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의 정세토크 - 60년 편견을 걷어내고 상식의 한반도로
정세현 지음, 황준호 정리 / 서해문집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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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뜬금없지만, 필자의 초딩시절 그러니까 필자에게는 국딩시절 얘기를 하나 하면서 리뷰를 시작하고 싶다.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필자의 초딩 시간표에 보면 일주일에 한시간씩 H.R 시간이 있었다. 영어로 HomeRoom 으로 알고 있는데(아님말고ㅡㅅ-;) 우리는 학급 회의 라고 불렀다. 주로 '환경미화는 이렇게 해보자' 라든가 '칠판닦개는 밖에가서 털자' 같은 그냥 소소한 학급단위의 문제를 얘기하는 거였는데, 대부분 지겹고 귀찮아서 시키지 않으면 거의 의견도 얘기하지 않는 그런 회의였다. 정작 꼭 필요한건 얘기해봐야 들어주지도 않는데 누가 성의를 갖고 임하겠는가? 아무튼 그런 H.R 시간에 뜬금없이 담임 선생님의 지시로 '통일'에 대한 토론을 한 기억이 난다. 초딩이 뭘 알겠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도 - 비록 한명씩 지적해서 어거지로 말하게 한 것도 많았지만 -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 때 기억을 되집어 보면 크게 세가지 의견으로 분류되었던것 같은데 정리해보면

 

1. 지금 통일하면 북한 먹여살리려다 우리나라 망한다. 하면 안된다.

2. 통일하면 땅도 커지고 국력도 늘어난다. 그러니 당장 손해라도 통일해야한다.

3. 통일은 민족의 숙원이다. 실리를 따져서는 안된다. 통일은 해야한다.

 

  주로 이 세가지 갈래로 비록 초딩의 짧은 지식과 말이지만 제법 그럴듯하게 포장해가며 논박했었드랬다. 사실 통일 문제에 대해 뭔가 알고 깊이 생각해 봤다기보다는 그냥 학교와 집에서 그리고 TV에서 들은 얘기를 떠듬떠듬 되풀이 한것에 불과했는데,  1시간의 토론이 끝나갈때까지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본질적으로는 1번과 2번의 반복이었다. 그때가 1980년대 중후반 이었던것 같은데 어른이 된 지금에 와서 생각해봐도 필자의 남북문제에 대한 인식은 저 틀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었던 것 같다. 실제로 드물게나마 지나가는 얘기라도 주변사람과 통일에 대해 이야기해 보거나 인터넷 게시판에 논쟁을 봐도 이것저것 살은 좀 붙었을지 모르지만 기본 틀은 딱 저거다. '독일봐라 섣불리 통일했다 망할뻔 했잖냐? 우리나라는 그랬다간 정말 망한다.' '아니다 당장 손해라도 장기적으로 봐야한다.' 머 대충 이 틀에서 거의 벗어나지를 않는다. 멀리 갈것도 없이 필자 스스로도 그랬다.

 

  필자가 어줍잖게 장년 흉내를 내며(필자는 노총각이긴 하지만 어쨋든 아직 청년이다!..라고 주장한다!!) 궂이 옛날 얘기를 떠들어 댄 것은 첫째, 이 책을 읽으면서 필자의 인식이 얼마나 막연하게, 그것도 잘못된 인식을 막연하게 갖고 있었나를 깨닳았기 때문이고 둘째, 보수적인 교육의 폐단이 얼마나 크고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에 관한 것은 MB 정권이 들어선후 조금씩 정치와 시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필자가 뼈저리게 느낀 것으로 정말 해도 너무한 느낌이다. 필자가 항상 상식으로 생각하고 옳다고 믿었던 기저의 사고들은 대부분 초.중 교육때 배운 것들인데 앞서의 예에서 보듯이 초.중 시절 암암리에 교육되어지고 심어진 관념이 지극히 보수 우파, 그것도 제대로 된 것도 아닌 상당부분 편의에 맞게 왜곡되어진 정보와 관념이었다는 것이다. 초등시절부터 통일되면 북한 먹여살리느라 우리나라 망한다는 식의 논리가 주입되어 있으니 우리나라 국민의 대부분이 우파적일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배우고 자랐음에도 북한은 빨갱이니까 다 때려잡고 통일하자는 의견이 안나온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이 책에서, 이 대담에서 전 통일부 장관이자 오랫동안 통일 문제를 연구해온 학자이기도 한 '정세현' 전 장관은 좌.우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학자 답게 그리고 최전선에 서봤던 경험자 답게 매우 논리적이고 현실적으로 남북 문제를 이야기하고 지금까지 우리가 내내 상식으로 알고 있던 편견을 깨뜨려 주고 있다. 실제로 필자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무식하나마 그래도 통일문제에 대한 큰 틀은 상식선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나름 생각했었는데 그 상식이란 것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잘못되어 있으며, 막연한 지식이었는지 깨닳았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숙원, 민족적 숙제라고 할 수 있는 문제를 정치가라는 것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얼마나 호도했는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세현' 장관의 이야기를 조금 발췌해 보면,

......

코스트cost(비용)를 말할 때는 반드시 베네핏benefit(수익,효과)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상식 아녜요?

......

우리가 북한을 도와서 북한 주민들의 건강상태가 지금보다 5%만 좋아져도 우리가 거기서 33조의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노동력의 질이 향상되니까, 생산성이 높아지고 뭐 이런 겁니다. 그러니까 10.4 선언을 이행하기 위해 14조를 들여 대북 사업을 하면, 그것이 140조 효과가 될지 1400조가 될지 정부가 이제는 정확하게 얘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돈 들어가는 것만 얘기하지 말고. 

AND

......

 

북한을 욕할 때는 지독한 통제사회, 독재국가라고 하면서 대책을 세울 때 보면 구멍이 숭숭 뚫린 사회라서 그냥 우리 맘대로 할 수 있는 나라처럼 생각하는 겁니다.

......

 

  이와 같이 통일 문제에 대한 그의 이야기에 정치적인 색깔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논리적이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은 듯한 구성은 마치 직접 면전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듯 친숙하게 느껴지는데 그이 이야기를 듣는 내내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뭍어 나오는 듯 하여 더욱 가슴에 착 들러 붙는듯 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를 필자같은 문외한에게도 전혀 난해하지 않게 일상의 언어로 풀어주고 있으니 어찌 멋진 대담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학자로서 최일선의 실천가로서의 경험과 지식이 진득하게 배어 있는 이 멋진 대담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 봄직 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책은 흑백대비 디자인의 소프트 커버로 상당히 깔끔한 느낌을 준다. 제법 폰트가 큼지막한데도 두께에 비해 상당한 분량의 이야기를 담을 정도로 편집또한 충실하며, 특히 적절히 삽입되어있는 사진들과 중요 발언의 하이라이트 처리는 가독성과 이해력을 높여주어 마음에 쏙 들었다. 전에도 한번 '서해문집' 출판서적을 봤던것 같은데 그 책도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나는 것이 상당히 센스있는 출판사가 아닐까 싶다.

 

  필자의 편견을 깨고 상식을 가르쳐주신 '정세현' 장관님과 좋은 대담을 책으로 출간해주신 '서해문집'에 감사드리며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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