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애의 모든 것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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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그렇듯 우주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그리고 그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 가운데 어느 작은 별 두 개가 서로를 마주 보며 반짝이고 있었다. 이것은 우주와 별들에 관한 이야기다.

  ……

  우주의 어느 부분에서는 째깍 1초가 100년처럼 늘어지고 또 다른 곳에서는 100년이 째깍 1초만에 지나가 버린다고 하지 않던가.

  ……

 

 

 

  대한민국 정당 사상 최초의 미녀 국회의원. 진보노동당 대표이자 세상을 떠난 언니의 천재 딸을 키우며 언니의 그림자를 잊지 못하는 나쁜 이모 오소영. 그녀가 던진 빨간 소화기에 맞아 뇌에 금이간 전직 판사이자 현직 국회의원이며 선천적 마초와 후천적 마초가 제일 독한 비율로 혼합된 슈퍼 울트라 판타스틱 스틸하트 마초 새한국당 김수영. 진짜 좌와 진짜 우인 그들이 우연같은 운명처럼 운명같은 우연처럼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하게 되며 벌어지는 엽기 발랄 정치 풍자 연애담!

 

  이거 대박이다! 재미있다! 발랄하다! 웃기다~~~! ㅋㅋㅋㅋ

  작년 중반쯤부터 어찌된 일인지 다시 책읽기에 빠져들어 이책 저책 닥치는 대로 읽어왔지만 SF니 환타지니 추리소설이니 하며 주로 번역 소설만 손대거나, 나쁜 머리와 짧은 견문에 교양이라도 쌓아보겠다고 건조한 인문 서적에만 눈길을 주다 보니 우리 말의 화려함과 현란한 즐거움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냥 그저 그런 연애 소설로 알고 이런 것도 한번 읽어 봐야지 하고 별다른 기대 없이 신청한 <내 연애의 모든 것>.  젊어서는 비극을 쓰고 늙어서는 희극을 쓰겠다는 작가 ‘이응준'은 촌철살인, 엽기발랄한 말빨로 필자에게 우리말의 즐거움을 다시 일깨워줬다.

 

  작가는 인생을 적절한 의역이어야 하는데 괴상하게 직역돼 있는, 언젠가 묵었던 파푸아뉴기니의 한 5성급 호텔에서 본 한글이 부기된 메뉴판에 비유한다.

 

BOWL OF CEREAL 곡물의 사발

BAKERS BASKET 빵 굽는 사람의 바구니

CUPCAKES 컵은 굳힌다.

VEGETARIAN FRIED NOODLE 채식주의자는 국수를 튀겼다.

 

  영어라면 이미 노스텔지어의 영역으로 치부하고 포기해버린 필자조차 빵 터진 이 괴상한 직역을 작가는 일단 어이가 없어서 웃기고, 어떻게 참고 한참 들여다보면 모더니즘 계통의 난해한 전위 시 같기도 하기 때문에 인생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이런 톡톡 튀는 엽기 발랄한 표현들과 대부분 들어보지도 못한 수많은 명작과 거장들의 인용이 그저 작가 자신의 유식함을 자랑하는, 잘난체에 그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말들 속에는 작가의 진정이 담겨있어 그저 화려한 말잔치에 그치지 않고 삶의 통찰과 풍자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옳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칭찬받지는 못합니다. 진짜 큰 도둑은 성인(聖人)인 체하는 법이죠.

  ……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잊는 것이다. 그리고 죽기 전에는 절대 죽지 않으며, 이미 죽은 이는 그리움에 죽은 이의 길로 아직 살아 있는 우리는 날숨과 들숨이 함께하듯 헤어지지 않고 우리의 길을 가는 것이다.

  ……

  바람은 모습이 없다. 대신 바람에 흔들리는 것들로써 바람의 모습을 본다. 시간은 모습이 없다. 대신 시간에 흘러가는 것들로써 시간의 모습을 본다. 지금 시간에 흘러가고 있는 이 음악으로 내가 시간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

 

  한 평론가는 <내 연애의 모든 것>을 포스트모던 기법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필자는 포스트모던이 어떤 물건인지 모르겠지만, 전반부의 발랄함이 무색하게 후반부에 보여지는 사뭇 시적이기까지 한 작가의 세상 보기는 그저 웃고 즐기는 트랜디한 연애 소설에 머무르지 않게 하는 심상치 않은 공력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였다. 필자는 이응준작가의 글이 ‘이외수' 선생님의 글과 닮아 있다고 느껴진다. 엽기적인 발랄함, 촌철살인의 풍자, 마치 무협지의 고수들을 떠올리게 하는 삶의 달인들 그리고, 진지한 성찰까지.

 

  대한민국 정치현실에서 몬테규가와 캐플렛가의 대립에 결코 뒤지지 않는 여와 야, 좌와 우의 양 극단에서 만난 두 연인의 사랑, 노처녀 노총각이라서 더욱 필자에게 공감이 가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젊어서는 비극을 쓰고 늙어서는 희극을 쓰겠다던 1970년생 43세의 작가 ‘이응준'의 손에 비극이 될 것인가, 희극으로 맺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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