인문도서 목록 또한 만선입니다.ㅎㅎ

곰탱이 2008-10-22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인기 없어진 분야를 공부하는 저는 그럼 블루오션 개척??
하나하나 골라서 읽어봐야 겠어요.

글샘 2008-10-22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문화랑 고잉인세인 읽어볼게요. 감사합니다.
 


한 여자가 있었지. 그녀는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탔어. 지구에서 가장 커다란 대양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 그녀는 그 남자의 옆자리에 앉았지. 그 남자. 그녀가 계속해서 말을 붙여보려 노력했지만 고작해야 '블러드 메리'를 주문하는 것 밖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그 남자 말이야.

그녀는 그냥 앉아서 제3세계에 대한- 어떻게 발음하는지조차 모를 곳들에 대한 끔찍하게 재미없는 잡지 기사나 읽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그녀는 지루했고, 의기소침. 그런데, 그때, 갑자기 기계적인 결함으로 엔진 하나가 고장났고 비행기가 추락하기 시작했어. 삼천 피트 상공에서. 기내방송에서는 기장의 목소리가 울렸지.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아, 세상에! 미안해요." 그는 계속해서 사과할 뿐이었어. 그녀는 남자를 바라보았고, 이렇게 물었지.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그러자 그제야 그녀를 돌아본 남자가 이렇게 말했어. "파티에 가요, 그, 생일 파티요. 당신 생일 파티 말이에요. 생일 축하해요, 달링. 우리는 당신을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사랑해"


그리고 남자는 흥얼대기 시작했지. 이 작은 멜로디를. 아, 그건 이렇게,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 하나, 하나, 둘, 셋, 넷-

- Bright Eyes, 'At the Bottom of Everything'


그러니까 그 노랜, 어쩐지 이렇게 시작할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며 내내 진심, 에 대해 생각했다. 진실과 거짓말은 그 다음으로. 한 때는 진심과 진실이 등가일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그것은 결코 거짓이 아닐 거라고. 이를테면 나는 진심으로 살아가고 싶었고, 그것 자체로 나는 진실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서투르지만, 간절하게. 

이제는 그것이 결코 같을 수 없음을 안다. 진실은 마음보다 크고, 진심은 결국 마음의 영역이므로. 마음을 벗어나는 순간, 더 이상 그것이 진실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을 이제야 알았다. 너무나 당연한 만큼 혼란스러운. 그런 것이 진실임을.

김해연의 진심과 정희의 진심과 나카지마의 진심과 박길룡의 진심 그리고 그 모두를 안고 있는 진실, 같은 것.

밤이었다. 김연수 작가를 만난 것은. 늦은 모기만이 지난여름의 추억을 힘겹게 지고 날아다니던 밤. 어디서도 노래는 들리지 않았지만, 왠지 그런 노래를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부러 말을 하지 않아도 조용히 귀 기울이게 되는, 그런 밤.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무엇도 쉬이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 무엇도 펴낼 수가 없었다. 입 밖으로 나온 말들이, 그 말들 중에 얼마가, 일말의 진심 나부랭이라도 담고 공기 중을 배회하게 될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애꿎은 모기만 쫓으며, 좋아하는 작가를 만난다는 것은 꽤나 무서운 일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질문은 문학MD님께 맡기고 사진기나 만지작거리며 혼자, 그렇게 생각했다. 그저 무심한 척 귀를 쫑그리며.

실제로 만난 김연수 작가는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런저런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들이 어지러이 공기를 채웠다. 조도가 낮은 오렌지색 조명에서는 사진이 잘 찍히지 않아 속상해 했던 것 같다. 혼자서만. 한편으로는 그 말들을 바라보며 상상하기도 했다. 글 속의 그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그에 대해. 그의 진심과 내 귀로 와 닿는 그 말에 대해. 그 간극에 대해.

이를테면 "나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닌데 손이 말이 많다"라는 말에 대해. 하지만 말씀도 결코 적지 않은 걸요, 하고. "처참할 정도로 실패한 사람들.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나의 삶을 이해하는 것일 수 있다"는 말에 대해. 괜히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하면서.

사실 나는 답이 듣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단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진정 살기 위해서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 같은 것에 대해서. 아니, 그 이전에, 살아남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 그 차이가 때론 얼마나 얇고도 하찮은지에 대해서. 그러니까, 알고 있었던 셈이다. 결코 그가 대답할 수 없으리란 것을. 왜냐하면 그것은 진심의 영역이었으니까. 그것도 나의. 그래서 묻지 못했다.

그럼에도 참지 못하던 입술이 달싹일 때, 그가 말했다.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순간 오히려 따뜻해지는 그런 거라고 할까요. 희망 없는 삶을 산다는 거하고, 이루어지지 않는 희망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안고 산다는 건 분명 다르잖아요." 처음에는 100% 와 닿지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하루, 하루, 하루, 하루, 하루.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러니까 그것은, 진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희망이 없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그것을 알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마음은. 사실 희망이란 꽤나 바보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순간 오히려 따뜻해지는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 밤,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날들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진실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진심만으로. 그것뿐으로. 진짜 살아갈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살고, 사랑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만.

그러니까 그것은, 삼천 피트 상공에서 추락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 같은 것. "희망이 없음을 알면서도 그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마음 같은 것. 혹은 그런 마음을 담은 노래 같은 것.

그렇게 생각하자 어쩐지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도 진심으로. 

 

* 공식 인터뷰 업데이트에 앞서 끄적인, 개인적인 감회를 담은 페이퍼입니다. 위 내용은 알라딘 혹은 문학MD님의 입장과 무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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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8-10-13 0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사진이 제대로 안(혹은 못) 찍혔군요. ㅋㅋㅋ 선명치 못한 조명 아래서 인물사진을 제대로 담아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 저도 절감하고 있습니다.

나무그늘 2008-10-15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히려 이렇게 흔들리는 지금의 이 사진이 더 글의 맥과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진이 그저 '사실'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사실 이면의 '무엇'을 잡으려는 노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
 

* 돌아온 우석훈과 '괴물'의 탄생

오랜만에 기어코 쓰게 된 '만선'의 첫머리에 우석훈 박사의 신작이 오르게 된 건 좀 우스운 일이다. 벌써 두 달은 훌쩍 지나버린 이 서재의 마지막 페이퍼 몇 개를 그의 인터뷰와 <촌놈들의 제국주의>, <직선들의 대한민국>이 장식하고 있었던 탓이다. 이거 자칫하면 편애모드- 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책 파는 사람의 입장에서 잘 팔리는 책이 나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사실 이 책은 더 팔려야 한다)

<88만원 세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촌놈들의 제국주의>에 이은 한국경제대안 시리즈의 네번째 책이자 마지막 책에서, 우석훈 박사는 드디어 '대안'을 제시한다. '대안'이라는 단어를 분명히 달고 있는 시리즈 명에도 불구하고 날카롭고 때론 통쾌한 분석만 있었을 뿐, 별다른 대안은 사실 없었음을 생각한다면 과연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만하다. 물론 그 대안의 효용 및 그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이 자리에서 그 대안을 밝히는 일은 스포일러가 될 듯하니 생략하기로 하고.

'괴물'이란 물론 현재 우리 사회를 말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자본주의' 같은 인간의 조건. 굳이 레비아탄(혹은 리바이어던)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생활의 발견]의 대사처럼 "사람 되기 힘들지만 괴물은 되지 맙시다"의 괴물로 이해해도 별 무리는 없겠다. 결국 사람되기 힘들어서 모두 괴물이 되어 버렸다는 얘기다. (괴물의 뱃속에서 사람이 되긴 힘들다는 얘기일까?)

개인적으로는 <몬스터>의 대사가 떠올라 버렸다. "날 봐, 날 봐, 날 봐. 내 안의 괴물이 이렇게 자랐어" <괴물의 탄생>이란 어쩌면 조금쯤 때늦고 식상한 제목일지 모르지만,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괴물은 어느덧 이렇게 자랐다. 그리하여 그 괴물에게 먹히고나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만이 우리가 고민할 무엇이 되어버린 것이다. 신화 속의 영웅처럼 누군가 나타나 괴물의 목을 자르길 기다리기에는, 21세기는 너무 빠르고 삶은 너무 짧으니까.

하지만 기억할 것. 캠벨 식의 영웅 신화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결국 내면의 여정이고, 어느새 자라버린 괴물도 '내 안의 괴물'이라는 것. 괴물 없이 살아가기는 생각만큼 불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결국 자기 자신의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오래된… (하지만 한 번도 증명된 적은 없는) 레토릭.

시리즈의 완간과 더불어 시리즈의 두번째 책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가 개정되어 새로 나왔다. <조직의 재발견>이 그것. 난해하기로 소문(!)났던 서문을 고쳐 쓴 개정판이 나오게 되면서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는 <88만원 세대>-<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촌놈들의 제국주의>-<괴물의 탄생>의 A 버전과, <88만원 세대>-<조직의 재발견>-<촌놈들의 제국주의>-<괴물의 탄생>의 B 버전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꼭 동방신기 새앨범을 광고하는 것 같기도 하고…)

* 위 내용은 우석훈 박사의 입장 및 알라딘의 입장과 전혀 상관 없습니다.


* 심리학 도서 출간 러쉬

 

 

 

 

언젠가부터 심리학 책들이 참 많이 나오긴 했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몰려서 나오기는 또 처음인 것 같다. 사실 수박 겉핥기 식의 책들이 많았던 것에 비해 그 범위도 깊이도 다양하고 깊어졌다. 이렇게 많은 책들 중에서 몇몇 책들만이 관심을 받고 읽힌다는 것은 꽤나 슬프다. 이것은 직업적인 감상. 이렇게 많은 책들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멀고 험하다는 것은 꽤나 잔인하다. 이것은 인간적인 감상. 물론 둘 다 어디에도 쓸모는 없다.

<악의 쾌락 변태에 대하여>는 자극적인 제목만큼 재미있는 책이다. 물론 제목에서 기대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재미가 있다. 책은 자극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말초적인 흥미를 끌려하지 않는다. 다만 '변태'라는 이름으로 역사 속에서 단죄되고 배척되었던 인간의 본성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며, 우리 안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다름'에 대한 이해를 촉구한다.

<이중 인격>과 <다중 인격의 심리학>은 비슷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꽤나 다른 책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까지 피폐하게 만드는 이중 인격자의 패악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자기 자신의 이중성은 얼마나 되는지도 한 번 확인해보자는 것이 <이중 인격>의 메시지라면, <다중 인격의 심리학>이 말하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마음 속에 여러 인격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억지로 부정하거나 하나로 통합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

거칠게 말하자면 전자는 한때 유행했던 '싸이코패스'류의 책을, 후자는 대니얼 키스의 <빌리 밀리건>을 생각하면 될 듯 하다. 물론 <빌리 밀리건>은 '찢겨진 영혼'을 탐구한 논픽션이므로 방향은 다르긴 하지만,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 책 역시 더 없이 재미있을 듯. 특히나 전문 번역가 김명남 님의 매끄러운 번역에 출판사 편집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도…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미신과 속설이다. 생각해보면 미심쩍기 그지 없는 그것들을 인간은 어떻게 철썩같이 믿을 수 있을까, 정도. 귀가 얇은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물론 우리는 주변에 귀 얇은 친구들을 하나 쯤은 알고 있으니,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잭팟 심리학>은 <괴짜 심리학>의 저자 리처드 와이즈먼이 들려주는 '행운의 심리학'이다. (로또 같은 한탕주의 심리를 비판하는 책이 아니다!) 인생을 살면서 자기는 운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자기는 항상 운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만나기 마련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말하게 하는가? 어떻게 하면 정말 운이 좋은 삶(최소한 그렇게 생각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답은 책 속에.

<심리학 초콜릿>은 이 리스트 중에서 유일하게 국내 저자의 책이다. 삶에 힘겨워 하는 20대 여성들의 고민을 담은 책, 이라고 한다면 역시 국내 저자의 책이 더 가까울 터. '관계 맺기에 힘들어하면서도 소통에 중독되고, 진정한 사랑을 꿈꾸면서 ‘나쁜 남자’를 반복적으로 만난다. 남자친구의 폭력, 잦은 바람, 경제적 의존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그래도 사랑한다"며 헤어지지 못한다.'라는 알라딘 소개처럼, 너무 상투적이지만 사는게 결국 그런 것이라면 마음이라도 편히 살자, 뭐 그런 것.

<나쁜 유전자>는 사실 이 심리학 책들 중에서 가장 비중있는 책이다. 얼핏 <이기적 유전자>를 닮은 책은 사실 <루시퍼 이펙트>를 더 닮았다. '왜 사악한 사람들이 존재하며, 왜 그들은 성공하는가?'라는 부제는 "Why Rome Fell, Hitler Rose, Enron Failed, and My Sister Stole My Mother's Boyfriend"를 보면 더더욱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정말, 사람은 왜 그런 것일까? 뇌과학과 심리학의 최신 연구 결과를 직조하며 그 과정을 밝혀내는 작업이 꽤나 흥미진진하다.

<보살핌>은 <나쁜 유전자>와 반대편에 있는 책이다. 신경생리학과 뇌과학, 발달심리학, 진화생물학 등을 통해 밝혀내는 것은 인간의 '보살핌 본능'이다. 이 본능을 개인의 차원에서 사회적인 차원으로까지 확대, 갈수록 약화되는 사회적인 유대 속에서 발생하는 각종 질병들 또한 예방할 수 있다는 책의 주장은 따뜻하지만 어딘가 슬프기도 하다. (슬픈 이유는 잘 모르겠다)


* 562돌, 한글날!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란 제목은 사실 이상하다. '~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란 기실 번역투에 가까우니. 출판사 분은 '사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럼에도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제목이라 생각했다'고 하시니, 그만큼 책에 대한 자부심으로 읽어도 좋을 듯 하다.

한글과 관련된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들을 짚어가며 상세히 설명하는 책을 통해 우리가 항상 사용하지만 실상 그 중요성을 체감하지는 못하는 (영어 몰입이니 뭐니 하는…) 우리말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살면서 한 번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국어실력이 밥먹여 준다> 시리즈의 세번째 책은 바로 <국어 독립 만세>다. 조금은 시대착오적으로도, 선동적으로도 느껴지는 책의 제목이지만,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게 된다. 주로 어휘에 집중했던 앞의 두 권과는 달리 이번 책의 주된 내용은 한글과 영어와의 비교.

'영어강박'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의 한국에서 '영어의 화장발을 걷어내고 들여다보는 우리말의 맨얼굴'이라고 한다면 "국어 독립 만세!"라고 할 수도 있잖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 책의 문제의식 또한 우리에게 절실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라지는 말들. 두 주에 한 개꼴로 지역 고유의 말이 살아지고 있는 오늘날, 과연 언어의 종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묻는 책의 물음은 고스란히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이대로라면 한글이라고 영원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얘기다.

문득 터키에 여행차 갔다가 우연히 만난 현지인이 "터키어를 배워라. 너는 한국인이고, 한국어랑 터키어는 같은 우랄-알타이 어족이니까 쉽게 배울 수 있을 거라"고 했다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쩌면 우리는 그 터키인 보다도 우리말에 더 관심이 없는 건 아닐까?


* 끝

Verve의 10년 만의(!) 새앨범을 연속해서 5번은 듣고 있는데 하나도 좋은지 모르겠다면, 김연수의 신작 <밤은 노래한다>를 불과 3시간 전에 완독하고 오늘 오후에 있을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는데도 하나도 설레지 않는다면, 그건 다 월요일이기 때문. 그리하여 개가 짖는 월요일 새벽 (왜 B01 호에 사는 두 마리의 개들은 새벽에도 쉬지 않고 짖어대는 걸까?) 책들을 싣고 오늘도 배는 출발합니다.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we've still got time… (이 글을 쓰는 동안 한 마리의 개도 다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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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el handbags 2011-12-28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이대로라면 한글이라고 영원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얘기다.

문득 터키에 여행차 갔다가 우연히 만난 현지인이 "터키어를 배워라. 너는 한국인이고, 한국어랑 터키어는 같은 우랄-알타이 어족이니까 쉽게 배울 수 있을
 

* "배고파도 영혼의 힘으로 예술을 만드는 그런 아방가르드 정신"을 위하여!
<88만원 세대>, <촌놈들의 제국주의>, <직선들의 대한민국>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우석훈 교수를 '이메일을 통해' 만나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직접 남겨주신 댓글 질문에 대해 우석훈 교수는 과연 뭐라고 답글을 달아주었을까요? 20대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자, 지금부터 그 대답을 소개합니다!
  

 
 
 
 
 
자신의 블로그 독자들과 함께 시청 앞 촛불집회에 참가한 우석훈 교수의 모습.
* 알라딘 독자들이 묻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국가가 겪게 되는 일반 위기와 한국이라는 특수한 사회가 겪는 특수 위기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텐데, 제가 이 시리즈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외부적 변화 속에서 한국 경제가 겪게 되는 특수 위기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전개될 때 상한선과 하한선에서 생각해보게 될 것인데, 상한선이라고 한다면 멕시코 정도의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고, 하한선이라고 한다면 전쟁에 의해서 겪게 되는 파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기 위기와 장기 위기라는 선에서 배치한 셈인데, 그 어떤 편으로 예상을 하더라도, 제가 계산해본 것에 의하면 20대의 삶은 부정적인 결과로 도출되었습니다. 힘들고 귀찮더라도, 적절한 변화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문체 실험을 즐겨하는 편인데, 어떨 때에는 일부러 잘 읽히기 어렵게 하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단문 위주로 구성을 해보기도 합니다. 때때로 일부에서는 댓구 구조로 만들어보기도 하고요.

만약 편집자가 허용한다면, 훨씬 더 구어체를 많이 섞고, 속어도 많이 섞어넣는 그런 글도 한 번은 써보고는 싶은데, 우리 말의 문어체와 구어체 사이에서 극단적인 글을 만들어보는 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물론 아직은 제가 편한대로 쓰면, 오랫동안 써왔던 논문체 글이 되어버리기는 합니다. 

 

 


대체로 그보다는 많이 읽는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에는 권수가 문제가 아니라, 고전 텍스트의 권수가 줄어서 고민 중이기는 합니다. 올 여름에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쓴 책을 다시 한 번 정리할 생각을 가지고 있기는 했었는데, 아직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튀르고 전집을 읽겠다고 2년 전부터 생각하면서 아직도 손을 못 대고 있기도 하고요. 18세기 책은 어느 정도 읽은 것 같은데, 17세기와 16세기 독서는, 20대 때에도 체계적으로 못했는데, 요즘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물가상승률이 10%까지 갈지는 모르겠는데, 성장률은 많이 떨어질 것 같고, 경제 내부의 이중적 흐름 같은 것들이 보다 심각한 지표가 될 것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부동산으로 돈 버는 사람들이 돈 쓰는 시장은 요즘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이라는 것을 보면서, 2중경제로의 전환이 보다 가속화되지 않을까라는 예상을 합니다.   


 

 



 

 

  
정규직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만, 정규직에 일반 시민이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겠지요. 물론 이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고, 장기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도 유리하지 않습니다. 아마 수 년 내에 극적인 반전이 벌어져서 일본의 경우처럼 전면적인 정규직 체계로의 전환이 벌어지기는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지배층들이 경제를 살펴서 사회적 타협의 결과가 될지, 아니면 국민경제가 한 번 완전히 붕괴하고, 리부팅하는 과정에서의 변화가 될지, 그 차이점이 실질적 차이점이 아닐까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금융기법이라고는 하지만 원리가 어려운 것은 아니고, 특히 국제금융에서의 기본 원리가 그렇게 복잡한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서양의 금융적 지배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제대로 된 질문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자원시장과 같은 분야에서의 한국 금융에 문제가 많다고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큰 규모의 금융거래에서 한국이 가지고 있는 초보적 폐쇄성에 대해서는, 저도 가끔 혀를 차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환시장에의 개입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은 편이구요. 그런데 그게 금융 관련된 전문인력을 키운다고 해결될 것 같지는 않고, 국민경제에 대한 건전한 이해 같은 게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직업에 따른 구분이 아니라, 직업에 대한 소득 배정 혹은 분배에 귀천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막말로, 돈만 많이 번다면, 우리나라에서 직업에 귀천 의식이 생길까요? 후진 직업= 돈 조금 받는 직업, 이렇게 된 셈인데, 이걸 문화적 의식으로 해결하는 나라들이 있고, 실질적인 최저임금 보장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는 나라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전혀 해결을 못 하고 있지요. 직업의식 이전에,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는 의식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 같고, 그런 생각으로 '사람들의 손'에 보다 많은 돈을 지불하는 변화가 생기는 것이 곧 선진국일 것 같습니다.



 


어려운 문제인데, 아직 덜 고통을 받아서 그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20대의 불행 혹은 '다음 세대'의 불행은, 한국에서 아직 제대로 뚜껑이 열리지도 않은 것이고, 앞으로 3~4년 후에 정말로 본격화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해결하는 것은 정책적인 측면에서 학계나 정치권에서 해결하는 것이겠지만, 실제로는 이 고통이 더 심화되어 20대 당사자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은, 몇 년 후의 일이 아닐까 합니다. 






역시 어려운 문제인데, 철학이나 사회적인 지식 같은 것들은 순환론적인 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행도 마찬가지이구요. 결국 한 가지를 계속 하다보면 트랙의 한 바퀴를 뒤쳐졌는데, 그러다보니 어느 날 1등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는 게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인들에게, 무조건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대세를 따르지 말고, 특히 광고에서 시키는 것 혹은 종이신문에서 시키는 것은 무조건 하지 말라고 되지요. 제 경우는, 남들 하는 것은 10대 때부터, 무조건 안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광고가 시키는 것은 무조건 안할 생각입니다.

최소한의 자기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계산해보면 그 경우가 성공의 확률도 높습니다. 경쟁 조건과 유행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합쳐보면, 그렇게 계산이 나옵니다.




 

 



20대에 대한 실체적 본질에 관한 얘기를 더 할 생각은 없고요, '20대 3대 권리'와 같은 것들을 경제 이론적으로 더 규명하는 작업은 좀 했는데, 출판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원래 올 6월에 계획했던 것이 있기는 했는데, 같이 작업하던 사람들의 작업이 좀 미진해서 뒤로 미루어놓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0대들의 교육문제와 사회적 교육과 같은 주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최근 스페인의 20대 운동을 직접적으로 경험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과는 양상이 좀 많이 달라 보였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적 운동 없이 경제적 소수가 자신의 최소한의 권리를 지킬 가능성이 아주 희박해보이기는 합니다.

스페인에서는, 주말마다 문화집회 형식으로 다양한 집회가 벌어지는데, 당사자 운동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지지의 일반화'라는 측면에서,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지금 쓰는 많은 책들은, 대부분 수 년 전부터 출간하려고 했다가 "상업성 없음"으로 출간에 실패한 것들을 프레임을 다시 잡으면서 재출간하는 것들입니다. 작년에 책들의 출간이 밀리지 않았으면, 올 초까지 전부 출간하고 마흔이 되면 멋지게 은퇴하려고 했던 계획이 있었는데, 좀 늦어져서 아직까지 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올해 안에는 대충 정리를 하고, 은퇴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남은 것들에 대한 '처리' 중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공부에 대해서는 종종 질문을 받고 즉답을 피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철학과 수학 두 가지가 모든 공부의 출발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역사학과 인류학이 기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학문을 하든지, 이런 기반이 필요할 것이고, 개별 학문으로 접근하는 것은 그 다음 일이라는 게 제가 학문을 보는 눈입니다.

아마 10대라면, 문학에서 출발해서 예술 쪽으로 가는 관심이 한 다리, 그리고 개별 학문에 대한 관심으로 가는 또 다른 다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들을 모으는 한 단어는 '난독'이라고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여간 '오거서'라는 표현이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10대 때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질문은 큰 질문이라서 쉽게 말하기는 어려운데, 한국 경제가 미국 경제를 모델로 선진화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리고 미국 경제권 앞마당에서 달러 연동경제를 실험하던 중남미의 80~90년대 실패가, 이를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대안의 방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가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토플러를 싫어하는 편인데, 그렇다고 토플러를 비판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준비하지도 않아서 그냥 그런 사람 있나보다 하는 정도입니다. 토플러의 사회관을 받아들이면, 대개 경제학도 자동적으로 극우파 경제학으로 가게 될 것 같다는 정도로 생각하는데, 20년 정도 지나서 제 주변의 지인들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사회가 기계적으로 기술발전의 축을 따라서 움직일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사회적 주체들이 있고, 또 그 작용에 의해서 수많은 변이가 생겨나게 되지 않을까요? 


* 보너스 : 알라딘 인문 MD의 쓸데없는 일곱가지 질문

알라딘 :  <88만원 세대> 이후 1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일상어가 되었는데요, 그 책이 사회에 어떤 파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는지 자평을 부탁드립니다.

우석훈 : 별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우파들이 보여주는 "가만히 있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라는 세계관에는 약간의 균열을 내기는 한 것 같습니다. 불행히도 제 주변에서의 평가는, 오히려 이 책으로, 어차피 20대는 안된다는 것을 더욱 사람들이 극명하게 알게 한 것이 아니냐고 할 때에는, 솔직히 좀 괴롭습니다.


알라딘 : <촌놈들의 제국주의>와 <직선들의 대한민국>이 한 주 차이를 두고 출간 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권 다 모두 알라딘 사회과학분야 베스트 1위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88만원 세대>까지 탄력을 받아 사회과학 분야 1, 2, 3위를 동시 기록하기도 했지요. 소감을 말씀하신다면?

우석훈 : 민망할 따름입니다. 개인적으로 소망한다면, 한국에 인문사회과학 르네상스가 한 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기는 한데, 객관적 조건으로는 지금이 딱 그런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실제 유럽에서 마르크스 르네상스가 왔던 시기는 68혁명을 즈음한 시기가 아니라 1975년, 즉 석유 파동 이후의 경제위기 국면에서 왔습니다.

지금 한국과 비슷하지요. 그 때와 비교하면, 저자들이 책을 훨씬 덜 쓰는 편이고, 독자들도 사회적 해법 보다는 개별적 해법을 선호한다는 점이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결국 더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면서 새로운 다이나믹을 만드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알라딘 : '한국경제대안' 시리즈가 올해 안으로 4권이 출간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 외, 앞으로의 집필 계획이 궁금합니다.

우석훈 :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는 이미 제 손에서는 떠나갔고, 9월에는 완간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전공에 해당하는 생태경제학 시리즈 4권이 11월 정도에 마감될 것 같고, 응용경제학편인 '국가의 기본 시리즈'가 마지막 큰 산으로 남아있습니다.

문화경제학, 농업경제학, 기술경제학, 언론 경제학 같이 제 부전공에 해당하는 것들을 한 번 정리할려고 하는데, 그러다보면 몇 권은 내년으로 넘어가게 되겠지요. 이렇게 큰 시리즈 끝내고 나면, 번외편 약간이 있기는 한데, 이런 것은 은퇴하고 나서 소일거리 삼아 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시리즈 외에 특별한 집필계획을 잡아놓고 있지는 않은데, '아프리카 시리즈' 같은 것을 한 번 해볼 생각은 있지만, 워낙 돈이 많이 들어갈 것 같아서 엄두를 못내고 있습니다.


알라딘 : 요즘 행복하신가요? 즐거우신가요? 즐겁기 위해 어떤 일을 하시나요?

우석훈 : 대체적으로 즐겁게 사는 편인데, 한동안 영화를 많이 봤는데, 요즘은 오페라도 많이 듣습니다. 그야말로 가장 흔한 취미인 음악감상과 독서, 그런 걸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여행도 적게 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알라딘 : 취업이 힘들어 고민하는 / 비정규직으로 저임금 착취당하는 / 비록 정규직을 가졌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과도한 업무에 괴로워하는 20대 들에게 각각 한 말씀 해주신다면?

우석훈 : 어른들이 하는 말을 불신하라고 말해주고 싶군요. '대세'라는 단어에 민감한 편인데, '대세'라는 말을 거부하는 순간, 몸에 잠자던 예술혼이 깨어나고, 그날부터 시대의 '아방가르드'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배고파도 영혼의 힘으로 예술을 만드는 그런 아방가르드 정신,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고, 만약 내가 일제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떠한 일을 했을까? 일제 통치가 대세이니까 친일파가 되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가를 생각해냈을까, 그런 생각을 저는 종종 해봅니다.

맨날 친일파 욕하기만 했었는데, 문득 내가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친일파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질문하던 순간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마케팅과 종이신문이 만들어내는 백일몽에서 깨어나는 것, 그게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서 유의미한 삶으로 전환되는 이 시대의 첫 조건이 아닐까 합니다.


알라딘 : 재미있게 읽은 책 / 꼭 추천하고 싶은 책 / 꼭 쓰고 싶은 책을 각각 꼽아 보신다면?

우석훈 : 재미있는 책 <빨간 머리 앤>,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은 프랑크 허버트의 <>과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그리고 <반지의 제왕>. 꼭 쓰고 싶은 책은 <파운데이션>.


알라딘 : 마지막으로 알라딘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우석훈 : 시대가 어두울 때 지성이 빛을 발합니다. 이명박과 그 일당들의 '토건형 경제제일주의' 오래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명박 현상을 '독서와 토론이 사라진 나라에서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악몽'이라고 정의합니다. 부디 밝은 날, 시와 영화를 가지고 알리딘 독자 여러분들과 세상의 꿈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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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울바람의 생각
    from rifflewind's me2DAY 2008-08-01 09:42 
    저는 지인들에게, 무조건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대세를 따르지 말고, 특히 광고에서 시키는 것 혹은 종이신문에서 시키는 것은 무조건 하지 말라고 되지요. - 우석훈
 
 
책읽기는즐거움 2008-08-15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곰탱이 2008-10-23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석훈씨 말대로 전 대세에 따르지 않고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 난 왜 이러지 싶었는데 틀린 답이 아니었어요!

2009-03-24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6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