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번 주에 가장 먼저 소개해야 할 신간은 박문호 박사의 <뇌, 생각의 출현>이겠습니다. 첫 저작이기에 조금은 생소한 이름이지만 연구공간 수유+너머, 카이스트, 서울대 등 그가 강의해 온 곳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왜 이제야 책이 출간 되었는지 궁금할 지경입니다.
'나'는 뇌의 활동입니다.
뇌 세포의 집합적 활동 결과로
의식을 생성할 때 비로소 '나'는 존재합니다.
언어와 문화는 뇌 작용의 일부입니다.
인간에 이르러 비로소 '생각한다'는 것이 가능하게 된 기원과
우주와 생명의 탄생에서 시작해 감각과 운동, 기억, 느낌, 의식
그리고 창의성에 이르는 전 과정을 탐구합니다.
표지의 하얀 부분, '뇌'라고 쓰인 좌측 상단에 쓰인 이 문구가 아마 이 책의 성격을 가장 명확히 말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뇌의 활동입니다"라고 잘라 말하는 것처럼, 책은 기본적으로 뇌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주와 생명의 탄생에서' '창의성에 이르는 전 과정을 탐구'하고 있다는 말 또한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왜 구분되어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과학 독자'와 '인문 독자'를 모두 아우르는 과학서이자 인문서라는 말.
뇌과학에 관한 친절한 강의노트를 표방한 책은 내용이 꽤 방대하고 분량또한 만만치 않다. 생물학과 입자물리학,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 등 과학계의 주요 이론과 분야를 두루 다루는 동시에 신경철학자들의 주요이론, 포스트모던 사상까지 접합시킨다. - 경향신문
신문 서평처럼 사실 만만치 않은 내용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 또한 분명해요. '뇌'와 '우주', '생명' 그리고 '창의성'까지. 그야말로 '우주적 통섭'이라 할만한 저작이 국내 저자의 손에서 쓰여졌다는 것이 무엇보다 반갑습니다.
<지식의 대융합> 역시 주목할 만한 국내 저작입니다. 인문학은 이미 고사枯死하고 자연과학 또한 '살려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우리의 현실에서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당면 과제가 된지 오래지만, 뚜렷한 성과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추상적인 당위를 넘어 그 내용과 필요성이 구체적으로 살에 와닿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미래 지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융합 지식’과 ‘융합 기술’을 이해하기 위한 개론서로서, ‘지식의 대융합’을 이루는 학문 간 연구의 성과와 새롭게 출현한 융합 학문의 탄생 과정을 담는다. 뒤쪽에 ‘지식 융합 도표’를 별도로 넣어, 지식 융합의 전모를 한눈에 파악하도록 했으며, ‘에필로그’에는 우리나라의 지식 융합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 알라딘 책소개
자, 그래서 나온 책이 바로 이 <지식의 대융합>이라는 말씀. 제목은 <통섭>과 더 닮아 있지만, 실은 '통섭'의 필요성은 이미 전제로 두고(물론 단순히 '한문 간 연구'라는 기초적인 부분에서), 최신 융합 학문에 대한 전방위적인 소개를 하고 있는 이 책은 <지식의 최전선>을 더 닮았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편하실 듯.
다음으로 소개할 책은 스티븐 제이 굴드의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입니다! 먼저 이 일을 하게 된 이후에 책 내용을 보지도 않고, 단순히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책을 손에 받아 쥐는 순간 가장 흥분했던 책이라는 사실부터 밝혀야겠네요. 스티븐 제이 굴드에 대해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 중 한 명'이라는 식의 말을 제가 감히 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위대한 과학 저술가 중 한 명'임은 틀림 없으니까요.
'고생물학자 굴드의 자연사 에세이'라는 부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잡지 [내추럴 히스토리]에 연재했던 자연과학사 에세이를 모은 책입니다. ([내추럴 히스토리]에 연재했던 에세이들은 모두 10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고, 이 책은 그 중 여덟 번째 책이라고 하네요)
예술과 과학, 진화론의 일대기, 선사시대의 인간, 역사와 관용에 대하여, 진화의 사실과 이론, 공통된 진실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이라는 이름의 6부로 나뉘어진 총 21편의 글은, 적어도 제게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 저술가'인 굴드의 위트와 날카로움이 넘치며 또 유려한 글맛을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불가사의하리만큼 특이한 사람의 뇌는 진화의 산물로 탄생했다. 그 속에는 원래 목적이 다르거나 또는 뚜렷한 목적 없이 그때그때 발생했던 -때로는 오도된- 갖가지 사유 방식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 다음 뇌는 진화의 중심 진리를 발견하지만, 다른 한편 자신을 창조한 바로 그 과정의 여러 가지 양식과 함축을 배척하도록 편향시키는 희망과 편견들로 가득 찬 인간 문화와 사회를 세우기도 한다.
따라서 진화는 뇌를 구축하고, 다시 그 뇌가 자신의 창조 과정을 밝힐 수 있는 사유 양식과 진화에 대항하는 문화를 동시에 발명하는 셈이다. 이것은 가히 우주적인 규모의 심술궂은 회귀인 셈이다. 돌고 돌면서 우리는 끝없이 반복되고 영원할 수도 있는 소용돌이로 들어간다. 그러나 작게는 이 글에 대한 주제를 주고, 크게는 우리 존재의 본성에 대한 얼마간의 통찰을 제공해주는 이 나선 속에서 우리는 점차 이해가 증대되는 몇 가지 형식의 특징을 파악해지는 것 같다. - 서문 중에서
굴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책도 함께 소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더이상 의심할 수 없는 진화의 명백한 증거들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어떻게? 바로 C.S.I. 에서 자주 보던 그것, DNA를 통해서. 진화는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 아닌가? 왜 지금 구태여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이라고 강조까지 해야 하냐? 라는 의문이 드신다면-
새로운 DNA 증거는 진화 과정을 밝히는 것을 넘어 매우 중대한 사명을 띠고 있다. DNA 증거는 학교 차원에서는 진화론을 가르치느냐 마느냐, 사회에서는 진화론을 인정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싼 지루한 논쟁에 마침표를 찍어줄 수 있을 것이다.
배심원들더러는 유전적 차이와 DNA 증거에 의존해 용의자를 살려주고 석방시킬지를 결정하라고 하면서 그러한 증거와 생물학이 바탕으로 삼고 있는 진화의 기본원리들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말라는 것은 그저 아이러니로 치부하고 말 일이 아니다.
진화론 반대운동은 진화와 진화 과정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소개할 새로운 증거들은 진화가 생명다양성의 밑바탕이라는 주장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남지 않도록'해줄 것이다. - 서문 중에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나라, 미국이지요. (아마 저자도 꽤나 열받은 모양입니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위해 바보 같은 미국인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물론 이 표현은 '모든 미국인'을 가리키고 있지 않습니다). 진화론에 대한 최근의 과학적 증거들을 잘 정리하고 있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책이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나라 미국의 진정한 속내가 궁금하시다면 <제국에 반대하고 야만인을 예찬하다>를 추천합니다. 우리에겐 <슬럼, 지구를 뒤덮다>로 친숙한 마이크 데이비스가 폭로하는 발가벗은 미국의 속살.
1부에는 워싱턴 D. C.를 중심으로 한 정치계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국 정가의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을 수 없는 한국이기에 상당히 유용한 읽을거리다. 2부에는 이라크 전쟁을 중심으로, 미국이 저지른 깨끗하지 못한 전쟁의 역사를 담고 있다. 전쟁을 일으킨 까닭, 그 전쟁의 수혜를 입은 사람들, 전쟁을 받아들이는 미국인들의 태도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담는다.
3부는 자본주의 미국의 오늘을 이야기한다. 4부는 카트리나 이후에 인위적인 인종 청소에 내몰린 뉴올리언스를 중심으로 빈곤 문제, 인종 문제, 사라져 가는 좌파의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5부는 아직도 혁명을 믿고 사회주의를 꿈꾸는 맑시스트 사회주의자인 저자의 면모를 명확하게 보여 준다. - 알라딘 책소개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지만, 어쨌거나 남의 나라 이야기이기에 쉽게 읽을 수 있고 하지만 그게 미국이기에 더 통쾌하고 또 분노하게 되는 책입니다. 읽으신다면, 날도 스산하고 미국 대선도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이 가장 좋겠죠.
명확한 주관과 거침없는 입담의 소유자 남경태 씨의 신간 소식도 전해 드립니다. <철학>에 이어 그가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중 하나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역사>. 687 페이지라는 두툼한 볼륨을 자랑하고 있는 이번 책에서 그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역시 '유니크한 향취'의 '남경태표 역사'입니다.
독일산 벤츠와 이탈리아산 페라리가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강력한 힘과 빠른 속도를 자랑하지만 자전거용 수동 브레이크조차 없다. 질주 본능에 사로잡힌 그들은 제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물론 시민들은 두 나라에도 있지만 시민사회는 없다. 오히려 두 나라의 시민들은 국가의 질주에 박수를 보낼 뿐 자신들이 제동장치의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프로이센과 영방국가의 시민들, 이탈리아 반도의 시민들은 그동안 자동차가 없어 설움을 받았다는 생각뿐이다. 통일국가가 수립되자 이제 우리도 고속도로에 뛰어들 수 있게 되었다는 자부심에 국가를 견제하기는커녕 전폭적으로 국가를 밀어준다. 레이스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어 조급한 마음뿐이다. 초조한 레이서들은 조만간 대형 사고를 칠 게 뻔하다. - '시민사회의 부재: 파시즘' 중에서
남경태만의 뚜렷한 주관과 거칠 것 없는 입담은 때론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비슷비슷한 기획물들로 점철되던 국내 역사서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고 올 것만은 확실합니다. 물론 재미는 보장.
자,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천하나의 고원>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제목이라고요? 저자는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공동대표네요(아직도 이 직함이 유효한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럼 이제 좀 감이 오지 않으세요?
그렇습니다. 노골적인 제목과 저자에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난해하기로 소문난 들뢰즈/가타리의 <천(개)의 고원>에 대한 일종의 해설 혹은 '새롭게 읽기'입니다. 저자의 말을 빌자면 "에티카의 측면에서 <천의 고원>을 읽어냄으로써 이 시대를 위한 사유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네요. 사실 <천 개의 고원>도 읽어내지(!) 못한 제가 뭐라 드릴 말씀은 없지만요…
이 기회에 <천 개의 고원>도, <천하나의 고원>도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마침 11월 5일까지 새물결 브랜드전이 진행중이고 그 중에서도 <천 개의 고원>이 35% 할인행사 중이어서 드리는 말씀은 아니에요. 그냥 참고만 하세요, 참고만. (책장 한구석에 먼지와 함께 풍화되어 가는 <천 개의 고원>을 오랜만에 꺼내봤는데,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졸음이…)
* 날이 많이 춥네요. 사실 이런 날은 따뜻한 방에서 이불 돌돌 말고 앉아 책이나 읽어야 하는데… 하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배는 출발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