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권재단에서 수여하는 '인권홀씨상'이라는 게 있다. 올해 두 번째인데 첫회는 청소년인권활동가 '따이루'가 받았고 올해는 윤가브리엘이라고 하는 에이즈 감염인 인권활동을 하는 이가 받게 되었다. 
노벨평화상처럼 유명한 사람이 받는 상도 아니고 무슨 훈장처럼 명망가들이 전리품 챙기듯 하는 상도 아니어서 더 눈길이 가고 의미있어 보인다.  아래는 난생처음 써본 추천의 글과  한국인권재단의 심사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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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홀씨상에 윤가브리엘을 추천하며

그는 친절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그에게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가족으로부터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도 못하고 중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집을 나와야 했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가전제품 공장, 봉제공장 등을 전전하며 공교육은 물론 그 어떤 사회적 배려나 제도적 보호도 받지 못했습니다. 사춘기 때부터 시작된 성정체성에 대한 번민과 좌절, 동성애자로 성소수자로서 짊어져야 했던 멍에와 가슴앓이는 온전히 자신만의 몫이었습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온 나라가 뜨거웠던 80년대, 평화시장에서 실밥을 뜯던 이 젊은이의 관심사는 20년 전 전태일과 마찬가지로 하루빨리 재단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에이즈 환자, AIDS/HIV 감염인입니다. 새천년이 온다고 다들 흥에 겨웠던 1999년 말, 2000년이 되면 컴퓨터가 말썽을 부린다던 밀레니엄 버그 대신에 그에게는 AIDS/HIV 바이러스가 찾아왔습니다. 21세기가 되어도 에이즈에 대한 공포도 사람들의 인식과 시선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크고 작은 질병들이 그의 육체를 공격했습니다. 그는 환자였지만 누워있지만은 않았습니다. 차별이라는 사회적 질병에 맞서 2003년 스스로 동성애자인권연대를 찾아 문을 두드렸습니다. 비록 한 명의 환자였지만 그는 사회적 질병을 치유하고 예방하는 길에 혼자 힘으로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는 인권운동가입니다. AIDS/HIV 감염인인 그가 세상에 나서자 사람들이 모여들고 단체가 만들어졌습니다. 무심히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 집회에 나와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 격리와 감시와 통제로 일관하던 보건의료당국, 잠재적 범죄자 아니면 병균 다루듯 하는 거대 언론사들, 그리고 오로지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들. 그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소리치고 싸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배움이 적은 것이 아쉽고 부끄럽다했지만 정작 그로부터 이 사회는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로 인해 다른 감염인들도 하나둘 증언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싸움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싸움이기도 했지만 이웃을 위한 싸움이었고 우리 모두를 위한 싸움입니다.

그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는 질병을 나누는 대신에 그 질병의 고통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고민하고 성찰하게 하며 마침내 변화의 길을 찾아 나서게 합니다. 그의 삶이 곧 인권운동이며 그의 존재가 억압과 불평등에 대한 저항입니다. 그를 통해 에이즈 감염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문제,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맞서는 소수자의 문제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모순과 맞닿아 있는 한 묶음의 문제임을 한국사회는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육체적 고통을 나눠가질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많은 질병과 장애에 맞서 혼자만의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자신의 고통을 사회적 고통으로, 자신의 싸움을 사회적 저항으로 바꾸어 가는 그 힘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친절하지 않은 세상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그의 따뜻함의 정체가 불가사의할 때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사람에 대한 그의 믿음, 희망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지 않나 싶습니다. 인권홀씨상은 그를 지지하고 그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그가 가진 힘으로 말미암아 인권의 홀씨들이 보다 생기 있고 따듯한 새바람을 타고 더 넓고 멀리 퍼지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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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권재단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곳에서 인권의 가치를 실천함으로써 인권 영역을 다양하게 넓히고 사회와 소통하는 인권단체 및 개인을 찾아 격려하고자 인권홀씨상을 제정하고 2009년 10월 13일부터 11월 9일까지 추천서를 접수하였습니다.
 
총 10분의 개인과 단체가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하였고, 11월 16일 (월요일) 인권재단 사무실에서 '2009 인권홀씨상' 최종 심사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날 심사를 위해서는 권태선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한국인권재단 이사), 이석태(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윤혜원 (전 연합뉴스 논설위원), 정정훈(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이렇게 네 분의 심사위원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최종 심사의 방법은 먼저, 심사 기준에 의거하여 각자 5명 정도의 후보를 추천하여 범위를 좁혔고, 그렇게 좁혀진 후보들에 대한 최종적인 토론을 통해 수상자를 선정하였습니다. 수상자 선정의 근거가 된 심사 기준은 아래와 같습니다.
 
  - 참신하고 창조적인 실천을 통해 인권 의제와 활동의 지평을 넓혔는가?
  - 관련 활동을 촉진하거나 확산하는데 기여하였는가?
  - 젊은 세대들이 삶의 롤 모델로 삼을 만 한가?
 
수상자로 선정된 윤가브리엘 님은, 동성애자인권연대와 HIV/AIDS감염인 모임 세울터의 회원으로 활동했고, 현재 <에이즈인권연대 나누리+>의 대표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에이즈인권연대 나누리+는 에이즈라는 질병으로 인해 권리를 침해당하고, 차별받는 감염인과 환자들의 인권과 치료권을 확보하기 위해 활동하는 연대 기구로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동성애자인권연대, 공공의약센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인권운동사랑방 등 5개 단체와 관심 있는 개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곳입니다.
 
윤가브리엘님은 그 자신이 HIV/AIDS 감염인으로서 '에이즈 인권교육', 'HIV/AIDS 인권가이드 마련',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개정활동' 등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비인권적 격리와 감시의 문제를 가시화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활동들을 벌여왔습니다.

특히 푸제온, 스프라이셀 등 감염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에이즈치료제에 대해 약값 문제를 들어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국내에 의약품 지급을 거부하자 2008년 <Global Action Week국제행동주간>을 기획하여 국제사회와 연대하여 공동행동을 조직화하고 해당 제약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지속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특허청에 푸제온에 대한 강제실시를 요청하고 생명과 직결된 약품인만큼 특허권보다 환자의 건강권을 우선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가장 극심한 영역으로 HIV/AIDS 감염인의 인권현실을 꼽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많은 오해와 편견 속에서도 활동가로서 자신을 드러냄으로서 삶 자체를 인권운동으로 만들면서 '에이즈 때문이 아니라 에이즈 약값이 없어 죽어간다’고 할 정도로 척박한 감염인의 현실을 드러내고 사회적인 개입을 촉구하는데에 윤가브리엘님이 선구적인 역할을 해 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활동이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 아픈 사람이 지체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건강권을 증진하는 활동으로 강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권의제의 지평을 넓히고, 인권활동을 확산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윤가브리엘님이 역경을 딛고 삶의 운동을 펼쳐온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또한 움직이게 하기에 젊은 세대에게 삶의 지침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2009년 인권홀씨상'의 수상자로서 가장 적합하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외에도 신유아(문화인권활동가, 용산참사현장 내 레아갤러리 운영자), 이주원(주거복지운동가, (사)나눔과미래 지역사업국장)님이 최종까지 수상 후보로 위 세 분의 후보가 비등하게 실력을 겨루었습니다.
 
신유아님은 문화연대에 소속된 문화인권활동가로서, 현재 용산범대위 현장팀장이자 용산 참사 현장 내에 위치한 레아갤러리 운영자로 활동 중인 분입니다. 삭막하고 지치기 쉬운 인권운동 현장에 문화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대중이 주체가 되는 활동을 기획하여 즐겁고 힘나는 운동, 대중과 교류하는 운동 현장을 만들어오신 '신의 손'입니다. 용산참사 희생자 중 한 분이 운영하셨던 레아호프를 갤러리로 탈바꿈시켜‘망루展’, ‘그림책 화가들 촛불을 들다展’등의 전시를 기획하기도 하셨습니다.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 희망', 인권단체연석회의 촛불집회 , ‘콜트·콜텍 노동자를 위한 문화제’ 등 다수 문화행사 기획하고 진행해 오셨는데요.
심사위원들은 신유아님이 집회와 시위 문화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국내외 집회 시위 사례를 수집·분석하여 집회 성격에 맞는 프로그램을 기획함으로써 참가자의 상상력과 참여를 이끌어내도록 함으로서 인권운동의 문화적 질을 높일 뿐 아니라, 대중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인권의제들을 쉽고 가깝게 표현하여 인권의 의제와 활동영역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고 보았습니다.
 
이주원님은 주거복지운동가로서, 현재 (사)나눔과 미래 지역사업국장이십니다. 1999년 IMF로 대량 유입된 노숙인을 위해서 무료급식 및 쉼터를 제공한 <아침을 여는 집>을 시작으로 노숙인 지원활동을 하셨고, 노숙인을 위한 매입임대주택 활동 등을 진행하던 중 기존의 철거반대운동의 한계를 넘고자 <재개발(뉴타운) 지역 주민지원 활동>을 진행하셨습니다. ‘재개발(뉴타운) 세입자 주거이전비 집단소송’, ‘서울시도시계획시설사업 주택세입자 주거이전비 집단소송(옥인동, 용강동 시민아파트 등)’,‘재개발 기본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발의 등의 활동을 펼쳐 오셨고 용산참사 이후에는 희생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지속중이십니다.
심사위원들은 이주원님이 투기와 건설사 이익에 따른 개발이 아닌, 주민들이 살아갈 수 있고 개별 마을에 어울리는 <대안개발>이라는 개념을 확산시켜왔다는 점에서 유력한 수상후보로 거론되었습니다.
 
 
이날 심사위원들은 각각의 후보들이 모두 수상자로 선정되어도 무리가 없을만큼 중요한 활동과 단단한 의지를 펼쳐오신 분들이라고 공감했습니다. 또한 인권재단이 수상자뿐 아니라 추천되었던 모든 분(단체)들이 이번을 계기로 더욱 많이 알려지고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기를 당부했습니다.
 
한 장, 한 장, 읽기만 해도 눈과 마음이 정화되는 추천서들이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정성껏 추천서를 적어주시고 마음 내어 기다려주신 모든 추천인들께 깊은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2009년 인권홀씨상' 시상은 12월 14일(월) 6시 30분, 서교동 인권재단 사무실 3층 '크레이지오션 홍대점'에서 '2009년 후원의 밤' 행사와 함께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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