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곳엔 모든 것이 - 어둠만 빼고 - 아주 적은 양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빛도 소리도 사람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낮의 세계에 차고 넘치는 그것들이 줄어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밤은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빛도 소리도 사람도- 실은 이 정도면 충분하구나, 라고.  

물론 <밤의 문화사>가 반가운 이유가 밤을 좋아하는, 그래서 이런 페이퍼를 일요일 밤에 쓰고 앉았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이야 역사, 특히나 '문화사'라고 하는 영역이 한 풀 두 풀 세 풀은 꺾였지만 한때는 꽤나 사랑받던 분야가 아니었던가. 이를테면 <고양이 대학살>. 그 후 12년, 그 책을 번역했던 조한욱 교수가 새로 번역한 책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물론 시대도, 시장도 모두 변하긴 했지만.

방대한 양의 거창하고 또 자질구레한 자료들 속에서 튀어 나오는 놀랍고 또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를 그 어떤 소설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게 아마도 문화사의 매력이 아닐까. 그렇다면 문화사가 인기가 없어졌다는 것은 더 이상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없어졌다는 뜻. 그렇지만 삶은 계속되고 누군가는 그것을 노래한다. 때로는 소설로 때로는 다른 방식으로. 어쨌거나 저자 로저 에커치는 굉장한 이야기꾼, 혹은 노래꾼이고 그래서 즐겁다. 더군다나 그가 노래하는 것이 밤이라는데!

인기가 없어진 분야로 이야기하자면 고고학/인류학 분야도 빼놓을 수 없다. 결국 삶과 인류와 세계의 역사에 대한 다양하고 소소한 관심들이 자기 자신의 '먹고 사는' 문제만으로 수렴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문사회 담당자나 할 법한 쓸데없는 생각을 잠깐 해보기도 하며 <고고학의 즐거움>과 <최초의 인류>를 바라보자니 어딘지 쓸쓸해지기도…

<고고학의 즐거움>은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 우리의 기술력으로도 만들기 힘든 거대한 고대의 유적들은 도대체 어떻게 세워졌는지. 먹고 살아가는데 하등 도움 될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궁금해 미칠 것 같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최초의 인류>는 고인류학계의 영원한 관심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관망하자면 물리학의 '최종이론'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도?) '미싱 링크',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 자신이 서로 경쟁하는 네 탐사 팀을 쫓으며 담아낸 생생한 내용들은, 마치 추리소설처럼 읽는 이를 빠져들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를 처음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일반적인 띠지의 약 2.5배 정도 되는 크기로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하고. 우리나라에서 큰 인지도가 없는 철학서 저자를 표지에 저렇게 크게, 그것도 띠지로, 넣은 전례가 있는지 문득 궁금. 이 책에 관한 얘기는 얼마전 도서팀장님 페이퍼를 빌어 한 적이 있으니, 여기에 옮겨 놓는 것으로만.

"독일의 미남 학술 전문 저널리스트가 쓴 대중 철학서로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지난 1년간 45만부가 팔린 화제의 책. 철학자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핵심사상을 요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현대인이 직면한 존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또한 철학자들의 사상뿐 아니라 심리학자, 뇌신경학자, 인류학자 등의 최근의 연구성과를 함께 제시하며 통합적인 이해를 시도한다. 독일의 슈피겔 지는 이 책을 가리켜 "독일 통일 후 최근 20여년간 가장 성공한 대중 철학서"라고 평했다." (당시 '미남'이라고 표현한 것은 출판사의 입장을 십분 반영한 것이라는 것을 밝혀야겠다…)

<중력과 은총>- 아 '중력'과 '은총'이라니! 끊임없이 아래로 잡아 내리려는 힘과, 밝고 따뜻하며 또한 사려 깊게(혹은 잔인하게?) 그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힘. 시몬(느) 베(이)유의 고뇌가 녹아있는 이 책은, 감히 뭐라고 말할 수도 없이 아름답다.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아름답다. 개인적으로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끊임없이 끊임없이 사유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에스프리(!;;)가 그대로 담겨 있다고 괜히 거창하게 한 번 말해보고 싶을 정도로.

"고통을 자기 밖으로 퍼뜨리려는 성향. 너무도 약해서 타인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하고 타인을 괴롭히지도 못하는 사람은 우주의 표상 자체에 어긋나는 것이다. / 그렇게 되면 아름답고 선한 것이 모두 모욕이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배신한다. 나는 그에게 편지를 쓴다. 그가 나에게 답장으로 써 보내는 것은 결국 내가 그의 이름으로 나 자신에게 말한 것과 같은 말이다. / 사람들이 줄 거라고 우리 스스로 상상하는 것. 사람들은 우리에게 바로 그것을 빚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이러한 부채를 면해줄 것.

실제의 그들은 우리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모습과 같지 않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것, 이것은 신의 자기희생을 본받는 것이다. / 나 역시 스스로 상상하는 것과 다르다. 그것을 아는 것이 바로 용서이다."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는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와 <쓰여지지 않은 철학>에 이은  라티오 출판사의 세번째 책이다. '우연적 삶에 관한 문학과 철학의 대화'라는 부제에서도 느껴지듯이, 앞의 두 책들 보다는 좀 더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이 가을에 어울리는 사유를 담고 있는 책이다.

<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은 사실 '광기' 보다는 '멀쩡함'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책이다. 광기어린 천재들의 영웅담 혹은 '광기의 역사' 등- 우리가 언제나 흔히 접하는 것은 '광기'다. 물론 우리는 멀쩡함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도대체 그 멀쩡함이 뭔지(멀쩡함이 뭥믜?)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멀쩡하고 싶어서 미친 듯이 살지만, 실은 뭔지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재미있는 문제의식. 역시 제법 독서의 계절에 어울린다.


* 진짜로 소설보다 재미있는 인문 신간도서들이긴 하지만, 설령 더 "나는 이 책들 보다 훨씬 재미있는 소설을 알고 있다!"라고 하신대도 환불은… (사실 저도 알아요)
* 마지막으로 시몬(느) 베(이)유의 눈물 나는 아포리즘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인간의 비참함이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다면 진정 견딜 수 없으리라.
인간의 비참함이 희석되지 않도록 견딜 수 없는 것이 되게 할 것.
"그들이 눈물에 지쳤을 때" (<일리아스>) - 극심한 고통을 참을 수 있게 해 주는 한 가지 방법.

위로 받을 수 없도록 눈물을 흘리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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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 2008-10-2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페이퍼 덕에 제(읽고픈 혹은 읽고 말) 인문도서 목록 또한 만선입니다.ㅎㅎ

곰탱이 2008-10-22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인기 없어진 분야를 공부하는 저는 그럼 블루오션 개척??
하나하나 골라서 읽어봐야 겠어요.

글샘 2008-10-22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문화랑 고잉인세인 읽어볼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