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두 달이 흘렀다. 이 '인생막장 혹은 어느 주변인의 고백 #1'이라는 우스꽝스러운 글을 쓴지도. 세상에 제목하며. 고해성사라도 하자는 건가? 설상가상으로 설정한 업데이트 주기는 2주. 오 하나님 맙소사. 보일러를 틀기는 지갑이 얇아 전기장판을 찾는 이 가을에 문득, 참담한 기분이 든 나는 #2를 써버리기로 결심한다. 두 달 만에. 물론 여기에는 정교한 계산이 숨어있다. 어쨌거나, 지금 하나 써놓으면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이 지긋지긋한 고백에서 벗어나도 되겠지. 업데이트 주기는 2주, 라고는 하지만. 아마 하나님도 신경쓰진 않으실 게다.

그래서 가을이다. 친구에게 바람맞은 일요일. 밀린 설거지를 하고, 한 숨 자고, TV를 보다가 세탁기를 돌리고, 삑삑 소리에 섬유유연제를 넣었을 뿐인데 가을이, 성큼 와버린 것이다. 나는 침착을 가장하며 담배를 찾는다. 하지만 담배는 없고, 슬리퍼를 신고 밖에 나가기에 가을은 너무 춥다. 컴퓨터 앞에 도로 앉아 도리 없이 묻는다.

"그런데 잠깐, 어디까지 썼더라?"

그래서 이 글은, 지극히 편의적으로, 이렇게 시작한다. 
먼저, 돌아온 하우스 박사(M.D.) 이야기. 짧은 머리로 돌아온 하우스 박사(M.D.)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나를 망친게 아냐. 난 이미 망가졌다고."
(They didn't break me. I am broken)

나는 이렇게 말한다.

"너만 M.D.냐 나도 M.D.인데"
(Are you M.D.? I am M.D., too)

뭐, 어디서든 시작은 해야 하니까.

이런 시작이 마음에 들지 않을 사람들을 위해 MD's cut이 있긴하다. 조금 더 길고, 조금 더 지루하긴 하지만.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스피노자 <에티카>의 제 3부 정리 28에 대한 재증명 같은.

정리 28. 우리는 기쁨을 가져오리라고 우리들이 표상하는 모든 것을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에 모순되며 슬픔을 가져오리라고 표상되는 모든 것은 멀리하거나 파괴하려고 노력한다.

증명 : 나는 언제나 완벽하게 멋진 글을 쓰고 싶었고, 그것을 위해서는 영혼을 팔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사지 않았고, 이내 나는 그것을 버렸다. - Q.E.D. 증명끝.


*

학교에서 내가 배운 것은 단 하나의 문장이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아마도 중학교 3학년 과정, 도덕 교과서의 어디메에서. 우리 도덕 선생님은 69년 우드스톡 공연장에서나 볼 것 같은 양반이었다. 긴 머리에 히피. 강의는 수업 시작 후 한 10여분 남짓 할까? 그 후론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읽도록 시킨 후 창가에 앉아, 우수에 젖은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선생님은, 그러나 문득 딴 짓을 하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면, 카누의 노 같은 매로 엉덩이를 마구 때리곤 했다. 일단 시작하면 대개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던 그 스윙의 끝은 이랬다.

"내가" 퍽퍽 "니들 같은 놈들 때문에" 퍽퍽 "원폭을 맞아서" 퍽퍽 "이러고 있는데" 퍽퍽 "니들은" 퍽퍽 "어째서" 퍽퍽… 그는 잘해봐야 30대 후반으로, 역사 교과서 수준의 상식도 갖추지 못하고 있던 내 눈에도 '이따이이따이' 하지도 '미나마타' 하지도 않아 보였지만, 그 소동이 끝날 때면 꼭 눈물을 흘리곤 했다. 흑흑, 퍽퍽, 흑흑, 퍽퍽… 누나 가슴에 삼천원 쯤은 있다는데, 사연이야 있겠지만. 만약 정말 45년에 피폭하고 69년에 우드스탁을 본 후 96년에 도덕 선생님이 된 것이라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튼, 그렇게. 창밖과 교과서를 건성으로 바라보며 보내던 어느 날. 맹자와 공자의 지루한 말들이 지나간 자리에 난데 없이, 사르트르가 나타났다. 어느 각도로 고개를 돌려도 피할 수 없는 눈으로 나에게,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며. 실존이 뭔지 본질이 뭔지 알리 없던 열여섯 살의 덜 자란 꼬맹이는, 도덕 선생이 무서워 교과서를 덮지도 못한 채, 눈을 크게 뜨고 다만 따라 할 수 밖에.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고. 순식간에 세계가 CTRL + F5 하는 느낌. 그렇게, 그래서 그렇게

실존이 본질을 앞서 버렸다.

나의 모든 실존적 게으름이 시작된 것이 바로 그때였다. 할 수 있는 일? 안 해. 어차피 할 수 있으니까. 할 수 없는 일? 안 해. 어차피 못하니까. 그렇게 바라본 세상은, "그것이 나의 숨을 멈추게 했다. 3, 4일 전만 해도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절대로 예감하지 않았었다." 나는 그 모든 외적인 조건과는 상관 없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세상. 한참 유행하던 알라딘의 주제곡처럼.


a whole new world
a dazzling place i never knew.

정말 그랬다니까.
그래서 여즉 '알라딘'에서 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무심하게도 사르트르의 저작을 읽은 것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와 <지식인을 위한 변명>의 단 두 권이고(각각 문예출판사와 보성출판사 판으로), <구토>는 읽다가 토할 뻔했으며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란 말이 실은 사르트르의 어느 작품에 나오는 건지 여즉 알지 못하지만.

여러 2차 저작 중에서, 사르트르와 실존주의에 대해 가장 인상깊게 서술한 것은 푸릇하던 스무살에 읽었던 램프레히트 <서양철학사>의 한 구절이다.

"어떤 실존주의자들은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는 원리에서 출발한다. (심지어 여기에서는 사르트르의 이름조차 거론하지 않는다!) 이 기묘한 말은, 어떤 실존주의자의 경험이 혼동에서 명료성으로 나아가는 전기적 추이에 있어서는 명백한 것일지는 모르나, 철학적으로는 아주 애매한 소리다." 

"하지만 극단의 형태에 있어서, 그것은 맹렬하게 반주지주의적이고, 주의주의적인 낭만주의이다. 윤리학에 있어서 그것은 아직을 내세우는 것이요, 존재론에 있어서는 변덕을 일삼는 것이다."  블라, 블라, 블라.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인간이고, 때론 낭만적이며, 아집을 부리기도, 변덕을 일삼기도 한다. 그게 뭐 대수라고?
(라며 쿨한척 이번에 처음 번역되어 나온 사르트르 소개)  

 

 

 

 



그렇다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는 전에도 게을렀고, 이후에도 게으를 것이었으니. 딱히 독서의 수준이 높아진 것 도 아니다. 글쎄, 뭘 읽었더라? 몇몇 이름들이 떠오르긴 한다. 홈즈나 뤼팡, 장무기나 현암 같은. 삼국지, 수호지… 무엇보다 슬램덩크. (가장 실존주의적인 텍스트는 역시 <슬램덩크>다. 실존주의적 게으름을 집중 조명한 국내 작품으로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있다)

 

 

 

 

(당연하게도 이 모든 책들은 내가 읽었던 판본이 아니다… <삼미>는 뭐 나중 얘기고) 

그렇다. 동서양의 위대한 독서가들처럼 자연스럽게 세계명작으로 눈을 돌리기를 나는 거부했던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서니까. (응?) 나는 독서-기계가 아니라는 자기 선언. (응?) 차라리 TV에서 하던 '마법 소녀 리나'를 보고 말지…  

그렇지만 무엇보다 당시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고에이 사의 PC게임 [삼국지 3]와 [대항해 시대 2] 그리고 [프린세스 메이커 2]였다. 가계부 보다 두꺼운 전화번호수첩 한가득 ㄱ, ㄴ, ㄷ 순으로 장수들의 '이름 / 지력 / 무력 / 정치 / 매력'을 정리하고, 최고의 배인 '쉽ship(;)'을 건조하기 위해 네덜란드에 있는 돈 없는 돈을 가져다 바쳤으며, 거지에서 공주까지 딸과 함께 인생역전을 맛보며 (훌쩍) 삶의 희노애락을 경험했던 것이다… 아. 사실 게임으로 치면 루카스아츠의 어드벤쳐도 있고, 할 말 많지만 이쯤에서 당시  

내가 만났던 명문장을 소개한다. 지금까지, 깊은 곳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는 명문장이다. 

"... 오스만 투르크의 주인공 알베자스는 돈이 한푼도 없는 가난한 녀석이다. 다른 캐릭터와는 다르게 돈을 꿔서 모험을 시작한다. 꾼돈을 다시 갚을 때는 10배로 갚아야 한다. 개략적인 줄거리는 알베자스의 목적이 억만장자가 되는 것이니 부디 하시는 분도 억만장자가 되길 바란다. 도 알베자스로 할때만큼은 돈을 억수로 모았다. 일본과 아프리카의 금은 무역을 통해 8900만 정도 모아서 지중해로 왔으나 스페인 국왕에게 다 빼앗긴 경험이 있다. 그러나 로드를 해서 다시 1억 2천만 까지 모았다. ..."  

(출처 : 대항해 시대 2 매뉴얼, 작자 미상) 

이 문장이 좋은 이유는 우선, 간결하다. 구질구질하게 늘어놓지 않고 예리하게 팩트만을 전달한다. 그렇다고 건조하기만 한 것은 또 아니어서, 미국 컬리지 밴드의 음악이 그렇듯, 종종 슬프다. 특히 '도 알베자스로 할때만큼은 돈을 억수로 모았다', '스페인 국왕에게 다 빼앗긴 경험이 있다. 그러나 로드를 해서 다시 1억 2천만 까지 모았다' 같은 부분이 그렇다. (강조는 인용자의 것이다). 문장의 호응과는 상관없이, 그저 시작부터 낮추고 들어가는 저 부분이 눈물나게 아름답다. 모든 것을 되돌릴 세컨 챤스가 있다는 것도…

그렇다고 저 문장들에 무슨 인생의 비의, 따위가 숨어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오스만 투르크의 주인공 알베자스는 돈이 한푼도 없는 가난한 녀석이고, 다른 캐릭터와는 다르게 돈을 꿔서 모험을 시작하는데 꾼 돈을 다시 갚을 때는 10배로 갚아야 하며, 개략적인 줄거리는 알베자스의 목적이 억만장자가 되는 것이니 부디 하는 사람도 억만장자가 되면 좋겠다, 고.  그러니까,   

실존은 본질에 앞서지만 어쨋든 세이브는 필수, 라고. 

그러고 보니 당시 내가 가장 사랑했던 책은 고려원 판 정비석 선생의 <김삿갓>이다. 돈이 한푼도 없는 가난한 녀석이었던 나는, 어느날 놀러간 친구네 집에서 <김삿갓>을 발견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친구에게 권당 500원, 총 3000원을 주고 사들여 읽고 또 읽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스님이 '용두질'을 한다던 그 장면 때문이었나…)  

그 이후로 내 꿈이 항상 '프리랜서'(직군/분야 없음)였던 것은 아마 김삿갓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  

전등을 켜놓고 이불 속에서 책을 읽는 대신, 집나간 아버지의 방을 물려 받은 나는 밤을 새도록 컴퓨터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PC 통신. 아이들이 나와서 놀고, 모험을 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노는 이야기들을 읽는 대신에 아이들이 접속해서 놀고, 모험을 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노는 곳을 발견한 것이다. 그곳의 이름은 "나, 너 우리가 함께 만드는" 나우누리였다.  

그곳에 대해서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부끄럽기도 하고, 그럼에도 너무 많은 부분을 바꾸어 버렸기에. 제임스 팁트리 2세의 단편 '마지막으로 멋지게 할 만한 일'에 나오는 뇌에 기생하는 외계생명체처럼, 어느새 자리잡아 복잡하게 뿌리 내렸기에 그것을 적당히 잘라 보이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다. (박노자의 사민주의에 대한 일부 트로츠키주의 진영(?)들의 비판은 여기에 기인한다고 나는 이해한다)

밤이 새도록 '이야기 5.3'의 파란 화면을, 그 속에 오르는 타인의 생각을 바라보며 나 역시 서툰 생각을 올리던 그 시간에, 나는 우울을 배웠다. 실은 우울의 효용을 배웠지만. 우울은 타인의 호감을 사는 가장 값싼 방법이라는 것. 사실 중학생이 우울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중학교 시절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날들임이 분명하니까. 즐거울 이유가 하나토 없다는 사실만 빼면.

다시 생각해도 참 좋은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나, 너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그 시절은. 사르트르와 라디오헤드의 'Creep' 정도만 알면 전혀 부족함이 없던 시절. 너무 많이 알아버린 지금은 그 시절을 자꾸만 부러워하게 된다. 오컴의 말을 응용하자면, 행복에 이르는 여러 길이 있다면, 그 중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적게 아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런 말은 글러 먹었다. 

그 시절, 그러니까 중3 무렵의 나를 좋아한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 그러니까 "나, 너 우리가 함께"만들던 세상에서, 나를 정확하게 지목하며 "너"라고 했던 첫번째의 그녀는 스무살이었다. 주주클럽이 "너 이제 열여섯, 난 스무살야"라는 노래를 부르던 해였다. 그녀는 노래방에서 주주클럽의 노래를 불렀고, 나는 도망쳤다. 이게 다 도덕 교과서를 읽은 탓이다. 

두번째는 열여덟이었다…
 

To be continued... (하하하하;)  


* 어쩌다 보니 하*텔, 나우*리 등에 유행하던 연재글 같은 형식이 되어 버렸다… 이것 참 ;
* 인생도 로드가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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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열 2009-12-03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허. 왠지 공감가는 부분이 많네요..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탓일까요? 전 [샤르트르]나 PC 통신 쪽은 접하지 않았지만.. ^^; 암튼 여기 블로그도 넘 맘에 드는 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종종 놀러올게요~

활자유랑자 2009-12-08 13:26   좋아요 0 | URL
사르트르나 PC 통신은... 모르시는게 더 나을지도. ;
또 오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