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1disc)
데이빗 핀처 감독, 브래드 피트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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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odd.

어린 데이지가 늙은 소년 벤자민에게 식탁 밑에서 했던 말이다.

 

사람에게 시간은 얼마나 유한한 것인지 새롭게 느끼게 된다.

젋어지는 벤자민의 모습은 남은 생의 기간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만큼인지도...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예상할 수 있다는 건 어떤 것일까.

우리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내 아이와, 지금 만나는 이 사람들과 남은 기간은 모두 유한하다. 언젠가는 끝이 있을거라 짐작하지만 얼마만큼인지는 알지 못한다. 남은 시간을 알게 된다면 그건 어떤 종류의 고통일까. 그건 차라리 모르는 게 낫기 때문에.. 알 수 없는게 좋다. 세상에 오는 순서는 있지만 가는 순서는 없다는 건 진리다. 인간의 인식의 한계를 또 만난다.

 

이런 이유는 odd 하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떠난다.

만남과 헤어짐, 사랑이 있어 묵직한 이런 애틋한 느낌이 이제는 나한테 너무 낯설다. 누군가를 사랑해서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는 낭만은 이제는 폐역이 된 기차역에 다시는 오지 않는 기차처럼 낯선 느낌이다. 이런 낭만이 생의 에너지가 된다면 어떨까, 나에게도 이런 때가 있었을텐데.. 너무나 까마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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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아 니 스 트
대경DVD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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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여유로운 오전, 비가 와서 서늘한데 에어컨 바람까지 쐬며

내가 대체 왜 여기 왔을까 싶게 만드는...

전쟁, 유대인 학살 배경은 너무 힘들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니.. 끔찍하고 참혹하다.

 

폴란드 유대인 출신의 피아니스트 블라덱 슈필만은

게토 이주, 강제 노역, 아유수비츠 이송 와중에 극적으로 살아남는다.

전에 알던 독일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게토를 탈출하여

독일 지인들의 도움으로 은신처에 살다가 폭격으로 다시 도망한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통조림 등으로 근근히 생존하던 중

독일 장교에게 발견되어 음식물을 도움받아 목숨을 연명한다.

드디어 독일군을 몰아내고 진군한 소련에 의해 발견되어

전후 폴란드 국영방송 음악가의 길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2000년까지 폴란드에서 음악가로 살아다가 80대의 나이에

파란만장했던 긴 생을 마치게 된다.

 

* 참혹한 전쟁과 유대인 학살, 이게 아직 백년도 지나지 않은 현시대에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

문학과 예술로 끊임없이 재생산되지만 여전히 놀라고 있는 현실이다.

너무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장면에 몸서리가 쳐진다. 영화이지만 나는 이런 장면이 너무 힘들다.

극장을 뛰쳐나가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 전쟁 초기, 유대인 가정은 2000줄로티 이상 소유할수 없다는 공지에 대해, 슈필만의 동생은 그럼 나머지 돈은 은행에 넣어두면 되지 않냐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 끝은 6백만 유대인 학살이었다.

 

* 아우슈비츠행 기차를 타기 전에 가족들이 모여있다.

목에 쟁반을 걸고 카라멜을 파는 아이를 향해 아버지가 묻는다. "얘야 돈은 벌어서 뭐하려고"

그러고 가족들의 돈을 다 모아 20줄로티를 내고 캬라멜 한. 개.를 사서

아버지의 주머니칼로 잘라 손톱만한 캬라멜을 한 개씩 나누어 먹는다.

뭐라 할 수 없는 먹먹한 장면이다.

 

* 무지막지한 현실 가운데서도 게토에서 노역하는 마지막 유대인들은 저항을 도모한다.

암호를 주고 받고 총을 입수하고 반역 계획을 짠다. 그리고 결행하는날 모두들 죽임을 당한다.

게토 밖의 현실이 어떤지 알았을텐데 그래도 그렇게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인가.

끝까지 인간의 존엄을 과시하며 죽어간 그들이 기억에 남는다.

 

* 은신처에 숨어 있는 슈필만을 도와주던 지인의 지인(즉, 한다리 건너 알게 된 사람)은

이 와중에도 슈필만을 내세워 사기를 치고 한탕을 해서 날른다.

갖가지 인생이 다 있다. 정말...

 

* 최후의 은신처에 있던 슈필만을 발견하고 도와준 독일군 장교 호첸펠트도 실제 인물이라고 한다.

끔찍하고 긴장의 연속이던 영화에서 간만에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호첸펠트는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의 스토리가 궁금했는데 많이 알려진 것은 없지만

구글링을 통해서 간단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미확인 정보지만 이것이 삿실이기를 바란다.

 

호첸펠트는 나치 당원이었고 히틀러를 존경했으며 전쟁은 역사적이고 위대한 순간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크리스쳔이었고 군인으로서 크리스쳔인 것을 어렵게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유대인 구조 활동에 하나 둘 발을 담그게 되었고, 당시 양심적인 많은 독일군들이 이와 같은 행동을 했다고 한다.

그는 폴란드 포로수용소의 지휘관으로 있으면서, 그후 기차역에 있는 수비대원 사령관으로서 어린아이 학살의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이후 장교로서 전쟁은 계속 수행했지만 유대인 구조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퇴각 얼마 전 슈필만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장교가 슈필만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살려줄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었다.

이 상황에서 살아남은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었을까.

아니면 이제와서 거의 다 죽게 된 사람까지 굳이 총으로 쏘지 않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런 배경이 있었다. (출처 http://fun.jjang0u.com/chalkadak/view?db=280&no=4545)

역시 하루 하루가 모여서 어느날 결정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다.

나의 미래는 바로 오늘 삶의 결과라는 것에 동의한다.

 

* 감독은 로만 폴란스키, 폴란드 유대인 가정 출신으로 어머니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잃었다. 독일군의 사격연습 목표가 되는 경험을 하고 8세에 게토를 탈출했다고 한다. 유년기의 이런 경험은 그의 영화세계에의 주제를 짐작하게 한다.  

 

* 슈필만 역의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는 이 영화로 2003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전세계에 존재를 각인시키는 배우가 되었는데 감독은 슈필만 역에 걸맞는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유럽에서부터 미국까지 대규모 오디션을 치르면서 마침내 미국에서 애드리언 브로디를 발견하고는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애드리언 브로디는 미국인임에도 폴란드 예술가 슈필만의 연기를 완벽하게 해냈다. 감독은 주연뿐 아니라 보조 연기자들도 무척 공들여 캐스팅을 했다고 하는데 정말 이 영화를 보면서 폴란드인, 독일인의 분위기를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애드리언 브로디는 내가 아는 어떤 사람과 인상이 너무 비슷한 점도 매력적이었다.

 

* 내가 <아! 팔레스타인 1, 2>를 읽지 않았으면 여기까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렇게 당한 유대인들이 지금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 알고 나니 인간의 잔인성에 대한 끔찍함을 넘어서 인류에 대한 무서움이 느껴진다. 유대인 예술가의 영혼의 위대함은 찬양해 마지 않지만 개인이 모인 집단의 이데올로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독일군은 러시아에 함락당했는데 지금 이스라엘은 너무 잘나가고 있지 않은가, 팔레스타인은 누가 도우러 가야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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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 리스트 :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 할인행사
롭 라이너 감독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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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간 자동차 수리공으로 일한 카터 체임버스(모건 프리먼)와 자수성가한 사업가 에드워드 콜(잭 니컬슨)은 비슷한 시기에 암에 걸려 같은 병실에 묵게 된다. 병과 항암제로 고통의 공감대를 형성한 그들은 우연한 기회로 버킷리스트라는 합의점에 이르게 되고 세계를 돌며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스카이다이빙을 시작으로 머스탱 몰며 레이싱, 아프리카 초원에서의 사파리, 피라미드 등 버킷리스트를 지워가며 여행을 한다. 카터는 콜의 가정사에 대해 알게 되고 콜은 카터의 아내의 전화를 받고 적절한 계기를 만들어 각자 집으로 돌아온다. 병세가 갑작스럽게 악화되어 카터가 먼저 하늘의 부르심을 받고 수개월 뒤 콜도 같은 길을 가게 되는 여정을 보여준다.

 

병원에서 만난 그들이 마음을 통하게 되는 모습을 보며 사회에서 부여받은 각자의 마스크를 쓰고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병마 앞에 나약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사람이라는 게 거기서 거긴데 특별한 기회가 아니면 이렇게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기 어려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집트 쿠프 왕의 피라미드 앞에서 나눈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카터가 콜에게 묻는다. 이집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 문 앞에서 신이 인간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한다고 하는데 무엇인지 아느냐. 콜은 모른다고 한다. 카터가 답했다. 하나는 삶에서 기쁨을 발견했냐는 것, 다른 하나는 남에게도 기쁨을 주었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콜이 자신이 아버지로서 기쁨이 되지 못했다며 딸 에밀리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중엔 결국 카터의 도움으로 에밀리와 재회하게 되는데 자녀에게 부정당하는 부모의 마음을 참 아픈 표정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삶의 기쁨을 찾았느냐,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이 되었느냐, 두고두고 생각해 볼 일이다.

 

‘아픈 몸’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둘은 버킷리스트를 지워가며 의미있게 하루하루를 보냈고 평생을 함께 한 가족의 품에서 일생을 마감한다. 인생을 바라보는 메타인지적 관점을 일깨워주는 영화였다. 하지만 그들이 해나가는 버킷리스트 항목이란 게 세계를 많이 돌아다녀야 하고 그만큼 돈이 많이 드는 일들이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수성가한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아끼지 않고 쓸 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것들이 많아 보였다는 점은 좀 아쉽다. 그리고 또 하나, 가족에 대한 좀 불편한 이해이다.

 

2인 1실의 병실에 누워 있는 그들의 모습은 전형적인 대비를 이루었다. 평생 수리공으로 일한 흑인 카터는 부유하지는 않지만 사랑하고 단정한 아내가 있고, 아버지를 신뢰하고 따르는 아들 둘, 바이올린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막내딸, 할아버지를 존경하는 손자 등 전형적으로 화목한 가정의 그림으로 그려진다. 반면 자수성가하여 막대한 부를 이루었으나 성격이 괴팍한 콜은 네 번이나 결혼했지만 찾아오는 가족이 없고, 인간미 없이 느껴지는 비서가 고급 커피 제조 기구를 들고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기는 하나 누구에게라도 사랑은 받지 못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이런 프레임식 대비는 솔직히 마음에 안 든다. 가난한 사람은 성격도 좋고 가정도 화목하고 아이들도 잘되고, 한 마디로 웃음꽃이 넘치고, 부자는 성격이 나빠서 주변에 가족도 친구도 없고 그저 돈만 밝히는 비서 정도만 남게 된다. 가난한 사람은 가족들이 찾아오는데 부자는 병문안객이 하나도 없다. 가난하고 착한 사람은 병에 걸려도 이렇게 행복한데 부자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다 소용이 없이 저렇게 외롭고 불행하구나.. 뭐 이런 걸 느끼라는 식이다.

 

하지만 병원 이후 장면에서는 카터의 재력 덕분이 둘이 버킷리스트를 이뤄가며 여행을 하는 것을 통해 둘이 서로 적절한 역할을 하며 공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왜 꼭 가족이어야 할까. 열심히 일하는 남자, 가정을 돌보고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는 여자, 그리고 어딘가 좀 기특한 구석이 있는 아이들, 현실은 별로 그렇지도 않으면서 매체에서는 왜 이런 가족들을 보여줄까. 가족이 없으면 엄청난 절망에 빠지는 것처럼,, 실제로는 돈이 없으면 엄청난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말이다. 돈, 물질만능주의가 타파되어야 할 우상인 것처럼 가족이데올로기도 그런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4인 가족이 화목하게 수십 년을 살아갈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치명적인 상처와 억압이 생성되는 곳이 가족이고 남부럽지 않은 가정의 경계에서 소외된 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가정의 순기능이야 두말 할 나위 없이 중요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러니 봐.. 가족이 소중하잖아, 가족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다고, 식의 어투는 왠지 강요로 느껴진다.

 

가족은 생존에 필요한 물, 자연, 공기와 같은 기본적인 존재로 여기고 -기본적이므로 상호 존중이 되어야 함은 물론- 그걸 그렇게 드높이지 않으면 안되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절대적으로 여길수록 다양한 관계로 인한 유익이 줄어드는 게 아닐까. 예수님이 가족을 미워해야 하는 필요에 대해 말씀하시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가족을 해체하여 재구성하신 모습은 이런 불필요한 울타리와 경계를 경계하신 말씀은 아니었을까,,, 아주 아주 조심스럽게 더듬어 본다.

 

그리고 그렇게 드높이고 싶은 가족이 유지되려면 여자의 희생이 절대적이다. 가정은 관계의 요소가 핵심이므로 관계에 대한 감각이 길러지지 않은 남자와 가정을 이루면 여자의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가부장제를 문화적 기반으로 하는 모든 종교에서 여자를 출산과 양육을 담당하는 생물학적 존재로만 머물게 하며 가족이데올로기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신적 권위를 가지고)이것 보라구, 가정이 이렇게 소중하니 여자가 희생하고 좀 참아야지 어쩌겠어. 사실 이건 참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출산과 양육, 인격의 성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무엇보다 숭고한 일이거든, 무엇보다 생명이 가장 귀한 거 아니야, 식의 가족주의 역시 타파되어야 할 우상이 아닌가 말이다.

 

어쩌다 이야기가 옆길로 많이 샜지만 이런 가족주의 프레임 구조만 빼면 자신의 삶에 대해 각성해 보고 마음을 열고 스몰 액션으로 나아가게 하는 아주 따뜻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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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연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윤종찬 감독, 장진영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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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비가 내렸다. 사막에 혼자 있는 꿈을 꾸었다. 세기... 정희... 지혁씨... 모두들 어디로 간 것일까. 결국 이렇게 혼자 떠나야 하나보다. 열 한 살 내가 처음 봤던 그 세상으로...... "

 

너무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아름답고 처연한 음악이 하루종일 귓가를 맴돈다.

저녁 내도록 주제가 '서쪽 하늘'을 틀어 놓아도 그리움와 달래지지 않는다.

 

일제 시대에 비행사를 꿈꾸고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당당한 삶을 개척한 박경원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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