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을 달다 길어져서 먼댓글이란 걸 써봅니다. 
 

   

 

 

 

 

 

 

 

내부고발자, 또는 양심선언을 한 사람에게 한국사회는 지독히 가혹합니다. 인맥과 학연으로 얽힌 좁디 좁은 한국사회에서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한 공동체의 건강성을 심각하게 위협할 정도라는 게 제 개인적 판단입니다. 미국변호사법에는 고객의 비밀보호 의무가 있다고요. 그래서 삼성의 핵심부에 있었던, 삼성으로부터 거액의 연봉을 꼬박꼬박 챙겼던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을 문제 삼습니다.

물론 변호사에게 고객과의 비밀유지와 보호는 기본이겠지요. 하지만 한국의 변호사법 제1조 1항은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의사에게 의사로서의 윤리가 있듯이 변호사에게도 법조인으로서의 윤리가 있는 것이고 법조인이기 이전에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시민으로서의 의무가 있는 것 아닐까요?

또한 변호사는 마피아라도, 아동성폭행범, 존속살해범이라 할지라도 변호를 해야 하고 심지어 악마라 할지라도 악마의 변호인인 이상 그와의 비밀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피의자가 된 마피아를 변호하고 그와의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마피아의 범죄를 목격하고, 공모하고, 수행했다면 그 변호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때도 고객과의 비밀(의리?)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철칙이라며 은폐하고 침묵한다면 도대체 변호사와 조폭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삼성을 비판하면 꼭 따라붙는 게 '세계 굴지의 기업', '한국의 자존심'입니다. 그런데 김용철 변호사가 겨냥한 삼성은 작은 지분으로 삼성을 쥐락펴락 하는 이건희 일가와 왜곡된 지배구조인데 삼성에 대한 비판에 불편해 하는 분들은 삼성에서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 기술자, 삼성 브랜드와 일치시킵니다. 짧은 생각으로 스티브 잡스가 횡령이나 파렴치범으로 재판을 받거나 실형을 산다고 해도, 그래서 스티브 잡스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고 비판이 쇄도한다고 해도 아이폰은 여전히 잘 팔릴 거 같은데요. 토요타의 리콜사태가 토요타 기업 수뇌부의 비리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듯 말입니다. 그래서 잘 나가는 기업, 삼성에 대한 걱정은 그만 해도 좋지 않을까요?

그런데 왜 삼성을 그렇게 아끼는 분들은 삼성에서 묵묵히 일하는, 그래서 세계 최고의 브랜드를 만들어놓은 삼성의 노동자, 연구자, 기술자가 헌법에 보장된 권리로 노조를 만들겠다고 하다 쫓겨나고 탄압을 받고, 가정이 파탄나고, 목숨까지 잃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무심하고 인색한 걸까요? 이병철-이건희-이재용, 이 세 사람이 삼성을 다 만든 게 아니지 않습니까? 

또 그만한 기업치고 이만한 비리 없는 데가 어딨냐고도 합니다. 우리 모두 죄인이란 말인가요? 도의적 책임과 범죄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이 떠오르네요. 나치의 대량학살, 홀로코스트에 대해 전 인류가 져야 할 책임이 있지만 그것과 별도로 나치에게 물어야 할 사법적 책임이 있다, 그렇지 않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이래버리면 결국 나치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밖에 안 된다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삼성의 비리, 한국경제에서의 전경유착과 같은 고질적 병폐를 어떻게 삼성에게, 이건희 일가에게만 물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아니 그러하기에 한국경제의 손실이 혹시라도 생긴다면 그것을 감수하면서까지도 삼성에서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새살이 돋도록 함께 노력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닐까요?

또한 이 책을 읽으며 간음하다 걸린 여인네를 돌로 쳐죽이려는 군중들을 향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있으면 돌로 저 여인을 치라" 했다던 예수의 말이 떠올랐다며 삼성을 무책임하게 비난하는 군중심리를 걱정하시기도 합니다. 저는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아 뭐라 못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책 밖의 세상, 한국에서는 김용철 변호사가 영락없이 간음하다 걸린 팔레스타인 여인 꼴입니다. 변호사 업무도 못하고 책 한 권 내려고 전전하다 겨우 냈는데 광고도 맘껏 못하니, 그야 말로 신세를 망친 셈이니까요. 한편 누구는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열어 건국 이후 단 한 번 있었다는 단독사면까지 시켜줬는데 말이죠.

어쩌면 예수는 죄를 묻고 심판하는 것은 본래 인간의 일이 아님을 각성시키려 했던 게 아닐까요?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실정법)을 어긴 잘못보다 율법을 자의적이고 형식적으로 해석하여 집행하는 법률가를 꾸짖었던 게 아닐까요? 예수는 다른 곳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대, 법률가들(경전해석자들과 바리세인들)에게 화 있을지언저. 그대들은 사람들이 들어가고자 하는 하늘의 왕국을 잠가버렸도다. 그대 스스로도 들어가지 못했고, 깨달음에 다가서는 자들이 입장하는 것도 허락하지 아니 했도다.”(마태복음 23:13)

아마도 좀 있으면 이른바 법률 전문가들 중에 날고 긴다고 하는 삼성의 소송 대리인단이 명예훼손이니 어쩌니 하며 벌떼처럼 일어나겠지요. 진실의 문에는 아예 들어갈 생각도 없는 이들이 문을 잠가버리듯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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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ssim 2010-02-07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고 저는 이런 말이 떠올랐습니다.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진실은 힘이 세다'

나무처럼 2010-02-07 22:24   좋아요 0 | URL
힘은 지혜를 만들지 못하지만 지혜는 힘을 만들 수 있다는 말도 생각나네요. 진실의 힘을 믿는 게 쉽지 않는 요즘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