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타터스 ㅣ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3월
평점 :
"사람은 자신 그대로일 때 가장 솔직하지 못하다. 그에게 가면을 주어 보라. 그러면 그가 네게 진실을 말할 것이다"
- 오스카 와일드 -

오랜만에 마지막 장까지 숨가쁘게 달린 소설이다. ‘쉿~!’ 미모의 소녀가 은밀한 세계로 초대하는 듯한 모습으로 표지를 장식한 ‘리사 프라이스'의 [스타터스]는 SF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500페이지라는 제법 두툼한 분량 내내 긴장감을 유지하는 미스테리로 독자를 잡아끈다.
근미래. 치사율 100%의 또다른 상호 파괴 무기인 생물학 폭탄이 미국에 떨어지면서 2년에 걸친 태평양 연안국 전쟁은 승전국이 없는 전쟁으로 결말지어지고, 백신을 미처 맞지 못한 사람들, 대부분의 중장년층이 전쟁의 여파로 사라진다. 이제 미국의 얼굴은 '엔더'라고 불리는80세 이상의 노인들과 ‘엔더(Ender)’보다 더 적은 수의 '스타터(Starter)'라고 불리는 10대 이하의 청소년들로 바뀐다.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이 200세까지 늘어난 세계. 기득권층이자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엔더들은 자신들의 일거리 보존을 위해 재빠르게 연장자 고용 보호법을 만들고, 미성년자들의 취업은 불법으로 규정된 상황에서 전쟁으로 보호자를 잃은 ‘스타터'들은 길거리로 내몰려 집행관들을 피해 살아가거나 비인간적인 수용소에서 19세가 될때까지 강제노역으로 살아가게 된다.
주인공 캘리는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다. 아픈 동생에게 약은커녕 밥조차 제대로 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몰리자 결국, 그 저의가 의심스러운 ‘프라임 데스티네이션'과 계약을 맺게 된다 . 그들의 사업은 ‘신체 대여'! 직장을 가질 수 없는 ‘스타터'의 싱싱한 육체를 부유한 ‘엔더’들에게 고가에 대여하는 사업이다. 생존을 위한 그녀의 선택은 과연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네트워크를 통한 인체 점유라는 소재는. 제법 진지한 철학적 문제를 담아낼 수 있었으나 블록버스터의 프레임에 묻혀 비운에 사그러진 영화 [써로게이트(Surrogates)](개인적으로는 정말 괜찮은 SF 수작이 될 수 있었던 작품인데 아쉬워요. 영화로는 치명적이게도 재미가 없었단 말이죠. ㅡㅡ;;)와 [게이머], 그리고 미드 [돌 하우스(Doll House)] 등을 떠오르게 한다. 아! 그러고보니 초대박 흥행 신화를 써내려간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아바타]도 비슷한 설정을 채용했었다.
SF 팬으로서 이렇게 인간의 정신을 제어하는 설정은 라이트 세이버와 초광속의 우주 여행에 비해 비록 시각적인 자극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지적인 자극은 더 강한 소재가 아닐까 싶다. 필자는 물질세계의 극단에 이르러서야 정신세계의 깊은 탐구가 이루어 지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인데, 일단 먹고는 살아야 고민도 하는 법 아닌가? 실제로 빔 무기나 우주 여행등은 부분적으로나마 현재도 실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스타워즈]나 [스타트렉]의 세계가 [스타터스]의 세계보다는 더 가까운 미래라는 것이 더 논리적일 것인데도, 오히려 이러한 ‘정신 제어'의 세계가 훨씬더 현실감 있는 근미래로 느껴지는것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리사 프라이스'는 이러한 근미래형의 소재를 잘 활용한데다 주인공이 그대로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끌고가는 1인칭 시점의 장점 또한 잘 살려내, 현장감과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미스테리의 구도를 유지하여 읽는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양극화의 현상을 전쟁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경제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도 중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장년층을 삭제함으로써 더욱 간명하게, 극단화된 세상을 만들어낸 작가의 대담한 센스는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어디서 이렇게 뛰어난 작가들과 새로운 이야기들이 속속 등장하는지 이거야 말로 커다란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이라면 이야기의 결말이다. 스포일러가 될 듯 하여 차마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뭔가 그 헐리우드식의 ‘인기있으면 속편으로 돌아올께' 식의 트릿한 마무리는 심히 아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스타터스]의 세계에 미련이 남아서일까? 독특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작가가 자신의 작품세계의 근간으로 삼을만큼의 독창성과 확장성을 지닌 세계관은 아니라고 느껴지는 바, 확실하게 이야기의 결말을 짓거나 혹은 독자에게 확실하게 남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하나의 작품과 세계관을 완성시켜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후속작을 염두에 두었다면 그건 그거대로 확실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암시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결말을 냄으로써 작가의 얄팍한 계산만 보여주는 듯 하여 그 결말에의 아쉬움은 금할 길이 없다.
제멋대로 별점은 재미있다에 4, 외형및 편집에 3, 소장가치에 3 대충 평균 3점 주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