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 마을을 다녀왔다. 세상에 비도 비도 어쩜 그리 많이 내리는지... 아침 7시 출발부터  추도식이 끝날 때 까지 내리고, 내리고, 또 내리고, 줄기차게 내렸다. 미리 우산과 비옷을 준비해 가긴 했지만 그것이 그렇게 요긴하게 소용될줄이야.  

삼 십 줄 비혼 조카와 갓 마흔의 기혼 조카, 여자 셋이서 갔다. 진영역에 내리니 사람들이 북적북적.. 택시 없나 살피니 봉하 행 버스가 준비되었다며 자원봉사자가 안내하기에 버스를 타고 공단 공터에서 내렸다.

하여, 그곳 들머리부터 걸어갔는데 순식간에 빈틈없이  줄이 길게 이어졌다. 마을에 도착하여서는 나눠주는 노란 리본을 달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선물이라는 노란 술떡도 받았다.
추모장 곳곳은 이미 만원이라 들어갈 염두를 못내고 부엉이 바위 아래 추도식 장소로 이동했다. 아무리 비가 내린다 해도 우리야 저 한몸만 챙기면 되었지만 안내하는 노사모 봉사자 분들은 수고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비가 내리긴 했어도 그 비가 걸리적 거린다는 생각은 이상하게도 들지 않았다. 나만이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런 것 같았다. 그저 내리는 비마져도 좋았다. 혹 노무현 대통령이 비가 되어 우리들을 감싸는 것은 아닌지.... 나무들도 그렇게 느끼는 듯 비 맞은 초록의 나뭇잎들은 풋풋하기 이를 데 없었다.

좀 이른 시각(10)에 도착했기에 2시의 추도식 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그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뭐 딱히 한 것도 없었다. 우산 들고 돌아다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것 같아 일찌감치 부터 식장 의자에 앉아서 무작정 기다렸다.


우리만이 아니고 미리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기에 자연스레 따라 앉은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가까운 곳에 사니 구석구석 답사하는 일은 다음에 해도 되기에... )아무튼, 그렇게 미리부터 앉아서 고개만 한 바퀴 씩 돌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엉이바위, 사자 바위를 봤다가 초록의 나무들을 봤다가 오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셋이 이야기를 조금하다가....그리고 대부분은 빗소리와  비의 향기와 비의 자태를 감상하며 어찌 보면 무심이고 또 어찌 보면 충만함으로 마냥 앉아 있었다.

.......
이윽고 추도식이 시작되었을 때는 이전 보다 더 빗발이 거세어져 조마조마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찬 빗발에도 불구하고 단상위도 아래도 흐트러짐 없이 추도식을 엄수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가 앉은 뒤가 궁금하여 문득 고개를 돌려 보다 ‘까악!’. 수만 개의 눈동자가 미동도 하지 않고 오직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정적에 울컥 눈물이 났다. 
 

부엉이 바위 아래와 정토원 가는 길의 나무들 사이사이에도 사람들이 빼곡히 서있었는데 나무와 사람이 그렇게 잘 어우러지는 것 또한 처음 보았다. 다시 단상으로 고개를 돌려, 조금 떨리는 사회자의 목소리, 이해찬 총리와 도종환 시인의 추도사와 시. 함께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 아침이슬....

(풋~ ‘나는 합창이 좋은 줄은 모르겠어’ 하며 불과 한 시간쯤 전에 무슨 얘기 끝엔가 조카가 말했었다. 그랬었는데, 비를 맞으며 연습도 없이 즉석에서 어우러진 수 만 사람들과의 공명에 합창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느낀 그녀는 몇 번이고 감탄하였다.^^)

식이 끝나고 묘역으로 가니 님의 묘비엔 이미 수많은 국화 송이가 덥혀 있었다. 박석은 미리 위치를 확인하고 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찾아도 내 박석이 어딘지 모를 것 같았다. 미리 위치 확인을 하고 왔다 해도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자기 박석 찾는다고 헤매다간 민폐 끼치기 십상.^^

수많은 사연이 새 겨진 박석의 글귀를 드문드문 읽으며 묘역을 벗어나 시각을 보니 그럭저럭 3시 반. 그냥 오려니 섭섭하여 국밥 집에 들러 국밥 한 그릇 씩 먹었다. 배도 고프고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심정도 생각하여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후루룩 순식간에 다 먹었다.

기차시간 까지는 여유가 있었으나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들을 보자니 역시 우린 빨리 나가주는 게 돕는 일인 것 같아 역으로 향했다. 공단 공터에 오니 임시 버스를 타려는 줄이 또 어마어마해서 일단은 걷기로 했다.

걸어가는 사람들의 줄도 끊임없이 연결되어 길 잃을 염려는 없었다. 애초에는 한 30분 걷다가 택시타고 가자였는데 걷다보니 역까지 걸어오게 되었다. 시간을 따져보니 봉하 마을에서 진영역까지는 두 시간 가량 소요되었다. 한시간정도의 시간이 남아 역 근처 중국집에서 시간도 때울 겸 짬뽕을 먹었다.

짬뽕을 기다리며 티비를 보는데 전교조 선생님들을 대량 해임, 파면한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참말로 가지가지. 소름이 끼쳤다. 그 어디보다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할 직업군인데 시민으로서 칭찬받아 마땅할 일을 했거늘 상은 못 줄망정 해임이라니. 파면이라니. 공무원법에 어긋났다면 경고 조치를 하든가 해야지 무턱대고 칼을 휘두르다니.

이래저래 투표가 중요하겠다.

......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는 호실은 같으나 내리는 곳도 좌석도 제각각 달라 모두 떨어져 앉았다. 집에 오니 저녁 8시 30분. 나의 외출을 허락한 가족에게는 아부의 선물이 필요했기에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과 맥주를 사서 선사를 하고 결정적으로 가방속의 술떡을 꺼냈다.

“ 자, 묵어라. 노무현 대통령의 선물이다. 조카들것 같이 먹고 내 것은 개봉을 안했다. 여러분 줄려고. ㅋ ㅋ”

그러고 보니 비오는 날 우산을 받쳐 들고 하루 종일 밖에 있어보기도 난생 처음이었던 것 같다. 감사한다. 님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싶다. 게으른 중생이라 많은 실천은 하고 살지 못하겠지만 항상 잊지 않고 님의 뜻을 생각할 것이다.^^

(다음날 문득 궁금하여 박석 위치를 확인해 보니, 두 개의 박석 중 하나는 워매~ 무척 찾기 쉬운, 대통령 묘비 바로 아래에 있었다. 조카의 문자 왈 ‘와~ 박석 완전 대박이데’ 뭐 어딘들 대박 아니랴. 박석의 기회 또한 감사하고 박석 값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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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중화방송에서 <첨밀밀>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이 영화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늘 지나쳤던 영화였는데 장만옥이 함께 살고 있는 조폭 두목 동거남을 보고 '오빠'라 해서 띠잉~ 받혀서 채널을 고정하게 되었다. 모양새로 봐서는 분명 애인 역할인데 자막에서는 장만옥이 자꾸 그를 일러 '오빠'라고 하기에 혹시 진짜 오빠 맞나 싶어서 계속 보니 역시 친오빠가 아니고 애인 맞았다.

 

내가 예민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남의 나라 말을 번역할 때조차 연인을 오빠로 번역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영화 대사란 게 한눈에 척, 쓱싹쓱싹 읽고 지나가게 눈에 뛰게 번역해야 되기도 하지만 이것은 호칭이므로 그런 묘미가 필요한 단어는 아니다. 실지 중국 사람들이 애인(연인)끼리 서로 부를 때 뭐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빠'는 아닐 것이다.

 

혹시, 오빠라는 말에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냐구? 그런 것 없다. 다만 오빠라는 호칭이 그 다정한 어감만큼 행복을 가져다주기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주부로서 10여 년 살면서 남편을 오빠라 부르는 후배들을 지켜보니, 그렇게 불리는 남편들은 그 오빠라는 말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지 결코 아내에게 너그러움으로 베풀지는 않더라는 것이다.

 

TV에 나오는 연예인 부부들 너무해

 

요즘 TV에서 보면 부부 이야기쇼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한 프로들을 보면서 놀란 것은 거의 대부분의 여자 배우자들이 자기 남편을 '오빠'라고 하는 것이었다. 사석에서라면 몰라도 집에서라면 몰라도 어떻게 공중파에다 대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나로선 도저히 이해 불가다.

 

때문에 몇몇 그런 방송을 볼 때마다 나는 정말 그것을 만드는 방송사 PD가 왜 그들의 호칭을 정정해 주지 않는지 의아하고 의아했다. 이제 남편을 오빠라 함은 빼도 박도 못할 대세인가. 그러나, 하루 이틀 살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애들 키우고 살면서 남편에게 오빠라 할 수 있나. 물론 호칭은 호칭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말이란 게 또 그렇지가 않다. 그렇게 부름으로서 의미가 반영되고 굳어지는 것이다.

 

오빠, 좋다. 그러면 오빠라 부를 경우 누구에게 득이 될까? 각각 집 사정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가부장적 남편의 경우 오빠 소리를 들으면 대부분 그 권력을 휘두르기 쉽다. 반대로 유약한 남편의 경우 오빠 소리는 듣지만 늘 시달리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오빠라 부르면서도 서로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되지 않느냐고?

 

물론 그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앞에서도 말했듯 하루 이틀 사는 결혼생활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에게 흐트러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럴 경우 이 오빠라는 말은 평등을 이끌어 주는 말이 아니다. 부부 사이는 나이차를 떠나 평등한 사이인데 평등하지 않는 말을 끌어다 쓰는 것은 사소한 것 같지만 좋지 않다고 본다. 즉, 여차하면 오빠가 지 맘대로 함부로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오빠를 종 부리듯 부릴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부부가 서로 존중하는 사이가 되려면 우선 호칭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하면 그 드라마에 나오는 부부(연인)들이 어떤 호칭을 쓰고 존대는 쌍방인가 일방인가를 보는데, 그 하나만으로도 그 드라마의 품격(?)을 가늠할 수가 있다.

 

드라마 상에서만 봐도 서로 '여보당신' 혹은 '00씨' 하며 존대하는 경우를 보면 대부분 사이가 좋다. 반면, 가부장적인 남편이 아내에게 존대하는 경우는 거의 못 봤다. 호칭은 이처럼 중요하다. 오빠 소리 들으면서 자기 아내에게 존대하긴 힘들 것이다. 존대하기 힘들다는 것은 그만큼 오빠라는 말은 평등한 부부가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단어임의 방증일 것이다.

 

평등한 호칭이 좋은 부부관계를 이끌어....

 

이러니 시절을 몰라도 너무 몰라보고 구닥다리 같은 주장만 하는가 싶어 의기소침해 지기도 하는데 남들의 생각은 어떤지요?

 

평소 부부간 호칭의 평등이 그 부부 행복의 척도라고 생각하기에 뭐 눈에는 뭐 밖에 안 보이는지, 최수종 하희라씨가 인터뷰 할 경우 항상 서로를 일러 '최수종씨는...' '하희라씨는....' 이라고 하는 것이 무척 듣기 좋았다. 그리고 이세창 김지연씨 부부도 서로의 이름을 잘 불러주는 것이 보기 좋았다.

 

그러나 항상 의문이 드는 이는 김보민 아나운서였다. 이분은 명색이 아나운서인데 김남일선수를 일러 '오빠'라고 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어느 프로에선가는 아나운서로서 표준말에 대해 항상 긴장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남편을 일러서는 오빠라고 하였다.

 

물론 이 부부는 깨가 쏟아져서 오빠라고 부른다 해서 서로를 함부로 대할 사람들은 아니겠으나 그래도 김보민 '아나운서'아니신가? 아나운서가 '오빠'라는 말을 그렇게 오용하면 우리 보통사람은 누구를 따르라는 말인지.

 

둘이 있을 때야 뭐라고 하든 적어도 공중파에서 만큼은 모두들 호부호형(呼夫呼兄)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그냥 영원히 연인으로 산다면 모르겠지만 자식 낳고 살고 그 자식들 점점 커가고 하는데 여전히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글쎄 이치에 맞지 않다고 본다. 계속 그렇게 호명하다 이다음에 자식들이 결혼하여 며느리를 맞아서도 머리허연 남편을 일러 '오빠'라고 한다면?

 

혹,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내만 꼬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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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5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7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리 사람 마음이 조변석개라지만 영화에 대한 내 마음이 이리 빨리 식을 줄 몰랐다. 즉, 지난해 연말, <보석비빔밥>의 큰딸이 연인에게 ‘나는 영화와 책만 있으면 돼요.’ 할 때만 해도 ‘하먼, 하먼이라’ 하면서 공감을 했었다. ‘어쩜, 저리도 내 마음을 대변해 줄까!’ 순전히 그 한마디를 우연히 듣고서 그 드라마를 본방 사수했었다.

그랬는데 해가 바뀌고 나서 그새 웬 일 인지 조조영화를 볼 때면 깜박깜박 졸기를 수 회, 두 시간 앉아있는 일이 얼마나 좀이 수신지.... ‘나도 이제 다 되었나벼~ 체력 딸린다는 말이 실감나네.’ 하다가, ‘저런 영화는 극장에서 봐 줘야 하는데’ 하면서 놓친 영화가 부지기수.

그러면서도 예전처럼 아쉬움을 몰랐던 것은 ‘사모님 쿡티비 두 달만 무료로 보세요.’ 수시로 걸려 오는 전화를 거절하다 여유가 생겼겠다.

‘이젠 극장에 안가도 돈만 내면 안방에서도 영화를 쉬이 볼 수 있는 세상이니 왕복 두 시간 혹은 3시간씩 버스타고 가서 영화 보는 일에 골몰할 필요가 없....’ 하다가 많은 영화 놓쳤다.

‘13년째 보고 있는 안방 티비의 브라운관이 나가는 순간 보다 화질 좋은 티비를 사면 그때 쿡을 신청하는 거야. 암만. ’

그랬는데 .... 어제, 좋아하는 감독 두 분이 동시에 ‘신상품’을 내놓았다. 전작들이 준 감동과 신선함을 생각하자면 신상품에 예를 표해야 하였기에 번갈아 보았는데 모처럼 식었던 영화에 대한 애정을 도로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영화가 있어야 세상은 살만 한 거야. 저런 영화 만드는 감독들은 진짜 훈장 줘야 해. 짝짝짝~~’

이창동 감독은 우리네 마음속에 있는 선한 본성에 자극을 주어 개인의 인간성(도덕성) 회복은 물론 사회의 그것까지 일깨워 주는 듯하다. 음악이 없는 종료 자막에서 하얀 것은 글자이나 까만 배경은 글쎄 우리네 새까만 양심? 무관심? 억울한 이들의 절망감? 그 침묵의 종료자막은 가슴을 턱턱 막히게 했다.

김용탁(김용택) 시인과 최문순 의원은 직업을 바꿔야 할 듯~ 김 시인은 대사 분량이 많았는데도 무척 자연스러웠고, 연출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수십 번 되풀이 찍어서 나온 화면이라고. 그것을 끌어낸 감독도 인내하며 이겨낸 시인도 대단. ‘탁’ 이라는 이름 끝 자도 넘 웃겨~

그런가 하면 임상수 감독은 변함없이 ‘냉소’와 ‘세련미’가 독보적. 한마디 한마디 속이 다 시원하여라. 마지막 ‘샨데리아 불꽃그네(?)’는 특히 너무 갑작스럽고 허무하였는데, 감독은 어이하여 그런 결말을 냈을까. 내 머리론 해결 안 되어 <씨네 21>의 도움을 받았는데. 오호라, 문석 편집장의 지난해 온 국민을 울렸던 ‘부엉이 바위’에 대한 ‘상징’이 아닐까 하는 해석은 절절하게 이내마음을 적셨다.

높은 곳에서 아래로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던 그 심정..... 정말이지 두 영화 다 사람 사는 세상이 올 때까지 그 상징을 잊지 말아야 함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그런 장치를? 부엉이 바위에서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뛰어 내리고 뛰어내림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는 현실이여.

여하간, 이창동, 임상수 감독 넘 멋져 부러. 임상수 감독은 영화판 싸이 같은 그 독보적 지성, 감각, 독성의 표현력 늘 보존 하시옵고. 이창동 감독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양심이라는 씨앗의 존재를 늘 일깨워주고 싹트게 해 주세요. 얼쑤~~

2010년 상반기 본 영화 목록

1. 웰컴

2. 셜록홈즈

3. 바더 마이오프.....(극장 아닌 친구집에서 쿡 티비로 보다 뿅~~)

4. 용서는 없다

5. 500일의 썸머


6. 의형제......(서로가 서로를 포용하고 빛내주는.... 남북도 그와 같이..)


7. 벨렌타인데이

8. 하모니

9. 공자

10. 피에스 온리유

 

11. 디어존.......(자폐증 주인공 아부지가 나를 울려)

12. 인빅터스.......(지도자는 부하에게 영감을 줘야...그 혼란스런 나라에서도 마디바(만델라)는 여전히 살아있는데 우리네 두 대통령은....)

13. 평행이론

14. 사랑은 복잡해......(누가 메릴을 환갑할매라 부르랴. 우리 할매들에게도 로멘스를!)

 

15. 그린존.......(똑똑한 장교가 아무리 진실을 밝혀도 벌 받는 사람이 없으니 도로아미타불)

16. 작은연못......(어쩜! 지난 우리네 삶의 모습을 그러코롬 복원 할수가 있는지. 그 섬세한 풍경에 그런 몹쓸 짓을 하다니.)

17. 허트로커......(도무지 쪽팔림을 모르는 미국 사람들. 감독마저도 이라크인은 안중에 없는듯. 하나같이 잘 생긴 미군병사에다 탁월한 심리포착, 연출력. 눈은 시원했다만 씁쓸했다.)

 

18. 베스트 셀러........(엄정화씨만이 할수 있는듯. 다시 봤다. 상 줘야 할 듯~)

19. 셔터 아일랜드.......(어디까지가 환영, 어디까지가 실재 인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블로그 후기를 여러편 보고 나서야 크흐~ 수(秀)작도 이런 수작이 없구나!)

20. 프롬파리 위드러브

21. 밀크..........(김용철 변호사도 영화 한편 만들어 줘야 하는데..)

22. 블라인드 사이드

23. 위대한 침묵.....(썰매 타는 신부님들 넘 인상적^^)

 

24. 하녀.........(다빈치의 인체 비례도가 훈으로 환생한듯^^, 눈내린 풍경이 절경. 자본주의 괴물(훈)이 베토벤을 그러코롬 해석한다는 것은 비현실. 베토벤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그런 삶 안살아. 부자들 살림살이 어유 피곤해. 왜들 그러고 사니.)

25. 시........(강물은 무심한 것일까. 다 감싸 안고 흐르는 것일까. 강물아 말 좀 해다오.)

26. 하하하 (볼 예정, 생각만 해도 하하하~)

2010년 상반기 꼭 보고 싶었으나 못 본(볼) 영화 목록

1. 페어러브

2. 바비

3. 채식주의자

4. 멘온와이어

5. 칼라스 포에버

6. 경계도시2

7. 제로 포커스

8. 시리어스맨

9. 예스맨 프로젝트

10. 어웨이 위고

11. 알제리 전투

12. 사이즈의 문제

13. 미투

14. 사요나라 이츠카

15. 공기인형

16. 클래스

17. 파라노말 액티비티

18. 브라더스

19. 데저트 플라워

20. 선라이즈 선셋

21. 섹스볼런티어

22. 아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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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역쉬 좋은 매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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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5-14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0년 12개 겹쳐요.^^
하녀와 시, 저도 기대만땅인 영화에요.
폭설님의 글은 늘 유쾌합니당~

폭설 2010-05-15 14:56   좋아요 0 | URL
알고 보면 외로운 사람입니다.ㅋㅋ ...
일상적인 관계냐 고독이냐 사이에서 늘 고독을 택하다
보니 고독해요. ㅎㅎ...

일상도 아니고 고독도 아닌 적당한 만남은 없을까요?^^
 

검찰이 먹은 뇌물은?    정답 : 떡값.

고위 관료나 의료인이 먹은 뇌물은?   정답 : 리베이트.

선생님이 받은 뇌물은?    정답 : 촌지.

 

그러면 일개 지구대 경찰관이 먹은 뇌물은? 말 그대로 뇌물이다.

 

참내. 뇌물을 받는 데도 급수가 있는지. 돈이 사람을 알아보는 건지 사람이 돈을 알아보는 건지. 분명 뇌물로 올리는 것인데 왜 그것을 기사화하고 방송하는 사람들은 떡값, 리베이트, 촌지로 구분할까. 나이 드신 분들에게 물어보라. 리베이트가 뭐예요? 모른다. 오해하지 마시라. 나이 드신 분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 리베이트가 뭔지 모르는 어른들이 아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

 

TV뉴스에서 리베이트 어쩌고 하면서 내보내는 화면의 정황으로 짐작하여 뭔가 잘못 했는갑다 생각하지 리베이트수수라는 말에서 '뇌물'을 딱 떠올리지는 않는다. 떡값은 어떤가. 아무리 떡값 액수가 커도 떡값이라고 하니 그냥 떡값 좀 먹었는가, 그런데 재수 없이 들통 났나 생각하기 쉽다.

 

촌지는? 선생님들 고생하는데 그것 얼마 안 되는 것 받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말이란 것이 똑같은 말이라도 '아'다르고 '어'다른데 아 다르고 어 다른 것도 아니고 순화를 시켜도 유분수, 미화를 시켜도 유분수지 너무하지 않은가.

 

이번에 피디수첩을 통해 밝혀진, 검찰이 받은 성상납 향응 접대와 금전적 뇌물을 모두 '스폰서'로부터 받았다고 하던데 이 말도 웃기지 않은가. 스폰서 즉 후원자. 얼마나 좋은 말인가. 그런데 왜 이런 오염된 일에 그 말을 쓰는가 말이다. '뇌물준사람'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그리고 언론들은 이런 범죄사실이 생길 때마다 오랜 관행 어쩌고 하면서 알아서 물 타기를 해주던데, 관행 이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검찰이 먹은 뇌물을 떡값이라고 쓰는 관행을 이참에 좀 바꾸자. 관행이라 자꾸 써주니 죄인 줄 모르고 계속 저지르는 것이다.

 

스폰서, 후원자란 말 더 이상 오염시키지 말자.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검찰에 뇌물 준사람을 그렇게 계속 호명하면 검찰이 그러한 '호의'를 거절할 이유를 없게 만든다. '후원을 받았을 뿐이고. 우리들이 워낙 박봉에 개고생을 하니 그 정도 호의는 받아도 될거야.... '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떡값, 리베이트, 촌지를 '뇌물'로 통일한다 해도 당한 게 워낙 많아 성에 차지 않는다. 그동안 뇌물을 너무 순화, 미화 시켜 발음한 죄도 있고 하니 이참에 확실히 사람들 뇌리에 박히게 이렇게 부르면 어떨까.

 

즉, 뇌물이라 하지 말고 '똥물'이라고 말이다. 자연스레 동사도 바꾸어서 '받다'가 아닌 '뒤집어쓰다'라고 하면 어떨까. 하여, 신문 기사에 혹은 방송뉴스에서,

 

'아무개 시의 아무개 검사 아무개씨로부터 연 3~4 차례 정기적으로 매회 마다 300백 만 원 상당의 똥물을 뒤집어 쓴 것이 이번 특별 감찰반에 적발되어...'

 

라고 한다면 그 사건을 접하는 검찰은 물론 시민들도 그 검사가 '똥물만큼' 더러운 것을 먹었구나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알아차림과 동시에 행여 '나에게도 저런 똥물이 튈라' 조심하며 살 것이다.

 

하여간 단어 제대로 선택하여 이름 제대로 달아주자. 그것이 장기적으로는 대한민국 검찰은 물론 우리사회를 정의사회로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가, 떡값이 아닌 '똥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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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5-1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뇌물이면 뇌물이지 직업에 따라서 기자나 교사가 받으면 촌지이고 의사가 받으면 리베이트고...일반 공무원이 받아야 뇌물인가 봅니다.뇌물받는 데에도 등급이 있는지...

폭설 2010-05-15 15:0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을진대 부패의 고리를 끊는일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끊을일은 없을것이니 확실한 경고와 징계와 철창과 압수가
필요하겠지요.^^
 

고은광순씨 등 여성계가 호주제 폐지운동을 처음 시작 할 때만 해도 뜻은 좋으나 전 국민에 해당되는 그 일이 과연 그이들의 바람대로 될 것인가 회의적이었다. 그럴 날이 오기는 하겠지만 요원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 밖으로 지난 10년 사이에 의견이 무르익어 결과를 보았다(2008년 1월 1일부터 호주제 폐지 가족관계등록부로).

 

하여 고은광순씨는 이젠 본업으로 돌아가 한의사 일에 충실하나 했는데 '내 제사 안 받기 운동'을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러면 그렇지'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으나, 한편으로는 이왕 하는 김에 좀 더 나아가 내 제사 안 받기보다 '내 대에서 제사 끝내기' 운동을 펼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기본정서가 있는데 조상님에 대한 제사를 내 대에서 끝내자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을 것이다. 수년전 이하천씨가 <나는 제사가 싫다>는 책을 썼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었는데 지금이라고 별반 사정이 나아진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당시에도 이하천씨의 글과 용기에 동의했지만 주변 아짐들에게 물어보면 씨도 안 먹히는 소리라는 게 주류였다.

 

제사를 안 지낸다면야 더없이 좋겠지만 감히 거부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는 것이었다. 혼자만 사는 것도 아니고 어른들 계시고 어른들이 돌아가셨다 해도 형제자매간에도 의견이 다를 수 있는데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주부로 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볼 때 남녀가 만나 결혼생활에서 제일 많이 부딪힐 수 있는 것이 차(제)례 문화였다. 그와 더불어 각종 갈등과 역설적이게도 불효가 파생되는 것을 보았다. 반대로 다른 일로 부부간이나 시댁과의 갈등이 심화되었을 때 제사가 갈등을 증폭시키는 기제가 되는 것도 보았다.

 

예들 들어 가정불화의 원인이 남편에게 (많이)있을 경우 그 갈등이 절정에 달할 경우 여자들은 대개 제사와 차례에 불참한다. 남편도 싫은데 어찌 남편의 조상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제사 음식을 만들 수 있냐는 것이다. 마음 없이 음식을 하는 위선도 싫고 노동을 보태는 것도 싫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럴 경우 불똥은 엉뚱하게 튀어 당사자도 당사자지만 시어른들이 가장 상처를 받는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말할 수 없이 섭섭하다. 젊고 똑똑한 저가 날 무시하는가 싶기도 하고 조상님께 예든 제든 올려야 하는 날만 되면 며느리가 오나 안 오나 근심이 절로 되는 것이다.

 

'우리 때는 요즘 젊은 며느리들보다 훨씬 어려운 일을 많이 겪으면서도 조상모시는 일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요즘 것들은 왜 이러나.'

 

그러면서도 아직 젊어(젊다고 해도 70) 직접 제사 음식을 맡고 계시는 할머니들은 말씀하신다.

 

'나는 이제껏 해왔으니 계속 지내지만 나중 내 죽고 난 다음에는 절대 내 제사 지내지마라'

 

그러나 그 자식은 그럴 수가 없다. 울 어머니는 수십 년 제사 지나느라 고생했는데 자식 된 도리로 제사를 안 지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끊이지 않고 제사는 이어져 왔겠지만 이제는 그 문화에도 변화를 가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제례문화의 최대 피해자는 할머니들

 

오늘날 현대인의 생활이라는 게 다들 고향을 떠나있기 일쑤고, 또 결혼한다 해서 여자가 남자에게 예속되는 관계가 아니다. 예전이라면 아내 쪽이 무조건 참았던 것들도 요즘은 씨도 안 먹힌다. 때문에 저마다 티격태격 살아가는데 장남 부부의 경우 근심이 하나 더 있는 것이다.

 

물론, 사이가 좋은 사람들이야 괜찮겠지만 대부분 가정의 경우 제사는 갈등의 뇌관으로 존재하고 있다. 나이든 할머니들의 경우 몸이 불편하지 않은 한은 자식에게 맡길 수 없어 스스로 제상을 보자니 40~50년 차리는 일이 너무 힘들다. 며느리들이 협조적으로 나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누구는 오고 누구는 안 올 경우 오는 며느리 눈치도 봐야 한다.

 

때문에 어찌 보면 지금의 제례문화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젊은 주부보다 나이든 황혼의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이다. 예전엔 길어야 한 30년만 하면 되는 것을 요즘은 평균수명이 기니 40년, 50년 끝이 없는 것이다. 당신 힘들다고 며느리에게 물려주면 아들부부 사이 나빠질까 염려되어 그러지도 못하고 정말 혼자 서럽다.

 

마음 같아서는 확 관두고 싶지만 40~50년 지내왔는데 죽기 전 까지 몇 년 남았다고 그것을 못한다며 내 팽개칠까. 유종의 미는 고사하고 그간의 공덕마저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라 쉬이 관둘래야 관둘 수가 없다. 또 가문 있는 집의 경우 집안 어른들이 뭐라 하면 찍소리 못하는 게 할머니들 신세다.

 

조상님에 대한 추모, 다른 식으로 하면?

 

그러면, 조상님 제사를 더 이상 지내지 않으면서도 조상님께 송구스럽지 않고 오히려 더 조상님을 복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얼마 전 <한겨레> 조현기자의 글에서 보니, 정토회 법륜스님과 고 법정스님은 돌아가신 속가의 부모님에 대한 추모를 우리네 제례문화와는 다르게 하였는데 무척 신선했다. 즉, 법정스님은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가지 않았다기에 돌아간 분에 대한 추모 같은 것은 초월한 분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매년 '부모님과 할머니 기일이 되면 남모르게 꼭 양로원을 찾아 어려운 노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하였다.

 

법륜스님의 경우는 한발 더 나아가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대신 마을 경로잔치를 하고, 기일 때도 경로잔치를 이어오고'있다고 하였다. 뿐인가. '산악인 정명숙씨는 부친의 기일마다 캄보디아에 우물 하나씩' 파준다고 하였다.

 

요는 상다리 부러지는 그 제사의 형식 말고도 얼마든지 돌아가신 분에 대한 추모는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제사를 지내지 말자는 것이지 조상님에 대한 추모를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물론 형식이란 건 중요하다. 그러나 마음 없는 형식은 공허할 뿐이다. 또, 현실적으로 자손들의 화합보다 분란을 유발하고, 할머니들의 오랜 희생위에 그 형식이 존재한다면 이젠 그 형식을 좀 내려놓아도 되지 않았을까.

 

물론 예외는 있어 사이가 돈독한 집들은 전통의 명맥을 있는 의미도 있고 두루두루 계속 지내도 될 것이나 제사 때마다 분란이 일어나는 집들은 형식 없이 마음만으로 혹은 각자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추모하면 안 될까.

 

그 마음으로 하는 추모가 나이든 분들에 대한 존경으로 이어지고, 힘들게 노년을 살아가고 있는 다른 노인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로 이어 진다면, 제사의 형식은 없어졌는지 몰라도 의미는 살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정말 내로라하는 이름 있는 가문의 경우 그 가문의 종부 되는 사람에게 일종의 '문화자산관리사'란 이름으로 연금 같은 것을 주면 안 될까. 가문이 융숭하여 굳이 나라의 녹이 필요 없다면 그 가문 사람들끼리 일정 회비를 거둬 종부에게 월급을 주면 안 될까. 종부로서의 삶이 하나의 직장이라면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전통문화를 수호하는 자부심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보통 가정의 경우는 각자 가정의 분위기에 맞게 다양한 이벤트를 하면 어떨까. 돌아가신 부모님 생신이나 기일에 한번 씩 만나 등산을 한다든가, 온천을 간다든가 하면서 '단합대회'를 하면 어떨까. 아니면 산악인 정명숙씨처럼 온가족이 정성을 모아 의미 있는 곳에 기부를 하는 것은 어떨까. 추모 이벤트의 소재는 무한할 것이다.

 

오로지 '한 가지' 형식으로, '한 장소'에서 경직되게 추모하는 것 보다 그때그때 가족 구성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 추모를 한다면 조상님도 자손도 두루두루 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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