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는 손들의 마지막 신호.
연기처럼 사라지는 약속.
킹사이즈의 혼란.
구호에 대한 암호.
등화관제 아래 지각없는 불빛.
습관적인 무적(霧笛).
아마 우리 숨결의 외출.
- 정현종 시 <담배를 보는 일곱 가지 눈>
#1.
일단 담배는 안 좋다.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니트로사민, 질소화합물, 시안화수소, 암모니아, 니코틴, 타르, 석탄산, 포로늄 크레졸, 싸이나, 벤조피렌, 아크롤레인……. 보통 담배 한 갑에 2천5백 원, 세금을 빼면 천 원이나 될까 싶은데 (그것도 한 갑이 아니라 한 개피에) 무려 4천여 가지 화학물질이 들어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 중 나프탈아민, 니켈, 벤젠 비닐 크롤라이드, 비소, 카드늄 등은 대표적인 발암 물질로 폐암, 구강암, 후두암, 식도암, 신장암, 방광암, 췌장암, 자궁경부암을 유발하고 뇌세포 파괴나 정신질환 유발, 성기능장애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사실은 이미 일반상식에 속한다.
게다가 “내 가족, 이웃까지도 병들게” 한다. 이른바 간접흡연. 최근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간접흡연의 정도를 평가할 수 있는 코티닌이라고 하는 환경독성물질의 농도가 높을수록 어린아이들에게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충동성 등 ADHD증후군(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의 증상들이 심해지고 철자법과 수학계산 등 학습능력이 저하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또한 우울감, 집중력 저하, 무기력증 등 다양한 심리적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며 ADHD증후군 발병률이 1.5배 이상 높게 나타난다니 끽연자야말로 걸어 다니는 흉기라 아니할 수 없고 자녀가 있음에도 담배를 피우는 필자 같은 경우는 가히 제정신이라 할 수 없다. 또한 산불을 비롯한 각종 화재의 주범으로 몰리기도 하고 교통사고의 원인으로 들먹여지기도 하니 어찌하여, 여태껏 흡연이 범죄의 목록에 오르지 않았는지 되려 신기할 따름이다.
이런 의학적 연구(로 포장된 공공연한 협박)까지는 아니어도 흡연이 안 좋다는 것은 끽연자라면 매일 매일, 매 순간 순간 온몸으로 느낀다. 전날 술자리에서 좀 많이 피웠다 싶으면 오전 내내 속이 더부룩하고 골이 띵하고 숙취가 오래 간다. 주로 담배를 짚는 검지와 중지 손가락만이 아니라 머리에서 발끝가지 담배냄새에 찌들어 애들이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옆에 오기 꺼린다. 호주머니를 털면 담배가루가 날리고 담뱃재는 끽연자의 주변을 맴도니 늘 지저분하다. 담배는 있는데 라이터가 없는 참으로 불미스러운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담배 빵’을 당해 구멍 난 옷 한두 벌쯤은 차라리 애교라 할 수 있다. 지인의 아끼는 옷에 구멍을 냈을 때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자신이 피운 담배연기가 어쩌다 눈에 들어갔을 때는 그렇게 슬플 수가 없고 내가 떨어낸 불똥에 데었을 떼는 어디다 하소연 할 곳조차 없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마땅히 피울 데가 없어 우산을 받쳐 들고 한 모금을 빨면 좋다가도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 끽연자로 살아간다는 건 구질구질하게 너저분한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2.
30년 전만 해도 담배는 우리 삶 도처에 있었다. 할아버지는 사랑방에서, 아버지는 안방에서, 할머니는 장독대 근처에서 무시로 담배를 태우셨다. 아버지가 피우던 450원짜리 거북선 담배 심부름은 곧 용돈 50원이 생기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도 남아있는 무궁화호 열차와 낡은 시외버스 등받이에 (심지어 저가항공 비행기 좌석에도!) 달린 재떨이는 담배가 우리와 참 오랫동안 동행했음을 증언하고 있다.
올 봄 TV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1970년대 TBC방송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청실홍실’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시 3대 트로이카로 불리던 배우 정윤희의 미모도 그렇지만 거의 매 회마다 등장하는 흡연 장면. 그 시절에도 카리스마 넘쳤던 배우 강부자는 담배와 혼연일체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담배는 시인의 고독, 지식인의 고뇌, 시련의 아픔, 일탈과 타락, 노동이 끝난 뒤의 여유로움, 토론의 진지함, 갈등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표현할 수 있는 만능 소품이었다. 요즘 드라마가 시청자를 피곤하게 만들 지경까지 속사포로 대사를 쏟아내는 것은 어쩌면 TV에서 담배가 사라진 탓은 아닐까?
물론 그때도 부자들은 비싼 담배를, 가난한 이들은 싸구려 담배를 피웠지만 그럼에도 다들 담배를 나누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아니, 윗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개피를 건네는 것만큼 진한 우정과 환대의 표시는 없었다. 특히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권할 때 담배는 마치 ‘어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과도 같았다. 그러므로 담배 앞에서 우리는 평등했다? 아니, 결코 그렇게 말 할 수는 없다. 이 우정과 환대의 울타리 안에 결코 들어올 수 없었던 사람들, 여성과 청소년의 흡연은 곧 탈선으로 지목되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았던가.
#3.
여자가 지붕 없는 곳에서 담배를 피우면 경범죄로 처벌받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지만 필자도 남성인 만큼 흡연에 있어서의 성차별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소극적인 저항으로 아무도 없는 고등학교 교무실에서 후배들에게 망보게 한 뒤에 담임선생님 책상에 발을 올리고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던 필자였음에도 말이다.
그러다 전직 기자이자 지금은 제주 올레길로 더욱 유명한 서명숙 씨의 『여성흡연 잔혹사』를 읽게 되면서 그야말로 잔혹했던 흡연에 대한 성차별을 알게 되었다. 데모를 하다가 잡혀간 경찰서에서 남자 대학생에게는 담배를 권하던 형사가 여자 대학생 가방에서 담배와 라이터가 나오자 뺨을 때렸다는 일화에서부터 운전을 하다가 음주단속을 만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담배를 끄고 창문을 내리며 “저 안 피웠는데요.”라고 했다는 일화까지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여기에 다 옮길 수 없다. 다만 책에서의 인상적인 물음. 왜 흡연 문제에서의 극심한 성차별이 유독 할머니에게만은 관대한가? 폐경기를 지난 할머니는 사회적으로 여성이 아니기 때문이고 남성중심 사회에서 바라는 바, 건강한 여성의 몸을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란 진단이다. (참 재수 없다.) 더 한 것은 할머니만이 아니라 술집 작부나 마담 등 주부/어머니이어야 할 여성이 아니라면 남성들은 한 없이 담배에 관대했다는 것. 담배를 피우는 것이 한 때 여성해방의 중요한 액션이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요즘 들어 부쩍 내몰리고 위협받는, 그래서 흡연권 운운하기까지 하는 (특히 남성) 끽연자들은 먼저 처절한 탄압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장렬이 전사하기도 했던) 이 땅 여성흡연자들에게 깊은 사과와 무한한 존경을 표하는 것이 먼저다.
#4.
담배를 피운다는 게 썩 좋은 일이 아닌 이유는 차고 넘친다. 승리, 무궁화, 재건, 새나라, 희망, 신탄진, 새마을, 88, 엑스포, 하나로……. 왠지 담배를 피우기 전에 국기에 대한 경례라도 하고 불을 붙여야 할 것 같지 않은가? 예나 지금이나 담배 가격에서 60%를 넘는 각종 세금은 국가재정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1990년대 농촌활동을 가서 양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2012년 오늘 광화문 한 복판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외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고 불경한 짓이었다. 애국, 애족, 애향심이 과하다 싶은 이 나라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왠지 국민의 (신성하지는 않을지라도) 의무를 수행하는 일 같기도 하여 거시기하다. 그것도 1952년에 벌써 담배가 폐암을 유발한다는 신뢰할만한 보고가 이뤄진 것을 뻔히 알았으면서도 스무 살 청년들을 군대로 끌고 가 무료로 담배를 나눠주며 중독 시킨 뒤 수십 년 동안 팔아먹었던 이 정부가 요즘 하는 꼬락서니를 볼 때면 더 그렇다. 그래도 북한이 아시아에서 흡연율 1위를 달리고 한국이 OECD 국가 중 남성흡연율 1위를 차지했다고 하니 이 또한 민족동질성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어릴 적에는 동요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군가였던 노래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라는 구절만 봐도 알 수 있듯 담배와 군대, 전쟁도 꽤나 사이좋은 관계다. 북미 원주민들이 콜럼버스에게 선물하여 유럽으로 전해진 뒤 어김없이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흡연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고도의 스트레스가 동반되는 전투에서 군대는 병사들을 다독이기에 담배만큼 좋은 것을 찾지 못했다. 긴장을 완화시켜 주고 집중력을 높여주며 무료함을 달래주기까지 하는 담배. 게다가 담배의 역사는 식민주의와도 밀접하다. 대영제국의 건설의 주요 자금줄은 담배교역이었고 식민지에서 담배를 재배하는 일은 제국에 반하는 범죄였다. 이래저래 담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사람들은 또한 담배 때문에, 담배를 피며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담배는 해로워야 마땅하다.
#5.
혐연권(간접흡연을 하지 않을 권리)과 흡연권(담배를 피울 권리)에 대한 논쟁이 간혹 언론에 등장한다. 몇 달 전에는 ‘흡연권의 제한과 한계’라는 꽤나 그럴 듯한 제목의 포럼이 열리기도 했다. 서울시의회는 간접흡연의 피해를 막겠다며 조례를 제정해 공원만이 아니라 길거리에서의 흡연에도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한다. 앞에서 구구절절 언급했다시피 담배가 흉기에 가까운 물건이고 흡연이 범죄에 필적하는 행위이니만큼 혐연권의 주장은 성폭력범에게 전자발찌를 채우자는 주장이나 연쇄살인범을 극형에 처하자는 주장만큼이나 지당하다. 반면 반대 측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개인 사생활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을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한겨레 2011년 12월 23일 ‘길거리 흡연 금지 어떻게 봐야 하나?’ http://www.hani.co.kr/arti/opinion/argument/511608.html). 또 흡연권이 권리인지, 흡연을 제한하는 것이 과잉금지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도 벌어졌는데(한겨레21 제902호 ‘흡연권은 권리가 아니다, 과잉금지 위헌이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2503.html) 헌법재판소는 2004년에 흡연권보다 혐연권이 우선하며 흡연권을 기본권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한 오백년 꾸준히 피우다보면 관습헌법의 지위를 얻게 될 런지 모르겠다.)
무리하게 담배 피울 권리를 인권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글이 막바지에 접어든 이 대목에서도 도대체 담배와 인권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심스럽고 뭘 어디다 어떻게 끌어다 붙여야 하는지 걱정이다. 그렇지만 단 한 명도 담배 따위는 피지 않는 미래 세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살인미수는 처벌받고 자살방조도 처벌받지만 자살미수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자살이 미수에 그치지 않고 성공하면 당연히 처벌할 수가 없다.) 자신의 생명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어서 파괴할 권리도 그 자신에게 있다고 보는 것일까? 이건 프라이버시를 넘어 소유권의 문제인가? 그런데 마약 복용이나 문신은 처벌 대상이고 존엄사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왠지 이 문제에 법철학자나 문화인류학자를 불러와야 될 것 같다.
언젠가 모란시장을 갔다가 약장수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원숭이(침팬지였을 지도 모르겠다)를 본 적이 있는데 왠지 안쓰러웠다. 약장수는 어떤 강압과 사육으로 담배를 가르쳤을까? 놈의 동물권은 침해받은 것일까? 본능적으로 연민의 감정이 치밀어 올랐지만 어쩐지 마주앉아 담배를 핀다면 더 이상 놈을 동물로 대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흡연이 인권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인간적인 문제인 것만은 확실하다.
#6.
문화사회학자 호이징가는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라는 개념을 통해 문화 속에 놀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통해 문화가 만들어진다는 이론을 세웠다. 일과 놀이가 나뉘지 않고 뒤엉켜 굴러가던 시절 흡연은 뭘 만들어냈을까?
담배는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상비약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영혼의 세계와 접촉하는 주술의 도구로 쓰였다. 마야문명에서 흡연은 부족의 중요한 제례의식 중 하나였다고 한다. 3천년이 넘도록 계속 되어 온, 불을 붙이고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이 행위는 가장 원초적인 놀이이자 문화의 결정체라 할 만하지 않은가.
얼마 전 처갓집에 힘든 일이 있었다. 늘 그렇듯이 사위들과 술잔을 기울이시던 장인어른은 난데없이 사위들에게 맞담배를 허하셨다. (물론 아직도,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담배를 피우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인 동시에 어려운 시간을 함께 거쳐 온 이들이 주고받는 5분간의 위로라는 생각을 했다. 필자의 아이들이 자라 끽연을 하는 날이 온다면 주저 없이 맞담배를 허할 것이다. 이제 필자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7.
25년째 일말의 가책도 없이 하루에도 10여 차례 피우고 있다. 얼추 계산해보니 10만 개피. 내 인생에서 10만 번 반복해서 해왔던 일이 달리 또 무엇이 있을까?
1986년. 아시안게임이라는 뭔가 국가적으로 뿌듯한 대규모 행사가 열리는 한편 전교조가 만들어졌던 해. 온 나라가 ‘평화의 댐’이라는 희대의 국가 사기극에 놀아나던 바로 그 1986년 어느 날 필자는 동시상영 극장에 앉아 있었다. 학생 신분을 굳이 속일 필요도 없는 허술하고 허름한 극장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다들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해야 했지만 (우리는 객기를 부려 애국가 제창을 하기도 했다.) 조금 지나면 바로 담배연기가 자욱해지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스러운’ 극장이었다. 거기서 많은 홍콩영화들을 봤지만 단연 인상 깊었던 영화는 ‘영웅본색’이었다. 그때 주윤발을 만나지 않았다면 담배를 피우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은 물론 가당치도 않다. 인문계 고등학교 커트라인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도 공부에는 영 흥미가 없어 무협지로 어둔 밤을 하얗게 지새우던 사춘기 소년에게 담배만큼 나름 안전하면서도 매혹적인 것이 또 있었을까?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작가 지망생이 된 소년에게 담배는 더 이상 깡패나 조폭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새벽마다 거울을 보며 주윤발이 아니라 시인 김수영처럼, 소설가 김승옥처럼 담배 피우는 연습을 했다. 놀이터에서 경비 아저씨에게 걸려 ‘엎드려 벋쳐’를 하고 ‘쪽수’만 믿고 8차선 대로변에서 담배를 피우며 가다 형사에게 붙들려 파출소에서 무릎도 꿇어봤지만 청소년이었기에 청소년이 아니고자 했던 욕망, 거기에는 담배가 필수불가결한 소품이었다.
돌아보면 어느 자동차 광고의 카피처럼 “나는 당신과 함께” 했다. 대학입학 시험에서 떨어지고 올라간 지리산 노고단에서의 한 모금, 더 이상 너희는 사람이 아니라 군인이라며 연병장을 뒹굴다 10분간 휴식에 차렷 자세로 피워야 했던 한 모금, 3년의 수배생활 끝에 잡혀서 봉고차에 태워진 뒤 수갑을 차고 피웠던 한 모금, 여명에 맞춰 새카맣게 몰려드는 전경들을 보며 대추리 마을회관 옥상에서의 한 모금, 아버지의 영정사진과 맞담배질을 했던 장례식장에서의 한 모금, 산부인과 앞에서 첫째의 탯줄을 자른 손 떨림이 가시지 않은 채 피웠던 한 모금.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에서처럼 천국의 문 앞에서도 아마 한 모금 깊게 들이마신 뒤 문을 두드릴 것이다.
-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2012년 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