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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본 케이블 TV에선 공연 예고편이 나오고 있었다. 로비 윌리암스의 공연. 로비의 클로즈 샷 옆으로 자막이 새겨진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남자, 로비 윌리암스". 왜 씁쓸한 기분이 들었을까? 알 수 없는 나는 그저 흘러간 밴드의 노래를 흥얼 거릴 뿐이다. 가지 말라고, 네가 하려던 말을 하라고. 떠나지 않겠다고, 영원히 있겠다고, 그렇게 말을 하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은 어김 없이 흐르고,
빛나던 멜로디들은 사라진다.
알 수 없는 곳을 향하여. 음音의 속도로.

삼가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계를 돌고 싶었다. 모든 좋은 것들이 다 사라져버리기 전에, 시간의 조수가 당신의 귀를 비우기 전에. 세상을 돌면서 말해주는 거지. 사그라진 밴드의 노랫말처럼, 내가 들었던 모든 것들을. 내 기억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이야기를, 멋진 멜로디들을. 팻말하나 들고. 헝그리 따위는 충분히 얼굴에 쓰여 있으니, 다만 들어 달라고. 또 들려 달라고. 나의 얘기를, 당신의 이야기를, 그렇게 만들어질 화음을.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한 단어씩만 주세요. 두 단어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두 단어를 주시면, 세 단어를 드립니다. 자, 단어 놓고 단어 먹기. 네? 미안합니다. 영어 잘 못합니다. 아, 저기 아가씨. 잠깐만요. 우리 전에 본 적이 있죠? 그때는 고마웠습니다. 그때의 거지가 저입니다. 네? 하하. 지금도 거지 맞아요. 전 일관성 있는 남자거든요. 이래뵈도 고향에선 찌질하다는 소리 듣던 사람이랍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요? 음... 영어로는 대충 'Fucking Awesome' 정도? 하하. 유아 웰컴."

물론 좀 더 현실성 있는 버전도 있다. 1. 멋진 소설을 쓴다 2. 베낭 가득 소설을 담는다 3. 떠난다 4.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소년, 영국 아저씨, 네덜란드 총각, 프랑스 아가씨에게, 한 권씩 준다. 한국어를 몰라도 상관 없다. 어떤 언어로 쓰여진 책이든, 그런 책을 받는다면 나 역시 기쁠 테니까. 비용은 물론 소설을 쓰고 받은 상금으로 충당. 아, 잠깐만. 이게 더 현실성 있는 버전이라고 한 거 같은데...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 빨간 클립 두 개로 물물교환을 시작해 결국엔 이층 집을 마련한 캐나다 백수 청년처럼. 교환가치에 얽매이지 않는 신선한 생각. 그러니까 여기, 여행을 떠나고 싶은 젊은이가 있습니다. 돈이 없어요. 딱하죠? 호화판 여행을 떠나겠다는 거 아닙니다. 이른바 공정여행. 주워 들은 건 있는 젊은이인 모양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돈이 없다니. 비행기 삯이 얼만데. 이런 딱한 친구가 있나. 이봐, 추운데 이러지 말고 들어가서 뜨신 물에 밥이나 말아 먹구랴. 요즘 젊은 것들은 쯧쯧. 저기, 잠깐만요. 우리들 대부분은 떠나고 싶어하잖아요. 그런데 모두 다 떠날 수는 없잖아요. 가족에, 직장에, 생활에, 습관에... 그렇다면 한 사람이라도, 지금 당장 한 사람이라도 떠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여기 독서공방 펀드에 힘을 보태 주세요. 대신 떠나 드립니다. 물론 먹고 노는 여행 아닙니다. 자본의 시스템, 소비의 사슬을 떠나 사람들을 만날 거예요. 이미 자신도, 그렇게 도움을 받아 떠나게 된 걸요. 세계를 돌며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를 만나며 그들과 안면을 익히고 손짓 발짓 섞어가며 같이 웃고 눈물 한방울 흘리고 많은 걸 보고, 배우고, 담고 돌아올게요.

사기치지 말라고요? 잠깐만요. 펀드라고 했잖아요. 배당 해드립니다. 수익이 어디서 나냐고요? 여행기를 쓸게요. 제가 MD 출신이라는 얘기를 했던가요. 알라딘 여행MD 님... 막 친하진 않지만 그래도 오래 같이 일했고요. 친구와 후배 중에 방송작가도 꽤 됩니다. (명랑히어로에 나와서 뜬 그 여행책 아시죠?) 책 팔아서 도와주신 분께 돌려 드릴게요. 남는 돈은 세계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돌려 줄게요. 받지 않겠다는 분은, 역시 그 친구들에게 함께 드리죠. 그렇게 하고도 조금 남는다면 두번째 주자가 세계로 나갈 차례.

수익이 안나면 어떡하냐고요?
네, 고객님. 약관을 제대로 안보셨군요. 펀드라는 건... 사랑합니다 고객님.





금은 버려진 어느 카페의 대문엔 여전히 이런 인삿말이 걸려있다. 인생막장. 스물 너댓살 먹은 복학생들이 파릇파릇한 새내기들을 꼬셔 만든 학회이름치곤 영. 그래도 스물한 살 때 지은 반미실천단 이름인 (아지포함) "(미제의 심장에 박아버린다) 쇠말뚝" 보단 낫잖아. 선수들은 성장하고 아이들은 자란다. 물론 고릿적의 트레인스포팅을 베껴긴 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건 있는 법이니까. 그것은 내 어떤 (유치한) 정서. 뭐 주한미군도 여전히 주둔하고 있고.

그래. 졸업한 지 4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또다시 '인생막장'이란 이름을 꺼낸 건, 그래서였다. 더이상 선택할 것이 남지 않은 것 같은 기분. 막장에 몰린 기분. 어떻게든 앞으로 나가려고, 두 손으로 흙을 파내어 보지만, 손톱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 같은 기분. 이 말도 안되는 글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을 때 내 기분이 그랬다.

돌아본 거다. 소위 말하는 (양 손의 검지와 중지를 살짝 구부리며) '의미'를 찾고 싶었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길을 걸어 왔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 내가 누구라고 말하는 당신은 누구이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는 또 누구인지, 알고 싶었으니까. 무척이나. 내가 기억하는 나는 21세기의 이력서 취미란에 꿋꿋하게 독서라고 적는 사람, 그러니까 칼빈 한 자루를 들고 생화학전에 뛰어드는 사람이었다. 다른 방법은 알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책을 가지고 직업을, 가족을, 뻑킹 빅 텔레비전을, 세탁기를, 미래를 그러니까 인생을 선택하려 한 모양이다. 그게 될 리가 있나. 무엇보다 MD라는 직업은 책을 '파는' 직업이었으니까. 대개 책이란 읽으라고, 꽂아 놓으라고, 그것도 아니라면 다운 받으라고 있는 것이었다. 베고 자거나 사람을 때릴 수는 있다. 하지만 팔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한텐 그랬다. 귄터 쿠네르트의 말처럼 나는





그 길의 막장에서 발버둥치고 있었던 거다. 책을 읽는 것과 파는 것 사이에는 어떤 논리적인 인과관계도 성립하지 않는다. 책을 읽는 길에서 책을 파는 길로 방향을 튼 것은 '나'였고, 그 길을 벗어나는 것 역시 '나'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때야 알았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뒤늦게 알곤 하니까. 대부분의 것들을 1년 6개월이 지나, 할인판매에 들어갈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주간지 100권이 모이면 그만두기로 마음 먹는다 해도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건 일종의 '기계장치의 신'이었으니까. 연극의 막바지에 내려와 모든 것을 정리해주시는. 하지만 지금은 21세기다. 신은 죽었고, Film 2.0은 내가 94권을 모았을 때 망해버렸다. 실제로 회사를 그만 두기까지는 그로부터 1년이라는 시간이 더 흘러야 했다. 그래, 내가 죽였다. 이 자리를 빌어 Film 2.0 관계자들께 사과드린다. 죄송합니다. 저였어요. 고려원이 망한 게 오에 겐자부로 전집 때문이듯이.

로비 윌리암스는 잘못 없습니다. 

그저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마음이 없었을 뿐이니까. 책 읽는 사람에서 책 파는 사람으로의 변태를 견딜 수 없었으니까. 끝까지 살아남은 남자 따위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39세의 노장 투수 빌리 채플에게 야구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뗄 수 없는 것이었듯이. 그가 원한 것은 뉴욕 양키스에서의 야구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의 야구도 아니었듯이. 내가 사랑한 것은 책이었지만, 그것을 파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이야기. 도둑처럼 소리 없이.




"그만 두겠습니다. 야구를 사랑하니까요."


래 이 글은, 사직서가 될 예정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길고 뒤죽박죽인 사직서가. 저 명예욕 있는 남자거든요. 처음엔 12월에, 다시 2월에 올리려고 했던 글을 퇴직하고도 한 달이 되어서야 쓰게 된 것은 천성적인 게으름 탓이다. 본래 인문MD로(낯선 단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묻고 싶었던 '인생막장' 시리즈는, 인문MD를 그만둔다는 것의 의미를 물으려 했다가, 결국엔 이렇게 마무리 되고 말았다. 별 수 없지.

시간은 어김 없이 흐르니까.

그래서 결국 내 앞엔 *천만원 어치의 시간이 펼쳐졌다. 물론 그것은 교환가치 바깥에 있고, 그렇기에 기묘하다. 누군가 나에게 수십억원을 준다해도 내 남은 시간을 전부 팔리 없겠지만, 몇 년 단위로 쪼개면 거리낌 없이 팔 수 있다는 것. 그 문제는 나중에 깊이 생각해보기로 하고. 자, 시간이 내 앞에 있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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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적인 것들. 자고, 걷고, 읽고, 쓰고. 혹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수밖에. 섣불리 기대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으며, 실망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겠지. 상투적, 상투적, 상투적, 상투적이야. 모든 말들은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소비될 때 상투적이 된다.

(다시 양손의 검지와 중지를 살짝 구부리며) '의미' 따위는 예나 지금이나 알 도리가 없지만, 적어도 몇 가지는 안다. 모든 단어는 빈 항아리 같다는 것. 그 단어를 채우는 것은 결국 그것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 그러니 내 남은 시간은, 모든 상투적인 것들을 상투적이지 않게 하는데 바쳐질 예정이라고.


나는 여전히, 또 하나의 막장을 파며 그곳에서 나온 흙으로 나만의 항아리를 채우고 있을 것이다.




그 동안 고마웠어요.
눈치도 못채셨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인사 없이 블로그를 버려 두어서 혼자 못내 걸렸어요.
이 블로그를 어떻게 해야할진 아직 잘 모르겠지만... 뭐 상관 없겠죠.
따뜻한 봄이 골목 앞에 있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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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7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흐름 2010-03-29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RSS로 구독하고 있던 독자인데, 아쉽네요.
그렇지만 어디선가 또 글을 보고 누구의 글인지 잘 모르면서도 구독을 하게 되겠지요.
취향은 변하지 않는 법이더군요.

다락방 2010-03-29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는 이제야 뭔가가 어렴풋이 잡히려고 하네요.(아, 무척이나 뜬금없는 댓글입니다만.)

2010-03-29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31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31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주 들려 글 읽으면서 좋아하고, 권해주신 책도 사보고 그랬는데
지금 내리는 봄비처럼 마음이 그러하네요.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뵙든 다시 알아보고 글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꼭!
건투를 빕니다'_'

caren 2010-04-13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의 제보로 봤는데. 아무튼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니까 여행서 출간되면 꼭 제 돈 주고 사볼게요. 파이팅 하세요.^^

제보자 2010-04-13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할라할라.. 높이 올라가 세상을 다 가져봐~

외국소설/예술MD 2010-04-15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택에 싼 숙소에 묵었으면 감사의 표시로 밥을 사거나 해야 하는거 아닙니까

Azira 2010-05-10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알라딘편집팀서재에서 블로그명이 사라진 걸 발견했네요.
아쉬워요....눈팅만 했지만 나름 열혈 독자였는데. 어디론가 이사가시면 꼭 공지해 주세요.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 그처럼 재주가 없고 그처럼 시인으로서의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죽었을 때도 나는 장례식에를 일부러 가지 않았다. 그의 비석을 제막할 때는 망우리 산소에 나간 기억이 있다. 그 후 그의 추도식을 이봉구, 김경린, 이규석, 이진섭 등이 주동이 돼서 동방문화살롱에선가에서 했을 때에도, 그즈음 나는 명동에를 거의 매일같이 나가던 때인데도 그날은 일부러 나가지 않은 것 같다. 인환이가 죽은 뒤에 그를 무슨 천재의 요절처럼 생각하고 떠들어대던 사람 중에는 반드시 인환이와 비슷한 경박한 친구들만 끼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정 같은, 시의 소양이 있는 사람도 인환을 위한 추도시를 쓴 일이 있었다. 세상의 이런 인환관과 나의 생각과의 너무나도 동떨어진 격차를 조정해 보려고 나는, 시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고는 한 일까지 있었다.

이런 인환과 인환의 세평에 대한 뿌리 깊은 평소의 불만 때문에 나는 한사코 인환에 대한 얘기를 쓰지 않기로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요한 기대>라는, 창우사에서 나온 수필집 안에 들은 ‘마리서사’라는 글에서 나는 인환에 대한 불신감을 약간 시사한 일이 있었다. 나는 그 후 인환에 대해서 쓴 나의 유일한 글에 그런 욕을 쓴 것이 여간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거짓말이라도 칭찬을 쓸 걸 그랬다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전에 나는 인환의 <선시집>의 후기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밤의 미매장’이란 시를 읽어보고, 그래도 미흡해서 ‘센티멘털 저니’라는 시를 또 한번 읽어보았다.

인환! 너는 왜 이런, 신문기사만큼도 못한 것을 시라고 쓰고 갔다지? 이 유치한, 말발도 서지 않는 후기. 어떤 사람들은 너의 ‘목마와 숙녀’를 너의 가장 근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 눈에는 ‘목마’도 ‘숙녀’도 낡은 말이다. 네가 이것을 쓰기 20년 전에 벌써 무수히 써먹은 낡은 말들이다. ‘원정(園丁’이 다 뭐냐? ‘배코니아’가 다 뭣이며 ‘아포롱’이 다 뭐냐?

이런 말들을 너의 유산처럼 지금도 수많은 문학청년들이 쓰고 있고, 20년 전에 너하고 김경린이하고 같이 낸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나 하는 사화집 속에서 나도 쓴 일이 있었다. 종로에서 마리서사를 하고 있을 때 너는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었다. “초현실주의 시를 한번 쓰던 사람이 거기에서 개종해 나오게 되면 그전에 그가 쓴 초현실주의 시는 모두 무효가 된다”는 의미의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프로이트를 읽어보지도 않고 모더니스트들을 추종하기에 바빴던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을 너의 그 말을 해석하려고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후, 네가 죽기 얼마 전까지도 나는 너의 이런 종류의 수많은 식언의 피해에서 벗어나려고 너를 증오했다. 내가 6.25 후에 포로수용소에 다녀나와서 너를 만나고, 네가 쓴 무슨 글인가에서 말이 되지 않는 무슨 낱말인가를 지적했을 때, 너는 선뜻 나에게 이런 말로 반격을 가했다 - “이건 네가 포로수용소 안에 있을 동안에 새로 생긴 말이야” 그리고 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물론 내가 일러준 대로 고치지를 않고 그대로 신문사인가 어디엔가로 갖고 갔다. 그처럼 너는, 지금 내가 이런 글을 너에 대해서 쓴다고 해서 네가 무덤 속으로 안고 간 너의 <선시집>을 교정해 내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교정해 가지고 나올 수 있다 해도 교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도 해본 일이 없다고 도리어 나를 핀잔을 줄 것이다. “야아 수영아, 훌륭한 시 많이 써서 부지런히 성공해라!” 하고 빙긋 웃으면서, 그 기다란 상아 파이프를 커크 더글러스처럼 피워 물 것이다.

- <김수영 전집 2>(산문) 중 ‘박인환’ 전문, 1966.8




마감일을 놓친 잡글을 쓰려 휴가계를 낸 참에 나는 김수영을 생각한다. 김수영과는 눈곱만큼도 상관없는 일이건만 나는 김수영을, 그의 ‘박인환朴寅煥’을 다시 생각한다. 평시에는 무시로 태평하게 지낼 뿐이면서, 데드라인에 코끝을 밀어 넣게 되면 머릿속엔 온갖 글들이 가득 찬다. 아무리 요령을 부리고 거짓을 씨부려도 따라갈 수 없는 글이다. 그러니 그것은 그냥, 핑계일 뿐이다. 글을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에 이만한 것도 없다.

이 글을 옮겨 쓰며 나 역시 <선시집>의 후기를 다시 읽어보고, ‘밤의 미매장’이란 시를 읽어보고, 그래도 미흡해서 ‘센티멘털 저니’라는 시를 또 한번 읽어보았다. 처음 발표 되었을 때 “수영洙暎에게”라는 헌제가 있었던 시란다. (실천문학사 판본 전집에는 그 내용이 없고, 절판된 예옥 판본 전집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에서 주석으로 밝히고 있다) 그런 박인환을 김수영은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신문기사만큼도 못한’ 인환의 시에 대해, ‘마리서사’에는 조금 더 친절한 설명이 있다. “(마리서사에 드나들게 되며) ... 등의 이상한 시에 접하게 되었고, 그보다도 더 이상한, 그가 보여주는 그의 자작시를 의무적으로 읽지 않으면 아니 되게 되었다. 그는 일본말이 무척 서툴렀고 조선말도 제대로 아는 편이 못 되었지만, 그 대신 그의 시에는 내가 모르는 멋진 식물, 동물, 기계, 정치, 경제, 수학, 철학, 천문학, 종교의 요란스러운 현대용어들이 마구 나열되어 있었다.” 조선말이 서툰 인환의 시를 수영은 일종의 스노브로 파악한 모양이다. 수영은 이렇게 덧붙인다.

“인환의 최면술의 스승은 따로 있었다. 박일영이라는 화명을 가진 초현실주의 화가였다. 그때 우리들은 그를 ‘복쌍’이라는 일제 시대의 호칭을 그대로 부르고 있었다. 복쌍은 사인보드나 포스터를 그려주는 것이 본업이었는데 어떻게 해서 인환이하고 알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쓰메에리를 입은 인환을 브로드웨이의 신사로 만들어준 것도, 콕토와 자코브와 도고 세이지의 ‘가스파돌의 입술’과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과 트리스탄차라를 교수하면서 그를 전위시인으로 꾸며낸 것도, 마리서사의 ‘마리’를 시집 <군함 마리>에서 따준 것도 이 복상이었다. 파운드도 엘리엇을 이렇게 친절하게 가르쳐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복쌍을 알고 나서부터는 인환에 대한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흥미가 전부 깨어지고 말았다. 복쌍은 그를 나쁘게 말하자면 곡마단의 원숭이를 부리듯이 재주도 가르쳐주면서 완상도 하고 또 월사금도 받고 있었다(월사금이라야 점심이나 저녁을 얻어먹을 정도이었지만). 그는 셰익스피어가 이아고나 맥베스를 다루듯이 여유 있는 솜씨로 인환을 다루고 있었지만, 셰익스피어가 그의 비극적 인물의 파탄에 책임을 질 수 없었던 것처럼 그를 끝끝내 통제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그럴 때면 나한테만은 농담처럼 불평을 하기도 했다. “인환이놈은 너무 기계적이야” 하고.”

민음사의 전집에 따르면 수영이 ‘마리서사’를 쓴 것 또한 1966년이었으니, 인환이 죽은지 꼭 십년 만에 인환에 대한 두 편의 글을 쓴 것이다. 인환과 수영은 함께 ‘후반기’ 동인 활동을 했고, 가까이 왕래해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수영에게, 문우의 사후 10주년을 맞아 이런 글을 쓰게 한 것일까? 특히 나중에 쓴 ‘박인환’에서는 “인환에 대해서 쓴 나의 유일한 글에 그런 욕을 쓴 것이 여간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라고 고백하면서까지, 그럼에도 다시 한번 그의 문학을 조롱한 이유가 무엇일까?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일이다.

소설가 이인성의 홈페이지에서 이응준은 이렇게 말한다. “<김수영 전집 2>(산문)를 백 번 이상 읽은 나는 이제 이렇게 본다. 어느 시점에서부터 김수영은 박인환을 문학의 공적(公敵)으로 결론 내렸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박인환은 가짜 시인이었고, 태작기계였으며, 제 멋에 취해 예술을 오도하는 문화양아치였다. 고로, 김수영은 자신의 산문들 중에서 가장 공적(公的)인 태도를 견지하고서 문학의 섬세한 질서를 위해 ‘박인환’과 ‘마리서사’를 썼던 것이다. 김수영의 박인환에 대한 감정은 연민이라든가 애증 따위가 아니라 완벽한 역겨움이자 순수한 증오였으며 그것은 사사로운 분노가 아니라 공분(公忿)이었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김수영은 ‘박인환’과 ‘마리서사’를 쓴지 이 년 뒤에 죽었다. 그는 추호도 후회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수영의 글에서 애틋함을 본다. 백 번의 십분지일도 읽지 못했지만 그렇다. 절절한 그리움 따위가 아니라 일정 이상 거리를 둔 그리움이다. 애써 떼려한 적도 없고, 끌어안은 적도 없지만 그 자리에 있어 녹지 않는 만년설 같은 그리움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단지 문학적 포즈일 뿐일까. 요즘 친구들이 흔히 말하는 ‘고도의 빠’인 걸까.

그것은 어쩌면 사사로운 정에 현혹되지 않는 수영 자신의 ‘시의 소양’ 때문일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스스로 밝히듯 자신의 눈에는 ‘이상한 시’였던 인환의 시가 많은 사랑을 받고 그의 죽음이 ‘천재의 요절’로 오독되던 시절이 벌써 10년이 흐른 것이다. 어떤 유행이 인환의 시를 그렇게 높이 치켜세웠지만, 그것이 더 이상은 지속될 수 없음은 수영은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이의 시신을 수습하고 그의 눈을 감기듯, 스스로 그것을 선언해버린 것이다. 세간이 친우의 이름을 더럽히기 전에, 그의 이름이 어떤 추문이나 스캔들로 전락하기 전에. 그것은 이응준의 지적대로 지극히 공적인 '사망선고'였지만, '인간 박인환'을 위한 불가피한 결심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어도, 내가 행간에서 짐작하는 망자의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 후, 네가 죽기 얼마 전까지도 나는 너의 이런 종류의 수많은 식언의 피해에서 벗어나려고 너를 증오했다”고 수영은 고백한다. 이 문장은 ‘전까지도 ~ 했다’는, 명백한 과거형이다. 비록 이응준은 “아무튼. 적지 않은 미덕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명동백작>은 우리의 문화사 전체를 낭만적 기조로 개관하려는 과욕 탓인지 캐릭터들의 내면파악에 간혹 가다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는데, 내 눈에 그것은 김수영과 박인환의 관계설정에 있어서 제일 유치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명동백작>은 마치 김수영이 박인환을 애증 내지는 연민한 것처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정이 병이라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이름이다. 과연 이봉구스러운 시각이 아닐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식언의 피해에서 벗어나려고 너를 증오했다”는 것은 이미 애증의 언술이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식언에 피해 입지 않으며, 단지 식언 때문에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증오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응준의 마지막 말에는 나 역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수영이 인환에게 “그처럼 너는, 지금 내가 이런 글을 너에 대해서 쓴다고 해서 네가 무덤속으로 안고 간 너의 <선시집>을 교정해 내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교정해 가지고 나올 수 있다 해도 교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도 해본 일이 없다고 도리어 나를 핀잔을 줄 것이다. “야야 수영아, 훌륭한 시 많이 써서 부지런히 성공해라!” 하고 빙긋 웃으면서, 그 기다란 상아 파이프를 커크 더글러스처럼 피워 물 것이다“라고 했던 것처럼. 언젠가 수영은 이렇게 썼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 <김수영 전집 1>(시) 중 ‘절망’ 전문, 1965.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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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1 16: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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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2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arla 2010-01-22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써야 할 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멋진 글을 썼으니 그거야 아무래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쓰긴 써야겠지만...

활자유랑자 2010-01-22 23:11   좋아요 0 | URL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결국 쓰지 아니하였는데... (오늘이라도 쓰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본부장님에게 말씀좀...
 

벌써 두 달이 흘렀다. 이 '인생막장 혹은 어느 주변인의 고백 #1'이라는 우스꽝스러운 글을 쓴지도. 세상에 제목하며. 고해성사라도 하자는 건가? 설상가상으로 설정한 업데이트 주기는 2주. 오 하나님 맙소사. 보일러를 틀기는 지갑이 얇아 전기장판을 찾는 이 가을에 문득, 참담한 기분이 든 나는 #2를 써버리기로 결심한다. 두 달 만에. 물론 여기에는 정교한 계산이 숨어있다. 어쨌거나, 지금 하나 써놓으면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이 지긋지긋한 고백에서 벗어나도 되겠지. 업데이트 주기는 2주, 라고는 하지만. 아마 하나님도 신경쓰진 않으실 게다.

그래서 가을이다. 친구에게 바람맞은 일요일. 밀린 설거지를 하고, 한 숨 자고, TV를 보다가 세탁기를 돌리고, 삑삑 소리에 섬유유연제를 넣었을 뿐인데 가을이, 성큼 와버린 것이다. 나는 침착을 가장하며 담배를 찾는다. 하지만 담배는 없고, 슬리퍼를 신고 밖에 나가기에 가을은 너무 춥다. 컴퓨터 앞에 도로 앉아 도리 없이 묻는다.

"그런데 잠깐, 어디까지 썼더라?"

그래서 이 글은, 지극히 편의적으로, 이렇게 시작한다. 
먼저, 돌아온 하우스 박사(M.D.) 이야기. 짧은 머리로 돌아온 하우스 박사(M.D.)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나를 망친게 아냐. 난 이미 망가졌다고."
(They didn't break me. I am broken)

나는 이렇게 말한다.

"너만 M.D.냐 나도 M.D.인데"
(Are you M.D.? I am M.D., too)

뭐, 어디서든 시작은 해야 하니까.

이런 시작이 마음에 들지 않을 사람들을 위해 MD's cut이 있긴하다. 조금 더 길고, 조금 더 지루하긴 하지만.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스피노자 <에티카>의 제 3부 정리 28에 대한 재증명 같은.

정리 28. 우리는 기쁨을 가져오리라고 우리들이 표상하는 모든 것을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에 모순되며 슬픔을 가져오리라고 표상되는 모든 것은 멀리하거나 파괴하려고 노력한다.

증명 : 나는 언제나 완벽하게 멋진 글을 쓰고 싶었고, 그것을 위해서는 영혼을 팔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사지 않았고, 이내 나는 그것을 버렸다. - Q.E.D. 증명끝.


*

학교에서 내가 배운 것은 단 하나의 문장이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아마도 중학교 3학년 과정, 도덕 교과서의 어디메에서. 우리 도덕 선생님은 69년 우드스톡 공연장에서나 볼 것 같은 양반이었다. 긴 머리에 히피. 강의는 수업 시작 후 한 10여분 남짓 할까? 그 후론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읽도록 시킨 후 창가에 앉아, 우수에 젖은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선생님은, 그러나 문득 딴 짓을 하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면, 카누의 노 같은 매로 엉덩이를 마구 때리곤 했다. 일단 시작하면 대개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던 그 스윙의 끝은 이랬다.

"내가" 퍽퍽 "니들 같은 놈들 때문에" 퍽퍽 "원폭을 맞아서" 퍽퍽 "이러고 있는데" 퍽퍽 "니들은" 퍽퍽 "어째서" 퍽퍽… 그는 잘해봐야 30대 후반으로, 역사 교과서 수준의 상식도 갖추지 못하고 있던 내 눈에도 '이따이이따이' 하지도 '미나마타' 하지도 않아 보였지만, 그 소동이 끝날 때면 꼭 눈물을 흘리곤 했다. 흑흑, 퍽퍽, 흑흑, 퍽퍽… 누나 가슴에 삼천원 쯤은 있다는데, 사연이야 있겠지만. 만약 정말 45년에 피폭하고 69년에 우드스탁을 본 후 96년에 도덕 선생님이 된 것이라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튼, 그렇게. 창밖과 교과서를 건성으로 바라보며 보내던 어느 날. 맹자와 공자의 지루한 말들이 지나간 자리에 난데 없이, 사르트르가 나타났다. 어느 각도로 고개를 돌려도 피할 수 없는 눈으로 나에게,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며. 실존이 뭔지 본질이 뭔지 알리 없던 열여섯 살의 덜 자란 꼬맹이는, 도덕 선생이 무서워 교과서를 덮지도 못한 채, 눈을 크게 뜨고 다만 따라 할 수 밖에.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고. 순식간에 세계가 CTRL + F5 하는 느낌. 그렇게, 그래서 그렇게

실존이 본질을 앞서 버렸다.

나의 모든 실존적 게으름이 시작된 것이 바로 그때였다. 할 수 있는 일? 안 해. 어차피 할 수 있으니까. 할 수 없는 일? 안 해. 어차피 못하니까. 그렇게 바라본 세상은, "그것이 나의 숨을 멈추게 했다. 3, 4일 전만 해도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절대로 예감하지 않았었다." 나는 그 모든 외적인 조건과는 상관 없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세상. 한참 유행하던 알라딘의 주제곡처럼.


a whole new world
a dazzling place i never knew.

정말 그랬다니까.
그래서 여즉 '알라딘'에서 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무심하게도 사르트르의 저작을 읽은 것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와 <지식인을 위한 변명>의 단 두 권이고(각각 문예출판사와 보성출판사 판으로), <구토>는 읽다가 토할 뻔했으며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란 말이 실은 사르트르의 어느 작품에 나오는 건지 여즉 알지 못하지만.

여러 2차 저작 중에서, 사르트르와 실존주의에 대해 가장 인상깊게 서술한 것은 푸릇하던 스무살에 읽었던 램프레히트 <서양철학사>의 한 구절이다.

"어떤 실존주의자들은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는 원리에서 출발한다. (심지어 여기에서는 사르트르의 이름조차 거론하지 않는다!) 이 기묘한 말은, 어떤 실존주의자의 경험이 혼동에서 명료성으로 나아가는 전기적 추이에 있어서는 명백한 것일지는 모르나, 철학적으로는 아주 애매한 소리다." 

"하지만 극단의 형태에 있어서, 그것은 맹렬하게 반주지주의적이고, 주의주의적인 낭만주의이다. 윤리학에 있어서 그것은 아직을 내세우는 것이요, 존재론에 있어서는 변덕을 일삼는 것이다."  블라, 블라, 블라.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인간이고, 때론 낭만적이며, 아집을 부리기도, 변덕을 일삼기도 한다. 그게 뭐 대수라고?
(라며 쿨한척 이번에 처음 번역되어 나온 사르트르 소개)  

 

 

 

 



그렇다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는 전에도 게을렀고, 이후에도 게으를 것이었으니. 딱히 독서의 수준이 높아진 것 도 아니다. 글쎄, 뭘 읽었더라? 몇몇 이름들이 떠오르긴 한다. 홈즈나 뤼팡, 장무기나 현암 같은. 삼국지, 수호지… 무엇보다 슬램덩크. (가장 실존주의적인 텍스트는 역시 <슬램덩크>다. 실존주의적 게으름을 집중 조명한 국내 작품으로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있다)

 

 

 

 

(당연하게도 이 모든 책들은 내가 읽었던 판본이 아니다… <삼미>는 뭐 나중 얘기고) 

그렇다. 동서양의 위대한 독서가들처럼 자연스럽게 세계명작으로 눈을 돌리기를 나는 거부했던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서니까. (응?) 나는 독서-기계가 아니라는 자기 선언. (응?) 차라리 TV에서 하던 '마법 소녀 리나'를 보고 말지…  

그렇지만 무엇보다 당시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고에이 사의 PC게임 [삼국지 3]와 [대항해 시대 2] 그리고 [프린세스 메이커 2]였다. 가계부 보다 두꺼운 전화번호수첩 한가득 ㄱ, ㄴ, ㄷ 순으로 장수들의 '이름 / 지력 / 무력 / 정치 / 매력'을 정리하고, 최고의 배인 '쉽ship(;)'을 건조하기 위해 네덜란드에 있는 돈 없는 돈을 가져다 바쳤으며, 거지에서 공주까지 딸과 함께 인생역전을 맛보며 (훌쩍) 삶의 희노애락을 경험했던 것이다… 아. 사실 게임으로 치면 루카스아츠의 어드벤쳐도 있고, 할 말 많지만 이쯤에서 당시  

내가 만났던 명문장을 소개한다. 지금까지, 깊은 곳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는 명문장이다. 

"... 오스만 투르크의 주인공 알베자스는 돈이 한푼도 없는 가난한 녀석이다. 다른 캐릭터와는 다르게 돈을 꿔서 모험을 시작한다. 꾼돈을 다시 갚을 때는 10배로 갚아야 한다. 개략적인 줄거리는 알베자스의 목적이 억만장자가 되는 것이니 부디 하시는 분도 억만장자가 되길 바란다. 도 알베자스로 할때만큼은 돈을 억수로 모았다. 일본과 아프리카의 금은 무역을 통해 8900만 정도 모아서 지중해로 왔으나 스페인 국왕에게 다 빼앗긴 경험이 있다. 그러나 로드를 해서 다시 1억 2천만 까지 모았다. ..."  

(출처 : 대항해 시대 2 매뉴얼, 작자 미상) 

이 문장이 좋은 이유는 우선, 간결하다. 구질구질하게 늘어놓지 않고 예리하게 팩트만을 전달한다. 그렇다고 건조하기만 한 것은 또 아니어서, 미국 컬리지 밴드의 음악이 그렇듯, 종종 슬프다. 특히 '도 알베자스로 할때만큼은 돈을 억수로 모았다', '스페인 국왕에게 다 빼앗긴 경험이 있다. 그러나 로드를 해서 다시 1억 2천만 까지 모았다' 같은 부분이 그렇다. (강조는 인용자의 것이다). 문장의 호응과는 상관없이, 그저 시작부터 낮추고 들어가는 저 부분이 눈물나게 아름답다. 모든 것을 되돌릴 세컨 챤스가 있다는 것도…

그렇다고 저 문장들에 무슨 인생의 비의, 따위가 숨어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오스만 투르크의 주인공 알베자스는 돈이 한푼도 없는 가난한 녀석이고, 다른 캐릭터와는 다르게 돈을 꿔서 모험을 시작하는데 꾼 돈을 다시 갚을 때는 10배로 갚아야 하며, 개략적인 줄거리는 알베자스의 목적이 억만장자가 되는 것이니 부디 하는 사람도 억만장자가 되면 좋겠다, 고.  그러니까,   

실존은 본질에 앞서지만 어쨋든 세이브는 필수, 라고. 

그러고 보니 당시 내가 가장 사랑했던 책은 고려원 판 정비석 선생의 <김삿갓>이다. 돈이 한푼도 없는 가난한 녀석이었던 나는, 어느날 놀러간 친구네 집에서 <김삿갓>을 발견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친구에게 권당 500원, 총 3000원을 주고 사들여 읽고 또 읽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스님이 '용두질'을 한다던 그 장면 때문이었나…)  

그 이후로 내 꿈이 항상 '프리랜서'(직군/분야 없음)였던 것은 아마 김삿갓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  

전등을 켜놓고 이불 속에서 책을 읽는 대신, 집나간 아버지의 방을 물려 받은 나는 밤을 새도록 컴퓨터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PC 통신. 아이들이 나와서 놀고, 모험을 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노는 이야기들을 읽는 대신에 아이들이 접속해서 놀고, 모험을 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노는 곳을 발견한 것이다. 그곳의 이름은 "나, 너 우리가 함께 만드는" 나우누리였다.  

그곳에 대해서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부끄럽기도 하고, 그럼에도 너무 많은 부분을 바꾸어 버렸기에. 제임스 팁트리 2세의 단편 '마지막으로 멋지게 할 만한 일'에 나오는 뇌에 기생하는 외계생명체처럼, 어느새 자리잡아 복잡하게 뿌리 내렸기에 그것을 적당히 잘라 보이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다. (박노자의 사민주의에 대한 일부 트로츠키주의 진영(?)들의 비판은 여기에 기인한다고 나는 이해한다)

밤이 새도록 '이야기 5.3'의 파란 화면을, 그 속에 오르는 타인의 생각을 바라보며 나 역시 서툰 생각을 올리던 그 시간에, 나는 우울을 배웠다. 실은 우울의 효용을 배웠지만. 우울은 타인의 호감을 사는 가장 값싼 방법이라는 것. 사실 중학생이 우울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중학교 시절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날들임이 분명하니까. 즐거울 이유가 하나토 없다는 사실만 빼면.

다시 생각해도 참 좋은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나, 너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그 시절은. 사르트르와 라디오헤드의 'Creep' 정도만 알면 전혀 부족함이 없던 시절. 너무 많이 알아버린 지금은 그 시절을 자꾸만 부러워하게 된다. 오컴의 말을 응용하자면, 행복에 이르는 여러 길이 있다면, 그 중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적게 아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런 말은 글러 먹었다. 

그 시절, 그러니까 중3 무렵의 나를 좋아한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 그러니까 "나, 너 우리가 함께"만들던 세상에서, 나를 정확하게 지목하며 "너"라고 했던 첫번째의 그녀는 스무살이었다. 주주클럽이 "너 이제 열여섯, 난 스무살야"라는 노래를 부르던 해였다. 그녀는 노래방에서 주주클럽의 노래를 불렀고, 나는 도망쳤다. 이게 다 도덕 교과서를 읽은 탓이다. 

두번째는 열여덟이었다…
 

To be continued... (하하하하;)  


* 어쩌다 보니 하*텔, 나우*리 등에 유행하던 연재글 같은 형식이 되어 버렸다… 이것 참 ;
* 인생도 로드가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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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열 2009-12-03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허. 왠지 공감가는 부분이 많네요..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탓일까요? 전 [샤르트르]나 PC 통신 쪽은 접하지 않았지만.. ^^; 암튼 여기 블로그도 넘 맘에 드는 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종종 놀러올게요~

활자유랑자 2009-12-08 13:26   좋아요 0 | URL
사르트르나 PC 통신은... 모르시는게 더 나을지도. ;
또 오세요~ ㅎㅎ
 

얼마 전 업데이트 된 네*버 지식인의 서재(참 멋대가리 없는 이름이다)에서 김훈 선생의 인터뷰를 읽었다. 김훈은 자신의 서재를 가리키며 말한다.  

"여기는 내 서재라기보다는 막장이에요. 막장. 광부가 탄광 맨 끝까지 들어간 데를 막장이라고 그러잖아요. 광부는 갱도의 가장 깊은 자리인 막장에서 곡괭이를 휘둘러서 석탄을 캐지요." 

저작권법도 강화된 마당에 이렇게 인용을 하고 있자니 조금 쫄리긴 하지만 나에게도 할 말은 있다. 실은 저 '막장'의 두 번째 뜻은 대학시절 내가 이미 써먹었던 것이다. 무료하던 복학생 시절, '막장'(요즘 쓰이는 그 뜻 그대로) 동무들과 순진한 1, 2학년들을 꼬셔 만든 연극학회의 이름이 바로 '인생막장™'이었다. 증거도 있다.

"지금은 ‘인생막장’이라는 학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명색이 국문과인데 연극 관련 학회가 없다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해서 작년에 복학하면서 제가 만든 학회에요. 이름이 이상하다느니, 정말 막장 같다느니 하는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학회원 26명으로 정원 130명인 국문과는 물론이고 인문대 내에서도 가장 큰 학회로 자리 잡았습니다.  

‘인생막장’이란 이름은, ‘막장’의 두 번째 뜻 즉 ‘갱도의 끝에서 광물 등을 캐내는 행위’에서 따왔습니다. 누군가 닦아 놓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신의 삶의 끝에서 순전히 스스로의 손으로 삶을 개척하자는 거창한 뜻을 담고 있지요. 연극과 영화를 보고, 세미나를 하면서 지금은 2학기 때 올릴 창작극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기소개서' 중에서. 알라딘 1급 극비문서고 보관) 

결국 130명 중 26명이 왕십리 보단 대학로에서 술 먹길 선호했다는 ㄷ뜻인데, 어쩐지 오그라드는 손발 때문에 자꾸 오타가 난다. 손가락이 오그라들다 못해 손바닥을 찌를 지경. 손끝이 무뎌진 탓으로 다행히 피는 나지 않고 있다. 그래. 결국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게 다 무뎌진 손 때문이다. 그렇다면 손은 왜 무뎌지는가? 맨손으로 '막장' 짓을 했기 때문이다.  

음, 다시 말해야겠다.  

언제나 벽에 부딪히는 인생. 그래도 살겠다고 맨손으로 그 끝을 파온 탓이다. 29년 동안 그런 짓을 하다 보면 손톱에 때가 끼는 정도로 그치지 않는 것이다. 어쩐지 나는 '갱도의 끝에서 광물 등을 캐내는 행위'라는 국어사전의 뜻에서(국어사전 인용도 저작권 법에 걸리는가?) 어떤 도구도 생각할 수 없다. 나에게 그건 언제나 맨손을 뜻한다. 그리하여 '인생막장™'을 공포公布할 때 나는 이런 말을 했던가.  

"우리가 혼자, 고사리 같은 손으로 파봐야 얼마나 파겠습니까? 그러니 혼자 파지 말고, 같이 팝시다"  

그래서 지금도, 이상한 이벤트를 올려 치고 나가려는 타서점 MD들에게 나는 (속으로) 조용히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같이 팝시다, 좀. 물론 이때 강세는 '좀'에 있다. (BGM : '좀'비 떼가 나타났네 - 타바코 쥬스)  

아… 바로 또 무뎌졌다는 증거를 제출하고 마는 철저한 실증주의라니. (죄송합니다)  

네일 아트라도 받은 것처럼 가만히, 손끝을 들여다 보니 어쩐지 지독하게 씁쓸한 기분이 든다. 막장(2번뜻) 끝에 막장(인터넷 용어) 온다고 했던가. 지금 내 기분이 그렇다. 지금껏, 내 마디가 굵은 손으로 파온 게 과연 무엇일까가 문득 궁금해졌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말라고 했던가. 하지만 나는 성나지 않았다. 조금 지쳤고, 그래서 그 막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조금 돌아보고 싶을 뿐이다. 내가 파온 것들을. 회한 없이, 다른 무엇도 없이.  


물론 그것을 온전히 믿을 필요는 없다. '인생막장™' 1대 학회장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책 중의 하나는 스타니슬랍스키 선생의 <배우 수업>이니까.  

언젠가의 나는 메쏘드 연기를 하는 연기파 배우를 꿈꿨고, 지금의 나는 메쏘드 연기를 하는 연기파 생활인이 되었다. 모두들 그렇듯이.


*

 내 가장 오랜 기억은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있다. 세 살이나 네 살 무렵의 새벽. 진달래며 개나리가 가득한 배경에 멜빵에 청베레를 쓰고 있는 나와, 꽃들이 점처럼 박혀 있는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곱게 땋은 사촌 누이의 모습(지금은 모 출판사를 다니고 있고, 최근 1년간 살이 좀 쪘다). 군산. 외갓집의 뒷산이다. 사실 뒷산이란 표현이 얼마나 맞는 지는 모르겠다. 피난민인 외조부모가 살던 집은 그 자체가 산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토끼 할아버지, 토끼 할머니라 불렀다.  

내 가장 오랜 극장의 추억에도 토끼가 등장한다. <꾸러기 발명왕>의 주인공은 어린 나이임에도 꽤나 영리해서, 비커와 스포이드가 가득한 실험실에서 동물을 커다랗게 만드는 '성장촉진제'를 발명해 낸다. 집채만한 토끼를 타고 즐거워하던 홍만이. 외조부모는 결국 토끼를 잡아 먹었다. 그리고 나는 앙고라 조끼를 선물 받았던 것 같다. 어쨌든 그들은 영원히 토끼 할아버지, 토끼 할머니로 남았고, 홍만이의 커다란 토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두번째로 오래된 극장의 기억은 그로부터 3년 후, 엄마와 함께 외가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동시상영관에서 케빈 코스트너의 <언터쳐블>과 아놀드 슈와제네거와 대니 드비토의 <트윈스>를 보게 된 나는 세상 모든 규제의 무용성을 이미 알았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언터쳐블>은 일곱 살 짜리의 눈에도 단연 최고였으니까.

다시 사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 사진은 더이상 남아 있지 않다. 하여 내 가장 오랜 기억은 사진의 형태를 한 채로 다시 기억에 저장되어 있는 셈이다. 그것은 이중의 기억이고 엄밀히 말하면 가장 오랜 기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사진을 꺼내 보이며 어른들이 내게 했던 말들, 내가 그 사진을 보며 상상했던 것들, 그리고 다시 그 사진을 꺼내어 보던 때의 심상이 함께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가장 오랜 기억에 대한 추억이라 부른다.  

기억은 어떤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추억은 어떤 것을 추억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기억이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잘 말려진 나뭇잎 혹은 곶감처럼, 어떤 기억만이 추억이 될 수 있다. 때론 기억이 아닌 것이 추억되기도 한다. 다른 이의 추억을 빌어 온 경우가 그렇다. 그것을 우리는 욕망이라고 부른다. 욕망은 결국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나는 가장 오랜 기억을 추억하듯, 내가 다른 사람이기를 욕망한다. 그게 어떤 사람인지는 물론 기억나지 않는다. 

 

 

 

존 버거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버지는 만화가였다. 나는 만화책을 보며 한글을 깼다. 집에는 언제나 어깨동무, 소년중앙, 보물섬, 만화왕국 같은 잡지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내 가장 오랜 만화책의 추억에서 하얀 카우보이와 검은 카우보이는 운명적인 대결을 펼친다.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던 검은 카우보이는 마지막 대결에서도 사악한 잔꾀를 굴려, 광활한 서부의 지는 해를 등지고 선다. 타는 듯한 역광에 당황한 하얀 카우보이는, 그럼에도 묵묵히 총을 꺼내 운명에 맞선다.  

결국 승리하는 것은 하얀 쪽. 닦고 조이고 기름친 하얀 카우보이의 길고 날렵한 권총에 햇빛이 반사 되며 순간적으로 검은 쪽의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전설처럼 구전되어 오늘에 이른다. "너무 반짝반짝 눈이 부셔 노노노노노"라는 검은 카우보이의 마지막 절규가. 시간은 흐르고 관점은 변하기 마련이니까. 실은 하얀 쪽이 악당이었을지도 모른다.

말을 곧잘 하게 된 이후로 마감일이 다가오면 전화통은 언제나 내 차지였다.  

"아버지 안 계시니?"
"아빠 업뗘요"

그 어느 편집자도 내게 아버지의 행방을 알아낼 수는 없었는데, 실은 바로 옆 방에서 파일롯 잉크에 펜을 담궈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 어머니는 그 옆에 앉아 연필로 그려진 밑그림을 잠자리표 지우개로 지우고 계셨지. 패밀리 비즈니스family business란 그런 것이다.

아버지가 그린 만화 중 내가 유일하게 온전히 기억하는 것은 보물섬에 그렸던 "명탐정 셜록 홈즈" 뿐이다. 서핑 중에 찾아 낸 위 그림은 아버지의 것이지만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책일지는 너무 뻔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지만. 위인전. 그때나 지금이나 생활인들은 생활을 위해 여러가지 일을 하는 법이다.

가끔은 궁금하다. 그에게 생활이 먼저였고 예술이 나중이었는지, 예술이 먼저였고 생활이 나중이었는지가. 생활을 위해 선택한 만화가 어느새 예술로 무섭게 다가온 것인지, 예술로 선택한 만화가 어느새 다가온 생계의 무게에 짓눌렸는지가 몹시도.    
   
 

 

 
이 친구라면 지금 내가 말한 것만 가지고도 자리에 앉아 그럴듯한 추리를 해내지 않을까?

 

 는 지금 황주리가 그린 김훈의 티셔츠를 입고 있다. 황주리는 김훈을 리본이 달린 검은 중절모에 민소매 남방을 입은 불독으로 그리고 있다. 김훈은 그 밑에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고 썼다.  

김훈을 개로 표현한 것이 황주리 씨의 선택인지 김훈의 요청인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참 그럴듯 하다. 개는 슬프다. 개는 그 슬픔을 외면할 줄 모른다. 그럼에도 개는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 슬픔은 슬픔이고 사는 것은 사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늙은 개 같은 김훈 선생은…"  

나는 또한 11년 동안 나와 함께 자랐던 개 한 마리를 기억한다. 녀석의 이름은 꾀보였다. 그 이름이 정말로 어울리는 작은 바둑이. 그 이후로도 우리 집에 잠시 머물던 개들의 이름은 대부분 꾀보였다. 어떤 녀석도 1대 만큼 똑똑하지는 않았다. 다시 개가 생긴다면 녀석을 훈이라고 불러 볼 생각이다.

막내 외삼촌은 서점을 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 산골에서 도망치듯 상경한 삼촌은 여러 돈벌이를 전전한 끝에 결국 서점을 차렸다. 30년 전의 일이다. 집과 서점을 왕복하며 나는 자랐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월간지가 저물고 격주간지가 새롭게 부상했다. IQ 점프, 소년 챔프… 하지만 그 잡지들은 우리 집에 배달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챔프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신 나는 선데이 서울을 보았다. 일요일은 물론 평일에도. 모리씨의 노랫말처럼. "Everyday is like Sunday!" 

신문수, 윤승운, 김수정, 김진 등의 이름이 기억난다. 그렇다고 만화책만 본 것은 아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창비아동문고.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 <사자왕 형제의 모험>,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책들을. 권정생 선생의 책은 사실 조금 황당했던 기억이 먼저다. 뭐 이런 이야기가 있나? 싶었으니까.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아버지가 '낭기열라'라는 제목의 만화로 연재하기도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원작보다 못해 실망했다고 밖에…   

 

 

 


<즐거운 무민 가족> 시리즈는 정말로 즐거웠다. <꼬마 유령 캐스퍼>는 또 어떻고! 무슨 이유였는지 엄마가 생색내며 사주셨던 옛날 이야기 책들도 있었다. 세 권으로 된 책에서 '꾀보'라는 이름을 수없이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솝우화나 그림동화를 비롯한 세계명작동화는 물론이다. 그림책은 단 한 권도 읽은 기억이 없다.

뭐니뭐니 해도 내가 가장 사랑했던 책은 지경사 어린이 문고로 나왔던 심경석 선생의 책이다. <대머리산>, <학교는 밤마다 이상해>, <배꼽장군> 같은 제목의 책들. 아이들이 나와서 놀고,  모험을 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노는 이야기를 나는 매일 읽었고, 밤이 깊었고, 엄마가 불을 끄면 이불 속에 손전등을 켜고 마저 읽었다. 지금은 언제라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불을 켜놓고 자고 있다.  

물론 21세기에는 책을 많이 읽은 아이가 똑똑해진다는 것이 상식이 되어 버렸지만, 20세기의 어머니는 '영재' 보다는 '오복'을 더 중시하셨던 것이다. (아... 눈 좋은 건 오복이 아니구나. 하지만 엄마는 이빨도 잘 닦으라고 하셨단 말이다)

어머니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어린시절 나는 똑똑했고, 특히 이과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우리집에는 언제나 내 발명에 필요한 재료들이 넘쳐 났는데, 정기적으로 아버지가 전화기를 집어 던져주신 덕이다. 요즘말로 하면 '츤데레'. 과학상자 같은 건 사줄 생각도 안하는 무심한 아버지로 보이지만, 실은 부끄러워 하셨던 것이다. "너, 너, 너 발명하라고 전화기 집어던진 건 아냐!"

내 가장 위대한 발명은 부셔진 전화기의 꼬불꼬불한 선 끝에 끊어진 이어폰의 플러그를 연결했던 일이다. 어머니는 역시 잔소리를 했지만. 아마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본 에디슨 엄마도 속 좀 터졌을 거다.  

아무도 없는 오전을 틈타 나는 마침내 완성한 세기의 발명품을 들고 TV 앞에 섰다. 아침마당 같은 프로가 작은 스튜디오 안에서 진행되고 있었고, 나는 숨을 고르며 떨리는 손을 진정시켜야 했다. 나는 그 발명의 위대함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런 생각을 왜 여태까지 아무도 못했을까?" 물론 천재는 흔한 것이 아니다.

한참이나 머뭇거린 나는 드디어 작은 손짓을 했다. 나에게는 작은 손짓일 뿐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손짓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내가 만든 수화기-이어폰을 14인치 금성TV의 단자에 꽂은 것이다. 그것은 이런 논리에 의해 만들어졌다.  

1. 수화기를 통해 사람들의 말을 들을 수도, 사람들에게 말을 할 수도 있다.
2. TV의 이어폰 단자에 이어폰을 꽂으면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그것은 말을 하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3. 만약 말을 할 수 잇는 수화기를 그곳에 꼽으면 전화처럼 그곳에 말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태초에 신의 목소리를 들은 아담은 얼마나 놀랐겠는가? 나는 당황할 TV 관계자들에 대한 미안함을 인류에 대한 공헌과 인류애에 대한 믿음으로 억누르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나는 말했다. "아, 아, 들립니까?"   

그로부터 8년 후, 나는 문과에 진학해야만 했다.   

 

 

실은 내가 쓰고 싶은 것은 이런 이야기였는데. 미안 꾀보.  


 학년에 접어 들며 읽는 책들이 조금은 다양해졌다. <논리야 놀자>를 읽으면서는 논리란 것이 정말 시시한 것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논리란 것이 결국엔 쥐를 구석으로 몰듯 다른 모든 가능성들을 제거한 채 하나의 답으로만 몰아가는 것 아닌가?" 물론 정확히 이런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지혜>, <빵장수 야곱> 같은 책들은 재미있었다. 아버지가 데려간 극장에서 쥐라기 공원을 보고 놀란 가슴은 소설 <쥐라기 공원>으로 진정할 수 있었다.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는 으스스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로빈 쿡을 선전했고, 누나들은 <닥터스>를 읽었으며, 아무도 내가 <7막 7장>을 읽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세상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오쇼 라즈니쉬의 <배꼽>과 <재미있는 수학여행> 시리즈였다. 배꼽이 누워서 감자를 먹을 때 찍어 먹을 소금을 올려 놓기 위한 기관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의 그 놀람이란… 

 

 

 

 

중학교는 그야말로 질풍노도, 주변인, 제2의 탄생의 시기였다. 나는 그 말들을 1학년 도덕 교과서에서 배웠다. 도덕 교과서는 오히려 순진한 아이들을 주변인의 길로 꼬시고 있었다. 교과서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나는, '야설'과 미야자와 리에의 작품집 <산타페>를 택했다. '천사의 오후 3'니 '동급생'이니 하는 게임들도.  

나는 지금 거리를 두고 그 시기를, 5.25인치 디스켓에 담겨 있던 중학교 시절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부끄러운 일은 <7막 7장>을 읽은 일이다.

컴퓨터의 매력에 흠뻑 빠진 나는 "헬로 PC"니 "마이컴"이니 하는 잡지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돈이 드는 일은 아니었다. 삼촌네 서점에서 집어 오면 되었으니까. 그 일은 내게 커다란 교훈을 남겼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사실을. 허리 높이까지 쌓인 잡지들 속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나는, 지금도 쌓이는 신간 사이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다.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 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랴,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도대체, 왜 아무도 진작 내게 이런 말을 안해줬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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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9-08-09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르바의 저 이야기를 듣고, 저도 같은 심정이었어요- 음. 사실 조르바도 반갑지만.
심경석의 책을 읽고 자라셨다니. 아아. 같은 세대임이 물씬 느껴져서 이리 답글을 답니다. 저도, 안양 대동문고 계단에 앉아서 친구여 안녕 같은 책들 보면서 훌쩍이던 기억이 갑자기 스믈스믈. (주인공한테 편지로 독서기록장도 썼던 기억이. 하하하하 ;;;;)

활자유랑자 2009-08-12 10:57   좋아요 0 | URL
저는 한때는 시골로 전학가는 게 꿈이었어요. 그러고 보면 요즘 아이들은 무슨 책을 읽는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한때는 어린이MD였는데, 하하;

시끌북스 2009-08-10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담당자님 글이 참 재미있네요. 매콤한듯 달콤하고, 상큼한듯 시큼하고.
인문과 역사를 좋아해서 열심히 보고 있지만 생각에 있는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는데에는 시간이 필요한듯해요.
덕분에 김훈선생님의 서재를 보게 되었네요..^^
자주 들르도록 할께요~

ps) 저도 네*버 지식인의 서재는....제목이 영...ㅋ

활자유랑자 2009-08-12 10:5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종종 놀러 오세요~

낙타씨 2009-08-10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뚜벅뚜벅

활자유랑자 2009-08-12 10:54   좋아요 0 | URL
낙타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2009-08-11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2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떤하루 2009-09-20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득키득 웃다가 7막 7장에선.. 저도 할말이 없다는ㅠ
하나 더 있습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여기서 나아가니 신화는 없다도;; 최악이군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아버지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와 '빵장수 야곱'을 제 손에 들려주셨더랍니다.
지금 끄집어내 보니 둘다 김영사 책이네요ㅋ

오늘 저녁을 먹으러 갔던 보쌈집이 하필 정신세계사 건물에 함께 있길래,
'성자가 된 청소부'를 떠올리고 웃었는데 말이죠..
여기 왔다가 반가운 책들 얘기가 줄줄 있길래 옛날 생각 하다갑니다 ^^
그 시절..90년에 나온 '배꼽'은 3,800원이었네요.. 후훗.

낼 알라딘 갑니다. 인문 MD님 뵈면 쪼끔 더 반갑겠는데요.. ㅋㅋ

활자유랑자 2009-09-28 16:52   좋아요 0 | URL
어느 집에나 그런 책 한 두 권은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엔 집에서 MB님의 <신화는 없다>를 발견하신 분이... 시간은 참 빠르고 지구는 잘도 돌아가네요.

mrs.m 2009-11-13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초등학교때부터 좋은 책을 많이 읽으셨군요+_+ 특히 <사자왕 형제의 모험>, 저는 지금도 가끔 읽는답니다. 무민 가족도 여전히 캐릭터로 제 옆에서 생활하고 있고~ ㅎ 그 후로 독서력도, 사고력도 전혀 늘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는지 목소리도 그때와 변함이 없어 저는 아직까지도 "아빠 없떠요"를 할 수 있답니다. 나름 편리해요.

활자유랑자 2009-11-16 13:45   좋아요 0 | URL
옛말에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다던데...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나요? ㅜ_ㅠ 저는 그냥 이렇게 살고 있어요. 나름 살만해요. 다만, 더 많은 이야기를!
 

버브verve, 큐어cure, 오아시스oasis, 디페쉬 모드depeche mode,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 매닉 스트릿 프리쳐스manic street preachers, 자비스 코커jarvis cocker 그리고 플라시보placebo 까지.  

지난 9월부터 발매된 어떤 종류의 신보들 목록(* 모리씨morrissey는 부러 뺐음). 반 년 남짓한 기간 동안 족히 10년은 거꾸로 세월을 거스른 듯한 이 모양새. 어떤 정권의 역주행에 바다 건너 건너 섬나라의 뮤지션들이 죄 고무되기라도 한 걸까? 그래, 그 와중에 개봉했던 영화 '클로저'도 빼놓을 순 없겠다. 조이 디비젼joy division 일단 추가. (트래비스travis랑 콜드플레이coldplay는 '짬'이 안된다!)

불평을 하자는 건 아니다. 차라리 "도대체 피터 훅peter hook이랑 버나드 썸너bernard sumner는 나잇살 먹고 왜 그래? 싸웠으면 화해하고 뉴 오더new order도 신보 내야되는 거 아냐?" 같은 불평이면 모를까(심지어 '클로저'에서도 피터 훅은 본명 대신 후키라는 애칭으로만 불린다)... 컷 카피cut copy, MGMT, 뱀파이어 위크엔드vampire weekend 같은 친구들 사이에 슬쩍 넣었던 블러blur의 'THINK TANK' 앨범을 들었던 게 바로 오늘 출근길이었단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노래를.  

우리를 자유롭게 하던 러브송은 어디로 갔을까?  
죄다 우울한 사람들
만사는 꼬여 돌아가고
인생이 어떻게 굴러갈진 도무지 모르겠고

- blur, 'out of time'  (우린 안될거야 아마... 가 제목이 아님)

언제부턴가 어떤 의무감에 mp3p를 채우게 된 신곡들 사이에 끼어있던 그 노래를, 오늘도 기어코 찾아 들었다는 이야기.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던 러브송들, 계속해서 변주되며 새롭게 흐르던 그 노래들이 요즘엔 다 어디로 갔는지가 궁금할 뿐. 진짜 놀랄 일은 따로있따. 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 블러가 재결성을 한다는 소식! 올 하반기엔 신보도 나올 예정이라고. (그레이엄 콕슨graham coxon이 포함된 오리지널 멤버!)   

가만 생각하니 내가 이 소식을 들은 건 사실 며칠 전이었다. 그땐 무심히 흘려 들었던 그 이야기를 오늘 다시 듣고 새삼 놀란 것.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다. 납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일들도 있다는 뜻일까. 그러니까, 데이먼 알반damon albarn과 콕슨이 화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그렇다면 브렛 앤더슨brett anderson과 버나드 버틀러bernard butler는 너무 일찍 화해했던 셈이다. (리차드 애쉬크로프트richard ashcroft와 닉 맥케이브nick mccabe의 화해는 어떨까?)

나는 문득 듀란듀란duran duran과 2000년 그들의 앨범 'poptrash'(!)를 생각했다. 그들도 나도 모두 스무살이었던 그때를(듀란듀란의 경우에는 메이저 데뷔 앨범 발매시기를 기준으로). 처음에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척 할아버지가 돌아오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왠걸. 별 두개라는 올뮤직 가이드의 냉혹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 앨범은 꽤나 눈물나는 명반이었다. 이런 식이었다.  

꽃이 꿀벌을 사랑하듯 그 사랑이 진실할 때,
가장 어려운 일은 떠나 보내는 것
하지만 난 알고 있어 넌 네 스스로를 놓아 버리게 될 것을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 duran duran, 'someone else not me'  

스무살이란 무릇 이런 나이인 것이다. 아마 지금 스물을 맞은 이들이 보는 블러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블러 역시 올해 스무살이 되었다. 이번에는 밴드 결성 시점으로. 완전 내맘) 물론 돌아온 친척 할아버지가 멋쟁이 할아버지인지 욕쟁이 할아버지인지는 앨범이 나와봐야 아는 이야기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어쩐지 나이를 엄청나게 먹어버린 기분이 들고...

블러를 처음 들은 건 13년 전 일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블러의 앨범은 '13'. 어쨌거나,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언제부터였을까. 음악을 단순히 귀로만 듣게 된 것이.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간다면 역시 백스테이지2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건 너무 긴 이야기가 될 테니까. 사실 제대로 할 자신도 없으니까. 어둡고 습한 지하의 카페에 앉아 한쪽 벽을 채우고 있던 스크린 위로 흐르던 매닉스의 'motorcycle emptiness' 뮤직비디오를 보며 선배가 쥐어준 보급용 88 담배에 손을 뻗는 고등학생의 마음 같은 건, 십년이 훨씬 흐른 오늘도 손발이 오그라드니까.

군대 가는 순간- 이라던 선배의 말을 믿은 적은 없었다. 물론 나는 원더걸스도 소녀시대도 2NE1(중 1人)도 모두 좋아하지만, 그건 좀 다른 문제니까. 이등병 시절엔 보아의 넘버원 안무를 외웠어도, 최고참이 된 후에 신병이 들어온 날이면 취침 청소시간에 톰 웨이츠tom waits의 'a sight for sore eyes'를 틀곤 했는데. (왜 그랬을까? (왕고인 내가)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무의식의 발로?;)

나이도, 생활도, 여유도. 많은 이유가 통하겠지만 내 추리는 이렇다. 더이상 가사를 파며 노래를 듣지 않게 된 순간. 바로 그때부터 음악은 그저 'BGM'이 되고 말았다는 것. (그 순간 이후 지금까지 내가 가장 '음악적으로' 열광한 신인은 빅뱅이란 사실이 이 가설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그러니까 더이상 "서로를 찾기 위해 약을 먹"지 않고, "너와 함께 빛나는 내가 되게 해줘" 같은 말을 하지 않고 "그런 경우라면 럼앤코크를 주문"하지 않을 뿐더러 '서쪽으로 튀'지도 않고 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닉 혼비가 닉 혼비가 되었던 게 결국 영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건데, 이 마당에 모든 인간이 섬이든 아니든 도대체 내가 알게 뭐람!  

섬. 섬 얘긴 그만하자. 그러니까 꼭, 영국음악이 아니어도 좋다.

섬의 세련된 버전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쓰인 단어는 '인공위성'이다. 'satellite'이라고 해야 느낌이 산다. 바슐라르가 말한 문화적 컴플렉스. satellite 이라고 하면 루 리드lou reed의 'satellite of love'가, 인공위성 이라고 하면 "니가 좋아 너무 좋아"가 생각나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아, 이건 '일기예보'고 '인공위성'은 아카펠라 그룹이었던가? 아무튼 루 리드가 "오, 사랑의 인공위성 오, 사랑의 인공위성, 이인고옹위이서엉"이라고 부르면 좀 웃기잖는가?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선 고유명사가 쓰였다. 같은 고유명사가 쓰인 델리스파이스의 '우주로 보내진 라이카'란 제목은 너무 직접적이다. 가끔은 궁금하다. 우습지도 않고, 특이하지도 않게- 그냥 무덤덤한 수준에서 'high and dry' 같은 제목의 한글 번역은 가능할까? 피오나 애플fiona apple의 'fast as you can'은? 결국 운문의 번역 문제. 지금껏 맘에 쏙들게 번역된 엘리어트의 시구를 본적은 없으니까.   

we have lingered in the chambers of the sea
by sea-girls wreathed with seaweed red and brown
till human voices wake us, and we drown

아마도 그건 어떤 갈증 혹은 스스로가 글을 잘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이겠다. 엄청난 비약이겠지만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 보며"라고 쓰고 '풍화작용'이란 단어를 못내 고민하던 시인의 마음이 비슷했을까? 실은 문화사대주의에 훨씬 더 가깝겠지만. 

U2의 'stay(far away so close!)' 가사에도 인공위성이 나온다. "멀리 그렇게 가까이 / 움직이지 않고도 / 라디오 그리고 위성 텔레비전과 함께" 이렇게 써놓고 보니 어찌나 빔 벤더스와 잘 어울리는 가사인지(가끔씩 그가 펼쳐보이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과 일맥상통?). 이 노래가 쓰인 '베를린 천사의 시' 속편이라는 그 영화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땅으로 떨어진 천사가 고속도로를 걷는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과 더불어 내가 이 노래에서 잊지 못하는 건 한 줄의 가사다. "그가 너를 상처내도 / 너는 상관하지 않지 / 그가 너를 때릴 때 / 비로소 넌 살아있음을 느끼니까" 재미있게도 '베를린 천사의 시'의 헐리우드 판인 '씨티 오브 엔젤'에 삽입된 구구돌스goo goo dolls의 노래, 'iris'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너는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피를 흘리지you bleed just to know you're alive"

그냥 단순한 우연인가. is that what it is? 이렇게 써놓고 보니 스트록스strokes를 떠올리게 되고야 마는 것 같은. is this it?  

스트록스를 보던 날, 2006년의 여름이 떠오른다. 지금은 행방조차 알 수 없는 후배의 남자친구에게 얻은 1일권으로 갔었던 그곳에서. 스노 패트롤snow patrol 라이브는 앨범 보다 백배 좋고, 제이슨 므라즈jason mraz는 참말로 귀여운 친구라는 걸 깨달았던 그날이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기대했던 건 역시 스트록스였는데. 'new york city cops'를 부르며 뛰던 그 밤. 진흙범벅이 되어서 부평에서 총알택시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던.  

무려 직장인이 되어 3일권을 끊어갔던 작년의 펜타포트는 어쩐지 트래비스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땡볕과 맥주도. 그러니까, 물에 적신 빨간 펜타 수건을 머리에 얹고 맥주에 칵테일에 흐느적 돌아다니다가 목청껏 불렀던. "만약 우리가 턴, 턴, 턴, 턴, 턴, 턴, 턴, 턴, 터어어언, 터언 한다면 우리는 배울 수 있겠지?" 라던.  

그러니까 나는 아마 노래를 부르고 싶은 모양이다. 훈련소 시절, 길고 길던 행군에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던 그 노래들.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던 그 노래들. 그 노래들은 정말 어디로 갔을까?  

노래를 부르고 싶어
내 노래를
내가 어울리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살아남을 거야  
아마 길진 않을거야
만약 우리가 턴, 턴, 턴, 턴, 턴 한다면 

그러고보니 디바인 코미디divine comedy의 새앨범도 연내에 릴리스될 예정이라던데. 결국 돌고 돌고 돌아오는 걸까? 해체 이후 줄기차게 NME 등에 "다시 밴드를 하고 싶습니다!" 따위의 구인광고를 냈던 스매슁 펌킨스smashing pumpkins의 빌리 코건billy corgan 처럼, 아무리 살아도 놓아버릴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있는 모양이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들이. 참고로 블러의 '아웃 오브 타임'은 이렇게 끝난다.  

내가 꿈꾸는 게 아니라고 말해줘
우리는 시간을 벗어났다고
우리는 시간을 벗어났어
시간 너머로  

우린 안될 거야 아마... 로 끝나지 않아서 참 다행. 그리고 도무지 맥락 없는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이렇게-

 

난 그냥 오랫된 이야기 책을 펴고 자리에 앉을래
옛날옛날에 꼭 나같은 애가 있었어
만물과 모든 이들에게 사랑이 있다고 생각했지
얘, 너 정말 순진하다!
결국 불보듯 뻔하니까
그런 애들은 딱한 최후를 맞기 마련이니까
엄숙하게 책장을 넘기며 나도 그럴만하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멋진 미소를 한 그 불쌍한 꼬마가
그 순진함으로 마침내 성공한 거야!
난 울어버렸어
마지막 장면에서 난 맨날 울거든

- belle and sebastian, 'get me away from here i'm dying'


* 이 글은 이른바 '의식의 flow' 기법 혹은 '무통증 알코올 요법'으로 낯뜨거운지 모르고 씌여졌음을 밝힙니다.
(그러니까 실은 신간소개를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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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6-17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생각지도 않았던 음반 지르게 만드시네요. -_- 인문 엠디를 가장한 음반 엠디?

활자유랑자 2009-06-18 00:58   좋아요 0 | URL
인문과 팝(클래식 아님)의 조화를 꿈꿉니다... 는 물론 뻥입니다 ;

여름매미 2009-06-17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스2의 빤딱빤딱 소파가 생각나네요. 스팽글 앞에서 피는 어질한 담배 맛과 스미스의 허브가 뿌려진 떡볶이는 어떻고요,, 흣

활자유랑자 2009-06-18 00:59   좋아요 0 | URL
혹시.. 언제 만난 적이 있던가요? ;

mong 2009-06-17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추억의 파도가 넘실대는 이곳은 어디? (두리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저의 bgm은 Back in Black으로... 흠흠

활자유랑자 2009-06-18 01:03   좋아요 0 | URL
의식이 flow 하니까 추억도 flow... 저는 verve랍니다. ㅎㅎ

2009-06-19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1 0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3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5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eulhee89 2009-11-21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웃으며 읽고 갑니다~ 공감도 가고 재밌게 정말 흐르는 대로 읽힌 글이네요 ^^

활자유랑자 2009-11-23 00:5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i'm flow yo 소리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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