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사람들 - 인간 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 보고서, 개정판
M. 스콧 펙 지음, 윤종석 옮김 / 비전과리더십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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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18

거짓은 동시에 악의 증상이기도 하고 악의 원인이기도 하다. 꽃이기도 하면서 뿌리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을 <거짓의 사람들>로 붙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인간의 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상식적인 악함 정도가 아니라 악에 사로잡혔다고 할 수 있는 극단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나는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살면서 한 번도 귀신을 보거나 가위에 눌리거나 그 외 영적인 경험을 한 적이 없어서 이런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소장하던 책을 처분하면서 나한테 읽고 싶은 책을 골라 보라 길래 몇 권 골랐는데, 나중에 나한테 남긴 책을 보니 내가 고른 책 말고도 이 책이 들어 있었다. 처분하기가 어려워 다른 책들과 함께 나한테 보낸 것 같다. 어쨌든 본의 아니게 손에 들어와 읽게 되었는데, 악의 문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이 많아 유익했다. 살면서 이런 문제로 고민하게 될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자신이나 주변에 이렇게 악에 사로잡힌 경우로 고통을 겪는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삶에 이런 문제가 찾아오지 않는 게 훨씬 다행스런 일이다.

 

저자는 1900년대 중반에 활동했던 미국인 정신과 의사로 저명한 기독교 저술가이기도 하다. <아직도 가야할 길>을 비롯하여 기독교에 영향력 있는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책들을 집필했다. 나도 오래 전에 <아직도 가야할 길>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내용은 거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이 책을 둘러싼 호평만큼은 기억이 나니 믿고 보는 저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책도 악의 문제를 탐구한 책의 고전으로 꼽힐 만 하다.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관계있는 주제를 다룬 책으로 안점심의 <세계관과 영적 전쟁>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영적인 세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던 경험이 떠오른다.

 

처음은 저자가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겪었던 사례를 중심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 사례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접하는 사회면 기사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고 이해 불가능 한 것들이다. 예를 들면 형이 자살할 때 사용했던 권총을 동생에게 선물한 부모가 있다. 동생은 심각한 우울증 같은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 알고 보니 원인은 이 선물이었던 것이다. 이런 부모가 있을까. 믿기 어렵지만 이와 같은 사례를 포함하여 심한 강박증이나 공포증의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저자가 4년 동안 400회 넘도록 면담을 하면서도 답을 찾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이 환자를 만나기 시작할 때만 해도 저자는 인간의 본질적인 악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고 악마의 존재도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환자를 만난다면 구마와 축사 –귀신들림을 치료하는 것-를 권할 것이라고 한다.

 

이어서 구마와 축사를 목격한 내용까지 다루고 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귀신을 쫓던 그것 말이다. 예수님처럼 한 마디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 여러 사람들이 하나의 뜻으로 엄청나게 노력해야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데 무섭기도 하고 놀랍다. 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사례와 저자의 신뢰에 대한 바탕이 없으면 믿기 힘들 SF소설 같기도 하다. 사건의 기록이 자세하고 쉽게 쓰여 있어 잘 읽어지고 재미-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있기도 하다. 나처럼 이 주제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도 읽다보면 점점 호기심이 생겨 끝까지 어렵지 않게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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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번영 - 지구화 시대, 진정한 번영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묻다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양혜원 옮김 / IVP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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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중

...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 세상을 더 풍성하고 깊이 있게 즐기도록 해 준다.

 

... 단순한 펜 하나로도 우리가 대면하는 많은 것이 단지 사물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이기도 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물이 사회적 관계라면 우리는 또한 사회적 관계로서 그것을 즐거워한다.

 ... 쾌락의 또 다른 부분, 더 크고 중요한 부분은 사물에 내재하는 사회적 관계와 관련이 있다.

 ... 쾌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감각에 나타나는 대로의' 사물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도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물로서 그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신학적 언어로 말하자면, 다른 존재의 현존을 전해 주는 성례로 사물을 경험할 때 우리는 그것을 가장 많이 즐길 수 있다. 이제 이 세상 전체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선물이라고 생각해 보자.

... 그리고 그것의 수혜자인 당신이 있다.

... 선물은 그냥 주어지는 산물이 아니다. 선물 가게 선반에 놓인 작은 장신구들은 선물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선물은 관계다. 따라서 이 세상이 선물이라면 당신이 관계를 맺는 모든 것은 하나님과 당신의 관계이기도 하다.

... 당신이 좋은 그리스도인이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한다고 하자. 또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반응으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한다고 하자. 상상력의 날개를 담대하게 활짝 펴서 모든 이웃이 당신에게도 그렇게 한다고 하자.

... 그러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사랑의 관계가 된다. 별 하나,

... 모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생생하게 살아 있으면서도 우리의 오감으로는 감지되지 않는 분위기로 반짝거린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것 자체 이상이며 여러 겹의 즐거움의 근원이다.

...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지구화는 세계종교가 줄 수 있는 번영의 비전을 필요로 하고, 지구화와 종교, 그리고 종교들끼리도 격렬하게 충돌할 필요가 없으면 건설적으로 교류할 수 있고 서로의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내적 자원을 지니고 있다.

나가는 글에서는 의미와 쾌락의 연합을 번영의 핵심적 근원으로, 개인의 만족과 지구적 연대와 지구에 대한 공동 돌봄의 근원으로 규명하려 했다. 앞에서 내가 주장한 대로 지구화된 세계는 이것을 필요로 하고 종교는 이것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을 간략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바른 하나님에 대한 바른 사랑은 우리의 세상을 초월적 영광의 빛에 목욕시키고 기쁨의 무대로 바꾼다. 이 주장과 이 주장이 지지하는 좋은 인생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내 미래 작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이 중요한 탐구에 다흔 사람들도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개요를 담은 이 책을 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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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분들의 추천사가 많이 달려있고, 표지 디자인이 인상적인 책으로 기억에 남는다.

내용은 약간 어려운 편이었다. 지구화 시대에 종교가 어떻게 유익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인 것 같다.

'바른 하나님에 대한 바른 사랑은..'이라 표현한 것을 보면 저자도 기독교 신앙이 왜곡된 부분을 안타까워 한다.

종교의 왜곡은 세계적인 심각한 문제인가보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뒤집어 엎으실 정도로. 

지구화 시대와 종교의 역할 가운데 인간의 번영의 길을 찾고자 모색하는 글인 것 같은데

어려워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언젠가 다시 읽어볼, 다시 만날 기회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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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희망
김기석 지음 / 꽃자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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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희망이라... 희망을 꿈꿀만하지 않는 상황에서 위태롭지만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 아닐까. 환경이 이토록 오염되었으니 저 힘없는 들꽃 정도는 금방 죽어버릴 것 같은데도 정직하게 원리에 따라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서 발견하는 들꽃의 이야기같다. 희망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보이고 다른 각도에서 보면 보이지 않는다. 아슬아슬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하는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를 듣고 기록한 묵상들이 바닥을 기는 내 마음을 울린다.

 

오랜만에 카페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필 바로 옆에 앉은 두 여인들은 초등 고학년인듯한 자녀들의 교육과 친구 관계 문제로 열을 올리고 있었다. 사립 초등학교에 보내는 것 같고, 아이가 둘 씩이고, 그중 한 사람의 아이는 얼마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유학, 이사, 전학 그리고 그들의 적절한 시기, 그리고 친구 관계에 상처를 받은 듯한 다른 한 사람의 자녀 이야기가 끝도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희망을 읽는 내내 이건 무슨 책 속의 세계가 실제로 구현된 듯이 사립초 주변의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고 나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며 아슬아슬한 집중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를 읽으려고 오늘 또 다른 카페에 자리를 잡았는데,, 오늘 바로 옆에 앉은 남녀의 이야기 주제는 아파트, 상가 등 부동산이었다. 제법 넓은 이 카페에 왜 하필 난 이들 옆에 자리를 잡았을까, 운운하는 금액의 크기답게 목소리에도 박력이 넘친다며 후회하고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아슬아슬하게 집중하려고 했다.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보이지 않는 그림을 보고, 귀기울여야 들을 수 있는 목소리에 집중하며 다른 결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이다. 무척 치열한 것도 같으면서 인간의 유한함을 생각하여 자신하지는 말고 치우치지 말라는 소리가 들린다. 이 목사님도 이렇게 바닥을 기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 영성이 뛰어나면 이처럼 바닥을 기는 사람들을 잘 이해할 수 있는걸까?

 

결혼한지 30년 만에 아내의 병환으로 살림을 하게 되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30년쯤 지나면 삶이 이렇게 여유로울 수도 있을까? 일상, 권태라는 단어가 자주는 나오지는 않지만 난 아직도 그런 단어에 시선이 꽂힌다. ‘권태와 어울릴 수 있는 일상’, 이런 단어는 언제쯤 내 삶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p.29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모두가 발을 맞추어 행진하는 대열에서 벗어나 딴 길로 가는 이가 있다면 그는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대는 세상의 북소리가 아닌 하늘의 북소리를 듣는 이들을 부르고 있다. 굳게 붙잡고 있던 욕망의 바위를 놓고 흐름을 타고 살아가는 순천順天의 사람들이야말로 새 시대의 주역이다.

 

p.67 희망은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완제품이 아니라 삶으로 구현해야 할 과제이다.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깨어나 안녕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아슬아슬한 희망을 붙잡고 보이지 않는 보폭으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이 보인다. 그들은 저항과 연대와 연민을 통해 역사의 봄을 선구한다.

 

p.100 에드먼드 버크는 악이 승리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 일도 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설익은 것들을 감추기 위해 잘 익은 견본이 사용될 때 언제라도 바구니를 둘러 엎는 사람이 있다는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은 더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p.101 먹고 사는 문제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인식될 때 인간의 존엄은 스러지고 만다. 돈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삶을 상상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사람들이 하나 둘 돈의 전능함이라는 허구의 신화에서 벗어나는 순간, 행복을 구성하는 다른 방법을 알아차리는 순간, 자유와 진리에의 열정이 회복되는 순간, 우리를 휘몰아가던 그 돈에 대한 맹목적인 열정은 잦아들게 된다. 그때 비로소 이웃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몸을 맞춘다. 바로 그때 참 사람의 길이 열린다.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를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생각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돈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고 믿으면서 그 믿음에 걸맞는 행동은 무엇인지 모르고, 돈을 신봉하지 않는 다른 삶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돈에 대해서 맹목적인 열정을 보이지도 않으면서 적극적으로 이웃의 얼굴을 알아보지는 못하는 삶이다. 삶이 그렇게 쉽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나를 자른 사람들도 매주 예배당을 찾아 두손을 모으고 기도를 한다.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기도하고 자신과 자녀들을 앞날을 위해서 기도한다. 믿음을 나누는 지체들과 삶을 나눈다. 고달픈 직장생활,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격려와 위로를 받는다, 유난히 힘든 일이 있어, 하루하루 힘든 날들을 버티어 살았음을 나눈다, 이런 믿음과 고백, 위로의 과정의 본질은 무엇인가. 먹고 사는 문제를 최우선에 두지 않고, 돈의 전능함이란 허구에서 벗어나는 것을 바라는가, 자유와 진리에의 열정이 회복되어 이웃의 얼굴을 보고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애쓰는 참 사랑의 길을 가기 위함인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진리의 길을 갈 수 있는가. 이렇게 살다가 천국을 만날 수 있는 건가. 의문이다. 진실로 의문이다. 이렇게 본질을 잃고 살도록 방치해도 되는가.

 

p.115-116 유대인 철학자 아브라함 조수아 헤셀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그리스인들은 앎 그 자체를 위해 배웠고, 히브리인들은 경외하기 위해 배웠지만 현대인들은 써먹기 위해 배운다고 말했다. ... 적들을 향해 불이라도 쏟아낼 것 같았던 눈마저 뽑힌 그(삼손), 조롱하는 적들 앞에서 맷돌을 돌려야 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망각한 자의 비극이다. 들릴라는 오늘도 성공 혹은 행복이라는 환상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자기 무릎 위에 눕히려 한다. 저항하지 힘든 유혹이다. 들릴라의 손짓을 오연하게 뿌리칠 수는 없을까? 자기 삶의 주체로 바로 설 때 가능하다.

 

p.149 삶을 순례로 이해하는 이들의 행장은 단출해야 한다. 어쩌면 순례란 잃어버린 단순함을 찾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일상 속에서 누리며 살던 모든 것을 가지고서는 순례를 떠날 수 없다. 그렇기에 순례는 불편함과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90세의 철학자 버틀란드 러셀이 반핵시위 도중 경찰에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티쉬 쿠마르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흔 살 노인도 인류를 위해 감옥에 가는데, 젊은 우리는 지금 무얼 하는건가?”

 

p.172 전도서 기자는 너무 의롭게도 살지 말고, 너무 슬기롭게 살지도 말며, 너무 악하게 살지도 말고 너무 어리석게 살지도 말라고 충고했다. 또 하나를 붙잡되 다른 것도 놓치지 않는 것이 좋다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극단을 피한다고 말했다.(전도서 7:16-18 원문: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느냐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높지 마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어중간한 위치에 선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이 불완전함을 받아들인다는 말일 것이다.

 

p.188 신은 무고하게 죽임당한 아벨의 피가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고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잊어도 신은 잊지 않는다. 신은 우리가 동료 인간에게 지은 죄를 당신이 받는 모욕으로 간주하신다.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p.204-205 친절한 자본주의는 당장 돈이 없더라도 소비할 수 있는 멋진 방법을 고안해냈다. 신용카드가 그것이다. 없는 것을 담보로 하여 돈을 만들어냈던 메피스토텔레스의 마법처럼 신용카드는 욕망을 굳이 유보시키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소비사회의 신민이 된 사람들에게 신용카드는 이미 새로운 결제수단이 아니라 행복의 문을 여는 티켓이다. ...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의 국정 과제로 삼은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는 애드벌룬을 띄웠다. 아무리 사세가 급하게 돌아간다고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경제적 이득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단 말인가. 설사 그런 것을 정밀하게 계산해 보는 것이 정치인들의 과제라 해도 차마 들어내지 않아야 할 것도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을 경제문제로 환원하는 순간, 수단이 목적으로 변하는 순간 세상은 천박해진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먹어야 사는 존재이다.

예수는 돌을 떡으로 만들어보라는 사탄의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쳤다. 생의 문제를 경제 문제로 환원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p.225 ‘지당한 말씀은 사람들에게 경청되지 않는다. ‘여백이 없는 삶은 사람들을 변화로 이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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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기독교 - 환상의 미래와 예수의 희망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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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독교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 같다.

영화 <밀양>만큼 날카롭고 비유적인 시각을 가진 책이 바로 이 책이지 않을까 싶다.

 

교회 안에서 독실해 보이는 몇몇 대표적인 인물들을 차례로 등장시켜 본질로부터 그들이 어떻게 얼마나 떠내려왔는지,

예수와 얼마나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읽으면서 뜨끔한 대목이 많다. 불과 얼마전까지도 나를 지배하던 세속적인 가치관이 얼마나 뿌리깊은지 알지도 못한 채 교회와 공동체에서 떠들고 다닌 모습이 무척 부끄럽다. 내가 깨달았던 것, 나에게 계시된 것이 과연 맞는가.

성경 이외에는 어느 것도 확신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한다.

 

탁월한 통찰과 분석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주 많은 단어가 어려운 단어이고 많이 쓰이지 않는 말이란 점이 좀 마음에 걸린다. 아무리 철학자라지만 이 책이 무슨 학술지도 아니고,,, 문체와 어휘 선정의 문제로 별 하나는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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