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고 벼르던 그 영화 <아티스트>를 오늘 결국 보고야 말았다. 으쌰<(ㅡㅅ-)>! 필자만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영화의 경우 이상하게 잘 못보게 된다. 시간대가 안맞는다던가, 자주 가는 극장에서는 상영을 안한다던가, 이미 상영이 종료됬다던가, 애니의 경우 죄다 더빙만 상영한다던가 하는 식이다. 또 어떻게 딱 맞아 떨어져서 보게되는 경우에도 기대가 커서 그런지 그렇게 착 달라붙는 영화를 만나기는 또 힘들다. 이런 사정이 겹치다 보면 필자의 경우 벼르던 영화가 마음에 드는 확률은 좀 보태서 얘기하면 로또에 맞을 확률에 가깝지 않을까^^? 이번 <아티스트>의 경우도 이상하게 필자가 좋아하는 조조 상영을 하지 않아 또 다시 흘려 보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이번만큼은 하는 마음으로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여 봤는데 ! 로또 당첨! 영화로는 오랜만에 소확행을 느끼게 해준 멋있는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영화는 잘 알려진대로 흑백의 무성 영화다. 효과음 NO! 비주얼 NO! 대사는 장면 사이에 끼워넣는 풀 스크린 자막뿐이고,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효과음을 대신하는 그런 영화인 것이다. 조금 우습다면 무성 영화는 고사하고, 필자가 기억하는 흑백영화라고 해봐야 토요 명화에서 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콰이강의 다리> 정도인데, 이 영화 <아티스트>를 보면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아련한 그리움과 향수를 느꼈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 읽은 <스포츠 한국사>에서 남아있던 감정의 영향일지도 모르겠으나 <아티스트>는 이런 따듯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였다.

 

 

 

 

 
  냉정하게 보면 사실
 <아티스트>는 무성영화의 모양만 따온 것일지도 모른다. 화면은 기운 구석 하나 없이 말끔한 데다가, 주인공의 몰락을 예고하는 장면에서는 음악이 멈추고 효과음이 등장하고, 술에 취한 주인공의 앞에 난쟁이 원주민들이 창을 들고 등장하는등 비록 잠깐이지만 실제 70년대의 무성영화에서는 불가능한 퀄리티와 효과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요소들이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또 하나의 매력 아닐까? 오히려 약간의 양으로 음식의 맛을 살려주는 향신료처럼 이러한 도구들을 잘 활용하여 영화를 맛을 살려주고 있을 뿐 아니라 무성 영화의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지 않고 현대의 무성영화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겸손함마저 느껴지는듯 하여 더욱 마음에 들었다.

  필자가 영화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보면 화려한 비주얼과 음향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무성영화가 관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배우와 감독의 몫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말을 할 수 없으니 표정과 몸짓으로 말을 해야하고 비록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한다고 하나 효과음을 쓸 수 없으니 보는 것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을 연출해 내야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풀 스크린 자막을 마구 남발했다가는 영화가 누더기로 변해 버릴 테니 그럴 수도 없으리라. <아티스트>는 어떻게 보면 매우 진부한 스토리임에도  조금만 보면 스토리 진행이 다 예상된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이름을 발음하기도 벅찬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의 연출로 무성영화의 불리한 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하여 멋지게 선방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에 보니 이 영화 골든글러브와 아카데미 상을 휩쓸었다는 것 같은데
, 아무래도 때리고 부수고 터지는 종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필자의 경우 상 많이 받은 영화치고 재미있는 영화 없다는 주의지만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 <아티스트>가 바로 그렇다.

  기술의 발달로
 B급 블록버스터가 난무하는 영화계에 마치 반항아처럼 등장한 <아티스트> 그들의 선방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ONCE MORE’를 외치고 싶다.

 

 

“완벽해! 한 번 더 갈수 있을까?

“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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