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나는 노무현 정부의 거의 모든 정책에 반대했던 것 같다. 국가보안법 폐지야 그의 정책이라기 보다는 립서비스에 가까운 전략도 전술도 없는 헤프닝에 불과했고, 이라크 파병, 한미FTA 추진, 새만금, 부안 핵폐기장, 보건의료 개혁,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합의ㅡ 대추리 이전 등등.  그 중에 유일하게 내가 동의했던 것이 수도 이전, 국토 균형발전이었다.

처가집이 부여라 자주 천안-논산 고속도로를 이용한다. 가다보면 '행복도시' 이정표를 만난다. '관습헌법'에 부딪쳐 생겨난 '행정복합도시' 이정표를 보는 게 한 편 씁쓸하고, 전혀 행복하지 않게 만들어지는 그 도시의 역사가 떠올라 안쓰러웠다. 그러던 게 어느새 세종시로 바뀌더니 기업도시, 경제도시, 교육과학도시, 녹색어쩌구 도시로 하루가 다르게 이름이 바뀌고 있다.   

수도이전은 절대 안된다는 진정성이 엠비에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얼굴마담 같은 정총리가 정치적 생명에 생물학적인 생명까지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통일 한반도에 수도가 울릉도는 너무 좁아서 문제지만 제주도만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너무나 당연하게 워싱턴은 미국 대륙의 중심이 아니지 않은가). 반대로 꼭 행정기구, 수도가 충청도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상징과 권력이지 않을까. 관습헌법에 발목이 잡혔다면 노통은 행정부에 일부를 내려보는 게 아니라 뭔가 전혀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 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부디 바라건데, 
서울대 2캠퍼스가 아니라 서울대학교 전체가 내려가야 한다. (학생이 아니라 교수들이 내려가는 게 중요하다. 무엇보다 꼭 대학본부가 내려가야 한다. 대학은 학생이나 교수의 것이 아니라 대학 본부의 것이니까.)  
노통의 말대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하니, 행정부가 아니라 삼성 본사가, 삼성이 통째로 내려가자. (물론 이때 삼성은 이건희 일가도 포함된다. 엠비의 친정인 현대도, 전경련도 같이 짐을 싸자.) 
엠비특보가 낙하산타고 내려간다는 한국공영방송 KBS도 옮기고, 1,2위를 다투는 메이저 신문사도 옮겨가자. (남한의 중심이니 얼마나 취재가 편할 것이며 출장비, 교통비가 절약될 것인가.) 

이렇게 쓰면서, 쓸 때는 비아냥이었는데 써놓고 보니 정말로,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p.s. 문제는 권력이다. 서울은 권력이고 서울은 그 권력을 나눌 생각이 없다. 다만 권력의 부스러기를 효율적으로 배분할 생각 뿐이다. 서울이라는 권력을 어떻게 해체하고 민주적으로 만들 것인가의 문제는 아마도 현재의 권력 바깥에서 나올 것이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술자리 대화에서 ‘세종시 해결’ 비책을 찾다.
    from 한사의 문화마을 2009-11-24 04:00 
    정부가 말하는 대로 가자. 5대 재벌, 3개 언론사 이전만으로······ 정부는 지금 국정운영의 편리성 등을 문제로 기업과 학교를 세종시로 보낼 계획을 구상하고 추진 중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일반적으로 ...
 
 
 

한국인권재단에서 수여하는 '인권홀씨상'이라는 게 있다. 올해 두 번째인데 첫회는 청소년인권활동가 '따이루'가 받았고 올해는 윤가브리엘이라고 하는 에이즈 감염인 인권활동을 하는 이가 받게 되었다. 
노벨평화상처럼 유명한 사람이 받는 상도 아니고 무슨 훈장처럼 명망가들이 전리품 챙기듯 하는 상도 아니어서 더 눈길이 가고 의미있어 보인다.  아래는 난생처음 써본 추천의 글과  한국인권재단의 심사결과.

 -----------------

인권홀씨상에 윤가브리엘을 추천하며

그는 친절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그에게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가족으로부터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도 못하고 중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집을 나와야 했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가전제품 공장, 봉제공장 등을 전전하며 공교육은 물론 그 어떤 사회적 배려나 제도적 보호도 받지 못했습니다. 사춘기 때부터 시작된 성정체성에 대한 번민과 좌절, 동성애자로 성소수자로서 짊어져야 했던 멍에와 가슴앓이는 온전히 자신만의 몫이었습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온 나라가 뜨거웠던 80년대, 평화시장에서 실밥을 뜯던 이 젊은이의 관심사는 20년 전 전태일과 마찬가지로 하루빨리 재단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에이즈 환자, AIDS/HIV 감염인입니다. 새천년이 온다고 다들 흥에 겨웠던 1999년 말, 2000년이 되면 컴퓨터가 말썽을 부린다던 밀레니엄 버그 대신에 그에게는 AIDS/HIV 바이러스가 찾아왔습니다. 21세기가 되어도 에이즈에 대한 공포도 사람들의 인식과 시선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크고 작은 질병들이 그의 육체를 공격했습니다. 그는 환자였지만 누워있지만은 않았습니다. 차별이라는 사회적 질병에 맞서 2003년 스스로 동성애자인권연대를 찾아 문을 두드렸습니다. 비록 한 명의 환자였지만 그는 사회적 질병을 치유하고 예방하는 길에 혼자 힘으로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는 인권운동가입니다. AIDS/HIV 감염인인 그가 세상에 나서자 사람들이 모여들고 단체가 만들어졌습니다. 무심히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 집회에 나와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 격리와 감시와 통제로 일관하던 보건의료당국, 잠재적 범죄자 아니면 병균 다루듯 하는 거대 언론사들, 그리고 오로지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들. 그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소리치고 싸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배움이 적은 것이 아쉽고 부끄럽다했지만 정작 그로부터 이 사회는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로 인해 다른 감염인들도 하나둘 증언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싸움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싸움이기도 했지만 이웃을 위한 싸움이었고 우리 모두를 위한 싸움입니다.

그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는 질병을 나누는 대신에 그 질병의 고통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고민하고 성찰하게 하며 마침내 변화의 길을 찾아 나서게 합니다. 그의 삶이 곧 인권운동이며 그의 존재가 억압과 불평등에 대한 저항입니다. 그를 통해 에이즈 감염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문제,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맞서는 소수자의 문제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모순과 맞닿아 있는 한 묶음의 문제임을 한국사회는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육체적 고통을 나눠가질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많은 질병과 장애에 맞서 혼자만의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자신의 고통을 사회적 고통으로, 자신의 싸움을 사회적 저항으로 바꾸어 가는 그 힘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친절하지 않은 세상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그의 따뜻함의 정체가 불가사의할 때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사람에 대한 그의 믿음, 희망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지 않나 싶습니다. 인권홀씨상은 그를 지지하고 그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그가 가진 힘으로 말미암아 인권의 홀씨들이 보다 생기 있고 따듯한 새바람을 타고 더 넓고 멀리 퍼지리라 확신합니다.  

------------------------ 

한국인권재단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곳에서 인권의 가치를 실천함으로써 인권 영역을 다양하게 넓히고 사회와 소통하는 인권단체 및 개인을 찾아 격려하고자 인권홀씨상을 제정하고 2009년 10월 13일부터 11월 9일까지 추천서를 접수하였습니다.
 
총 10분의 개인과 단체가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하였고, 11월 16일 (월요일) 인권재단 사무실에서 '2009 인권홀씨상' 최종 심사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날 심사를 위해서는 권태선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한국인권재단 이사), 이석태(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윤혜원 (전 연합뉴스 논설위원), 정정훈(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이렇게 네 분의 심사위원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최종 심사의 방법은 먼저, 심사 기준에 의거하여 각자 5명 정도의 후보를 추천하여 범위를 좁혔고, 그렇게 좁혀진 후보들에 대한 최종적인 토론을 통해 수상자를 선정하였습니다. 수상자 선정의 근거가 된 심사 기준은 아래와 같습니다.
 
  - 참신하고 창조적인 실천을 통해 인권 의제와 활동의 지평을 넓혔는가?
  - 관련 활동을 촉진하거나 확산하는데 기여하였는가?
  - 젊은 세대들이 삶의 롤 모델로 삼을 만 한가?
 
수상자로 선정된 윤가브리엘 님은, 동성애자인권연대와 HIV/AIDS감염인 모임 세울터의 회원으로 활동했고, 현재 <에이즈인권연대 나누리+>의 대표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에이즈인권연대 나누리+는 에이즈라는 질병으로 인해 권리를 침해당하고, 차별받는 감염인과 환자들의 인권과 치료권을 확보하기 위해 활동하는 연대 기구로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동성애자인권연대, 공공의약센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인권운동사랑방 등 5개 단체와 관심 있는 개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곳입니다.
 
윤가브리엘님은 그 자신이 HIV/AIDS 감염인으로서 '에이즈 인권교육', 'HIV/AIDS 인권가이드 마련',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개정활동' 등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비인권적 격리와 감시의 문제를 가시화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활동들을 벌여왔습니다.

특히 푸제온, 스프라이셀 등 감염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에이즈치료제에 대해 약값 문제를 들어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국내에 의약품 지급을 거부하자 2008년 <Global Action Week국제행동주간>을 기획하여 국제사회와 연대하여 공동행동을 조직화하고 해당 제약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지속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특허청에 푸제온에 대한 강제실시를 요청하고 생명과 직결된 약품인만큼 특허권보다 환자의 건강권을 우선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가장 극심한 영역으로 HIV/AIDS 감염인의 인권현실을 꼽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많은 오해와 편견 속에서도 활동가로서 자신을 드러냄으로서 삶 자체를 인권운동으로 만들면서 '에이즈 때문이 아니라 에이즈 약값이 없어 죽어간다’고 할 정도로 척박한 감염인의 현실을 드러내고 사회적인 개입을 촉구하는데에 윤가브리엘님이 선구적인 역할을 해 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활동이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 아픈 사람이 지체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건강권을 증진하는 활동으로 강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권의제의 지평을 넓히고, 인권활동을 확산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윤가브리엘님이 역경을 딛고 삶의 운동을 펼쳐온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또한 움직이게 하기에 젊은 세대에게 삶의 지침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2009년 인권홀씨상'의 수상자로서 가장 적합하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외에도 신유아(문화인권활동가, 용산참사현장 내 레아갤러리 운영자), 이주원(주거복지운동가, (사)나눔과미래 지역사업국장)님이 최종까지 수상 후보로 위 세 분의 후보가 비등하게 실력을 겨루었습니다.
 
신유아님은 문화연대에 소속된 문화인권활동가로서, 현재 용산범대위 현장팀장이자 용산 참사 현장 내에 위치한 레아갤러리 운영자로 활동 중인 분입니다. 삭막하고 지치기 쉬운 인권운동 현장에 문화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대중이 주체가 되는 활동을 기획하여 즐겁고 힘나는 운동, 대중과 교류하는 운동 현장을 만들어오신 '신의 손'입니다. 용산참사 희생자 중 한 분이 운영하셨던 레아호프를 갤러리로 탈바꿈시켜‘망루展’, ‘그림책 화가들 촛불을 들다展’등의 전시를 기획하기도 하셨습니다.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 희망', 인권단체연석회의 촛불집회 , ‘콜트·콜텍 노동자를 위한 문화제’ 등 다수 문화행사 기획하고 진행해 오셨는데요.
심사위원들은 신유아님이 집회와 시위 문화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국내외 집회 시위 사례를 수집·분석하여 집회 성격에 맞는 프로그램을 기획함으로써 참가자의 상상력과 참여를 이끌어내도록 함으로서 인권운동의 문화적 질을 높일 뿐 아니라, 대중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인권의제들을 쉽고 가깝게 표현하여 인권의 의제와 활동영역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고 보았습니다.
 
이주원님은 주거복지운동가로서, 현재 (사)나눔과 미래 지역사업국장이십니다. 1999년 IMF로 대량 유입된 노숙인을 위해서 무료급식 및 쉼터를 제공한 <아침을 여는 집>을 시작으로 노숙인 지원활동을 하셨고, 노숙인을 위한 매입임대주택 활동 등을 진행하던 중 기존의 철거반대운동의 한계를 넘고자 <재개발(뉴타운) 지역 주민지원 활동>을 진행하셨습니다. ‘재개발(뉴타운) 세입자 주거이전비 집단소송’, ‘서울시도시계획시설사업 주택세입자 주거이전비 집단소송(옥인동, 용강동 시민아파트 등)’,‘재개발 기본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발의 등의 활동을 펼쳐 오셨고 용산참사 이후에는 희생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지속중이십니다.
심사위원들은 이주원님이 투기와 건설사 이익에 따른 개발이 아닌, 주민들이 살아갈 수 있고 개별 마을에 어울리는 <대안개발>이라는 개념을 확산시켜왔다는 점에서 유력한 수상후보로 거론되었습니다.
 
 
이날 심사위원들은 각각의 후보들이 모두 수상자로 선정되어도 무리가 없을만큼 중요한 활동과 단단한 의지를 펼쳐오신 분들이라고 공감했습니다. 또한 인권재단이 수상자뿐 아니라 추천되었던 모든 분(단체)들이 이번을 계기로 더욱 많이 알려지고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기를 당부했습니다.
 
한 장, 한 장, 읽기만 해도 눈과 마음이 정화되는 추천서들이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정성껏 추천서를 적어주시고 마음 내어 기다려주신 모든 추천인들께 깊은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2009년 인권홀씨상' 시상은 12월 14일(월) 6시 30분, 서교동 인권재단 사무실 3층 '크레이지오션 홍대점'에서 '2009년 후원의 밤' 행사와 함께 진행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얼마 전 파업 1500일을 넘긴, 본의 아니게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 되어버린 기륭전자 노동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헤어지면서 어쩌면 쌍용자동차 파업노동자들의 싸움은 끝난 싸움이 아니라 이제 비로소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작이니까 잘 한 번 해보자, 이런 느낌이 아니라 언제 끝날 지 모를 터널에 그들이 이제 막 들어선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과 막막함.  

어제 용산참사 300일을 맞아 벌어진 굿판에서 "우리는 힘들지 않다!"는 구호가 나왔다고 한다. 물론 거짓말이다. 그 거짓말에 담긴 진실이 가슴에 꽂힌다. 용산참사 싸움은 올해 안에 끝을 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싸움에서 열세에 있는 편, 사회적 약자들에게 긴 싸움만큼 힘들고 지치고 고달프고 두려운 건 없다. 기륭, 이랜드, 용산, 쌍용, 그리고 촛불. 싸움은 점점 길어진다. "질긴 놈이 이긴다"고? 어디 한 번 계속해볼까? 니들이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다른 놈들도 이렇게 버틸 자신 있어? 한번 해볼래? 자본과 국가가 그렇게 말하며 시범 케이스를 만드는 것 같다.  

  

#2.

연말이 되면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한자성어를 선정해 발표한다. 몇 년 전부터 몇몇 주류언론에서 이걸 꽤나 비중있게 소개하면서 꽤 알려졌다. 교수들 특유의 '아는 척' 하는 태도, 가르치려고 드는 고질적 직업병이 보여 영 불편하지만 한 해를 단 네 글자로 정리해보는 것은 꽤나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작업이다.   

며칠 전에 만난 지인은 "올해 사회운동을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지리멸렬'이다"라고 했다. 지리멸렬.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이리저리 흩어지고 찢기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아직 한 달 좀 넘게 남은 2009년이지만 올해를 돌아보면,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파업, 미네르바 사건, KBS와 YTN 사건과 미디어법, 노무현과 김대중의 죽음, 연쇄살인과 성폭력 범죄 등등이 떠오른다.    

지리멸렬. 요즘 가끔씩 지난해 촛불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저 한여름밤의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장대했고 강렬했다. 그렇지만 쉽게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3.  

뤼신이 했다는 말. '고통의 기억과 연대는 가능한가'라고 묻는 서경식이 번역한 '희망, 소망이 없다고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의 없다. 그래도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문구가 떠오른다.   

지난 10년 동안의 21세기는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2009년은 그리고 앞으로 2010년대는 무엇으로 기록될까. 21세기에도 희망은 거의 없다고 봐야할까.  

오에겐자부로가 애용하는 표현이 있는데 바로 '희구한다'는 표현이다. 희망을 바라고 구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저 바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바라고 구해야 한다. 우선 나부터 지리멸렬, 우리 안의 패배주의와 싸워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방금 MBC에서 김재동의 인터뷰를 봤다. 어머니가 창녀라는 악플에 대한 느낌을 말하며 그는 '성노동자'를 염려한다. 그렇게 '성노동자'라는 단어가 공중파에서 한 연예인의 입을 통해 툭 튀어 나왔다. 그의 촉수, 혹은 인권감수성이 놀랍다. 

부산 국제시장 실탄사격장에서의 화재사건. 일본인 관광객 8명이 숨져다. 사망자는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긴급하게 현장을 방문했다. 정부 차원의 위로금도 지급될 모양이다. 정부는 용산참사 문제를 사인과의 문제라며 외면하고 있다. 이 또한 다를 것 없다. 아니 다르다. 피해자가 자국 철거민이 아니라,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이 나라에서 돈을 쓰고 가는 외국인 관광객이라는 것.  

한나라당은 밤 10시 이후부터 새벽까지의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법을 만드는 모양이다. 통행금지가 없어진 지 꽤 지났다. 일몰 이후 집회시위 금지가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취지에서 위헌(정확하게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는데, 그럼 이제 모든 한국인은 최소한 밤 9시 이전에는 일터에서 퇴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마스크를 쓰고 집회에 참석하면 잡혀간다는 법도 한나라당은 만들었는데 신종플루 때문에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4대강 사업을 비롯한 이 정부 시책의 곳곳에서 문제가 툭툭 불거지고 있다. 예상하건데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그게 여든 야든 간에 굵직한 권력형 비리가 몇 다발 터져 나올 것이다. 사법부와 언론은 하루가 다르게 망가져가고 있다. KBS정연주 사장YTN 해고 기자 사건, 지금 정부에 치명적이지 않은 부분에선 전향적인 판결과 보도가 속출하지만 미디어법 같은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그 눈치보기가 심히 안스러울 지경이다.   

루저 논란은 일파만파? 내 키가 10센티만 컸다면 아침에는 위너고 저녁에는루저 쯤 되겠다. 작금의 한국사회는 아무래도 간절히 마녀가 필요한 모양이다. 악마도 마귀도 아닌 마女 말이다.  

거실에서 뒹굴거리다 어제 오늘 KBS 스페셜 비슷한 걸 봤다. 어제는 살수대첩, 오늘은 해병대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 틀어놓은 게 국군방송이 아닌가 내 눈을 의심했다. 수나라 120만 대군을 맞선 고구려의 투쟁은 오로지 "왕년에 우리는 이렇게 잘 나갔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었나 싶다. 왜, 무엇을 위해 그들이 생사를 건 싸움을 선택했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빠진 채, 참 잘 싸우던 민족만이 부각되었다. 평화를 위한 군대가 아닌 전쟁을 위한 군대가 토요일, 일요일 KBS에 있었다.  


뱀발;
4대강,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서 김훈은 "잘 모르겠다. 전문가들은 다 어디 갔나?"라고 했단다 이명박은 "인기에 영합하지 않겠다"고 한다. 슬픈 이야기는 국민은 투표로 이명박을 뽑았고 사람들의 삶의 문제에 있어서 깊은 공감을 느껴 소설가 김훈의 책이 잘 팔린다는사실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Arch 2009-11-16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제동, 김훈, KBS의 의도에서 루저 논란까지 나무처럼님의 TV읽기는 재미있으면서 씁쓸하네요.
그나저나 주말에 텔레비전 본걸 쭉쭉 쓰려던 제 페이퍼 기획에 차질이 생겼어요.ㅋㅋ

나무처럼 2009-11-16 19:53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을.. 전 그냥 주마간산..수박 겉핧기였는걸요^^
 

오늘은 수능일. 일주일 전부터 오늘 날씨가 어떤지 알려준다. 일기예보가 아니라 메이뉴스에 나온다. 공무원들의 출근시간도 조정된다. 수험표만 있으면 경찰차든 퀵서비스 오토바이든 곧바로 수험생 수송에 투입된다. 그리고 며칠 뒤 서OO학교 OOO가 수능성적 비관으로 자살을 했다는 기사가 1단 정도 크기로 등장할 것이다. 매년 그래왔다.

이 죽음의 행렬은 비단 수능시험 성적 공개 전후의 일만은 아니다. 2005년 279명, 2006년 232명, 2007년 309명, 그리고 작년에 317명. 성적비관으로 자살하는 학생의 숫자가 거의 하루에 한 명 꼴에 다가가고 있다. 이 나라 권력자들이 좋아하는 그 OECD에서 청소년 자살률 1위를 고수하고 있고 그 상승추세도 매우 가파르다. 

평균 수면시간 5.6시간,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12시간 35분, 35%가 주1회 이상 언어폭력을 당하고 50% 이상이 주1회 이상 체벌을 경험하며, 머리길이와 모양, 옷 입는 것, 휴대전화 소지 등 일상적인 감시와 규제 속에서 시달리는 이들이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아닐까.

거리에서 “청소년은 미래의 주인”이라는 표어를 쉽게 볼 수 있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 청소년은 주인일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여전히 이 시대의 주인은 성인, 어른들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대통령 선거를 포함한 각종 선거에서 18세에게도 투표권을 달라는 요구가 있어왔고,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는 최소한 청소년들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 선거에서만큼은 선거권을 달라고 주장하며 가상의 청소년 후보를 내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미성숙한 이들의 치기어린 주장으로, 퍼포먼스나 헤프닝으로 다뤄질 뿐이다.

청소년들은 우리가 이 사회의 주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미래의 주인이니까 우리의 희망이니까 보호해줘야 하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보호주의에 그들은 진력이 났있다. 도대체 내일의 주인이라서 머리카락이 길어서는 안 되고, 우리의 희망이어서 잠도 충분히 못자고 12시간 넘게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논리가 어떻게 가능한가? 

수능시험을 본 이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하지만 참 많은 동료들은 수능시험장이 아니라 일터에서 오늘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저임금과 인금착취, 체불임금, 부당노동에 시달리면서 말이다. 그래서 수험생만이 아니라 모든 청소녀/년들에게 오늘 하루 정말 수고했다고, 제발 살아남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