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일회 一期一會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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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머리 깎고 승복을 하나 얻어 입고 갔더니 깜짝 놀라시며 구참(묵은 중) 같다고 하셨습니다. 머리를 깎으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로 거리를 걸어서 한 바퀴 돌았던 기억이 납니다. - 본문 198쪽 

스님 되는 일이 그렇게 좋으셨나요? 그 좋던 스님 생활을 그만두고 법정 스님이 우리 곁을 떠났다. 일기일회. 모든 것은 생애 단 한번뿐. 매일 똑같은 날이 반복되는 듯해도 어제와 오늘은 분명 다르기에,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고 하시며 스님은 갔다. 

이 책 <일기일회>(문학의 숲 펴냄)를 사놓고 오늘내일 읽어야지 하는데 스님이 입적하셨다. 스님의 '마무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우리가 본대로다. 법정 스님은 만인의 가슴을 향기롭게 물들이고 소박하게 떠났다. 
    

책 절판하라는 말씀에 부랴부랴 책꽂이를 뒤져보니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와 <버리고 떠나기> 그리고 이 <일기 일회>뿐이네. 흐린 보랏빛의 <물소리 바람소리>도 분명 있었는데 누굴 주었는지 못 찾겠다. 

많은 사람들이 <무소유>를 말하지만 나는 20대 시절 <텅빈 충만>으로 처음 법정 스님을 만났다. 텅 빈 충만. 그 형용모순이 주는 감동과 따뜻하고 정갈한 글에서 한없는 충만감을 느꼈다. 

그러나 당시는 20대라 당장은 나 자신을 그렇게 비우고, 또, 그렇게 충만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허나 이 다음 언젠가는 그 비움의 미학을 다시 꺼내어 내 삶의 등불로 삶아야지 하며 '텅, 빈, 충, 만' 네 글자만은 가슴에 새겼다.

그러다 내 나이 30대는 가톨릭 사람들에 아름다움을 느끼느라 잠시 불교도 잊고 스님도 잊었다. 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2000년 무렵부터 우리나라 절들은 대형 금불상, 석불상 건립에 앞을 다투었다. 대형 불상이 돈 되는 것은 알겠는데 그것이 바른길이 아니라면 부처님이 꿈에라도 스님들에게 나타나 '내 이름 팔지 말라' 죽비를 내리쳐야 되는데, 왜 바라만 보시나 원망스러웠다. 때문에 한국식 불교가 싫어 부처님의 가르침도 매력 없었다.

얼마나 베풀고 나누었는가만 재산으로 남을 뿐, 다른 것은 다 무상

그랬는데, 이렇게 바야흐로 봄인데, 꽃이 채 피기도 전에 법정 스님이 돌아가니 새삼 사무친다. 스님도 사무치고 부처님의 가르침도 사무치고. 스님을 모르고 산 지난 십여 년이 헛헛하다. 하여, 어리석은 중생이 뒤늦게 스님의 지난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마디마디 향기로 가득 차 있고나. 

특히나 이 책은 내가 불교에 관심 '없던' 지난날들(2003년~2009년)이자 스님이 마지막 생의 불꽃을 태우던 시절에 한 말씀들이라 더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글의 내용은 물론 문장의 형식, 법문을 하시는 숨결까지 걸림 없이 아름답다. 

물이 흐르고 꽃피는 것이 보이는 '수류화개실'에서 고요하고, 소박하고 정갈하게 사는 것이 스님이 제일로 추구하는 삶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스님은 나눔을 통한 깨달음을 가장 강조하였다. 사람은 늙을수록 '성숙'해져야 되는데 그 성숙은 '나눔'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또 사람은 성숙해질수록 '젊어'진다고 하였다. 

때문인지 스님은 세속 나이 78세에 입적하였지만 나눔을 통해 성숙해지고 젊어져서 내 느낌에는 스물넷 머리 깎았던 그 파리한 젊은 나이로 돌아가서 입적하신 듯하다. 

맑음은 개인의 청정과 진실을 말하고, 향기로움은 그 청정과 진실의 사회적인 영향력, 메아리입니다. 도량에서 익히고 닦은 기도와 정진의 힘으로 자기 자신은 물론, 가정이나 이웃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시시로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니 절이나 교회를 습관적으로 다니지 마십시오. - 본문 21쪽

반복해서 말씀드립니다. 삶 자체가 수행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거듭거듭 성숙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혜와 용기가 생겨서 휩쓸리지 않고 깨어있는 정신으로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 본문74쪽

내안의 샘에서 아름다움이 솟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남과 나누는 일을 통해 나 자신을 수시로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참선하고 염불하고 경전을 읽는 것은 자신을 가꾸는 추상적인 일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나눔의 삶을 살아갈 때 내안에 들어있는 자비심이 샘솟듯 생겨납니다. 아름다움은 시들지 않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 본문 96쪽 

자비심에서 지혜가 싹틉니다. 자비가 없는 지혜는 지극히 메마른 것입니다. 한국 불교는 깨달음을 우선시하면서도 깨달음의 행을 할 줄 모릅니다. 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지, 깨달음의 행 없이 정상에 이를 수 없습니다. 끝없는 자비의 행을 통해 지혜가 싹트고, 지혜와 자비가 하나가 되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행의 길입니다. - 본문 194쪽 

결국 한 생애에서 무엇이 남습니까? 얼마만큼 사랑했는가, 얼마만큼 베풀고 나누었는가, 그것만이 재산으로 남습니다. 그 밖의 것은 다 허무하고 무상합니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 본문 228쪽

사람은 살아온 세월만큼 인간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성숙할수록 젊어집니다. 성숙해져야 모든 것이 제대로 보입니다. 전에는 결코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나이를 먹고 안으로 여물기 시작하면 새롭게 다가옵니다. 산마루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자기가 한 걸음 한걸음 밟고 올라온 길이 한눈에 내다보입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 본문295쪽

이처럼 스님은 매 법회 때마다 관념적으로 수행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선행'과 '나눔'을 실천하길 거듭거듭 강조하셨다. 때로는 같은 말로, 또, 때로는 다른 비유로 복을 짓고 마음을 써서 깨달음에 이를 것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승복 입은 채 다비해주고

사리 찾으려 하지 말라

탑도 세우지 말라

책은 절판해라.....' 

마지막 가는 길에서까지 스님은 '무소유'를 말씀하셨다. 

'삶을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우리는 소멸을 두려워한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순간 속에서 살고 순간 속에서 죽으라. 자기답게 살고 자기답게 죽으라.'

'집이든 물건이든 어디에도 집착하지 말고 그날그날을 감사하면서 순례자처럼 살라'고도 하였는데 그래도 책마저 절판하라 함은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아직은 안 되는군요. 그 소중한 잠언들을 절판하라 하면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가란 말인지요. 흐려진 우리들의 눈과 마음이 좀 더 맑아질 때까지 만이라도 절판의 때를 미뤄주면 안될는지요.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뜨거운 장작불에서 한줌 재로 말끔히 소진 되신 그 '텅 빔'만큼 또 다른 세상에서도 그 '비어있음'만큼 '충만'으로 영원하시길 빕니다. 그리고 스님의 맑은 향기는 두고두고 우리네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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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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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 씀, 사회평론 펴냄). 나도 가끔은 삼성을 생각한다. 삼성은 정말 노조 없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과연 삼성 직원들은 노조 없이도 행복할까. 임금 협상 때마다 머리띠 두르고 신경전 벌이는 다른 기업들보다 아무런 투쟁 없이도 월급이 상당한 자기들이 훨씬 이득이고 신사답다 만족하는 것일까. 

아니면 삼성에서 노조 설립하면 어떻게 되는지 '김성환 위원장'의 인생역정이 웅변으로 말해줘 용기고 뭐고 혼비백산 말도 꺼내지 마라 뭐 그런 것인가. 정말 물어보고 싶은데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내가 하도 서민이다 보니 주변에 삼성 다니는 사람을 구경 할 수 없어서다. 그런데 이번 김용철 변호사의 고백록을 보니 노조의 '노'자도 꺼낼 수 없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네.  

이를테면, 삼성 공장 관할 관청 공무원을 매수해서 노조 설립 신고서를 아예 수리 자체가 되지 않도록 했다. 매수된 공무원은 신고서가 들어오면 신고서 수리를 일단 미루고 바로 삼성에 알려줬다. 그러면 삼성은 재빨리 유령노조 설립 신고를 했다. 이런 작업은 구조본뿐 아니라 계열사 차원에서도 이루어졌다. 계열사마다 노조 담당이 있었고, 이들은 노동자들을 면밀하게 감시했다. 노동조합 설립 기미가 보이면, 관련 주동자를 사실상 납치해서 회유, 협박했다. 이런 식으로 한 명씩 각개 격파하면, 결국 노조 설립 시도는 불발로 끝나곤 했다.

- 본문 139쪽

노조가 없어도 (김용철 변호사는 10조라 했지만 많이 양보해서) 삼성특검이 밝힌 4조 5천억씩이나 되는 비자금 같은 것을 모으지 않는다면 나름 고개를 끄덕여 주겠으나 그렇지 않으니 우려가 되는 것이다. 

4조 5천억. 비자금 규모로 볼 때 전두환은 이건희에 비하면 아래도 한참 아래다. 김용철 변호사는 과거 검찰 재직시절 전두환 비자금을 직접 조사하였던 바 전두환의 비자금은 '1조원에서 450만원이 모자랐다'고 한다. '1조'라 하니 감이 안 오는데 숫자를 바꿔서 한번 써보자. 1조는 얼마나 큰돈인가 하니 '9999억+1억'이다. 

이건희의 비자금 4조 5천억 원은? 9999억+9999억+9999억+9999억+5000억+1억+1억+ 1억+1억= 4조 5천억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1억만 해도 꿈의 숫자이거늘.  

이건희 일가와 25만 삼성 임직원은 별개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고백'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고 한다. 첫째, 김 변호사가 하는 말이 다 참이라도 삼성하고 붙어서는 백전백패다. 둘째, 삼성의 비리를 밝히는 것은 좋지만 삼성이 무너지면 우리나라 경제의 중추가 무너지기 때문에 반대한다. 

이 책은 우리의 이런 그릇된 우려를 말끔히 씻어준다. 이건희의 비자금을 몰수하면 삼성이 망하고 그리하여 우리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워지면 어쩌냐고? 천만에.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자꾸 비자금 건으로 몰아붙이면 삼성이 한국에 있는 공장들을 해외로 다 이전해 버릴 거라 던데, 그런 걱정도 염려 붙들어 매시라. 

왜냐하면 삼성은 해외로 화끈하게 가고 싶어도 못가는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노조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세계 50위 그룹 안에서 노조 없는 회사는 아마도 삼성뿐 일 것인 바. 세계 500대 안에 드는 기업이라면 설령 노조가 없다 하더라도 제멋에 산다지만 '국제 표준'을 부르짖으면서 '노조는 없어요'라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삼성이 노동자들에게 노조의 권리를 안 주고도 꿋꿋이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다 비자금 때문일진대, 가계의 비자금은 비상시 천군만마이지만 기업의 비자금은 타락의 지름길일 뿐.

모든 일에는 뿌리가 있기 마련이다. 삼성 비리의 뿌리는 비자금이다. 비자금이 없었다면, 삼성이 권력을 매수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비자금은 결국 삼성 임직원들이 흘린 땀의 대가를 빼돌린 것이다. 여기에 더해 삼성은 생산 현장에서 흘린 땀의 대가를 빼돌려 정치인과 관료, 법관, 언론인, 학자를 매수했다.

- 본문 346쪽

그리하여,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이재용에게 삼성그룹 전체를 넘겨주기 위해 임직원들이 온갖 불법 탈법행위를 저질러야 했던 게 삼성의 최근 상황이었다. 나는 이런 현실과 역사를 고발했다. 삼성을 해롭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오히려 삼성의 건강한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치우고자 하는 의도였다. 이건희 일가와 소수 가신집단이 걸림돌이다. 이들은 기껏해야 100~200명 정도다. 한줌도 안 되는 이들 때문에 25만 삼성 임직원들이 범죄행각의 공범으로 몰리게 됐다. 오히려 멋진 포부를 품고 삼성에 입사한 임직원들이 이건희 일가에게 배신을 당한 셈이다.

- 본문 20~21쪽

이건희가 빼돌린 비자금을 모두 토해내어 투명한 회계를 지향하고 노조를 허용한다면, 삼성은 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진통'은 있을지라도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부패상은 우리 모두의 탓

 이 책은 누가 읽어도 쉽게 읽을 수 있게 쉬운 언어와 진솔한 고백으로 채워져 있다. 김 변호사가 첫 고백성사를 정의구현 신부님들께 했다면 이번 책은 이 땅의 시민들에게 하는 고백성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양심가인지 배신자인지는 책으로 된 이 조금은 긴 '고백성사'를 읽어보고 결정함이 더 타당할 것이다. 

심리 분석가가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으면 김 변호사의 마음결을 느낄 수가 있다. 삼성그룹에게나 이건희 개인에게나 김 변호사의 고백이 약이 될지언정 해는 안 되리라 생각하는데 글쎄 당사자들은 여전히 쓸까. 쓰다고 느낀다면 안타깝다. 

사실, 내 경우는 문화방송 간판 뉴스진행자가 삼성으로 갈 때부터 이유 없이 삼성이 싫어졌다. '뭐 좋다 싶은 사람은 다 빼가는 거야?' 털린 기분이었다. 덥석 홀려서 가는 사람도 미웠다,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화는 사라지고 진정으로 삼성이 거듭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때문에 이 책의 추천글을 쓴 전종훈 신부님의 말씀이 깊이 와 닿았다. 

'이 책은 일종의 고백록입니다. 특정인들을 향한 원망이나 미움 때문에 만들어진 기록이 아닙니다. 공연히 남의 치부를 공개해서 망신을 주자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함부로 더럽혀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부패상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읽으시는 분들께서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로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의 간절했던 꿈이 경제의 민주화로 열매 맺는 날을 고대하며 기도합니다.

- 추천의 글 7쪽' 

맺으며

광고도 없이 출간 보름만에 8만부(추정)를 육박한다면 진실에 목마른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내친김에 쭉 나가서 3월엔 30만부, 4월엔 40만부, 5월엔 50만부…. 그렇게 계속 읽혀졌으면 좋겠다. 역설적이게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진정으로 삼성이라는 기업에 애정을 갖고 싶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식이 엇나가는 것을 보고도 계속 옹호만 하는 것은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삼성의 비리를 보고도 눈감아 주는 것은, 세계적인 비웃음거리이자 궁극적으로는 삼성에도 도움 안 되고 오히려 삼성을 더 큰 '대도'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잘못된 부분을 도려내어 더 이상 삼성이 곪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용철 변호사는 자신의 고백록을 일러 역사도 못되고 신화도 못되는 '야사'라고 하였으나, 천만에, 당신의 고백은 훗날 반드시 '역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야사보다 재미(?)있었고 진솔했으며 진실이 주는 감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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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진 2010-03-11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이멜로 들어온 알라딘 뉴스레터, " 지난달에 산 책 중에서 읽은대로 리뷰를 올리면 좋은 글을 선정하여 알라딘 적립금 1만원을 드립니다. " 를 읽다가 들어와본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이 리뷰를 읽고나니 다시 가슴이 찌르르울립니다. 구정 연휴에 읽고 찜질방엘 들고가서 읽고 하며 5일만에 그 두꺼운 책을 다 읽고나서 역시 김용철 변호사는 '난사람' 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는 데....이번의 도요다 사태를 보면서, 세계 1위의 자동차 회사가 세계적으로 엄청난(?) 리콜사태를 보면서 품질관리, 인사관리 제대로 하지않아서 곪고 곪아서 터진 사태를 보면서 삼성도 이와 다르다고 생각하지않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일본의 모 신문 편집장이면서 도요타의 어두운 암날 (?) 이라던가 하는 책을 낸 사람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저도 잠시 삼성을생각했었습니다.
그의 인터뷰에 의하면 메이저 출판사나 신문에서는 그 책을 내지않아서 중소출판사에서 책을 내다 보니 많이 읽이지는 않았다고 하는 그는 도요타가 매년 천문학적인 광고비를 쓰면서 언론도 광고주 눈치를 보느라고 아픈 소릴 쓰지못했다고 하더군요 바로 그분도 도요타가 우리나라의 삼성같은 회사였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언론과 정부, 소비자단체들에 재갈을 물리고 도요타의 아픈 부분을 지적하지못하는 바람에 오늘나로가 같은 사태를 맞게 되었다고 하는 데 글쎄 삼성은 주요 제품이 자동차가 아니라서 덜할까요? 이런 아픈 소리도 수용 할 수 있는 기업과 사람만이 다가올 위험을 스스로 막는 매개가 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낍니다. 김용철변호사의 고백록은 정말 역사가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글 잘 읽고 갑니다. 꾸우벅~~

폭설 2010-03-11 14:37   좋아요 0 | URL
도요타사장은 나름 다른줄 알았는데 언론플레이를 그러코롬 했군요.
수년전 직원들 자를수 없다며 울기에 좀 다른줄 알았는데 ....
삼성의 미래는 도요타고 도요타의 과거는 삼성이군요.

진솔한 댓글 감사해요. 김용철 변호사의 책 정말 대박났으면 좋겠어요.~~~
<인 빅터스>에서는 공을 매개로 흑백의 화합을 도모하던데
우리는 김변호사의 책으로 이'더러운 세상' 뒤집어 엎었으면 좋겠어요.^^

 



 

아침에 일어나니 우리 동네에도 눈이 내렸다. ~~~ 창틀에도 눈이 10센티정도 쌓였기에
한줌 뭉쳐 보았다.

윗동네 사람들은  눈이 웬수겠지만 남쪽 지방 사람들에게는 특히, 아이들게는
선물도 이런 선물이 없으렸다.

좋다.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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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년(이제는 소년도 아닌 청년)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이름만 들었었다.
형제가 아주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고. 있거나 말거나 ... 그때는 애들 키우는 일이 바빠서
별 관심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유일하게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서 큰애는 지난 겨울 방학때
소위 콩쿨인가 하는 것엘 처음 나가게 되었다.  이제 막 체르니 30번을 배운지 몇달 안되었는지라
당연히 소나티네에서 곡목을  고르는줄 알았는데,

'베토벤의 6개의 변주곡'으로 정해졌다.  하여 연습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검색해 보니
워매, 알프레드 브렌델 할배도 이 작은 소곡을 치셨고나.. 그런데 같은 곡인데
알프레드 할배와 큰애의 곡해석 차이는 천양지차 라고나 할까. ㅎㅎ
피아노의 차이도 천양 지차 만양지차 ....ㅋㅋ

그저, 비슷한 속도를 내는 것 만으로도 만족해야지 어디 비교를? 땍!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쳇, 이 분이랑 나랑 무슨 차이야' 하면서
기고만장 인데 저또한 같은 속도를 낸게 신기해서 다른 것은 아무것도 눈에 안 뵈는듯~~~

그건 그렇고 , 아무튼, 콩쿨을 계기로 이제야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년에 서너차례 정도 음악회를 델꼬 가야지 하는.... 더불어 나도 어부지리를 누리고.

임동혁.
큰애에게 피아노에 대한 열망(이라 말했으나 만족감의 수준을 조금 더 높였으면 하는 정도)을
지속시켜 주기에 딱좋은 인생의 선배랄까.
이리저리 찾아보니, 이분 팬클럽도 짱짱하네. 4만. 허걱~~
명불허전. 실지로 본 임씨 총각은 앳된 얼굴(중학생 느낌)에 비해 울 나이로 27세 였나.

라벨의 파반느와 가스파르, 쇼팽마주르카들과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했는데 어느하나 쉬운곡은 없었다. 보통 피아니스트들은 기본적으로 '떡대'가 있는데
임동혁씨는 생장의 에너지가 모두 긴팔과 손가락으로만 흡수된듯,

팔과 손빼고 나머지는 피죽도 못 먹은듯 말라깽이. 때문에  강렬한 터치가 더욱 인상적.
한없이 부드럽고 고우면서도 폭풍이 몰아치는 격정도 동시에 갖고 있는 천상 천재인듯..

천재가 아니면 그 곡들을 다 어찌 외우고 또 자기 색깔을 입힐 것인가.
(천재라 해서 그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은 절대, 네버 아님.)

우리같은 사람들은 평생배우고 외워도 그렇게 못할 것이다. 때문에 신기했다.  하루 세끼 밥먹고
사는 것을 공통 분모로 지닌 평범속에 그런것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게.... 또 200년전 태어나 30여년
짧은 삶을 살면서, 어려우면서도 아름다운 곡을 작곡해 다음세대 피아니스트에게 숙제를 내주고간,
쇼팽도 대단했다.

개인적으론, 임동혁의 연주는 대단했으나, 미리 연주곡목들을 숙지하고 가야 도움이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가서
아는 만큼 느낀다고 내가 몰라서 더 많이 느끼지 못한게 좀 아쉬웠다.

.......

팜플렛에 지난해 '제 인생에서 가장 큰별을 잃었' 다고 해도 나는 그분이
그저 존경하는 스승님인가 했는데....  그분이 그의 '어머니' 였고나. ㅠㅠ 하늘도 무심하시지...ㅠㅠ.
(임동혁 어머니, 하늘에서도 아드님 지켜 주시겠죠?  마음속에 살아있으면 삶과 죽음도 하나이지요?)

그래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얘길 듣고 나니, 임동혁의 얼굴 어딘가에 상실의 아픔이
서린듯해서 짜안했다. 마치 광야에서 길 잃은 한마리 양의 모습이라고나..

기차표 끊어놔서 30분만 사인회 한다더니 두줄의 긴 행렬이 다 없어질때 까지 하고 또 하고....
방금 연주회를 끝낸 피아니스트에게 사인이라는 잔업을 시키다니....그래도 찡그림 없이
성의껏 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인대 늘어나면 우쩌....

저번 김광석 추모콘서트에서도 느꼈듯 임연주자도 음악만을 향한 순수함이 온몸에 베여있어
보는 것 만으로도  그 순수의 기운이 내게 전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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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와 인근 초등학교에서 축구를 하며 노는데 큰애가 나를 발견하고는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왔다. 그런데 다들 손에 캔 음료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날도 어두워지는데 웬 차가운 음료?' 하며 한마디 넣으려는데 큰애가 말을 가로챘다.

"엄마, 이거 ㅇㅇ이 사준거다."

"왜?"

"세뱃돈 두둑이 받아서 한턱 낸 거다. 호호."

"얼마나 받았길래?"

"몰라, 한 20만원 쯤 되나봐."

"할머니께 안드렸대?"

"응."

큰애의 친구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직장 때문인지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는데 명절을 맞아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은 부모님과 친척들이 '배추 잎' 한 두 장 씩 쥐어준 것을 모으니 그렇게 되었나 보았다. 나는 음료수 사줘 고맙단 말을 하면서 ㅇㅇ에게 세뱃돈 할머니에게 맡겨 저금하고 조금만 타서 쓰라고 하니 아이가 '네~' 하였다.

불과 두해 전 미국 발 금융위기 때만 해도 만 원 짜리 세뱃돈이 자취를 감추던데 그새 또 풀린 것인지 우리 아이들만 해도 친할머니, 외할머니, 외삼촌, 이모, 큰아빠 등에게서 세뱃돈을 두둑이 받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요즘 것들은 세뱃돈을 주면 거절하는 품새도 없이 우렁찬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한 마디 하고는 주머니에 찔러 넣기 바빴다.

말만 '고맙습니다'이지 고마운 것도 모르고 명절날만 되면 으레 생기는 것인 줄 알고 둘째의 경우 어쩌다 천 원짜리를 주는 분을 만나면 '에이, 천원이잖아' 하며 손에서 털어내는 불경을 저지르기도 한다. 해서 매번 명절이면 세뱃돈을 주시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 차례 '교육'을 하는데도 현장에만 서면 돈에 눈이 멀어 사양의 말은 까먹고 '고맙습니다'란 말과 손이 먼저 튀어나오기 일쑤다.

그리고 자기 손에 들어왔으므로 당연히 자기 돈이라며 권리행사를 하려했다. 해서 나름 규칙을 정하였다. 돈을 모르던 어릴 때는 아이들이 받은 용돈은 자연스레 수거해서 저금통에 넣었으나 돈맛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고물을 조금 떨어뜨려 주어야 했다. 일단은 저금통을 앞에 두고 부모인 우리가 지켜보는 앞에서 저금통에 직접 넣으라고 한다.

그런 다음 예를 들어 10만원을 넣었으면 내 지갑에서 5천 원 정도 준다. 어른들 입장에서 보면 10만원 빼앗기고 5천원 받으면 너무 손해다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초등생 입장에서는 5천원도 큰 돈이므로 충분히 만족한다. 물론 나중에 중고등학생이 되면 10만원이면 한 2~3만원 정도로 정산해 줄 생각이다. 아니면 문화상품권으로 2~3만원 주든지 할 것이다.

아이가 받은 용돈이니 아이 스스로 하게 놔둔다?

언젠가 이웃 애기 엄마랑 얘기하던 중, 6살 유치원생인 딸이 하도 손 전화를 사 달라고 해서 '그러면 니 세뱃돈으로 사라'며 허락하였다고 하길래 세뱃돈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십여 만원이었다. 물론 6살이니 만큼 그것을 쓰지는 못하고 나름 꼼꼼하게 보관하였다지만 어린아이에겐 너무 큰 돈임에랴.

그런데, 어른들이 세뱃돈 내지 용돈을 줄 때는 나름 알뜰하게 쓰길 바라며 주는 것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중고등 학생을 둔 부모들의 경우 평소에는 사달라고 졸라도 안 사주던 것을 명절 용돈으로 산다면 '그러렴' 하며 쉽게 허락하는 경향이 있는데 글쎄 과연 괜찮은 것일까.

명절 용돈(세뱃돈)으로 평소에 사고 싶었으나 못 샀던 게임기 사고, 유명 신발 사고, 최신형 손전화 사고, MP3사고 정말 괜찮을까. 사는 당시에 '손맛'은 느낄 수 있을지 모르나 용돈을 주신 분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은 글쎄?

오히려 굳이 사줄 것이면 그것들은 부모들 돈으로 사주고 어른들이 준 돈은 저축을 하거나 책이나 공연을 사고 보게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돈을 벌지도 못하는 학생에게 고가의 물건을 몸에 걸치고 손에 갖게 하는 것은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경제 교육을 달리 할게 아니라 내 몸에 걸치고 내 손에 만지는 물건의 가격 자체가 살아있는 '경제교육'이라고 본다. 내 경우, 아이들에게 비싼 신발, 비싼 옷, 비싼 물건은 절대로 사주지 않는다. 사주고 싶어도 참는다. 안 사줘도 불만 없다. 원래 애들은 그런데 관심 없다. 부모들이 알게 모르게 심어줘서 그럴 뿐.

그리고 어린 아이가 자라는데 비싼 물건은 필요 없다. 오히려 노는데 방해가 된다. 또 어렸을 적부터 비싼 물건으로 도배를 해주면 커서도 그 습관 못 버려서 못 먹고 살아도, 빚을 지고 살아도 유명 상표를 선호하던데 세상에 그보다 더 어리석은 선택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10만 원 짜리가 천원으로, 천만 원짜리가 10만 원 정도로 보이는 부자라면 오히려 비싼 물건을 싸서 세금 많이 내 주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다음에는 소박하게 사는 게 맞다고 본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월급을 이삼백, 혹은 삼사백 받으면서 월 사교육비로 100만원을 쓰는 것은 100만 원짜리 점퍼를 '매달' 사주는 것과 같은 경제관념을 아이에게 심어준다고 본다.

결론은,

세뱃돈. 잘 쓰면 약이 되나 잘못 쓰면 씀씀이를 키우는 부작용의 계기가 될 수도 있기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 내 경우 명절이면 문화상품권을 미리 준비했다가 나눠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문화상품권도 좋지만 나이에 맞게 책을 선물해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는 몇몇 조카들에게는 책을 사줬다. 그랬더니 반응이 의외로 괜찮았다. 해서 내년부터는, 명절 앞두고 택배아저씨 발등에 불 떨어진 듯 바쁠 때 말고, 미리 한 달 전쯤에 책을 사서 편지도 한통 써서 준비해 둘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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