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좀 도와줘 - 노무현 고백 에세이
노무현 지음 / 새터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핸가 ‘모건 프리먼’ 주연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만델라 전 대통령의 전기 영화가 만들어 진다는 뉴스를 보고, 기시감을 느꼈다. 믿거나 말거나 좌우지간 나는 상상했었다. 몇 년 전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자서전(두레출판사간행)을 읽으며 이 보다 더한 시나리오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내 마음대로 만델라 대통령 역엔 망설임 없이 모건 프리먼을 찍었었다. 두고 보자 하면서...ㅎㅎ.


그의 어린 시절에서 보여 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부족 전통, 흑백 분리정책에 저항하다 감옥에 잡혀간 그와 수많은 아프리카민족회의 사람들, 그곳에서 고문과 강제 노역을 당하며 27년 6개월의 감옥살이, 그 후 극적으로 대통령이 되고 세계의 지도자 반열에 오르는 것 등에서 보자면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는 없을 것이다. 
 

뿐인가, 사소하게는 남의 입질에 오르내리기 좋으나 영화소재로서는 부족함이 없는, 어려울 때 감옥 밖에서 함께 투쟁해준 재혼한 아내와 헤어지고 또다시 역시 어려울 때 도와준 이웃나라 여자 대통령과 ‘삼혼’ 하는 등 노익장도 그런 노익장이 없으렸다. 현재 93세. 그가 돌아가고 난 다음 영화를 만들어도 좋겠지만 그의 살아생전 영화를 만들어 그에게 느낌을 물어봐도 나쁘지 않을 터, 암만.

아무튼, 나는 지금 이제나 저제나 만델라 전 대통령의 전기 영화 개봉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내년 여름쯤? 아니면 가을? 생각만 해도 설레어 진다.

이희호, 김대중의 삶도 만델라 못잖아

7월 2일자 (한겨레)신문 ‘왜냐면’에서 박영환 민족문제 연구소 고문은 <백범일지>를 읽고 나서 김구 선생께 매료되어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는 ‘졸도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 대목에 손뼉을 치며 공감한 것은 나또한 <백범일지>를 읽고 선생에게 반했기 때문이었다.

‘훌륭한 사람은 단 한권의 진솔한 기록만으로도 읽는 이의 마음을 통째로 빼앗는구나.’

잠시 옆길로 새는 감이 있으나, 단 한권의 책으로 타자를 사로잡는 사람을 한사람 더 소개하자면 그는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시절일 때 나는 <여보 나좀 도와줘>(도서출판 새터)를 읽고 이 사람은 진짜 믿어도 되겠구나 생각했었다.

내가 쉽게 경도 되는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 않음을 증명할 말을 며칠 전에 들었다. 임 떠나고 뒤늦게 부랴부랴 <여보, 나 좀 도와줘>의 책장을 넘긴 이웃 지인이 독서 소감을 말하였던바.

‘이분은 너무 진실해서 나도 예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때부터 그를 좋아했을 거야. 나만이 아니라 누구든 이 책을 읽으면 이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 좀 더 일찍부터 좋아하지 못한 게 한이야. 이분 친구도 너무 멋있고...’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희호 김대중. 솔직히 이 두 분. 별 ‘찌릿한’ 감정은 없이 그저 ‘현대사의 파고와 더불어 역사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하나, 6.15 선언이 채택 되던 해의 그 순안공항에서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말 믿음직스럽고, 눈부시고, 존경스러웠다. 나는 그가 너무도 큰일을 해내었기에 TV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었다.

그러나, 그 후론 다시 역사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 생각했을 뿐 김구선생에게서 느낀 노무현에게서 느낀 생각만 해도 심장이 ‘짠’해지는 그런 감정(?)은 없었다. 광주의 원흉을 풀어주고, 박정희 기념관을 세우자는 유화적인 자세는 못 마땅하다 못해 속에서 천불이 났다.(그러나,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그런 제의를 하셨을까. 그가 ‘전’을 풀어주고 ‘박’을 기념하자 말하도록 무식 충만했던 우리의 죄가 더 컸다, 알고 보니.)

그랬는데.... 뒤늦게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 <동행>(웅진지식하우스)을 읽고 나는, 이 부부에게 완전 홀딱 반하였다. 이희호 여사는 좋은 가문, 좋은 학벌에다 영부인 까지 하였으니 그 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 있으랴 싶었는데 세상에나 영광은 잠깐이요 고난은 백조다리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일본의 한 언론인이 김대중은 이희호가 있었기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하였다는데 정말이었다.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대통령을 위하여 그토록 헌신한줄 나는 몰랐다.

희호여사의 표정이 무덤덤하잖은가. 그리고 강인해 보이기도 하고. 때문에 고통이 크다 해도 그리 큰 줄 몰랐다. 그 많은 옥바라지와 연금생활, 망명생활 그리고 한 발만 늦었어도 바다에 수장될 뻔 했던 중앙정보부에 의한 납치사건 등 두 분은 그 험난한 길을 어찌 다 겪고 이겨냈는지....

김대중 대통령이 동물과 식물을 무척 아끼고 잘 돌봤다는 얘기와 정치인이기에 앞서 항상 책을 가까이 하며 사색하고 토론하는 ‘학자적 품성’이 몸에 밴 남자였음을 알게 된 것은 과외의 소득이었다.(나는 그냥 닥치는 대로 책을 많이 읽는 남자로만...) 
 

결론은,

이들의 얘기는 영화 한편으로는 부족하고 해마다 한편씩 찍어내도 소재는 무궁무진 할 것이다. 나찌 영화만 해마다 우려먹으란 법이 있나. 만델라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얘기도 우리현대사와 김대중의 얘기도 몇 번을 우려먹어도 국물은 여전히 진할 것이다.

나는 벌써 김대중 대통령 부부 역으로 누가 어울릴까 배우를 고르고 있다. 내 꿈이 언제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미래의 언젠가는 이뤄지리라 믿는다. 기왕 이뤄 질 거면 만델라 대통령의 경우처럼 김대중 대통령 살아생전에 만들어져서 당사자에게 소감을 물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텐데...

‘우생순’의 신화를 만들었던 핸드볼 임 감독도 영화 끝나고 자막 올라갈 때 한 말씀 하던데, 이희호 김대중도 그들의 영화 끝 그 장면에서 한 말씀 덧붙인다면 얼마나 근사할 것인가. 아마, 세계인들이 더 환영하지 않을까. 우린 만델라에게는 사심 없는 박수를 보내면서 우리안의 보석엔 너무 무심한 것 같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 시절 두 번이나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다고 한다. 아마 두 분은 만나서 ‘당신 팔자나 내 팔자나, 우린 어찌 그리 징한 팔자를 타고 났을까. 그러나 후회는 없어.’ 하며 서로 농담을 주고받지는 않았는지.

마무리...

언젠가 들으니 일주일에 한 번씩인가 4시간씩 신장 투석을 받으신다고 하였는데..... 요즘처럼 사회적 문제 들이 연일 터질 때면 김 전 대통령의 안부가 먼저 걱정되곤 한다. 세상이 거꾸로 굴러가도 당신 몸만 챙기시고 그저 오래사시기를 빌어보는데, 워매, 낼 모래 아흔을 목전에 둔 이 늙은 오빠는 나라의 나아갈 방향을 그 누구보다 선명한 혜안으로 조언해 주시는데 그 형형한 청년 정신이라니,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해. 
 

그의 조언들이 현실정치에 부디 반영되어 헝클어진 남북관계가 복원되고 나라 살림살이 또한 제 궤도에 오르길 빌어 본다.

그러니, 결론이 뭐냐고요? 결론은 두 가지. 하나. 헐리웃이 만델라 전기 영화 찍고 있으면 우리나라 감독들은 최소한 김대중 전기 영화 시나리오만이라도 쓰고 있으라. 둘. 역사에 길이 남을 멋있는 사람들은 단 한권의 책으로도 읽는 이를 ‘확’ 잡아끈다, 머 이런.(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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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자서전 동행 -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이희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지난핸가 ‘모건 프리먼’ 주연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만델라 전 대통령의 전기 영화가 만들어 진다는 뉴스를 보고, 기시감을 느꼈다. 믿거나 말거나 좌우지간 나는 상상했었다. 몇 년 전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자서전(두레출판사간행)을 읽으며 이 보다 더한 시나리오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내 마음대로 만델라 대통령 역엔 망설임 없이 모건 프리먼을 찍었었다. 두고 보자 하면서...ㅎㅎ.


그의 어린 시절에서 보여 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부족 전통, 흑백 분리정책에 저항하다 감옥에 잡혀간 그와 수많은 아프리카민족회의 사람들, 그곳에서 고문과 강제 노역을 당하며 27년 6개월의 감옥살이, 그 후 극적으로 대통령이 되고 세계의 지도자 반열에 오르는 것 등에서 보자면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는 없을 것이다. 
 

뿐인가, 사소하게는 남의 입질에 오르내리기 좋으나 영화소재로서는 부족함이 없는, 어려울 때 감옥 밖에서 함께 투쟁해준 재혼한 아내와 헤어지고 또다시 역시 어려울 때 도와준 이웃나라 여자 대통령과 ‘삼혼’ 하는 등 노익장도 그런 노익장이 없으렸다. 현재 93세. 그가 돌아가고 난 다음 영화를 만들어도 좋겠지만 그의 살아생전 영화를 만들어 그에게 느낌을 물어봐도 나쁘지 않을 터, 암만.

아무튼, 나는 지금 이제나 저제나 만델라 전 대통령의 전기 영화 개봉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내년 여름쯤? 아니면 가을? 생각만 해도 설레어 진다.

이희호, 김대중의 삶도 만델라 못잖아

7월 2일자 (한겨레)신문 ‘왜냐면’에서 박영환 민족문제 연구소 고문은 <백범일지>를 읽고 나서 김구 선생께 매료되어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는 ‘졸도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 대목에 손뼉을 치며 공감한 것은 나또한 <백범일지>를 읽고 선생에게 반했기 때문이었다.

‘훌륭한 사람은 단 한권의 진솔한 기록만으로도 읽는 이의 마음을 통째로 빼앗는구나.’

잠시 옆길로 새는 감이 있으나, 단 한권의 책으로 타자를 사로잡는 사람을 한사람 더 소개하자면 그는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시절일 때 나는 <여보 나좀 도와줘>(도서출판 새터)를 읽고 이 사람은 진짜 믿어도 되겠구나 생각했었다.

내가 쉽게 경도 되는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 않음을 증명할 말을 며칠 전에 들었다. 임 떠나고 뒤늦게 부랴부랴 <여보, 나 좀 도와줘>의 책장을 넘긴 이웃 지인이 독서 소감을 말하였던바.

‘이분은 너무 진실해서 나도 예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때부터 그를 좋아했을 거야. 나만이 아니라 누구든 이 책을 읽으면 이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 좀 더 일찍부터 좋아하지 못한 게 한이야. 이분 친구도 너무 멋있고...’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희호 김대중. 솔직히 이 두 분. 별 ‘찌릿한’ 감정은 없이 그저 ‘현대사의 파고와 더불어 역사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하나, 6.15 선언이 채택 되던 해의 그 순안공항에서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말 믿음직스럽고, 눈부시고, 존경스러웠다. 나는 그가 너무도 큰일을 해내었기에 TV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었다.

그러나, 그 후론 다시 역사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 생각했을 뿐 김구선생에게서 느낀 노무현에게서 느낀 생각만 해도 심장이 ‘짠’해지는 그런 감정(?)은 없었다. 광주의 원흉을 풀어주고, 박정희 기념관을 세우자는 유화적인 자세는 못 마땅하다 못해 속에서 천불이 났다.(그러나,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그런 제의를 하셨을까. 그가 ‘전’을 풀어주고 ‘박’을 기념하자 말하도록 무식 충만했던 우리의 죄가 더 컸다, 알고 보니.)

그랬는데.... 뒤늦게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 <동행>(웅진지식하우스)을 읽고 나는, 이 부부에게 완전 홀딱 반하였다. 이희호 여사는 좋은 가문, 좋은 학벌에다 영부인 까지 하였으니 그 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 있으랴 싶었는데 세상에나 영광은 잠깐이요 고난은 백조다리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일본의 한 언론인이 김대중은 이희호가 있었기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하였다는데 정말이었다.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대통령을 위하여 그토록 헌신한줄 나는 몰랐다.

희호여사의 표정이 무덤덤하잖은가. 그리고 강인해 보이기도 하고. 때문에 고통이 크다 해도 그리 큰 줄 몰랐다. 그 많은 옥바라지와 연금생활, 망명생활 그리고 한 발만 늦었어도 바다에 수장될 뻔 했던 중앙정보부에 의한 납치사건 등 두 분은 그 험난한 길을 어찌 다 겪고 이겨냈는지....

김대중 대통령이 동물과 식물을 무척 아끼고 잘 돌봤다는 얘기와 정치인이기에 앞서 항상 책을 가까이 하며 사색하고 토론하는 ‘학자적 품성’이 몸에 밴 남자였음을 알게 된 것은 과외의 소득이었다.(나는 그냥 닥치는 대로 책을 많이 읽는 남자로만...) 
 

결론은,

이들의 얘기는 영화 한편으로는 부족하고 해마다 한편씩 찍어내도 소재는 무궁무진 할 것이다. 나찌 영화만 해마다 우려먹으란 법이 있나. 만델라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얘기도 우리현대사와 김대중의 얘기도 몇 번을 우려먹어도 국물은 여전히 진할 것이다.

나는 벌써 김대중 대통령 부부 역으로 누가 어울릴까 배우를 고르고 있다. 내 꿈이 언제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미래의 언젠가는 이뤄지리라 믿는다. 기왕 이뤄 질 거면 만델라 대통령의 경우처럼 김대중 대통령 살아생전에 만들어져서 당사자에게 소감을 물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텐데...

‘우생순’의 신화를 만들었던 핸드볼 임 감독도 영화 끝나고 자막 올라갈 때 한 말씀 하던데, 이희호 김대중도 그들의 영화 끝 그 장면에서 한 말씀 덧붙인다면 얼마나 근사할 것인가. 아마, 세계인들이 더 환영하지 않을까. 우린 만델라에게는 사심 없는 박수를 보내면서 우리안의 보석엔 너무 무심한 것 같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 시절 두 번이나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다고 한다. 아마 두 분은 만나서 ‘당신 팔자나 내 팔자나, 우린 어찌 그리 징한 팔자를 타고 났을까. 그러나 후회는 없어.’ 하며 서로 농담을 주고받지는 않았는지.

마무리...

언젠가 들으니 일주일에 한 번씩인가 4시간씩 신장 투석을 받으신다고 하였는데..... 요즘처럼 사회적 문제 들이 연일 터질 때면 김 전 대통령의 안부가 먼저 걱정되곤 한다. 세상이 거꾸로 굴러가도 당신 몸만 챙기시고 그저 오래사시기를 빌어보는데, 워매, 낼 모래 아흔을 목전에 둔 이 늙은 오빠는 나라의 나아갈 방향을 그 누구보다 선명한 혜안으로 조언해 주시는데 그 형형한 청년 정신이라니,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해. 
 

그의 조언들이 현실정치에 부디 반영되어 헝클어진 남북관계가 복원되고 나라 살림살이 또한 제 궤도에 오르길 빌어 본다.

그러니, 결론이 뭐냐고요? 결론은 두 가지. 하나. 헐리웃이 만델라 전기 영화 찍고 있으면 우리나라 감독들은 최소한 김대중 전기 영화 시나리오만이라도 쓰고 있으라. 둘. 역사에 길이 남을 멋있는 사람들은 단 한권의 책으로도 읽는 이를 ‘확’ 잡아끈다, 머 이런.(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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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 최근 상영된 영화 <프로포즈>에서 보면 산드라 블록이 15센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구두를 신고서 배를 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던 위장결혼 연인의 할머니 왈, '아이고 눈 찌르겠네'하면서 며느리 되는 이와 귀엣말을 했었다.

 

평소와 같은 도회의 생활도 아니고 장시간 비행기타고 알래스카로 날아오는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건만, 그렇게 높은 굽의 구두를 신어야 하나 극중이라 해도 어이없었는데 남자주인공의 할머니가 꼬집어주니 속이 다 시원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이 영화에서 산드라 블록은 내내 그런 높은 굽만 신고 나오진 않았다. 때로는 굽이 전혀 없는 신발을 신고도 나왔기에 어지럼증이 진정되어 편한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최근, <리얼스토리 묘>라는 케이블 채널에서 <킬 힐, 그 참을 수 없는 유혹>편을 보았다. 15센티 이상의 높은 굽의 구두를 말한다는 킬 힐.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신발을 왜 여성들은 좋아할까. 킬 힐은 물론 하이힐도 오래 신으면 허리디스크, 척추측만증, 무지외반증(엄지 발가락이 검지 쪽으로 굽어지는 현상) 등이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는데 그러한 신발을 싣는 여성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여가수는 왜 '킬 힐'을 신고 춤을 춰야하나?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일까. 아니면 신체가 적응이 되어 견딜 만한 것일까. 주변 지인들의 경우를 보면 어쩌다 5센티 정도의 구두만 신어도 '아이고 발이야' 입에서 저절로 신음소리가 나오던데 댄스가수들은 그보다 두 배 세 배 높은 굽을 신고 춤을 추었다.

 

춤도 그냥 한번 추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신고 거의 매일 일상적으로 춤 연습을 한다고 하였다. 평소에도 힐을 신고 연습을 해야 몸이 적응이 되어 실제 공연에서도 실수 없이 할 수 있기에 그런다고 하였다. 때문에 그들의 발은 늘 껍질이 까지고 굳은살이 박이고 발톱 모양이 기형이 되는 등 보는 것만으로도 내 발이 다 아픈데 그러한 발로 춤을 추는 당사자들은 오죽할까.

 

그냥 좀 굽 낮은 구두나 예쁜 색색의 운동화를 신고 춤을 추면 안 될까. 얼마 전 어느 프로에서 백지영씨와 그녀의 백댄서들이 모두 운동화를 신고 신곡을 선보이는 것을 보았다. 그 장면을 보자 내 마음이 다 푸근해졌는데 다음의 어느 프로에 보니 다시 힐로 돌아와 있었다. 

 

남자는 넥타이에 구속되고 여자는 하이힐에...

 

하여간, 아무리 인간이 미를 추구하는 동물이라지만 그 '미'라는 것이 보편적 상식을 넘으면 재고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프리카 어느 종족이 귀를 뚫어 귓밥을 축 늘이거나 입술을 뚫어 나무판을 끼우고 하는 것을 보면 아름다운가. 미얀마 어느 소수민족이 목을 가늘게 한다며 목에다 수십 개의 링을 감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아름다운가. 아름답기는커녕 안타까울 뿐이다. 

 

마찬가지로 뾰족하고 위태위태한 높이의 구두를 신고 곡예하며 걷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그러나 오지사회에서 그러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가타부타 말할 수가 없다. 그들 나름으로는 이유가 있을 터이니. 그에 반해 우리들은 그들 보다는 그래도 문명국가 아닌가. 문명국가에서 왜 그런 비합리적인 미를 추구하는가 말이다.

 

영화 <코코샤넬>에서 보면 샤넬은 그녀의 언니와 달리 재봉에 소질이 있었다. 바느질에 소질이 있다 보니 자연 당시 귀부인들이 입고 다니던 의상이며 모자, 가발 등에 관심이 많았는데 샤넬은 그들의 과장된 의상을 늘 안타까워하였다, 몸이 혹사당하는 것이 훤히 보였기에.

 

'코르셋으로 허리를 저렇게 조이면 얼마나 불편할까. 모자에다 저러코롬 장식을 하면 얼마나 목이 아플까.'  하여, 샤넬은 스스로 자신의 옷은 그런 쪼임 없이 편안하게 만들어 입었고 또,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바지에 조끼도 역시 만들어 입었다. 뿐인가. 손수 가벼운 모자도 만들어 귀부인들에게 선물했는데 한번 써본 사람들은 너도 나도 그녀의 모자에 유쾌하게 중독되었다. 목이 뻐근하고 머리가 띵한 상태에서 해방되었음은 물론이고.

 

아무튼, 20세기로 넘어오며 여성들은 그 사정없이 조던 코르셋이라든가 과장된 가발, 모자 등으로부터는 확실히 해방되었다. 한발 더 나아간 작금의 21세기는 그렇게 신체의 일부를 결박하는 듯한 치장을 할 필요가 더더욱 없어졌다. 그러나 새로운 부분에서 여전히 그러고들 있으니, 그 백해무익의 대표는 바로 넥타이와 하이힐(혹은 킬 힐)이 아닐까 싶다. 남자는 넥타이에 구속되고 여자는 하이힐에 구속되고. 서로서로, 피차 동시에 그것을 벗어 던지면 안 될까.

 

마무리...

 

유난히 댄스 그룹 가수들이 가요계를 휩쓴 올 해. 우리가 별 생각 없이 각선미 쥑이네, 보는 눈이 다 시원하네 하던 그 순간 그녀들은 속으로 울면서 그 춤들을 춘 것이었다. 생각해보라. 내 딸이, 내 누이동생이 그런 신을 신고 춤을 춘다고. 그러면 무심히 볼 수 있을까. 마냥 즐거이 볼 수가 있을까.

 

그리고 소위 유행을 선도한다는 연예인들이여. 너도 나도 높은 굽을 신기전에 당신들이 그러한 것을 신으면 바로 따라하는 여성들이 부지기수임을 상기했으면 싶다. 예전에는 먹고살기 힘들어 따라하고 싶어도 못 따라한 사람들이 많았다지만 지금은  처지가 다르다. 물건이야 진품을 따라하진 못해도 높이(굽)는 충분히, 누구나 따라할 수가 있기에 더더욱 조심스러워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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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는 내 인생
이자벨 코이셋 감독, 사라 폴리 외 출연 / 덕슨미디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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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됴가게에서 수도 없이 보았으면서도 그냥 지나쳤다. 

페드로 감독의 죽음 야그는 <그녀에게> 하나로 충분히 배가 불렀다.  

(라고 했으나 다시 보니 페드로 감독은 이 영화를 제작했고 감독은 이자벨 코이셋이었구나. 

비됴 걷봉을 얼기설기 볼때는 페드로 감독이 강조되어서 그가 감독했나 했는데 

다시 보니 감독은 따로... 그렇다면 이자벨 감독이 대단한 거네. 장면, 장면들 중 매력적인 

부분이 많았는데 역쉬, 여성이라 여성들의 섬세한 감수성을 건드릴수 있었는지....이자벨 코이셋 기억해둔다.)

아무튼, 시한부 인생. 나는 이런게 싫다.  

 

그랬는데 우연히... 계절이 계절이라 갑갑한 마음에 할수없이  

빌리게 되었는데 허걱~ 숨이 멎었다. 

주인공 사라폴리의 처연함이 

없었더라면 영화는 성공했을까 싶다.  그녀의 차분하고 조용한 응시가 보는 이의  

마음도 은은하게 만들어 주었다.^^

 

헐리웃의 난다긴다는 배우들이 그역을 했다? 글씨.... 키이라 나이틀리?  

스칼렛 요한슨? 졸리? 나름 한 미모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나니 이들은 사라폴리가  

가지고 있는 결정적 어떤 한가지를 못가진 듯하다. 

  

사라폴리가 궁금해 조사 들어가 보니 긍께 유년시절 엄마를 암으로 잃은  

아픔이 있었네. ㅠ ㅠ ....이 영화에서 그녀가 맡은 역은 유치원생 두딸을 두고  

두달분의 삶 밖에 남지 않은 스물 둘의 젊은 엄마역이었는데..... 

 

그 역할을 그리 잘 할수 있었던 것은 그런 유년의 아픔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영화는 그런 유년의 아픔을 치유해 주지는 않았는지.. 

 

그런데 더더욱 나를 놀라게 한것은  

보고는 싶었으나 보지는 못한 <어웨이 프롬 허>를 사라폴리가 각본감독했다니 허걱! 

시방 나이 30대 초반인데 어디서 그런 재주가? 

나름 똑똑해보이던 줄리델피도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를 넘 이상하게 

만들었기에 영화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우면 그 똑똑소녀 줄리텔피도 그렇게 밖에  

못 만들까 생각했는데, 그럼 사라폴리는 뭐가 되는겨? 

 

아무튼, 이 영화는 새로운 느낌의 배우이자 앞으로 더욱 촉망받을 감독을 발견한 영화라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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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4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4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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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보니 난생 처음은 아니었네. 스무살 언저리 '작가와의 만남'이란 행사에서 

한수산씨의 사인을 받은적이 있다. 

그때는 여학생 대여섯 정도가 사인을 받았는데 유려하고 멋진  

사인이었다.  

오오! 사인은 저렇게 일필휘지로 하는 거구나 하며  사인 할 일은 없어도 나도 나만의 사인 필체를 하나  만들어야쥐 하며 골몰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별 감동은 없었다. 저자는 자기 이름을 써 주었고 나는 받았다. 그것이 끝이었다. 

때문에,

한 비야씨의 사인회도 당연히 그럴거라 생각했다. 

더구나 이분의 사인회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것이니 어쩌면 더 빠르게 쓱쓱, 쓱쓱 해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잉? 그랬는데 그게 아니었다.  

'와아! 어느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된 사람은 사인도 그냥 막하지 않는구나. ' 

과년한 조카둘과 조카의 남친, 그리고 나와 둘째 총 다섯이 한비야씨의 사인회가 

시작되길 1시간 전부터 줄서서 기다렸다. 사인회가 시작되고 나서도 

1시간 지나서야 우리들 차례가 되었다.  

우리들 앞에 사람이 그리 많았던 것은 아니기에 왜 그리 오래 걸리나 했는데 

막상 그이 앞에 서고 보니  

 

시간이 걸린 이유가 있었다. 

 

즉, 한사람 한사람에게 소소하지만 각기다른 얘기로 대화를 풀어나갔다. 

한명의 조카와 그 남친에게는 '어머, 오늘 커플 너무 많네...사귄지는 얼마나...'하면서 

예의 그 빠른 톤으로 묻고 대답듣고 저절로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켰다. 

 

또 다른 조카에게는 갸가 은행원 복장처럼 단정한 모냥새를 취해서  

그랬는지 '대구는 교육의 도시....'어쩌고 하면서 대화를 풀어나갔다. 

 

그리고 나, 나에겐 무슨 말을 할까? 두둥!! 

어머나 세상에, 호호! 내가 비야언니에게 들은 말은 '예쁘다'였다. 

둘째의 이름을 부르면서 

"ㅇㅇ아, 엄마따라 와서 기다리느라 힘들었지?"  그러더니 내 얼굴을 한번 쓰윽  

보더니 다시, 

"ㅇㅇ아, 너네 엄마 참 예쁘네~~" 

 

흐미, 사실 예쁘기로 말하자면 앞의 앞의 사인을 받은 조카가 이리보면  

심은하 저리보면 손예진이었는데 그앨 놔두고 날더러 예쁘다니 엉?

 

사인 당시에는 그말이 별 감흥이 없었고 금방 듣고 잊었다. 그런데 그날밤 집에 와서  

잠들무렵 갑자기 그말이 생각나며 억수로 기분이 좋아졌다. 

'엉?'의 뜨악한 느낌은 '크흐흐흐~~~'주체할수 없는 기쁨으로 바뀌었고 

나는 같이 사인회에 간 심은하 조카와 한비야씨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 아, 글씨. 비야언냐가 날보고 예쁘다고 하지 않았겠니? 크흐흐흐~~~' 

 

뭐, 객관적으로  내가 예쁘지는 않지. 요점은 그렇게 말해준 한비야씨의  

말이 너무 예쁜 것이었던, 것이었다.

해서 느꼈다. 한 분야에서 이름날리는 사람들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부터 다르구나. 

기껏 1분밖에 안 됐을 그 시간에 사람의 자존감을 이러코롬 세워주다니... ^^ 

 

책은, 거의가 공감했고 다만 신앙적인 면은 내가 체험하지 못한 부분이라 

그렇구나 이해하는 정도.  

타종교에 대해서도 관용을 가지자는 그이의 조심스럽고도 사려깊은 호소를 

개신교인들이 얼마나 새겨들을지.... 

 

아무튼, 쭉쭉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그녀가 무지 멋지다. 

그리고 어려운 말로가 아닌 쉬운말로 당장 실천 가능한 삶의 양식에 대한 

정보를 제공에 주는 그이가 고맙다. 

정말 한비야씨가 없었으면 이 대한민국이 월매나 삭막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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