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쓸쓸한 뉴스가 많은 요즘입니다. 분노하고, 소리치고, 뛰어 나가고, 당당하게 따져야 할 뉴스들이건만, 그저 '쓸쓸하다'고 느끼는 것은 가만히 앉아 있는 자신 때문일까요, 움직일 수 조차 없게 만드는 사회 때문일까요?
와중에 우스운 뉴스를 보기도 했습니다. 전의경의 폭력진압사태와 관련, 몇몇 기업의 인사담당자가 "전의경 출신은 뽑지 않겠다"고 공언했다는 것. (오늘도 역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전경 출신입니다. 12사단 훈련소에서 육군 발령 받은 친구들이 A급 군복을 두 벌 받는데, 저는 한 벌 밖에 주지 않아 알게 된 사실.
우스웠지만 이 또한 쓸쓸하기는 마찬가지. 하여 양심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원치도 않은채 끌려와 구타가 난무하는 비인간적인 근무환경에서 생활하다, 역시 원치 않는 작전에 동원되어 나온 친구들에게 양심이란 어떤 것일까. 그 상황에서 개인의 양심이 얼마나 무게를 지닐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전의경들의 '인성' 혹은 '양심' 문제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는 양심이 없는 사회이거나 양심이 아주 하찮게 팔려나가는 사회입니다. 젊은 이들의 '양심'과는 상관 없이 법적으로 모두 군대에 때려 넣고(그 와중에 몇몇 귀한 자식들은 불법적으로 가지 않고), 진정 '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한 이들은 감옥에 넣는 사회니까요.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요? '국민의 건강', '중산층 이하 계급의 생존권' 등이 이미 헐값에 팔려나갔거나, 팔릴 예정이듯이.
잡설이 길었네요. 오늘 제 앞에 있는 책은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2001년 12월 오태양씨를 시작으로 감옥에 갔거나, 지금도 여전히 감옥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30명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편지나 수기 등 그들이 직접 쓴 기록이기에 더욱 마음에 와닿는 글들은 우리를 더더욱 부끄럽게 합니다. 홍세화 씨의 추천사나, 각각 한 장을 맡아 쓴 박노자, 한홍구 씨의 글은 보너스 정도로 느껴질 만큼.
생각해 보면 양심의 문제가 비단 병역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먹고 살자니, 까라니 깐다"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나는 까라고 깠는데 너는 뭐가 잘났다고 그러냐?"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인지상정이지요. 많은 예비역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바라보듯.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또 덧붙이자면, 그것은 바로 사회의 책임입니다. 자꾸만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변명하게 만드는 것 역시)
("여기에 나는 없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만들었을 때, 테이크 아웃 커피점에서 카페라떼를 만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이게 무슨 경영시스템인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매뉴얼 경영이었던가 뭐 그런 거겠지. 매뉴얼대로 행동하고 생각하라! 회사는 움직일 몸을 요구하고 그 몸이 가야 할 길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 정재훈, '버스기사와 촬영기사' 273~274p)
너무 재미없는 얘기만 했네요. 사실 이런 이야기가 제 취향은 아닙니다. 행여 그런 너의 양심은 얼마냐, 라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양심의 문제에까지 '취향'을 들먹이는 인간의 양심이 그리 비쌀 것 같진 않지만, 죄송하게도 '비매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