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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엄마야 -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7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 오월의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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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유혹] 서로의 질문이 무성히 피어나길

<그래, 엄마야>(오월의 봄,2015)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를 읽고

10년 쯤 전의 일이다. 친하게 지내는 부부였는데 결혼한 지 5년이 지나도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부부는 인공수정을 했고 쌍둥이를 임신했다. 임산부가 나이가 있어서인지 병원은 태아의 염색체 이상 유무를 알아보는 양수 검사를 권했고 검사 결과 쌍둥이 중 한 명에게 문제가 있다고 했다. 출산을 하면 아이가 장애를 가질 확률은 40%, 인위적으로 유산을 할 경우에는 나머지 아이가 자연 유산할 확률은 50% 쯤.
부부는 인위적인 유산을 선택했고 결국 나머지 아이마저도 잃었다. 그러는 동안 부부는 내게 의견을 묻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의견을 물었다고 한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만약 우리였다면 하고 잠시 와이프와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다. 그러나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는 무기력하게 주변을 겉돌 뿐이었다. 

적대적 세상에 내던져진 아이와 부모 

“‘그럼 그렇지. 다른 애들보다 반응이 약간 느리긴 해도, 너 잘 크고 있는 거지’” -37쪽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아기가 생겼다. 아기도 그랬겠지만 부모도 부모가 되는 순간 세상에 툭 내던져지는 느낌이다. 낳고 보니 육아와 돌봄에 대해 나는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정보도 제한적이었고 육아 지식이라는 것들도 갑론을박 중구난방이었다. 내 어머니는 몸이 불편하셨고 와이프 부모님은 시골에 사셨기에 도움의 손길을 구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셋이서 치러내야 했다. 야심차게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이라는 천 기저귀를 구비해놓았지만 단 일주일 만에 포기하고 일회용 기저귀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와이프가 둘째를 가졌을 무렵에는 신종플루가 창궐했고 아이와 와이프도 걸렸다. 의사는 와이프에게 타미플루를 처방하면서 “아직까지는 임산부에게 부작용이 있다는 보고는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의 무지, 우리의 무지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그러면서 깨닫은 것은 이 세상이 아이에게,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골목의 자동차, 거리의 버스, 땅 밑의 지하철, 식당 앞 계단, 중국에서 날아온다는 황사, 심지어 이웃집 노부부의 말 한마디까지 말이다. 

그런데 만약 아이가 장애가 있다면?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세상은 우호는커녕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낸다. 적대적인 세상에 내던져진 그들의 전쟁, 그 한 가운데 엄마가 있다. 

“아버님이 대놓고 저한테 ‘정신과를 갈 사람은 애가 아니라 너다’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럼 아버님이 원하는 병원에, 원하시는 날짜에 원하는 시간 잡아주면 제가 검사를 받을게요. 저는 아버님 며느리니까 아버님이 하라는 대로 할게요. 대신 제가 아버님한테 돈 대달라고 안 할 테니까 제 아이를 가지고 제가 하는 거는 신경 안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71쪽

‘전쟁’이라는 단어를 쓰다가 멈칫한다. 하지만 그들의 곁에 서본 사람, 그들의 일상을 엿본 사람이라면 이 표현이 그저 비유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호기심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는 사람들 속을 헤집고 들어갔다 헤집고 나오는 일, 동정 혹은 멸시의 시선과 말들 속에서 끊임없이 아이의 상태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는 일의 반복. 비장애인 큰딸과 장애가 있는 쌍둥이를 둔 엄마는 큰딸에게 “누군가 쌍둥이를 안 좋은 눈으로 보고 있어서 힘들면 가족이 아닌 척해도” 된다, “그래도 엄마는 뭐라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이 일상이 ‘전쟁’이 아니라면 달리 뭐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전쟁의 책이 아닌 질문의 책

그렇지만 이 책이 전쟁의 기록, 매일매일 벌어지는 처절한 사투를 담았다고 짐작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육아를 해본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할 수 있는, 어디서나 흔히 만나게 되는 아이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어떤 엄마는 ‘엄마가 행복해야 자녀도 행복하다’는 생각에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자신이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닌지 고민한다. 어떤 엄마는 가족 내에서 아빠와 비장애 자녀의 위치가 어디쯤일지 살피는 중이다. 어떤 엄마는 조금씩 장애 아이와 거리두기를 시도하기도 하고 어떤 엄마는 아이로부터 그런 도전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들을 ‘이 시대 모든 엄마의 이야기’로 요약해서는 안 된다. 발달장애인이 지역에서 같이 살아야 된다는 지극히 소박하고 상식적인 요구를 하며 ‘엄마’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시청에서 36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엄마들의 이야기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면서 자녀의 보호자이자 관찰자이며 적군이자 아군이며 마침내 동료와 동반자가 되는 열여섯 명 엄마들의 마음자리가 어떻게 바뀌는지, 그들의 삶이 어떻게 진동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진동은 책을 읽는 나의 마음도 진동시킨다. 

“네. 대답을 해요. 그런데 몸으로 하니까, 기다려 주세요. ... 발달장애를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장애인이 이해 대상으로만 여겨지지 않았으면 해요.” -287쪽

큰애가 발달장애 아이와 어린이집을 같이 다니면서 두어 해 동안 가까운 이웃으로 살게 된 경험은 내게도, 아이에게도 장애에 대한, 인간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안겨주었다. 무엇보다 큰애는 차이와 다름에 대해, 사람 저마다가 가진 속도에 대해 미약하지만 머리와 몸으로 이해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그 가족과의 만남은 너무나 소중하고 진심으로 그들에게 고맙다. 아이의 변화와 나와 그들의 변화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고 분에 넘치는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장애는 어쩌면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누군가 우리에게 건넨 숙제이면서 선물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굳이 아이가 내게 묻지 않더라도, 내가 아이에게 묻지 않더라도 무수한 질문과 맞닥트린다. 아이는 그 자체로 거대한 질문 덩어리다. 이 책도 그렇다. 아빠들은 다 어디 가고 왜 고군분투의 현장을 엄마만 지켜야 하는 것일까? 아이를 인격적으로 존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부모의 성장과 아이의 성장은 어떤 관계일까? 사회가 강요하고는 하는 아이 발달의 ‘정상성’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그리고 현실에서 장애를 이해하면서도 이해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이 손을 놓고서 멀리 떠난다 해도 우리 아이가 엄마의 손길을 이 사회 속에서 여전히 받아가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생에서의 내 삶이 그걸 위해 쓰여도 좋습니다. 우리 아이와 어미인 저는 이번 생을 그렇게 같이 살다 가려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어미가 그렇듯, 이 아이로 인해서 나는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26쪽

책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 질문을 찾아나가는 여러 경로를 보여줄 뿐이다. 답을 찾은 이도 있고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도 있으며 이제 막 발을 땐 이도 있다. 중요한 것은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의 질문이 그들만의 질문이 아니듯 구하고자 하는 답도 그들만의 답은 아니라는 점, 그들이 찾은 답으로 인해 마침내 서로의 질문이 더욱 무성하게 피어날 테니 말이다. 

물론 그렇지 않아도 좋다. 괜찮다.



- 인권오름 2016.6.18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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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응답할 수 있을까

-재난참사에 대한 기록들


어쩔 수 없이 읽게 되는 책이 있다. 나에게는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그런 책이다. 책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유족들 인터뷰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지만 막상 책이 나온 뒤에 나는 도저히 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깊은 슬픔과 커다란 고통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만들 때 내가 기획했던 책, <밀양을 살다>가 참고가 되었다며 저자 간담회 자리에 내가 패널로 소환(?)되는 일이 벌어졌다. 간담회 날짜가 다가오자 책을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몇 번씩 책을 덮어가며 며칠에 걸쳐 겨우 책을 읽었다. 지난해 여러 곳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이 책의 내용을 여기에서 다시 소개할 필요는 없겠다. 대신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재난참사에 관한 기록들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제 곧 또 다시 잔인한 봄이 올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세월호 2주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2년이라는 시간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기에 어느 정도 적당한 시간일까? 아니 적당한 시간이란 게 과연 있기나 할까? 우리는 누구나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재난참사를 겪은 이들의 시간은 그렇지 않은 이들과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몇 십 년 같은 하루를 살기도 하고 며칠 혹은 몇 개월이 하루 같기도 하다. 때문에 재난참사를 겪은 이들에게 동일한 일상의 시간 감각을 회복하라는 요구는 그 자체로 커다란 폭력이다. 최소한 우리는 남겨진 이들이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의 저자 노다 마사아키는 이 애도의 시간을 절망, 분노, 우울, 용서와 수용, 재출발 등으로 구분하여 ‘상(喪)의 단계’라고 이름 붙였다. 그런데 이 단계는 일직선으로, 순차적으로 밟게 되는 과정이 아니다. 이미 지나온 단계로 돌아가 같은 과정을 다시 밟아오는 경우도 있고, 단계의 지속 기간이나 강도도 저마다 다르다. 결국 재난참사를 겪은 생존자들과 유족들의 슬픔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전형화하지 말고 각각의 처지와 조건을 헤아리는 것부터 위로와 공감은 시작되어야 한다.  


정신병리학자인 노다 마사아키는 1985년 일본항공(JAL) 추락 사고 당시 유족들의 상담을 맡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대형 참사 유족들의 슬픔에 대한 책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를 쓰게 되었다. 이 책은 520명이 사망하여 일본 항공사고 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JAL 추락 사고와 수학여행 중 수많은 일본 학생들이 희생당한 상하이 열차 사고 등 대형 참사를 겪은 유족들을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유족들은 왜 그토록 시신을 찾으려고 애쓰는지, 잘못된 보상 과정이 유족들에게 어떤 아픔을 안겨주는지, ‘유족의 시간’과 ‘관계자의 시간’은 어떻게 다른지, 관 주도의 추모행사가 어떻게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며 어떤 집단은 어떻게 애도를 돈 벌이에 이용하는지 등에 대해 때로는 조근조근 설명하고 때로는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재난참사를 겪은 이들에게 주변 사람과 이 사회가 어떻게 그들을 위로하고 함께할 것인지에 대한 귀중한 조언이다.  


생존자, 그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것이 인재(人災)가 되었든 자연재해가 되었든 재난참사를 겪은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경험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재난을 다시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침묵은 어떤 경우라도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혹시 사회가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 오해나 편견에서 비롯된 비난의 시선이든 선의에서 비롯된 동정의 시선이든 당사자에게는 무슨 무슨 사건의 ‘피해자’로 낙인찍히는 것은 또 하나의 고통이자 억압이다. 그러므로 재난을 겪은 이들을 피해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 온전히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 <쓰나미의 아이들>은 그런 점에서 침묵을 강요당하기 일쑤인 아이들의 목소리를, 재난에서 출발했지만 재난 이후의 삶까지 담아냈다는 점에서 너무나 소중하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북동부에서 진도 9.0의 거대한 지진이 발생했고 후쿠시마 원전을 비롯한 일대 지역에 거대한 쓰나미가 덮쳤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2만여 명, 피난민 수는 38만 명을 넘어선 이 재난이 벌어지자 탐사보도 전문 기자 모리 겐은 현장으로 달려가 대피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아이들에게 그날의 일에 대한 작문을 부탁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쓴 글이 <쓰나미; 피해 지역 아이들 80명의 작문집>으로 묶여 일본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거기에 담긴 이야기 중 10개의 스토리를 뽑아서 추가로 취재와 인터뷰를 한 책이 바로 <쓰나미의 아이들>이다. 


하루 아침에 쓰나미로 집을 잃고 가족과 친구를 잃은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고 이혼이나 재혼 등 가족의 구성도 다양하며 당연히 쓰나미 이후 삶을 꾸려가는 방식도 저마다 다르다. 다만 재난을 겪었다는 것과 함께 재난에도 불구하고 서로 서로 삶을 지탱하며 살아간다는 점만은 동일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재난 이후에도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쓰나미의 아이들>은 들려주고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책임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이다. 전후후무한 탈핵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본인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목소리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겪은 수많은 이들의 참혹한 목소리를 가공 없이 있는 그대로 담았다.


20세기 최악의 참사로 불리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사고 당일 2명의 작업자가 그 자리에서 죽고, 화재 진압에 나선 소방대원이 방사능에 피폭되어 3개월 뒤 29명이 사망했으며, 원자로 주변 지역 9만 여 명이 강제 이주되었다. 그 뒤로 6년 동안 발전소 해체 작업에 동원된 노동자 6,000여 명, 그 지역에서 소개된 민간인 2,500여 명이 사망했고 최소 40만 명, 최대 70만 명 정도가 암, 기형아 출산 등 각종 후유증을 앓고 있다. 러시아의 한 환경단체의 통계로는 이 사건으로 죽은 사망자는 총 150만 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사건의 참상이나 피해의 규모에 있지 않다. 알렉시예비치는 이 책의 한국어판에 별도의 서문을 실었다. 요약해서 옮기면 이렇다. 
















“두려움만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 첫 번째 핵 수업은 체르노빌이었다. … 그리고 지금, 우리는 두 번째 핵 수업을 받고 있다. 하나도 아닌 11기의 원자력 발전소에 사고가 났다. 체르노빌처럼 후쿠시마에도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 오늘날 거의 30개국에서 443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미국 104기, 프랑스 58기, 일본 55기, 러시아 31기, 그리고 한국에 21기가 있다. 종말을 앞당기는데 충분한 개수다. …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체르노빌을 겪어 본 인류는 핵 없는 세상을 향해 갈 것만 같았다. 원자력의 시대를 벗어날 것만 같았다. 다른 길을 찾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체르노빌의 공포 속에 살아간다.”


비단 핵 뿐일까? 우리는 몇 번째 수업을 받고 있나?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 지하철,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해병대 캠프… 그리고 세월호. 왜 무겁고 슬프고 힘겨운 재난참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만 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뜬금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책임감을 뜻하는 영어단어 ‘responsibility’는 응답(response)과 능력(ability)의 합성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물론 상황은 비관적이다. 알렉시예비치의 한국어판 서문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어깨동무> 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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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는 손들의 마지막 신호.


연기처럼 사라지는 약속.


킹사이즈의 혼란.


구호에 대한 암호.


등화관제 아래 지각없는 불빛.


습관적인 무적(霧笛).


아마 우리 숨결의 외출.


- 정현종 시 <담배를 보는 일곱 가지 눈>

 

 

 

#1.

일단 담배는 안 좋다.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니트로사민, 질소화합물, 시안화수소, 암모니아, 니코틴, 타르, 석탄산, 포로늄 크레졸, 싸이나, 벤조피렌, 아크롤레인……. 보통 담배 한 갑에 2천5백 원, 세금을 빼면 천 원이나 될까 싶은데 (그것도 한 갑이 아니라 한 개피에) 무려 4천여 가지 화학물질이 들어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 중 나프탈아민, 니켈, 벤젠 비닐 크롤라이드, 비소, 카드늄 등은 대표적인 발암 물질로 폐암, 구강암, 후두암, 식도암, 신장암, 방광암, 췌장암, 자궁경부암을 유발하고 뇌세포 파괴나 정신질환 유발, 성기능장애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사실은 이미 일반상식에 속한다.

 

게다가 “내 가족, 이웃까지도 병들게” 한다. 이른바 간접흡연. 최근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간접흡연의 정도를 평가할 수 있는 코티닌이라고 하는 환경독성물질의 농도가 높을수록 어린아이들에게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충동성 등 ADHD증후군(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의 증상들이 심해지고 철자법과 수학계산 등 학습능력이 저하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또한 우울감, 집중력 저하, 무기력증 등 다양한 심리적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며 ADHD증후군 발병률이 1.5배 이상 높게 나타난다니 끽연자야말로 걸어 다니는 흉기라 아니할 수 없고 자녀가 있음에도 담배를 피우는 필자 같은 경우는 가히 제정신이라 할 수 없다. 또한 산불을 비롯한 각종 화재의 주범으로 몰리기도 하고 교통사고의 원인으로 들먹여지기도 하니 어찌하여, 여태껏 흡연이 범죄의 목록에 오르지 않았는지 되려 신기할 따름이다.

 

이런 의학적 연구(로 포장된 공공연한 협박)까지는 아니어도 흡연이 안 좋다는 것은 끽연자라면 매일 매일, 매 순간 순간 온몸으로 느낀다. 전날 술자리에서 좀 많이 피웠다 싶으면 오전 내내 속이 더부룩하고 골이 띵하고 숙취가 오래 간다. 주로 담배를 짚는 검지와 중지 손가락만이 아니라 머리에서 발끝가지 담배냄새에 찌들어 애들이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옆에 오기 꺼린다. 호주머니를 털면 담배가루가 날리고 담뱃재는 끽연자의 주변을 맴도니 늘 지저분하다. 담배는 있는데 라이터가 없는 참으로 불미스러운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담배 빵’을 당해 구멍 난 옷 한두 벌쯤은 차라리 애교라 할 수 있다. 지인의 아끼는 옷에 구멍을 냈을 때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자신이 피운 담배연기가 어쩌다 눈에 들어갔을 때는 그렇게 슬플 수가 없고 내가 떨어낸 불똥에 데었을 떼는 어디다 하소연 할 곳조차 없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마땅히 피울 데가 없어 우산을 받쳐 들고 한 모금을 빨면 좋다가도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 끽연자로 살아간다는 건 구질구질하게 너저분한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2.

30년 전만 해도 담배는 우리 삶 도처에 있었다. 할아버지는 사랑방에서, 아버지는 안방에서, 할머니는 장독대 근처에서 무시로 담배를 태우셨다. 아버지가 피우던 450원짜리 거북선 담배 심부름은 곧 용돈 50원이 생기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도 남아있는 무궁화호 열차와 낡은 시외버스 등받이에 (심지어 저가항공 비행기 좌석에도!) 달린 재떨이는 담배가 우리와 참 오랫동안 동행했음을 증언하고 있다.

 

올 봄 TV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1970년대 TBC방송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청실홍실’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시 3대 트로이카로 불리던 배우 정윤희의 미모도 그렇지만 거의 매 회마다 등장하는 흡연 장면. 그 시절에도 카리스마 넘쳤던 배우 강부자는 담배와 혼연일체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담배는 시인의 고독, 지식인의 고뇌, 시련의 아픔, 일탈과 타락, 노동이 끝난 뒤의 여유로움, 토론의 진지함, 갈등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표현할 수 있는 만능 소품이었다. 요즘 드라마가 시청자를 피곤하게 만들 지경까지 속사포로 대사를 쏟아내는 것은 어쩌면 TV에서 담배가 사라진 탓은 아닐까?

 

물론 그때도 부자들은 비싼 담배를, 가난한 이들은 싸구려 담배를 피웠지만 그럼에도 다들 담배를 나누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아니, 윗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개피를 건네는 것만큼 진한 우정과 환대의 표시는 없었다. 특히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권할 때 담배는 마치 ‘어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과도 같았다. 그러므로 담배 앞에서 우리는 평등했다? 아니, 결코 그렇게 말 할 수는 없다. 이 우정과 환대의 울타리 안에 결코 들어올 수 없었던 사람들, 여성과 청소년의 흡연은 곧 탈선으로 지목되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았던가.

 

 

#3.

여자가 지붕 없는 곳에서 담배를 피우면 경범죄로 처벌받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지만 필자도 남성인 만큼 흡연에 있어서의 성차별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소극적인 저항으로 아무도 없는 고등학교 교무실에서 후배들에게 망보게 한 뒤에 담임선생님 책상에 발을 올리고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던 필자였음에도 말이다.

 

그러다 전직 기자이자 지금은 제주 올레길로 더욱 유명한 서명숙 씨의 『여성흡연 잔혹사』를 읽게 되면서 그야말로 잔혹했던 흡연에 대한 성차별을 알게 되었다. 데모를 하다가 잡혀간 경찰서에서 남자 대학생에게는 담배를 권하던 형사가 여자 대학생 가방에서 담배와 라이터가 나오자 뺨을 때렸다는 일화에서부터 운전을 하다가 음주단속을 만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담배를 끄고 창문을 내리며 “저 안 피웠는데요.”라고 했다는 일화까지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여기에 다 옮길 수 없다. 다만 책에서의 인상적인 물음. 왜 흡연 문제에서의 극심한 성차별이 유독 할머니에게만은 관대한가? 폐경기를 지난 할머니는 사회적으로 여성이 아니기 때문이고 남성중심 사회에서 바라는 바, 건강한 여성의 몸을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란 진단이다. (참 재수 없다.) 더 한 것은 할머니만이 아니라 술집 작부나 마담 등 주부/어머니이어야 할 여성이 아니라면 남성들은 한 없이 담배에 관대했다는 것. 담배를 피우는 것이 한 때 여성해방의 중요한 액션이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요즘 들어 부쩍 내몰리고 위협받는, 그래서 흡연권 운운하기까지 하는 (특히 남성) 끽연자들은 먼저 처절한 탄압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장렬이 전사하기도 했던) 이 땅 여성흡연자들에게 깊은 사과와 무한한 존경을 표하는 것이 먼저다.

 

 

#4.

담배를 피운다는 게 썩 좋은 일이 아닌 이유는 차고 넘친다. 승리, 무궁화, 재건, 새나라, 희망, 신탄진, 새마을, 88, 엑스포, 하나로……. 왠지 담배를 피우기 전에 국기에 대한 경례라도 하고 불을 붙여야 할 것 같지 않은가? 예나 지금이나 담배 가격에서 60%를 넘는 각종 세금은 국가재정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1990년대 농촌활동을 가서 양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2012년 오늘 광화문 한 복판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외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고 불경한 짓이었다. 애국, 애족, 애향심이 과하다 싶은 이 나라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왠지 국민의 (신성하지는 않을지라도) 의무를 수행하는 일 같기도 하여 거시기하다. 그것도 1952년에 벌써 담배가 폐암을 유발한다는 신뢰할만한 보고가 이뤄진 것을 뻔히 알았으면서도 스무 살 청년들을 군대로 끌고 가 무료로 담배를 나눠주며 중독 시킨 뒤 수십 년 동안 팔아먹었던 이 정부가 요즘 하는 꼬락서니를 볼 때면 더 그렇다. 그래도 북한이 아시아에서 흡연율 1위를 달리고 한국이 OECD 국가 중 남성흡연율 1위를 차지했다고 하니 이 또한 민족동질성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어릴 적에는 동요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군가였던 노래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라는 구절만 봐도 알 수 있듯 담배와 군대, 전쟁도 꽤나 사이좋은 관계다. 북미 원주민들이 콜럼버스에게 선물하여 유럽으로 전해진 뒤 어김없이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흡연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고도의 스트레스가 동반되는 전투에서 군대는 병사들을 다독이기에 담배만큼 좋은 것을 찾지 못했다. 긴장을 완화시켜 주고 집중력을 높여주며 무료함을 달래주기까지 하는 담배. 게다가 담배의 역사는 식민주의와도 밀접하다. 대영제국의 건설의 주요 자금줄은 담배교역이었고 식민지에서 담배를 재배하는 일은 제국에 반하는 범죄였다. 이래저래 담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사람들은 또한 담배 때문에, 담배를 피며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담배는 해로워야 마땅하다.

 

 

#5.

혐연권(간접흡연을 하지 않을 권리)과 흡연권(담배를 피울 권리)에 대한 논쟁이 간혹 언론에 등장한다. 몇 달 전에는 ‘흡연권의 제한과 한계’라는 꽤나 그럴 듯한 제목의 포럼이 열리기도 했다. 서울시의회는 간접흡연의 피해를 막겠다며 조례를 제정해 공원만이 아니라 길거리에서의 흡연에도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한다. 앞에서 구구절절 언급했다시피 담배가 흉기에 가까운 물건이고 흡연이 범죄에 필적하는 행위이니만큼 혐연권의 주장은 성폭력범에게 전자발찌를 채우자는 주장이나 연쇄살인범을 극형에 처하자는 주장만큼이나 지당하다. 반면 반대 측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개인 사생활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을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한겨레 2011년 12월 23일 ‘길거리 흡연 금지 어떻게 봐야 하나?’ http://www.hani.co.kr/arti/opinion/argument/511608.html). 또 흡연권이 권리인지, 흡연을 제한하는 것이 과잉금지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도 벌어졌는데(한겨레21 제902호 ‘흡연권은 권리가 아니다, 과잉금지 위헌이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2503.html) 헌법재판소는 2004년에 흡연권보다 혐연권이 우선하며 흡연권을 기본권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한 오백년 꾸준히 피우다보면 관습헌법의 지위를 얻게 될 런지 모르겠다.)

 

무리하게 담배 피울 권리를 인권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글이 막바지에 접어든 이 대목에서도 도대체 담배와 인권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심스럽고 뭘 어디다 어떻게 끌어다 붙여야 하는지 걱정이다. 그렇지만 단 한 명도 담배 따위는 피지 않는 미래 세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살인미수는 처벌받고 자살방조도 처벌받지만 자살미수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자살이 미수에 그치지 않고 성공하면 당연히 처벌할 수가 없다.) 자신의 생명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어서 파괴할 권리도 그 자신에게 있다고 보는 것일까? 이건 프라이버시를 넘어 소유권의 문제인가? 그런데 마약 복용이나 문신은 처벌 대상이고 존엄사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왠지 이 문제에 법철학자나 문화인류학자를 불러와야 될 것 같다.

 

언젠가 모란시장을 갔다가 약장수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원숭이(침팬지였을 지도 모르겠다)를 본 적이 있는데 왠지 안쓰러웠다. 약장수는 어떤 강압과 사육으로 담배를 가르쳤을까? 놈의 동물권은 침해받은 것일까? 본능적으로 연민의 감정이 치밀어 올랐지만 어쩐지 마주앉아 담배를 핀다면 더 이상 놈을 동물로 대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흡연이 인권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인간적인 문제인 것만은 확실하다.

 

 

#6.

문화사회학자 호이징가는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라는 개념을 통해 문화 속에 놀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통해 문화가 만들어진다는 이론을 세웠다. 일과 놀이가 나뉘지 않고 뒤엉켜 굴러가던 시절 흡연은 뭘 만들어냈을까?

 

담배는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상비약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영혼의 세계와 접촉하는 주술의 도구로 쓰였다. 마야문명에서 흡연은 부족의 중요한 제례의식 중 하나였다고 한다. 3천년이 넘도록 계속 되어 온, 불을 붙이고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이 행위는 가장 원초적인 놀이이자 문화의 결정체라 할 만하지 않은가.

 

얼마 전 처갓집에 힘든 일이 있었다. 늘 그렇듯이 사위들과 술잔을 기울이시던 장인어른은 난데없이 사위들에게 맞담배를 허하셨다. (물론 아직도,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담배를 피우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인 동시에 어려운 시간을 함께 거쳐 온 이들이 주고받는 5분간의 위로라는 생각을 했다. 필자의 아이들이 자라 끽연을 하는 날이 온다면 주저 없이 맞담배를 허할 것이다. 이제 필자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7.

25년째 일말의 가책도 없이 하루에도 10여 차례 피우고 있다. 얼추 계산해보니 10만 개피. 내 인생에서 10만 번 반복해서 해왔던 일이 달리 또 무엇이 있을까?

 

1986년. 아시안게임이라는 뭔가 국가적으로 뿌듯한 대규모 행사가 열리는 한편 전교조가 만들어졌던 해. 온 나라가 ‘평화의 댐’이라는 희대의 국가 사기극에 놀아나던 바로 그 1986년 어느 날 필자는 동시상영 극장에 앉아 있었다. 학생 신분을 굳이 속일 필요도 없는 허술하고 허름한 극장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다들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해야 했지만 (우리는 객기를 부려 애국가 제창을 하기도 했다.) 조금 지나면 바로 담배연기가 자욱해지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스러운’ 극장이었다. 거기서 많은 홍콩영화들을 봤지만 단연 인상 깊었던 영화는 ‘영웅본색’이었다. 그때 주윤발을 만나지 않았다면 담배를 피우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은 물론 가당치도 않다. 인문계 고등학교 커트라인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도 공부에는 영 흥미가 없어 무협지로 어둔 밤을 하얗게 지새우던 사춘기 소년에게 담배만큼 나름 안전하면서도 매혹적인 것이 또 있었을까?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작가 지망생이 된 소년에게 담배는 더 이상 깡패나 조폭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새벽마다 거울을 보며 주윤발이 아니라 시인 김수영처럼, 소설가 김승옥처럼 담배 피우는 연습을 했다. 놀이터에서 경비 아저씨에게 걸려 ‘엎드려 벋쳐’를 하고 ‘쪽수’만 믿고 8차선 대로변에서 담배를 피우며 가다 형사에게 붙들려 파출소에서 무릎도 꿇어봤지만 청소년이었기에 청소년이 아니고자 했던 욕망, 거기에는 담배가 필수불가결한 소품이었다.

 

돌아보면 어느 자동차 광고의 카피처럼 “나는 당신과 함께” 했다. 대학입학 시험에서 떨어지고 올라간 지리산 노고단에서의 한 모금, 더 이상 너희는 사람이 아니라 군인이라며 연병장을 뒹굴다 10분간 휴식에 차렷 자세로 피워야 했던 한 모금, 3년의 수배생활 끝에 잡혀서 봉고차에 태워진 뒤 수갑을 차고 피웠던 한 모금, 여명에 맞춰 새카맣게 몰려드는 전경들을 보며 대추리 마을회관 옥상에서의 한 모금, 아버지의 영정사진과 맞담배질을 했던 장례식장에서의 한 모금, 산부인과 앞에서 첫째의 탯줄을 자른 손 떨림이 가시지 않은 채 피웠던 한 모금.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에서처럼 천국의 문 앞에서도 아마 한 모금 깊게 들이마신 뒤 문을 두드릴 것이다.

 

 


 

 

 

 

 

 

 

 

 

 

 

 

 



 

 

 

-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2012년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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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 운동을 망친다? 마감을 하다 메일함을 보니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진보네트워크센터가 보낸 <네트워커>라는 뉴스레터였습니다. 클릭해서 열어보니 ‘클릭 운동(Clicktivism)이 좌파 운동을 망치고 있다’는 글이 실려 있습니다. 미셀 화이트란 외국 사람이 2년 전에 쓴 것을 번역한 글인데 사회운동이 온라인 활동을 하며 시작된 디지털 행동주의 운동이 사회변화의 시장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보니 메일 제목은 ‘클릭이 운동을 망친다’가 아니라 ‘클릭 운동이 운동을 망친다’는 것이었죠. 사실 클릭 운동이란 게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문득 나도 클릭으로 운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졌습니다. 또 하루에 몇 번이나 마우스를 클릭하는지, 몇 번이나 스마트폰을 터치하는지 궁금해졌지만 이내 헤아리길 포기했습니다. 엄두가 나지 않아서요.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참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20여 년 전 대학에 입학해서야 그동안 제가 알고 있던 컴퓨터는 컴퓨터가 아니라 모니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텔레비전처럼 그냥 끄면 안 되고 꼭 ‘park’라고 입력한 다음에 꺼야 한다는 선배의 말에 이건 뭔가 대단히 복잡하고 다루기 어려운 물건이란 느낌이 들었죠. 몇 년이 지났을까, 삐삐란 호출기가 등장해 학생회에서는 교정에 공중전화기 수를 대폭 늘리겠다는 선거공약을 앞 다투어 내놓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 되어버렸고 컴퓨터가 고장이 나거나 인터넷이 안 되면 거의 모든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죠.

 

이렇게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이 고유명사가 되고 ‘나꼼수’ 같은 팟케스트가 화제가 되는 세상이라지만 정보격차, 정보 불평등은 심각합니다. 몇 달 전 스마트폰 보급률이 전체 국민의 50%를 넘겼다는 뉴스가 있었지만 지난해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보고에 따르면 장애인과 저소득층, 노년층, 농어민과 탈북자, 결혼이민자 등 취약계층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8.6%에 불과합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 접근성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지만 그 활용도에서의 격차는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정보통신 강국이란 미명아래 인터넷 실명제가 버젓이 시행되고 있고 CNN의 최근 보도처럼 “이명박 대통령 취임 2년 만에 북한 찬양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람이 5명에서 82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참으로 스마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스마트하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구질구질한 통합진보당의 진흙탕 싸움 한복판에 첨단의 인터넷 투표가 있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합니다. 어쩌면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면서도 편리함과 효율성의 가치를 우선시 하고 기술과 시스템을 맹신하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민주주의란 본래 불편하고 비효율적이고 성가신 것인데 민주주의를 향한답시고 민주주의를 놓아버린 때문은 아닐까요?

 

그래서 고병권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은 자기 정체(정치체제)의 근거가 몰락할 위험을 각오하고 비판의 심연에 기꺼이 자신을 개방하며, 그런 개방을 통해 정체 갱신의 힘을 얻겠다는 의지의 표출”이기에 “민주화가 의미하는 것은 ‘교정’이 아니라 ‘이행’일 것”이며 “정체를 척도에 비추어 바로잡는 일이 아니라 척도 자체를 바꾸는 일”이라는 지적을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몰락의 위험을 감수하고 비판을 통해 갱신하며 척도 자체를 바꾸는 일로 나갈 수 있을까요?

 

편집은 두려운 일입니다. 편집이란 말이 제일 많이 등장하는 데는 아마도 TV 연예프로그램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서 편집은 잘려나가거나 선택받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편집은 필름을 오리고 붙이는 일입니다. 단행본이나 잡지에서 편집은 자료를 모아 펼친다는 원래 의미가 있지만 이 또한 선택과 배제를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보며 저는 이 편집이란 단어와 함께 지난 5월에 봤던 노순택의 사진전 <망각기계>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몇 년에 걸쳐 시간이 날 때마다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찾았다고 합니다. 거기서 해가 질 때까지 카메라를 세워놓고 셔터를 열어놓은 채 5.18 희생자의 영정사진을 다시 렌즈에 담았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눈과 비를 맞고 햇볕과 서리를 견디며 자연스럽게 망가진” 그 사진들은 5.18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5.18을 기억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 같았습니다(대담 ‘나는 살아있는 너, 너 또한 죽은 나’). 마치 그동안 수없이 봐왔던 용산 남일당 망루가 불타오르는 칼라TV의 영상을 <두 개의 문>에서 보여주며 우리가 용산참사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를 되묻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사람》을 생각합니다. 처음 잡지를 만들 때 다들 요즘 세상에 무슨 종이잡지를 내냐고 물음표를 달았습니다. 그때마다 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이 잡지가 형식에서뿐만이 아니라 내용에서도 시대를 거스르는 잡지였으면 했습니다. 갈수록 스마트해지는 세상에 얼마나 《사람》이 어리석은 저항을 고집해왔는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어떤 사건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사건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일입니다.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것은 곧바로 지식인이 된다는 뜻이자 그 행위 자체가 지배계급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 권력을 행사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글들을 편집하는 일은 또 다른 권력입니다.

 

무수하게 많은 일들 중에 특정 사건이나 사안을 골라 적당한 필자를 물색합니다. 원고가 들어오면 독자의 이해를 위한다는 이유로 문장을 손질하고 어떨 때는 단락을 나누거나 잇기도 합니다. 최선을 다해 필자와 소통을 한다고 하지만 그동안 정말 최선을 다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쉰일곱 번 《사람》을 만들며 570번도 넘는 잘못을 알게 모르게 저질렀으니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러면서도 여러분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편집인의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사람》은 아직도 여러분의 사랑이 더 필요하고 감히 더욱 사랑받아 마땅한 잡지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현장과의 끝을 놓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현장과의 거리를 고민하는 잡지, 진리와 선에 대한 의심과 진실에 결코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겸손함을 잃지 않는 잡지, 그러면서도 진실에 다가서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잡지, 권력에 대해 저항하면서도 자신의 권력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잡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합니다. 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통해 사람들이 변화하고 그럼으로 인해 세상이 조금씩 바뀌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럴 수 있게, 사람들이 힘과 지혜를 모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민주주의가 아닐까요.

 

-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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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오월인데도 아무도 오월, 광주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네요.

아마도 난생처음으로 오월에 대한 글을 써본 것 같습니다.

아래는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입니다.

사회과학이라는 용어도 예전에는 많이 듣고 쓰고 그랬는데 꽤 먼 지난 날 같이 느껴집니다. 여전히, 아니 보다 더 사회과학이 필요한 시기인데 말이죠.

특이하게도 대부분은 책 맨 끝에 달려있는 상황일지가 맨 앞에 있습니다. 무미건조하게 적어놓은 상황일지를 읽으며 저도 모르게 울컥했습니다. 99년에 나온 책인데 절판되었다가 이번에 다시 나왔다네요. 저는 전혀 몰랐던 책인데 읽으며 매우 많은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이론으로서의 균형감을 가지면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문체는 새롭습니다. 아마도 오월에 대한 저자의 깊은 관심과 애정, 문제의식이 살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썼다면 더 좋은 글이 되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다 제가 게으른 탓이죠.

 

 

 

 

 

 

 

 

 

 

 

 

 

 

 

 

 

기억하는 자의 슬픔

 


하지만 그것은 귀향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은 똑같은 강물에 결코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리스인들이 귀향을 믿겠는가. 
- 베른하르크 슐링크의 소설 『더 리더』중에서

몇 년 전 오월, 화물연대 소속 노동자 한 명이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로 시작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을 맸습니다. 그의 죽음은 택배비 30원 인상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철회한 데서 비롯된 싸움 끝에 조합원 전원 해고라는 파국을 맞으며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얼마 뒤 인권변호사였던 전직 대통령도 자신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유서에는 “미안해하지 마라. 운명이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두 죽음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전직 대통령의 재임 시절,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위원이 올랐던 바로 그 85호 크레인에서 생을 마쳐야 했던 노동자이자 세 아이의 아빠였던 이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은 “죽음이 투쟁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의 죽음을 욕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내 틀린 말로 증명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저는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의 책들을 읽고 있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유대계 이탈리아 소설가, 그 또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살은 어떤 형태든 간에 인간의 존엄에 관한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들의 죽음 속에서 자살은 어쩌면 기억에 대한 욕망, 사람들의 기억에 대해 편집권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작동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마다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단체연대회의에서 내는 열사달력을 보면 오월은 유난히도 열사의 이름들이 빼곡합니다. 공수부대의 진압이 예고되고 뒤이은 학살을 충분히 예견했으면서도 끝까지 도청을 지켰던 1980년 오월의 시민군,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대학생과 의문사한 노동자의 죽음으로 시작된 1991년 오월의 무수한 죽음들. 이 땅 민주주의는 오월에 참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 오월, 인권재단 사람은 ‘남산 안기부터를 인권·평화의 숲으로!’라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한때 ‘남산’이라는 보통명사가 고유명사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은 남산에 따라붙는 상투적 수식어였습니다. 혹자는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안기부장이 곧바로 남산에 가지 않고 육군본부로 갔기 때문에 ‘혁명’이 실패했다고도 합니다. 오랜 세월 대한민국 헌법 위에 국가보안법이 있었다면 청와대의 바로 밑, 그리고 국민들의 머리 위에는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 이른바 남산의 그림자가 드리워있었습니다.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받다가 의문사한 최종길 교수,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장남, 함세웅 신부와 한승헌 변호사, 고은, 김지하, 황석영, 이문구 등 시인과 소설가, 화가 홍성담. 남산이 미워했던 이들은 민주화 인사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라디오 방송으로 유명했던 방송작가 한운사와 가수 조용필도 끌려갔고 심지어 중앙정보부를 만든 김종필의 최측근들도 곤욕을 치렀습니다. 수많은 재일교포를 비롯한 보통사람들이 모진 고문 끝에 간첩단의 조직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인권유린의 현장, 인간 존엄을 말살했던 역사와 기억을 인권과 평화의 숲으로 만들자는 것이 바로 캠페인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인권과 평화의 숲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걸까요?

이십대 시절, 오월이면 늘 광주 망월동을 찾았습니다. 먼지가 풀풀 날리던 묘역 입구의 비포장도로는 미완의 항쟁, 해결되지 않은 광주를 상징하는 듯 보였습니다. 묘역을 돌다 제 또래가 주인인 무덤을 대할 때면 묘한 부채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몇 해 전 5.18기념공원을 갔을 때 위압적으로 솟아 있는 기념탑과 공원을 뒤덮은 대리석을 보며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의 역사가 국가에 의해 박제되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직접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분의 안내를 받아 그해 오월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었고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통해 풍부한 정보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왠지 거세된 역사의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에 와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결코 재현될 수 없는 역사적 사건과 하나로 상징될 수 없는 집단기억을 어떤 공간 속에 조형물로 표현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라 여겨집니다. 저희 사무실 근처인 서대문 독립공원을 산책하다 독립문을 볼 때면 참 우스꽝스럽고 또 안쓰럽습니다. 스러져가는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협회가 국민의 성금을 모아 지었다는 독립문은 원래 중국 사신을 영접하는 영은문 자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독립을 하겠다며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뜬 것도 그렇고 그마저도 중국인의 손을 빌려 지었다 하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습니다. 일찍이 한 시인은 “우금치의 동학혁명군 위령탑은/일본군 장교출신 박정희가 세웠고/황토현 녹두장군 기념관은 전두환이 세웠으니/광주항쟁 시민군 위령탑은 또/어떤 자가 세울 것인가”(정희성의 시 ‘황토현에서 곰나루까지’에서)라고 꼬집었는데 역설적으로 5.18 기념탑이 한국의 불완전한 과거청산에 대한 진실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프리모 레비는 1943년 9월 독일군이 이탈리아 토리노를 점령하자 반파시즘 빨치산 부대에 들어갔으나 얼마 뒤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습니다. 평균 수명이 고작 3개월에 불과한, 건장한 사람은 노역으로 허약한 사람은 가스실에서 ‘절멸’되던 수용소. 150만 명이 학살된 아우슈비츠에서 7천 명의 생존자 가운데 한 명으로 토리노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에 대한 작업에 몰두했고 2년 뒤 책으로 묶인 『이것이 인간인가』는 출간 당시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다가 10여 년이 흐른 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미국 등에서 번역되어 널리 읽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후 두 차례 아우슈비츠를 방문했습니다. 첫 번째 방문은 1965년 아우슈비츠 해방 20주년 기념식이었는데 그는 “생각보다 그리 극적이지 않았다. … 너무나 질서정연했고 건물 정면은 너무 깨끗했으며 대부분의 대화들이 형식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82년 두 번째 방문에서 그는 깊은 감동을 받게 됩니다. 


“나는 처음으로 아우슈비츠에 있던 수용소 가운데 하나로 가스실이 있었던 비르케나우 기념관을 방문했다. 철로가 보존되어 있었다. 녹슨 철로는 수용소 안으로 이어져 일종의 텅 빈 공간 가장자리에서 끝났다. 앞에는 화강암 벽돌로 만든 상징적인 기차가 있었다. 벽돌마다 나라의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다. 기념관은 이것이었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홀로코스트 기념관과 기념물이 세워졌지만 특히 독일에 있는 것들은 인상적이라고 합니다. 베를린 베벨광장 홀로코스트 기념비는 나치의 나팔수였던 괴벨스의 지시에 따라 소년 나치들이 유대인 학자와 소설가의 책 2만 권을 불태운 현장이었던 광장에 바닥을 유리로 덮은 뒤 그 안에 흰색 서가가 들여놓고 그 앞에 “책을 불태우는 자는 결국 인간도 불태우게 된다.”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글을 새겨놓았습니다. 베를린 근처 나치에 의해 파괴된 유대인 교회 자리는 공터에서 자라난 나무들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없어진 교회 의자의 일부분만을 복원하여 비어있는 기억의 공간으로 교회를 재구성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기념관들은 홀로코스트를 재현한다는 명목 아래 수용소를 본떠 웅장한 건물을 짓거나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사진을 빼꼭히 걸어놓아 희생자를 대상화하고 그들의 고통을 전시한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특히 미국 워싱턴의 기념관은 세심하게 고려된 동선에 따라 관람객이 이동하면서 핍박받는 유대인과 해방자로서의 미국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끔 하는 공간적 서사로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하기에 고도의 정치적 타협물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관용』의 저자 웬디 브라운은 “(관용박물관과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중동 문제에 대한 텅 빈 재현과 요란한 침묵을 통해, 이스라엘이 지금 겪고 있는 최근의 어려움이 과거 유대인이 겪어 온 고난의 연속이라는 메시지를 은밀히 전달한다. … 이스라엘은 이제, 문명 대 야만, 관용 대 증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최전방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다.”라고 고발합니다. 

한국에 프리모 레비를 소개한 재일조선인 학자 서경식 교수는 프리모 레비가 자살한 까닭을 두 가지 이유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팔레스타인 난민의 학살이며 또 하나는 홀로코스트를 왜곡하고 부인했던 독일 수정주의 역사 논쟁입니다. 어쩌면 시대의 증언자임을 자임했던 레비 스스로가 인간에 대한 깊은 절망 가운데 하나의 기념비로 소멸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저는 무엇보다 안기부 터에 만들어질 인권과 평화의 숲이 많이 불편했으면 합니다. 녹슨 철로와 벽돌로 된 기념관처럼 소박했으면 합니다. 계몽주의 신념에 가득 차 ‘역사는 이러했노라.’라는 웅변의 공간이기보다는 재현의 불가능성과 기억의 불일치성 앞에 모두가 겸손한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중심이 없이 비어 있는, 그래서 누군가의 기억이 나날이 더해지고 우리네 이야기처럼 여러 갈래의 길들이 이리저리 얽혔으면 더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지혜와 노력이 모아져야 하겠죠. 이렇게 다 적어놓고 보니 이제 막 캠페인을 시작하는 마당에 너무 멀리 나간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숲은 우리에게 휴식을 주고 평안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뭇잎이 떨어져 썩고 벌레와 짐승들이 잡고 잡아먹히며 무수한 생명들이 사투를 벌이는 생성과 소멸의 공간입니다. 무엇보다 과거와 현재의 오월을 성찰하고 마주하기 힘든 고통과 모순을 대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 인권잡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2012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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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무 2012-05-11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5월인데 진짜 5.18을 잊고 있었네요. 5.18은 저에게도 큰 의미였는데 역사를 너무 쉽게 잊는 제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네요.

카스피 2012-05-11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정말 좋은 글입니다.
5.18이 잊혀지는 것은 30년이나 더 지난 과거의 일이 되어가고 그날의 흔적들은 위에서 쓰신것처럼 콘크리트 박제물이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거대한 대리석 구조물에 뒤덮인 곳에서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러 온 이들은 돌아간신 분들과의 교감보다는 이미 흘러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볼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5.18을 기념해야 할 진보단체들은 국회의원 몇석 지키겠다는 권력의지를 불태우는 통합 진보당의 논란속에 망월동의 정신은 까맣게 잊고 있는것 같습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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