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마틸다 O.S.T.
팀 민친 작곡 / 유니버설(Universal)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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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로알드 달_Roald Dahl을 알까?

백년쯤 전 영국에서 태어난 작가 로알드 달이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부조리한 어른들의 세상을 그려 전세계에 많은 어린이팬을 거느렸다는 사실을 알까?

뮤지컬 마틸다의 공연장을 가득 메운 이 사람들은 로알드 달의 책이나 그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을까?

 

지난 연말 강남의 한 대형 공연장에서 뮤지컬 <마틸다>를 봤다.

우리 가족 중 한 사람이 로알드 달의 팬이고 작년에 영화 마틸다를 재미있게 여러 번 봤는데 마침 여름에 우연히 길거리에 걸려 있는 뮤지컬 마틸다의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책과 영화로 본 작품을 뮤지컬로 만난다면 어떨까하는 기대로 거금의 티켓을 구매했다. 티켓을 두달쯤 전에 예매했는데 놀랍게도 많은 자리가 이미 팔렸었다. 당시에 티켓이 오픈되어 있던 1월까지도 많은 자리가 팔린걸 보고 약간 놀랐었다.

 

공연은 런던의 오리지널 버전을 대부분 그대로 살린 것으로 보인다. 책이나 영화에 없던 이야기들이 약간 들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런던의 오리지널 뮤지컬에도 있던 내용이고 무대나 안무, 각색 내용을 대부분 그대로 살린 것 같았다. 인상깊었던 무대장치, 안무 등이 모두 런던 오러지널 버전에서도 이야기되는 것들이었다.

가족뮤지컬이라는 장르답게 볼거리는 많았다. 어린이들의 깜찍한 춤과 노래, 학교를 배경으로 한 노랫말과 안무, 폭넓은 연령대에서 즐겁게 느낄만한 것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 마틸다 같은 가족뮤지컬 장르는 아직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럴만하게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보다는 그렇지 않은 관객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감동도 있었지만 솔직히 아쉬움을 먼저 말하게 된다.

8세 이상부터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고, 공연 시작 전 안내 방송에서도 어린이 관객이 주위를 소란스럽게 하지 않도록 주의를 부탁드린다는 공지가 꽤 길게 방송되었다.

맙소사! 이건 주인공인 5살 마틸다가 학교에 다니게 될 무렵의 이야기이고 학교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이 등장하는데 8세 이상 관람가라니.

로알드 달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8살이라고 해도 관람 중인 다른 관객을 방해하면 어떤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는 이런 안내방송을 듣게 된다면 어떘을까?

로알드 달의 작품세계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부조리한 어른들이 만든 작당에 가까운게 아닌가. 어린이 관객에게만 특별히 주의를 부탁드리는 이 장면부터 뮤지컬의 일부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평일 공연이 무려 8시에 시작해서 11시가 다 되어 끝난다는 점도 어린이를 배제한 기획이라는 의심에 확신이 가게 했다.

영국, 미국 등에서는 가족뮤지컬이라 하여 아이들이 부모를 졸라 가족단위로 관람하는 공연이라는데 우리나라는 8세 이상의 점잖은 어린이들만 관람할 수 있고 티켓 가격도 가족 단위로 3, 4명이 보기에는 무척 비쌌다. 아시아권인지 비영어권인지 최초 공연이라는데, 암튼 아쉬운 점이 많았다. 마틸다의 대사처럼 That's not right!가 절로 나왔다. 과연 어른들의 세상은 부조리와 불합리 사이의 어딘가인가 보다.

 

그러나 지금은 날마다 마틸다의 OST를 틀어놓고 지낸다. When i grow up을 들으며 어린시절에 내가 어른들을 보며 했던 생각을 떠올려보려고 한다지금 나의 아이가 누리는 환경과 내가 어렸을 때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내 아이를 보면 나의 어린시절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냥 내 기억속을 더듬어 어린 시절 살았던 집과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학교, 친구들을 떠올려 본다. 그 때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았는지, 어른들의 세상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조심스럽게 더듬어 본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과거로 잠시 다녀갔다 온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아마 내 아이가 봤을 때 부조리한 어른 중 한 명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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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 가장 나답게 사는 길은 무엇일까?, 개정판
파커 J. 파머 지음, 홍윤주 옮김 / 한문화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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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기 전에 인생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에 귀를 기울여라.’

 

이 책은 인생을 보는 관점에 대해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 준다. 관점이 대폭 전환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같은 상투적인 문장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제목도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이다. 그동안 소명, 삶의 의미 등에 대해 생각하던 바와 많이 다르게 느껴졌는데 공감이 가는 게 많았다. 소명, 부르심 같은 건 익숙한 주제였으나 그것이 나의 외부에 있다고 생각했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전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따라야 할 것을 밖에서 찾고 있었다. 소명의 참된 의미는 vocation이라는 단어에 숨어 있다고 한다. vocation의 어원은 voice 목소리다. 소명은 자신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 소명은 내가 들어야 할 내면의 소리라는 것이다.

 

몇 년 전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아이를 대할 때의 태도에 큰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 각자 자기 몫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성장하는 중의 완전하지 않은 모습을 보며 불안해하지 말자 다짐하기도 했었다. 말하기보다는 듣고, 외우고, 쫓아하며 조용히 보내야 하는 학교 생활이 아직도 이런 문화라는 사실에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읽을 때는 나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글쓰기와 상관없는 전공, 직업을 가졌었는데 이상하게도 최근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내면의 부르심이라고 하는 걸까. 처음에는 책 읽기를 즐기니까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감상을 표현하고 싶은 정도였는데 왠일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더 관심이 생겼다. 글을 열심히 써 보면 어떨까하고. 확실한 건, 나는 타고난 재능은 없다. 수학이나 과학 같은 자연계열 공부가 더 좋았고 학창시절 자주 접해 본 자신의 생각을 쓰라...’는 종류의 질문에 머릿속이 하얘진 경험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지금은 왜 내면의 목소리가 자꾸 글을 쓰라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책을 즐기다가 문장이 머리에 넘치는걸까 하는 되도 않는 생각도 들었다.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무도 조언을 해 주거나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아무도 ...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글쓰기에 관한 조언이지만 내면이 글쓰기를 하라 부르시는 이유를 찾는 것도 같은 것 같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서 써 보는 것.

 

잡아 곁에 두고 싶은 내용이 많아서 조금 옮겨 놓는다.

 

 

29

나는 교회 안에서 성장한 까닭에 소명의 의미에 대해 맨 먼저 배웠다. 신 앞에서 겸허하고 세상의 다양성을존중하며 정의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종교적 전통에서 자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 내가 깨달은 소명의 개념은 왜곡된 것이었다. 소명이란 자신을 향해 외부에서부터 들려오는 도덕적인 요구의 목소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뭔가 지금의 자기 모습보다 더 훌륭하고 자신을 초월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느 상을 그리고 있었다. 소명에 대한 이런 태도는 자아에 대한 깊은 불신에서 시작된다. 죄 많은 자아는 이라는 외부의 강제적 힘을 동원해 바로잡지 않는 한 늘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런 생각 때문에 나는 늘 내 인생을 잘 꾸려 가기에는 부족한 존재라는 느낌을 가졌다. 내게 기대되는 이상적인 모습과 실제 모습 사이의 차이 때문에 죄의식을 만들어 내면서 그 격차를 좁히기 위해 몸부림치느라 지쳐갔다.

 

30

소명은 나 아닌 다른 어떤 존재가 되라고 저쪽 바깥에서들려오는 목소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소명은 본래 타고난 그 사람이 되어, 태어날 때 신이 주신 본연의 자아를 완성하라는 여기 내면에서들려오는 목소리에서 나온다.

 

38

우리의 가장 깊은 소명은 그것이 우리가 되고자 하는어떤 이미지에 맞든 안 맞든 자기의 진정한 자아를 향해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기쁨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진정 우리가 갈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소명은 자아(self)와 봉사(service)를 하나로 결합한다. 프레더릭 뷰크너는 소명을 마음 깊은 곳에서의 기쁨과 세상의 절실한 요구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뷰크너의 정의는 소명이란 자아에서 시작하여 세상의 요구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현명하게도 소명의 시작 지점을 제대로 본 것이다. 소명의 시작은 세상이 원하는 바가 아니라 인간 자아의 본성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그것은 바로 자아에게 신이 창조한 선물로 이 땅에 태어났음을 깨닫는 크나큰 기쁨을 안겨 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57

그리고 우리의 책임과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일단 나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어떤 패턴을 알아낼 수 있었다. 여러 해 동안 나는 버클리나 조지타운 같은 대형 교유기관을 떠나 팬들 힐 같은 작은 곳, 사회적으로 지위도 낮고 잘 알려지지도 않은 곳을 전전했다. 하지만 나는 게처럼 옆걸음질 하고 있었다. 사실에 정면으로 부딪치기가 두려운 나머지 제도권 생활의 중심을 벗어나 변두리를 향해 갔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제도권 학교 밖으로 나갔다.

 

65

참자아를 주장하다가 받는 처벌이 아무리 호되다 해도, 참자아를 주장하지 못해서 스스로에게 내리는 처벌보다는 견디기 쉽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남이 주는 그 어떤 보상도 자기 스스로의 빛을 밝히며 살아가는 데서 얻어지는 보상만은 못하다.

 

66

참자아는 나를 가제로 인생의 생태계에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도록 했고, 내가 평생 사랑싸움을 벌여온 교육기관과 적절한 관계를 찾도록 했다. 만약 내가 나의 참자아를 부인하고 두려움에 마비되어 내 자리에그냥 머물러 있었다면, 오늘날 나는 분명 관심 분야에 봉사하는 대신 방황하며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78

우리 모두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 말은 한계와 능력 모두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능력을 깨닫는 것도 그렇지만 직접 자기 한계에 뛰어들어봄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본성을 더 많이 알 수 있다. 루스가, 그리고 인생이 내게 가르쳐 주려 했던 게 바로 이것인 것 같다. 한계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해고처럼 난처한 형태가 아니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당신도 나처럼 자기 한계를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런 당혹스러움이 아니고서는 당신의 주의를 끌 수 없을 것이다.

 

79

미국인으로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적어도 내가 속한 인종과 성에서- 모든 한계를 일시적으로 인생에 닥친 유감스러운 일로만 간주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한계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미국인의 신화는 한계에 대한 끝없는 도전에 대한 것이다. 서부 개척시대를 열고, 빛의 속도를 넘어서며, 달에 사람을 착륙시키고, 현실 공간이 움직이기도 힘들 만큼 쓸모없는 것들로 가득하게 된 순간, 사이버 공간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불가능을 인정하지 않는다.

 

92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애굽기 3:14)’ 모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신은 도덕 규범이 아닌 본질적인 존재(isness)와 자아에 가까운 분이었던 것이다. 내가 믿는 바대로 우리가 신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면 우리가 누구냐는 질문에 우리 역시 똑같은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본성에 충실함으로써 신과 함께 산다. 본성이 아닌 것을 따르는 사람은 신을 거스르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현실의 실체는 신계 속한 것이니, 거스르지 말고 그대로 존중하며 따를 일이다.

 

96

나는 더 이상 약점을 고치려고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와 함께 춤추고 싶어하지 않는 때는 솔로로 춤추는 법을 배운다. 왜냐하면 자칫 그것은 내 재능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는 나와 춤추기를 거부하는 학생들에게 더 품위 있게 대응하는 법을 배우려 한다. 내 한계를 그들 탓으로 돌리는 대신 나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이다.

 

98

열림은 우리의 능력을 보여주고 닫힘은 우리의 한계를 보여 준다. 그것이 영적인 세계 속에서 정체성이라는 동전이 가진 양면인 것이다. 우리는 이 동전의 양면을 잘 살펴봄으로써 우리 정체성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영적 여행의 길에서 자주 일어나듯이 우리는 역설의 심장부에 도달한다. 문이 닫힐 때면 나머지 세상이 열린다는 역설이다.

 

109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 우울증에 빠진 사람에게는 진실을 얘기해 주는 것이 중요한다. 만약 내가 바라는 생각을 얘기했다면 그녀의 마음을 감동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에게는 속임수 감지기가 그냥 작동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예민하게 작동한다.

둘째, 우울증은 종교적이든 과학적이든 어떤 가치에서 나오는 도식적이고 단순한 대답 대신 우리 문화가 무시하는 신비를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신비는 사람 마음 속 깊은 경험 하나 하나를 둘러싸고 있다. 자기 마음의 어둠 또는 빛을 향해 깊이 들어갈수록 우리는 신의 궁극적인 신비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하지만 우리 문화는 신비를 그저 설명해야 할 수수께끼나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바꾸어 놓으려 한다.

 

114

어떤 사람은 기운을 북돋울 양으로 이런 말을 했다.

날씨가 아주 좋네요. 밖에 나가서 맘껏 햇볕을 쬐며 아름다운 꽃이라도 보는 게 어때요? 분명 기분이 나아질 거예요.”

하지만 그런 조언은 나를 더 깊은 우울증으로 밀어 넣었다. 머리로는 나는 그 날 날씨가 눈부시게 좋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내 감각으로는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었다. 그 단절을 느낄 때마다 더 싶은 절망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나를 찾아와 이렇게 말해준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파커. 가르치는 일도 글 쓰는 일도 아주 잘 하잖아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구요. 당신이 했던 좋은 일들을 떠올려 보세요. 분명 기분이 나아질 거예요.”

그 충고 역시 나를 더 깊은 우울에 빠지게 했다. ‘좋은사람으로 비치는 외적인 내 모습과 당시 내가 믿고 있던 나의 나쁜모습 사이의 엄청난 격차만 절감할 뿐이었다.

 

116

누군가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그것은 자신이 소멸되고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이에게는 생명을 주는 일이다. 그 친구의 행동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수님이 발을 씻어 준다는 성경의 이야기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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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 스스로 ‘정상, 평균, 보통’이라 여기는 대한민국 부모에게 던지는 불편한 메시지
오찬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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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는 이유 중의 하나는 세상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나 나와 영혼이 통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어딘가에 있을 그런 사람을 찾아 헤매는 것이 책에서 책을 소개 받는 여행이 계속되는 이유 중 하나다. '나와 비슷한 생각'의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젠더감수성이다. 여자들 중에는 있겠지만 남자 중에서도 정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일 것 같았다. 예전에는 한국 남자 중에서는 이런 젠더감수성을 발견하는 게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여성 이슈가 주목받으면서 등장하는 의견을 보다보니 간혹 한국 남자 중에도 있긴 있겠구나 싶었다.

읽는 내내 대한민국의 대구 출신 78년생 남자에게 어떻게 이런 생각이 깃들일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아무리 학문을 갈고 닦았다고 해도 보통 여자의 젠더감수성을 뛰어넘는 탁월한 시선이 놀라웠다. 자연스레 의심이 들었다. 그의 아내가 대부분의 내용을 쓰거나 구술하고 오찬호가 정리했다, 아니면 여성학 연구자급의 여성 작가가 공동으로 구성하고 오찬호가 정리하거나 대표한다, 그것도 아니면 뭘까. 한 많은 한국의 여성 한 명이 오찬호에 빙의하지 않고서 이런 개념이 어떻게 탑재될까.

이 책은 육아를 중심으로 결혼 전후, 육아, 학교 생활, 사교육을 관통하는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이야기다. 결혼도 만만치 않지만 아이가 없다면 삶의 복잡성의 차원은 달라진다. 육아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문제들을 겪다보면 한국 사회의 핵심적인 이슈들을 관통하게 된다. 보육시설, 경력단절, 공교육, 사교육, 부동산, 대학입시 등 아이가 없으면 이토록 심각하고 무시무시한 문제들은 그냥 옆동네로 날아가는 폭탄일 뿐이다. 본능에 따라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어쩌다가 이런 엄청나게 힘겨운 프로젝트가 되었는지 안타깝다. 나도 어느새 이 터널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간절하다. 깊이 생각하다보면 정말 극적인 대안을 내놓을 것 같은데, 실현할 용기가 있을지, 아니면 고민 끝에 알게 될 현실이 더 두려울테니 그냥 적당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다. 아뭏튼 답답하다.

우리 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진단이 있었지만 이 책은 저자가 이 대열에 있는 동료 부모로서 느껴져서 위로가 된다. 물론 이 책에선 위로보다 사회학적인 분석이 더 중요하다. 문제를 사적인 차원으로 다루는 것과 사회적인 맥락으로 분석하는 것은 다르다. 대안이 마땅치 않더라도 문제를 구조적으로 제대로 보아야 힘이 난다.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지만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으로 해석하여 내놓은 해결책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덕분에 나도 미처 느끼지 못하던 나의 한계와 문제도 몇 가지 느끼게 되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문제의식이 많고 저자랑 비슷한 가치관을 갖고 있어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이렇게 책이라도 읽어야 그나마 삶을 지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그래’, ‘맞아 맞아공감만하고 덮을 수도 있었지만 이번 경우에는 마음속에 좀 더 걸리는 데가 있었다. 나도 모르는 몸 속의 어떤 질병을 짚어낸 느낌이라고나 할까.

능력주의, 서열주의가 내 안에도 생각보다 깊이 내재되어 있었다. 오래 신앙했던 종교의 영향으로 세속적인 가치관을 지양해야 할 것으로 배우긴 했으나 막상 나의 자녀도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떤 가치로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가 하는 지점에서 이런 분열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내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와 별개로 능력주의와 서열주의는 우리 사회의 기본 배경과 같은 것이라서 나 혼자 자유롭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학교 졸업장은 사회활동을 얼마나 하느냐에 관계없이 여러 가지로 보증이 되고 있다. 대학에서 나는 사실 배운 게 별로 없고 졸업을 했다고 해서 전공에 대해서 별로 관심과 지식도 없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일단 들어간 것 자체만으로 많은 것이 설명되었다.

또 이 책에서 지적한 문제적 사례가 나와 비슷하다. 한때 생태적인 문제에 관심이 생겨 귀농, 자연주의를 꿈꾸며 대안을 찾아다녔던 적이 있었다. 실제로 서울을 떠나 이사를 하려는 단계에서 다른 문제가 생겨 포기한 적이 있지만 그 후로도 대안학교를 고민하고 지금도 이런 책을 찾아 들만큼 고민이 계속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경쟁 대오에서 나와서 그들과 거리를 두는 것 또는 또다른 프리미엄이 될만한 남다른 대안을 모색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안이라는게 또다른 프리미엄이 아닌 다같이 사는 사회를 위한 제대로 된 고민이었나 싶다. 나 혼자 흐름을 바꿀 수 없으니 많은 걸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다른 길을 찾아보는 마음도 있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걸 보면, 주변에 휩쓸리지는 않으면서 어떻게는 나의 독특한 방법으로 아이를 뛰어나게 만들어봐야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워킹맘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에 대한 분석도 빼놓지 않았다. 워킹맘 –이 단어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란 단어만 들으면 숨이 막힌다. 구구절절 다시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던 기억이 다시 생각나고 여전히 똑같은 현실에 너무 답답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은 많았지만 생각할수록 숨이 막히니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했었던 시간이었다. 간혹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관련 문제가 뉴스가 되면 우리 아이는 이제 그 시기를 지났다는 사실이, 마땅한 어린이집을 찾아 심하게 마음 졸였던 기억과 함께 이제 더 이상 그 문제를 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 지금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는 한 가운데에 있었던 시간, 아이에게는 어린 시절이라는 그 빛나는 시간이 이 사회에서 워킹맘으로 살면서 어려움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 억울하다. 물론 힘든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의 삼십대, 아이의 유년기 그 소중한 시간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사랑하지만 불평등한 가족' 그래 이거다. 좋은 사람들이지만 왠지 불편한, 그래서 불만이 느껴져도 그러면 안된다고 나를 자책하게 되는 복잡한 감정의 원인이었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인데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지, 했었던 장면이 있다. 어떤 이야기들은 이렇게 선명한 워딩으로만도 많은 것을 설명한다. 해결은 되지 않더라도 답답함이 해소된다. 정확한 사실 규명은 이렇게 중요하다. 공들여 뽑았을 소제목 몇 개를 더 나열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1장 결혼

결혼은 탈각의 대상이 되었다 / 남편은 놀라운 말을 했다 / 남자는 권위를 권리라 했다

2장 임신과 출산

가장 악질적으로 남용되는 말 '모성' / 산후조리원은 좋고도 나쁘다

3장 육아서

모든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는 육아서 / 육아서에 사회 구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생물학적 남녀 차이를 강조할수록 사회적 남녀차별은 정당화된다 / 서로를 존중하면 평등한 것일까? / 사랑이 넘치는 불평등한 우리집

아빠효과는 아빠때문이 아니다 / 엄마는 아빠처럼 육아를 못하는 것일까 / 남자는 태초에 그렇게 설계되었을까? / 떡잎부터 남녀를 가르는 육아서는 백해무익하다

4장 육아

자연과 함께했으니 우리 아이는 특별할 것이라는 착각 / 보통 사람을 죄인 만들지 마라 / 거대 자본에 길들여진 부모들, 길들여질 자녀들 / 스팩터클의 사회는 진화한다 / 일하면서 아이 잘 기를 수 없는 이상한 사회

5장 사교육

사교육 무용론은 옳지만 정당하지는 않다 / 왕따를 참고 버티도록 해주는 놀라운 마약 / 피해자가 사라진다

6장 사랑?

공부 못 한 사람들의 실체를 알려주겠다는 사람들 / 타자의 욕망에 길들여지는 자녀들 / 고정관념을 가르치는 화기애애한 아빠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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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쁨 받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김현진 지음 / 이다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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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 김현진님의 에세이다.

가볍고 재미있는 문장으로 쓰여 있어 읽기 편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온 여자로서 마음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여자의 길이란 왜 이리 만만치 않은지...

한때 공부, 아니 연구인가, 를 통해서 풀어보려고 한 적도 있는데

이렇게 얽매이는 게 더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얼마나 나를 힘들게 했든, 허물 벗듯이 그냥 가볍게 벗어내고

주체적으로 즐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이런 글을 읽어도 그렇게 흥분하거나 동감 이백프로의 마음으로 마음속에 열불이 나지는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세상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인지, 그런 문제에 연연해하지 않고 초연하기로 해서인지, 잘은 모르겠다.

암튼 요즘 젊은 여성들은 여기저기 지지자들이 많다는 생각에

약간 부러움도 든다.

이 작가가 앞으로 계속 글을 쓴다면 얼마나 더 깊고 진한 글이 나올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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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 시리아 내전에서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감동 실화
델핀 미누이 지음, 임영신 옮김 / 더숲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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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몇년 전부터 외신에서 보던 아랍의 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시리아 내전...

물리적으로 너무 먼 거리에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문화가 많이 달라서인지 거리감이 느껴져 큰 관심이 없는 기사였는데

지금 동시대에 이런 곳이 있다는게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책은 시리야의 다라야라는 도시에 있는 청년과

이스탄불에 와 있는 파리 출신 기자 사이에 SNS로 전해진 소식으로 이야기로 이어진다.

전쟁으로 마을이 봉쇄되고 마치 거대한 관 같은 곳에서 시한부로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책이 어떤 의미가 되는지... 이야기를 읽어도 잘 상상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읽었던 소설을 읽고 무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도 읽는다.

날마다 퍼붓는 폭탄 사이에서 '성공하는 ...' 이라니... 이 책으로 강연도 하고 토론도 했단다.

 

p131

귀퉁이가 접히고, 긁히고, 색이 바랜 이 책은 손에서 손으로 꾸준하게 전달되었다. 읽히고 또 읽히면서 하나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특히 더 많은 사상자가 있었던 2016년 겨울. 이제 5년째로 접어드는 전쟁이 언젠가는 끝나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게 해주는 요소가 이 책에는 들어 있었다. 책의 내용에 빠져들면서, 전쟁을 일시적 차원의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하고, 잔혹한 폭격과 늘 마주하는 죽음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이는 포위가 이토록 오래 지속될지 예상하지 못했던 병사들의 조바심을 극복하는 일이기도 했다.

 

'... 잔혹한 폭격과 늘 마주하는 죽음에서 떨어지는 ...'

늘 마주하는 죽음에서 떨어지는 것이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가게 해 주는 것이 책이었다니..

 

책이 가진 생명력을 생각해 본다.

나무를 베어서 잉크를 풀어 글자를 찍는다.

나무의 생명력이 종이로 옮겨간 걸까.

나무는 땅에서 자랐으니,

땅이 가진 생명력이 나무에게로 그리고 책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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