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은 블로거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을 '주력상품'으로 팔고 있는 것에 대해 딴지를 걸었던 제 글을 읽고 어떤 분이 "그렇다면 과연 이 책을 팔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제 딴지에 대한 비아냥이 아니라 진지한 문제제기였기에 저는 어설프나마 약간의 반성, 혹은 각성을 하게 되었네요. 도덕군자인 척 하는 것, 바른 소리를 하는 것, 정치적 올바름을 견지는 양 하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죠.
설 연휴, 처가집에 가서 장인어른과 술을 마셨드랬습니다. 장인어른은 MB의 팬로 작심을 하신 듯 세종시와 관련되어서 수도분할은 말도 안 되고 박근혜는 정신차려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 하셨습니다. MB가 잘 하고 있으니 북한도 정상회담을 구걸하고 있다는 장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요즘 조선일보에 그런 글이 실리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뭐라고 했을까요? 그냥 맞장구를 치거나, 그래도 그건 좀 심하다는 둥 설레발을 칠 따름이었죠. 명절에 장인과 사위가 끝장토론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런데 그런 장인어른이 그렇다면 꼴보수에 꽉 막힌 분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건설회사에 다니다가 은퇴한 뒤 시골로 내려가신 장인은 본인의 중동에서의 경험에 비춰 이주노동자의 어려움을 공감하시기도 하고, 터무니 없는 나이차이의 국제결혼으로 딸 같은 이주여성을 데리고 사는 농촌 총각들을 보면 스스로 낯이 뜨거워진다고 부끄러워 하시는 분입니다.
처형이 열 몇 살이나 많은, 학벌도 없고, 직업도 별볼일 없는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그 사람 됨됨이를 보고 유일하고 집안에서 찬성을 하신 분이기도 하고, 술을 마실 때는 자기 주량만큼 마셔야 한다며 저와 술자리를 할 때도 제가 드리는 잔을 받기 보다는 "너는 네가 따라 마셔라, 나는 내가 따라 마신다"는 분입니다.
말은 제가 더 진보적으로 할 수 있고 생각은 제가 정치적인 올바름을 좇을 수 있겠지만 생활에서 과연 제가 장인어른만큼 살 수 있을까 자신이 없고 그래서 존경스러운 분이기도 합니다.
처가에서 올라와 컴퓨터를 키고 인터넷에 접속하니 눈에 띄는 글이 김상봉 교수가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에 대한 글을 경향신문 칼럼에 썼다고 빠꾸당했다, 그렇지만 경향신문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는 글입니다.
김상봉 교수 글 보기
경향신문을 구독하는 저는 그 글을 보며, 예전에 선배와 나누었던 대화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한미FTA 관련한 100분 토론을 하면 그 토론을 안 봐도 될 사람, 한미FTA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보는데 정작 그 토론을 봐야 할 사람은 다들 다른 채널을 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경향신문을 보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김상봉 교수의 칼럼 쯤은 익히 아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조중동에 그런 글이 실리게 하는 게 중요하지, 경향에서야...
그러면서도 과연 언론이란 게 뭔가 싶은 생각도 아니 할 수는 없었습니다. 뉴스를 파는 잡화점이 아니라면 언론의 공적기능이 한 광고주 앞에서 이렇게 무너져서야 되는 것일까 하는...마침 하루 뒤에 경향신문 막내기자들의 입장표명이 나왔습니다.
경향신문 막내기수 성명 보기
막내기자, 막내기수란 표현에서 진보적 매체라는 경향신문 또한 얼마나 위계적인 조직인지가 드러나서 씁쓸하기도 하지만 분명 경향에, 진보언론에 아직까지 희망의 싹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그래서 경향의 구독 중단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이 막내기수라고 스스로를 지칭한 일군의 기자들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경향에서야 뭐.. 하는 자조적인 생각 때문인지 저 스스로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아니 이제야 든 생각은
알라딘에서도 조유식 대표의 말, 입장이 아니라 알라딘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알라딘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혹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대표의 생각과 말보다 그 구성원의 생각과 발언이 더 중요할 수 있고 그것이야말로 희망의 근거가 되거나 최소한 포기하거나 체념해버리지 않을 마지막 보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것을 알라딘 불매를 계속 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의 조건으로 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그분들의 목소리,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는지 무척 궁금할 따름이란 겁니다. (저는 아직까지 알라딘에서 책을 구입하지 않고 있지만 이게 돈이 없어서 구입을 못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불매에 동참해서 구입을 안 하고 있는 것인지 그 경계가 점점 희미해져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