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주례사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
법륜스님 지음, 김점선 그림 / 휴(休)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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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난 주말 친정 조카의 결혼식이 있었다. 결혼식이 인근 타 도시에서 있었기에 기차타고 가서 참석을 하였다. 그런데 요즘은 결혼식장 이름에다 '00컨벤션 웨딩'이란 말을 붙이는 게 유행인가 보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예식장을 하나 짓고 있는데 이름이 '00컨벤션 웨딩'이었다.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예식장 마음이니 내가 왈가불가 할 필요는 없으렷다~.

아무튼 조금 일찍 간 김에 남의 결혼식도 기웃기웃한 후 조카의 결혼식을 참관했다. 이제 결혼이라는 삶의 두 번째 관문에 들어선 두 젊음은 의욕이 충만해 그 기가 객석에 까지 전해졌다. 부디 순간순간 현명한 판단을 하여 좋은 관계들을 엮어가길 빌어본다.  

내가 온전한 상태에서 상대와 관계를 맺을 때 상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온전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기대하는 것은 없습니다. 기대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상대를 더 잘 이해하고 상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베풀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하면 길 가는 사람 아무하고 결혼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상대에게 덕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고르면, 백 명 중에 고르고 골라도 막상 고르고 나면 제일 엉뚱한 사람을 골라 결국엔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니 결혼생활을 잘하려면 상대에게 덕 보려고 하지 말고, '손해 보는 것이 이익이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새겨야 합니다.-10쪽 

인터넷에 떠돌던 법륜스님의 주례사가 '확장증보' 되어 <스님의 주례사>(한겨레 출판)란 한권의 책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 책에는 아쉽게도 십 수 년 전, '실제상황'이었던  그 원조 주례사의 원문은 빠져 있다. 부록으로라도 실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살짝 일긴 했으나 이 책의 내용 전체가 주례사에 다름 아니니 아쉬움도 잠깐이었다. 

대신 이 책속에는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는 남녀를 앞에 두고 행한 또 한편의 명문주례사가 원문으로 실려였다. 흔히,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면 결과적으로 잘 살기보다 못 살기가 쉬운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본인들도 잘살고 부모의 마음도 풀어지게 하는지 쉽고도 자상하게 설명해 준다.   

하여간 요 몇 년간 청춘남녀를 위하여 상대의 심리를 파 보여주는 연애 지침서 들이 많이 나오곤 했는데 이 책은 그 중 가장 독보적이라 할 수 있겠다. 스님은, 늘 진리를 갈구하는 구도자적 당신의 삶이 준 혜안과 무엇보다, 오랜 '즉문즉설'의 임상경험(?)을 통해 행복한 결혼에 이르는 비법을 통달하신 듯~.

그 통달의 결과물인 이 책은 결혼이라는 관계 맺기를 선택함에 있어서 흔히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오류들을 시원스레 콕 집어준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좋은 조건의 남자는 우선이야 횡재다 싶겠지만 역시 나중에는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고. 왜? '인물도 괜찮고, 돈도 있고 교양도 있는 남자는' 세상 모든 여자들이 좋아하게 되기에 필연적으로 아내 입장에서는 항시 노심초사 할 수밖에 없다고. 때문에 지금 '좋은' 것이 미래에는 '고통'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나중에 설혹 그런 상황이 닥치더라도 현명해 질수 있다고. 아무렴. 
  

특히나 스님은 자녀 아닌 '부부를 중심'에 두는 결혼생활을 강조하였다.   

애를 낳아서 잘못 키워 놓으면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아이가 세 살 때 까지만 애를 우선으로 하고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남편은 아내, 아내는 남편을 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대학에 떨어져도 신경 쓰지 마세요... 아내는 남편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살면 아이들은 전학을 열 번 다녀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자랍니다. 그런데 애를 중심에 놓고 오냐오냐 하면서 자꾸 부부가 헤어지고 갈라지면 아무리 잘해줘도 아이를 망칩니다.....부모에게 불효하고 자식에게만 정성을 쏟으면 반드시 자식이 어긋나고 불효합니다.-36쪽

언뜻 보면 쉬운 것 같지만 우리네 일상을 보면 거의가 자녀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과도한 기대에 자녀가 파김치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녀에게 쏟은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는 대개 자신 아닌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니 갈등은 필연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내게 있는 법. 

우좌간, 행복한 결혼의 비법, 이 한권에 다 들어있다. 결혼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사안의 '원인'과 '결과'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미래에 이러저러한 과보를 받지 않으려면 현재 어떤 인연을 지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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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하는 사이에 시간은 또 이렇게 흘러 10월 달력이 간당간당하다.
한달의 마감은 가스 검침 기록으로 마무리 하게 되는데
그게 너무 자주 다가오는 느낌이다. ^^

콩국수가루는 욕심에 한꺼번에 여러봉지 사 놓았다가 결국은 다 못먹고
냉동실에 아직 남아있다. 한번 서늘해진 날씨는 더이상 따듯해지기는 할지언정
더위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게다가 요즘은 따뜻도 먼 과거라는 듯 춥다.

시월엔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 일요일엔 조카의 결혼식엘 다녀왔다. 김제동 만큼이나 조카가 많다보니
결혼하는 조카도 애 낳는 조카도 쉼이 없다. ㅋㅋ

그리고 지,지,지난 쌍십일엔 상경. 봉은사와 길상사를 친구와 수녀님과 함께 동행했다.
두절다 좋았는데 생각보다 좁았다. 카메라는 역쉬 과장이 심해부러~~

....무의미하고 게으른 나날이라 큰맘먹고 중국어 회화 책을 샀는데
이 마음이 왜 이제야 들었는지 모르겠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중국어도 쉬운것을.
뭐, 그렇다고 열심히 한다는 것은 아니고 중국어가 무지 어려운게 아니라는 것만
알았다고...

매일아침 해야지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만 한시간씩 들어볼까도 꽤를 내어 본다.

무엇보다 익히 듣긴 했어도 막상 확인하니 놀랍다. 부럽다.
중국사람들이 영어로 된 단어들을 다 자기네 말로 바꿔 쓰는 것이.

우린 있던 우리말도 버리고 영어로 대체함에 반해...ㅉ ㅉ.....

아무튼, 가을이 가고 있다. 찬바람이 실실 부니 당장 뼈가 시리고, 어디 바람 막아주는 바지 없나
시장통 옷집들을 기웃거리게  된다.

감기는 한차례 접수해서 가볍게 보내서 안심이나 더 쎈놈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어...ㅎㅎ

머, 하여간 남은 이해의 두달.
중국어 기초회화 책 서너번 왕복해 보는 것이 꿈이라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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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삼성 - 이건희, 그리고 죽은 정의의 사회와 작별하기
김상봉 외 지음 / 꾸리에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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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한 게 2007년이었던가. 불과 엊그제 같은데 그간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양심선언과 관련해 천주교 사제들과 그의 얼굴이 뉴스 화면을 연일 장식할 때 그 뉴스를 본 동네 미용실 원장님은 말했다.

"삼성과 싸워선 이길 수 없다 카이. 아무리 해봐라 되는 강? 두고 봐라, 결국은 용두사미 된다. 덤빌 델 덤벼야지. 재벌들 그러는 것 한두 번 봤나."

지나고 보니 씁쓸하게도 미용실 원장님의 말이 맞았지만, 당시 나는 '설마?' 했다.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가. 80년대 그 어둡던 시절에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묻힐 뻔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밝혀내지 않았던가. 그런 사제단의 저력이라면 이번에도 못 이길 것은 없단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모두 아는 대로 숨겨져 있던 이건희의 비자금을 이건희 주머니에 확실히 꽂아주는 걸로 결론이 났다. 또 이건희는 가벼운 형을 받았다가 속사포 사면을 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했다. 씁쓸하다. 왜 진정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은 힘이 없거나 배신자가 되고 정의의 정반대 쪽 사람들은 승승장구하는지.

가톨릭 미사 도중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오'라며 가슴을 치는 과정이 있다. 뭐 만날 내 탓이란 말인가. 한때 난 '내 탓'이 뭔지도 모르고 가슴을 치면서 그 과정이 너무 형식적이란 생각을 했었는데, 이젠 그 의미를 알겠다. 따지고 보면 이건희와 그에게 포섭된 검찰, 정계, 언론계의 모든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은 다 '내 탓'이고 '우리 탓'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흔히 상대에게 죄를 떠넘기지만 문제는 다 '네 탓'이라고만 해서는 풀리지 않는다. 인정하기 싫어도 진정으로 '내 탓'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변화'할 때 상대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삼성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삼성이 저토록 오만방자하게 국가 위에 군림하는 것은 그들 탓도 있지만 우리의 무지와 욕망 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삼성이라는 괴물을 키운 게 우리라면 삼성이라는 괴물을 괴물이 아닌 선량으로 만드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다. 

 
삼성 불매운동 해도 삼성 안 망한다 

그런 의미에서 <굿바이 삼성>(꾸리에)은 삼성 불매의 의지를 다지는데 좋은 교과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다 아는 대로 지난 봄 출간된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의 광고를 몇몇 언론이 안 받아 준 데서 비롯됐다. 세상에, 돈 줄 테니 책 광고 좀 해 달라는 데 안 해줬단다. 

이후 <경향신문>이 고정 칼럼니스트인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삼성비판' 칼럼을 미게재하면서, 여러가지 후폭풍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진보언론들도 독자들에게 질타를 받은 것이 사실. 덕분에 우리는 삼성이 가장 '긴장'해야 할 존재들 앞에서도 손 안 대고 코 푸는 힘을 가진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경향신문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김상봉 교수의 글을 통해, 소위 진보언론이라 불리는 이들이 '불량 재벌'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내 탓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부수 면에서 만년 4, 5등이 아니라면 그렇게 작아질 만한 이유 또한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그 등수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 것도 우리 탓이니, 뭐, 어쨌든 잘 됐다. 이참에 삼성불매에 시동을 걸자.

"민주화 이후 시장권력은 정치권력의 강압과 속박에서 벗어났음은 물론, 이제 정치권력을 뒤에서 주무르고 있다. 시장 권력에게 민주화는 자본축적과 증식의 고삐 풀린 자유화를 의미할 뿐이었다. 현재 시장권력은 정치 시민사회의 전면에 나서서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 배후에서 '수렴청정'을 하고 있다. 정치권력은 비판받고 교체되기도 하지만, 그 뒤에 턱하니 자리 잡고 있는 시장권력은 자신에 대한 비판도 교체도 용납하지 않는 성스러운 '맘몬'(Mammon)이 되었다. 이 재물신(財物神) 앞에서는 노무현도 이명박도 5년짜리 계약직 교용사장일 뿐이다." - 본문 86쪽

참으로 소름 끼치는 조국 교수의 지적이다. 정치 민주화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줄 알았는데 그 너머에 경제 민주화란 과제가 버티고 있다니 저 돈 있는 자본 권력을 무슨 수로 당한다? 그러나 자본 권력, 시장 권력보다 더 강한 자는 소비자 아니던가. 소비자는 왕. 물건 팔아먹으려고 자본가들이 지어낸 아부이지만 말인즉슨 맞는 말이다. 소비자는 왕임을 자각하자. 김상봉 교수가 깃발을 들고 앞장을 섰다. 

"국가도 노동조합도 삼성의 불법을 바로 잡을 수 없으니 이제 남은 것은 소비자들의 직접 행동뿐이다. 삼성의 권력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에게 자기 제품을 쓰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것이 모든 자본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리하여 아무도 삼성 물건을 쓰지 않는다면 그날로 삼성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삼성이 어떤 기업인지 그 실상을 깨닫고 삼성에 대한 맹목적인 애착과 삼성의 권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 본문 24~25쪽 

우리의 행동에 따라 삼성이 달라진다

이 책에 의하면 스웬덴의 '발렌베리' 그룹은 6대째 약 150년 동안 세습 경영을 하지만 사주 일가는 중요 사안에만 관여하고 경영은 전문 경영인이 한다. 또 '탈세나 분식회계' '불법 상속'이 있을 수 없으며 '이익의 85%를 법인세로 납부하고 공익재단을 통해 사회공헌 활동을 한다'고 한다. 노동조합을 경영의 파트너로 인정함은 당연지사. 때문에 이들은 국민들에게서 존경을 받는다고 한다.

반면, 삼성처럼 무노조를 고집하는 월마트는 미국 내 여러 단체로부터 거센 불매운동의 화살을 맞고 있고, '8500가지'의 제품을 판매하는 영국의 네슬레 또한 '노조 탄압, 아동노동 착취, 환경파괴, 유전자 조작' 등으로 소비자들로부터 불매를 당한다고 한다. 

불매냐 존경이냐. 아니 존경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공정'만 해라. 선택은 삼성의 몫이다. 물론 그 선택의 올바름에 영향을 주는 것은 우리 소비자다. 삼성불매는 엄밀히 말하면 '삼성이 진정 존경받는 건전한 기업으로 거듭나라는 것이지 결코 망하라고 고사 지내자는 것'이 아니다.  검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언론인, 정치인 등 멀쩡한 사람들을 돈으로 포섭해 죄다 비굴한 사람 만들지 말고 '합법적으로 기업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과거 정치 민주화 투쟁 때는 숱한 고문과 억울한 죽음, 감옥행 등의 시련으로 험난한 산을 넘어야 했지만, 경제 민주화(삼성불매)를 위해 우리가 취할 행동은 실로 너무 간단하다. 당장 한 손엔 삼성카드 다른 한 손엔 가위 들고 자르기만 하면 된다. 삼성카드 안 쓴다고 카드결제 못 하는 것 아니지 않은가. 

아무튼, 이 책은 <삼성을 생각한다>와 쌍으로 읽어야 할 책이다. <삼성을 생각한다>가 김용철 변호사 혼자의 고백이라면, 이 책은 김용철의 고백을 읽고 난 후 여러 사람이 쓰는 삼성에 대한 고백록이다. 다들 한 문장 하는 분들이라 문체도 주장도 걸림이 없다.

그중 압권은 다음이다. 

"<한나라당>이 삼성의 본처라면 <민주당>은 삼성의 첩이다. 우리의 진정한 민주주의는 오직 '노동의 아들, 딸로 구성된 정치세력'이 출현했을 때만이 품을 수 있는 미래요 꿈이다." (황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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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피아노 학원을 다녀온 큰애가 말했다.

 

"엄마, 오늘은 어쩌다 보니 2시간 30분 쳤다."

 

(이 아니 반가울수가!) 하여 화색이 만연한 얼굴로 물었었다.

 

"진짜? 어쩐 일로?"

"몰라. 치다보니 갈증 나서 물 한 번씩 먹고 들어가서 또 치곤했는데 어느 순간 어깨와 손목이 아파서 그만 쳐야지 하고 시계를 보니 그렇게 시간이 흘렀었어."

"수고가 많다. 그러나 너무 열내다 지치는 수가 있으니 가끔씩만 그렇게 하고 그냥 남들처럼 해."

 

그런데 한번 그렇게 도를 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그에 대한 인내력이 생기는지 그 후로도 자주 2시간 쳤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큰애는 노는 것 다음으로 적성에 맞는 것이 피아노인가 보다. 다행인 것은 부모인 우리 부부가 선망하는 것이 음악인지라 불감청 이언정 고소원이었음에랴.

 

우선 부모들이 원하는 소박한 수준은 가볍게 넘을 수 있을 것 같아 반갑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가올 질풍노도의 시기, 피아노가 녀석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또한, 피아노와 음악과 음악가에 대한 것으로 언제든 부모와 대화가 가능하다면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하여간 우리 집 아이들은 음악이라는 통로에서 출발하여 이 세계의 다른 영역도 순차적으로 기웃거려 보자는 것에 부모와 무언의 합의를 하였다. 때문에 수시로 변하는 교육정책이나 입시에 연연하지 않기로 하였다. 언제 연연한 적도 없지만.

 

마음을 비우고 보면 아이의 적성은 '그냥' 보임

 

흔히 하는 말로 부모들이 알고 있는 직업은 네 가지로 압축된다. 의사, 검사(판사, 변호사), 교사 그리고 공무원. 부모들이 얼마나 주입했는지 아이들도 이 네 가지에 속하지 못하면 인생 막막하게 되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위 네 가지군의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조용히 관찰해 보면 아이의 적성이 보인다. 애고 어른이고 사람은 그 어디건 꼭 한 군데는 관심이 있기 마련이다.

 

한 친구의 딸은 과자나 빵 만드는데 흥미를 갖고 있다. 처음엔 친구가 재미삼아 초코칩 쿠키를 만들어 주었는데 친구의 딸은 그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는지 스스로 만들겠다고 나섰다. 

 

하여, 고사리 손이지만 그것도 한 삼년 만드니 요즘은 초코칩 과자만큼은 선수가 다 되어 제과점 수준에 뒤지지 않는다. 다른 식빵이나 크로와상 등은 만들기는 하는데 빵집의 상품과 같은 수준은 안 된다고 하였다. 나는 친구를 만날 때 마다 묻곤 한다.

 

"제 아직도 과자 굽니? 지겹지 않은감?"

"그래. 재미있나봐. 이제는 블로그 같은데서 만드는 방법도 스스로 알아보고 시도하고 그러네. 엄마인 나는 영업사원으로서 거래처를 뚫어줘야 할 판이야."

 

"그래? 그렇다면 초등 졸업 때까지 제과 제빵 다 떼라고 해. 그러면 네가 장학금 준다고 하고.^^ 그리고 중학교 올라가서도 여전히 재미있어하면 창작하라고 해. 저만의 디자인으로 빵을 만드는 거야. 그래서 빵에다 근사한 이름 하나 지어서 붙이면 되지 별 거 있겠니?"

 

"단순히 재미로 끝내더라도 초등시절 이런 저런 빵과 과자를 만들어 보는 것은 좋은 추억이 될 거야. 그 만드는 과정 속에서 나름 신기함도 느끼고 요령이나 지혜가 마음에 쌓이기도 하고…."

 

또 다른 친구아이의 경우 평소 수줍음이 많고 내향적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이 아이는 글쓰기를 잘한다고 하였다. 엄마인 친구가 봐도 '음 제법인데'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였다.  독후감이나 일기쓰기를 힘들어 하거나 귀찮아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친구의 아이는 빼곡히 풍부한 표현을 썩어가며 쓰기에 담임선생님도 감탄을 했다고.

 

그 얘기를 듣자 과자 굽는 아이 엄마와 나는 동시에 맞장구를 쳤다.

 

"바로 너를 닮았네. 학창시절 시를 끼적끼적 하다 만 그 흔적이 너의 딸에게 투영 된 거네. 잘해봐."

"둘째는 생각도 못했는데 학교공부를 잘하는 것 같아."

 

우린 또 맞장구를 쳤다.

 

"그것도 너 닮았네. 공부 슬쩍 하고도 성적은 쑥쑥 잘 나오고 말야."

 

마무리

 

공부 잘 하는 순서로 줄 세우자면 과자 굽는 아이, 글 잘 쓰는 아이, 피아노 치는 아이는 학교현장에서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한다. 주목이 다 뭐냐.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 찍혀있다. 과자 잘 구우면 뭐하나 성적은 엉망인데. 글 잘 쓰면 뭐하나, 피아노 잘 치면 뭐하나 공부도 잘한다면 모를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과자 잘 굽는 아이도 칭찬받아 마땅하고 피아노 잘 치는 아이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축구 잘 하는 아이도, 그림 잘 그리는 아이도 칭찬받아 마땅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도 물론 그 성실함을 높이 사줄 만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도 현실이 안 받쳐 준다고라? 안 받쳐 준다고 해도 이제 더 이상은 남탓 세상 탓 하지 말고 학부모 스스로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일류대에다 무수한 자격증 덤으로 얹어도 취직은 곤란하다. 그러니 아이들 각자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고 부모가 관여해야 될 부분은 타인에 대한 배려나 검소한 생활 등에 대한 지도가 아닐까 싶다.

 

우좌간, 자식은 부모의 속성을 물려받는 것 같다. 거기다 몇 가지 스스로 더 타고 나주면 좋고 덤이 없어도 그만, 누굴 탓하랴. 아이의 적성이 안 보이면 우선 부모인 자신의 적성이나 관심분야가 뭔가를 살펴볼 일이다.

 

'욕심' 분야가 아닌 관심분야 말이다. 분명 한두 가지는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모 자신들의 적성을 참고하며 욕심 없이 아이를 관찰하면 4, 5학년 정도 되면 아이의 성향이나 적성이 대충은 파악되는 것 같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이 마음가는 대로 응원해 줄 수도 지원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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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지음 / 정토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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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즉문즉설 대구강연에서 2000석을 꽉 메운 좌중을 훑어보며 법륜스님은 말했다.

 

"여기 오신 분 중 결혼 안 한 사람 손들어 보세요."

 

앞자리에 앉았던지라 뒤를 돌아 둘러보니 수십 명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기혼자들에 비해 적은 수였으나 나름 간절한 마음을 갖고 지혜의 한 말씀 듣고자 찾아 왔을 터인데 스님의 답변은 의외로 단 한 줄이었다.

 

"결혼하지 마세요!"

 

이에 좌중의 기혼자들은 순간 일제히 '푸핫~' 뿜었다. 비혼들은 영문을 몰라 했지만 기혼자들은 결혼 그 하나로 모든 갈등과 고민이 파생됨을 알기에 공감했던 것이다. 한차례 웃음이 멎자 스님은 어리둥절한 비혼들에게 한 소절 더 덧붙인 문장으로 말하였다.

 

"결혼 하지 마세요, 단 수행하기 전까지는, 배려하기 전까지는."

 

결혼 10년차가 넘어가니 나름 결혼생활에 대한 비법 아닌 비법을 말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스님 말대로 '배려'에 있는 것 같다. '서로서로' 배려만 한다면 괴로울 일이 별로 없다. 어느 한쪽만 배려해도 안 되고 서로서로 상황 봐가며 오늘은 내가 양보하고 다음엔 상대가 양보하다 보면 싸움의 기술도 생기고 더 나아가면 '니가 다 이기세요'라며 굳이 내 방식을 고집하고 싶어지지도 않게 된다.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 싶지만 결혼하고 나면 이제 자식만 낳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지요. 자식을 낳고 나면 이젠 우리아이 좋은 대학 갔으면, 좋은 취직자리 얻었으면, 좋은 며느리 사위 봤으면, 손자 손녀 봤으면… 욕심이 끝이 없지요. 따지고 보면 다 이 욕심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그러면 욕심은 어디에서 오나? 욕심은 어디에서 올까? 알고 나면 평범한 이 답을 나는 40여 년 동안 모르고 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이 살아가면서 욕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터무니없는 욕심이라면 몰라도 '건전한' 욕심이라면 가져도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였다. 이거나 그거나 다 욕심은 욕심일 뿐인데.

 

아무튼, 우리를 괴롭게 하는 이 욕심(욕망)은 왜 생기고 어디에서 올까. 스님(원조는부처님^^)은 '무지(無知)'에서 온다고 하였다. 즉, '참 진리'를 모르는 '무지' 때문에 욕심이 생긴다고 하였다. '무지'라굽쇼? 나는 정수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아하, 정말 그렇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처음 듣는 말도 아닐 텐데 유독 내 나이 40대에 맞춤한 듯 꽂히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러지 않고 여전히 이런저런 욕심을 부리며 살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금 이 순간 소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 상황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백일의 약속, 백일의 기도

 

그러면, 지금 이 순간,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스님은 거창 할 것 없이 우선 백일동안 기도를 해보자고 한다. '이치를 깨치고, 습관을 거슬러 이겨, 꾸준히 정진'하기 위해 우선 백일 동안 먼저 해 보자고. 그 형식은 하루 세 가지를 하는데, 즉, 다음과 같다.

 

1. 108배와 명상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한 시간의 마음 챙김

2. 고통 받는 이웃을 살리는 천원의 나눔

3. 하루 한 가지 세상을 밝히는 선행

 

108배는 불교 신자가 아니라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무슨 댄스나 에어로빅에 비하면 동작이 어려운 것도 아니니 마음만 먹는다면 운동하는 셈치고 해봐도 손해 볼일은 없을 것이다. 천원의 나눔 역시 하자면 쉽고, 한 가지 선행은 거창 할 것 없이 만약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에게 칭찬 하나, 이름 한번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세 가지를 행하면서 백일을 기도하면 자신의 '꼴을 알게' 된다고 하는데 자신의 꼴이 어떤지 궁금하지 않으신가. 나아가 이렇게 3년을 기도하면? 자신의 '업'을 알게 되고, 사람이 (좋게)변하니 운명을 (능히) 바꾸고,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하니 가다 쉬어도 본전을 넘을 테니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터.

 

법륜 스님은 <기도>(정토출판)라는 신간을 내고 현재 즉문즉설 순회 강연중이시다. 9월 5일 (9시 40분 대전무역전시관에서) 즉문즉설과 더불어 백일기도 '입재식'을 한다니 지금 괴로운 사람은 피서 가는 셈치고 한번 가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어보라. 그 어떤 청량음료보다 시원한 순간을 맞을 것이다.

 

굳이 현장에 가지 않더라도 매일 아침 불교TV에서 9시 30분에 시작하여 15분 정도 하는 스님의 즉문즉설 녹화방송을 꾸준히 보는 것도 삶에 피가 되고 살이 되고….(웃음) 이러니 다른 종교를 가지신 분들이 오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개인적으로) 정기적으로 절에 다니는 불교 신자는 아니다. 종교에 대해서라면 리처드도킨스에 혹하는 편.

 

그렇다 해도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 등은 인류의 무지를 밝혀주는 아주 큰 등불이자 스승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저 감탄 할 뿐이다. 2500년, 2000년 전에 어쩜 그리 모두에게 자비롭고 평등하고 사랑이 가득한 설법들을 하셨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들의 말씀을 잘 못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도 어쩜!

 

마지막으로 법륜스님의 한 말씀.

    

"이치를 모르고 길을 가는 것은 길을 모르고 길을 가는 것과 같고, 이치를 알고도 가지 않는 것은 길을 알고도 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위의 말을 4대강과 언론에 비추면 4대강 사업은 이치를 모르고 길을 가는 것과 같고, 언론은 이치를 알고도 길을 가지 않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PD수첩>이 있어 우리는 간신히 숨을 쉴 수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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