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에게 '문학'을 되찾으라고 말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또 작가가 오락작품을 쓰는 것을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근대소설이 끝났다면, 일본의 역사적 문맥으로 보았을 때 '요미혼'이나 '닌죠본'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열심히 잘 써서 세계적인 상품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만화가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 그것이 가능한 작가는 미스터리계 등에 상당히 있습니다. 한편, 순수문학이라고 칭하고 일본에서만 읽히는 통속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잘난 척을 해서는 안됩니다." (<근대 문학의 종언> 중)
'사상가' 고진과 '비평가' 고진을 따로 두고 생각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사상가로서의 사유를 따라 읽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좋게 말하면 '국문학도'의 입장에서 그를 읽어온 입장과 자조적으로 말하면 '얼마나 팔리는 저자인가'를 두고 그의 저작을 대해온 입장이 합치된, 이번에 출간된 <역사와 반복>을 두고 '비평가'로서의 고진에 대해 몇 마디 하는 것으로 이 페이퍼를 한정지으려 합니다.
"야 정말 죽이는 책" 이라는 수식으로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을 소개받았을 당시에는 사실 그의 이론이 얼마만큼의 함의를 지니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어요. 다만 조금 어려운데, 어쩐지 재밌네, 라고 생각했을까요. 뭐 물론 이건 제가 대개의 책에 품고 있는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는 평가입니다만.
하지만 그 후 읽게된 <근대 문학의 종언>은 그야말로 다른 이야기였지요. 시종일관 조곤조곤 '당신들이 생각하는 문학이란 것은 이제 생명력이 다한 것 같네요. 아쉽지만 이제 헤어져야겠지요. 그 동안 수고했던 문학을 위해, 자, 웃으며 안녕~' 이라고 말하던 <종언>은 충격 그 자체였으니까요. (사실 돌이켜 생각하면 <기원>에서 이미 <종언>이 충분히 예견되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후로 일었던 여러 논쟁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읽은 몇몇의 '비판'들은 그들이 비판하고 있는 고진의 '비약'보다 더 심한 비약으로 점철되곤 했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습니다(물론 그렇지 않은 비판도 많이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고진의 주장의 많은 부분에 공감했습니다. 분명 근대 국가에서 소설이 해냈던 역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는 주장은 논리적/정황적 설득력이 있었으니까요. 그것을 '문학의 위기'만 운운할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학의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하지만 고진이 내린 것은 사실상의 '사망선고'였습니다. 그렇게, 근대 문학의 사망 이후의 문학에 대해 서술한 부분에는 (심정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어요. 과연 근대 문학 이후의 문학이란 대중적인 오락 작품일 뿐일까요? 어쨌거나, 비판하는 입장에서나 옹호하는 입장에서나 <종언>이 조금 '두루뭉술한‘ 부분이 있다고 느껴졌던 것은 사실이겠죠.
그래서 이 <역사와 반복>을 받아들고 꽤나 설렜어요. 한동안 관심사에서 멀어진 주제이기도 했지만(마치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던 친지가 3년이 지났는데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고, 어느 순간 그의 건강에 대한 근심을 잊게 되는 것처럼), 그럼에도 책을 보는 순간 순식간에 떠오르는 흥분, 이랄까요.
'종언'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관점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1부 역사와 반복을 읽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그보다는 미시마 유키오와 오에 겐자부로,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분석, 비평하고 있는 2부 근대일본에서의 역사와 반복에 관심이 있어 그 부분만 읽었어요. 3부 불교와 파시즘은 아직 읽지 않았지만 어쩐지 궁금한 내용이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왜 제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한때 그렇게도 좋아했으며(다시 말해, 왜 이런 인간이 되었는지), 그를 좋아하지 않게 된 이후로 오에 겐자부로를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는지(이를테면 무의식의 보상작용), 또한 미시마 유키오는 주는 것도 없이 왜 그리 싫었는지(이건 약간 복잡한 이유에서;)를 너무나 자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종언>이 어쩐지 부족하다고, 주장만 있고 논거는 부족하다고 느끼신 분들은 이 책을 보면 아마 굉장히 많은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고진의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입장은 부정적이고, 그로 대변되는 근대 이후의 문학에도 부정적이지만, 그것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언어로 쓰여 있다는 것. 하루키의 작품이 그리고 있는 세계와 그 언어가 우리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철저하게 해부하고 있달까요. <종언> 만큼 선언적이진 않지만, '비평가'로서 고진의 진면목을 드러내 주는 책입니다.
* 이런 분께! : 고진의 '종언'에 공감/반발 하셨다면, 문학의 미래가 궁금하시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오에 겐자부로/미시마 유키오/나카가미 겐지 중 한 사람이라도 좋아/싫어하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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