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본 케이블 TV에선 공연 예고편이 나오고 있었다. 로비 윌리암스의 공연. 로비의 클로즈 샷 옆으로 자막이 새겨진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남자, 로비 윌리암스". 왜 씁쓸한 기분이 들었을까? 알 수 없는 나는 그저 흘러간 밴드의 노래를 흥얼 거릴 뿐이다. 가지 말라고, 네가 하려던 말을 하라고. 떠나지 않겠다고, 영원히 있겠다고, 그렇게 말을 하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은 어김 없이 흐르고,
빛나던 멜로디들은 사라진다.
알 수 없는 곳을 향하여. 음音의 속도로.

삼가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계를 돌고 싶었다. 모든 좋은 것들이 다 사라져버리기 전에, 시간의 조수가 당신의 귀를 비우기 전에. 세상을 돌면서 말해주는 거지. 사그라진 밴드의 노랫말처럼, 내가 들었던 모든 것들을. 내 기억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이야기를, 멋진 멜로디들을. 팻말하나 들고. 헝그리 따위는 충분히 얼굴에 쓰여 있으니, 다만 들어 달라고. 또 들려 달라고. 나의 얘기를, 당신의 이야기를, 그렇게 만들어질 화음을.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한 단어씩만 주세요. 두 단어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두 단어를 주시면, 세 단어를 드립니다. 자, 단어 놓고 단어 먹기. 네? 미안합니다. 영어 잘 못합니다. 아, 저기 아가씨. 잠깐만요. 우리 전에 본 적이 있죠? 그때는 고마웠습니다. 그때의 거지가 저입니다. 네? 하하. 지금도 거지 맞아요. 전 일관성 있는 남자거든요. 이래뵈도 고향에선 찌질하다는 소리 듣던 사람이랍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요? 음... 영어로는 대충 'Fucking Awesome' 정도? 하하. 유아 웰컴."

물론 좀 더 현실성 있는 버전도 있다. 1. 멋진 소설을 쓴다 2. 베낭 가득 소설을 담는다 3. 떠난다 4.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소년, 영국 아저씨, 네덜란드 총각, 프랑스 아가씨에게, 한 권씩 준다. 한국어를 몰라도 상관 없다. 어떤 언어로 쓰여진 책이든, 그런 책을 받는다면 나 역시 기쁠 테니까. 비용은 물론 소설을 쓰고 받은 상금으로 충당. 아, 잠깐만. 이게 더 현실성 있는 버전이라고 한 거 같은데...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 빨간 클립 두 개로 물물교환을 시작해 결국엔 이층 집을 마련한 캐나다 백수 청년처럼. 교환가치에 얽매이지 않는 신선한 생각. 그러니까 여기, 여행을 떠나고 싶은 젊은이가 있습니다. 돈이 없어요. 딱하죠? 호화판 여행을 떠나겠다는 거 아닙니다. 이른바 공정여행. 주워 들은 건 있는 젊은이인 모양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돈이 없다니. 비행기 삯이 얼만데. 이런 딱한 친구가 있나. 이봐, 추운데 이러지 말고 들어가서 뜨신 물에 밥이나 말아 먹구랴. 요즘 젊은 것들은 쯧쯧. 저기, 잠깐만요. 우리들 대부분은 떠나고 싶어하잖아요. 그런데 모두 다 떠날 수는 없잖아요. 가족에, 직장에, 생활에, 습관에... 그렇다면 한 사람이라도, 지금 당장 한 사람이라도 떠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여기 독서공방 펀드에 힘을 보태 주세요. 대신 떠나 드립니다. 물론 먹고 노는 여행 아닙니다. 자본의 시스템, 소비의 사슬을 떠나 사람들을 만날 거예요. 이미 자신도, 그렇게 도움을 받아 떠나게 된 걸요. 세계를 돌며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를 만나며 그들과 안면을 익히고 손짓 발짓 섞어가며 같이 웃고 눈물 한방울 흘리고 많은 걸 보고, 배우고, 담고 돌아올게요.

사기치지 말라고요? 잠깐만요. 펀드라고 했잖아요. 배당 해드립니다. 수익이 어디서 나냐고요? 여행기를 쓸게요. 제가 MD 출신이라는 얘기를 했던가요. 알라딘 여행MD 님... 막 친하진 않지만 그래도 오래 같이 일했고요. 친구와 후배 중에 방송작가도 꽤 됩니다. (명랑히어로에 나와서 뜬 그 여행책 아시죠?) 책 팔아서 도와주신 분께 돌려 드릴게요. 남는 돈은 세계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돌려 줄게요. 받지 않겠다는 분은, 역시 그 친구들에게 함께 드리죠. 그렇게 하고도 조금 남는다면 두번째 주자가 세계로 나갈 차례.

수익이 안나면 어떡하냐고요?
네, 고객님. 약관을 제대로 안보셨군요. 펀드라는 건... 사랑합니다 고객님.





금은 버려진 어느 카페의 대문엔 여전히 이런 인삿말이 걸려있다. 인생막장. 스물 너댓살 먹은 복학생들이 파릇파릇한 새내기들을 꼬셔 만든 학회이름치곤 영. 그래도 스물한 살 때 지은 반미실천단 이름인 (아지포함) "(미제의 심장에 박아버린다) 쇠말뚝" 보단 낫잖아. 선수들은 성장하고 아이들은 자란다. 물론 고릿적의 트레인스포팅을 베껴긴 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건 있는 법이니까. 그것은 내 어떤 (유치한) 정서. 뭐 주한미군도 여전히 주둔하고 있고.

그래. 졸업한 지 4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또다시 '인생막장'이란 이름을 꺼낸 건, 그래서였다. 더이상 선택할 것이 남지 않은 것 같은 기분. 막장에 몰린 기분. 어떻게든 앞으로 나가려고, 두 손으로 흙을 파내어 보지만, 손톱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 같은 기분. 이 말도 안되는 글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을 때 내 기분이 그랬다.

돌아본 거다. 소위 말하는 (양 손의 검지와 중지를 살짝 구부리며) '의미'를 찾고 싶었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길을 걸어 왔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 내가 누구라고 말하는 당신은 누구이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는 또 누구인지, 알고 싶었으니까. 무척이나. 내가 기억하는 나는 21세기의 이력서 취미란에 꿋꿋하게 독서라고 적는 사람, 그러니까 칼빈 한 자루를 들고 생화학전에 뛰어드는 사람이었다. 다른 방법은 알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책을 가지고 직업을, 가족을, 뻑킹 빅 텔레비전을, 세탁기를, 미래를 그러니까 인생을 선택하려 한 모양이다. 그게 될 리가 있나. 무엇보다 MD라는 직업은 책을 '파는' 직업이었으니까. 대개 책이란 읽으라고, 꽂아 놓으라고, 그것도 아니라면 다운 받으라고 있는 것이었다. 베고 자거나 사람을 때릴 수는 있다. 하지만 팔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한텐 그랬다. 귄터 쿠네르트의 말처럼 나는





그 길의 막장에서 발버둥치고 있었던 거다. 책을 읽는 것과 파는 것 사이에는 어떤 논리적인 인과관계도 성립하지 않는다. 책을 읽는 길에서 책을 파는 길로 방향을 튼 것은 '나'였고, 그 길을 벗어나는 것 역시 '나'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때야 알았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뒤늦게 알곤 하니까. 대부분의 것들을 1년 6개월이 지나, 할인판매에 들어갈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주간지 100권이 모이면 그만두기로 마음 먹는다 해도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건 일종의 '기계장치의 신'이었으니까. 연극의 막바지에 내려와 모든 것을 정리해주시는. 하지만 지금은 21세기다. 신은 죽었고, Film 2.0은 내가 94권을 모았을 때 망해버렸다. 실제로 회사를 그만 두기까지는 그로부터 1년이라는 시간이 더 흘러야 했다. 그래, 내가 죽였다. 이 자리를 빌어 Film 2.0 관계자들께 사과드린다. 죄송합니다. 저였어요. 고려원이 망한 게 오에 겐자부로 전집 때문이듯이.

로비 윌리암스는 잘못 없습니다. 

그저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마음이 없었을 뿐이니까. 책 읽는 사람에서 책 파는 사람으로의 변태를 견딜 수 없었으니까. 끝까지 살아남은 남자 따위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39세의 노장 투수 빌리 채플에게 야구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뗄 수 없는 것이었듯이. 그가 원한 것은 뉴욕 양키스에서의 야구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의 야구도 아니었듯이. 내가 사랑한 것은 책이었지만, 그것을 파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이야기. 도둑처럼 소리 없이.




"그만 두겠습니다. 야구를 사랑하니까요."


래 이 글은, 사직서가 될 예정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길고 뒤죽박죽인 사직서가. 저 명예욕 있는 남자거든요. 처음엔 12월에, 다시 2월에 올리려고 했던 글을 퇴직하고도 한 달이 되어서야 쓰게 된 것은 천성적인 게으름 탓이다. 본래 인문MD로(낯선 단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묻고 싶었던 '인생막장' 시리즈는, 인문MD를 그만둔다는 것의 의미를 물으려 했다가, 결국엔 이렇게 마무리 되고 말았다. 별 수 없지.

시간은 어김 없이 흐르니까.

그래서 결국 내 앞엔 *천만원 어치의 시간이 펼쳐졌다. 물론 그것은 교환가치 바깥에 있고, 그렇기에 기묘하다. 누군가 나에게 수십억원을 준다해도 내 남은 시간을 전부 팔리 없겠지만, 몇 년 단위로 쪼개면 거리낌 없이 팔 수 있다는 것. 그 문제는 나중에 깊이 생각해보기로 하고. 자, 시간이 내 앞에 있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

독서공방 펀드 가입은 하나은행 XXX-XX-XXXXX ... 고객님 약관에 동의...

상투적인 것들. 자고, 걷고, 읽고, 쓰고. 혹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수밖에. 섣불리 기대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으며, 실망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겠지. 상투적, 상투적, 상투적, 상투적이야. 모든 말들은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소비될 때 상투적이 된다.

(다시 양손의 검지와 중지를 살짝 구부리며) '의미' 따위는 예나 지금이나 알 도리가 없지만, 적어도 몇 가지는 안다. 모든 단어는 빈 항아리 같다는 것. 그 단어를 채우는 것은 결국 그것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 그러니 내 남은 시간은, 모든 상투적인 것들을 상투적이지 않게 하는데 바쳐질 예정이라고.


나는 여전히, 또 하나의 막장을 파며 그곳에서 나온 흙으로 나만의 항아리를 채우고 있을 것이다.




그 동안 고마웠어요.
눈치도 못채셨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인사 없이 블로그를 버려 두어서 혼자 못내 걸렸어요.
이 블로그를 어떻게 해야할진 아직 잘 모르겠지만... 뭐 상관 없겠죠.
따뜻한 봄이 골목 앞에 있대요. :)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3-27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흐름 2010-03-29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RSS로 구독하고 있던 독자인데, 아쉽네요.
그렇지만 어디선가 또 글을 보고 누구의 글인지 잘 모르면서도 구독을 하게 되겠지요.
취향은 변하지 않는 법이더군요.

다락방 2010-03-29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는 이제야 뭔가가 어렴풋이 잡히려고 하네요.(아, 무척이나 뜬금없는 댓글입니다만.)

2010-03-29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31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31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주 들려 글 읽으면서 좋아하고, 권해주신 책도 사보고 그랬는데
지금 내리는 봄비처럼 마음이 그러하네요.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뵙든 다시 알아보고 글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꼭!
건투를 빕니다'_'

caren 2010-04-13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의 제보로 봤는데. 아무튼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니까 여행서 출간되면 꼭 제 돈 주고 사볼게요. 파이팅 하세요.^^

제보자 2010-04-13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할라할라.. 높이 올라가 세상을 다 가져봐~

외국소설/예술MD 2010-04-15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택에 싼 숙소에 묵었으면 감사의 표시로 밥을 사거나 해야 하는거 아닙니까

Azira 2010-05-10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알라딘편집팀서재에서 블로그명이 사라진 걸 발견했네요.
아쉬워요....눈팅만 했지만 나름 열혈 독자였는데. 어디론가 이사가시면 꼭 공지해 주세요.
 


공자에서 플라톤, 조르조 아감벤에서 가라타니 고진까지(!)
동서양 철학자 112명이 56개의 주제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912쪽의 방대한 분량에 현대 철학자까지 아우르고 있는
<철학 vs 철학> 예약판매 이벤트가 시작 되었습니다.
하루 빨리 내용을 확인하고 싶을 뿐. 핰

그린비 출판사에서는 <철학 vs 철학> 출간에 맞추어
'철학성향 테스트'라는 이벤트를 진행하시네요.
동양편 서양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은근히 잘 맞는듯?

알라딘 이벤트 페이지는 '여기'를, 테스트를 하시려면 '저기'를 눌러주세요~
아래는 제 테스트 결과입니다. 후훗




감성적인 문필가 타입
| 센스, 감성, 열정
동물적 감각+논리적 이성까지 겸비한 당신은 욕심쟁이, 후후훗! 감각과 동시에 ‘쓰임’까지 고려하는 섬세함을 가진 당신. 동물적 감각을 중시하지만, 이 감각은 명확한 데이터를 토대로 나오는 것이다. 좋아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센스쟁이 타입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동물적 감각과 함께 빛나는 통찰력까지 가지고 있으니 어디 가서 미움 사기 십상인 타입+_+? 현대의 직업군에서 꼽자면 ‘디자이너’ 혹은 ‘설계자’에 가까운 이 부류의 철학자는? = 흄, 들뢰즈, 마르크스, 아감벤
『철학 vs 철학』에서는?
8장 어느 경우에 인간은 윤리적일 수 있는가? 흄과 칸트
15장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헤겔과 맑스
26장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 중 어느 것이 중요할까? 데리다와 들뢰즈
28장 정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슈미트와 아감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동시에 유명한 회의주의자.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의외로 흄이 애덤 스미스의 절친이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또 한 가지, 그가 '회의주의자'가 된 이유는 '시니컬'하거나 '허무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그는 단순히 광대하게 펼쳐진 우주 앞에서 지적 겸손함을 보일 줄 아는 사람일 뿐이었을 수도 있다. 그가 살던 당대에는 초월적인 신 없이 평화와 행복을 상상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아주 유쾌하고 평온한 상태에서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죽어 갔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성'에 꽤나 집착하는 태도를 보인 적도 있었는데, 결국엔 '이교도'라거나, '무신론자', '회의주의자'(이건 사실 꽤 모욕적인 표현이다)라는 악명을 얻었다. 하지만 후대에 칸트에 의해 정직한 사유가로 재평가되고, 들뢰즈에 의해 감각의 위대함을 보여 준 철학자로 높이 평가받았으니, 니체 말대로 "어떤 사람들은 죽은 후에야 다시 태어난다"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관련된 책]
맑스
20세기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사상가를 딱 한 사람만 꼽으라고 한다면, 거의 99%는 이 사람을 꼽을 듯. 적을 구워 먹어 버릴 것 같은 열정으로 글을 써 댔던 이 사람은 '천재'였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정말 놀랄 만큼 면밀한 분석을 수행했으면서도 문학적인 감수성은 단 한번도 포기하지 않는다. 맑스의 책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꼼꼼하고 정밀한 분석은 단순히 똑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테지만, 그걸 가지고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인류 역사 전체를 살펴도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맑스의 일상은 가끔 '혼돈 그 자체'였다고 한다. 가장 수입이 적을 때조차 당대의 중산층에 상응하는 정도였는데, 지출의 무능력과 사치로 인해 먼저 죽은 딸의 관조차 장만할 수 없었다고 한다. 생활에서도 유능한 '천재'란 정말 없는 것인가?
[관련된 책]
들뢰즈
"그는 너무나 굳센 나머지 실망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이 허무주의적인 세기말에도 그는 긍정적이었다. 질병과 죽음에도 역시. 왜 나는 과거에 그에 대해서 떠벌렸던가? 그는 웃었다. 그는 웃고 있다. 그는 여기 있다. 슬퍼하는 건 너야, 멍청아. 그가 말한다." (들뢰즈의 죽음 이후 『르몽드』에 실린 리오타르의 추도문)
들뢰즈에 대해 그 자신의 발언을 제외하고, 이렇게나 그와 그의 사유를 잘 표현한 말이 있었던가? 긍정적 삶의 대가였던 들뢰즈는 그 어떤 '부정적인 것의 긍정성'도 용납하지 않았다. 부정적인 것은 그냥 부정적인 것일뿐 그로부터 긍정적인 무언가가 나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좋아하는 '반성'을 엄청나게 경멸한다. 반성은 우리를 위축시킬 뿐이다!
들뢰즈는 '글쓰기' 그 자체에 관해서도 아주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보통의 철학자들과는 다른 형식의 글쓰기 실험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책은 '이해'할 수 없다.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낄 수'는 있다는 것이다! 깊은 밤 고원 위에서 별 밭을 우러르는 신비한 체험을 하고 싶을 때 그의 저서 중 아무 곳이나 펴 놓고 읽어 보길 바란다. 말들의 미로 속에서 오바이트하거나, 오만가지로 펼쳐지는 생각의 잔치를 볼 수 있으리라!
[관련된 책]
아감벤
'벌거벗은 사람들', 오직 생명 그 자체만 남은 사람들. 고대 그리스 철학의 개념들을 현대사회를 철학적으로 독해하는 데 활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똑똑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은 하나의 사태를 다른 것들과 연결하는 통합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태생의 이 철학자는 그렇게 역사 속에 묻혀 있던 '호모 사케르'를 현대로 소환함으로써, 현재의 '호모 사케르'를 드러낸다.
방랑하는 사람들, 자격 없고 소속 없는 사람들을 통해 자유와 대안까지 그려 볼 수 있을까? 더 자세한 내용은 『철학vs철학』이나, 아감벤의 다른 저서를 보시길! 어쨌든 우리 삶에서 '정치'를 사고할 때 주목해야 할 철학자임에는 틀림없다는 사실!
[관련된 책]


무위의 실천가
| 실천, 해탈, 공空, 무위
'무위'한다고 하여, '실천'과 등지라는 법은 없다. '무위' 자체가 실천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 타입의 사람들을 '무위의 실천가'라고 부를 수 있겠다. 세상을 관통하는 일관된 법칙은 없다. 세계는 변화무쌍, '변화' 자체가 천하의 도道이다. 그런 변화의 격랑을 마음대로 넘나들면서도 휩쓸리지 않는 지고한 자유인은 바로 이 타입의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모든 존재를 향해 자신을 개방하라! 세계 만물, 각각에 우주가 들어있나니! 이 타입의 동양사상가는? = 싯다르타, 나가르주나, 장자, 원효
『철학 vs 철학』에서는?
2장 자아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아지타와 싯다르타
4장 도란 미리 존재하는 것인가? 노자와 장자
15장 깨달은 자가 바라보는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원효와 의상
18장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는 무엇인가? 장재와 주희
싯타르타
고타마 싯다르타는 모두가 알다시피 불교의 창시자인 붓다, 즉 석가모니이다. 그를 철학자로 볼 수 있을까? 사상사의 맥락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실천가'였던가? 역시 그렇게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불교 교리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싯다르타가 불교의 법을 설했던 이유도 중생들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랐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실천'에 관한 사상이 겨냥하는 것은 사실 모두 이것에서 비롯된다. 이 부류의 철학자들 중에서도 싯다르타만큼 이 분야에 있어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은 없다.
[관련된 책]
장자
장자와 관련된 일화는 너무나 많다. 『장자』 자체가 이야기들의 묶음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장자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알고 싶다면 장자를 직접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렇지만, 워낙 알쏭달쏭한 말들이 많아서 그 속에 담긴 결을 이해하려면 좋은 해설서도 한 권쯤 필요할 것이다. 장자의 정확한 생몰연대는 미상이다. 흔히 그의 사상을 '도피적'인 것으로 알고 있거나, '신선놀음'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데, 이것은 그에 대한 철저한 오해에 기인하는 것이다. 중국의 대동란기였던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무수한 이론들처럼 그 역시 실천적인 이유에서 그의 사상을 전개시켰다. 부, 명예, 권력 등 단일한 척도에 의해 좋은 것으로 취급되는 것들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 그것을 통해 무위의 삶, 자유롭게 벗어나고 재구성되는 삶을 말한 그의 철학은 삶의 적극적인 방식을 말한 것이지, 삶으로 부터의 도피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싯다르타와 더불어 이 계열의 철학자들의 대표격이라고 볼 수 있다.
[관련된 책]
원효
이렇게 이름 난 사람이, 신라왕실과도 일정한 관계가 있었던 사람이 '무위의 실천가'일 수 있을까?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사상사적인 맥락에 봤을 때 그의 사상은 충분히 그럴만 한다. 원효가 종국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깊은 사유, 폭넓은 지식이 아니었다. 그는 '생각과 논의조차 필요없을 정도의 실천'을 추구했던 사람이다. 그 유명한 해골물 이야기는 직관적으로 알고, 생각하기 전에 그것을 실천하고야 하는 그의 사상과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늘 민중들과 함께 춤추고, 희노애락을 나눴던 그의 면모를 만나보자!
[관련된 책]
장재
장재는 주희보다 약간 앞선 연대의 사람으로, 송나라 시대에 성립된 신유학에 결정적인 기초를 제공한 사람이다. 그는 유학자로서, 향후 유학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지를 명확하게 주지하고 있었다. 당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강력한 세력을 확장해온 불교와 민간에 널리 전파되어 있는 도가 사상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유학에 미래가 없다고 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그러한 자신의 생각에 오래전부터 중국에 전해진 전통적인 자연관, 즉 기의 흐름을 통해 세계의 유, 무가 나뉜다고 보는 견해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시대를 통찰하는 지혜와 정확한 판단력, 더불어 전통과 현대를 결합하는 상상력까지 ‘지성인’이 갖춰야 할 모든 덕목을 갖췄다고나 할까?
[관련된 책]

댓글(10) 먼댓글(1)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철학자만 철학하는 더러운(?) 세상! 나의 철학 성향은?
    from 그린비출판사 2010-02-10 20:37 
    네~ 소위 심리 테스트들은 정말 빤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하게 됩니다. 이걸 철학적으로 좀 오버해서 풀이 하자면 '재인'(recognition)이라고 한다네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는 몰라도 대략 감感은 잡고 있으니까요. 이런 테스트들의 매력이란 바로 그렇게 모호하게 부웅 떠 있는 것 같은 자신에 대한 감을 조금이나마 구체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표현'의 문제도 대단히 중요하죠....
 
 
하이드 2010-02-08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벤트 페이지에 빈페이지 떠요

키보드 2010-02-08 11:43   좋아요 0 | URL
이제 잘 뜹니다. ^^

하이드 2010-02-08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링크에러 난거 수정했나보군요.

활자유랑자 2010-02-08 18:14   좋아요 0 | URL
아~ 웹업데이트가 되기 전에 올렸어요. ㅎㅎ
게을러서 죄송합니다;

닉네임 2010-02-11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랑 서양철학 성향이 똑같으시네요.

활자유랑자 2010-02-16 19:16   좋아요 0 | URL
같이 스터디 모임이나 조직?; ㅎㅎ

돈케빈 2010-02-13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난하십니까?
동서양 모두 저와 동일 ㅋㅋ

활자유랑자 2010-02-16 19:1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저는 은평구에 살고 서른살이에요. ;

mercizizou 2010-02-15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 두 상반되는 성향이 다 저한테 있다는데..

활자유랑자 2010-02-16 19:16   좋아요 0 | URL
원래 인간이라는 게 그런가봐요. ㅎㅎ
 


현대 사회와 인간 본성을 진화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인 <오래된 연장통> 출간을 기념하여 지난 2010년 1월 21일(목) 저녁 7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강남출판문화센터에서 특별한 대담회가 열렸습니다. <오래된 연장통>의 저자이자 한국인 최초의 진화심리학자인 전중환 박사와 인터넷상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책벌레(파워블로거)들이 모여 진화심리학에 대해 궁금한 사항들을 묻고 답하며 ‘인간 본성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 자리였습니다.

대담회는 도서 평론가이자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2.0>의 저자인 이권우 선생님의 사회로 진행이 되었고, <로쟈의 인문학 서재>의 저자이자 인터넷 서평꾼인 이현우 선생님(인터넷 필명 로쟈)께서 파워블로거 및 소장 인문학자를 대표하여 전중환 박사와 불꽃 튀는 대담을 나누셨습니다. 두 분의 대담 이후에는 파워블로거들이 직접 저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자료 제공 : 사이언스북스 편집부



간략하게 저자가 <오래된 연장통>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본격적인 대담이 시작되었습니다.


‣ 전중환(저자): 이 책은 APCTP(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에서 발행하는 웹진 '크로스로드(Crossroad)'에 연재된 글들을 바탕으로 새롭게 씌어졌습니다. 진화심리학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기존에 번역 출간되어 있는 진화심리학의 묵직한 입문서(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 등)들과는 차별화된, 진화심리학의 응용적인 측면을 주로 다룬 책입니다.

즉 진화심리학적인 시각이 어떻게 전형적인 인간의 심리학적인 현상뿐만 아니라 유머, 도덕, 종교, 예술, 사회 문화 현상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이 되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아직 많이 소개가 안 되었지만 그동안 진화적인 시각이 여러 분야들에 응용, 융합되면서 많은 새롭고 재미있는 분과 학문들이 탄생했습니다. 재미있게 공부하고 연구했던 내용들을 국내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이 책을 썼습니다.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대표 책벌레답게 국내에서는 아직 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소개조차 되지 않은 1990년대에 이미 해외 언론 매체를 통해 진화심리학을 접하시고 <도덕적 동물>을 필두로 진화심리학이나 사회생물학 관련 저서들이 나오는 즉시 구해서 읽으셨다고 합니다. 진화심리학에 대해 평소 관심이 대단하신지라 이번에 출간된 <오래된 연장통> 또한 무척 꼼꼼히 읽으시고 진화심리학과 관련해서 궁금했던 사항들을 다수의 질문지로 준비해 오셨습니다.


‣ 이현우(로쟈): 국내에는 진화심리학이 주로 연애나 살인 등과 관련된 번역서들이 많이 나와 있어서 그쪽 분야들을 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실제 현재 연구 경향은 어떤지, 그리고 앞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는 무엇이 있는지요?

‣ 전중환(저자): 진화심리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는 분야가 짝짓기나 협동 등이고, 그에 비하면 덜하지만 순위나 우열 행동, 공포 같은 물리적 환경에 대한 적응들에 대해서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소개되어 있지만 문화에 대해서도 진화적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고요. 흔히 진화심리학이 인간 보편에 대해서만 연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격이나 지능 같은 개인들 간의 차이에 대해서도 최근 활발히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이 앞으로 보다 발전하기 위해서 풀어야 할 과제는, 사실은 공부해야 할 게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진화심리학이 진화생물학과 영장류학, 인류학, 인지과학, 뇌과학 등 여러 학문 분야들이 한데 모여 인간 본성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범학문적, 통섭형 과학이다 보니 진화심리학적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학문들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합니다.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은 것이죠. 사실은 진화심리학자들도 이를 어떻게 교육 과정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여전히 인간과 관련해서 생물학적 설명이 조금만 들어가도 유전자 결정론을 떠올리며 그것을 즉각 위험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생물학 공포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게 최대 과제가 아닌가 합니다.

‣ 이현우(로쟈): 유전자 결정론을 말씀하셨는데, 진화심리학과 관련해 가장 흔히 등장하는 비판이 바로 “진화심리학도 환경보다는 본성 내지는 유전자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유전자 결정론의 일종이 아닌가.”일 듯한데요, 이는 먼저 사회생물학에 대해 제기된 비판이었지요. 다윈주의 우파에 악용되기도 한 것인데, 말하자면 강간이나 폭력 같은 것도 인간 본성 안에 있는 것이니까 그런 식의 본성을 강조함으로써 현재 사회질서를 옹호하는 데 일조한 것이 아닌가라는 비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가장 흔한 오해니까 이에 대해 해명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 전중환(저자): 예를 들어, 남자들이 예쁜 여자랑 바람피우게 하는 형질이 있다라면 진화심리학이나 사회생물학은 그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모든 오해가 비롯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생물학자나 진화심리학자들도 바람피우는 일과 같은 복잡한 행동을 하나의 유전자가 결정한다고는 결코 생각지 않습니다.

“어떤 A라는 형질이 있다면 A라는 형질을 결정하는 A라는 유전자가 있다, 자, 설명 끝!”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유전자 결정론이지요. 그러나 바람을 피우는 것과 같이 복잡 정교한 형질이라면 그것이 과거의 진화적 환경에서 어떻게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진화심리학입니다. 개체 발달의 차원에서도 개인의 일생을 통해 개인의 행동적인, 심리적인 측면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너무나 당연히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의 영향을 받습니다. 유전자 중심의 관점을 중시하는 이유는, 종이나 생태계 차원이 아니라 유전자 수준에서 수백만 년, 수억만 년이라는 거대한 스케일 아래 자연선택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강간이나 폭력을 자연적인 이유만으로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과학은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지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진을 연구함으로써 지진이 일어나기에 앞서 대피하거나 방제하려고 하는 것처럼, 진화심리학자들도 강간이나 폭력 같은 사회악을 제거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어떠한 진화적 근거를 갖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연구하는 것입니다.





진화심리학과 관련해서 가장 흔히 제기되는 비판이 유전자 결정론이다 보니, 이에 대해 사뭇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들이 오고갔습니다. 그리고는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로 옮아갔습니다.  


‣ 이현우(로쟈): 이 책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윌리엄 제임스의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본능이 더 적어서가 아니라 더 많아서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라는 문장을 인용하면서 공감을 표하신 부분이었습니다. 이러한 본능은 복잡한 적응의 산물이다, 즉 인간 본성의 특정 측면이 어떤 적응적인 이득을 갖고 있고 그래서 진화되어 왔다라고 설명하셨거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적응의 산물도 있고, 일종의 부산물, 내지는 부작용도 있다고 책에 쓰셨습니다.

예를 들어 스티븐 핑커는 음악이 부산물이라고 했다지요. 책을 읽거나 쓰는 것도 마찬가지로 부산물이라고요. 즉 인간은 책을 읽거나 쓰기 위해 진화되어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연 음악이나 책이 없는 인간을 우리가 오늘날 상상할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습니다. 적응의 산물과 부산물을 식별할 수 있는 어떤 기준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가령 책에서 종교도 부산물, 부작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인간의 본성이 바뀌지 않는 한 종교도 영원할 것이라고 언급하셨지요. 제거될 수 없는 부산물이라면 인간의 본질적인 특징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 전중환(저자): 본능이라는 말이 워낙에 고정적이고 변화 불가능하고, 진화가 덜 된, 덜 떨어진 것의 의미로 기존에 쓰여지고 있어서 저는 최근에는 잘 안 쓰려고 하는 편입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기존의 사람들이 생각하던 의미가 아니라, 말하자면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과 같은 의미로 본능을 생각했습니다. 진화의 결과에 의해서 우리 종에 속한 모든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갖게 된 신경 회로가 본능이라는 것이지요. 즉, 진화심리학자들이 본능이라는 단어를 쓸 때에는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을 뜻합니다. 스티븐 핑커가 ‘언어 본능’이라고 이야기했을 때에는 언어가 자연선택에 의한 생물학적 적응이라는 의미인 것이지요.

적응과 부산물을 구별하는 기준은, 적응은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자연선택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것이니까 책에서도 썼듯이 설계상의 특질을 보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종교가 적응이라면, 그래서 만일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숭배하기 위한 기작에 의해 형성된 본능이라면, 전 세계 모든 종교들에서 자기들이 숭배하는 신을 윗사람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현상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산물은 반면에 그 자체로는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진 않지만 우연히 결부된 것을 말합니다. 탯줄은 엄마가 자식에게 영양분을 주기 위한 기능이니까 즉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던 적응입니다. 그러나 탯줄이 있었던 자리인 배꼽은 어떠한 설계상의 특질도 보이지 않는 부산물인 것이지요.

‣ 이현우(로쟈): 더불어 적응의 부산물과 관련해서 오작동이라는 것도 있는 것 같던데요. 예를 들어, 질투라는 감정을 진화의 유력한 산물로, 즉 자신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워 유전적인 손실이 발생하는 것을 미리 예방해 주기 때문에 진화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방의 효과가 있는 반면, 의처증이나 의부증처럼 과도하게 오작동이 되어서 오히려 이혼과 같은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작동적인 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전중환(저자): 오작동도 사실 중요합니다. 진화심리학이 강조하는 바가, 인간이 진화해 온 과거의 환경과 현대의 환경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포르노그라피나 마약이나 게임에 대해 중독 현상들이 생겨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여러 방향으로 오작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단 한 가지로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는 방금 말씀드린 것과 같이 과거에 진화해 온 환경과 다른 새로운 낯선 환경에 처하게 되면서 오작동이 되는 경우입니다. 과거에는 단 것에 대한 선호가 필요한 열량을 섭취한다는 점에서 적응적일 수 있었으나 24시간 편의점과 카페 등에서 손쉽게 단 것을 구할 수 있는 현대 환경에서는 오히려 비만과 같은 질병을 유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른 의미에서의 오작동도 있는 듯합니다. 암컷 고릴라가 우리에 떨어진 인간의 아기를 잡어먹기는커녕 자기 아기로 오해해서 다정스럽게 보살피는 바람에 무사히 구출할 수 있었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의미에서의 오작동인 것이지요. 원래는 고릴라의 아기를 잘 보살피게끔 진화된 고릴라 어미의 심리 메커니즘이 유사한 인간 아기에 대해서 오작동을 한 것입니다.

심리적인 적응이 모든 상황에서 완벽하게 적응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평균적으로 적응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잘못 작동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작동과 문화를 관련지은 진화심리학적 논쟁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사회자인 이권우 선생님께서 문화, 문명이 인간 정신의 오작동인가라는 질문들을 던지셨고 이에 대해 전중환 박사는 오히려 문화의 많은 경우에서 적응이라고 답을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멋있다고 생각하는 패션이나 말버릇 등을 따라하는 심리 메커니즘도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 이현우(로쟈): 오작동과 관련해서 보충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아이돌이나 연예인에 열성적인 팬덤 현상이 흔히 나타나고 있는데요, 이는 일반적으로 예쁜 여자나 잘생긴 남자에 대해 갖고 있는 선호가 오작동이 되는 경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내 주변에 있는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에 나와는 전혀 이해관계가 없지요. 진화심리학 책을 읽고 책 소개를 하는 강연에서 오작동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는데요, 이게 맞게 설명을 한 것인지요?  

‣ 전중환(저자): 네, 정말 잘 설명하셨습니다. 실제 우리 마음은 기껏해야 100명에서 200 정도의 혈연 중심의 소규모 수렵채집사회에서 잘 작동하게끔 설계되었습니다. 그 옛날에는 김태희처럼 정말로 비정상적으로 예쁜 사람은 100명 정도로 이루어진 집단 내에서, 그리고 가끔 이웃 집단 사람들을 만나는 상황에서는 정말 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처럼 텔레비전을 통해 너무나도 예쁘고 멋진 연예인들을 일상적으로 만나는 경우에 오작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연예인 가십 기사에 열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뒷담화를 즐기는 것 자체는 적응적입니다. 과거 소규모 사회에서는 같은 동네에 사는 오늘날의 김태희와 동급의 마을 최고의 미녀가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더라 등등은 매우 중요한 정보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대 사회에서는 마찬가지로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나에게 전혀 도움도 안 되는 연예인의 가십에 열광하는 오작동을 낳은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흔히 부딪히는 각종 사회 문화 현상들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설명들로 대담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진화는 아주 오래전에 지구상에서 사라진 티라노사우루스의 발톱을 설명하는 데에나 쓰일 구닥다리 개념이라는 통념을 뒤집고 우리와 아주 밀접한 일상사들까지 명쾌하게 설명하는 매우 유용한 개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소장 인문학자이자 진화심리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신 이현우(로쟈) 선생님의 깊이 있는 질문과 유머러스하고 패기 넘치는 젊은 진화심리학자 전중환 박사의 성의 있는 답변으로 <오래된 연장통>이라는 책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진화심리학 전반에 대해 개괄하는 무척 유익한 대담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두 젊은 인문학자와 진화심리학자의 만남이 앞으로 진화심리학과 인문학의 화해를 모색하는 데 주춧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이현우(로쟈): 저는 평소에 진화심리학이 빨리 더 많이 소개되고 진화심리학적 인식들이 더 많이 공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현재의 인문학에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문학자들이 인간에 대해 약간은 거품이나 편견 같은 것들을 갖고 있는데 그것들을 좀 걷어 내야지 인문학도 조금 더 진전된 앎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갖고 있습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2-05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8 0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l 2010-03-24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음 두 가지 수학진리를 대한수학회의 부당업무 관련 죄인, combacsa(그네고치기), melotopia(snowall), Pomp On Math & Puzzle(박부성) 등은 권위만을 앞세워 부인하는 잘못을 범하였던 것이다.
첫째, 다음 세 가지 공식들은 모든 피타고라스 수를 구할 수 있다.
X=(2AB)^(1/2)+A, Y=(2AB)^(1/2)+B, Z=(2AB)^(1/2)+A+B.
상기 공식은 c^2=A=Z-Y, 2d^2=B=Z-X 일 때 X=2cd+c^2, Y=2cd+2d^2, Z=2cd+c^2+2d^2 같이 된다.
위 공식은 c+d=r 일 때 X=r^2-d^2, Y=2rd, Z=r^2+d^2 같은 기존 공식이 된다.
둘째, [2^{(n-1)/n}+……+2^(2/n)+2^(1/n)](자연수)^{(n-2)/n} 과 (자연수)/(무리수) 는 항상 무리수가 된다.
최미나 010-7919-8020.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 그처럼 재주가 없고 그처럼 시인으로서의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죽었을 때도 나는 장례식에를 일부러 가지 않았다. 그의 비석을 제막할 때는 망우리 산소에 나간 기억이 있다. 그 후 그의 추도식을 이봉구, 김경린, 이규석, 이진섭 등이 주동이 돼서 동방문화살롱에선가에서 했을 때에도, 그즈음 나는 명동에를 거의 매일같이 나가던 때인데도 그날은 일부러 나가지 않은 것 같다. 인환이가 죽은 뒤에 그를 무슨 천재의 요절처럼 생각하고 떠들어대던 사람 중에는 반드시 인환이와 비슷한 경박한 친구들만 끼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정 같은, 시의 소양이 있는 사람도 인환을 위한 추도시를 쓴 일이 있었다. 세상의 이런 인환관과 나의 생각과의 너무나도 동떨어진 격차를 조정해 보려고 나는, 시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고는 한 일까지 있었다.

이런 인환과 인환의 세평에 대한 뿌리 깊은 평소의 불만 때문에 나는 한사코 인환에 대한 얘기를 쓰지 않기로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요한 기대>라는, 창우사에서 나온 수필집 안에 들은 ‘마리서사’라는 글에서 나는 인환에 대한 불신감을 약간 시사한 일이 있었다. 나는 그 후 인환에 대해서 쓴 나의 유일한 글에 그런 욕을 쓴 것이 여간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거짓말이라도 칭찬을 쓸 걸 그랬다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전에 나는 인환의 <선시집>의 후기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밤의 미매장’이란 시를 읽어보고, 그래도 미흡해서 ‘센티멘털 저니’라는 시를 또 한번 읽어보았다.

인환! 너는 왜 이런, 신문기사만큼도 못한 것을 시라고 쓰고 갔다지? 이 유치한, 말발도 서지 않는 후기. 어떤 사람들은 너의 ‘목마와 숙녀’를 너의 가장 근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 눈에는 ‘목마’도 ‘숙녀’도 낡은 말이다. 네가 이것을 쓰기 20년 전에 벌써 무수히 써먹은 낡은 말들이다. ‘원정(園丁’이 다 뭐냐? ‘배코니아’가 다 뭣이며 ‘아포롱’이 다 뭐냐?

이런 말들을 너의 유산처럼 지금도 수많은 문학청년들이 쓰고 있고, 20년 전에 너하고 김경린이하고 같이 낸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나 하는 사화집 속에서 나도 쓴 일이 있었다. 종로에서 마리서사를 하고 있을 때 너는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었다. “초현실주의 시를 한번 쓰던 사람이 거기에서 개종해 나오게 되면 그전에 그가 쓴 초현실주의 시는 모두 무효가 된다”는 의미의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프로이트를 읽어보지도 않고 모더니스트들을 추종하기에 바빴던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을 너의 그 말을 해석하려고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후, 네가 죽기 얼마 전까지도 나는 너의 이런 종류의 수많은 식언의 피해에서 벗어나려고 너를 증오했다. 내가 6.25 후에 포로수용소에 다녀나와서 너를 만나고, 네가 쓴 무슨 글인가에서 말이 되지 않는 무슨 낱말인가를 지적했을 때, 너는 선뜻 나에게 이런 말로 반격을 가했다 - “이건 네가 포로수용소 안에 있을 동안에 새로 생긴 말이야” 그리고 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물론 내가 일러준 대로 고치지를 않고 그대로 신문사인가 어디엔가로 갖고 갔다. 그처럼 너는, 지금 내가 이런 글을 너에 대해서 쓴다고 해서 네가 무덤 속으로 안고 간 너의 <선시집>을 교정해 내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교정해 가지고 나올 수 있다 해도 교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도 해본 일이 없다고 도리어 나를 핀잔을 줄 것이다. “야아 수영아, 훌륭한 시 많이 써서 부지런히 성공해라!” 하고 빙긋 웃으면서, 그 기다란 상아 파이프를 커크 더글러스처럼 피워 물 것이다.

- <김수영 전집 2>(산문) 중 ‘박인환’ 전문, 1966.8




마감일을 놓친 잡글을 쓰려 휴가계를 낸 참에 나는 김수영을 생각한다. 김수영과는 눈곱만큼도 상관없는 일이건만 나는 김수영을, 그의 ‘박인환朴寅煥’을 다시 생각한다. 평시에는 무시로 태평하게 지낼 뿐이면서, 데드라인에 코끝을 밀어 넣게 되면 머릿속엔 온갖 글들이 가득 찬다. 아무리 요령을 부리고 거짓을 씨부려도 따라갈 수 없는 글이다. 그러니 그것은 그냥, 핑계일 뿐이다. 글을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에 이만한 것도 없다.

이 글을 옮겨 쓰며 나 역시 <선시집>의 후기를 다시 읽어보고, ‘밤의 미매장’이란 시를 읽어보고, 그래도 미흡해서 ‘센티멘털 저니’라는 시를 또 한번 읽어보았다. 처음 발표 되었을 때 “수영洙暎에게”라는 헌제가 있었던 시란다. (실천문학사 판본 전집에는 그 내용이 없고, 절판된 예옥 판본 전집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에서 주석으로 밝히고 있다) 그런 박인환을 김수영은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신문기사만큼도 못한’ 인환의 시에 대해, ‘마리서사’에는 조금 더 친절한 설명이 있다. “(마리서사에 드나들게 되며) ... 등의 이상한 시에 접하게 되었고, 그보다도 더 이상한, 그가 보여주는 그의 자작시를 의무적으로 읽지 않으면 아니 되게 되었다. 그는 일본말이 무척 서툴렀고 조선말도 제대로 아는 편이 못 되었지만, 그 대신 그의 시에는 내가 모르는 멋진 식물, 동물, 기계, 정치, 경제, 수학, 철학, 천문학, 종교의 요란스러운 현대용어들이 마구 나열되어 있었다.” 조선말이 서툰 인환의 시를 수영은 일종의 스노브로 파악한 모양이다. 수영은 이렇게 덧붙인다.

“인환의 최면술의 스승은 따로 있었다. 박일영이라는 화명을 가진 초현실주의 화가였다. 그때 우리들은 그를 ‘복쌍’이라는 일제 시대의 호칭을 그대로 부르고 있었다. 복쌍은 사인보드나 포스터를 그려주는 것이 본업이었는데 어떻게 해서 인환이하고 알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쓰메에리를 입은 인환을 브로드웨이의 신사로 만들어준 것도, 콕토와 자코브와 도고 세이지의 ‘가스파돌의 입술’과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과 트리스탄차라를 교수하면서 그를 전위시인으로 꾸며낸 것도, 마리서사의 ‘마리’를 시집 <군함 마리>에서 따준 것도 이 복상이었다. 파운드도 엘리엇을 이렇게 친절하게 가르쳐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복쌍을 알고 나서부터는 인환에 대한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흥미가 전부 깨어지고 말았다. 복쌍은 그를 나쁘게 말하자면 곡마단의 원숭이를 부리듯이 재주도 가르쳐주면서 완상도 하고 또 월사금도 받고 있었다(월사금이라야 점심이나 저녁을 얻어먹을 정도이었지만). 그는 셰익스피어가 이아고나 맥베스를 다루듯이 여유 있는 솜씨로 인환을 다루고 있었지만, 셰익스피어가 그의 비극적 인물의 파탄에 책임을 질 수 없었던 것처럼 그를 끝끝내 통제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그럴 때면 나한테만은 농담처럼 불평을 하기도 했다. “인환이놈은 너무 기계적이야” 하고.”

민음사의 전집에 따르면 수영이 ‘마리서사’를 쓴 것 또한 1966년이었으니, 인환이 죽은지 꼭 십년 만에 인환에 대한 두 편의 글을 쓴 것이다. 인환과 수영은 함께 ‘후반기’ 동인 활동을 했고, 가까이 왕래해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수영에게, 문우의 사후 10주년을 맞아 이런 글을 쓰게 한 것일까? 특히 나중에 쓴 ‘박인환’에서는 “인환에 대해서 쓴 나의 유일한 글에 그런 욕을 쓴 것이 여간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라고 고백하면서까지, 그럼에도 다시 한번 그의 문학을 조롱한 이유가 무엇일까?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일이다.

소설가 이인성의 홈페이지에서 이응준은 이렇게 말한다. “<김수영 전집 2>(산문)를 백 번 이상 읽은 나는 이제 이렇게 본다. 어느 시점에서부터 김수영은 박인환을 문학의 공적(公敵)으로 결론 내렸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박인환은 가짜 시인이었고, 태작기계였으며, 제 멋에 취해 예술을 오도하는 문화양아치였다. 고로, 김수영은 자신의 산문들 중에서 가장 공적(公的)인 태도를 견지하고서 문학의 섬세한 질서를 위해 ‘박인환’과 ‘마리서사’를 썼던 것이다. 김수영의 박인환에 대한 감정은 연민이라든가 애증 따위가 아니라 완벽한 역겨움이자 순수한 증오였으며 그것은 사사로운 분노가 아니라 공분(公忿)이었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김수영은 ‘박인환’과 ‘마리서사’를 쓴지 이 년 뒤에 죽었다. 그는 추호도 후회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수영의 글에서 애틋함을 본다. 백 번의 십분지일도 읽지 못했지만 그렇다. 절절한 그리움 따위가 아니라 일정 이상 거리를 둔 그리움이다. 애써 떼려한 적도 없고, 끌어안은 적도 없지만 그 자리에 있어 녹지 않는 만년설 같은 그리움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단지 문학적 포즈일 뿐일까. 요즘 친구들이 흔히 말하는 ‘고도의 빠’인 걸까.

그것은 어쩌면 사사로운 정에 현혹되지 않는 수영 자신의 ‘시의 소양’ 때문일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스스로 밝히듯 자신의 눈에는 ‘이상한 시’였던 인환의 시가 많은 사랑을 받고 그의 죽음이 ‘천재의 요절’로 오독되던 시절이 벌써 10년이 흐른 것이다. 어떤 유행이 인환의 시를 그렇게 높이 치켜세웠지만, 그것이 더 이상은 지속될 수 없음은 수영은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이의 시신을 수습하고 그의 눈을 감기듯, 스스로 그것을 선언해버린 것이다. 세간이 친우의 이름을 더럽히기 전에, 그의 이름이 어떤 추문이나 스캔들로 전락하기 전에. 그것은 이응준의 지적대로 지극히 공적인 '사망선고'였지만, '인간 박인환'을 위한 불가피한 결심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어도, 내가 행간에서 짐작하는 망자의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 후, 네가 죽기 얼마 전까지도 나는 너의 이런 종류의 수많은 식언의 피해에서 벗어나려고 너를 증오했다”고 수영은 고백한다. 이 문장은 ‘전까지도 ~ 했다’는, 명백한 과거형이다. 비록 이응준은 “아무튼. 적지 않은 미덕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명동백작>은 우리의 문화사 전체를 낭만적 기조로 개관하려는 과욕 탓인지 캐릭터들의 내면파악에 간혹 가다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는데, 내 눈에 그것은 김수영과 박인환의 관계설정에 있어서 제일 유치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명동백작>은 마치 김수영이 박인환을 애증 내지는 연민한 것처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정이 병이라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이름이다. 과연 이봉구스러운 시각이 아닐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식언의 피해에서 벗어나려고 너를 증오했다”는 것은 이미 애증의 언술이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식언에 피해 입지 않으며, 단지 식언 때문에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증오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응준의 마지막 말에는 나 역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수영이 인환에게 “그처럼 너는, 지금 내가 이런 글을 너에 대해서 쓴다고 해서 네가 무덤속으로 안고 간 너의 <선시집>을 교정해 내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교정해 가지고 나올 수 있다 해도 교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도 해본 일이 없다고 도리어 나를 핀잔을 줄 것이다. “야야 수영아, 훌륭한 시 많이 써서 부지런히 성공해라!” 하고 빙긋 웃으면서, 그 기다란 상아 파이프를 커크 더글러스처럼 피워 물 것이다“라고 했던 것처럼. 언젠가 수영은 이렇게 썼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 <김수영 전집 1>(시) 중 ‘절망’ 전문, 1965. 8. 28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0-01-21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2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arla 2010-01-22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써야 할 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멋진 글을 썼으니 그거야 아무래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쓰긴 써야겠지만...

활자유랑자 2010-01-22 23:11   좋아요 0 | URL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결국 쓰지 아니하였는데... (오늘이라도 쓰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본부장님에게 말씀좀...
 

바다 건너 들려온 소식에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해 이후 출판사 편집장 님의 글을 옮깁니다.
게재를 허락해주신 이후 출판사에 감사 드립니다.

 



2007년 1월, 그러니까 꼭 3년 전이네요.

아이티의 대통령이었던 아리스티드가 쿠데타로 쫓겨난 뒤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자기 국민들을 향해 쓴 편지글을 모은 책 <가난한 휴머니즘>을 편집하고 있었던 것이 말입니다.

절망하지 말라고,

우리의 가난은 부끄럽지 않다고,

'존엄한 가난'임을 잊지 말자고

분노와 슬픔, 온화함과 사랑으로 가득한 이 책을 만드는 동안

도대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이 작은 나라가 제 심장 가까이에 살아 숨쉬기 시작했더랍니다.

 



 

아이티는 카리브 해에 있는 작은 나라로 남북아메리카를 통틀어 가장 가난한 나라입니다.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며, 면적 27,750평방킬로미터에 인구는 900여만 명에 이릅니다.

1인당 국민총생산액은 1,600불(2005년 기준)에 불과하지요.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국민 대다수(80퍼센트)가 로마 가톨릭교회에 다닙니다.

수도는 포르토프랭스이고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쓰지만

대부분의 아이티 민중들은 크리올 어를 씁니다.

문맹률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19세기, 서반구 최초의 노예 해방 혁명으로 독립을 쟁취했고,

1492년에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프랑스 식민지가 된 뒤

사탕수수 농장 운영을 위해 수많은 흑인 노예가 수입되기도 했습니다.

1804년 독립 선언 뒤에도 내란과 독재에 시달렸고,

1915년부터는 사실상 미국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나라입니다.

1991년 한 해 동안에만 무려 네 명이 대통령이 됐다가 쫓겨나는 등

정치적 안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나라입니다.

 



 

바로 그 아이티에 강진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희생당한 사람이 수십만 명이라고도 하고, 수천 명이라고 합니다.

언론 보도가 이렇게 어이없이 다른 것은 그쪽 상황이 파악조차 힘들 정도라는 것으로 읽힙니다.

리히터 7.0의 강진이었다고 하는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겨우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어른이 장난 삼아

"얘야, 넌 술이 좋으니, 아니면 콜라가 좋으니?"

하고 묻자

"나는 주스가 좋아요."

라고 단호하게 말할 줄 알았던 포르토프랭스 거리의 아이들도 그 지진으로 다치거나 죽거나 했겠지요.

소용없는 일일 줄 알면서도,

그곳 사람들의 안녕을 빌어 봅니다.

수십만 명이 아니라, 그저 아주 적은 숫자의 사람들만 희생당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가난한 휴머니즘>을 읽은 제 친구의 신랑은

이 책을 거래처 사장에게 선물했다고 합니다.

FTA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 분명히 그 사장의 생각이 바뀔 거라고요.

 

"그래서 어른들이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일하는 동안,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놀 수 있는 하루를 만든 겁니다.

넌 가난하니까 물놀이할 자격도 없다고,

누가 감히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습니까?..."

 

제 친구는 이 대목에서 엉엉 울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뱃속에 아기가 들어 있는 때여서 더 마음이 예민해져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 아이가 나와 살아야 하는 세상이

가난 때문에 상처받는 아이들이 있는 세상이어서는 안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을 겁니다.

 

책을 만드는 동안 이 답답한 나라의 운명에 한숨만 쉬었던 저는

책이 나오고 한참 지난 뒤에,  

제 친구가 엉엉 울었다는 대목을 다시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습니다.

슬픔의 전염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아리스티드가 대통령이었을 때는 희망이 있기도 했습니다.

1953년 7월, 아이티의 항구도시 포르트살루에서 태어난 아리스티드는

1980년대에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가장 큰 빈민가에서

정치적으로 바른 소리를 잘하는 신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30년 동안 아이티 민중을 괴롭히던 뒤발리에의 독재 정치에 대한 용기 있는 비판,

아이티 민중의 희망을 담고 있는 메시지,

 개개인의 존엄에 대한 확실한 주장은 수많은 사람들을 아리스티드의 교회로 이끌었다지요.

아리스티드는 1990년, 아이티 최초의 민주적 대통령 선거에서

67퍼센트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다가 군사 쿠데타로 강제로 실각,

망명길에 올라야만 했습니다.

1994년 10월 15일에야 유엔의 도움을 받아 16개월 남은 대통령 임기를 마치기 위해

아이티에 돌아왔고, 2000년 선거에서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2003년 2월 미국이 주도한 쿠데타 세력이 포르토프랭스의 대통령 관저를 무단 점거한 뒤,

납치당해 중앙아프리카로 가야 했습니다.

부시 정부는 아리스티드를 속죄양으로 삼아,

아이티의 사회, 경제적 상황을 악화시킨 주범이라고 몰았습니다.

아리스티드는 대통령에 재임하는 동안 최저임금을 두 배로 인상시켰고,

정부 보조금을 지급해 저곡가 정책을 실시했으며,

학교 건립과 문맹률 저하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민중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2007년 현재, 아리스티드는 아직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지구화에 맞서

아이티의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한 아리스티드 재단’과

‘라팡미 셀라비’를 통해 가난한 민중을 돕고 있습니다.

아리스티드가 쫓겨나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 지진에 아이티 정부가 좀 다르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이티 지원을 위해 사람도, 물품도 마구 보낸다는데

이미 미국이 과거에 아이티에 저지른 잘못을

어떻게 바로잡을 건지 몹시,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아이티 사람들이 얼른 이 지진을 딛고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난 주스가 더 좋아요."

했던 그 아이들이 힘을 내 주기를 바랍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1-16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활자유랑자 2010-01-17 22:11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수정했습니다. ㅜ_ㅜ
저는 사실... 게으름뱅이로 소문난 사람인 걸요.

중국산팬더 2010-01-27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활자유랑자 2010-02-08 02:21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그동안 좋은 책을 소개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