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드 [하우스] 시즌 3의 한 에피소드. 하우스는 35세의 피아노 연주자를 만난다. 그의 이름은 패트릭(데이브 매튜스 밴드의 데이브 매튜스!). 패트릭은 어린 시절의 버스 사고로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지만, 그가 피아노에 재능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 사고 이후. 스스로는 단추도 채우지 못하는 그이지만 하우스가 중학교 시절 작곡하다 포기한 피아노 소곡을 이어 환상적인 즉흥연주로 완성하기도.

2. 태어날 때부터 뇌에 중증의 장애를 안고 태어난 오에 겐자부로의 장남 히까리(光). 아버지에게 평생에 걸쳐 천착하게 될 주제를 안겨준 그는, 소통을 포기하지 않았던 가족의 사랑으로 마침내 클래식 음반을 낸 작곡가가 된다. 기자가 묻는다. "음악은 언제까지 할 생각입니까?" 아버지를 돌아보며 묻는 히까리. "오선지가 얼마나 남았죠?" 그 음반이 일본 클래식 사상 최고의 판매고를 올렸다는 사실은 그저, 사족.

3.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 오늘은 그녀와 사랑을 속삭이지만, 내일이면 여자는 남자를 기억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남자. 매일매일 그녀에게 다가가며 새롭게 사랑을 속삭인다. 그러다 23번째의 데이트가 끝나고, 여자의 인생에 자기가 짐이 될 뿐이라는 생각에 남자는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런 남자가 마음을 돌려 먹게 된 것은 바로 비치 보이스의 'Wouldn't It Be Nice?'와 "자네를 만나고 온 날이면 항상 저 노래를 부른다네"라는 그녀 아버지의 말. 그녀는 과연 그를 기억하는 걸까?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


**

음악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음악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지점은 어디이며,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올리버 색스의 신작 <뮤지코필리아>가 탐구하는 지점은 바로 그곳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뇌에서 언어보다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음악. 인간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음악적 성향을 선천적이라고 파악하는 색스는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언제나처럼 다양한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답게, <뮤지코필리아>에도 역시 흥미로운 사례들이 가득합니다.

- 마흔 두 살에 번개를 맞고 갑자기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꿈을 키우는 사람
- 교향곡이 솥과 팬을 바닥에 집어던지는 소리로 들리는 실음악증 사람들
- 기억의 범위가 불과 7초밖에 되지 않지만 음악 기억만은 온전한 사람
- 음악을 들으면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
- 한 번 들은 음을 절대 잊지 않는 음악 서번트
- 음악과 함께하는 시간에만 예전 기억을 찾는 기억상실증 환자
-  노래는 부를 수 있는 실어증 환자

마지막 장인 '음악과 정체성 : 치매와 음악치료'의 끝에서 색스는 이렇게 말해요.

   
  심층적인 수준에서 음악을 즐기고 반응하기 위해 반드시 정해진 음악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은 딱히 '음악적'일 필요도 없다. 음악은 인간 존재의 일부이며, 음악이 고도로 발달하고 높게 평가되지 않는 문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음악이 일상에서 하찮게 간주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라디오 스위치를 켰다가 끄고, 곡조를 흥얼거리고, 발을 구르고, 기억을 더듬어 옛날에 들었던 노래 가사를 찾고, 그리고 잊어버린다. 그러나 치매에 걸린 이들에게는 상황이 다르다. 이들에게 음악은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며, 적어도 잠시나마 그들에게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해주는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그의 '음악music 사랑philia'이 느껴지시나요?



***

이 글을 쓰는 지금 제가 듣고 있는 것은 Bebo Valdes 의 [Bebo], 요즘 저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멜로디는 Kings of Convenience의 'Homesick'의 첫 머리입니다.

I'll lose some sales and my boss won't be happy
But I can't stop listening to the sound
Of two soft voices blended in perfection
From the reels of this record that I've found

내 매출이 떨어지고 사장님은 행복하지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음악을 멈출 순 없네요
내가 찾아낸 이 앨범이 들려주는,
완벽하게 녹아드는 두 부드러운 목소리의 조화를


글쎄요, 너무 가슴 아픈 가사라 뭐라 덧붙일 말은 없지만 도대체 무슨 레코드를 듣고 있는 건지 조금 궁금하기는 해요. 아스트루드 질베르토주앙 질베르토가 함께 부른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엘라 피츠제럴드루이 암스트롱이 부르는 'Cheek to Cheek'? 어쨌거나,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음악임은 틀림 없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春) 2008-08-03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을 걷고 있을 때 제 아이팟 셔플에서 'Homesick'이 나오면 갑자기 마음이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어요. 그들이 마치 'Homesick'을 위해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 같아서 정말 기분 묘해지더군요.
 

한 주 간격을 두고 우석훈 교수의 신작 두 권이 연속 출간 되었습니다. <88만원 세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에 이은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3권인 <촌놈들의 제국주의>와 '속도.성장.개발의 딜레마'에 빠진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직선들의 대한민국>이 그것. (저희 '만선'에 2주 연속으로 문을 닫고 타셨다는 공통점도)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각 출판사 담당 편집자 분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어보는 '우리 책' 이야기!
자, 그럼 시작합니다~

* "대한민국에 진짜 필요한 딱 한 방!" <직선들의 대한민국>

우석훈 선생의 전화를 받은 건 잠기운이 아직 다 달아나지도 못한 아침나절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한 방’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어요?” “네? 뭐라구요?”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봄이었다. 지난 10년의 민주화 세력의 집권이 끝나고, 새로운 정권이 침체된 한국 경제를 살릴 수만 있다면 뭘 해도 봐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출근을 하던 그런 쌀쌀한 아침이었다.

도대체 무엇으로 이 ‘경제지상주의’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가난한 이들이 부자들을 편드는 이 이상한 대한민국이 어떻게 도래하게 된 것인지, 뚜렷한 해답도 없이 생각들이 산만하게  흩어지던 즈음에 걸려온 우석훈 선생의 전화였다.

<직선들의 대한민국>은 그렇게 시작된 책이다. 우석훈 선생은 지난 ‘참여정부’ 아래에서는 이른바 ‘좌파들’ 비판을 너무 신랄하게 해서 조금 걱정도 되던 분이었다. “사람 사는 문제가 보수와 진보로 판단이 될 리가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생태경제학’이라는 생소한 관점에서 쏟아놓는 이야기들이 뒷통수를 치는, 그런 분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예상치도 못한 문제들이 끊임없이 생길 텐데, 그때그때 대응하는 게 아니라 진짜 문제가 뭔지 정곡을 찌르는 ‘한 방’을 이야기해 보려구요.” 그 ‘한 방’을 위해 탄생한 책이 바로 <직선들의 대한민국>이다. 지난 현대사가 ‘건설회사의 역사’와 동일한 나라, 그래서 건설사 CEO를 급기야 정치의 수장으로 뽑은 우리들의 열망에, 이 책은 직격탄을 날린다.

이 책을 읽으면 세상을 막무가내로 밀어버리는 ‘불도저’를 욕하지만, 사실 우리 스스로도 또 다른 ‘작은 불도저’가 아니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은 명랑하고 멋지다. 만화 <심슨 가족>처럼 현실적이고 냉철하지만, 유머와 상상력 그리고 공존의 가치를 일깨우는 그런 책으로 앞으로 5년이 아니라, 꽤 오랫동안 독자들의 마음에 살아있을 책이다. 

(- 웅진지식하우스 에디터 김보경)

* "호외요!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3권이 나왔습니다!" <촌놈들의 제국주의>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펴낸 날은 마침 대학 동기들과 시청에서 약속이 잡혀 있었다. 방금 제본소에서 넘어온 책을 건네받은 편집자의 마음은 뭐랄까, 마치 호외를 받아들고 거리를 뛰기 시작한 신문팔이 소년과 같다. 촛불들이 점점이 불꽃을 켜는 서울의 밤거리에서 이 책을 꺼내들고는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 3권이 나왔습니다!"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알아줄 사람은 아마 찾기 힘들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시청 앞은 이미 불을 켠 촛불들이 흥겹게 파도처럼 출렁인다. 저 불빛 속에는 이 호외를 흔쾌히 받아들 사람들이 있을까. 낮에는 회사 일에 밤에는 촛불로 녹초가 되었음에도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하는 서른세 살 노총각 친구를 보니 괜히 반갑다. 그에게 우선 이 호외를 건넸다. 한국사회를 거시적 안목으로 보며 30년 앞의 미래에 민감하게 반응할 사람들에게 이 책을 한 권씩 권한다는 말과 함께.

실은 이 책을 만들면서도 저자 우석훈 씨가 말한 ‘평화경제학’이 형용모순은 아닌가 따져보기도 했다. 효용만 따지는 개발 패러다임에 파묻힌 사람들이 ‘평화경제학’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부터 자신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부터가 ‘촌놈’인데 어떻게 대다수 독자들에게 세련된 세계관을 요구할 수 있으랴.

그런데, 아니 글쎄, 촛불 시위 소식을 하나둘 접하다보니 스스로 참여하는 데에 망설임 없고 집회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또한 한켠에 있다지 않는가.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이 모든 세련된 촛불소년들에게 이 책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권한다!

(- 개마고원 편집자 박대우)
 

*  "우석훈 씨 인터뷰를 조만간 해야할텐데…" 알라딘인문MD
왼쪽에 보이는 순위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6월 20일 알라딘 사회과학 베스트 셀러 순위입니다. 출간일과 실제 알라딘 DB 등록일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출간 10일 만에 1위를 차지한 <촌놈들의 제국주의>의 기세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AFKN의 "이글 FM" 식으로 말하자면, "총알과 같이 순위에 진입!")
한편, 이번 주 월요일부터 판매를 시작한 <직선들의 대한민국>은 아직 14위에요. 이것 역시 대단한 기세이지만 '아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분명 그곳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가장 기대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다음 주 순위입니다. 과연 다음 주에는 이 순위가 어떻게 될 것인가, <촌놈>이 1위를 지킬 것인가, <직선>이 치고 올라올 것인가, 함께 힘을 받아 6위에 올라 있는<88만원 세대>는 어디까지 다시 올라갈 것인가, 하는 것들. 어쩌면 우리는 같은 저자의 책이 분야 1, 2, 3위를 나란히 차지하는 '초유의 사태'를 목격할지도 모릅니다!
어쩐지 신나는데요. 저만 신나는 걸까요? 아니에요. 아마 우석훈 교수님도 신이 나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저자 인터뷰를 하는 일인데… 뭐 어쨌거나.
아, 서두에서 제가 '우리 책'이라는 표현을 썼지요. 그렇습니다. 결국 이 두 권의 책이 다 오늘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니까요. 그래서 정말, 즐겁습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자본> 두 권이 3, 4위에 올라와 있는 것도 인문사회MD로서 정말로 행복한 일!)
자, 그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음 주를 기다리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쉽지 않은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신 김보경, 박대우 두 담당 편집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늘빵 2008-06-20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8만원도 은근 꾸준히 팔리는거 같더군요. 촌놈들의 제국주의 급격 상승이군요. 소개된지 한주밖에 안된거 같은데.

활자유랑자 2008-06-21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런 책들을 지켜보는 것이 이 직업의 재미랍니다. :)

마늘빵 2008-06-22 00:35   좋아요 0 | URL
행복한 직업이군요. :)
 

 <88만원 세대>로 20대들에게 토익 책 대신 짱돌을 들기를 권했던 우석훈 교수가 <촌놈들의 제국주의>로 돌아왔습니다. <88만원 세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에 이은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제 3권. 특유의 직설법과 경쾌한 글쓰기로, 식민지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음에도 제국을 꿈꾸는 '촌스러운' 한국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반면, 90년대 후반 학번 ~ 00년대 초반 학번들의 필독서였던 <신문읽기의 혁명>을 외치던 손석춘 원장 역시 <주권혁명>이라는 새 책으로 우리 곁을 찾았는데요, 표지에서도 느껴지듯 "'광우병 위험 쇠고기 전면 수입개방'을 둘러싼 국민과 정부와의 힘겨루기에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싹을 보는" 저자는, 주권운동과 선거혁명을 통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합니다.

사실 두 책은 많이 비슷하지만 또 많이 다른 책이에요. (정확한 어휘 선택은 아니겠지만) 손석춘 씨가 조금 더 "전통적인" 느낌이라고 한다면, 우석훈 씨는 그와는 또 다른 느낌이랄까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생각에는 물론 한 가지 생각만 있는 것이 아닐테니까요.

자,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촛불집회와 너무나도 어울리는 이 두 책들 사이에, 당신은 과연 어떤 책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투표기간 : 2008-06-12~2008-06-26 (현재 투표인원 : 27명)

1.촌놈들의 제국주의-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6월
70% (19명)

2.주권혁명- 피의 나무에서 슬기의 나무로, 우리가 직접 정치하고 직접 경영하는 즐거운 혁명
손석춘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6월
33% (9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작가에게 '문학'을 되찾으라고 말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또 작가가 오락작품을 쓰는 것을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근대소설이 끝났다면, 일본의 역사적 문맥으로 보았을 때 '요미혼'이나 '닌죠본'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열심히 잘 써서 세계적인 상품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만화가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 그것이 가능한 작가는 미스터리계 등에 상당히 있습니다. 한편, 순수문학이라고 칭하고 일본에서만 읽히는 통속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잘난 척을 해서는 안됩니다.
" (<근대 문학의 종언> 중)

'사상가' 고진과 '비평가' 고진을 따로 두고 생각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사상가로서의 사유를 따라 읽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좋게 말하면 '국문학도'의 입장에서 그를 읽어온 입장과 자조적으로 말하면 '얼마나 팔리는 저자인가'를 두고 그의 저작을 대해온 입장이 합치된, 이번에 출간된 <역사와 반복>을 두고 '비평가'로서의 고진에 대해 몇 마디 하는 것으로 이 페이퍼를 한정지으려 합니다.

"야 정말 죽이는 책" 이라는 수식으로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을 소개받았을 당시에는 사실 그의 이론이 얼마만큼의 함의를 지니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어요. 다만 조금 어려운데, 어쩐지 재밌네, 라고 생각했을까요. 뭐 물론 이건 제가 대개의 책에 품고 있는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는 평가입니다만.

하지만 그 후 읽게된 <근대 문학의 종언>은 그야말로 다른 이야기였지요. 시종일관 조곤조곤 '당신들이 생각하는 문학이란 것은 이제 생명력이 다한 것 같네요. 아쉽지만 이제 헤어져야겠지요. 그 동안 수고했던 문학을 위해, 자, 웃으며 안녕~' 이라고 말하던 <종언>은 충격 그 자체였으니까요. (사실 돌이켜 생각하면 <기원>에서 이미 <종언>이 충분히 예견되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후로 일었던 여러 논쟁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읽은 몇몇의 '비판'들은 그들이 비판하고 있는 고진의 '비약'보다 더 심한 비약으로 점철되곤 했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습니다(물론 그렇지 않은 비판도 많이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고진의 주장의 많은 부분에 공감했습니다. 분명 근대 국가에서 소설이 해냈던 역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는 주장은 논리적/정황적 설득력이 있었으니까요. 그것을 '문학의 위기'만 운운할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학의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하지만 고진이 내린 것은 사실상의 '사망선고'였습니다. 그렇게, 근대 문학의 사망 이후의 문학에 대해 서술한 부분에는 (심정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어요. 과연 근대 문학 이후의 문학이란 대중적인 오락 작품일 뿐일까요? 어쨌거나, 비판하는 입장에서나 옹호하는 입장에서나 <종언>이 조금 '두루뭉술한‘ 부분이 있다고 느껴졌던 것은 사실이겠죠.

그래서 이 <역사와 반복>을 받아들고 꽤나 설렜어요. 한동안 관심사에서 멀어진 주제이기도 했지만(마치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던 친지가 3년이 지났는데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고, 어느 순간 그의 건강에 대한 근심을 잊게 되는 것처럼), 그럼에도 책을 보는 순간 순식간에 떠오르는 흥분, 이랄까요.

'종언'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관점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1부 역사와 반복을 읽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그보다는 미시마 유키오오에 겐자부로,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분석, 비평하고 있는 2부 근대일본에서의 역사와 반복에 관심이 있어 그 부분만 읽었어요. 3부 불교와 파시즘은 아직 읽지 않았지만 어쩐지 궁금한 내용이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왜 제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한때 그렇게도 좋아했으며(다시 말해, 왜 이런 인간이 되었는지), 그를 좋아하지 않게 된 이후로 오에 겐자부로를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는지(이를테면 무의식의 보상작용), 또한 미시마 유키오는 주는 것도 없이 왜 그리 싫었는지(이건 약간 복잡한 이유에서;)를 너무나 자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종언>이 어쩐지 부족하다고, 주장만 있고 논거는 부족하다고 느끼신 분들은 이 책을 보면 아마 굉장히 많은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고진의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입장은 부정적이고, 그로 대변되는 근대 이후의 문학에도 부정적이지만, 그것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언어로 쓰여 있다는 것. 하루키의 작품이 그리고 있는 세계와 그 언어가 우리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철저하게 해부하고 있달까요. <종언> 만큼 선언적이진 않지만, '비평가'로서 고진의 진면목을 드러내 주는 책입니다.

* 이런 분께! : 고진의 '종언'에 공감/반발 하셨다면, 문학의 미래가 궁금하시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오에 겐자부로/미시마 유키오/나카가미 겐지 중 한 사람이라도 좋아/싫어하신다면
* 이 책도 함께!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난히 쓸쓸한 뉴스가 많은 요즘입니다. 분노하고, 소리치고, 뛰어 나가고, 당당하게 따져야 할 뉴스들이건만, 그저 '쓸쓸하다'고 느끼는 것은 가만히 앉아 있는 자신 때문일까요, 움직일 수 조차 없게 만드는 사회 때문일까요?

와중에 우스운 뉴스를 보기도 했습니다. 전의경의 폭력진압사태와 관련, 몇몇 기업의 인사담당자가 "전의경 출신은 뽑지 않겠다"고 공언했다는 것. (오늘도 역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전경 출신입니다. 12사단 훈련소에서 육군 발령 받은 친구들이 A급 군복을 두 벌 받는데, 저는 한 벌 밖에 주지 않아 알게 된 사실.

우스웠지만 이 또한 쓸쓸하기는 마찬가지. 하여 양심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원치도 않은채 끌려와 구타가 난무하는 비인간적인 근무환경에서 생활하다, 역시 원치 않는 작전에 동원되어 나온 친구들에게 양심이란 어떤 것일까. 그 상황에서 개인의 양심이 얼마나 무게를 지닐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전의경들의 '인성' 혹은 '양심' 문제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는 양심이 없는 사회이거나 양심이 아주 하찮게 팔려나가는 사회입니다. 젊은 이들의 '양심'과는 상관 없이 법적으로 모두 군대에 때려 넣고(그 와중에 몇몇 귀한 자식들은 불법적으로 가지 않고), 진정 '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한 이들은 감옥에 넣는 사회니까요.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요? '국민의 건강', '중산층 이하 계급의 생존권' 등이 이미 헐값에 팔려나갔거나, 팔릴 예정이듯이.

잡설이 길었네요. 오늘 제 앞에 있는 책은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2001년 12월 오태양씨를 시작으로 감옥에 갔거나, 지금도 여전히 감옥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30명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편지나 수기 등 그들이 직접 쓴 기록이기에 더욱 마음에 와닿는 글들은 우리를 더더욱 부끄럽게 합니다. 홍세화 씨의 추천사나, 각각 한 장을 맡아 쓴 박노자, 한홍구 씨의 글은 보너스 정도로 느껴질 만큼.

생각해 보면 양심의 문제가 비단 병역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먹고 살자니, 까라니 깐다"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나는 까라고 깠는데 너는 뭐가 잘났다고 그러냐?"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인지상정이지요. 많은 예비역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바라보듯.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또 덧붙이자면, 그것은 바로 사회의 책임입니다. 자꾸만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변명하게 만드는 것 역시)

("여기에 나는 없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만들었을 때, 테이크 아웃 커피점에서 카페라떼를 만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이게 무슨 경영시스템인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매뉴얼 경영이었던가 뭐 그런 거겠지. 매뉴얼대로 행동하고 생각하라! 회사는 움직일 몸을 요구하고 그 몸이 가야 할 길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 정재훈, '버스기사와 촬영기사' 273~274p)

너무 재미없는 얘기만 했네요. 사실 이런 이야기가 제 취향은 아닙니다. 행여 그런 너의 양심은 얼마냐, 라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양심의 문제에까지 '취향'을 들먹이는 인간의 양심이 그리 비쌀 것 같진 않지만, 죄송하게도 '비매품'입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늘빵 2008-06-03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꾹.

Narcolepsy 2008-06-05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품절이나 절판은 아닌가요. 어휴.

활자유랑자 2008-06-05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 님 / 아프락사스 님의 촛불 집회 관련 페이퍼들 잘 보고 있습니다. :)
narcolepsy 님 / 재출간 알림 신청이라도 해야할까요..;

Narcolepsy 2008-06-05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자서비스로 넣어주세요.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