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온 우석훈과 '괴물'의 탄생

오랜만에 기어코 쓰게 된 '만선'의 첫머리에 우석훈 박사의 신작이 오르게 된 건 좀 우스운 일이다. 벌써 두 달은 훌쩍 지나버린 이 서재의 마지막 페이퍼 몇 개를 그의 인터뷰와 <촌놈들의 제국주의>, <직선들의 대한민국>이 장식하고 있었던 탓이다. 이거 자칫하면 편애모드- 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책 파는 사람의 입장에서 잘 팔리는 책이 나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사실 이 책은 더 팔려야 한다)

<88만원 세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촌놈들의 제국주의>에 이은 한국경제대안 시리즈의 네번째 책이자 마지막 책에서, 우석훈 박사는 드디어 '대안'을 제시한다. '대안'이라는 단어를 분명히 달고 있는 시리즈 명에도 불구하고 날카롭고 때론 통쾌한 분석만 있었을 뿐, 별다른 대안은 사실 없었음을 생각한다면 과연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만하다. 물론 그 대안의 효용 및 그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이 자리에서 그 대안을 밝히는 일은 스포일러가 될 듯하니 생략하기로 하고.

'괴물'이란 물론 현재 우리 사회를 말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자본주의' 같은 인간의 조건. 굳이 레비아탄(혹은 리바이어던)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생활의 발견]의 대사처럼 "사람 되기 힘들지만 괴물은 되지 맙시다"의 괴물로 이해해도 별 무리는 없겠다. 결국 사람되기 힘들어서 모두 괴물이 되어 버렸다는 얘기다. (괴물의 뱃속에서 사람이 되긴 힘들다는 얘기일까?)

개인적으로는 <몬스터>의 대사가 떠올라 버렸다. "날 봐, 날 봐, 날 봐. 내 안의 괴물이 이렇게 자랐어" <괴물의 탄생>이란 어쩌면 조금쯤 때늦고 식상한 제목일지 모르지만,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괴물은 어느덧 이렇게 자랐다. 그리하여 그 괴물에게 먹히고나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만이 우리가 고민할 무엇이 되어버린 것이다. 신화 속의 영웅처럼 누군가 나타나 괴물의 목을 자르길 기다리기에는, 21세기는 너무 빠르고 삶은 너무 짧으니까.

하지만 기억할 것. 캠벨 식의 영웅 신화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결국 내면의 여정이고, 어느새 자라버린 괴물도 '내 안의 괴물'이라는 것. 괴물 없이 살아가기는 생각만큼 불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결국 자기 자신의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오래된… (하지만 한 번도 증명된 적은 없는) 레토릭.

시리즈의 완간과 더불어 시리즈의 두번째 책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가 개정되어 새로 나왔다. <조직의 재발견>이 그것. 난해하기로 소문(!)났던 서문을 고쳐 쓴 개정판이 나오게 되면서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는 <88만원 세대>-<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촌놈들의 제국주의>-<괴물의 탄생>의 A 버전과, <88만원 세대>-<조직의 재발견>-<촌놈들의 제국주의>-<괴물의 탄생>의 B 버전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꼭 동방신기 새앨범을 광고하는 것 같기도 하고…)

* 위 내용은 우석훈 박사의 입장 및 알라딘의 입장과 전혀 상관 없습니다.


* 심리학 도서 출간 러쉬

 

 

 

 

언젠가부터 심리학 책들이 참 많이 나오긴 했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몰려서 나오기는 또 처음인 것 같다. 사실 수박 겉핥기 식의 책들이 많았던 것에 비해 그 범위도 깊이도 다양하고 깊어졌다. 이렇게 많은 책들 중에서 몇몇 책들만이 관심을 받고 읽힌다는 것은 꽤나 슬프다. 이것은 직업적인 감상. 이렇게 많은 책들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멀고 험하다는 것은 꽤나 잔인하다. 이것은 인간적인 감상. 물론 둘 다 어디에도 쓸모는 없다.

<악의 쾌락 변태에 대하여>는 자극적인 제목만큼 재미있는 책이다. 물론 제목에서 기대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재미가 있다. 책은 자극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말초적인 흥미를 끌려하지 않는다. 다만 '변태'라는 이름으로 역사 속에서 단죄되고 배척되었던 인간의 본성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며, 우리 안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다름'에 대한 이해를 촉구한다.

<이중 인격>과 <다중 인격의 심리학>은 비슷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꽤나 다른 책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까지 피폐하게 만드는 이중 인격자의 패악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자기 자신의 이중성은 얼마나 되는지도 한 번 확인해보자는 것이 <이중 인격>의 메시지라면, <다중 인격의 심리학>이 말하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마음 속에 여러 인격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억지로 부정하거나 하나로 통합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

거칠게 말하자면 전자는 한때 유행했던 '싸이코패스'류의 책을, 후자는 대니얼 키스의 <빌리 밀리건>을 생각하면 될 듯 하다. 물론 <빌리 밀리건>은 '찢겨진 영혼'을 탐구한 논픽션이므로 방향은 다르긴 하지만,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 책 역시 더 없이 재미있을 듯. 특히나 전문 번역가 김명남 님의 매끄러운 번역에 출판사 편집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도…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미신과 속설이다. 생각해보면 미심쩍기 그지 없는 그것들을 인간은 어떻게 철썩같이 믿을 수 있을까, 정도. 귀가 얇은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물론 우리는 주변에 귀 얇은 친구들을 하나 쯤은 알고 있으니,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잭팟 심리학>은 <괴짜 심리학>의 저자 리처드 와이즈먼이 들려주는 '행운의 심리학'이다. (로또 같은 한탕주의 심리를 비판하는 책이 아니다!) 인생을 살면서 자기는 운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자기는 항상 운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만나기 마련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말하게 하는가? 어떻게 하면 정말 운이 좋은 삶(최소한 그렇게 생각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답은 책 속에.

<심리학 초콜릿>은 이 리스트 중에서 유일하게 국내 저자의 책이다. 삶에 힘겨워 하는 20대 여성들의 고민을 담은 책, 이라고 한다면 역시 국내 저자의 책이 더 가까울 터. '관계 맺기에 힘들어하면서도 소통에 중독되고, 진정한 사랑을 꿈꾸면서 ‘나쁜 남자’를 반복적으로 만난다. 남자친구의 폭력, 잦은 바람, 경제적 의존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그래도 사랑한다"며 헤어지지 못한다.'라는 알라딘 소개처럼, 너무 상투적이지만 사는게 결국 그런 것이라면 마음이라도 편히 살자, 뭐 그런 것.

<나쁜 유전자>는 사실 이 심리학 책들 중에서 가장 비중있는 책이다. 얼핏 <이기적 유전자>를 닮은 책은 사실 <루시퍼 이펙트>를 더 닮았다. '왜 사악한 사람들이 존재하며, 왜 그들은 성공하는가?'라는 부제는 "Why Rome Fell, Hitler Rose, Enron Failed, and My Sister Stole My Mother's Boyfriend"를 보면 더더욱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정말, 사람은 왜 그런 것일까? 뇌과학과 심리학의 최신 연구 결과를 직조하며 그 과정을 밝혀내는 작업이 꽤나 흥미진진하다.

<보살핌>은 <나쁜 유전자>와 반대편에 있는 책이다. 신경생리학과 뇌과학, 발달심리학, 진화생물학 등을 통해 밝혀내는 것은 인간의 '보살핌 본능'이다. 이 본능을 개인의 차원에서 사회적인 차원으로까지 확대, 갈수록 약화되는 사회적인 유대 속에서 발생하는 각종 질병들 또한 예방할 수 있다는 책의 주장은 따뜻하지만 어딘가 슬프기도 하다. (슬픈 이유는 잘 모르겠다)


* 562돌, 한글날!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란 제목은 사실 이상하다. '~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란 기실 번역투에 가까우니. 출판사 분은 '사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럼에도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제목이라 생각했다'고 하시니, 그만큼 책에 대한 자부심으로 읽어도 좋을 듯 하다.

한글과 관련된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들을 짚어가며 상세히 설명하는 책을 통해 우리가 항상 사용하지만 실상 그 중요성을 체감하지는 못하는 (영어 몰입이니 뭐니 하는…) 우리말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살면서 한 번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국어실력이 밥먹여 준다> 시리즈의 세번째 책은 바로 <국어 독립 만세>다. 조금은 시대착오적으로도, 선동적으로도 느껴지는 책의 제목이지만,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게 된다. 주로 어휘에 집중했던 앞의 두 권과는 달리 이번 책의 주된 내용은 한글과 영어와의 비교.

'영어강박'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의 한국에서 '영어의 화장발을 걷어내고 들여다보는 우리말의 맨얼굴'이라고 한다면 "국어 독립 만세!"라고 할 수도 있잖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 책의 문제의식 또한 우리에게 절실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라지는 말들. 두 주에 한 개꼴로 지역 고유의 말이 살아지고 있는 오늘날, 과연 언어의 종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묻는 책의 물음은 고스란히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이대로라면 한글이라고 영원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얘기다.

문득 터키에 여행차 갔다가 우연히 만난 현지인이 "터키어를 배워라. 너는 한국인이고, 한국어랑 터키어는 같은 우랄-알타이 어족이니까 쉽게 배울 수 있을 거라"고 했다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쩌면 우리는 그 터키인 보다도 우리말에 더 관심이 없는 건 아닐까?


* 끝

Verve의 10년 만의(!) 새앨범을 연속해서 5번은 듣고 있는데 하나도 좋은지 모르겠다면, 김연수의 신작 <밤은 노래한다>를 불과 3시간 전에 완독하고 오늘 오후에 있을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는데도 하나도 설레지 않는다면, 그건 다 월요일이기 때문. 그리하여 개가 짖는 월요일 새벽 (왜 B01 호에 사는 두 마리의 개들은 새벽에도 쉬지 않고 짖어대는 걸까?) 책들을 싣고 오늘도 배는 출발합니다.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we've still got time… (이 글을 쓰는 동안 한 마리의 개도 다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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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el handbags 2011-12-28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이대로라면 한글이라고 영원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얘기다.

문득 터키에 여행차 갔다가 우연히 만난 현지인이 "터키어를 배워라. 너는 한국인이고, 한국어랑 터키어는 같은 우랄-알타이 어족이니까 쉽게 배울 수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