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자의 뜨거운 삶과 마주하고
내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울림이 있는 책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반가운 일이며, 그런 책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또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는 항상 그 누구도 읽기 전에 따끈따끈한 원고를 독점하는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설레는 맘으로 초고를 읽었을 때 나를 한 사람의 독자로 감동하게 만드는 원고는 그리 많지 않다. 어디를 고쳐야 좋을지,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지를 생각해야 하는 편집자 신세 탓이다. 그러나 낯익은 9명의 선비를 삶을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 <선비의 탄생>은 금세 나를 끌어당겨 한 사람의 독자로 만들어버렸다.
 
조선을 대표하는 대학자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나는 몇 번이나 가슴이 울컥했다. 부모의 묘를 3년간 지키는 시묘살이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은 진정 사람을 대함에 소홀함이 없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가족을 아끼는 마음이야 사람마다 다르겠냐만은 선비들의 마음은 좀 더 절절했다. 병으로 자식을 잃는 일이 다반사였고 아끼던 친구의 목숨이 정치의 소용돌이에 하루아침에 사라지던 시대였다. 그러나 고통을 많이 겪는다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 아픔을 이겨낼 만큼 더 마음이 깊고 넓어야 한다. 선비들도 친구에게 위로받고 가족에게 의지하며 고된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
 
대학자 퇴계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아내를 성심성의껏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처가의 살림도 살폈다. 노년의 남명은 태풍이 몰아치는 길을 뚫고 해인사로 향했다. 평생을 두고 위로하고 독려한 친구 대곡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송강은 친구 율곡이 서거하자 이승보다 차라리 저승이 좋다며 통곡할 만큼 그를 아꼈다. 아홉 자식 중 6남매를 가슴에 묻은 다산은 막내 농아를 잃고 자신이 무능한 탓이라 자책했다.
 
선비들의 애환에 나는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선비들은 이러한 인간적인 기쁨과 슬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큰 선비로 거듭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모르고서 어찌 한 사람을 정치적, 학문적 업적으로만 평가하겠는가. 나는 새삼 선비들이 내 할아버지, 내 스승 같이 느껴져 그들을 좋아하게 돼 버렸다.
 
<선비의 탄생>은 여느 역사서답지 않게 자꾸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나와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진정 마음을 다하고 있는가. 변치 않고 옆을 지켜주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고마웠다. 오랜 시간 심력을 다해 이 책을 집필하고 나에게 원고를 맡겨주신 김권섭 저자님과의 인연도 고맙기만 하다. 부모님, 은사님, 친구... 모두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당신과 나의 인연이 참 소중합니다’라는 고백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다산초당 기획편집팀 이하정 매니저


* 원고를 제공해 주신 다산초당 기획편집팀 이하정 님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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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추의 역사>가 출간 되었습니다. '아름다움의 역사'를 탐구했던 전작 <미의 역사>에 이어 이번에는 인간의 문화 속에 존재했던 '온갖 추한 것들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딱딱한 미학이나 예술사를 연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예술적인 도판과 문학 작품의 인용문, 거기에 에코의 맛깔나는 글들이 어우러진 완벽한 '대중 교양서'라고 할까요.

깊어 가는 가을(秋), 에코와 함께 추(醜)의 역사 속으로 떠나 보시는 것은 어떨지…

아래 인터뷰는 2007년 10월, 이탈리아 현지에서 <추의 역사> 출간에 맞춰 진행된 인터뷰를 옮긴 것입니다. 인터뷰 자료를 제공해주신 열린책들 편집부에 감사 드립니다.


---------------------------- 이탈리아 주간지 '오지Oggi'와의 인터뷰 (2007년 10월 24일) ----------------------------

진행자: 추의 역사를 쓰게 된 이유는?

에코: 진부한 대답일 수 있지만 저는 졸업 논문에서 미학을 다루었고, 대학에서 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름다움과 추함은 내 직업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직접적인 이유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1961년에 봄피아니 출판사와 일하고 있었는데, 그때 <미의 역사>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산 등의 문제로 일을 접을 수밖에 없었는데, 모든 자료들을 서랍 속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한번 시작한 일을 끝마치지 못할 때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조금 실망스러웠죠.

그러다가 40년이 흐른 뒤에 CD로 만들 만한 주제를 찾아 달라는 요청받고, 비록 새로운 기술들로 예전의 화보들이 더 이상 쓸모없게 되기는 하였지만, 그때 생각했던 것을 다시 시도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CD에 담긴 <미의 역사>가 나오게 되었고 뒤에 책으로도 나오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미의 역사』가 27개국에서 번역되자 출판사가 그것과 유사한 책의 출판을 요청하였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추의 역사>입니다.

진행자: <추함은 아름다움의 반대말이다>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에코: 아니지요. 무엇보다 아름답지 못한 것이나 사람이 반드시 추한 것은 아니니까요. 삶은 <그렇고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추함은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다양합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 또한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루벤스의 그림 속의 한 여인이 오늘날 패션모델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항상 몇 가지 기준을 따라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아름다운 코(비록 브리지트 바르도의 코와 그레타 가르보의 코가 다르기는 하지만)는 일정한 길이를 넘어가면 안 되는 것이거든요. 반면 추한 코에 대해서는 피노키오의 코에서부터 넓적코, 콧구멍이 셋인 코, 종기가 많이 난 코, 술주정뱅이의 붉은 코 등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상이 가능하지요. 따라서 추함의 이미지는 아름다움보다 어마어마하게 풍부합니다. 이 책을 펼쳐 보면 그것을 알게 될 겁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추함의 유형은 얼마나 되나요?


에코: 비슷한 말을 사전에서 한번 살펴보세요. <추하다>라는 단어의 비슷한 말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불쾌하다>, <끔찍하다>, <역겹다>, <비위에 거슬리다>, <그로테스크하다>, <징그럽다>, <혐오스럽다>, <밉살스럽다>, <추잡하다>, <더럽다>, <역겹다>, <거부감 들다>, <음란하다>, <흉측하다>, <욕지기나다>, <구역질나다>, <구리다>, <기분 나쁘다>, <무시무시하다>, <천하다>, <천박하다>, <비열하다>, <공포스럽다>, <나쁘다>, <볼품없다>, <흉하다>, <몰골사납다>, <색다르다>, <찌그러지다>, <일그러지다> 등등이 있습니다. 혐오감을 불러오는 추함이 있는가 하면 연민을 불러오는 또 다른 추함이 있는 것입니다.

진행자: 그런데 당신의 책에 있는 추한 사람이나 상황들에 대한 수많은 묘사들이 실상은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던데요.

에코: 우리는 추함 자체의 표명(똥, 썩은 시체, 악취를 풍기는 주름투성이의 생명체)과 형식상의 추함이라 부르는 것, 예를 들면 추하지는 않지만 이가 빠진 모습의 얼굴과 같은 불균형에서 빚어진 추함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두 종류의 추함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 있지요. 이미 옛날 사람들은 <악마도 잘만 묘사된다면 아름다울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추함이라도 그것에 대한 충실하고 효과적인 예술적 묘사에 의해서 만회될 수 있습니다. 중세에 (이 시기는 고통과 괴로움, 죽음, 악마의 묘사가 매우 중요하였던 때였습니다) 보나벤투라는 악마의 추함이 잘만 묘사가 된다면 그 이미지는 아름다울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이 책이 일종의 예술사를 다룬 것이라고 보아도 되나요?

에코: 그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나라에서 사람들이 추한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의 역사입니다. 다만 과거에는 이용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록들이 사람들이 추하다고 여기던 것을 묘사하였던 예술 작품이었던 반면에 현대에 이르러서는 사진 등과 같은 다른 소재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 다르다고 할 수 있지요.

진행자: 왜 추함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서양 문명에만 국한시켜 분석하게 되었나요?

에코: 이 문제는 미의 역사에서 겪었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고대 문명과 미개인들에게서도 예술적인 유물들을 발견하였지만 이러한 것들이 미적인 즐거움을 유발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종교와 관련된 두려움 또는 환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인지를 말해 주는 이론적인 문서들을 이용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괴물들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벽화나 가면, 조각들이 원래의 이용자들에게 같은 의도나 효과를 보여 주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시적이고 철학적인 문헌들이 풍부한 다른 문화들(인도나 중국, 일본 문화와 같은)에서 우리는 이러한 이미지들과 형태들을 볼 수는 있지만, 문학이나 철학 서적들을 번역함에 있어서 비록 어떤 개념들을 <아름답다> <추하다>와 같은 서양의 어휘로 번역을 하는 데 익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개념들이 얼마만큼 우리 것들하고 같은 것인지를 확립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미개하거나 원시적인 이미지가 서양인에게 무섭게 비칠 수 있지만 원주민에게는 자비로운 신을 묘사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채찍질을 당하고 피를 흘리는 예수의 굴욕적인 모습이 기독교인에게는 호감이나 연민,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반면에 이러한 끔찍한 모습이 비유럽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흉측하게만 비칠 수 있습니다.

진행자: 책을 보면 아름다움과 추함은 결국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데요.

에코: 그렇습니다, 이 책은 추함과 아름다움의 이론이 아니라 이러한 개념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분명 아름다움과 추함의 개념은 문화와 시대를 통하여 변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크세노파네스는 <황소나 말과 사자 등이 손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인간처럼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말은 말과 비슷하게, 황소는 황소 비슷하게 신을 그려 낼 것이다. 그리고 신들에게도 자신들과 똑같은 몸을 만들어 줄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볼테르는 <두꺼비에게 미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 두꺼비는 작은 머리에서 튀어나온 왕방울처럼 아름답고 둥근 두 눈, 넓고 납작한 목, 노란 배와 갈색 등을 가진 암컷 두꺼비가 아름답다고 대답할 것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미의 인식에 대한 시대를 초월하는 변하지 않는 기준들은 없는 것인가요?

에코: 우리는 아름다움과 관련하여 늘 비율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율에 대한 생각은 바뀌어 왔죠. 비율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중세의 철학자는 고딕 성당의 형태와 면적을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이론가는 1500년대의 교회를 생각하였습니다. 중세의 인물에게 르네상스 시대의 교회는 적절한 비율을 벗어난 것이었던 반면,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고딕 성당의 비율이 부조화스럽고 야만적으로 비쳤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름다움의 정의 속에서 아름다움의 즐거움이 소유욕(비너스와 사랑에 대한 욕구가 없을 때 밀로의 비너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됩니다)을 배제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거의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추함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상황이 보다 복잡해집니다. 감정적인 동조 없이 평온하게 감상할 수 있는 추함이 있기는 하지만 추함은 종종 역겨움이나 거부감 같은 감정의 반발을 불러옵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때문에 추의 역사는 보다 흥미롭고 다양합니다.

진행자: 예술과 일상생활에서 아름다움과 추함의 구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에코: 우리는 상반되는 모습을 한 모델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도처에서 듣게 됩니다. 이제는 아름다움과 추함의 대립이 더 이상 미학적인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이죠. 영화와 텔레비전, 잡지, 광고, 패션은 고대의 모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아름다움의 모델들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한 화가에 의해서 그려진 브레드 피트나 샤론 스톤, 조지 클루니, 니콜 키드만의 얼굴들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미학적, 성적) 이상들과 일체감을 보여 주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에게는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을 행동을 하는 록 가수들에게 열광하고 있습니다. 이 젊은이들은 매릴린 먼로보다는 매릴린 맨슨의 모습과 닮게끔 화장을 하고 문신을 새기며, 자기 살에 피어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대중매체들에 의해서 과장된) 이러한 행동들이 (전 세계 인구 전체와 비교할 때) 소수에 의해 행해진 그렇고 그런 현상들이 아닌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피상적인 모습들을 통하여 우리를 엄습해 오는, 알고 싶지 않은 보다 근본적인 추함을 떨쳐 버리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끔찍한 장면들을 늘 접하게 됩니다. 우리는 부풀어 오른 배에 해골 같은 모습의 아이들이 배고픔으로 죽어 가는 이미지들과 침략자들에 의해서 강간을 당하는 여인들의 이미지, 가스실을 향하는 뼈만 앙상한 사람들의 모습을 계속해서 연상시키는 고문을 당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들 각자는 이러한 것들이 역겨움과 두려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단지 도덕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우리들은 주저 없이 추함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끝내 이것을 즐거움의 대상으로 바꾸어 내지 못합니다. 따라서 예술이 일그러진 얼굴들과 흉측해진 신체들을 묘사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들을 위협하는 추함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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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추의 역사>는 혐오감에 관한 깊은 이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깊이에서 부족한 부분을 백과사전적인 풍부함과 생생한 묘사의 넓이로 만회한다. 이 책은 서구 미술과 문학에서 찾아낸 수많은 추의 예들 사이사이에 짤막한 역사적, 철학적 해설을 곁들이면서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현대의 대중문화와 아방가르드 문화까지, 그 주제를 한눈에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 독자들은 요란하거나 음란한, 또는 역겹거나 끔찍한 그간의 형태에서는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던 추의 한 측면을 발견하느라 몹시 바쁠 것이다. ― 『뉴욕 타임스』

전 시대를 아우르는 미학의 핵심적인 두 개념 사이의 상호 연관성에 대하여 정통한 에코는 추의 역사가 미의 역사의 반대 면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 「일 솔레 24 오레Il sole 24 ore」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는 추함이 우선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끌어들였다가 그 뒤에 곧바로 내쫓아 버린다고 이야기하였다. 결국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매력을 끄는 것이 아름다운 것'처럼, 추한 것이 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추한 것이다. 추함은 아름다움의 반대가 아니라 그 일부이다. ― 「라 스탐파La Stam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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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있었지. 그녀는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탔어. 지구에서 가장 커다란 대양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 그녀는 그 남자의 옆자리에 앉았지. 그 남자. 그녀가 계속해서 말을 붙여보려 노력했지만 고작해야 '블러드 메리'를 주문하는 것 밖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그 남자 말이야.

그녀는 그냥 앉아서 제3세계에 대한- 어떻게 발음하는지조차 모를 곳들에 대한 끔찍하게 재미없는 잡지 기사나 읽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그녀는 지루했고, 의기소침. 그런데, 그때, 갑자기 기계적인 결함으로 엔진 하나가 고장났고 비행기가 추락하기 시작했어. 삼천 피트 상공에서. 기내방송에서는 기장의 목소리가 울렸지.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아, 세상에! 미안해요." 그는 계속해서 사과할 뿐이었어. 그녀는 남자를 바라보았고, 이렇게 물었지.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그러자 그제야 그녀를 돌아본 남자가 이렇게 말했어. "파티에 가요, 그, 생일 파티요. 당신 생일 파티 말이에요. 생일 축하해요, 달링. 우리는 당신을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사랑해"


그리고 남자는 흥얼대기 시작했지. 이 작은 멜로디를. 아, 그건 이렇게,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 하나, 하나, 둘, 셋, 넷-

- Bright Eyes, 'At the Bottom of Everything'


그러니까 그 노랜, 어쩐지 이렇게 시작할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며 내내 진심, 에 대해 생각했다. 진실과 거짓말은 그 다음으로. 한 때는 진심과 진실이 등가일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그것은 결코 거짓이 아닐 거라고. 이를테면 나는 진심으로 살아가고 싶었고, 그것 자체로 나는 진실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서투르지만, 간절하게. 

이제는 그것이 결코 같을 수 없음을 안다. 진실은 마음보다 크고, 진심은 결국 마음의 영역이므로. 마음을 벗어나는 순간, 더 이상 그것이 진실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을 이제야 알았다. 너무나 당연한 만큼 혼란스러운. 그런 것이 진실임을.

김해연의 진심과 정희의 진심과 나카지마의 진심과 박길룡의 진심 그리고 그 모두를 안고 있는 진실, 같은 것.

밤이었다. 김연수 작가를 만난 것은. 늦은 모기만이 지난여름의 추억을 힘겹게 지고 날아다니던 밤. 어디서도 노래는 들리지 않았지만, 왠지 그런 노래를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부러 말을 하지 않아도 조용히 귀 기울이게 되는, 그런 밤.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무엇도 쉬이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 무엇도 펴낼 수가 없었다. 입 밖으로 나온 말들이, 그 말들 중에 얼마가, 일말의 진심 나부랭이라도 담고 공기 중을 배회하게 될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애꿎은 모기만 쫓으며, 좋아하는 작가를 만난다는 것은 꽤나 무서운 일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질문은 문학MD님께 맡기고 사진기나 만지작거리며 혼자, 그렇게 생각했다. 그저 무심한 척 귀를 쫑그리며.

실제로 만난 김연수 작가는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런저런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들이 어지러이 공기를 채웠다. 조도가 낮은 오렌지색 조명에서는 사진이 잘 찍히지 않아 속상해 했던 것 같다. 혼자서만. 한편으로는 그 말들을 바라보며 상상하기도 했다. 글 속의 그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그에 대해. 그의 진심과 내 귀로 와 닿는 그 말에 대해. 그 간극에 대해.

이를테면 "나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닌데 손이 말이 많다"라는 말에 대해. 하지만 말씀도 결코 적지 않은 걸요, 하고. "처참할 정도로 실패한 사람들.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나의 삶을 이해하는 것일 수 있다"는 말에 대해. 괜히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하면서.

사실 나는 답이 듣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단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진정 살기 위해서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 같은 것에 대해서. 아니, 그 이전에, 살아남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 그 차이가 때론 얼마나 얇고도 하찮은지에 대해서. 그러니까, 알고 있었던 셈이다. 결코 그가 대답할 수 없으리란 것을. 왜냐하면 그것은 진심의 영역이었으니까. 그것도 나의. 그래서 묻지 못했다.

그럼에도 참지 못하던 입술이 달싹일 때, 그가 말했다.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순간 오히려 따뜻해지는 그런 거라고 할까요. 희망 없는 삶을 산다는 거하고, 이루어지지 않는 희망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안고 산다는 건 분명 다르잖아요." 처음에는 100% 와 닿지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하루, 하루, 하루, 하루, 하루.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러니까 그것은, 진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희망이 없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그것을 알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마음은. 사실 희망이란 꽤나 바보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순간 오히려 따뜻해지는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 밤,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날들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진실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진심만으로. 그것뿐으로. 진짜 살아갈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살고, 사랑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만.

그러니까 그것은, 삼천 피트 상공에서 추락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 같은 것. "희망이 없음을 알면서도 그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마음 같은 것. 혹은 그런 마음을 담은 노래 같은 것.

그렇게 생각하자 어쩐지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도 진심으로. 

 

* 공식 인터뷰 업데이트에 앞서 끄적인, 개인적인 감회를 담은 페이퍼입니다. 위 내용은 알라딘 혹은 문학MD님의 입장과 무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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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8-10-13 0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사진이 제대로 안(혹은 못) 찍혔군요. ㅋㅋㅋ 선명치 못한 조명 아래서 인물사진을 제대로 담아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 저도 절감하고 있습니다.

나무그늘 2008-10-15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히려 이렇게 흔들리는 지금의 이 사진이 더 글의 맥과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진이 그저 '사실'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사실 이면의 '무엇'을 잡으려는 노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
 

* "배고파도 영혼의 힘으로 예술을 만드는 그런 아방가르드 정신"을 위하여!
<88만원 세대>, <촌놈들의 제국주의>, <직선들의 대한민국>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우석훈 교수를 '이메일을 통해' 만나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직접 남겨주신 댓글 질문에 대해 우석훈 교수는 과연 뭐라고 답글을 달아주었을까요? 20대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자, 지금부터 그 대답을 소개합니다!
  

 
 
 
 
 
자신의 블로그 독자들과 함께 시청 앞 촛불집회에 참가한 우석훈 교수의 모습.
* 알라딘 독자들이 묻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국가가 겪게 되는 일반 위기와 한국이라는 특수한 사회가 겪는 특수 위기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텐데, 제가 이 시리즈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외부적 변화 속에서 한국 경제가 겪게 되는 특수 위기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전개될 때 상한선과 하한선에서 생각해보게 될 것인데, 상한선이라고 한다면 멕시코 정도의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고, 하한선이라고 한다면 전쟁에 의해서 겪게 되는 파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기 위기와 장기 위기라는 선에서 배치한 셈인데, 그 어떤 편으로 예상을 하더라도, 제가 계산해본 것에 의하면 20대의 삶은 부정적인 결과로 도출되었습니다. 힘들고 귀찮더라도, 적절한 변화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문체 실험을 즐겨하는 편인데, 어떨 때에는 일부러 잘 읽히기 어렵게 하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단문 위주로 구성을 해보기도 합니다. 때때로 일부에서는 댓구 구조로 만들어보기도 하고요.

만약 편집자가 허용한다면, 훨씬 더 구어체를 많이 섞고, 속어도 많이 섞어넣는 그런 글도 한 번은 써보고는 싶은데, 우리 말의 문어체와 구어체 사이에서 극단적인 글을 만들어보는 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물론 아직은 제가 편한대로 쓰면, 오랫동안 써왔던 논문체 글이 되어버리기는 합니다. 

 

 


대체로 그보다는 많이 읽는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에는 권수가 문제가 아니라, 고전 텍스트의 권수가 줄어서 고민 중이기는 합니다. 올 여름에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쓴 책을 다시 한 번 정리할 생각을 가지고 있기는 했었는데, 아직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튀르고 전집을 읽겠다고 2년 전부터 생각하면서 아직도 손을 못 대고 있기도 하고요. 18세기 책은 어느 정도 읽은 것 같은데, 17세기와 16세기 독서는, 20대 때에도 체계적으로 못했는데, 요즘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물가상승률이 10%까지 갈지는 모르겠는데, 성장률은 많이 떨어질 것 같고, 경제 내부의 이중적 흐름 같은 것들이 보다 심각한 지표가 될 것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부동산으로 돈 버는 사람들이 돈 쓰는 시장은 요즘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이라는 것을 보면서, 2중경제로의 전환이 보다 가속화되지 않을까라는 예상을 합니다.   


 

 



 

 

  
정규직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만, 정규직에 일반 시민이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겠지요. 물론 이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고, 장기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도 유리하지 않습니다. 아마 수 년 내에 극적인 반전이 벌어져서 일본의 경우처럼 전면적인 정규직 체계로의 전환이 벌어지기는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지배층들이 경제를 살펴서 사회적 타협의 결과가 될지, 아니면 국민경제가 한 번 완전히 붕괴하고, 리부팅하는 과정에서의 변화가 될지, 그 차이점이 실질적 차이점이 아닐까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금융기법이라고는 하지만 원리가 어려운 것은 아니고, 특히 국제금융에서의 기본 원리가 그렇게 복잡한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서양의 금융적 지배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제대로 된 질문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자원시장과 같은 분야에서의 한국 금융에 문제가 많다고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큰 규모의 금융거래에서 한국이 가지고 있는 초보적 폐쇄성에 대해서는, 저도 가끔 혀를 차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환시장에의 개입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은 편이구요. 그런데 그게 금융 관련된 전문인력을 키운다고 해결될 것 같지는 않고, 국민경제에 대한 건전한 이해 같은 게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직업에 따른 구분이 아니라, 직업에 대한 소득 배정 혹은 분배에 귀천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막말로, 돈만 많이 번다면, 우리나라에서 직업에 귀천 의식이 생길까요? 후진 직업= 돈 조금 받는 직업, 이렇게 된 셈인데, 이걸 문화적 의식으로 해결하는 나라들이 있고, 실질적인 최저임금 보장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는 나라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전혀 해결을 못 하고 있지요. 직업의식 이전에,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는 의식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 같고, 그런 생각으로 '사람들의 손'에 보다 많은 돈을 지불하는 변화가 생기는 것이 곧 선진국일 것 같습니다.



 


어려운 문제인데, 아직 덜 고통을 받아서 그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20대의 불행 혹은 '다음 세대'의 불행은, 한국에서 아직 제대로 뚜껑이 열리지도 않은 것이고, 앞으로 3~4년 후에 정말로 본격화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해결하는 것은 정책적인 측면에서 학계나 정치권에서 해결하는 것이겠지만, 실제로는 이 고통이 더 심화되어 20대 당사자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은, 몇 년 후의 일이 아닐까 합니다. 






역시 어려운 문제인데, 철학이나 사회적인 지식 같은 것들은 순환론적인 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행도 마찬가지이구요. 결국 한 가지를 계속 하다보면 트랙의 한 바퀴를 뒤쳐졌는데, 그러다보니 어느 날 1등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는 게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인들에게, 무조건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대세를 따르지 말고, 특히 광고에서 시키는 것 혹은 종이신문에서 시키는 것은 무조건 하지 말라고 되지요. 제 경우는, 남들 하는 것은 10대 때부터, 무조건 안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광고가 시키는 것은 무조건 안할 생각입니다.

최소한의 자기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계산해보면 그 경우가 성공의 확률도 높습니다. 경쟁 조건과 유행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합쳐보면, 그렇게 계산이 나옵니다.




 

 



20대에 대한 실체적 본질에 관한 얘기를 더 할 생각은 없고요, '20대 3대 권리'와 같은 것들을 경제 이론적으로 더 규명하는 작업은 좀 했는데, 출판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원래 올 6월에 계획했던 것이 있기는 했는데, 같이 작업하던 사람들의 작업이 좀 미진해서 뒤로 미루어놓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0대들의 교육문제와 사회적 교육과 같은 주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최근 스페인의 20대 운동을 직접적으로 경험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과는 양상이 좀 많이 달라 보였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적 운동 없이 경제적 소수가 자신의 최소한의 권리를 지킬 가능성이 아주 희박해보이기는 합니다.

스페인에서는, 주말마다 문화집회 형식으로 다양한 집회가 벌어지는데, 당사자 운동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지지의 일반화'라는 측면에서,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지금 쓰는 많은 책들은, 대부분 수 년 전부터 출간하려고 했다가 "상업성 없음"으로 출간에 실패한 것들을 프레임을 다시 잡으면서 재출간하는 것들입니다. 작년에 책들의 출간이 밀리지 않았으면, 올 초까지 전부 출간하고 마흔이 되면 멋지게 은퇴하려고 했던 계획이 있었는데, 좀 늦어져서 아직까지 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올해 안에는 대충 정리를 하고, 은퇴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남은 것들에 대한 '처리' 중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공부에 대해서는 종종 질문을 받고 즉답을 피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철학과 수학 두 가지가 모든 공부의 출발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역사학과 인류학이 기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학문을 하든지, 이런 기반이 필요할 것이고, 개별 학문으로 접근하는 것은 그 다음 일이라는 게 제가 학문을 보는 눈입니다.

아마 10대라면, 문학에서 출발해서 예술 쪽으로 가는 관심이 한 다리, 그리고 개별 학문에 대한 관심으로 가는 또 다른 다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들을 모으는 한 단어는 '난독'이라고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여간 '오거서'라는 표현이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10대 때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질문은 큰 질문이라서 쉽게 말하기는 어려운데, 한국 경제가 미국 경제를 모델로 선진화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리고 미국 경제권 앞마당에서 달러 연동경제를 실험하던 중남미의 80~90년대 실패가, 이를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대안의 방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가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토플러를 싫어하는 편인데, 그렇다고 토플러를 비판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준비하지도 않아서 그냥 그런 사람 있나보다 하는 정도입니다. 토플러의 사회관을 받아들이면, 대개 경제학도 자동적으로 극우파 경제학으로 가게 될 것 같다는 정도로 생각하는데, 20년 정도 지나서 제 주변의 지인들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사회가 기계적으로 기술발전의 축을 따라서 움직일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사회적 주체들이 있고, 또 그 작용에 의해서 수많은 변이가 생겨나게 되지 않을까요? 


* 보너스 : 알라딘 인문 MD의 쓸데없는 일곱가지 질문

알라딘 :  <88만원 세대> 이후 1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일상어가 되었는데요, 그 책이 사회에 어떤 파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는지 자평을 부탁드립니다.

우석훈 : 별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우파들이 보여주는 "가만히 있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라는 세계관에는 약간의 균열을 내기는 한 것 같습니다. 불행히도 제 주변에서의 평가는, 오히려 이 책으로, 어차피 20대는 안된다는 것을 더욱 사람들이 극명하게 알게 한 것이 아니냐고 할 때에는, 솔직히 좀 괴롭습니다.


알라딘 : <촌놈들의 제국주의>와 <직선들의 대한민국>이 한 주 차이를 두고 출간 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권 다 모두 알라딘 사회과학분야 베스트 1위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88만원 세대>까지 탄력을 받아 사회과학 분야 1, 2, 3위를 동시 기록하기도 했지요. 소감을 말씀하신다면?

우석훈 : 민망할 따름입니다. 개인적으로 소망한다면, 한국에 인문사회과학 르네상스가 한 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기는 한데, 객관적 조건으로는 지금이 딱 그런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실제 유럽에서 마르크스 르네상스가 왔던 시기는 68혁명을 즈음한 시기가 아니라 1975년, 즉 석유 파동 이후의 경제위기 국면에서 왔습니다.

지금 한국과 비슷하지요. 그 때와 비교하면, 저자들이 책을 훨씬 덜 쓰는 편이고, 독자들도 사회적 해법 보다는 개별적 해법을 선호한다는 점이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결국 더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면서 새로운 다이나믹을 만드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알라딘 : '한국경제대안' 시리즈가 올해 안으로 4권이 출간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 외, 앞으로의 집필 계획이 궁금합니다.

우석훈 :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는 이미 제 손에서는 떠나갔고, 9월에는 완간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전공에 해당하는 생태경제학 시리즈 4권이 11월 정도에 마감될 것 같고, 응용경제학편인 '국가의 기본 시리즈'가 마지막 큰 산으로 남아있습니다.

문화경제학, 농업경제학, 기술경제학, 언론 경제학 같이 제 부전공에 해당하는 것들을 한 번 정리할려고 하는데, 그러다보면 몇 권은 내년으로 넘어가게 되겠지요. 이렇게 큰 시리즈 끝내고 나면, 번외편 약간이 있기는 한데, 이런 것은 은퇴하고 나서 소일거리 삼아 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시리즈 외에 특별한 집필계획을 잡아놓고 있지는 않은데, '아프리카 시리즈' 같은 것을 한 번 해볼 생각은 있지만, 워낙 돈이 많이 들어갈 것 같아서 엄두를 못내고 있습니다.


알라딘 : 요즘 행복하신가요? 즐거우신가요? 즐겁기 위해 어떤 일을 하시나요?

우석훈 : 대체적으로 즐겁게 사는 편인데, 한동안 영화를 많이 봤는데, 요즘은 오페라도 많이 듣습니다. 그야말로 가장 흔한 취미인 음악감상과 독서, 그런 걸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여행도 적게 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알라딘 : 취업이 힘들어 고민하는 / 비정규직으로 저임금 착취당하는 / 비록 정규직을 가졌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과도한 업무에 괴로워하는 20대 들에게 각각 한 말씀 해주신다면?

우석훈 : 어른들이 하는 말을 불신하라고 말해주고 싶군요. '대세'라는 단어에 민감한 편인데, '대세'라는 말을 거부하는 순간, 몸에 잠자던 예술혼이 깨어나고, 그날부터 시대의 '아방가르드'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배고파도 영혼의 힘으로 예술을 만드는 그런 아방가르드 정신,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고, 만약 내가 일제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떠한 일을 했을까? 일제 통치가 대세이니까 친일파가 되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가를 생각해냈을까, 그런 생각을 저는 종종 해봅니다.

맨날 친일파 욕하기만 했었는데, 문득 내가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친일파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질문하던 순간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마케팅과 종이신문이 만들어내는 백일몽에서 깨어나는 것, 그게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서 유의미한 삶으로 전환되는 이 시대의 첫 조건이 아닐까 합니다.


알라딘 : 재미있게 읽은 책 / 꼭 추천하고 싶은 책 / 꼭 쓰고 싶은 책을 각각 꼽아 보신다면?

우석훈 : 재미있는 책 <빨간 머리 앤>,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은 프랑크 허버트의 <>과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그리고 <반지의 제왕>. 꼭 쓰고 싶은 책은 <파운데이션>.


알라딘 : 마지막으로 알라딘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우석훈 : 시대가 어두울 때 지성이 빛을 발합니다. 이명박과 그 일당들의 '토건형 경제제일주의' 오래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명박 현상을 '독서와 토론이 사라진 나라에서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악몽'이라고 정의합니다. 부디 밝은 날, 시와 영화를 가지고 알리딘 독자 여러분들과 세상의 꿈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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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울바람의 생각
    from rifflewind's me2DAY 2008-08-01 09:42 
    저는 지인들에게, 무조건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대세를 따르지 말고, 특히 광고에서 시키는 것 혹은 종이신문에서 시키는 것은 무조건 하지 말라고 되지요. - 우석훈
 
 
책읽기는즐거움 2008-08-15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곰탱이 2008-10-23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석훈씨 말대로 전 대세에 따르지 않고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 난 왜 이러지 싶었는데 틀린 답이 아니었어요!

2009-03-24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6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년 전, 20대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윗세대에게 눌리고 아래 세대에게 치이고. 산다고 사는데 도무지 사는 것 같지는 않은 '우리'를 향해 우석훈 씨와 박권일 씨가 불러준 그 이름, "88만원 세대". (이를테면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물론 그렇다고 폴짝 그에게로 가서 88만원 세대가 되어준 것도 아니지만 )

지난 1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88만원 세대”는 일상어가 되었고, 정권이 바뀌었고, 표충비가 땀을 두 번 흘렸고, 코스피가 폭락했고, 촛불이 켜졌고,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고… 에, 또.


그리고 우석훈 씨는 최근에 출간한 <촌놈들의 제국주의>와 <직선들의 대한민국>으로 인문사회MD의 마음을 훈훈하게 덥혀 주셨지요. 지난 번 페이퍼에서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실제로 사회과학 분야 1, 2, 3위를 차지하기도 하셨고요. 그 사이에 우석훈 씨는 독자 분들과 함께 시청에 나가기도 하셨죠. 촛불을 들고.

자,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우석훈 씨와의 특별 이메일 인터뷰! 여러 분의 질문으로 진행될 이번 인터뷰에 그 동안 궁금하셨던 것 (과연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 건지, 이대로 살 수는 있을지, 대안은 없는지, 알라딘 사회과학 분야 주간 베스트 1~3위를 모두 차지한 기분은 어떤지, 요즘 근황은 어떻고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는지 등등)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개인적으로는 사는 건 좀 재미있으신지, 재미있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 재미없는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지 등등이 좀 궁금하네요. 뭐 바쁜 분 모셔두고 실없는 궁금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7월 13일 일요일까지 이 페이퍼에 댓글을 남겨주세요. 취합, 정리 후 질문해 주신 분의 닉네임으로 질문을 보낼 예정입니다.
*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신 우석훈 씨와 개마고원 출판사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2007년 8월 진행했던 우석훈 인터뷰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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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2008-07-08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8만원 세대>에선'20대가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에서는 '회사가 그 20대를 고용 안하면 망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그걸 다 제끼고 한,중,일이 평화협정을 안하면 망한다'를 애기하시고자 하신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석훈씨가 책을 쓰셨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20대가 변하지 않고, 회사가 더이상 생각이 깨인 20대를 고용치 않고, 게다가 한중일이 평화협정까지 안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가 대처할수 있을지 궁금하네요.[책을 쓰셨을때 한번쯤 생각해보시지 않으셨나싶네요.]


Viator 2008-07-08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석훈씨 책을 보면 잡담스러운 문체가 눈에 띄는데요. 이 문체를 의도하고 쓴 건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나온 것인지 궁금합니다.

양승훈 2008-07-09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주일에 책 2권도 읽지 않으면 망한다고 말하셨었는데. 요즘 책은 얼마나 읽으시나요?

kcs325 2008-07-09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하반기에 물가상승률이 10% 이상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사실일까요?

내마음은 언제나 2008-07-09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회의 근간이 되는 흔히 말하는 386세대입니다.
우리시대에는 요즘 흔히 말하는 비정규직은 거의 없었던 시절이였으나
요즘은 비정규직들이 매우 많은것 같습니다.
저희 회사에서도 직원의 30%정도를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것 같습니다.
물론, 형태가 변형된 비정규직인것 같기도 하고...
개인적인 견해론.. 앞으론 정규직이란 단어가 사라질 것 같습니다.
저자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386세대라 지금 고용문제는 내 세대가 아니고 내 자녀세대의 문제로 눈 앞으로 다가왔기에
더욱 더 관심이 가기도 하고
앞으로 자녀들의 평생 직종이 무엇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할 시기인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 앞으론 어떤 직종이 더불어 살아가면서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종인것 같습니까.

내마음은 언제나 2008-07-09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가 미래에는 무척 밝다고 많은 경제연구소발표가 있었든데
그래도 아직은 우리나라가 많은 분야에서 원천기술 및 원천기법이 미약한것 중에 하나를 꼽는다면
난, 금융기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고. 우리나라가 최후까지 손에 놓으면 안 되는것이 금융관련 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파생되는것들이 너무 많고 그와 관련데 직종들이 엄청많을뿐더라 신규로 파생되는 직업들도 많이 생기는것 같은데.. 저자께서는 경제학이 미시경제학인지.거시경제학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자가 저자의 자녀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금융관련 업종에서 우리나라가 꼭 챙겨야 할 분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그것도 궁금합니다.
서방제국적 금융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날로 먹으면 안돼 2008-07-10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직업엔 귀천이 없다'라는 말 어떻게 생각하세요?
늘어나는 사교육비, 학력 인프라 현상, 정규직-비정규직,
물질만능주의, 무한경쟁시대... 뭐 이런 용어들이 발생한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경제, 교육제도의 혁신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좀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선인장 2008-07-10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개인적으로 요즘 20대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보면 총체적으로 '내 일이 아니다'라는 마음가짐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취업난, 비정규직 문제등에 '나는 아니겠지' 혹은 '나는 안 그럴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연대 의식이 없는 것 같은데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방실방실 2008-07-10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20대가 경제적 문제(취업, 연봉 등)을 경외시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삶에 충실하면서 실질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20대라면 이것을 해봐라' 하는 것을 조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워너군 2008-07-11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석과 예측을 넘어서 대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88만원 세대>를 읽고 갸우뚱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래서 짱돌을 들라고?' 라면서 웃더군요(알라딘 리뷰 중에도 '우석훈이야말로 복고풍 좌파의 추억에 젖어 있다'라고 써 놓은 걸작 리뷰가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책, 즉 '속편'을 계획하셨다고 들은 바 있는데, 인터뷰 책을 제외하고 직접적으로 그 속편을 제작할 예정이 있는지요? 혹은 결과적인 정답을 제시해주지 않으면 그 분석까지 효용성을 잃는, 요즘의 '실용적' 논쟁관에 회의를 느끼신다거나..?

wnsgml 2008-07-11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너무 자주 쓰시는 것 같은데 (집필 말고도 하는 일 많으시면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책을 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라몬 2008-07-12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우석훈 선생님.
먼저 첫번째 질문입니다.선생님은 여러 방면에서 많은 분야를 공부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경제학 전공이신걸로 알고 있었는데, 여러가지 분야에 조예가 깊다고 들었습니다.경제학을 비롯하여 여러 학문을 공부할 때, 학문에 대한 자세나 그 학문을 연구하는 방법론에 대해서 좀 자세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현재 20대를 비롯해서 10대들은 학문에 대한 제대로 된 접근 방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석훈 선생님께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신다면, 공부하고 싶은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두번째 질문은 요즘 촛불 시위가 여러 분야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저는 물론 촛불 시위에 찬성하고,촛불시위가 이명박 정권에 승리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촛불 시위를 하면서 어른들은 물론이거니와 시위를 나온 10대들도,그리고 우리들의 아들이자 동생이며 친구인 전의경이 다치고 있습니다. 정말 이것은 제게 딜레마 상황입니다. 서로 싸우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누구도 다치길 바라지 않습니다. 이 딜레마 상황을 어떻게 극복 할 수 있을까요??

keaton 2008-07-13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석훈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모든 저서를 모두 읽었고 앞으로 발간하실 책에 대해서도 기대가 큰 독자입니다. 현재 집필 중이신 대안경제 시리즈도 마지막 권만 남았는데요. 최근작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선 동북아 삼국의 과잉에너지소비체계와 우리 사회에 잠재되어있는 파시즘의 분위기에 대해서 비판하셨는데요. 이 책에서 아쉬었던 것은 문제의식에 비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그다지 논의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이에 대한 논의가 현재 집필중인 저서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되면서 대안경제시리즈 4권을 학수고대하고 있는데요.
질문을 드리면 비교적 합리적 보수라 불릴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한국은 기본적으로 자원이 부족하고 수출로 먹고사는 사회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지나친 승자독식구조도 지양되어야 겠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적합한 체제이고 사회주의의 요소가 결합된 유럽식 복지국가 체제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꽤 있던데요. 선생님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런 주장을 들을 때마다 선생님도 언급하시는 스위스가 떠오르며 반론을 제기하고 싶지만 스위스 경제체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스위스 경제체제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현재의 모습으로 형성되는 것이 가능했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영미권 외의 다른 나라 경제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4권 출간에 앞서서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현재 한국경제의 난맥상을 개선할 방책에 대해 맛보기로 살짝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진천하 2008-07-13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우석훈 선생님
선생님의 책을 읽어보면 제가 오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경제가 1,2,3차 산업이 균형있게 발전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엘빈 토플러의 저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제3의 물결>에서 토플러는 농업혁명 - 산업혁명 - 정보화혁명 등으로 인류발전 단계를 설정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런 직선적인 사고방식이 현재 우리사회의 주류에 형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를테면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2차산업의 절정기에 있는데 지금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중이고 향후 지속성장 하기 위해서는 3차산업을 키워야한다. 그런데 3차 서비스산업에서 우리가 가장 중점적으로 키워야 할 것은 금융산업이며 앞으로 우리는 이것으로 먹고 살 것이다"이런 논리가 상당히 팽배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내년 2월에 자통법이 시행될 예정이고 삼성전자도 GE를 연구하고 있다고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훗날 삼성전자는 산업자본인지 금융자본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기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또한 얼마 전 현대자동차가 신흥증권을 인수하였고 여타증권사들도 호시탐탐 노리는 산업자본이 많은 것을 볼 때 우리경제에서 금융화 단계는 가속화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훨씬 잘아시겠지만 역사학자인 페르낭 브로델이나 여타 경제학자 책을 읽어보면 금융화 단계가 지나가면 공동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고있고 선생님도 금융산업의 허상에 대해 경고하고 계시는 줄로 아는데요.
20세기 초반 영국경제나 지난 30년 가까이 호황을 누렸던 미국의 금융산업도 결국 '전염성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서브프라임 사태를 맞는 것을 보면 금융산업에 대한 맹신은 상당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mbc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386세대 편에서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 그 당시 세대에 상당한 영향을 키쳤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노회찬 전의원이 당시 감옥에 있던 김문수 경기도지사 면회를 갔는데 김문수씨가 <제3의 물결>을 무척 감명적으로 읽었다면 여기서 출옥하면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애피소드를 소개하던데요.
또한 요즘 인기 높은 필자이자 얼마전 민주당 공천심사 위원이었던 시골의사 박경철씨도 <제 3의 물결>을 읽고 '지식은 곧 힘이다'란 확신을 갖게 되었고 당시 남이 잘 알지 못했던 주식시장에 해외원서를 섭렵하며 뛰어들었다고 하던데요.
박경철씨는 금융산업이 갖고 있는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는 듯 하지만 금융화 단계는 자본주의 발전단계에서 어쩔 수 없는 필연적 흐름이고 미국의 금융산업은 절정을 지나 퇴조하고 있다면 한국의 금융산업은 이제 막 청소년기에 접어든 매력적인 대상이라면서 IMF때 우리기업의 지분을 외국인들에게 많이 빼앗겼는데 이제 우리 금융산업이 역량을 키워서 신흥시장에서 과거 외국인이 취했던 이익을 우리가 거두어야 할 차례라고 주장하는데요.
저는 현재 우리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선생님의 표현에 따르면 소제국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직선의 세계관'을 갖고 있는 분들의 내면을 형성케 한 저서 중에 하나가 <제 3의 물결>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저는 386보다 휠씬 아랫세대여서 당시 분위기를 잘 모르는데 비슷한 세대이신 선생님은 엘빈 토플러의 저서를 어떻게 생각하시며 386세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금융산업이 발달한 나라는 19,20세게 초의 영국이나 오늘날 미국같은 헤게모니를 움켜준 나라들 뿐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시는지도 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