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라틴어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문장들이 과거의 모든 침묵을 자기 안에 품고 있기 때문이었고, 뭔가 대답하라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언어는 온갖 소란스러움에서 떨어져 있었고, 확고부동하며 아름다웠다. - P25

저는 어제, 많은 것을 변하게 한 일을 겪었습니다. 그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데다 너무 복잡해서 글로 표현하기 어렵군요. 그러니 돌발적이고 설명할 수 없는 제 행동을 그냥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 P43

오늘 오전부터 제 인생을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문두스 노릇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새로운 삶이 어떤 모습일지 저도 모릅니다만, 미룰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흘러가 버릴 것이고, 그러면 새로운 삶에서 남는 건 별로 없을 테니까요.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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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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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여행을 가서 가끔 현지인과 짧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말이 통하기는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 와중에 외모, 언어, 문화라는 장벽이 엄청나게 막강하다는 걸 느낀다. 피상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문화적인 차이를 넘어 소통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누군가가 하는 이 말을 내가 과연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비현실감이 드는 어느 여행 중에 문학의 위대함을 느꼈다.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인간으로서 같은 걸 느끼고 공감하게 만드는 게 예술의 힘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장벽을 넘게 해주는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백 년 전 독일에서 태어난 작가가 당시 사회를 그린 이 소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너무 실감나게 와 닿는다. 가정부로 착실하게 살아오던 주인공 카타리나 블룸은 어느 날 우연히 파티에서 한 남자를 만나 하룻밤을 보냈는데 나중에 보니 이 남자가 수배중인 은행 강도였다. 경찰은 수사를 한답시고 카타리나의 주변과 과거 행적을 파고들고 언론은 자극적인 기사로 가세한다. 언론에 의한 폭력으로 개인이 어떻게 희생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우리 사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많다. 그래서 이 책이 두고두고 읽히는 가운데 작년에 한 진보 정치인의 자살과 관련되어 이 책이 다시 호명되어 주목을 받았다. 누군가가 그의 아내의 운전기사를 언급했는데 한 일간지가 사실 확인 없이 아내의 운전기사에 대한 논평을 실어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물론 이 사건과 그의 죽음은 직접 관계가 없지만 언론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아찔한 사건이었다.

 

주인공을 집요하게 취재하여 파멸로 몰고 간 기자도 결국 파국을 맞는다. 이 결말은 소설로서 누릴 수 있는 극적인 장면이 아닐까. 주인공이 치를 대가를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소설에서는 이렇게 안타까우면서도 통쾌하고,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쉽게 잊히지 않는 복잡한 장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 같다.

 

작가 하인리히 뵐은 약 백 년 전에 태어났던 독일의 저명한 소설가로 197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실제 있었던 비슷한 일이 이 작품의 배경이 되었다고 하는데, 아래 기사의 자세한 설명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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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걸작선
오스카 와일드 지음, 심은경 옮김 / 상상과표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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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읽었을 때, 우아한 제목 뒤의 비극적인 이야기였다는 걸로 기억된다. 다시 읽게 된 계기는 나이가 들면서 외모에 대한 나의 관심이 달라지는 걸 느껴서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에게서 그대로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기분이 좋다. 피부가 지성이라 주름이 상대적으로 늦게 생기고, 머리는 염색을 했고, 옷차림과 체형이 예전과 달라진 게 없어서 그대로라고 보이는 것 같다. 한 때 젊었을 때는 나이가 좀 더 들어보이기를 바랬던 적도 있다. 어려서 말이 안 먹힌다 혹은 무시당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헤어스타일에 항상 웨이브를 넣고 성숙해 보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천천히 변화를 겪고 싶다는 바램을 부인할 수 없다. 얼마 전에 병원에 갔다가 정확히 5년 만에 같은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여전히 바쁘고 인기 많은 의사지만 , 이 분에게도 세월이 지나갔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월은 누구에게도 비껴가지 않는다. 이 책이 시간이 흘러도 여전한 젊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데 서론이 길어졌다. 아무튼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도리언 그레이가 떠올랐다.

 

책 속에서 화가 바질이 젊은 청년 도리언 그레이를 모델로 초상화를 그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초상화가 나이를 먹고 도리언 그레이는 젊음을 계속 유지한다. 무려 18년 동안이나. 초상화는 나이가 들 뿐만 아니라 도리언의 타락과 방탕에 빠진 영혼의 추악한 모습까지 담고 있다. 도리언을 향락과 타락의 길로 안내한 것은 바질의 친구 헨리이다. 결국 바질은 도리언의 손에 죽고 도리언도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쾌락과 아름다움의 극한이 도리언에서 만나는 것 같다. 하지만 도를 넘는 극한은 파멸을 맞는다.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유미주의에 속하는 작가라고 하는데 파멸마저 초상화를 찢는 것으로 그려져 극한의 미가 느껴진다. 소설 속의 묘사와 대사도 아름답고 현란하다. 초상화가 늙고 추해가는 과정을 보며 처음에는 사람의 영혼이 남기는 흔적에 대해 음미하게 되었는데 다 읽고 나니 한편의 비극미를 간직한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쾌락과 미의 추구, 예술의 숭고함, 인간의 굴레가 얽혀 있는 한 편의 예술이다.

 

p241

그를 파멸시킨 것은 바로 자신의 아름다움이었다. 자신이 가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아름다움과 젊음이 자신을 파멸시킨 것이었다. 아름다움과 젊음만 없었다면 그는 인생을 오점 없이 살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아름다움은 하나의 가면에 지나지 않았고 젊음은 모조품에 지나지 않았다. 젊음이 기껏해야 무엇이란 말인가? 새파란, 미숙한 시기이고 얄팍한 심사를 가진 때이며 병약한 사고를 지닌 기간일 뿐이었다. 왜 자신은 젊음이란 제복을 입고 있단 말인가? 그 젊음이 자신을 망쳐 놓았다.

 

아름다움과 젊음의 자리에 많은 것을 대신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지식, 재능, 학벌, 권력, 명예, ...... 유미주의에서 얻은 깨달음인가. 유미주의자로서 경계해야 할 것을 알리는 건가. <행복한 왕자>의 저자라는 걸 떠올려 보면 어쨌든 아름답다.

 

도리언 그레이는 내가 되고 싶었던 존재이고,

헨리 워튼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고,

바질 홀워드는 실제 나의 모습이다.’ - 오스카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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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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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왜 페미니즘 소설이어야 하는가?

문학에서조차 페미니즘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이 표지를 보면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처한 불편한 지점이 느껴진다. 사진도 그렇고. 날씬하고 하얀 피부의 젊은 여자라니.

페미니즘을 드러내고자 하는 소설에서조차 페미니즘이 필요한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민주주의 소설, 사회주의 소설이 가능한가?

주제를 드러내서 이렇게 적어 놓으면 주제의식이 읽혀질까?

왠지 문학 전문 출판사라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페미니즘조차 밥그릇의 이슈로 소비되는 걸 보니 이 책은 페미니즘 소설이 아니라 자본주의 소설이다.

‘2018 세종도서 교양부문이라는 타이틀도 이런 면에서 왠지 어울린다.

 

강현남의 애인이었던 주인공의 변화는 너무 극적이다. 마치 종영을 앞둔 드라마에서 악인이 갑자기 뉘우치고 돌아서는 것처럼 극적인 변화는 뭔가 어색하고 소설에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렇게 명백하게 위계적인 관계를 끝내는 걸 굳이 페미니즘이라고 해도 될까.

유진의 엄마 정순은 차라리 심한 갑갑함과 먹먹함을 느끼게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집안은 없을 것 같지만 현실이 워낙 소설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으니 우리 사회 어느 구석에서는 이런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날 법도 하겠다.

 

지난 한 해 미투‘82년생 김지영을 필두로 무수히 논의되던 페미니즘이 어쩌다 길을 잃고 잠시 헤매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반가우나 출판에 대해서는 좀 더 예리함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과 기대감이 동시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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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6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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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 야간 우편비행기 관리 책임자 리비에르가 밤을 맞고 있다. 오늘 밤 안으로 남미의 세 곳, 파타고니아, 칠레, 파라과이에서 우편비행기가 도착하면 유럽행 우편비행기에 우편물을 실어 보내야 한다. 야간 비행은 우편비행기가 열차 등 다른 교통과 비교하여 상대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불가피하다. GPS 시스템이 존재하기 전, 일기예보도 불확실한 시대다. 야간 우편비행은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고 작가 역시 비행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아 요즘 같은 수준의 안전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었던 것 같다. 벌써 백 년 전이니. 

 

주인공 리비에르는 대의를 위해 생겨나는 개인의 희생에 대해 무감각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시스템을 바꾸고 미래를 앞당겨야 하는, 이 책에서는 '의무'라고 표현하는 것을 위해 인간의 나약함이나 실수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앞으로 나아간다. 결국 그날 밤에 도착해야 하는 비행기 한 대가 연락이 끊기고 도착하지 못한다. 결혼한 지 6주 된 아내가 남편을 잃는다. 비행사 가족을 둔 이들의 슬픔도, 인간의 의무 앞에 선 자의 갈등도 헤아릴 수 없다. 인간이 가는 길이, 의무와 대의 그리고 개인의 희생 사이의 어딘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p19

이제 그는 밤의 한복판에서 불침번처럼, 밤이 인간을 보여준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신호, 이런 불빛, 이런 불안을 보여준다는 것을 말이다. 어둠 속의 별 하나는 고립된 집 한 채를 의미한다. 별 하나가 꺼진다. 그것은 사랑에 대해 문을 닫은 집이다. 어쩌면 권태에 대해서도 문을 닫았거나. 그 집은 세상에 신호 보내기를 중단한 집이다. 전등 불빛 아래, 식탁에 팔꿈치를 괴고 앉은 농부들은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모른다. 농부들은 그들을 가둔 거대한 어둠을 뚫고 자신들의 욕망을 아주 멀리까지 보내고 있음을 모른다. 그러나 파비앵은 이제 막 천 킬로미터를 날아와서, 높은 파고가 살아 숨 쉬는 비행기를 들어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을 느낄 때마다 전쟁터 같은 뇌우를 열 개쯤 통과하고 그 사이사이 달빛 받은 공터를 지날 때마다 그리고 이 빛들을 하나하나 정복하는 기분으로 지나갈 때마다 그들의 욕망을 알아본다. 농부들은 자신들의 불빛이 소박한 식탁을 밝히기 위해 빛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로부터 팔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은 그 불빛 신호에 감동을 느낀다. 마치 그들이 바다 한가운데 무인도에서 절망에 빠져 구조의 불빛을 흔들기라도 하는 양 말이다.

 

숭고하고 무거운 주제이지만 야간비행을 소재로 하고 있어 소설 전체가 무척 서정적이다. 목숨을 거는 일인데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도 될까. 작가마저도 비행사로서 행방불명되어 소설 속으로 떠나버렸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비행사 파비앵이 폭풍우 속에서 한줄기 빛에 취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묘사는 너무 아찔하다. 위험인 줄 알면서도 가까이 가서 데어버리는 인간의 욕망하고도 비슷하다. 갈등과 모순, 욕망이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캄캄한 곳에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다.

 

문명의 대의와 개인의 희생 사이를 생각하다보니 요즘의 택배기사들이 떠올랐다. 혹서기에 그들의 노동은 종종 언론에도 오르내리지만 피할 방법이 있을까. 이 시대에 택배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돌아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하루 이틀 늦을 수는 있지만 어떻게 해야 사회를 멈추지 않고 그들도 살아갈 수 있을까. 시간에 쫓겨 물류를 상하차하고 배달하는 위험스런 일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깃들 수 있을까. 말이 되지 않는다. 무수한 황토색 직육면체들 사이로 흐르는 땀방울 사이에는 인간의 숭고함 자체가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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