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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서 플라톤, 조르조 아감벤에서 가라타니 고진까지(!)
동서양 철학자 112명이 56개의 주제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912쪽의 방대한 분량에 현대 철학자까지 아우르고 있는
<철학 vs 철학> 예약판매 이벤트가 시작 되었습니다.
하루 빨리 내용을 확인하고 싶을 뿐. 핰

그린비 출판사에서는 <철학 vs 철학> 출간에 맞추어
'철학성향 테스트'라는 이벤트를 진행하시네요.
동양편 서양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은근히 잘 맞는듯?

알라딘 이벤트 페이지는 '여기'를, 테스트를 하시려면 '저기'를 눌러주세요~
아래는 제 테스트 결과입니다. 후훗




감성적인 문필가 타입
| 센스, 감성, 열정
동물적 감각+논리적 이성까지 겸비한 당신은 욕심쟁이, 후후훗! 감각과 동시에 ‘쓰임’까지 고려하는 섬세함을 가진 당신. 동물적 감각을 중시하지만, 이 감각은 명확한 데이터를 토대로 나오는 것이다. 좋아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센스쟁이 타입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동물적 감각과 함께 빛나는 통찰력까지 가지고 있으니 어디 가서 미움 사기 십상인 타입+_+? 현대의 직업군에서 꼽자면 ‘디자이너’ 혹은 ‘설계자’에 가까운 이 부류의 철학자는? = 흄, 들뢰즈, 마르크스, 아감벤
『철학 vs 철학』에서는?
8장 어느 경우에 인간은 윤리적일 수 있는가? 흄과 칸트
15장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헤겔과 맑스
26장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 중 어느 것이 중요할까? 데리다와 들뢰즈
28장 정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슈미트와 아감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동시에 유명한 회의주의자.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의외로 흄이 애덤 스미스의 절친이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또 한 가지, 그가 '회의주의자'가 된 이유는 '시니컬'하거나 '허무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그는 단순히 광대하게 펼쳐진 우주 앞에서 지적 겸손함을 보일 줄 아는 사람일 뿐이었을 수도 있다. 그가 살던 당대에는 초월적인 신 없이 평화와 행복을 상상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아주 유쾌하고 평온한 상태에서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죽어 갔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성'에 꽤나 집착하는 태도를 보인 적도 있었는데, 결국엔 '이교도'라거나, '무신론자', '회의주의자'(이건 사실 꽤 모욕적인 표현이다)라는 악명을 얻었다. 하지만 후대에 칸트에 의해 정직한 사유가로 재평가되고, 들뢰즈에 의해 감각의 위대함을 보여 준 철학자로 높이 평가받았으니, 니체 말대로 "어떤 사람들은 죽은 후에야 다시 태어난다"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관련된 책]
맑스
20세기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사상가를 딱 한 사람만 꼽으라고 한다면, 거의 99%는 이 사람을 꼽을 듯. 적을 구워 먹어 버릴 것 같은 열정으로 글을 써 댔던 이 사람은 '천재'였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정말 놀랄 만큼 면밀한 분석을 수행했으면서도 문학적인 감수성은 단 한번도 포기하지 않는다. 맑스의 책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꼼꼼하고 정밀한 분석은 단순히 똑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테지만, 그걸 가지고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인류 역사 전체를 살펴도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맑스의 일상은 가끔 '혼돈 그 자체'였다고 한다. 가장 수입이 적을 때조차 당대의 중산층에 상응하는 정도였는데, 지출의 무능력과 사치로 인해 먼저 죽은 딸의 관조차 장만할 수 없었다고 한다. 생활에서도 유능한 '천재'란 정말 없는 것인가?
[관련된 책]
들뢰즈
"그는 너무나 굳센 나머지 실망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이 허무주의적인 세기말에도 그는 긍정적이었다. 질병과 죽음에도 역시. 왜 나는 과거에 그에 대해서 떠벌렸던가? 그는 웃었다. 그는 웃고 있다. 그는 여기 있다. 슬퍼하는 건 너야, 멍청아. 그가 말한다." (들뢰즈의 죽음 이후 『르몽드』에 실린 리오타르의 추도문)
들뢰즈에 대해 그 자신의 발언을 제외하고, 이렇게나 그와 그의 사유를 잘 표현한 말이 있었던가? 긍정적 삶의 대가였던 들뢰즈는 그 어떤 '부정적인 것의 긍정성'도 용납하지 않았다. 부정적인 것은 그냥 부정적인 것일뿐 그로부터 긍정적인 무언가가 나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좋아하는 '반성'을 엄청나게 경멸한다. 반성은 우리를 위축시킬 뿐이다!
들뢰즈는 '글쓰기' 그 자체에 관해서도 아주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보통의 철학자들과는 다른 형식의 글쓰기 실험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책은 '이해'할 수 없다.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낄 수'는 있다는 것이다! 깊은 밤 고원 위에서 별 밭을 우러르는 신비한 체험을 하고 싶을 때 그의 저서 중 아무 곳이나 펴 놓고 읽어 보길 바란다. 말들의 미로 속에서 오바이트하거나, 오만가지로 펼쳐지는 생각의 잔치를 볼 수 있으리라!
[관련된 책]
아감벤
'벌거벗은 사람들', 오직 생명 그 자체만 남은 사람들. 고대 그리스 철학의 개념들을 현대사회를 철학적으로 독해하는 데 활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똑똑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은 하나의 사태를 다른 것들과 연결하는 통합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태생의 이 철학자는 그렇게 역사 속에 묻혀 있던 '호모 사케르'를 현대로 소환함으로써, 현재의 '호모 사케르'를 드러낸다.
방랑하는 사람들, 자격 없고 소속 없는 사람들을 통해 자유와 대안까지 그려 볼 수 있을까? 더 자세한 내용은 『철학vs철학』이나, 아감벤의 다른 저서를 보시길! 어쨌든 우리 삶에서 '정치'를 사고할 때 주목해야 할 철학자임에는 틀림없다는 사실!
[관련된 책]


무위의 실천가
| 실천, 해탈, 공空, 무위
'무위'한다고 하여, '실천'과 등지라는 법은 없다. '무위' 자체가 실천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 타입의 사람들을 '무위의 실천가'라고 부를 수 있겠다. 세상을 관통하는 일관된 법칙은 없다. 세계는 변화무쌍, '변화' 자체가 천하의 도道이다. 그런 변화의 격랑을 마음대로 넘나들면서도 휩쓸리지 않는 지고한 자유인은 바로 이 타입의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모든 존재를 향해 자신을 개방하라! 세계 만물, 각각에 우주가 들어있나니! 이 타입의 동양사상가는? = 싯다르타, 나가르주나, 장자, 원효
『철학 vs 철학』에서는?
2장 자아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아지타와 싯다르타
4장 도란 미리 존재하는 것인가? 노자와 장자
15장 깨달은 자가 바라보는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원효와 의상
18장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는 무엇인가? 장재와 주희
싯타르타
고타마 싯다르타는 모두가 알다시피 불교의 창시자인 붓다, 즉 석가모니이다. 그를 철학자로 볼 수 있을까? 사상사의 맥락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실천가'였던가? 역시 그렇게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불교 교리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싯다르타가 불교의 법을 설했던 이유도 중생들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랐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실천'에 관한 사상이 겨냥하는 것은 사실 모두 이것에서 비롯된다. 이 부류의 철학자들 중에서도 싯다르타만큼 이 분야에 있어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은 없다.
[관련된 책]
장자
장자와 관련된 일화는 너무나 많다. 『장자』 자체가 이야기들의 묶음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장자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알고 싶다면 장자를 직접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렇지만, 워낙 알쏭달쏭한 말들이 많아서 그 속에 담긴 결을 이해하려면 좋은 해설서도 한 권쯤 필요할 것이다. 장자의 정확한 생몰연대는 미상이다. 흔히 그의 사상을 '도피적'인 것으로 알고 있거나, '신선놀음'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데, 이것은 그에 대한 철저한 오해에 기인하는 것이다. 중국의 대동란기였던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무수한 이론들처럼 그 역시 실천적인 이유에서 그의 사상을 전개시켰다. 부, 명예, 권력 등 단일한 척도에 의해 좋은 것으로 취급되는 것들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 그것을 통해 무위의 삶, 자유롭게 벗어나고 재구성되는 삶을 말한 그의 철학은 삶의 적극적인 방식을 말한 것이지, 삶으로 부터의 도피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싯다르타와 더불어 이 계열의 철학자들의 대표격이라고 볼 수 있다.
[관련된 책]
원효
이렇게 이름 난 사람이, 신라왕실과도 일정한 관계가 있었던 사람이 '무위의 실천가'일 수 있을까?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사상사적인 맥락에 봤을 때 그의 사상은 충분히 그럴만 한다. 원효가 종국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깊은 사유, 폭넓은 지식이 아니었다. 그는 '생각과 논의조차 필요없을 정도의 실천'을 추구했던 사람이다. 그 유명한 해골물 이야기는 직관적으로 알고, 생각하기 전에 그것을 실천하고야 하는 그의 사상과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늘 민중들과 함께 춤추고, 희노애락을 나눴던 그의 면모를 만나보자!
[관련된 책]
장재
장재는 주희보다 약간 앞선 연대의 사람으로, 송나라 시대에 성립된 신유학에 결정적인 기초를 제공한 사람이다. 그는 유학자로서, 향후 유학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지를 명확하게 주지하고 있었다. 당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강력한 세력을 확장해온 불교와 민간에 널리 전파되어 있는 도가 사상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유학에 미래가 없다고 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그러한 자신의 생각에 오래전부터 중국에 전해진 전통적인 자연관, 즉 기의 흐름을 통해 세계의 유, 무가 나뉜다고 보는 견해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시대를 통찰하는 지혜와 정확한 판단력, 더불어 전통과 현대를 결합하는 상상력까지 ‘지성인’이 갖춰야 할 모든 덕목을 갖췄다고나 할까?
[관련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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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철학자만 철학하는 더러운(?) 세상! 나의 철학 성향은?
    from 그린비출판사 2010-02-10 20:37 
    네~ 소위 심리 테스트들은 정말 빤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하게 됩니다. 이걸 철학적으로 좀 오버해서 풀이 하자면 '재인'(recognition)이라고 한다네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는 몰라도 대략 감感은 잡고 있으니까요. 이런 테스트들의 매력이란 바로 그렇게 모호하게 부웅 떠 있는 것 같은 자신에 대한 감을 조금이나마 구체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표현'의 문제도 대단히 중요하죠....
 
 
하이드 2010-02-08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벤트 페이지에 빈페이지 떠요

키보드 2010-02-08 11:43   좋아요 0 | URL
이제 잘 뜹니다. ^^

하이드 2010-02-08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링크에러 난거 수정했나보군요.

활자유랑자 2010-02-08 18:14   좋아요 0 | URL
아~ 웹업데이트가 되기 전에 올렸어요. ㅎㅎ
게을러서 죄송합니다;

닉네임 2010-02-11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랑 서양철학 성향이 똑같으시네요.

활자유랑자 2010-02-16 19:16   좋아요 0 | URL
같이 스터디 모임이나 조직?; ㅎㅎ

돈케빈 2010-02-13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난하십니까?
동서양 모두 저와 동일 ㅋㅋ

활자유랑자 2010-02-16 19:1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저는 은평구에 살고 서른살이에요. ;

mercizizou 2010-02-15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 두 상반되는 성향이 다 저한테 있다는데..

활자유랑자 2010-02-16 19:16   좋아요 0 | URL
원래 인간이라는 게 그런가봐요. ㅎㅎ
 


현대 사회와 인간 본성을 진화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인 <오래된 연장통> 출간을 기념하여 지난 2010년 1월 21일(목) 저녁 7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강남출판문화센터에서 특별한 대담회가 열렸습니다. <오래된 연장통>의 저자이자 한국인 최초의 진화심리학자인 전중환 박사와 인터넷상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책벌레(파워블로거)들이 모여 진화심리학에 대해 궁금한 사항들을 묻고 답하며 ‘인간 본성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 자리였습니다.

대담회는 도서 평론가이자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2.0>의 저자인 이권우 선생님의 사회로 진행이 되었고, <로쟈의 인문학 서재>의 저자이자 인터넷 서평꾼인 이현우 선생님(인터넷 필명 로쟈)께서 파워블로거 및 소장 인문학자를 대표하여 전중환 박사와 불꽃 튀는 대담을 나누셨습니다. 두 분의 대담 이후에는 파워블로거들이 직접 저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자료 제공 : 사이언스북스 편집부



간략하게 저자가 <오래된 연장통>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본격적인 대담이 시작되었습니다.


‣ 전중환(저자): 이 책은 APCTP(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에서 발행하는 웹진 '크로스로드(Crossroad)'에 연재된 글들을 바탕으로 새롭게 씌어졌습니다. 진화심리학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기존에 번역 출간되어 있는 진화심리학의 묵직한 입문서(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 등)들과는 차별화된, 진화심리학의 응용적인 측면을 주로 다룬 책입니다.

즉 진화심리학적인 시각이 어떻게 전형적인 인간의 심리학적인 현상뿐만 아니라 유머, 도덕, 종교, 예술, 사회 문화 현상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이 되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아직 많이 소개가 안 되었지만 그동안 진화적인 시각이 여러 분야들에 응용, 융합되면서 많은 새롭고 재미있는 분과 학문들이 탄생했습니다. 재미있게 공부하고 연구했던 내용들을 국내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이 책을 썼습니다.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대표 책벌레답게 국내에서는 아직 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소개조차 되지 않은 1990년대에 이미 해외 언론 매체를 통해 진화심리학을 접하시고 <도덕적 동물>을 필두로 진화심리학이나 사회생물학 관련 저서들이 나오는 즉시 구해서 읽으셨다고 합니다. 진화심리학에 대해 평소 관심이 대단하신지라 이번에 출간된 <오래된 연장통> 또한 무척 꼼꼼히 읽으시고 진화심리학과 관련해서 궁금했던 사항들을 다수의 질문지로 준비해 오셨습니다.


‣ 이현우(로쟈): 국내에는 진화심리학이 주로 연애나 살인 등과 관련된 번역서들이 많이 나와 있어서 그쪽 분야들을 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실제 현재 연구 경향은 어떤지, 그리고 앞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는 무엇이 있는지요?

‣ 전중환(저자): 진화심리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는 분야가 짝짓기나 협동 등이고, 그에 비하면 덜하지만 순위나 우열 행동, 공포 같은 물리적 환경에 대한 적응들에 대해서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소개되어 있지만 문화에 대해서도 진화적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고요. 흔히 진화심리학이 인간 보편에 대해서만 연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격이나 지능 같은 개인들 간의 차이에 대해서도 최근 활발히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이 앞으로 보다 발전하기 위해서 풀어야 할 과제는, 사실은 공부해야 할 게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진화심리학이 진화생물학과 영장류학, 인류학, 인지과학, 뇌과학 등 여러 학문 분야들이 한데 모여 인간 본성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범학문적, 통섭형 과학이다 보니 진화심리학적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학문들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합니다.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은 것이죠. 사실은 진화심리학자들도 이를 어떻게 교육 과정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여전히 인간과 관련해서 생물학적 설명이 조금만 들어가도 유전자 결정론을 떠올리며 그것을 즉각 위험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생물학 공포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게 최대 과제가 아닌가 합니다.

‣ 이현우(로쟈): 유전자 결정론을 말씀하셨는데, 진화심리학과 관련해 가장 흔히 등장하는 비판이 바로 “진화심리학도 환경보다는 본성 내지는 유전자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유전자 결정론의 일종이 아닌가.”일 듯한데요, 이는 먼저 사회생물학에 대해 제기된 비판이었지요. 다윈주의 우파에 악용되기도 한 것인데, 말하자면 강간이나 폭력 같은 것도 인간 본성 안에 있는 것이니까 그런 식의 본성을 강조함으로써 현재 사회질서를 옹호하는 데 일조한 것이 아닌가라는 비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가장 흔한 오해니까 이에 대해 해명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 전중환(저자): 예를 들어, 남자들이 예쁜 여자랑 바람피우게 하는 형질이 있다라면 진화심리학이나 사회생물학은 그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모든 오해가 비롯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생물학자나 진화심리학자들도 바람피우는 일과 같은 복잡한 행동을 하나의 유전자가 결정한다고는 결코 생각지 않습니다.

“어떤 A라는 형질이 있다면 A라는 형질을 결정하는 A라는 유전자가 있다, 자, 설명 끝!”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유전자 결정론이지요. 그러나 바람을 피우는 것과 같이 복잡 정교한 형질이라면 그것이 과거의 진화적 환경에서 어떻게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진화심리학입니다. 개체 발달의 차원에서도 개인의 일생을 통해 개인의 행동적인, 심리적인 측면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너무나 당연히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의 영향을 받습니다. 유전자 중심의 관점을 중시하는 이유는, 종이나 생태계 차원이 아니라 유전자 수준에서 수백만 년, 수억만 년이라는 거대한 스케일 아래 자연선택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강간이나 폭력을 자연적인 이유만으로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과학은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지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진을 연구함으로써 지진이 일어나기에 앞서 대피하거나 방제하려고 하는 것처럼, 진화심리학자들도 강간이나 폭력 같은 사회악을 제거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어떠한 진화적 근거를 갖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연구하는 것입니다.





진화심리학과 관련해서 가장 흔히 제기되는 비판이 유전자 결정론이다 보니, 이에 대해 사뭇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들이 오고갔습니다. 그리고는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로 옮아갔습니다.  


‣ 이현우(로쟈): 이 책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윌리엄 제임스의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본능이 더 적어서가 아니라 더 많아서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라는 문장을 인용하면서 공감을 표하신 부분이었습니다. 이러한 본능은 복잡한 적응의 산물이다, 즉 인간 본성의 특정 측면이 어떤 적응적인 이득을 갖고 있고 그래서 진화되어 왔다라고 설명하셨거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적응의 산물도 있고, 일종의 부산물, 내지는 부작용도 있다고 책에 쓰셨습니다.

예를 들어 스티븐 핑커는 음악이 부산물이라고 했다지요. 책을 읽거나 쓰는 것도 마찬가지로 부산물이라고요. 즉 인간은 책을 읽거나 쓰기 위해 진화되어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연 음악이나 책이 없는 인간을 우리가 오늘날 상상할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습니다. 적응의 산물과 부산물을 식별할 수 있는 어떤 기준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가령 책에서 종교도 부산물, 부작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인간의 본성이 바뀌지 않는 한 종교도 영원할 것이라고 언급하셨지요. 제거될 수 없는 부산물이라면 인간의 본질적인 특징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 전중환(저자): 본능이라는 말이 워낙에 고정적이고 변화 불가능하고, 진화가 덜 된, 덜 떨어진 것의 의미로 기존에 쓰여지고 있어서 저는 최근에는 잘 안 쓰려고 하는 편입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기존의 사람들이 생각하던 의미가 아니라, 말하자면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과 같은 의미로 본능을 생각했습니다. 진화의 결과에 의해서 우리 종에 속한 모든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갖게 된 신경 회로가 본능이라는 것이지요. 즉, 진화심리학자들이 본능이라는 단어를 쓸 때에는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을 뜻합니다. 스티븐 핑커가 ‘언어 본능’이라고 이야기했을 때에는 언어가 자연선택에 의한 생물학적 적응이라는 의미인 것이지요.

적응과 부산물을 구별하는 기준은, 적응은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자연선택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것이니까 책에서도 썼듯이 설계상의 특질을 보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종교가 적응이라면, 그래서 만일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숭배하기 위한 기작에 의해 형성된 본능이라면, 전 세계 모든 종교들에서 자기들이 숭배하는 신을 윗사람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현상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산물은 반면에 그 자체로는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진 않지만 우연히 결부된 것을 말합니다. 탯줄은 엄마가 자식에게 영양분을 주기 위한 기능이니까 즉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던 적응입니다. 그러나 탯줄이 있었던 자리인 배꼽은 어떠한 설계상의 특질도 보이지 않는 부산물인 것이지요.

‣ 이현우(로쟈): 더불어 적응의 부산물과 관련해서 오작동이라는 것도 있는 것 같던데요. 예를 들어, 질투라는 감정을 진화의 유력한 산물로, 즉 자신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워 유전적인 손실이 발생하는 것을 미리 예방해 주기 때문에 진화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방의 효과가 있는 반면, 의처증이나 의부증처럼 과도하게 오작동이 되어서 오히려 이혼과 같은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작동적인 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전중환(저자): 오작동도 사실 중요합니다. 진화심리학이 강조하는 바가, 인간이 진화해 온 과거의 환경과 현대의 환경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포르노그라피나 마약이나 게임에 대해 중독 현상들이 생겨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여러 방향으로 오작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단 한 가지로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는 방금 말씀드린 것과 같이 과거에 진화해 온 환경과 다른 새로운 낯선 환경에 처하게 되면서 오작동이 되는 경우입니다. 과거에는 단 것에 대한 선호가 필요한 열량을 섭취한다는 점에서 적응적일 수 있었으나 24시간 편의점과 카페 등에서 손쉽게 단 것을 구할 수 있는 현대 환경에서는 오히려 비만과 같은 질병을 유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른 의미에서의 오작동도 있는 듯합니다. 암컷 고릴라가 우리에 떨어진 인간의 아기를 잡어먹기는커녕 자기 아기로 오해해서 다정스럽게 보살피는 바람에 무사히 구출할 수 있었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의미에서의 오작동인 것이지요. 원래는 고릴라의 아기를 잘 보살피게끔 진화된 고릴라 어미의 심리 메커니즘이 유사한 인간 아기에 대해서 오작동을 한 것입니다.

심리적인 적응이 모든 상황에서 완벽하게 적응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평균적으로 적응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잘못 작동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작동과 문화를 관련지은 진화심리학적 논쟁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사회자인 이권우 선생님께서 문화, 문명이 인간 정신의 오작동인가라는 질문들을 던지셨고 이에 대해 전중환 박사는 오히려 문화의 많은 경우에서 적응이라고 답을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멋있다고 생각하는 패션이나 말버릇 등을 따라하는 심리 메커니즘도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 이현우(로쟈): 오작동과 관련해서 보충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아이돌이나 연예인에 열성적인 팬덤 현상이 흔히 나타나고 있는데요, 이는 일반적으로 예쁜 여자나 잘생긴 남자에 대해 갖고 있는 선호가 오작동이 되는 경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내 주변에 있는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에 나와는 전혀 이해관계가 없지요. 진화심리학 책을 읽고 책 소개를 하는 강연에서 오작동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는데요, 이게 맞게 설명을 한 것인지요?  

‣ 전중환(저자): 네, 정말 잘 설명하셨습니다. 실제 우리 마음은 기껏해야 100명에서 200 정도의 혈연 중심의 소규모 수렵채집사회에서 잘 작동하게끔 설계되었습니다. 그 옛날에는 김태희처럼 정말로 비정상적으로 예쁜 사람은 100명 정도로 이루어진 집단 내에서, 그리고 가끔 이웃 집단 사람들을 만나는 상황에서는 정말 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처럼 텔레비전을 통해 너무나도 예쁘고 멋진 연예인들을 일상적으로 만나는 경우에 오작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연예인 가십 기사에 열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뒷담화를 즐기는 것 자체는 적응적입니다. 과거 소규모 사회에서는 같은 동네에 사는 오늘날의 김태희와 동급의 마을 최고의 미녀가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더라 등등은 매우 중요한 정보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대 사회에서는 마찬가지로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나에게 전혀 도움도 안 되는 연예인의 가십에 열광하는 오작동을 낳은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흔히 부딪히는 각종 사회 문화 현상들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설명들로 대담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진화는 아주 오래전에 지구상에서 사라진 티라노사우루스의 발톱을 설명하는 데에나 쓰일 구닥다리 개념이라는 통념을 뒤집고 우리와 아주 밀접한 일상사들까지 명쾌하게 설명하는 매우 유용한 개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소장 인문학자이자 진화심리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신 이현우(로쟈) 선생님의 깊이 있는 질문과 유머러스하고 패기 넘치는 젊은 진화심리학자 전중환 박사의 성의 있는 답변으로 <오래된 연장통>이라는 책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진화심리학 전반에 대해 개괄하는 무척 유익한 대담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두 젊은 인문학자와 진화심리학자의 만남이 앞으로 진화심리학과 인문학의 화해를 모색하는 데 주춧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이현우(로쟈): 저는 평소에 진화심리학이 빨리 더 많이 소개되고 진화심리학적 인식들이 더 많이 공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현재의 인문학에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문학자들이 인간에 대해 약간은 거품이나 편견 같은 것들을 갖고 있는데 그것들을 좀 걷어 내야지 인문학도 조금 더 진전된 앎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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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5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8 0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l 2010-03-24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음 두 가지 수학진리를 대한수학회의 부당업무 관련 죄인, combacsa(그네고치기), melotopia(snowall), Pomp On Math & Puzzle(박부성) 등은 권위만을 앞세워 부인하는 잘못을 범하였던 것이다.
첫째, 다음 세 가지 공식들은 모든 피타고라스 수를 구할 수 있다.
X=(2AB)^(1/2)+A, Y=(2AB)^(1/2)+B, Z=(2AB)^(1/2)+A+B.
상기 공식은 c^2=A=Z-Y, 2d^2=B=Z-X 일 때 X=2cd+c^2, Y=2cd+2d^2, Z=2cd+c^2+2d^2 같이 된다.
위 공식은 c+d=r 일 때 X=r^2-d^2, Y=2rd, Z=r^2+d^2 같은 기존 공식이 된다.
둘째, [2^{(n-1)/n}+……+2^(2/n)+2^(1/n)](자연수)^{(n-2)/n} 과 (자연수)/(무리수) 는 항상 무리수가 된다.
최미나 010-7919-8020.
 

바다 건너 들려온 소식에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해 이후 출판사 편집장 님의 글을 옮깁니다.
게재를 허락해주신 이후 출판사에 감사 드립니다.

 



2007년 1월, 그러니까 꼭 3년 전이네요.

아이티의 대통령이었던 아리스티드가 쿠데타로 쫓겨난 뒤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자기 국민들을 향해 쓴 편지글을 모은 책 <가난한 휴머니즘>을 편집하고 있었던 것이 말입니다.

절망하지 말라고,

우리의 가난은 부끄럽지 않다고,

'존엄한 가난'임을 잊지 말자고

분노와 슬픔, 온화함과 사랑으로 가득한 이 책을 만드는 동안

도대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이 작은 나라가 제 심장 가까이에 살아 숨쉬기 시작했더랍니다.

 



 

아이티는 카리브 해에 있는 작은 나라로 남북아메리카를 통틀어 가장 가난한 나라입니다.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며, 면적 27,750평방킬로미터에 인구는 900여만 명에 이릅니다.

1인당 국민총생산액은 1,600불(2005년 기준)에 불과하지요.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국민 대다수(80퍼센트)가 로마 가톨릭교회에 다닙니다.

수도는 포르토프랭스이고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쓰지만

대부분의 아이티 민중들은 크리올 어를 씁니다.

문맹률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19세기, 서반구 최초의 노예 해방 혁명으로 독립을 쟁취했고,

1492년에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프랑스 식민지가 된 뒤

사탕수수 농장 운영을 위해 수많은 흑인 노예가 수입되기도 했습니다.

1804년 독립 선언 뒤에도 내란과 독재에 시달렸고,

1915년부터는 사실상 미국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나라입니다.

1991년 한 해 동안에만 무려 네 명이 대통령이 됐다가 쫓겨나는 등

정치적 안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나라입니다.

 



 

바로 그 아이티에 강진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희생당한 사람이 수십만 명이라고도 하고, 수천 명이라고 합니다.

언론 보도가 이렇게 어이없이 다른 것은 그쪽 상황이 파악조차 힘들 정도라는 것으로 읽힙니다.

리히터 7.0의 강진이었다고 하는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겨우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어른이 장난 삼아

"얘야, 넌 술이 좋으니, 아니면 콜라가 좋으니?"

하고 묻자

"나는 주스가 좋아요."

라고 단호하게 말할 줄 알았던 포르토프랭스 거리의 아이들도 그 지진으로 다치거나 죽거나 했겠지요.

소용없는 일일 줄 알면서도,

그곳 사람들의 안녕을 빌어 봅니다.

수십만 명이 아니라, 그저 아주 적은 숫자의 사람들만 희생당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가난한 휴머니즘>을 읽은 제 친구의 신랑은

이 책을 거래처 사장에게 선물했다고 합니다.

FTA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 분명히 그 사장의 생각이 바뀔 거라고요.

 

"그래서 어른들이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일하는 동안,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놀 수 있는 하루를 만든 겁니다.

넌 가난하니까 물놀이할 자격도 없다고,

누가 감히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습니까?..."

 

제 친구는 이 대목에서 엉엉 울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뱃속에 아기가 들어 있는 때여서 더 마음이 예민해져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 아이가 나와 살아야 하는 세상이

가난 때문에 상처받는 아이들이 있는 세상이어서는 안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을 겁니다.

 

책을 만드는 동안 이 답답한 나라의 운명에 한숨만 쉬었던 저는

책이 나오고 한참 지난 뒤에,  

제 친구가 엉엉 울었다는 대목을 다시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습니다.

슬픔의 전염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아리스티드가 대통령이었을 때는 희망이 있기도 했습니다.

1953년 7월, 아이티의 항구도시 포르트살루에서 태어난 아리스티드는

1980년대에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가장 큰 빈민가에서

정치적으로 바른 소리를 잘하는 신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30년 동안 아이티 민중을 괴롭히던 뒤발리에의 독재 정치에 대한 용기 있는 비판,

아이티 민중의 희망을 담고 있는 메시지,

 개개인의 존엄에 대한 확실한 주장은 수많은 사람들을 아리스티드의 교회로 이끌었다지요.

아리스티드는 1990년, 아이티 최초의 민주적 대통령 선거에서

67퍼센트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다가 군사 쿠데타로 강제로 실각,

망명길에 올라야만 했습니다.

1994년 10월 15일에야 유엔의 도움을 받아 16개월 남은 대통령 임기를 마치기 위해

아이티에 돌아왔고, 2000년 선거에서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2003년 2월 미국이 주도한 쿠데타 세력이 포르토프랭스의 대통령 관저를 무단 점거한 뒤,

납치당해 중앙아프리카로 가야 했습니다.

부시 정부는 아리스티드를 속죄양으로 삼아,

아이티의 사회, 경제적 상황을 악화시킨 주범이라고 몰았습니다.

아리스티드는 대통령에 재임하는 동안 최저임금을 두 배로 인상시켰고,

정부 보조금을 지급해 저곡가 정책을 실시했으며,

학교 건립과 문맹률 저하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민중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2007년 현재, 아리스티드는 아직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지구화에 맞서

아이티의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한 아리스티드 재단’과

‘라팡미 셀라비’를 통해 가난한 민중을 돕고 있습니다.

아리스티드가 쫓겨나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 지진에 아이티 정부가 좀 다르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이티 지원을 위해 사람도, 물품도 마구 보낸다는데

이미 미국이 과거에 아이티에 저지른 잘못을

어떻게 바로잡을 건지 몹시,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아이티 사람들이 얼른 이 지진을 딛고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난 주스가 더 좋아요."

했던 그 아이들이 힘을 내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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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6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활자유랑자 2010-01-17 22:11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수정했습니다. ㅜ_ㅜ
저는 사실... 게으름뱅이로 소문난 사람인 걸요.

중국산팬더 2010-01-27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활자유랑자 2010-02-08 02:21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그동안 좋은 책을 소개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_ㅜ
 


20대여, 쫄지 마, 상상해 봐!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생태요괴전>으로 돌아온
경제학자 우석훈 인터뷰




20대의 마지막을 보내는 가을. 찬바람 불고 낙엽 지는 대학교 캠퍼스에서 우석훈 박사를 만났다. 20대에게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대신 ‘공포 경제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 하지만 그는 여전히 명랑을 모토로 삼고, 잘난 ‘척’하지 않으며, 20대 보다 20대를 더 믿는 경제학자, 그대로였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있을까?
(인터뷰 : 알라딘 금정연)


알라딘 : 지난 번 인터뷰는 5월이었죠. 그 간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우석훈 : 근황이랄 건 없고… (웃음) 다만 ‘한국경제대장정’이라고 이름 붙인 시리즈를 내기로 했으니까, 끝은 내야하니까, 그걸 붙잡고 있었죠. (‘한국경제대장정’은 기존에 ‘한국경제대안’이라는 시리즈 이름으로 출간 되었던 <88만원 세대>, <조직의 재발견>, <촌놈들의 제국주의>, <괴물의 탄생>의 4권과 얼마 전 동시 출간된 <생태요괴전>, <생태페다고지>의 ‘생태경제학’ 시리즈를 포괄하는 12권짜리 기획) 올해는 사실 1년 내내 슬럼프였어요. 여름방학 이후로 겨우 정리를 하고 있는 상태에요.

알라딘 : 슬럼프라고는 하시지만, 이번에 무려 세 권의 책이 한꺼번에 출간 되었습니다. 흔한 일은 아닌데, 혹 사연이 있나요? 보통 이런 경우에는 출간일정을 조정하기도 하는데.

우석훈 : 원래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가 더 늦게 나올 예정이었어요. 원고를 먼저 넘긴 것은 ‘생태경제학’ 시리즈니까. 그런데 자꾸 출간이 늦어져서 추월을 한 셈인데… 저는 상관없어요. 책 판매에 대해서는 별 관여를 하지 않으니까. 판매는 출판사 소관이죠. 저는 그냥 되는대로 하고, 안되면 말고… (웃음)

알라딘 : 2007년 <88만원 세대> 이후 모두 8권의 단행본을 출간 하셨습니다. (* 단독저작 기준. <조직의 재발견>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의 개정판이므로 제외) 강준만 교수를 제외하곤 국내에선 독보적인 생산성입니다. 비결이 있으세요?

우석훈 : 원래 다 머릿속에서 계획되어 있었던 책이니까요. 자료도 이미 다 준비되어 있었던 상태고. 그 전에 해놓았던 것들을 은퇴 준비하며 정리하는 건데… 사실 굉장히 느린 셈이에요. 기자가 이렇게 작업하면 아마 신문사에서 쫓겨나겠죠. (웃음) 써야할 것들, 빨리 정리해버려야 할 것들은 아직도 이만큼 쌓여있어요. 결코 빠른 게 아니에요.

알라딘 : 여러 우여곡절 끝에 출간 된 <88만원 세대> 이후,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C급 경제학자라는 자평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명실상부한 A급 저자가 되신 것 같습니다. 생산성이나 독자호응 모두에서요. <88만원 세대>는 ‘꿈의 10만부’를 넘기기도 했고요. 자평을 하자면?

우석훈 : 우여곡절이 많았죠. 이 시리즈가 재미있는 게,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는 거. 우스운 알, 슬픈 일… 크고 작은 사연들이 많아요. 주로 슬픈 일이지만. <88만원 세대>는 처음 표지를 바코드를 넣어 디자인했더니 ISBN 대신 그 바코드를 인식해서 표지를 엎었는데, <촌놈들의 제국주의> 할 때도 초판 인쇄가 잘못 되어서 한 쇄를 엎고 전부 다시 찍기도 하고. 시리즈 내내 일일이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었어요. 이게 마가 낀 건지 뭔지 정말… 지금은 다른 생각 안하고 그냥 편하게만 가자, 생각이 들 정도로. (웃음)

A급이라고 말씀 하셨는데, 사실 팔릴만한 것을 앞으로 배치했던 거죠. <88만원 세대>처럼 개념을 제시하는 책을. 뒤로 가면 갈수록 더 처절해지겠죠. 나는 잘하는데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하는 게 힘들어요. 앞으로 남은 책들은 모두 세부 주제로 깊숙이 들어가는 책인데, 거의 안 팔릴 것 같아요. (웃음) 최대한 쉽게 한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을 새롭게 알리는 일은 역시 어려워요.

알라딘 : 하지만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굉장히 쉽게, 잘 읽혔어요.

우석훈 : 이 책은 정말 작정하고 쓴 거예요. 쉽게, 재미있게. 삼국지 얘기도 넣고, 공각기동대 얘기도 넣고. 그런데 자꾸 이 책을 읽은 대학생들이 울었다고 해서 걱정이에요. 아니, 이렇게 재미있게 썼는데 자꾸 울면 어쩌자는 거야. (웃음) 아마 다들 자기 이야기라고 공감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마지막에 친구들의 이야기도 있고.

알라딘 :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도 그랬지만 특히 이번에 출간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생태요괴전>, <생태페다고지> 이 세 권은 모두 표지가 인상적입니다. 도저히 사회과학 서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표지. 의도하신 바가 있나요?
















우석훈 : 표지 작업에는 관여를 안 해요. 다만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같은 경우에 출판사에서 시안 몇 개를 보여주셨는데, <88만원 세대> 표지를 응용한 디자인들은 제가 제외를 시켰죠. <88만원 세대>가 표지가 너무 암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이번엔 좀 밝게 가보고 싶었어요. 샤넬에 관한 이야기도 본문 중에 나오고.

<생태요괴전>과 <생태페다고지> 같은 경우에는, 사실 좀 파격적이죠. (웃음) 그래도 처음에 컴퓨터 모니터로 시안을 봤을 때보다 실물이 훨씬 낫더라고요. 좋아요, 개인적으로는. 꼴통 코드가 확실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인데, 망하려면 확실히 망하는 거지 무난하게 맞춰서 하는 걸 안 좋아해요. 만약에 누가 저한테 “황당한 거하고 무난한 게 있는데 뭘 하겠어요?”라고 물으면 전 무조건 황당한 걸 하겠다고 해요. 재밌잖아요.

알라딘 : <혁명은 이렇게>의 핵심 메시지는 쫄지 마, 상상해, 믿고 나누어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사회적으로 만연한 상황에서 어떻게 믿음과 나눔이 시작될 수 있을까요? 얼마 전 출간 된 로버트 액슬로드의 <협력의 진화>에서는 그 물음을 게임이론을 이용해서 설명하고 있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현실은 다르지 않을까요?


우석훈 : 게임이론의 틀을 가지고 말하자면, 모두가 이기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상황에서 협력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일단 다른 전략을 쓰는 돌연변이들이 생겨나야 해요. 이기적인 전략들이 연속성에 일단 단절, 작은 균열이 생겨야 하는 거죠. 그리고 그룹핑이 필요하고요. 혼자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으니, 돌연변이들끼리 서로를 보호해주는 모임.

그걸 저는 ‘마을’이라고 표현해요. 그런데 요즘 20대들에게는 마을, 고향 이런 것에 대한 정서적인 느낌이 없어요. 그래서 책에서는 그걸 ‘진법’이라고 표현한 거죠. ‘진법’은 <삼국지>를 많이 읽어서 그런지, 딱 알더라고요. 아무래도 <삼국지>는 논술필독도서니… (웃음)

알라딘 : 항상 책을 읽으면 적절한 비유를 통한 개념화가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는데, 전략적으로 의도하신 건가요?

우석훈 : 독자들이 잘 알고, 공감할 수 있을만한 걸 찾는 거죠. 사실 이번엔 <삼국지>가 아니라 <수호지>를 넣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수호지를 많이 읽지 않아서. 이번 책은 <삼국지>와 [공각기동대]를 많이 참고했어요. 본문 마지막에 ‘다치코마의 노래’(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 나오는 노래)를 넣은 것도,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구상은 처음부터 [공각기동대] 이야기를 많이 넣어 진행시키는 거였는데, 생각보다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이 적어서 뒤로 뺐어요.

<88만원 세대>도 원래는 셜록 홈즈를 넣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이름은 많이 알아도 정작 코넌 도일이 쓴 셜록 홈즈를 생각만큼 읽지는 않아서 보류. 그래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어간 거죠. 디킨즈는 몰라도 <크리스마스 캐럴>은 어렸을 때 한 번씩은 읽잖아요. 원래 제 취향은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건데… (웃음)

20대를 대상으로는 같은 텍스트를 놓고 이야기하기가 힘들어요. 베스트셀러도, 영화도, 드라마도… 하다못해 요즘 [선덕여왕]이 인기 있지만 그걸 또 다 봤다, 이건 아니거든요. 그게 20대의 특징이에요. 다 함께 보고, 들은 경험이 없는 것. 공통의 텍스트가 없다는 거요. 오히려 30~40대 아주머니들은 공통된 텍스트가 있어요. 그 분들을 만나면 드라마 이야기나 신경숙․공지영 작가의 소설 이야기를 하죠.

알라딘 : 일단 혼자는 못하고, ‘마을’(모임)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은 공감이 됩니다. 하지만 ‘마을’에 모이기만 한다면, 20대들은 아직 적절한 생산수단을 갖추지 못했는데, 결국 게토화 되고 마는 것 아닌가요?

우석훈 : 게토라도, 일단 20대 만의 게토를 만들라는 거죠. 처음엔 암울해 보일 수 있어도, 앞이 막막해 보여도, 결국 어느 순간 그곳에서 다양한 목소리, 상상력들이 나오기 시작할 거예요. 그게 바로 세상을 바꾸는 거죠. 지금 20대만을 위한 공간이 어디 있나요? 홍대? 홍대는 ‘(고기를) 굽고 싶은 거리’죠. (웃음) 대학로? 아니거든요. 일단 20대끼리 뭉쳐야 해요.

알라딘 :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중 ‘68혁명과 차티스트 운동’, ‘아직 씌어지지 못한 권리선언문’이란 제목의 장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간결한 메시지로 전달하자”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모래알처럼 쪼개지고 분화된 욕망들 사이에서, ‘우리’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요?

우석훈 : 기본권이죠. 생물학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라고 표현할 수 있어요. 지금의 20대들에겐 그게 정말 필요해요. 만약 10대한테 물어본다면, 그 친구들은 아마 ‘생리권’이라고 이야기할 것 같아요. 잠을 못 자게 하잖아요.

사실 제가 가장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은 보건권이에요. 아파도 치료받을 수 없는, 의료의 사각지대에 있는 20대가 의외로 많아요. 이런 것들이 무너지면 국가가 있을 이유가 없는 거죠. 무엇 때문에 세금을 내고,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하고… 명색이 국가라면 국민들을 좀 챙기라고, 밥은 먹이라는 거죠 밥은! (웃음)

알라딘 : 지난 인터뷰를 했던 때가 마침 재보궐선거 5-0 스코어를 기록한 직후였지요. 그때 말씀으로는 “일종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후 몇 가지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 지지도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우석훈 : 한마디로 대안세력이 망한 거죠. 사람들이 현 정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지금의 대세가 그대로 유지되는 거죠. 다시 ‘대세론’의 시대가… (웃음)

사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요. 경제가 어떨지는 아직 미지수이고, 이런저런 변수들을 고려하면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죠. 집권 여당이 생각하는 건 일본의 자민당 같은 장기 집권인 것 같은데, 그렇지만 어딘가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우석훈의 대안’이 궁금한 분들은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를…)
















알라딘 : 함께 일하는 동료의 질문입니다. 만약 촛불집회나 다른 시위 상황에서 ‘실력행사’를 해야 할 경우, 폭력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석훈 : 쉽지 않은 이야기죠. 제 생각은 일단,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은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는 거예요. 방화는 진짜 나쁜 거고. 유리창에 돌 던지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결국 거대한 권력 구조 앞에서, 어떻게 최대한 스펙터클하게 보여줄 수 있냐는 문제에요. 일종의 쇼가 필요한 거죠.

돌을 던진다고 할 때, 전경을 향해 던져야겠다면 맞지 않게 던져야죠. 정조준 해서 맞출 의도로 던지는 건 반칙이에요. 그러니 유리창을 향해 던지는 건, 사람도 다치지 않고 시각적인 자극이 크죠. 이런 퍼포먼스 형태의 폭력까지 다 막아버리는 건 너무하는 거죠. 핸드마이크를 허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다들 모여서 손에 핸드마이크 하나씩 들고 각자 하고 싶은 말을 떠들면, 그것 자체로 굉장한 효과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런 저런 것들을 다 막아버리면… 던질 수밖에 없는 거죠. 어떻게든 보여줘야 하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폭력으로 폭력을 이길 수는 없다는 사실이에요. 어떤 경우라도.

알라딘 : 10년 전 상상하던 자신의 모습이 있으세요? 아니면 10년 후 자신의 모습이나 대한민국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우석훈 : 10년 전이면 제가 서른둘인데, 개인적으로는 전혀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언제나 내 인생은 마흔 살까지 라고 생각했으니까. 그 이후는 생각도 안 해본 거죠. 그냥 지금 제 모습을 본다면… 글쎄요. 10대에서 20대, 20대에서 30대가 될 때는 굉장히 싫었어요. 그런데 서른다섯이 되니까 아… 그냥 모르겠다, 싫고 좋고를 떠나서 흰머리가 자꾸 나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 너무 늙었다, 이런 생각만. (웃음)

그런데 신기한 건, 마흔 넘으니 많은 게 바뀌어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어느새 중요하지 않게 되고, 기호나 취향도 바뀌고.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신기해요. 하나 바뀌지 않은 건 만화책은 여전히 재밌다는 거. 정말 좋아했던 책이나 영화도 지금 다시 보면 싫어지는데, 집에 있는 <미스터 초밥왕>은 언제 봐도 재밌더라고요. (웃음) 만화가 진짜 예술이에요.

사회에 대해서는 5년 전쯤에, 한국이 앞으로 힘들 것 같다 생각한 적이 있긴 해요. 지금 보면, 그때 그 생각이 거의 맞는 것 같은데, 지금부터 10년 후라고 하면 정말 모르겠어요. 한국은 너무 빠른 사회잖아요. 당장 다음 대선에 누가 여당 후보로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다만, 나쁜 미래가 무엇인지는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어요.

알라딘 : 20대들을 위해 책을 추천하신다면.

우석훈 : 문화를 생산하거나, 기획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움베르토 에코를 꼭 읽어야 해요. 인문서라고 하면, <로마인 이야기>말고도 로마에 대해 다루는 책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 중에서도 로마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를 다루는 책들을 읽으면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공지영 작가나 신경숙 작가의 책도 읽어야겠죠. 한국인이 말하는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텍스트를 통해 분석해 봐야 해요. 생산자․기획자의 눈으로. 문학계에서 한국을 이끌어가는 두 사람이잖아요. 베스트셀러는 안 본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고. (웃음)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결국 대중과의 대화에 성공했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뭘까? 어떻게 가능할까? 그 텍스트들을 분석함으로써 알 수 있는 거예요. 이 두 사람을 보면 여전히 책의 힘은 강력하다는 생각도 들고. 자신이 문화생산자 혹은 기획자가 되고 싶다면 바로 지금, 자기가 누구한테 이야기할 건지를 분명히 알아야 해요. 그렇게 하기 위해, 성공한 텍스트를 일종의 레퍼런스로 삼을 수 있는 거죠. 문화를 생산하고 기획하는 일은 지금 이 사회에서 충분히 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이에요. 물론 모두가 구원받을 수는 없겠지만.

알라딘 : 앞으로의 집필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우석훈 : 일단 12권짜리 ‘경제대장정’ 시리즈가 있죠. 이제 반 왔는데… 그게 본 시리즈이고, 그밖에 번외 편들이 있어요. 밀려있는 것만 해도 ‘인민노련’에 관련한 일종의 운동사가 있고, 사회과학 방법론에 대한 책이 있고, 화폐론에 관한 책이 있어요. 우리는 신자유주의만 이야기했지, 그 안의 화폐정책 이런 건 이야기 안했잖아요. 어쨌거나 오늘날 사회를 움직이는 두 가지는 돈과 말인데.

그리고 <빨간 머리 앤의 경제학> 이라는 책도 생각하고 있어요. 이건 일종의 드라마 감성이죠. 제가 아침 드라마까지 즐겨보는 드라마 광이거든요. (웃음) 이 책들도 지금 머릿속에 다 들어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내년 여름쯤이면 어떻게든 일단락이 될 것 같아요. 물론 밀릴 수도 있지만. (웃음)

알라딘 :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이후로는, ‘88만원 세대’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책을 더 쓸 생각은 없으신가요?


우석훈 : 일단은 계획이 없어요. 할 이야긴 이미 다 한 것 같고. 어쨌거나 저는 지금의 20대들과 좋든 싫든 함께 가야만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10년 후에, 지금 이 친구들을 다시 만나서 조명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긴 해요. 10년 전에 ‘88만원 세대’라 불리던 이들이 30대가 되어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보고 싶어요.

알라딘 : 자, 마지막은 공식질문입니다. 우리사회를 살고 있는 20대들에게 한 마디!

우석훈 : 저는 대학생들에게, F학점 한 번 맞는다고 죽는 거 아니라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어요. 죽기는커녕 사실 아무 일도 없잖아요? 정 마음에 걸리면 나중에 재수강하거나, 지우면 되고. (웃음) 그러니 한 번 F학점도 받아보고 시험거부 같은 것도 한 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럼 세상이 달라져 보일 거예요. 아, 별일 안 생기는 구나 깨닫는 것만으로도.

알라딘 : 네, 대학생 및 직장인 여러분, 고과평가 F 맞아도 이렇게 월급 받고 일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 약간의 뒷 이야기 ***

- 인터뷰에 이어 진행된 강연회에는 쌀쌀한 날씨, 인문대 가을축제 기간(?) 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대학생 분들 뿐 아니라, 교복을 입은 학생도 학부모 님들도 모두 모인  훈훈한 자리였다는…

- "같은 글 안쓰고, 같은 강연 안한다"를 모토로 삼으신다는 달인(?) 우석훈 박사가 잡은 이번 강연회의 키워드는 바로 "쯤, 불완전, 호구, 진법"

-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날 Y대 캠퍼스에서 담배를 피다 여자친구에게 자신이 인기가 많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한 남학생의 이야기를 엿들은 것. "나쯤 되면" "Y대 쯤 다니면" "공대생 쯤 되면" "키도 이 쯤 되면" "얼굴도 이 쯤 되면" "옷도 이 쯤" 처음 부터 끝까지 '쯤'으로… 이것이 바로 지금 평범한 대학생들의 자기 인식이 아닐까?

- 하지만 그 '쯤'들을 다 모은대도 결국 불완전 할 뿐이다. 결국 쯤일 뿐이 아닌가. 그 쯤은(?) 우리도 안다. 2% 모자람을 인식하고, 그렇기에 자신을 완벽하게 해줄 2%를 찾는다. 이런 욕망을 유혹하는 것이 바로 명품 마케팅. 이 가방 하나면, 이 옷 하나면 나도 완벽한 사람이 될 것 같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 그런 이들을 가리켜 전문 용어로는 '엔트리', 일반적으로는 '호구'라고 한다는…

- 그리하여 그런 20대들이 소비 문화 속에서 소비 되지 않고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진법'이 필요한 것이니- (이하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참고)

- 강연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참 많은 책을 내셨는데, 그 중 어떤 책이 가장 마음에 드냐고, 우문이지만, 물었다. 흔쾌히 대답하는 우석훈 박사. 그 책은 바로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조직의 재발견>의 구판. 표지와 제목, 서문이 다름)

- 그 난해하기로 '소문났던' 서문이 실은, 그가 하고 싶었던 말들의 정수라고 한다나 뭐라나. 하지만 그의 책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그 책의 서문 만은 구할 길이 없다. 이런 아이러니가!

-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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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바람 2009-10-14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꾸, 눈물 나려고 했던 것이 저 뿐만은 아니었군요.ㅋㅋ

활자유랑자 2009-10-16 17:00   좋아요 0 | URL
자꾸 눈물 흘리시면 우석훈 박사님도 눈물 나실 듯. ㅎㅎ

Suz 2009-11-27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고 갑니다. :)
말로만 듣던 88만원세대, 우석훈 박사님의 인터뷰를 읽고 나니 박사님 저서를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활자유랑자 2009-11-30 13:13   좋아요 0 | URL
잘 읽으셨다니 기뻐요 :)

be갠후 2010-08-06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읽어보고 싶은 책이 생겼네요. 나의 이야기를 해주는 박사님 감사합니다.
 




거침 없는 문화평론가, <무례한 복음> 이택광 인터뷰




얼마 전 출간된 <무례한 복음>을 통해 대선에서부터 용산참사까지,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엄마가 뿔났다'까지 한국의 욕망구조를 분석했던 이택광을 만났다. 책에서 다룬 놀라운 스펙트럼처럼, 역시 많은 이야기가 오간 인터뷰. 주요 등장 인물만 꼽아도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우석훈 박사, 김어준 씨, 박재범 씨, G-Dragon… 숨기지 않는 사투리로 거침 없이 쏟아내는 그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고.


알라딘 : 얼마 전에 우석훈 씨가 “블로그를 책으로 묶어서 내지 말라”는 식의 포스팅을 해 논란이 있었습니다. 블로그의 글을 엮어 책을 내신 입장에서 한 말씀 하신다면? (웃음)


이택광 : 첫 질문부터 왜… (웃음) 개인적으로는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책으로 내는 일이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에요. 블로그는 개인이 발행하는 일종의 잡지, 매체이고 책은 그 중의 일부를 골라서 내는 선집인 거죠. 집중적으로 주고 싶은 메시지를 담은 선집. 그러니까 재출간의 개념이에요.

특히 제가 블로그에 올리는 글은 대체로 외부 매체에 기고한 글들이에요. 그런 글들은 대개 부분적인, 작은 일들을 다루지만 한데 묶어 놓으면 큰 그림이 그려질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런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모았을 땐, 오히려 더 커다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거죠.

또한, 블로그란 매체의 특성상 독자참여가 가능하고, 다시 책으로 엮을 때는 그런 부분을 반영해서 수정하고 추가하니까 일종의 완성본이 되는 거죠. 이를테면 블로그는 사유의 과정, 프로세스를 보여주는 것이고 책은 완성품인 거예요. 그 과정을 공개한다는 건 지적 민주화의 한 방편이 될 수도 있는 거겠죠. 글이라는 게 어느 개인의 독자적인 산물이 아니라, 공동의 사유와 노력이 들어간 사회적 산물이니까.

외국 유명 저자들도 대부분 블로그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은 블로그를 빼놓고는 글쓰기를 생각할 수 없어요. 데리다 같은 현대철학자들이 최종적으로 다루고자 했던 것도 인터넷에서의 글쓰기, 그곳에서의 주체의 출현이에요. 결코 단순한 문제는 아니지요. 그런데 낡은 매체 구분법으로 블로그의 글을 낙서 정도로 생각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알라딘 : 방금 ‘독자참여’ 부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종종 블로그(http://wallflower.egloos.com)를 구경하는데, 단순히 ‘독자참여’라고 말하기 힘든 댓글들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웃음)

이택광 : 제 블로그의 원래 고정 독자들은, 제 주위 분들도 있고 말하자면 ‘고급독자’ 층이에요. 제 글쓰기도 역시 그런 분들을 타깃으로, 그런 분들에게 호소하는 글쓰기인 건데… 악플러들은 그냥 재미있는 현상이에요. 왜 방치하는지 묻는다면, 그들이 드러내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욕망이거든요. ‘열폭’(* 인터넷 신조어로 ‘열등감 폭발’의 준말) 한다고 하지요. (웃음)

그런 것을 통해서 얻는 건 역설적 효과예요. ‘한국사회 무의식의 구조’를 드러내는 거죠. 정신분석학적인 의미에서, 관찰하고 있으면 대타자의 욕망이 드러나요. 저에게는 하나의 실험, 분석대상이에요. “정신분석학은 치유는 할 수 없지만, 무의식의 실험적 모델을 보여줄 수는 있다”라는 라캉의 말처럼, 저 역시 하나의 실험적 모델을 보여주는 거죠.

사실 제 블로그에 악플을 다시는 분들은 대화를 필요로 해서 오시는 분들이에요.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죠. 본인들이 지니고 있는 정치적 포지션이 왼쪽인 분도 있고, 오른쪽인 분도 있는데, 분명 서로 입장은 다르지만 지켜보면 같은 내용의 발화를 하고 있어요. 신기하죠. 이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욕망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 한국사회의 문제가 결국 욕망의 문제임을 알 수 있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제 블로그가 아고라 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알라딘 : <무례한 복음>의 첫 글 ‘이상한 대선’에는 “보수 대 진보라는 구도를 넘어 한국 사회가 다른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그곳이 천국일지 지옥일지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 같지만” 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덧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택광 : 외국 사회에서 한국을 바라볼 때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한국은 민중이 파시즘적이고 부유층들이 미국식 자유주의적이라는 점이에요. 한국의 민주주의는 공격적 평등주의가 강하죠. 사실 잘 모르겠어요. 파시즘으로 갈 수도 있고, 극적인 반전이 생겨서 사민주의 같은 형태로 나아갈 수도 있는데…

한국의 지배세력은 오히려 파시즘을 원하지 않아요. 미국적 모델을 추구하죠. 제가 보기에 현재의 지배체제는 당분간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파시즘적 경향 혹은 열망은 있지만 담아낼 제도가 없습니다. 혁명은 이미 끝났어요. 허경영이라는 존재는 민중의 파시즘적 열망을 패러디하고, 사람들은 그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현재 정치공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적 주체는 강남좌파예요. 동의, 비동의를 떠나서 주류에 반대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죠. 바디우 식으로 말하자면 ‘목소리가 있는 사람’. 제가 보는 강남좌파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우석훈 씨에서 한비야 씨까지 아우를 수 있어요. 굉장히 넓어요.

앞으로 한국사회가 가장 이상적으로 간다면 지금의 영국사회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강남좌파의 주도로. 한나라당은 보수당이고, 진보신당은 신노동당이 되겠죠. 계급적 투쟁은 사라지고, 정치적 헤게모니는 중산층이 쥐게 되는. 지금 논의하는 중도변혁의 비전이 결국 이 형태라고 봅니다. 이를테면 창비담론 같은 거죠. 창비담론에 대해서는 제가 언젠가 ‘도래할 보수주의’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어요. 결국 그 보수주의는 선진국형 보수주의죠.

주대환 씨가 “이제 우리도 정상 자본주의 국가이므로, 사민주의로 가야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사회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말처럼, 그렇게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거든요. 결국 지금 존재하는 모든 담론들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강남좌파를 포섭하려는 거예요.

한국사회 지식인들의 가장 큰 잘못은 대중을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건데, 실은 지식인들이 더 멍청하게 보이거든요. 다른 의미가 아니라, 그들의 주장으로는 일반 사람들을 도저히 설득할 수 없으니까요.

알라딘 : 작년 ‘9월 위기론’, 올 ‘3월 위기론’ 등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결국 주가는 회복했고 부동산 값도 다시 치솟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기론에 둔감해지거나, 오히려 더욱 ‘먹고사니즘’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이택광 : 위기론에 대한 명쾌한 근거 혹은 진단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한국사회의 우파는 열심히 일하면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부자에 대한 약속을 하죠. 그런데 진보개혁세력은 자본주의 망한다는 약속을 하고 있어요. 물론 둘 다 지켜지지 않고, 따라서 둘 다 신뢰할 수 없게 된 거죠.

위기에 대한 총괄적인 접근 없이 미네르바 같은 메시아적 존재에 의존하며 막연한 위기담론만 생산했던 게 문제라고 봅니다. 일종의 신화죠. 결국 진보개혁세력의 안이함이 부추긴 거예요. 일례로 뉴레프트리뷰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신자유주의 체제에 필연적으로 닥쳐올 경제위기에 대한 지상논쟁이 계속 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죠.

알라딘 : 또 다른 위기 담론인,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택광 : 사실 위기는 40년대에 있었죠. 아우슈비츠 이후에 인문학은 끝났습니다. (웃음) 사실 제도로서의 ‘인문학’은 무너지고 있고,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게 바로 ‘인문학적 사유’죠. 알튀세르 이후의 인문과학적 사유, 즉 비판적․성찰적 사유를 뜻합니다.

결국 인문학의 종언이라는 건 자유주의 인문학의 종언이에요. 근대에 상정된 완결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소멸해 가는 거죠. ‘인문학적 사유’라는 말도 정확하게 지칭할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고요. 어떤 사람들은 인문학을 공부하려면 고전을 보라고 하는데, 돌아갈 수 있는 인문학이 없습니다. 차라리 당대철학을 먼저 읽으세요.

알라딘 :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아이돌 그룹 2PM의 박재범 씨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와, 김어준 씨의 애국 발언 논쟁이 있었는데요.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택광 : 박재범 논쟁은 애국주의 논쟁의 파탄을 보여준 거죠. 민족국가는 근대의 절대적 근거이고, 주체를 구성하는 데 가장 토대가 되는 개념이에요. 애국주의 비판은 근대국가 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고 그것의 모순을 ‘내파’하려는 시도, 의미가 있는 거죠. 그런데 이미 자명한 애국주의를 다시 옹호한다는 건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아요.

김어준 씨의 ‘소비자’ 발언(* 관련기사 보기)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논리에요. 촛불정국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구호는 ‘이명박 과장님, 경리과에서 퇴직금 받아가세요’였는데, 결국 같은 논리인 거죠. 한국의 경제주의를 보여주는.

유승준 논쟁과의 차이는, 그때는 민족주의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고 봐요. 그러니까,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이. 하지만 박재범 논쟁 때는, 한국을 정상국가로 상정해 버렸어요. 그래서 일종의 자기 정체성의 파괴로 인한 파국이 온 거죠. 결여에서 나오는 유토피아적 열망이 차라리 나아요. ‘미녀들의 수다’만 봐도, 충분히 그런 내용들이 나오는데 왜 박재범만?

알라딘 : 그렇다면, 지드래곤을 둘러싼 표절 논쟁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이택광 : 표절논란은 항상 있어 왔어요. 비판적 거리를 둘 수가 없는 상황에서, 대중들이 사회적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표절논란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이성적 측면이 아닌, 경험의 측면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나올 수 있는 거죠. 나 노래 많이 들어, 나 비슷한 노래 들어봤어 이렇게.

주체가 비판적 사유를 할 수 없는 조건에서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시도일 수 있는 거예요. 결국 베꼈나 베끼지 않았나는 중요한 게 아니죠. 일종의 놀이, 유희 같은. 비판적 사유의 대체로 기능하는 거라고 봐요.

알라딘 : 바로 어제, 故 노무현 대통령의 회고록이 아홉시 뉴스에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노무현 대통령과 故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후 관련 도서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이를테면 애도가 소비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담당자로선 참 많은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택광 : 저는 일종의 재발견이라고 봐요.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 이념과 순결주의를 가지고 마지막까지 그것을 지키려고 했던 유일한 정치인이었다는. 그에 비견할 만한 정치인은 김대중 대통령이겠지요. 물론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에는 근대적 정치국가에 대한 확고한 정치철학이 있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것이 명확하진 않았지만 비타협주의가 그를 돋보이게 했던 측면이 있어요. 또한 김대중 대통령을 잘 계승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지요. 다만, 앞으로는 노무현 대통령 개인에 대한 것에 집중하기 보단, 노무현 정부가 한 일, 못한 일에 대한 논의들이 더 이루어져야 한다고 봐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애도는 정치적 이념과는 상관없어요. 이명박 정부 지지율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다만 현재 자신의 삶의 팍팍함, 상실감에 대한 표현이죠.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굉장한 포퓰리스트에요.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이후에 중도실용 카드를 꺼내고, 정운찬 씨를 데려갔죠. 중간계급을 포섭하려는 시도에요.

알라딘 : 한국사회의 경제주의, 다시 말해 ‘먹고사니즘’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아 보입니다. 이 먹고사니즘의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개인들은 어떡하면 좋을까요?

이택광 : 먹고사니즘에는 외부가 없어요. 먹고사니즘은 탈이데올로기가 아닌 아주 경험적인, 거대한 이데올로기, 한국 사회의 놀라운 과학이라고 할까요(웃음). 사실 푸코가 ‘호모 에코노미쿠스’라고 예견한 거죠.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결국 가장 쉽게 통치되는 존재에요. 새로운 자율주의 규율체제라고 할까요. 그렇게 훈육된 주체들이 바로 먹고사니즘의 주체들이죠. 그리고 그들은 다시 그것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결코 쉽게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사실 먹고사니즘이 굉장히 매끄럽게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렇진 않거든요. 그 속에서 끊임없는 갈등들이 있어요. 다들 살아가며 그런 것을 느끼고, 자기가 느낀 것을 설명하고픈 욕망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는 능력론이 차단하고 있는 거죠. 이른바 ‘자기계발’이라고 불리는 자기 규율화 담론이.

이 안에 독창적인 개인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디우가 말한 ‘공가능성’이라는 것이 있어요. 단 하나의 진리가 아니라 여러 가지의 진리적 공정들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죠. 예술, 사랑, 철학, ‘공부하는 주체’, ‘책 읽는 주체’ 같은 것들이 존재할 수 있는 거예요. 이를테면 들뢰즈가 말하는 소수적 욕망 같은. 그런 욕망은 먹고사니즘이 강해질수록 더 커지게 마련이죠. 그때 그것이 어디로 향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 필요한 거예요.

‘공부하는 주체’라고 표현했듯이 공부한다는 것 자체도 습관적 틀을 벗어나는 거죠. 그리고 그런 노력들이 많아질 때… 결국 다른 것들이 보이는 거겠죠. 먹고사니즘을 벗어날 수 있는 해답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생겨나는 거예요.

알라딘 :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마지막으로 알라딘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이택광 : 음, 어려운 질문인데… (웃음) 피터 싱어의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 <민중에서 시민으로>, <어디가 중도이며 어째서 변혁인가> 특히 뒤의 두 책은, 지금 현재 한국사회의 상황에서 비전에 대해 얼마만큼 고민하고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알라딘 : 고맙습니다!

* 이 인터뷰는 추석 이후 알라딘 저자 파일 란에도 등록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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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 2009-10-03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진이 왜 이런가요. 목을 뚝 떼버렸네 -.-

저도 윗님에 2009-10-03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윗님에 동감. 전 무슨 랙 걸린 줄 알고 한창 마우스 휠 버튼을 올렸다 내렸다 했네요. ;;

이거 누가 인터뷰? 2009-10-04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치적 포지션이 왼쪽인 분도 있고, 오른쪽인 분도 있는데, 분명 서로 입장은 다르지만 지켜보면 같은 내용의 발화를 하고 있어요. 신기하죠. 이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욕망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 한국사회의 문제가 결국 욕망의 문제임을 알 수 있는 거죠."에서

무슨 동일한 욕망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거심? 좌든 우든 모두, '반대'하는 동일한 욕망의 구조를 가지고 있긴 하죠.
"욕망", "파시즘"을 수시로 사용하는 것도 안이하게 느껴집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은 다 틀렸고 자신은 옳다고 주장하는 것도 욕망이고 파시즘적 태도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파시즘 2010-02-06 23:2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개념정의나 하고 시작하는게 나을뻔...

이거 누가 인터뷰? 2009-10-04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시 읽어 보니 우석훈, 한비야를 엮어서 "강남좌파"? ...변희재도 아니고.
이택광은 무늬만 좌파지 우월감과 자기애에 빠진 "나르시스트 우파"죠.

ㅂㅈㄷㄳ 2009-10-05 10:4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안목이 있으시군요!

활자유랑자 2009-10-06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뷰 및 사진 편집은 알라딘 인문MD가 했고요, 아무래도 본업(= 책파는 일)이 아니라서 좀 미숙한 점이 있습니다. 양해부탁드려요 ;;; 인터뷰 내용에 대한 건... 제가 답할 성질은 아닌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

sad 2010-08-1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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