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와 인근 초등학교에서 축구를 하며 노는데 큰애가 나를 발견하고는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왔다. 그런데 다들 손에 캔 음료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날도 어두워지는데 웬 차가운 음료?' 하며 한마디 넣으려는데 큰애가 말을 가로챘다.

"엄마, 이거 ㅇㅇ이 사준거다."

"왜?"

"세뱃돈 두둑이 받아서 한턱 낸 거다. 호호."

"얼마나 받았길래?"

"몰라, 한 20만원 쯤 되나봐."

"할머니께 안드렸대?"

"응."

큰애의 친구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직장 때문인지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는데 명절을 맞아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은 부모님과 친척들이 '배추 잎' 한 두 장 씩 쥐어준 것을 모으니 그렇게 되었나 보았다. 나는 음료수 사줘 고맙단 말을 하면서 ㅇㅇ에게 세뱃돈 할머니에게 맡겨 저금하고 조금만 타서 쓰라고 하니 아이가 '네~' 하였다.

불과 두해 전 미국 발 금융위기 때만 해도 만 원 짜리 세뱃돈이 자취를 감추던데 그새 또 풀린 것인지 우리 아이들만 해도 친할머니, 외할머니, 외삼촌, 이모, 큰아빠 등에게서 세뱃돈을 두둑이 받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요즘 것들은 세뱃돈을 주면 거절하는 품새도 없이 우렁찬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한 마디 하고는 주머니에 찔러 넣기 바빴다.

말만 '고맙습니다'이지 고마운 것도 모르고 명절날만 되면 으레 생기는 것인 줄 알고 둘째의 경우 어쩌다 천 원짜리를 주는 분을 만나면 '에이, 천원이잖아' 하며 손에서 털어내는 불경을 저지르기도 한다. 해서 매번 명절이면 세뱃돈을 주시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 차례 '교육'을 하는데도 현장에만 서면 돈에 눈이 멀어 사양의 말은 까먹고 '고맙습니다'란 말과 손이 먼저 튀어나오기 일쑤다.

그리고 자기 손에 들어왔으므로 당연히 자기 돈이라며 권리행사를 하려했다. 해서 나름 규칙을 정하였다. 돈을 모르던 어릴 때는 아이들이 받은 용돈은 자연스레 수거해서 저금통에 넣었으나 돈맛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고물을 조금 떨어뜨려 주어야 했다. 일단은 저금통을 앞에 두고 부모인 우리가 지켜보는 앞에서 저금통에 직접 넣으라고 한다.

그런 다음 예를 들어 10만원을 넣었으면 내 지갑에서 5천 원 정도 준다. 어른들 입장에서 보면 10만원 빼앗기고 5천원 받으면 너무 손해다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초등생 입장에서는 5천원도 큰 돈이므로 충분히 만족한다. 물론 나중에 중고등학생이 되면 10만원이면 한 2~3만원 정도로 정산해 줄 생각이다. 아니면 문화상품권으로 2~3만원 주든지 할 것이다.

아이가 받은 용돈이니 아이 스스로 하게 놔둔다?

언젠가 이웃 애기 엄마랑 얘기하던 중, 6살 유치원생인 딸이 하도 손 전화를 사 달라고 해서 '그러면 니 세뱃돈으로 사라'며 허락하였다고 하길래 세뱃돈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십여 만원이었다. 물론 6살이니 만큼 그것을 쓰지는 못하고 나름 꼼꼼하게 보관하였다지만 어린아이에겐 너무 큰 돈임에랴.

그런데, 어른들이 세뱃돈 내지 용돈을 줄 때는 나름 알뜰하게 쓰길 바라며 주는 것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중고등 학생을 둔 부모들의 경우 평소에는 사달라고 졸라도 안 사주던 것을 명절 용돈으로 산다면 '그러렴' 하며 쉽게 허락하는 경향이 있는데 글쎄 과연 괜찮은 것일까.

명절 용돈(세뱃돈)으로 평소에 사고 싶었으나 못 샀던 게임기 사고, 유명 신발 사고, 최신형 손전화 사고, MP3사고 정말 괜찮을까. 사는 당시에 '손맛'은 느낄 수 있을지 모르나 용돈을 주신 분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은 글쎄?

오히려 굳이 사줄 것이면 그것들은 부모들 돈으로 사주고 어른들이 준 돈은 저축을 하거나 책이나 공연을 사고 보게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돈을 벌지도 못하는 학생에게 고가의 물건을 몸에 걸치고 손에 갖게 하는 것은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경제 교육을 달리 할게 아니라 내 몸에 걸치고 내 손에 만지는 물건의 가격 자체가 살아있는 '경제교육'이라고 본다. 내 경우, 아이들에게 비싼 신발, 비싼 옷, 비싼 물건은 절대로 사주지 않는다. 사주고 싶어도 참는다. 안 사줘도 불만 없다. 원래 애들은 그런데 관심 없다. 부모들이 알게 모르게 심어줘서 그럴 뿐.

그리고 어린 아이가 자라는데 비싼 물건은 필요 없다. 오히려 노는데 방해가 된다. 또 어렸을 적부터 비싼 물건으로 도배를 해주면 커서도 그 습관 못 버려서 못 먹고 살아도, 빚을 지고 살아도 유명 상표를 선호하던데 세상에 그보다 더 어리석은 선택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10만 원 짜리가 천원으로, 천만 원짜리가 10만 원 정도로 보이는 부자라면 오히려 비싼 물건을 싸서 세금 많이 내 주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다음에는 소박하게 사는 게 맞다고 본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월급을 이삼백, 혹은 삼사백 받으면서 월 사교육비로 100만원을 쓰는 것은 100만 원짜리 점퍼를 '매달' 사주는 것과 같은 경제관념을 아이에게 심어준다고 본다.

결론은,

세뱃돈. 잘 쓰면 약이 되나 잘못 쓰면 씀씀이를 키우는 부작용의 계기가 될 수도 있기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 내 경우 명절이면 문화상품권을 미리 준비했다가 나눠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문화상품권도 좋지만 나이에 맞게 책을 선물해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는 몇몇 조카들에게는 책을 사줬다. 그랬더니 반응이 의외로 괜찮았다. 해서 내년부터는, 명절 앞두고 택배아저씨 발등에 불 떨어진 듯 바쁠 때 말고, 미리 한 달 전쯤에 책을 사서 편지도 한통 써서 준비해 둘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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