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피아노 학원을 다녀온 큰애가 말했다.

 

"엄마, 오늘은 어쩌다 보니 2시간 30분 쳤다."

 

(이 아니 반가울수가!) 하여 화색이 만연한 얼굴로 물었었다.

 

"진짜? 어쩐 일로?"

"몰라. 치다보니 갈증 나서 물 한 번씩 먹고 들어가서 또 치곤했는데 어느 순간 어깨와 손목이 아파서 그만 쳐야지 하고 시계를 보니 그렇게 시간이 흘렀었어."

"수고가 많다. 그러나 너무 열내다 지치는 수가 있으니 가끔씩만 그렇게 하고 그냥 남들처럼 해."

 

그런데 한번 그렇게 도를 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그에 대한 인내력이 생기는지 그 후로도 자주 2시간 쳤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큰애는 노는 것 다음으로 적성에 맞는 것이 피아노인가 보다. 다행인 것은 부모인 우리 부부가 선망하는 것이 음악인지라 불감청 이언정 고소원이었음에랴.

 

우선 부모들이 원하는 소박한 수준은 가볍게 넘을 수 있을 것 같아 반갑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가올 질풍노도의 시기, 피아노가 녀석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또한, 피아노와 음악과 음악가에 대한 것으로 언제든 부모와 대화가 가능하다면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하여간 우리 집 아이들은 음악이라는 통로에서 출발하여 이 세계의 다른 영역도 순차적으로 기웃거려 보자는 것에 부모와 무언의 합의를 하였다. 때문에 수시로 변하는 교육정책이나 입시에 연연하지 않기로 하였다. 언제 연연한 적도 없지만.

 

마음을 비우고 보면 아이의 적성은 '그냥' 보임

 

흔히 하는 말로 부모들이 알고 있는 직업은 네 가지로 압축된다. 의사, 검사(판사, 변호사), 교사 그리고 공무원. 부모들이 얼마나 주입했는지 아이들도 이 네 가지에 속하지 못하면 인생 막막하게 되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위 네 가지군의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조용히 관찰해 보면 아이의 적성이 보인다. 애고 어른이고 사람은 그 어디건 꼭 한 군데는 관심이 있기 마련이다.

 

한 친구의 딸은 과자나 빵 만드는데 흥미를 갖고 있다. 처음엔 친구가 재미삼아 초코칩 쿠키를 만들어 주었는데 친구의 딸은 그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는지 스스로 만들겠다고 나섰다. 

 

하여, 고사리 손이지만 그것도 한 삼년 만드니 요즘은 초코칩 과자만큼은 선수가 다 되어 제과점 수준에 뒤지지 않는다. 다른 식빵이나 크로와상 등은 만들기는 하는데 빵집의 상품과 같은 수준은 안 된다고 하였다. 나는 친구를 만날 때 마다 묻곤 한다.

 

"제 아직도 과자 굽니? 지겹지 않은감?"

"그래. 재미있나봐. 이제는 블로그 같은데서 만드는 방법도 스스로 알아보고 시도하고 그러네. 엄마인 나는 영업사원으로서 거래처를 뚫어줘야 할 판이야."

 

"그래? 그렇다면 초등 졸업 때까지 제과 제빵 다 떼라고 해. 그러면 네가 장학금 준다고 하고.^^ 그리고 중학교 올라가서도 여전히 재미있어하면 창작하라고 해. 저만의 디자인으로 빵을 만드는 거야. 그래서 빵에다 근사한 이름 하나 지어서 붙이면 되지 별 거 있겠니?"

 

"단순히 재미로 끝내더라도 초등시절 이런 저런 빵과 과자를 만들어 보는 것은 좋은 추억이 될 거야. 그 만드는 과정 속에서 나름 신기함도 느끼고 요령이나 지혜가 마음에 쌓이기도 하고…."

 

또 다른 친구아이의 경우 평소 수줍음이 많고 내향적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이 아이는 글쓰기를 잘한다고 하였다. 엄마인 친구가 봐도 '음 제법인데'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였다.  독후감이나 일기쓰기를 힘들어 하거나 귀찮아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친구의 아이는 빼곡히 풍부한 표현을 썩어가며 쓰기에 담임선생님도 감탄을 했다고.

 

그 얘기를 듣자 과자 굽는 아이 엄마와 나는 동시에 맞장구를 쳤다.

 

"바로 너를 닮았네. 학창시절 시를 끼적끼적 하다 만 그 흔적이 너의 딸에게 투영 된 거네. 잘해봐."

"둘째는 생각도 못했는데 학교공부를 잘하는 것 같아."

 

우린 또 맞장구를 쳤다.

 

"그것도 너 닮았네. 공부 슬쩍 하고도 성적은 쑥쑥 잘 나오고 말야."

 

마무리

 

공부 잘 하는 순서로 줄 세우자면 과자 굽는 아이, 글 잘 쓰는 아이, 피아노 치는 아이는 학교현장에서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한다. 주목이 다 뭐냐.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 찍혀있다. 과자 잘 구우면 뭐하나 성적은 엉망인데. 글 잘 쓰면 뭐하나, 피아노 잘 치면 뭐하나 공부도 잘한다면 모를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과자 잘 굽는 아이도 칭찬받아 마땅하고 피아노 잘 치는 아이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축구 잘 하는 아이도, 그림 잘 그리는 아이도 칭찬받아 마땅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도 물론 그 성실함을 높이 사줄 만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도 현실이 안 받쳐 준다고라? 안 받쳐 준다고 해도 이제 더 이상은 남탓 세상 탓 하지 말고 학부모 스스로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일류대에다 무수한 자격증 덤으로 얹어도 취직은 곤란하다. 그러니 아이들 각자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고 부모가 관여해야 될 부분은 타인에 대한 배려나 검소한 생활 등에 대한 지도가 아닐까 싶다.

 

우좌간, 자식은 부모의 속성을 물려받는 것 같다. 거기다 몇 가지 스스로 더 타고 나주면 좋고 덤이 없어도 그만, 누굴 탓하랴. 아이의 적성이 안 보이면 우선 부모인 자신의 적성이나 관심분야가 뭔가를 살펴볼 일이다.

 

'욕심' 분야가 아닌 관심분야 말이다. 분명 한두 가지는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모 자신들의 적성을 참고하며 욕심 없이 아이를 관찰하면 4, 5학년 정도 되면 아이의 성향이나 적성이 대충은 파악되는 것 같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이 마음가는 대로 응원해 줄 수도 지원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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