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 스스로 ‘정상, 평균, 보통’이라 여기는 대한민국 부모에게 던지는 불편한 메시지
오찬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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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는 이유 중의 하나는 세상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나 나와 영혼이 통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어딘가에 있을 그런 사람을 찾아 헤매는 것이 책에서 책을 소개 받는 여행이 계속되는 이유 중 하나다. '나와 비슷한 생각'의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젠더감수성이다. 여자들 중에는 있겠지만 남자 중에서도 정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일 것 같았다. 예전에는 한국 남자 중에서는 이런 젠더감수성을 발견하는 게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여성 이슈가 주목받으면서 등장하는 의견을 보다보니 간혹 한국 남자 중에도 있긴 있겠구나 싶었다.

읽는 내내 대한민국의 대구 출신 78년생 남자에게 어떻게 이런 생각이 깃들일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아무리 학문을 갈고 닦았다고 해도 보통 여자의 젠더감수성을 뛰어넘는 탁월한 시선이 놀라웠다. 자연스레 의심이 들었다. 그의 아내가 대부분의 내용을 쓰거나 구술하고 오찬호가 정리했다, 아니면 여성학 연구자급의 여성 작가가 공동으로 구성하고 오찬호가 정리하거나 대표한다, 그것도 아니면 뭘까. 한 많은 한국의 여성 한 명이 오찬호에 빙의하지 않고서 이런 개념이 어떻게 탑재될까.

이 책은 육아를 중심으로 결혼 전후, 육아, 학교 생활, 사교육을 관통하는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이야기다. 결혼도 만만치 않지만 아이가 없다면 삶의 복잡성의 차원은 달라진다. 육아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문제들을 겪다보면 한국 사회의 핵심적인 이슈들을 관통하게 된다. 보육시설, 경력단절, 공교육, 사교육, 부동산, 대학입시 등 아이가 없으면 이토록 심각하고 무시무시한 문제들은 그냥 옆동네로 날아가는 폭탄일 뿐이다. 본능에 따라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어쩌다가 이런 엄청나게 힘겨운 프로젝트가 되었는지 안타깝다. 나도 어느새 이 터널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간절하다. 깊이 생각하다보면 정말 극적인 대안을 내놓을 것 같은데, 실현할 용기가 있을지, 아니면 고민 끝에 알게 될 현실이 더 두려울테니 그냥 적당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다. 아뭏튼 답답하다.

우리 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진단이 있었지만 이 책은 저자가 이 대열에 있는 동료 부모로서 느껴져서 위로가 된다. 물론 이 책에선 위로보다 사회학적인 분석이 더 중요하다. 문제를 사적인 차원으로 다루는 것과 사회적인 맥락으로 분석하는 것은 다르다. 대안이 마땅치 않더라도 문제를 구조적으로 제대로 보아야 힘이 난다.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지만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으로 해석하여 내놓은 해결책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덕분에 나도 미처 느끼지 못하던 나의 한계와 문제도 몇 가지 느끼게 되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문제의식이 많고 저자랑 비슷한 가치관을 갖고 있어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이렇게 책이라도 읽어야 그나마 삶을 지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그래’, ‘맞아 맞아공감만하고 덮을 수도 있었지만 이번 경우에는 마음속에 좀 더 걸리는 데가 있었다. 나도 모르는 몸 속의 어떤 질병을 짚어낸 느낌이라고나 할까.

능력주의, 서열주의가 내 안에도 생각보다 깊이 내재되어 있었다. 오래 신앙했던 종교의 영향으로 세속적인 가치관을 지양해야 할 것으로 배우긴 했으나 막상 나의 자녀도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떤 가치로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가 하는 지점에서 이런 분열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내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와 별개로 능력주의와 서열주의는 우리 사회의 기본 배경과 같은 것이라서 나 혼자 자유롭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학교 졸업장은 사회활동을 얼마나 하느냐에 관계없이 여러 가지로 보증이 되고 있다. 대학에서 나는 사실 배운 게 별로 없고 졸업을 했다고 해서 전공에 대해서 별로 관심과 지식도 없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일단 들어간 것 자체만으로 많은 것이 설명되었다.

또 이 책에서 지적한 문제적 사례가 나와 비슷하다. 한때 생태적인 문제에 관심이 생겨 귀농, 자연주의를 꿈꾸며 대안을 찾아다녔던 적이 있었다. 실제로 서울을 떠나 이사를 하려는 단계에서 다른 문제가 생겨 포기한 적이 있지만 그 후로도 대안학교를 고민하고 지금도 이런 책을 찾아 들만큼 고민이 계속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경쟁 대오에서 나와서 그들과 거리를 두는 것 또는 또다른 프리미엄이 될만한 남다른 대안을 모색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안이라는게 또다른 프리미엄이 아닌 다같이 사는 사회를 위한 제대로 된 고민이었나 싶다. 나 혼자 흐름을 바꿀 수 없으니 많은 걸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다른 길을 찾아보는 마음도 있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걸 보면, 주변에 휩쓸리지는 않으면서 어떻게는 나의 독특한 방법으로 아이를 뛰어나게 만들어봐야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워킹맘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에 대한 분석도 빼놓지 않았다. 워킹맘 –이 단어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란 단어만 들으면 숨이 막힌다. 구구절절 다시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던 기억이 다시 생각나고 여전히 똑같은 현실에 너무 답답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은 많았지만 생각할수록 숨이 막히니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했었던 시간이었다. 간혹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관련 문제가 뉴스가 되면 우리 아이는 이제 그 시기를 지났다는 사실이, 마땅한 어린이집을 찾아 심하게 마음 졸였던 기억과 함께 이제 더 이상 그 문제를 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 지금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는 한 가운데에 있었던 시간, 아이에게는 어린 시절이라는 그 빛나는 시간이 이 사회에서 워킹맘으로 살면서 어려움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 억울하다. 물론 힘든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의 삼십대, 아이의 유년기 그 소중한 시간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사랑하지만 불평등한 가족' 그래 이거다. 좋은 사람들이지만 왠지 불편한, 그래서 불만이 느껴져도 그러면 안된다고 나를 자책하게 되는 복잡한 감정의 원인이었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인데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지, 했었던 장면이 있다. 어떤 이야기들은 이렇게 선명한 워딩으로만도 많은 것을 설명한다. 해결은 되지 않더라도 답답함이 해소된다. 정확한 사실 규명은 이렇게 중요하다. 공들여 뽑았을 소제목 몇 개를 더 나열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1장 결혼

결혼은 탈각의 대상이 되었다 / 남편은 놀라운 말을 했다 / 남자는 권위를 권리라 했다

2장 임신과 출산

가장 악질적으로 남용되는 말 '모성' / 산후조리원은 좋고도 나쁘다

3장 육아서

모든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는 육아서 / 육아서에 사회 구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생물학적 남녀 차이를 강조할수록 사회적 남녀차별은 정당화된다 / 서로를 존중하면 평등한 것일까? / 사랑이 넘치는 불평등한 우리집

아빠효과는 아빠때문이 아니다 / 엄마는 아빠처럼 육아를 못하는 것일까 / 남자는 태초에 그렇게 설계되었을까? / 떡잎부터 남녀를 가르는 육아서는 백해무익하다

4장 육아

자연과 함께했으니 우리 아이는 특별할 것이라는 착각 / 보통 사람을 죄인 만들지 마라 / 거대 자본에 길들여진 부모들, 길들여질 자녀들 / 스팩터클의 사회는 진화한다 / 일하면서 아이 잘 기를 수 없는 이상한 사회

5장 사교육

사교육 무용론은 옳지만 정당하지는 않다 / 왕따를 참고 버티도록 해주는 놀라운 마약 / 피해자가 사라진다

6장 사랑?

공부 못 한 사람들의 실체를 알려주겠다는 사람들 / 타자의 욕망에 길들여지는 자녀들 / 고정관념을 가르치는 화기애애한 아빠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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