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자의 뜨거운 삶과 마주하고
내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울림이 있는 책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반가운 일이며, 그런 책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또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는 항상 그 누구도 읽기 전에 따끈따끈한 원고를 독점하는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설레는 맘으로 초고를 읽었을 때 나를 한 사람의 독자로 감동하게 만드는 원고는 그리 많지 않다. 어디를 고쳐야 좋을지,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지를 생각해야 하는 편집자 신세 탓이다. 그러나 낯익은 9명의 선비를 삶을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 <선비의 탄생>은 금세 나를 끌어당겨 한 사람의 독자로 만들어버렸다.
조선을 대표하는 대학자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나는 몇 번이나 가슴이 울컥했다. 부모의 묘를 3년간 지키는 시묘살이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은 진정 사람을 대함에 소홀함이 없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가족을 아끼는 마음이야 사람마다 다르겠냐만은 선비들의 마음은 좀 더 절절했다. 병으로 자식을 잃는 일이 다반사였고 아끼던 친구의 목숨이 정치의 소용돌이에 하루아침에 사라지던 시대였다. 그러나 고통을 많이 겪는다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 아픔을 이겨낼 만큼 더 마음이 깊고 넓어야 한다. 선비들도 친구에게 위로받고 가족에게 의지하며 고된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
대학자 퇴계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아내를 성심성의껏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처가의 살림도 살폈다. 노년의 남명은 태풍이 몰아치는 길을 뚫고 해인사로 향했다. 평생을 두고 위로하고 독려한 친구 대곡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송강은 친구 율곡이 서거하자 이승보다 차라리 저승이 좋다며 통곡할 만큼 그를 아꼈다. 아홉 자식 중 6남매를 가슴에 묻은 다산은 막내 농아를 잃고 자신이 무능한 탓이라 자책했다.
선비들의 애환에 나는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선비들은 이러한 인간적인 기쁨과 슬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큰 선비로 거듭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모르고서 어찌 한 사람을 정치적, 학문적 업적으로만 평가하겠는가. 나는 새삼 선비들이 내 할아버지, 내 스승 같이 느껴져 그들을 좋아하게 돼 버렸다.
<선비의 탄생>은 여느 역사서답지 않게 자꾸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나와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진정 마음을 다하고 있는가. 변치 않고 옆을 지켜주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고마웠다. 오랜 시간 심력을 다해 이 책을 집필하고 나에게 원고를 맡겨주신 김권섭 저자님과의 인연도 고맙기만 하다. 부모님, 은사님, 친구... 모두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당신과 나의 인연이 참 소중합니다’라는 고백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다산초당 기획편집팀 이하정 매니저
* 원고를 제공해 주신 다산초당 기획편집팀 이하정 님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