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피아노 학원을 다녀온 큰애가 말했다.

 

"엄마, 오늘은 어쩌다 보니 2시간 30분 쳤다."

 

(이 아니 반가울수가!) 하여 화색이 만연한 얼굴로 물었었다.

 

"진짜? 어쩐 일로?"

"몰라. 치다보니 갈증 나서 물 한 번씩 먹고 들어가서 또 치곤했는데 어느 순간 어깨와 손목이 아파서 그만 쳐야지 하고 시계를 보니 그렇게 시간이 흘렀었어."

"수고가 많다. 그러나 너무 열내다 지치는 수가 있으니 가끔씩만 그렇게 하고 그냥 남들처럼 해."

 

그런데 한번 그렇게 도를 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그에 대한 인내력이 생기는지 그 후로도 자주 2시간 쳤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큰애는 노는 것 다음으로 적성에 맞는 것이 피아노인가 보다. 다행인 것은 부모인 우리 부부가 선망하는 것이 음악인지라 불감청 이언정 고소원이었음에랴.

 

우선 부모들이 원하는 소박한 수준은 가볍게 넘을 수 있을 것 같아 반갑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가올 질풍노도의 시기, 피아노가 녀석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또한, 피아노와 음악과 음악가에 대한 것으로 언제든 부모와 대화가 가능하다면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하여간 우리 집 아이들은 음악이라는 통로에서 출발하여 이 세계의 다른 영역도 순차적으로 기웃거려 보자는 것에 부모와 무언의 합의를 하였다. 때문에 수시로 변하는 교육정책이나 입시에 연연하지 않기로 하였다. 언제 연연한 적도 없지만.

 

마음을 비우고 보면 아이의 적성은 '그냥' 보임

 

흔히 하는 말로 부모들이 알고 있는 직업은 네 가지로 압축된다. 의사, 검사(판사, 변호사), 교사 그리고 공무원. 부모들이 얼마나 주입했는지 아이들도 이 네 가지에 속하지 못하면 인생 막막하게 되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위 네 가지군의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조용히 관찰해 보면 아이의 적성이 보인다. 애고 어른이고 사람은 그 어디건 꼭 한 군데는 관심이 있기 마련이다.

 

한 친구의 딸은 과자나 빵 만드는데 흥미를 갖고 있다. 처음엔 친구가 재미삼아 초코칩 쿠키를 만들어 주었는데 친구의 딸은 그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는지 스스로 만들겠다고 나섰다. 

 

하여, 고사리 손이지만 그것도 한 삼년 만드니 요즘은 초코칩 과자만큼은 선수가 다 되어 제과점 수준에 뒤지지 않는다. 다른 식빵이나 크로와상 등은 만들기는 하는데 빵집의 상품과 같은 수준은 안 된다고 하였다. 나는 친구를 만날 때 마다 묻곤 한다.

 

"제 아직도 과자 굽니? 지겹지 않은감?"

"그래. 재미있나봐. 이제는 블로그 같은데서 만드는 방법도 스스로 알아보고 시도하고 그러네. 엄마인 나는 영업사원으로서 거래처를 뚫어줘야 할 판이야."

 

"그래? 그렇다면 초등 졸업 때까지 제과 제빵 다 떼라고 해. 그러면 네가 장학금 준다고 하고.^^ 그리고 중학교 올라가서도 여전히 재미있어하면 창작하라고 해. 저만의 디자인으로 빵을 만드는 거야. 그래서 빵에다 근사한 이름 하나 지어서 붙이면 되지 별 거 있겠니?"

 

"단순히 재미로 끝내더라도 초등시절 이런 저런 빵과 과자를 만들어 보는 것은 좋은 추억이 될 거야. 그 만드는 과정 속에서 나름 신기함도 느끼고 요령이나 지혜가 마음에 쌓이기도 하고…."

 

또 다른 친구아이의 경우 평소 수줍음이 많고 내향적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이 아이는 글쓰기를 잘한다고 하였다. 엄마인 친구가 봐도 '음 제법인데'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였다.  독후감이나 일기쓰기를 힘들어 하거나 귀찮아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친구의 아이는 빼곡히 풍부한 표현을 썩어가며 쓰기에 담임선생님도 감탄을 했다고.

 

그 얘기를 듣자 과자 굽는 아이 엄마와 나는 동시에 맞장구를 쳤다.

 

"바로 너를 닮았네. 학창시절 시를 끼적끼적 하다 만 그 흔적이 너의 딸에게 투영 된 거네. 잘해봐."

"둘째는 생각도 못했는데 학교공부를 잘하는 것 같아."

 

우린 또 맞장구를 쳤다.

 

"그것도 너 닮았네. 공부 슬쩍 하고도 성적은 쑥쑥 잘 나오고 말야."

 

마무리

 

공부 잘 하는 순서로 줄 세우자면 과자 굽는 아이, 글 잘 쓰는 아이, 피아노 치는 아이는 학교현장에서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한다. 주목이 다 뭐냐.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 찍혀있다. 과자 잘 구우면 뭐하나 성적은 엉망인데. 글 잘 쓰면 뭐하나, 피아노 잘 치면 뭐하나 공부도 잘한다면 모를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과자 잘 굽는 아이도 칭찬받아 마땅하고 피아노 잘 치는 아이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축구 잘 하는 아이도, 그림 잘 그리는 아이도 칭찬받아 마땅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도 물론 그 성실함을 높이 사줄 만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도 현실이 안 받쳐 준다고라? 안 받쳐 준다고 해도 이제 더 이상은 남탓 세상 탓 하지 말고 학부모 스스로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일류대에다 무수한 자격증 덤으로 얹어도 취직은 곤란하다. 그러니 아이들 각자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고 부모가 관여해야 될 부분은 타인에 대한 배려나 검소한 생활 등에 대한 지도가 아닐까 싶다.

 

우좌간, 자식은 부모의 속성을 물려받는 것 같다. 거기다 몇 가지 스스로 더 타고 나주면 좋고 덤이 없어도 그만, 누굴 탓하랴. 아이의 적성이 안 보이면 우선 부모인 자신의 적성이나 관심분야가 뭔가를 살펴볼 일이다.

 

'욕심' 분야가 아닌 관심분야 말이다. 분명 한두 가지는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모 자신들의 적성을 참고하며 욕심 없이 아이를 관찰하면 4, 5학년 정도 되면 아이의 성향이나 적성이 대충은 파악되는 것 같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이 마음가는 대로 응원해 줄 수도 지원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기도 - 내려놓기
법륜스님 지음 / 정토출판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21일 즉문즉설 대구강연에서 2000석을 꽉 메운 좌중을 훑어보며 법륜스님은 말했다.

 

"여기 오신 분 중 결혼 안 한 사람 손들어 보세요."

 

앞자리에 앉았던지라 뒤를 돌아 둘러보니 수십 명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기혼자들에 비해 적은 수였으나 나름 간절한 마음을 갖고 지혜의 한 말씀 듣고자 찾아 왔을 터인데 스님의 답변은 의외로 단 한 줄이었다.

 

"결혼하지 마세요!"

 

이에 좌중의 기혼자들은 순간 일제히 '푸핫~' 뿜었다. 비혼들은 영문을 몰라 했지만 기혼자들은 결혼 그 하나로 모든 갈등과 고민이 파생됨을 알기에 공감했던 것이다. 한차례 웃음이 멎자 스님은 어리둥절한 비혼들에게 한 소절 더 덧붙인 문장으로 말하였다.

 

"결혼 하지 마세요, 단 수행하기 전까지는, 배려하기 전까지는."

 

결혼 10년차가 넘어가니 나름 결혼생활에 대한 비법 아닌 비법을 말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스님 말대로 '배려'에 있는 것 같다. '서로서로' 배려만 한다면 괴로울 일이 별로 없다. 어느 한쪽만 배려해도 안 되고 서로서로 상황 봐가며 오늘은 내가 양보하고 다음엔 상대가 양보하다 보면 싸움의 기술도 생기고 더 나아가면 '니가 다 이기세요'라며 굳이 내 방식을 고집하고 싶어지지도 않게 된다.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 싶지만 결혼하고 나면 이제 자식만 낳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지요. 자식을 낳고 나면 이젠 우리아이 좋은 대학 갔으면, 좋은 취직자리 얻었으면, 좋은 며느리 사위 봤으면, 손자 손녀 봤으면… 욕심이 끝이 없지요. 따지고 보면 다 이 욕심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그러면 욕심은 어디에서 오나? 욕심은 어디에서 올까? 알고 나면 평범한 이 답을 나는 40여 년 동안 모르고 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이 살아가면서 욕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터무니없는 욕심이라면 몰라도 '건전한' 욕심이라면 가져도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였다. 이거나 그거나 다 욕심은 욕심일 뿐인데.

 

아무튼, 우리를 괴롭게 하는 이 욕심(욕망)은 왜 생기고 어디에서 올까. 스님(원조는부처님^^)은 '무지(無知)'에서 온다고 하였다. 즉, '참 진리'를 모르는 '무지' 때문에 욕심이 생긴다고 하였다. '무지'라굽쇼? 나는 정수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아하, 정말 그렇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처음 듣는 말도 아닐 텐데 유독 내 나이 40대에 맞춤한 듯 꽂히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러지 않고 여전히 이런저런 욕심을 부리며 살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금 이 순간 소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 상황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백일의 약속, 백일의 기도

 

그러면, 지금 이 순간,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스님은 거창 할 것 없이 우선 백일동안 기도를 해보자고 한다. '이치를 깨치고, 습관을 거슬러 이겨, 꾸준히 정진'하기 위해 우선 백일 동안 먼저 해 보자고. 그 형식은 하루 세 가지를 하는데, 즉, 다음과 같다.

 

1. 108배와 명상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한 시간의 마음 챙김

2. 고통 받는 이웃을 살리는 천원의 나눔

3. 하루 한 가지 세상을 밝히는 선행

 

108배는 불교 신자가 아니라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무슨 댄스나 에어로빅에 비하면 동작이 어려운 것도 아니니 마음만 먹는다면 운동하는 셈치고 해봐도 손해 볼일은 없을 것이다. 천원의 나눔 역시 하자면 쉽고, 한 가지 선행은 거창 할 것 없이 만약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에게 칭찬 하나, 이름 한번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세 가지를 행하면서 백일을 기도하면 자신의 '꼴을 알게' 된다고 하는데 자신의 꼴이 어떤지 궁금하지 않으신가. 나아가 이렇게 3년을 기도하면? 자신의 '업'을 알게 되고, 사람이 (좋게)변하니 운명을 (능히) 바꾸고,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하니 가다 쉬어도 본전을 넘을 테니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터.

 

법륜 스님은 <기도>(정토출판)라는 신간을 내고 현재 즉문즉설 순회 강연중이시다. 9월 5일 (9시 40분 대전무역전시관에서) 즉문즉설과 더불어 백일기도 '입재식'을 한다니 지금 괴로운 사람은 피서 가는 셈치고 한번 가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어보라. 그 어떤 청량음료보다 시원한 순간을 맞을 것이다.

 

굳이 현장에 가지 않더라도 매일 아침 불교TV에서 9시 30분에 시작하여 15분 정도 하는 스님의 즉문즉설 녹화방송을 꾸준히 보는 것도 삶에 피가 되고 살이 되고….(웃음) 이러니 다른 종교를 가지신 분들이 오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개인적으로) 정기적으로 절에 다니는 불교 신자는 아니다. 종교에 대해서라면 리처드도킨스에 혹하는 편.

 

그렇다 해도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 등은 인류의 무지를 밝혀주는 아주 큰 등불이자 스승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저 감탄 할 뿐이다. 2500년, 2000년 전에 어쩜 그리 모두에게 자비롭고 평등하고 사랑이 가득한 설법들을 하셨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들의 말씀을 잘 못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도 어쩜!

 

마지막으로 법륜스님의 한 말씀.

    

"이치를 모르고 길을 가는 것은 길을 모르고 길을 가는 것과 같고, 이치를 알고도 가지 않는 것은 길을 알고도 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위의 말을 4대강과 언론에 비추면 4대강 사업은 이치를 모르고 길을 가는 것과 같고, 언론은 이치를 알고도 길을 가지 않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PD수첩>이 있어 우리는 간신히 숨을 쉴 수 있는 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콩국수는 20대 초반 한번 먹어보고 팽. 우뭇가사리는 30초반 두어술 뜨고 팽했었다.
뭐 이런 것들을 다 맛있다고 먹고 난리야, 사람들은.

그랬는데 마흔넘어 드디어 나도 콩국수와 우뭇가사리를 먹을수 있게 되었다.
아니, 이렇게 맛있는 것을 왜 그동안 거부했을까. 발단은 이랬다.
아이들을 매개로 알게된 이웃의 지인이 ' 콩국수 한번 해'준다기에 나는
그것이 먹기 싫어 우리집에서 내가 먼저 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니가 먼저 내가먼저 하다가 도저히 그녀의 콩국수를 이길수 없어 내가 졌다.
예전의 나였으면 나 그런것 못먹어 하며 다른것 해달라고 했을 터인데
나이를 먹고 보니 '한번 먹어보자 ' 싶었다.

그래서 콩국수를 먹게 되었는데 어머어머! 너무 맛있었다.

"내가 알기론 콩국수는 비릿한 것이었는데 이 고소함의 정체는 뭥미?"
"땅콩이예요. 흰콩에다 검은콩과  땅콩을 조금 넣어서 갈면 아주 고소하고 맛있어요.
그리고 콩은 살짝 삶아서 비린내를 없애고요."
"그게 다 인가요?"
"네. 믹서기에 물 붓고 갈아서 삶은 국수에 부어먹으면 되요. 간은 소금으로 하고.. 고명으로 오이채 썰어 넣고...끝."

그렇게 쉬운 것이라면 일단 나도 한번 해봐. 하여 점심으로 콩국수를 얻어먹은 저녁
당장 만들어 봤던바. 먹을만 했다. 그런데 믹서기에 가는 것이 번거로웠다.
뭐. 새로운 방법이 없을까 하다 다음날 시장에서 두부파는집을 지나다
미숫가루도 아닌것이 그렇다고 볶은 콩가루도아닌것이 있어 혹시나 싶어
'이거 뭐예요?' 물어보니 콩국수 가루라고 하였다.

"정말 콩국수 해먹는 그거예요?"
"네 . 집에 가서 물에 타서 바로 해 먹으면 되니 쉽죠."

하여, 당장 샀고 그날 부로 사흘이 멀다하고 콩국수 가루를 사다가 콩국수를 해먹고 있다.
나아가 가만 생각해 보니 우뭇가사리 국물도 콩국물인것 같아 물어보니
맞았다.

하여 우뭇가사리에도 도전해 보았는데, 세상에, 우뭇가사리도
무척  맛있었다.

나 바보 아냐. 이렇게 맛있는 것들을 마흔넘어서야 겨우 먹어 보다니.
뭐 그래도 뒤늦게 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아무튼, 이 여름 콩국수가 너무 맛있다. 더불어 우뭇가사리도. ㅋㅋ
콩가루를 어떻게 하면 맛있게 만들 수 있는지
그 비법을 배워 내년에는 내손으로 콩쿡수 가루도 만들어 보고 싶다. ^^

(이렇게 쓰고 보니 또 먹고 싶다. 어서 날이 밝고 한낮이 되어, 더위야 물렀거라, 한 뚝배기 말아묵었으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가고 말았네....'로 시작 되는 노래의 제목이 갑자기 떠올라
한소절 해 보려니 그 뒤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7월. 수목장으로 시아버님을 훅 보내드리고 추도의 념으로 근신하며
살아야 마땅하거늘 '불생불멸' 네글자가 그 마음을 희석시켜  그냥 예정대로
놀러갔다. 아이들 데리고 2박 3일  2박 3일 두번 친구집을 전전하고 나니
어느새 7월의 마지막이 되었다.

시부님은 어제부로 서류상으로도 이승의 사람이 아니게 되었는데 아마 다음 세상어느곳에서
별이 되셨으리라.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든 이승의 인연을 끝내고 나면 다음 세계에서는 누구나 부처님과
예수님과 동급이 된다고 본다. 울 아버님도 모든것 내려놓고 영면하시리라 믿는다.^^  

차 사주고  집 사주는 시아버지 보다 며느리들  마음에 짐을 안 주었던 울 시아버지가 제일일세..

.....

시간은 갈수록 더 빨리 흐르는것 같은데 몸은 갈수록 더 게을러지고 나태하기 이를데 없다.
누구는 이 더운 땡볕에 고공 농성을 해야하고  그 아래서 초 한자루 켜는 일도 버거운 나는
환경운동 연합에서 날아오는 문자를 매법 씹고 만다. ㅠㅠ...

7.28 보선. 손 한번 잘 까딱하면 역전할수 있는 것을 우리는 그 기회를 놓쳤다.
한군데도 아닌 여러군데서 놓쳤다.
놓치니, 선량들이 저렇게 이 땡볕에 고생을 하는 구나. ㅠㅠ...

.....

법륜 스님이 새 책을 냈는데 울 동네에서도 드뎌 강연 날짜가 잡혔겄다.
(8월 21일 토 오후 3시 영남대 천마아트센터, 자가용 사절) 스님 말대로 우선 내가
행복해야 남에게도 행복을 전할 것이 아닌가. 내가 행복해야 세상의 행복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닌가. 

 
지난 봄에도 한차례 강연에 갔었는데  '앉아서' 듣는 사람 지루하지 않게
중간중간 유머까지 넣어가면서  장장 3시간 동안 '서서' 말씀을 하셨는데  워매 반하지 않을 도리가 음써~~

약점을 잡아 볼래도 3시간 동안 틀린말이 하나도 음써...
하여, 이번에도 스님의 즉문즉설이 기대된다.
말도 마라. 백문이 불여일청이다. ^^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0-07-31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2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2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녹향>이라. 90년대 초였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책을 통해 대구에 오래된 클래식 음악 감상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여 당시 소설을 읽고 난 후, 대구에 들르면 꼭 한번 찾아봐야지 마음먹었으나 어쩌다 보니 못 가게 되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세기 말 언저리에 조카랑 작심을 하고 한번 찾아 갔었다.

 

그런데 마침 우리가 간 그날은 무지 더운 날이었는데 <녹향>은 여느 찻집과 달리 시원하지가 않았다. 후덥지근한데다 음악마저 묵직하고 비장미가 느껴지는 곡을 틀어놓으니 휴식은커녕 심장의 압박을 느꼈다. 하여 후루룩 주스를 급하게 마시고 30분쯤 앉아 있다가 나왔다.

 

'아무리 고색창연해도 자주 찾기는 글쎄...'하며 <녹향>을 잊었다. 그렇게 쭉 잊고 살았는데 지난 5월 중순쯤 신문을 읽다가 잊었던 <녹향>이라는 두 단어를 보게 되었다. 사연인즉, 녹향을 살리기 위하여 음악가들이 녹향에서 연주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엥? <녹향>이 아직 살아있었단 말인가?'

 

잊고 살았는데.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거늘 그 땅값 비싼 도심 한복판에서 녹향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는 말인가. 심히 놀라웠으며 갑자기 호감이 급상승 했다. 녹향에서는 <아티스트 녹향으로 가다>라는 주제로 6월 한 달과 7월 초순까지 총 18회에 걸쳐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말하자면 일종의 녹향 살리기 '음악 바자회'인 것이다.

 

나는 마음 같아서는 다 가고 싶었지만 거리와 시간을 핑계 대며 일단 피아니스트 강충모씨와 첼리스트 정명화씨의 일정에 예약했다. 그런 다음 강충모씨의 회차 때 나 혼자 가서 분위기를 살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 되는지.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아이들이 지루해해서 음악회 분위기를 망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결론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 무방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첼리스트 정명화씨와 함께 한  날인 지난 6월 22일 아이들을 데리고 일지 감치 녹향을 찾았다. 정명화씨는 다음날 부산에서 연주회가 있어 부산을 가던 길에 어렵게 시간을 낸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소중한 옛것을 너무도 쉽게 갈아 업고 새 건물을 지어올리곤 하는데 이 녹향은 지금 이대로 낡은 이대로, 그대로 보존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실은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녹향은 대한민국 제1호 고전음악 감상실이라는 것이었다. 1946년 이창수 옹이 처음 문을 열었다는데 올해가 2010년이니 만 6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당시 20대 초반에 녹향을 열었던 이창수 할아버지는 팔순 노익장을 과시하며 여전히 녹향을 지키고 계셨다. 

 

<아티스트 녹향으로 가다>는 이제 4번 밖에 남지 않았다. 7월 2일 신상준(바이올리니스트), 3일 주영위(국악지휘자), 5일 은희천(바이올리니스트), 9일 이승호(플루티스트)씨가 녹향의 밤을 꾸민다(저녁 7시30분~9시 T.621-3301).

 

대구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방문해 보시기를. 역사가 느껴지는, 64년이라는 시간 동안 녹향을 고스란히 지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는 현대의 음향기기가 흉내 낼 수 없는 묘한 향기가 묻어났다. 

 

<녹향>. 음악의 고향 <녹향>. 오래도록 존재했으면 좋겠다.

 


첼리스트 정명화

오늘은 나와 동생과 엄마가 버스를 타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대구 어딘가에 있다는 녹향을 찾아갔다.

 

동성아트홀 앞에서 외사촌 누나를 만나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드디어 들어갔다. 아니.... 출입구가 가로 1미터 될까 말까 정도에 출입구가 시작부터 마음을 더욱더 실망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안에는 너무 좁았다.

 

그리고 나를 기다리게 만드는 이 지루한 시간도 도통 흘러갈 생각을 안했다. 시간이 흘러 첼리스트 정명화라는 소리와 함께 어디서 많이 본 동네 슈퍼에서 만난 것 같은 낯익은 얼굴의 50대 아줌마가 등장하였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정명화 선생님이었다. 나와 동생 그리고 앞좌석 유치원 애들 빼고 고막이 터지게 박수를 쳤다. 그리고 나도 책에서 보던 정트리오 중의 한사람이 이런 작은 녹향에서 연주를 하러 왔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직접 듣지 못하고 라디오(시디의 착오)녹음된 것을 계속 들었으나 막판에 어떤 아저씨의 질문으로 직접 첼로를 켜게 되었다. 난 머가 먼질 잘 모르겠다. 그 연주가 끝나고 사인 받고 사진 찍었다.

 

나와 동생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좋아서 안달이 나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 유명한 사람을 이 내 두 눈으로 보아서 이것이 신기하고 자랑스럽다.

 

(초등 5년생 큰애의 소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0-07-03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4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