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드 [하우스] 시즌 3의 한 에피소드. 하우스는 35세의 피아노 연주자를 만난다. 그의 이름은 패트릭(데이브 매튜스 밴드의 데이브 매튜스!). 패트릭은 어린 시절의 버스 사고로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지만, 그가 피아노에 재능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 사고 이후. 스스로는 단추도 채우지 못하는 그이지만 하우스가 중학교 시절 작곡하다 포기한 피아노 소곡을 이어 환상적인 즉흥연주로 완성하기도.

2. 태어날 때부터 뇌에 중증의 장애를 안고 태어난 오에 겐자부로의 장남 히까리(光). 아버지에게 평생에 걸쳐 천착하게 될 주제를 안겨준 그는, 소통을 포기하지 않았던 가족의 사랑으로 마침내 클래식 음반을 낸 작곡가가 된다. 기자가 묻는다. "음악은 언제까지 할 생각입니까?" 아버지를 돌아보며 묻는 히까리. "오선지가 얼마나 남았죠?" 그 음반이 일본 클래식 사상 최고의 판매고를 올렸다는 사실은 그저, 사족.

3.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 오늘은 그녀와 사랑을 속삭이지만, 내일이면 여자는 남자를 기억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남자. 매일매일 그녀에게 다가가며 새롭게 사랑을 속삭인다. 그러다 23번째의 데이트가 끝나고, 여자의 인생에 자기가 짐이 될 뿐이라는 생각에 남자는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런 남자가 마음을 돌려 먹게 된 것은 바로 비치 보이스의 'Wouldn't It Be Nice?'와 "자네를 만나고 온 날이면 항상 저 노래를 부른다네"라는 그녀 아버지의 말. 그녀는 과연 그를 기억하는 걸까?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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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음악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지점은 어디이며,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올리버 색스의 신작 <뮤지코필리아>가 탐구하는 지점은 바로 그곳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뇌에서 언어보다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음악. 인간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음악적 성향을 선천적이라고 파악하는 색스는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언제나처럼 다양한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답게, <뮤지코필리아>에도 역시 흥미로운 사례들이 가득합니다.

- 마흔 두 살에 번개를 맞고 갑자기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꿈을 키우는 사람
- 교향곡이 솥과 팬을 바닥에 집어던지는 소리로 들리는 실음악증 사람들
- 기억의 범위가 불과 7초밖에 되지 않지만 음악 기억만은 온전한 사람
- 음악을 들으면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
- 한 번 들은 음을 절대 잊지 않는 음악 서번트
- 음악과 함께하는 시간에만 예전 기억을 찾는 기억상실증 환자
-  노래는 부를 수 있는 실어증 환자

마지막 장인 '음악과 정체성 : 치매와 음악치료'의 끝에서 색스는 이렇게 말해요.

   
  심층적인 수준에서 음악을 즐기고 반응하기 위해 반드시 정해진 음악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은 딱히 '음악적'일 필요도 없다. 음악은 인간 존재의 일부이며, 음악이 고도로 발달하고 높게 평가되지 않는 문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음악이 일상에서 하찮게 간주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라디오 스위치를 켰다가 끄고, 곡조를 흥얼거리고, 발을 구르고, 기억을 더듬어 옛날에 들었던 노래 가사를 찾고, 그리고 잊어버린다. 그러나 치매에 걸린 이들에게는 상황이 다르다. 이들에게 음악은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며, 적어도 잠시나마 그들에게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해주는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그의 '음악music 사랑philia'이 느껴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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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지금 제가 듣고 있는 것은 Bebo Valdes 의 [Bebo], 요즘 저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멜로디는 Kings of Convenience의 'Homesick'의 첫 머리입니다.

I'll lose some sales and my boss won't be happy
But I can't stop listening to the sound
Of two soft voices blended in perfection
From the reels of this record that I've found

내 매출이 떨어지고 사장님은 행복하지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음악을 멈출 순 없네요
내가 찾아낸 이 앨범이 들려주는,
완벽하게 녹아드는 두 부드러운 목소리의 조화를


글쎄요, 너무 가슴 아픈 가사라 뭐라 덧붙일 말은 없지만 도대체 무슨 레코드를 듣고 있는 건지 조금 궁금하기는 해요. 아스트루드 질베르토주앙 질베르토가 함께 부른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엘라 피츠제럴드루이 암스트롱이 부르는 'Cheek to Cheek'? 어쨌거나,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음악임은 틀림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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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8-08-03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을 걷고 있을 때 제 아이팟 셔플에서 'Homesick'이 나오면 갑자기 마음이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어요. 그들이 마치 'Homesick'을 위해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 같아서 정말 기분 묘해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